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Documentation & History

pISSN: 2383-5214 /eISSN: 2733-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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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f the Phantasmagoria of Modernity in Hofesh Shechter's Theatre of Dreams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에 나타난 현대성의 환등상 연구 : 신체·시간·공간의 조직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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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Dance Journal Vol.82 No. pp.233-257
DOI : https://doi.org/10.26861/sddh.2026.82.233

A Study of the Phantasmagoria of Modernity in Hofesh Shechter's Theatre of Dreams

Xie Yu*, Zhang Xuanhao**
*Ph.D. Student in Dance, Kookmin University
**Lecturer, Division of Global Convergence, Kangwon National University
*

Xie Yu xiexie101101@gmail.com


** Correspondence to Zhang Xuanhao xuanhaoz1214@gmail.com
July 20, 2026 September 29, 2026 September 30, 2026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Hofesh Shechter's Theatre of Dreams through Walter Benjamin's concept of phantasmagoria, asking how the sensory conditions of modernity are organized on stage. It draws on field observations of both performances of the Korean premiere at the Seongnam Arts Center in March 2025 and on the performance program. At the bodily level, the gambler, the flâneur, and the collector serve as operational categories for movement that is triggered and repeated; at the temporal level, duration, repetition, interruption, and juxtaposition constitute continuity and rupture together; at the spatial level, curtains and lighting reveal certain bodies while concealing others. In all three, perceptible outcomes are selectively separated from the conditions that organize them. The phantasmagoria in this work is not a form that conceals everything but one that selectively distributes what is brought to the fore and what is left behind-revealing that the sensory reality of the modern subject is constituted within conditions already selected and arranged.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에 나타난 현대성의 환등상 연구
: 신체·시간·공간의 조직을 중심으로

사유*, 장훤호**
*국민대학교 공연영상학과 무용학전공 박사과정
**강원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강사

초록


본 연구는 호페쉬 쉑터(Hofesh Shechter)의 「꿈의 극장(Theatre of Dreams)」 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환등상 개념을 통해 현대성의 감각적 조건이 무대에서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분석하였다. 2025년 3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 초연 두 공연의 현장 관찰과 공연 프로그램을 일차 자료로 삼았다. 신체의 차원에서는 도박꾼, 산책자, 수집가를 조작적 범주로 삼아 움직임이 촉발되고 반복되는 방식을, 시간의 차원에서는 지속, 반복, 중단, 병치가 연속과 절단을 함께 구성하는 방식을, 공간의 차원에서는 막과 조명이 특정한 신체를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신체를 가리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세 차원 모두에서 지각 가능한 결과와 그것을 조직하는 조건은 선택적으로 분리된다. 「꿈의 극장」의 환등상은 모든 것을 은폐하는 형식이 아니라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선택적으로 배분하는 형식이며, 이는 현대 주체의 감각적 현실이 이미 선택되고 배열된 조건 속에서 구성됨을 보여준다.



    Ⅰ. 서 론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현대 사회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모바일 매체의 일상화에 따라 감각 경험의 변화를 겪고 있다.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은 이미지와 정보를 선택·배열하며 개인이 세계를 지각하는 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파사주 프로젝트』의 연구 개요(Exposé)로 두 차례 “파리, 19세기의 수도”를 작성하였는데, 그중 1939년 프랑스어 개요에서 그는 19세기 자본주의 도시와 상품문화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삶의 형식과 창조물들이 “하나의 환등상의 세계로 들어선다”고 서술하였다(Benjamin 1982, 60). 본 연구는 이를 경제적·기술적 관계가 이미지와 공간의 형태로 가시화되는 동시에 그 발생 조건은 은폐되며, 이를 통해 주체의 현실 경험이 조직되는 과정으로 읽는다. 환등상은 표상의 층위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감각과 신체가 조직되는 조건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무용 분석의 차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지닌다. 본 연구는 이러한 논의를 오늘날의 매체 환경 속에서 감각과 지각이 어떠한 조건 아래 구성되는지를 검토하기 위한 이론적 출발점으로 삼는다.

    무용은 신체의 움직임과 시간·공간의 조직을 통해 관객의 지각 경험을 구성한다. 무용에서 신체는 재현의 대상인 동시에 지각이 발생하는 매체이며, 관객은 무대 위 신체의 리듬과 긴장에 자신의 신체로 반응한다. 환등상이 감각과 신체가 조직되는 조건의 문제라면, 무용은 그 조건을 표상의 층위가 아니라 신체적 경험의 층위에서 다룰 수 있는 예술 형식이다. 비선형적 장면 전환, 움직임의 반복과 단절, 음악, 조명, 공간의 결합은 연속적인 시간과 공간의 지각을 변화시키며, 벤야민이 논의한 집단적 꿈에 가까운 비연속적 감각 경험을 구성한다.

    호페쉬 쉑터(Hofesh Shechter)의 안무에서는 집단 신체와 사회적 긴장, 권력과 폭력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이러한 창작 맥락 속에서 2024년 6월 27일 파리에서 세계 초연된 「꿈의 극장(Theatre of Dreams)」은 꿈과 기억, 파편적인 장면 구성을 작품의 주요한 요소로 제시한다. 이 작품은 성남아트센터, 성남문화재단을 비롯한 유럽, 북미, 아시아의 20여 개 공연기관 및 축제가 공동위촉에 참여하였으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성남과 상하이에서 상연되었다(성남문화재단 2025, 18). 작품에서는 비선형적인 장면 구성과 반복되는 신체 움직임, 음악, 조명, 막의 변화가 결합되면서 장면의 연속성과 공간의 가시성이 지속적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구성은 무대 위에 지각 가능한 장면과 그것을 선택, 배열, 전환하는 무대적 조건 사이의 관계를 두드러지게 하며, 본 연구는 이 관계를 벤야민의 환등상 개념을 통해 검토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쉑터의 안무에 관한 연구는 작품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와 집단적 경험, 그리고 이를 감각적으로 구현하는 신체와 무대 형식에 주목해 왔다. 장훤호, 정은주(2024)는 「이중 살인(Double Murder)」을, 이성여(2024)는 「그랜드 피날레(Grand Finale)」를 대상으로 집단의식과 권력 구조, 집단기억 등 사회적, 집단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한편 김성훈(2025) 은 「블러시」와 「광대들」을 아르토의 잔혹연극론과 연결하여 논의하였고, 김예림, 이지희(2026)는 같은 「그랜드 피날레」를 대상으로 감각적 표현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연구는 쉑터의 안무에서 무대 요소가 사회적 의미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매개로 기능한다는 점을 밝혀 왔다. 다만 이때 감각은 주로 의미가 전달되는 경로로 다루어지며, 감각 자체가 조직되는 방식을 현대성의 구조와 연결하여 검토한 논의는 제한적이다.

    루프레히트(Ruprecht 2015)와 이동원(2017)은 벤야민의 사유를 통해 신체와 무용을 사회적·매체적 조건 속에서 해석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위난츠(Wynants 2017)와 러너(Lerner 2026)는 환등상 공연에서 광학적 장치와 공간, 공연자와 관객의 관계가 몰입과 불연속적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을 논의함으로써, 환등상이 감각 경험을 조직하는 공연적 조건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밝혔다. 판필리오(Panfilio 2013)는 벤야민의 논의를 독해하며 도박꾼, 산책자, 수집가를 현대적 경험의 주체 유형으로 해석하였다. 다만 이 논의는 철학적 독해의 층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 유형들이 무대 위 신체의 지각 형식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쉑터 연구와 벤야민, 환등상 연구는 대체로 서로 다른 문제의식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쉑터의 안무가 형성하는 감각적 경험을 현대성의 지각 구조와 연결하고, 환등상 개념을 안무 분석의 차원으로 구체화한 논의는 제한적이며, 「꿈의 극장」에 관한 국내 연구 또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간극에서 출발하여 환등상을 무용 분석의 범주로 구체화하고, 신체, 시간, 공간을 분석의 세 차원으로 설정한다. 신체의 차원에서는 도박꾼, 산책자, 수집가를 무대 신체에 나타나는 지각 형식을 분석하기 위한 범주로 조작화한다. 시간의 차원에서는 반복과 단절, 순환적 장면 구성이 지각되는 시간을 조직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공간의 차원에서는 막과 조명에 의한 지각 장의 분할과 전환이 신체의 드러남과 가려짐을 조직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연구자의 선행 연구인 장훤호, 정은주(2024)가 브레히트의 소격 개념을 통해 쉑터의 안무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였다면, 본 연구는 지각이 조직되는 조건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이에 본 연구의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꿈의 극장」에서 현대성의 환등상은 신체, 시간, 공간의 어떠한 안무적 구성을 통해 나타나는가? 둘째, 이러한 안무적 구성은 관객에게 어떠한 지각 조건을 제시하는가? 셋째, 이를 통해 이 작품은 현대 주체의 감각적 조건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2. 연구 방법 및 범위

    본 연구는 문헌 연구와 공연 분석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문헌 연구에서는 벤야민의 환등상에 관한 원전과 관련 선행연구를 검토하여 이론적 논의를 정리한다.

    공연 분석은 연구자가 2025년 3월 14일과 1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꿈의 극장」 국내 초연 두 차례를 모두 직접 관람한 현장 관찰을 주요 분석 자료로 삼는다. 두 차례의 관람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요소를 기술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관찰의 일관성을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신체 움직임과 장면 구성, 음악, 조명, 막의 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자료의 활용 범위는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성남 공연의 구체적인 무대 구성은 현장 관찰과 공연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기술한다. 호페쉬 쉑터 컴퍼니의 공식 자료와 안무가 및 제작진의 공개 인터뷰는 작품의 제작 및 창작 맥락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한다. 다른 시기와 지역에서 이루어진 공연에 관한 비평 자료는 작품의 제작과 수용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 한정하며, 인용 시 해당 공연의 시기와 장소를 함께 밝힌다.

    다만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제한을 지닌다. 연구자는 공연 영상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으므로 음악의 박자나 조명의 지속 시간 등에 대한 계측적 분석은 수행하지 않았으며, 무대 요소에 관한 기술은 현장 관찰과 공연 프로그램에 근거한 질적 기술에 한정된다. 또한 본 연구가 분석하는 상연은 성남 공연에 한정되므로, 그 결과를 이 작품의 모든 상연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Ⅱ. 벤야민의 ‘현대성의 환등상’에 관한 이론적 기초

    1. 현대성의 환등상이 생성되는 논리

    발터 벤야민은 1927년부터 진행해 온 『파사주 프로젝트』의 연구 개요(Exposé)로 1935년 독일어판과 1939년 프랑스어판 “파리, 19세기의 수도”를 작성하였다. 환등상(phantasmagoria) 개념은 두 개요 모두에 나타나지만, 벤야민 자신이 밝히듯 1939년 개요에서는 가상과 현실의 대질이 전면에 놓이고 각 절의 환등상 논의가 하나의 계열로 정리된다. 벤야민은 이 개념을 통해 19세기 도시 경제와 기술적 조직 양식의 변화를 논의하였으며, 환등상은 『파사주 프로젝트』 전체를 조직하는 핵심 범주로 기능한다. 본 연구는 두 개요를 구분하여 다루며, 인용은 『Gesammelte Schriften』 V.1(1982)에 수록된 텍스트를 기준으로 한다. 이에 따라 1935년 독일어판 연구 개요(S. 45–59)와 1939년 프랑스어판 연구 개요(S. 60–77)를 구분하여 표기한다.

    이 용어는 원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한 ‘유령 쇼(ghost shows)’라 불리는 환등 쇼를 가리킨다. 테리 캐슬(Terry Castle)이 밝히듯, 이는 마술 환등(magic lantern)을 이용해 ‘유령’을 만들어내던 환영주의적 전시이자 대중 오락이었다. 공연자는 광학 투사 장치를 이용하여 해골이나 유령의 이미지를 연기와 반투명 막 위에 투사함으로써 실재와 허구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본 연구가 이 형식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미지가 나타나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발생시키는 장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나타나는 것과 그것을 발생시키는 조건 사이의 이러한 분리를 환등상의 지각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핵심 기준으로 설정한다. 캐슬이 인용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환등상은 “꿈이나 열병 상태에서 보이는 것처럼, 상상력에 의해 환기되거나 문학적 묘사에 의해 창조되는, 변화하는 일련의 혹은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환영이나 상상적 이미지”이다(Castle 1988, 27). 이로써 환등상은 광학 장치를 지시하는 기술적 용어에서 지각과 상상의 상태를 지시하는 용어로 확장된다. 이러한 분리의 구조는 환등상에 관한 논의에서 상품과 전시 공간 등 서로 다른 층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다만 이러한 계보는 벤야민 자신이 명시한 것이 아니다. 벤야민은 『파사주 프로젝트』에서 환등 쇼의 역사를 다루지 않으며, 환등상을 광학 장치에서 지각 형식으로 잇는 계보는 캐슬(Castle 1988)과 코언(Cohen 1993) 이후의 연구, 그리고 이를 동시대 매체 환경으로 확장한 라히지(Lahiji 2015) 등의 논의를 통해 재구성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후속 연구의 재구성을 참조한다.

    1939년 개요의 서두에서 벤야민은 이 연구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의 연구는 문명에 대한 이러한 물화된 표상의 결과로, 지난 세기가 우리에게 남긴 새로운 삶의 형식들과 경제적·기술적 토대 위의 새로운 창조물들이 어떻게 하나의 환등상의 세계로 들어서는지를 보이고자 한다(Benjamin 1982, 60).

    이러한 맥락에서 벤야민은 19세기 파리의 도시 산업자본주의와 상품문화에 고유한 문화적 가치를 환등상이라는 개념을 통해 규정하였다. 여기에서 환등상은 개별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행동 양식과 창조물이 편입되는 하나의 세계로 제시된다.

    다만 벤야민 자신은 환등상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 개념의 내포를 가장 압축적으로 정리한 것은 『파사주 프로젝트』의 편자 롤프 티데만(Rolf Tiedemann)으로, 그는 환등상을 교환가치 또는 가치형식이 사용가치를 은폐하는 상품 그 자체이자, 그것을 수행하는 인간에게 자연력으로 맞서는 자본주의 생산과정 전체로 규정한다(Tiedemann 1982, 26). 이 규정에서 환등상은 이미지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조직 방식에 관한 문제로 파악된다.

    이러한 규정의 배경에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상품물신주의 논의가 놓여 있다. 상품은 인간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지만, 교환 관계 속에서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생산물들 사이의 관계라는 형태로 나타난다(Marx 1990, 164–165). 사회적 관계가 사물의 속성처럼 보이게 되는 이 전도는 앞서 확인한 두 층위, 곧 상품이라는 이미지의 층위와 생산과정이라는 관계의 층위를 잇는 지점이다. 벤야민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전도가 인간의 욕망과 지각 방식, 현실 판단에까지 작용하는 국면을 환등상이라는 개념으로 다룬다.

    본 연구는 여기에서 앞서 살펴본 유령 쇼와 상품 구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분리의 구조를 확인한다. 유령 쇼에서 투사 장치가 시야에서 가려졌듯이, 상품에서는 그것을 생산한 노동 관계가 가려진다. 두 경우 모두 나타나는 것은 선명하지만, 그것을 나타나게 하는 조건은 지각되지 않는다.

    마거릿 코언(Margaret Cohen)은 『세속적 조명(Profane Illumination)』에서 환등상을 알레고리(allegory)와의 대비 속에서 검토하며 이를 “알레고리의 악마적 분신(demonic doppelgänger)” 으로 규정한다(Cohen 1993, 236). 코언의 논의에서 알레고리가 이미지와 그 이면의 의미 사이에 해석의 가능성을 남긴다면, 환등상은 나타난 이미지를 자족적인 현실처럼 제시함으로써 그것의 발생 조건을 비가시화한다. 이러한 대비는 앞서 살펴본 분리의 구조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적 단서가 된다.

    수전 벅모스(Susan Buck-Morss)는 파리의 쇼핑 아케이드(파사주)에 늘어선 진열창이 상품을 전시하는 환등상을 만들어냈으며, 파노라마 장치와 원근법적 축소 모형이 관람자를 그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서술한다. 또한 세계박람회가 “이러한 환등상적 원리를 작은 도시 규모의 영역으로 확장하였다”라고 지적한다(Buck-Morss 1992, 22).

    여기에서 분리의 구조는 전시 공간의 조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진열창과 파노라마는 대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보게 만드는 배치 자체는 지각되지 않게 한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인간의 감각과 지각이 조직되는 방식을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특정한 현대적 주체성과 소외의 형식을 낳았다.

    벤야민은 이러한 전시의 논리를 공간의 두 유형으로 정리한다. 그는 1939년 개요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사람들이 오직 전형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시장의 환등상에는 실내의 환등상이 대응하며, 후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방에 사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의 흔적을 남기려는 인간의 억누르기 힘든 성향에 의해 구성된다(Benjamin 1982, 60 - 61).

    시장의 환등상이 신체를 전형으로 전시한다면, 실내의 환등상은 흔적을 축적하고 보존한다. 두 경우 모두 공간의 배치가 무엇이 어떻게 나타날지를 규정하며, 그 배치 자체는 지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벅모스는 나아가 자본주의적 조건 아래의 현대성이 일종의 재주술화를 생산한다고 본다. 이러한 재주술화와 관련하여 벅모스는 “증대되는 체계적 합리화의 표면 아래에서, 무의식적인 ‘꿈’의 층위에서 새로운 도시-산업 세계는 완전히 재주술화되었다”라고 서술한다(Buck-Morss 1989, 254). 이는 환등상이 개인의 층위를 넘어 작동하는 형식임을 시사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환등상은 자본주의적 현대성이 감각적 차원에서 구체화되는 형식으로 파악된다. 벤야민의 환등상 개념은 한편으로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주의 비판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비판을 생산의 영역에서 문화와 감각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환등상이 조직하는 감각의 조건은 개인의 층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벤야민은 1935년 개요에서 “집단의식 속에는 새것이 옛것과 서로 스며드는 이미지들이 대응하며, 이 이미지들은 소망 이미지들이다”라고 쓰고(Benjamin 1982, 46), 이어 “각 시대에게 그 다음 시대가 이미지로 나타나는 꿈 속에서, 후자는 원사(原史)의 요소들과 결합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라고 서술한다(Benjamin 1982, 47). 본 연구는 이 집단적 꿈 이미지 논의를 환등상이 개인의 지각을 넘어 집단적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근거로 삼는다. 현대 사회가 경관과 상품과 매체를 매개로 개인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주체를 현실과 환각 사이의 상태로 이끄는 방식은 이러한 층위에서 이해될 수 있다.

    본 연구가 이 개념을 무용 분석에 사용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환등상은 표상의 내용만을 문제 삼는 개념이 아니라, 감각과 지각이 조직되는 조건을 문제 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무용 공연에서도 신체와 빛, 소리는 관객에게 직접적인 지각의 대상으로 제시되는 반면, 그것들을 배치하고 조직하는 안무적, 기술적 조건은 대체로 지각되지 않은 채 남는다. 본 연구는 이러한 경우 앞서 확인한 분리의 구조가 성립한다고 본다.

    다만 이 개념이 포착한 것은 19세기 자본주의의 역사적 조건이다. 오늘날의 감각 환경은 디지털 매체와 알고리즘적 배열이라는 다른 기술적 기반 위에서 조직된다. 분리의 구조가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별도의 검토를 요한다.

    2. 환등상의 지각 구조와 현재적 변형

    앞 절에서 확인한 분리의 구조는 19세기의 광학 장치와 상품, 전시 공간을 대상으로 도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조는 오늘날의 매체 환경에서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가.

    우선 스크린을 매개로 한 지각 환경에서도 이 구조는 유지된다. 프란체스코 카세티(Francesco Casetti)는 영화적 지각의 조건을 논하며 관객이 “스크린의 존재도 느끼지 못하고, 빛의 존재도 느끼지 못한다”(Casetti 2022, 349)고 지적한다. 관객에게 제시되는 것은 이미지와 소리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스크린과 광원, 투사 과정은 지각의 배경으로 물러난다. 19세기의 환등 쇼에서 확인된 구조가 매체적 지각의 차원에서도 작동하는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 이미지와 정보의 지각에는 알고리즘적 배열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조건이 개입한다. 엔트레나-세라노(Entrena-Serrano)는 “알고리즘적 콘텐츠 분배와 이를 구현하는 플랫폼의 기술적 구조는 이용자에게 허용되는 콘텐츠 큐레이션과 소비의 방식을 형성한다”고 지적한다(Entrena-Serrano 2025, 2). 이미지와 정보는 이러한 기술적 조건 속에서 선택, 배열되어 주체에게 제시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 자체는 직접적인 지각의 대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Bolz)는 “벤야민의 환등상은 현대 매체의 토대 위에서만 현실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Bolz 2003, 24). 이러한 관점에서 환등상의 현재적 변형은 19세기의 광학 장치와 오늘날의 기술을 직접 대응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각 가능한 결과와 그것을 선택, 배열, 조직하는 조건 사이의 분리의 구조가 새로운 매체 환경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 재구성되는가에 있다.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 이미지와 정보가 지속적으로 갱신되고 감각 자극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지각은 자극을 수용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조직될 수 있다. 수전 벅모스(Susan Buck-Morss)는 벤야민의 충격 경험에 관한 논의를 감각 체계의 방어와 마취의 문제로 확장하며, “그 목적은 유기체를 마비시키고, 감각을 둔화시키며, 기억을 억압하는 데 있다. 공감각적 인지 체계는 오히려 마취의 체계가 되었다”라고 지적한다(Buck-Morss 1992, 18). 이러한 관점에서 환등상의 현재적 변형은 이미지와 정보의 과잉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체의 지각이 선택되고 제한되며 일정한 방식으로 조정되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감각의 방어 속에서 매체 기술은 지각 가능한 범위를 확장하고, 주체가 무엇을 어떠한 순서와 강도로 접하게 될지를 선택, 배열한다. 디지털 인터페이스와 알고리즘적 처리 과정이 이러한 조직에 개입하면서, 주체는 그 결과로 제시된 이미지와 정보를 경험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사회적 조건 전체를 직접 지각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관점은 환등상의 지각 구조를 신체, 시간, 공간이라는 세 차원에서 분석적으로 구체화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3. 현대성의 환등상을 분석하기 위한 무용적 차원

    앞 절에서 확인한 분리의 구조를 무용 공연에서 분석하기 위해, 본 연구는 신체, 시간, 공간을 서로 연동되는 세 가지 분석 차원으로 설정한다. 무용 공연에서 관객에게 나타나는 것은 신체이며, 그 신체는 시간 속에서 전개되고 공간 속에 놓인다. 세 차원은 나타남의 서로 다른 국면이자, 각각을 조직하는 조건과 대응시켜 검토할 수 있는 단위이다. 음악, 조명, 막과 같은 무대 요소는 독립된 분석 차원이 아니라 신체, 시간, 공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공연적 조건으로 다룬다.

    세 차원 가운데 신체가 지각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지각의 주체로서 신체는 주체와 세계 사이의 매개”이며, 현상장(phenomenal field)은 “신체가 세계 속에 삽입되어 그 안에서 방향을 잡고, 행동하며, 영향을 받는 지각의 장”(Merleau-Ponty 2002, 239) 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용의 신체는 움직임을 수행하는 가시적 대상이면서, 빛과 소리와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지각의 장을 구성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신체가 세 차원 가운데 첫 번째 분석 단위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체의 차원에서는 분리의 구조가 움직임의 반복과 중단, 집단적 배치, 긴장과 이완, 동시성과 비동시성 등의 안무적 형식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살펴본다. 이와 관련하여 판필리오(Panfilio 2013)는 도박꾼과 산책자, 수집가를 각각 유행과 권태, 내면성의 경험에 대응하는 세 가지 인물 유형으로 제시한다(243).

    이 세 인물 유형은 벤야민 자신의 구분과 동일하지 않다. 벤야민은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도박꾼, 산책자, 기다리는 자를 구분한다(Benjamin 1982, 164 [D 3,4]). 판필리오는 『파사주 프로젝트』의 여러 콘볼루트를 함께 읽으며 이 세 형상을 현대적 경험의 인물 유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본 연구는 판필리오가 제시한 세 인물 유형을 활용하되, 이를 무대 신체에 나타나는 지각 형식을 분석하기 위한 조작적 범주로 설정한다. 이에 따라 도박꾼의 반복과 소진, 산책자의 이동과 저장, 수집가의 축적과 재배열을 신체 움직임이 현대적 경험의 조건을 어떠한 방식으로 가시화하는지를 살펴보는 기준으로 삼는다. 신체 차원의 분석에서는 특정 동작의 상징적 의미를 확정하기보다 움직임의 반복, 중단, 배치가 어떠한 지각 조건을 제시하는지를 검토한다.

    시간의 차원에서는 반복, 중단, 지속, 장면의 병치와 전환이 관객에게 어떠한 시간적 지각 조건을 제시하는지를 살펴본다. 벤야민이 도박꾼을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구분한 데서 드러나듯(Benjamin 1982, 164 [D 3,4]), 환등상은 시간이 경험되는 방식 자체를 조직한다. 도박꾼의 시간은 반복되는 시도와 그때마다의 끊김으로 절단되며, 각각의 순간은 앞선 순간과 연속되지 않는다. 무용 공연의 시간 또한 움직임과 음악의 지속, 암전에 의한 중단, 장면의 반복과 재등장을 통해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조직될 수 있다. 이때 반복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움직임과 장면을 다시 출현시키고, 중단은 형성된 흐름을 끊으며, 병치는 서로 다른 시간적 단위를 하나의 공연 안에 인접시킨다. 시간 차원의 분석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구성되는 시간 경험을 검토하고, 분리의 구조가 시간적 차원에서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본다.

    공간의 차원에서는 무대의 배치와 깊이, 조명에 의한 가시 영역의 분절, 막의 드러남과 가려짐 등이 관객에게 어떠한 공간적 지각 조건을 제시하는지를 살펴본다. 앞서 살펴본 파사주와 박람회, 그리고 실내의 환등상은 공간의 배치가 대상의 가시성과 주체의 지각 조건을 조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벤야민이 구분한 시장의 환등상과 실내의 환등상은, 무대 공간이 신체를 전시하는 방식과 감싸는 방식 사이에서 어떻게 전환되는지를 살펴보는 범주가 된다. 무용 공연에서 조명과 막, 무대의 깊이와 거리는 무엇이 드러나고 무엇이 가려지는지를 조정하며 하나의 지각 장을 구성한다. 공간 차원의 분석에서는 무대에 제시되는 가시적 공간과 그것을 조직하는 배치, 조명, 차폐의 조건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고, 분리의 구조가 공간적으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살펴본다.

    Ⅲ. 호페쉬 쉑터의 창작 배경과 「꿈의 극장」의 공연 맥락

    1. 호페쉬 쉑터의 창작 시각

    쉑터는 197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김현남, 우승화(2018)는 “호페쉬 쉑터는 정치적 성향을 자신의 작품에 융합하는 데 능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무용 형식을 창조한다”고 평가한다(805). 이러한 논의는 쉑터의 작품에서 사회적 긴장, 권력, 집단성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창작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배경을 제공한다.

    쉑터의 첫 안무 작품인 「파편(Fragments)」은 2002년에 창작되었으며, 이후 「봉기(Uprising)」 에서는 집단 신체에 대한 그의 관심이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맥널티(McNulty 2009)는 2009년 로스앤젤레스 공연에 대한 평문에서 이 작품의 영감이 “부분적으로 2005년 프랑스 교외 지역의 소요 사태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평가는 「봉기」가 당시의 사회적 긴장과 집단 신체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2010년에 창작된 「정치적 어머니(Political Mother)」는 집단 신체와 강한 음악적 구성이 결합된 작품이다. 맥크렐(Mackrell 2010)은 2010년 5월 브라이턴 돔(Brighton Dome) 공연에 대한 평문에서 이 작품에 나타난 정치적 이미지와 집단적 움직임을 권력과 억압의 문제와 관련하여 논의한다. 이러한 신체와 음악의 결합은 이후 확대된 공연 형식에서도 나타났다. 윈십(Winship 2024)은 인터뷰 기사에서 2015년 런던 O2 아카데미 브릭스턴(O2 Academy Brixton)에서 공연된 「정치적 어머니: 안무가판(Political Mother: The Choreographer's Cut)」을 회고하며, 당시 관객 사이에서 모싱(moshing)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이러한 자료는 쉑터가 정치적 문제를 집단 신체와 강한 음악적 자극이 결합된 공연 환경 속에서 제시해 왔음을 보여준다.

    2021년에 창작된 「이중 살인(Double Murder)」은 「광대들(Clowns)」과 「더 픽스(The Fix)」로 구성된다. 이 작품에서는 폭력의 재현과 그것이 어떠한 감각적 조건 속에서 제시되는가의 문제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장훤호, 정은주(2024)는 「광대들」의 강한 리듬과 무용수의 움직임 사이에서 형성되는 불일치가 무대에 대한 감정적 몰입을 약화시키고 일정한 거리의 관람 조건을 형성한다고 분석하였다(168). 이러한 논의는 「이중 살인」에서 폭력의 내용과 리듬, 신체, 관람 조건의 조직이 함께 고려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해 쉑터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1(Nederlands Dans Theater 1)을 위해 「잉글랜드에서 온 사랑(From England with Love)」을 창작하였으며, 이 작품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초연되었다. 이후 2024년에는 쉑터 II(Shechter II)에 의해 다시 공연되었고, 같은 해 「꿈의 극장」이 창작되었다(Hofesh Shechter Company 2024). 호페쉬 쉑터 컴퍼니의 공식 자료는 또한 「잉글랜드에서 온 사랑」이 영국의 어두운 역사와 오래된 전통에 대한 강한 애착이 공존하는 문화적 역설을 다룬다고 소개한다.

    「꿈의 극장」의 구성적 특징에 대해 왓츠(Watts 2024)는 2024년 10월 런던 새들러스 웰스 극장(Sadler's Wells Theatre) 공연에 대한 평문에서 이 작품을 꿈에 대한 흐릿하고 순간적인 기억을 통해 무의식의 영역을 탐색하는 에피소드적 구성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해당 런던 공연에서 단편적인 장면과 이미지의 전환이 주요한 구성적 특징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쉑터의 창작에서 사회적 문제의식과 감각적 무대 구성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봉기」에서는 집단 신체와 사회적 긴장의 관계가, 「정치적 어머니」에서는 집단 신체와 강한 음악적 구성이, 「이중 살인」에서는 폭력의 재현과 관람 조건의 관계가 각각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쉑터의 작업이 무엇을 재현하는가의 문제에서, 그것이 어떠한 신체적, 시간적, 공간적 조건 속에서 제시되고 관람되는가의 문제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준다. 「꿈의 극장」은 이러한 이동이 무대 환경 전체의 조직으로 확장된 지점에 놓이며, 앞 장에서 설정한 신체, 시간, 공간의 세 차원은 이 작품을 분석하기 위한 틀이 된다.

    2. 「꿈의 극장의」 창작 및 한국 초연

    「꿈의 극장」은 호페쉬 쉑터가 안무와 음악을 맡고 호페쉬 쉑터 컴퍼니(Hofesh Shechter Company)가 제작한 작품이다. 파리 시립극장(Théâtre de la Ville–Paris)의 위촉으로 창작되어 2024년 6월 27일 파리에서 세계 초연되었으며, 성남아트센터, 성남문화재단을 비롯한 유럽, 북미, 아시아의 20여 개 공연기관 및 축제가 공동위촉에 참여하였다(성남문화재단 2025, 18). 초연 이후 작품은 유럽을 중심으로 순회 공연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25 년 3월 14일과 1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국내 초연되었다.

    성남 공연은 성남아트센터 개관 20주년을 맞아 마련된 기획공연으로 소개되었다. 이러한 초청 맥락은 「꿈의 극장」이 한국에 소개되고 수용된 구체적인 공연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표 1.

    「꿈의 극장」 한국 초연 기본 정보

    (Basic Performance Information of the Korean Premiere of 「Theatre of Dreams」)

    출처: 성남문화재단.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Hofesh Shechter’s Theatre of Dreams), 2025, 공연 프로그램(인쇄본), 성남아트센터, 성남.

    항목 내용
    작품명 「꿈의 극장(Theatre of Dreams)」
    안무·음악 호페쉬 쉑터(Hofesh Shechter)
    제작 호페쉬 쉑터 컴퍼니(Hofesh Shechter Company)
    세계 초연 2024년 6월 27일, 파리 시립극장
    한국 초연 2025년 3월 14일·1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공연 일시 2025년 3월 14일 19:30 / 3월 15일 15:00
    러닝타임 90분, 인터미션 없음
    출연 무용수 13명, 연주자 3명
    조명 디자인 톰 비서(Tom Visser)
    의상 디자인 오스낫 켈너(Osnat Kelner)
    협력 예술감독 브루노 기요르(Bruno Guillore)
    음악 협력 야론 엥글러(Yaron Engler)
    무대 협력 니얼 블랙(Niall Black)
    음향 감독 톰 페니(Tom Penny)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는 1,808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으로, 객석은 3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연구의 무대 기술은 2025년 3월 14일과 15일 이 공연장에서 이루어진 두 차례의 현장 관찰을 기준으로 한다. 특히 이후의 막, 조명, 음향에 관한 기술은 연구자가 실제 관람한 객석 위치에서 확인한 시야와 무대의 깊이, 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감, 현장 음향 환경을 포함한 관람 조건에 한정한다.

    연구자는 3월 14일과 15일의 성남 공연을 모두 직접 관람하였으며, 본 연구의 작품 분석은 이 두 공연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성남 공연 프로그램과 성남문화재단이 발행한 관련 자료를 공연 정보와 창작 배경을 확인하기 위한 1차 자료로 활용하였다. 공연 프로그램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쉑터는 이 작품에 라이브 음악과 녹음된 전자음, 목소리 등 다양한 사운드가 함께 사용된다고 설명한다(남소연 2025, 9). 따라서 이후의 구체적인 무대 기술은 성남 공연에 대한 현장 관찰과 공연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하며, 다른 시기와 지역의 공연 자료는 작품의 제작 배경과 구성적 특징을 확인하기 위한 보조 자료로 한정한다.

    연구자가 관람한 두 차례의 성남 공연에서는 막, 조명, 음악과 음향, 신체 움직임의 변화가 장면 전환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나타났다. 막의 개폐와 조명의 변화는 무대의 가시 범위와 깊이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켰으며, 무용수들은 집단 대형과 개별적인 움직임 사이를 오가며 장면의 밀도와 관계 구성을 달리하였다. 음악과 음향 또한 장면에 따라 상이한 리듬과 음색을 제시하며 신체 움직임 및 장면 전환과 결합되었다.

    이와 같은 무대 구성에서는 신체의 집단적 배치와 움직임, 반복과 전환에 따른 시간의 조직, 막과 조명을 통한 공간의 가시성과 차폐가 서로 긴밀하게 연동되어 나타난다. 다음 장에서는 이 성남 공연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앞 장에서 설정한 신체, 시간, 공간의 세 차원에서 「꿈의 극장」의 무대 구성이 어떠한 지각 조건을 제시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Ⅳ. 「꿈의 극장」에 나타난 현대성의 환등상

    1. 신체의 환등상적 조직

    「꿈의 극장」에서 신체는 환등상적 무대가 가장 직접적으로 가시화되는 지점이다. 성남 공연에 출연한 13명의 무용수는 낮은 중심과 굽힌 무릎, 앞으로 기울어진 몸, 떨림과 달리기, 급정지와 집단적 결집을 반복하며 서로 다른 신체 상태를 구성한다. 본 연구는 앞 장에서 조작적 범주로 설정한 도박꾼, 산책자, 수집가의 세 형상을 통해 이러한 신체의 양상을 분석한다. 벤야민은 도박꾼, 산책자, 기다리는 자를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구분한다(Benjamin 1982, 164 [D 3,4]). 한편 판필리오(Panfilio)는 『파사주 프로젝트』의 여러 콘볼루트를 함께 읽으며 도박꾼, 산책자, 수집가를 세 가지 인물 유형으로 제시한다(Panfilio 2013, 243). 본 연구는 판필리오의 유형을 활용하되 시간과의 관계를 분석의 기준으로 삼아, 도박꾼은 시간을 소진하고, 산책자는 시간을 저장하며, 수집가는 시간을 점유하여 다른 형식으로 전환하는 신체 형상으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모하는 도박꾼의 신체이다. 작품 초반 한 무용수가 객석을 지나 무대로 진입한 뒤, 무대 위 신체들은 낮은 중심과 굽힌 무릎을 유지한 채 빠르게 움직임에 들어간다. 달리기와 떨림, 충돌과 급정지가 이어지며, 그중 제자리에서 달리는 움직임은 이러한 상태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무용수는 다리를 반복적으로 들어 올리고 팔을 흔들며 몸통을 진동시키고, 여러 신체가 유사한 운동에 합류하면서 움직임의 강도는 집단적으로 확대된다.

    이러한 제자리 달리기는 도박꾼이 시간을 소모하는 방식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다. 판필리오는 도박꾼에게서 반복되는 선택과 기대가 시간을 소모하면서도 기존의 조건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주목한다(Panfilio 2013, 246). 성남 공연에서 제자리 달리기는 강한 전진감을 형성하지만 실제적인 이동이나 새로운 상태의 축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신체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 뒤 다시 같은 운동 상태로 돌아온다. 음향이 끊기는 순간 신체의 운동도 멈추고, 소리가 돌아올 때 움직임이 다시 시작된다. 그 운동의 재개와 정지에 관여하는 감각적 조건은 신체의 가시적 형상 뒤에 놓인다. 도박꾼의 신체는 이처럼 운동의 강도와 그 운동을 발생시키는 조건 사이의 분리를 드러낸다.

    앞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자리 달리기와 낮은 중심, 신체의 진동은 쉑터가 여러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해 온 신체 어휘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동작의 형태와 운동 질감을 이해하는 데 유효하다. 다만 「꿈의 극장」에서 이 움직임은 집단의 동시적 운동, 음악과 음향의 변화, 급격한 정지와 재개가 결합된 조건 속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된다. 본 연구가 이를 도박꾼의 형상과 연결하는 근거는 동작의 외형이 아니라 이 관계에 있다. 본 연구는 앞서 살펴본 선행연구가 다룬 안무적 특징을 신체의 가시적 움직임과 이를 조직하는 조건 사이의 관계에서 읽는다는 점에서 분석의 초점을 달리한다.

    두 번째는 이동하는 시간을 저장하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안정된 방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산책자의 신체이다. 성남 공연에서 막이 부분적으로 열린 장면에서는 무용수들이 낮은 중심을 유지한 채 짧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고, 주변을 살피며 방향을 바꾸거나 집단에 합류했다가 다시 떨어져 나온다. 신체는 계속해서 새로운 위치와 관계를 지나가며, 하나의 명확한 목적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산책자의 특징은 이동의 지속에 있지 않다. 지나온 시간이 신체 안에 저장되고도 하나의 방향으로 응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판필리오가 설명하는 산책자는 이동 속에서 경험과 시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렇게 저장된 시간은 안정된 방향이나 적극적인 힘으로 전환되지 않는다(Panfilio 2013, 245, 249). 「꿈의 극장」의 신체 역시 장면과 관계를 지나가며 이동을 지속한다. 그러나 신체가 나타나는 위치는 막이 열린 범위에 따라 달라지며, 닫힌 막 뒤에서 이루어지는 이동 과정은 가려진다. 따라서 무대 위에 드러나는 이동의 범위는 막의 개폐가 설정한 가시적 영역에 의해 제한된다. 산책자의 신체는 이처럼 지속되는 이동과 그 이동의 범위를 설정하는 공간적 조건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세 번째는 이미 나타난 시간을 점유하고, 그것을 변형된 형태로 되돌려놓는 수집가의 신체이다. 성남 공연에서는 한 무용수에게서 시작된 떨림이 주변의 신체로 이어지고, 이후 여러 무용수가 유사한 진동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타난다. 굽힌 무릎, 앞으로 기울어진 몸, 달리기, 정지, 결집과 흩어짐 역시 한 번 나타난 뒤 소멸하지 않고 서로 다른 장면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무용수에게 옮겨가거나 집단 전체로 확대되고, 앞선 장면의 자세가 새로운 관계 속에서 되돌아오면서 이미 지나간 움직임은 반복 가능한 파편으로 보존된다.

    수집가의 형상에서 반복은 도박꾼의 소모나 산책자의 저장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도박꾼의 신체가 에너지를 소진한 뒤 같은 운동 상태로 되돌아가고, 산책자의 신체가 지나온 시간을 저장한 채 응결시키지 못한다면, 수집가의 신체는 이미 나타난 움직임을 보존하여 새로운 신체와 집단적 배열 속에 다시 내놓는다. 한 사람의 달리기가 집단의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특정 자세가 다른 움직임 단락 안에서 되돌아올 때 집단적 신체는 움직임의 파편을 보존하고 재배열하는 수집 장치처럼 기능한다. 이때 무대에 드러나는 것은 반복되어 돌아오는 신체 이미지이며, 어떤 움직임이 선택되고 어떤 관계 속에서 다시 배열되는지를 결정하는 구성 원리는 이미지 자체에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수집가의 신체는 이처럼 보존된 시간의 가시적 귀환과 그것을 선택, 배열하는 조건 사이의 분리를 형성한다.

    이처럼 세 형상은 반복과 이동이라는 공통된 특징 위에서 시간과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구분된다. 세 형상 모두에서 무대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움직이고 이동하며 반복되는 신체이고, 그 움직임을 촉발하고 범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는 조건은 가시적 신체의 후경에 놓인다. 「꿈의 극장」에서 신체의 환등상적 조직은 신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주체로 나타나는 결과와 그 움직임을 발생시키고 조직하는 조건 사이의 이러한 분리를 통해 구체화된다.

    2. 시간의 환등상적 조직

    앞 절에서 무대 위 신체가 어떠한 형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았다면, 여기에서는 이러한 신체와 장면의 출현이 어떠한 시간적 관계 속에서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꿈의 극장」에서 시간은 하나의 사건이 다음 사건으로 안정적으로 축적되는 균질한 흐름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장면은 계속해서 변화하지만 일부 움직임과 음향은 이전의 상태를 이어가고, 이미 지나간 움직임이 새로운 장면 속에서 다시 돌아오며, 형성된 흐름은 갑작스럽게 끊어진 뒤 다시 시작된다. 이러한 구성에서 연속과 단절은 단순한 대립으로 제시되지 않으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각되는 시간적 관계를 형성한다. 앞 장에서 환등상이 지각 가능한 결과와 그것을 구성하는 조건 사이의 분리로 논의되었다면, 시간의 차원에서는 바로 이 연속성과 그 연속성을 만들어내는 전환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성남 공연 초반에는 “Hello everyone, welcome to the theater of your dream”이라는 음성이 제시된다. 이 발화는 이후 펼쳐질 무대의 시간을 ‘꿈’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시키는 하나의 경계로 기능한다. 이후 낮은 음역의 타악성 소리와 반복적인 맥박이 이어지고, 신체의 형태와 집단 구성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이러한 음향적 흐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무용수들이 무릎을 굽히고 몸을 흔들거나 여러 신체가 함께 움직임에 진입할 때에도 반복되는 맥박은 신체 움직임과 병행되며 서로 다른 장면 사이에 일정한 연속성을 만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동일한 장면이 지속된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각적 장면이 변하는 동안에도 음향적 흐름이 이어짐으로써 서로 다른 순간들이 하나의 계속되는 현재 속에 놓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속 속에서 이미 나타났던 움직임은 새로운 장면 안으로 반복적으로 되돌아온다. 제자리 달리기, 떨림, 굽힌 신체와 급정지 같은 움직임은 장면이 달라진 뒤에도 다른 무용수와 집단 구성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때 새로운 장면과 이미 보았던 움직임이 동시에 제시되면서, 현재의 장면을 앞서 지나간 순간과 겹쳐 지각하게 하는 조건이 형성된다. 다시 말해 시각적 장면은 교체되었지만 움직임은 되돌아오고, 음향의 일부는 계속 이어진다. 반복은 이처럼 장면의 전환과 시간의 지속 사이에서 작동하면서, 이전의 순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현재 안에 남도록 한다. 그 결과 작품의 시간은 과거를 뒤에 남겨두고 앞으로만 진행하기보다 이미 지나간 것이 현재와 계속 겹쳐지는 상태로 제시된다.

    본 절에서 절단은 시간의 흐름이 끊기는 현상 전반을 가리키며, 그 가운데 관객에게 하나의 사건으로 지각되는 것을 중단, 지각되지 않은 채 장면과 장면을 잇는 것을 이음매로 구분한다. 이러한 지속이 먼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중단은 하나의 시간적 사건으로 지각된다. 성남 공연에서는 이어지던 음향이 멈추는 순간 신체의 운동 역시 정지하고, 집단적 움직임이 하나의 멈춘 자세로 전환되는 장면이 나타난다. 지속적인 맥박과 운동이 선행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정지는 하나의 정적인 이미지로만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일정한 흐름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정지는 앞선 시간을 끊는 순간으로 경험된다. 이후 음향과 신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더라도 시간은 중단 이전의 상태로 자연스럽게 복원되지 않는다. 한 차례 끊어진 흐름 이후의 움직임은 새로운 단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앞선 장면이 그대로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은 무효화된다. 따라서 지속과 중단은 서로 분리된 두 가지 효과가 아니라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이룬다. 지속은 중단을 지각 가능하게 만들고, 중단은 앞서 경험한 연속성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시간이 아니라 구성된 흐름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계는 장면의 병치와 전환에서 더욱 복잡해진다. 성남 공연에서는 한 명의 독무자, 작은 집단, 순간적으로 형성되는 집단적 자세 등 서로 다른 이미지가 이어지며, 하나의 장면이 충분히 서사적으로 전개되기 전에 다른 장면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시각적 장면이 교체된다고 해서 앞서 형성된 시간의 모든 요소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음향의 흐름은 이어질 수 있고, 앞선 장면에서 보았던 움직임은 다른 신체를 통해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시각적 층위에서는 장면이 끊어지고 교체되는 반면, 청각적 흐름과 신체의 반복은 이전 장면과 다음 장면 사이에 연속성을 남긴다. 장면은 바뀌었지만 시간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고, 시간은 이어지지만 장면은 이미 다른 것으로 교체되어 있는 상태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의 장면이 끝나고 다른 장면이 시작되는 전환의 이음매는 독립된 사건으로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앞선 장면이 다음 장면의 직접적인 원인이나 설명으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하나의 안정된 인과관계로 연결하기 어려운 지각 조건도 형성된다. 이 작품에서 모든 절단이 같은 방식으로 지각되는 것은 아니다. 음향과 운동이 동시에 멈추는 중단은 하나의 시간적 사건으로 전면화되는 반면, 하나의 장면이 다른 장면으로 교체되는 이음매는 독립된 사건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즉 무대는 어떤 절단은 지각 가능하게 만들고, 어떤 절단은 그 결과만 남긴 채 후경으로 물러나게 한다. 관객이 시간의 구성을 파악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절단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지각되는 절단과 지각되지 않는 이음매가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마지막에서는 이러한 시간이 다시 하나의 경계와 마주한다. 무용수들이 함께 움직이는 카니발적 장면을 마무리한 뒤 장막이 다시 나타나면서, 공연 초반의 발화를 통해 ‘꿈’과 연결되었던 무대의 시간은 다시 무대와 현실의 경계에 놓인다. 공연의 시작과 끝은 비교적 분명한 경계를 갖지만, 그 사이에서 이어진 장면들은 지속, 반복, 중단, 전환이 서로 엇갈리면서 어느 순간이 끝이고 어느 순간이 시작인지를 명확하게 분절하기 어려운 상태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시간의 구성은 서로 다른 장면이 이어지면서도 그 사이의 전환 과정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형식적 특성을 갖는다. 「꿈의 극장」에서 이러한 시간은 한 개인의 내면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동일한 무대의 음향, 신체, 장면 전환을 통해 극장 안의 관객에게 동시에 제시되는 시간적 조건으로 구성된다. 앞 장에서 벤야민이 19세기의 문화적 산물을 집단이 산출한 꿈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논의한 것처럼, 본 연구에서 「꿈의 극장」의 ‘꿈’은 이러한 시간 구조가 집단적인 지각 환경 속에서 조직되는 지점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시간적 환등상은 단순히 꿈과 유사한 장면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관객에게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갱신되는 장면의 흐름이며, 그 장면들을 지속시키고 절단하고 되돌리고 다시 결합하는 이음매는 선택적으로만 드러난다. 시간의 차원에서 지각 가능한 장면과 그것을 연결하는 조건 사이의 이러한 분리가 「꿈의 극장」의 환등상적 시간 조직을 구성한다.

    3. 공간의 환등상적 조직

    앞 절에서 모든 절단이 동일한 방식으로 지각되지 않았듯이, 공간의 차원에서도 신체의 나타남은 선택적으로 배분된다. 성남 공연에서 다층의 막과 조명은 특정한 위치와 신체를 가시적 영역 안에 놓고 다른 영역을 차폐하면서 무대의 가시성을 조직한다. 공간의 차원에서 환등상의 문제는 이처럼 보이는 신체와 가려진 신체가 어떠한 관계 속에서 함께 구성되는가에 놓인다.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관찰한 공연을 기준으로 보면, 이러한 가시성의 배분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는 무대의 여러 층에 놓인 검은 막이다. 막은 무대 전체를 하나의 연속된 평면으로 열어 두지 않고, 부분적으로 열린 틈과 그 뒤의 공간을 통해 무대의 깊이를 여러 층으로 나눈다. 무용수들은 막의 앞과 뒤, 열린 부분과 가려진 부분을 오가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하나의 막 뒤에 있던 신체는 개방되는 영역이 달라질 때 새로운 위치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신체의 이동 범위와 출현 위치는 이처럼 막이 열어 놓은 공간의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제1절에서 산책자의 신체가 막 사이를 지나며 이동하고 다시 집단에 합류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면, 여기에서는 그 이동의 범위를 설정하고 신체의 출현 위치를 나누었던 막의 공간적 조건 자체가 분석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막의 공간적 작용은 먼저 시장 환등상의 전시 형식과 연결된다. 앞 장에서 살펴본 대로, 벤야민은 1939년 프랑스어판 연구 개요에서 “사람들이 오직 전형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시장의 환등상에는 실내의 환등상이 대응한다”고 서술한다(Benjamin 1982, 60). 성남 공연에서 막이 부분적으로 열릴 때 무대 전체가 드러나는 대신 한 명의 무용수, 작은 집단, 혹은 특정한 집단적 자세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전면화된다. 막의 가장자리와 열린 부분은 하나의 프레임처럼 작동하면서 그 안에 놓인 신체를 주변의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부터 분리한다. 이때 개별 무용수의 지속적인 인물성보다 굽힌 자세, 집단의 배열, 서로 결합하거나 흩어지는 신체의 형태가 하나의 가시적 유형으로 제시된다. 시장 환등상과 연결되는 지점은 신체를 상품에 직접 대응시키는 데 있지 않다. 막에 의해 한정된 가시적 영역 안에서 신체가 하나의 전시 가능한 형상으로 선택되어 나타난다는 데 있다.

    동일한 막은 신체가 머무를 수 있는 분절된 내부도 형성한다. 여러 층의 막이 겹치면서 그 사이에 안쪽 공간이 만들어질 때 무대는 통로와 작은 방, 벽감처럼 나뉜 공간을 갖게 된다. 이때 신체는 막과 어둠 사이의 제한된 영역에 놓이면서 전체 무대로부터 분리된 내부에 머문다. 벤야민은 1939년 프랑스어판 연구 개요에서 실내를 사적 개인에게 우주를 표상하며 먼 지역과 과거의 기억을 모아 두는 공간으로 설명하고, “그의 거실은 세계라는 극장의 로지이다”라고 쓴다(Benjamin 1982, 67). 실내와 극장의 관계는 이처럼 벤야민의 논의 안에서 이미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제1절에서 살펴본 수집가의 신체가 움직임의 파편을 보존하고 다시 배열하는 방식이었다면, 실내의 환등상은 그러한 보존이 이루어지는 공간적 조건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시장 환등상과 실내 환등상의 관계가 구체화된다. 막이 부분적으로 열려 하나의 신체를 전면에 드러내는 순간, 동일한 막은 그 밖의 신체와 공간을 가려진 영역으로 남긴다. 전시와 차폐는 하나의 개방 동작이 동시에 만들어내는 두 결과이다. 어떤 신체가 프레임 안에서 전시 가능한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 주변의 다른 신체가 보이지 않는 영역에 남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며, 가려진 내부 역시 전면에 열린 영역과의 관계 속에서 내부로 성립한다. 따라서 시장 환등상과 실내 환등상은 서로 다른 무대 장치에 각각 대응하는 두 상태가 아니라, 동일한 막이 일부를 드러내고 나머지를 가리는 과정에서 동시에 형성되는 공간적 관계이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제작진이 밝힌 창작 의도와도 연결된다. 이 작품의 협력 예술감독 브루노 기요르(Bruno Guillore)는 다층의 막을 함께 잠든 마음에 비유하며, 그것이 생각하거나 사물을 한쪽에 두거나 사적인 정원을 가꾸는 칸막이와 같다고 설명한다(King 2026에서 재인용). 무대의 분할이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내면 공간의 구조로 구상되었다는 점은, 막이 만들어내는 내부를 실내 환등상의 논의와 연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조명은 막과 다른 방식으로 가시성의 범위를 조절한다. 막이 신체와 공간을 물리적으로 차폐한다면, 조명은 신체가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상태에서도 그것의 지각 가능성을 변화시킨다. 성남 공연에서는 일부 영역과 신체가 빛 안에 놓이는 동안 다른 신체들이 같은 무대 위에 존재하면서도 낮은 조도와 어둠 속에서 형체를 잃는 장면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조명은 신체를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거나 물리적으로 가리지 않은 채, 빛이 닿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 사이에 가시성의 차이를 만든다. 2025년 10월 런던 새들러스 웰스 공연에 대한 평문에서도 톰 비서(Tom Visser)의 조명 아래 작품의 상당 부분이 연기가 낀 반어둠과 빛 웅덩이 속에서 진행된다고 기술된 바 있다(Gilchrist 2025).

    공간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분리는 앞의 두 절과 그 성격에서 차이를 갖는다. 신체의 차원에서 후경으로 물러난 것은 움직임을 촉발하고 조직하는 조건이었고, 시간의 차원에서는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전환의 이음매였다. 공간에서 가려지는 것은 지금 보이는 신체와 동일한 종류의 다른 신체이다. 관객은 막 뒤와 어둠 속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것이 어떤 상태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점에서 공간의 환등상은 보이는 것과 가려지는 것 모두가 구체적인 신체라는 점에서 앞선 두 차원과 구별된다.

    막이 열리는 순간 일부 신체는 열린 틈과 빛의 영역 안에 나타나고, 다른 신체는 닫힌 구간과 어둠 뒤에 남는다. 하나의 개방이 출현과 비가시화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이 순간에 「꿈의 극장」의 공간적 환등상은 가장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Ⅴ. 결 론

    본 연구는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을 대상으로 벤야민의 환등상 개념을 신체, 시간, 공간의 세 차원으로 구체화하여 현대성의 환등상이 어떠한 안무적 구성을 통해 무대 위에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았다. 신체의 차원에서는 도박꾼의 반복과 소진, 산책자의 이동과 재출현, 수집가의 보존과 재배열이라는 서로 다른 움직임의 양상이 나타났다. 시간의 차원에서는 지속, 반복, 중단, 병치가 결합하면서 연속과 절단이 함께 작동하는 흐름이 형성되었고, 공간의 차원에서는 막의 개방과 차폐, 조명의 가시성 조절을 통해 하나의 공간적 조작이 특정한 신체를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신체를 가렸다. 이러한 결과는 이 작품의 환등상이 신체의 출현과 장면의 연결, 가시성의 배분을 조직하는 방식 자체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은 관객에게 지각 가능한 것과 그 배후에 남는 것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분되는 조건을 제시한다. 신체의 차원에서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움직이고 반복되는 신체이며, 그 움직임을 촉발하고 배열하는 조건은 후경에 놓인다. 시간의 차원에서는 장면의 흐름과 일부 명확한 중단이 지각되는 가운데 장면과 장면을 잇는 이음매가 독립된 사건으로 전면화되지 않는다. 공간에서는 가시화된 신체의 바깥에 같은 무대에 존재하는 다른 신체가 막과 어둠 속에 남는다. 세 차원에서 후경에 놓이는 대상의 성격은 각기 다르지만, 지각 가능한 결과와 그것을 조직하는 조건이 선택적으로 분리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꿈의 극장」의 환등상은 이러한 선택적 분리를 통해 지각의 장 자체를 조직한다.

    이러한 선택적 지각의 조건은 「꿈의 극장」이 현대 주체의 감각적 조건을 드러내는 방식과 연결된다. 작품에서 신체, 음향, 장면, 조명, 막을 통해 구성되는 시간과 공간은 극장 안의 관객에게 공동의 무대 조건으로 제시된다. 벤야민이 19세기의 문화적 형식들을 집단이 산출한 꿈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파악했다면, 「꿈의 극장」은 무엇이 나타나고 사라지는가, 무엇이 이어지고 끊어지는가, 무엇이 보이고 가려지는가를 선택적으로 조직하며, 벤야민의 집단적 꿈과 연결되는 지각 구조를 무대 위에 형성한다. 벤야민은 1935년 개요를 “모든 시대는 다음 시대를 꿈꿀 뿐만 아니라, 꿈꾸면서 깨어남을 향해 나아간다”(Benjamin 1982, 59)라는 문장으로 맺는다. 이 작품이 직접적인 각성이나 구원을 보장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각 가능한 결과와 그것을 조직하는 조건 사이의 간극을 반복해서 드러냄으로써, 현대 주체가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적 세계가 이미 선택되고 배열된 결과임을 다시 질문할 수 있는 지점을 형성한다.

    이러한 분석은 기존 쉑터 연구와 벤야민의 환등상 연구 사이에서 본 연구의 학술적 위치를 분명하게 한다. 본 연구는 쉑터의 안무에서 무엇이 지각 가능한 것으로 구성되는가라는 조건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으며, 지각 가능한 결과와 이를 조직하는 조건 사이의 분리를 분석의 초점으로 설정하였다. 또한 철학적, 도시적, 매체적 현상으로 논의되어 온 벤야민의 환등상 개념을 신체, 시간, 공간이라는 공연 분석의 범주로 전환하였다는 점에서 이론적 의의를 갖는다. 자료의 측면에서는 2025년 3월 14일과 15일 성남에서 이루어진 한국 초연 두 공연의 현장 관찰과 공연 프로그램을 일차 자료로 삼아 해당 상연의 무대 조건을 분석하였다. 성남아트센터와 성남문화재단이 이 작품의 공동위촉기관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한국 초연이 완성된 해외 작품을 사후적으로 수용한 사례에만 한정되지 않고 국내 공연기관이 작품의 위촉 과정에 참여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가 다룬 것은 관객의 실제 수용 결과가 아니라 작품이 제시하는 지각 조건이다. 개별 관객이 환등상의 구조를 실제로 자각하는지는 관객 인터뷰와 수용 연구를 통해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도박꾼, 산책자, 수집가의 세 형상은 벤야민이 제시한 체계적인 삼분법이 아니라 판필리오의 논의를 활용하여 본 연구가 설정한 조작적 범주이므로, 다른 신체 유형이나 분석 기준을 통해 작품을 해석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성남 공연을 분석 대상으로 한정하였기 때문에, 극장 규모와 막, 조명 운용이 달라질 수 있는 다른 지역의 상연까지 동일한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 후속 연구에서는 관객의 실제 지각과 수용을 조사하고, 서로 다른 신체 범주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며, 파리, 런던을 비롯한 다른 상연과의 비교를 통해 「꿈의 극장」의 환등상적 조직이 공연 환경에 따라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

    저자소개

    사유는 한국 세종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무용학 전공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다. 박사과정 1년 차이며, 주요 연구 관심 분야는 예술교육과 다문화예술교육이다.

    Xie Yu received a bachelor’s degree in Dance from Sejong University in South Korea. Xie is currently enrolled in an integrated master’s and doctoral program in Dance Studies at Kookmin [Gukmin] University and is in the first year of the doctoral stage. Xie’s primary research interests include arts education and multicultural arts education.

    장훤호는 벨라루스 국립문화예술대학교에서 예술사학 석사 학위를, 강원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예술철학, 문화연구, 무용인류학이다. 박사학위논문으로 “시장화 전환기 중국 당대 무용노동의 불안정성에 관한 문화연구”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분노의 향방과 침묵의 훈육: 영화 <버닝>을 중심으로”, “브레히트의 소외이론을 중심으로 분석한 호페쉬 쉑터의 안무스타일 연구: 「이중 살인(Double Murder)」 작품을 중심으로”, “Empowering Higher Education in China Ethnic Folk Dance with the Metaverse: A Study on the Impact on Student Satisfaction”, “Embedding Dance Recreation Intervention Pathways in the Aging Model in the Context of Population Aging Trends” 등이 있다.

    Zhang Xuanhao received his M.A. in Art History from the Belarusian State University of Culture and Arts and his Ph.D. in Art Studies from Kangwon National University, where he currently serves as a lecturer in the Division of Global Convergence. His research focuses on the philosophy of art, cultural studies, and dance anthropology. His doctoral dissertation is “A Cultural Study on Precarity in Contemporary Chinese Dance Labor during Market Transition.” His publications include “The Direction of Anger and the Discipline of Silence: Focusing on the Film Burning,” “A Study on Hofesh Shechter’s Choreographic Style Analyzed through Brecht’s Theory of Alienation: Focusing on Double Murder,” “Empowering Higher Education in China Ethnic Folk Dance with the Metaverse: A Study on the Impact on Student Satisfaction,” and “Embedding Dance Recreation Intervention Pathways in the Aging Model in the Context of Population Aging Trends.”

    Figure

    Table

    「꿈의 극장」 한국 초연 기본 정보

    (Basic Performance Information of the Korean Premiere of 「Theatre of Dreams」)

    출처: 성남문화재단.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Hofesh Shechter’s Theatre of Dreams), 2025, 공연 프로그램(인쇄본), 성남아트센터,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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