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Documentation & History

pISSN: 2383-5214 /eISSN: 2733-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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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Korean-Chinese Dance in China: 중국 조선족무용의 사(史)적 흐름 고찰: 연변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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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Dance Journal Vol.60 No. pp.25-48
DOI : https://doi.org/10.26861/sddh.2021.60.25

A Study o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Korean-Chinese Dance in China:

Jin, Xianhua*, Li, Meiling**
Lecturer, Dance Department, Art Academy, Yanbian University, China
Ph. D. student, Hanyang University, Korea
* 김선화 1493528037@qq.com
** 이미령 limeiling910@naver.com

+ 이 논문은 무용역사기록학회 제22회 국제학술심포지엄 “국경 너머의 무용사”(청년문화공간 JU 동교동 바실리오 홀, 2020.09.12.)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2021-02-10 2021-03-02 2021-03-25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Korean-Chinese (ethnic Koreans in China) dance in China, and to examine the developmental aspects of the Korean-Chinese dance in Yanbian after the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is research first defines the concept of the Korean-Chinese (ethnic Koreans in China) and Korean-Chinese dance. The Yanbian Korean-Chinese dance’s developmental aspects are divided in three stages: the Discovery and Creation of Korean-Chinese dance, the Development of Korean-Chinese dance, and the prevalence of Korean-Chinese dance. The characteristics that appear in the Yanbian Korean-Chinese dance’s development process is as follows.
 First, after the foun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 Korean-Chinese dance was closely related to the dance development of the civilian local community.
 Second, in order to transmit and spread the Korean-Chinese dance in Yanbian, an established education and training system for Korean-Chinese dancers was required.
 Third, the dancing culture that was publically spread and transmitted, had moved on to performance stages by performers and was once again spread to earn its popularity.

중국 조선족무용의 사(史)적 흐름 고찰:
연변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을 중심으로

김선화*, 이미령**
중국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무용학과 강사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초록

본 논문은 중국 조선족무용의 사적 흐름의 고찰을 논제로 신중국 건국이후 연변지역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을 고찰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조선족무용은 지난 백여 년간 중국 연변의 지리적, 인문적 환경 속에서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연변지역은 중국 조선족무용이 시작된 곳이다. 이주 초기부 터 1949년까지 조선족은 연변지역에서 삶을 개척하면서 노동생활에 결부한 지역적인 특색을 지닌 민 간·민속무용형식을 기반으로 조선족무용을 구축하였다. 이어 1949년 신중국의 성립과 1978년의 개혁 개방 등 역사적인 시기를 겪으면서 조선족의 무용예술을 계승하는 동시에 꾸준히 모색하고 발전시켜왔 다. 조선족무용은 국제적인 무용 교류의 장이 펼쳐지면서 외부 예술에 대한 인지, 수용, 통합의 과정을 거쳤으며, 이러한 새로운 변화와 발전의 기회를 맞게 되면서 독특한 성격을 띠는 조선족무용예술을 더 욱 풍부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신중국 건국이후 연변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조선족과 조선족 무용에 대한 개념을 짚어 보았다. 이어 신중국 건국이후 연변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을 첫째, 조선족무 용의 발굴 및 창작, 둘째, 조선족 무용교육의 발전, 셋째, 조선족 대중무용의 전개 세 방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건국이후 연변 조선족무용의 변천과정에 나타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건국이후 연변 조선족무용은 대체적으로 민간 지역사회의 무용발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둘째, 연변에서는 조선족무용의 계승과 전파를 위해 무용교육체계의 설립과 조선족무용 인재양성을 목 표로 추진하였다. 셋째, 대중으로부터 전파되고 계승이 된 민간에서의 무용문화가 예술단체와 예술인들 의 손을 거쳐 무대화되고 전파가 되면서 다시금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Ⅰ. 서 론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세계적으로 교류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본 논문은 중국에 정착하면서 독특한 특색을 지니며 발전해 온 중국 조선족무용의 사적 흐름에 대한 고찰을 논제로 신중 국 건립이후 연변지역 조선족무용의 변모양상을 재정립하는데 목적이 있다.

    조선족은 중국의 56개 민족의 일원이다. 조선족은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중 화민족의 문화와 지식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고유한 조선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 및 발 전시키면서 오늘날까지 맥을 이어오게 되었다. 이주를 통해 중국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 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은 한반도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를 착실하 게 계승함과 동시에 꾸준히 본 민족의 문화를 발굴하고 창출하면서 특유의 조선족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또한 타 민족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을 적응하면서 주변국가와 타 민족의 문화에 대해 수용하고 인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조선족의 예술에는 조선족무용도 포함된다. 조선족무용은 이주의 역사를 거쳐 중국의 땅에 정착하여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던 생활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즉 19세기부터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해 온 선조들에 의해 계승된 것이며 사회적, 지리적, 시대적 영향을 받 으며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조선족만의 특유의 미를 형성한 예술이다. 조선족은 중국 동북 의 각 지역에 걸쳐 분포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조선족의 무용 또한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신중국 건립 이후 각 지역의 예인들이 중국 연변지역으로 모여들면서 조선족무용 이 체계적으로 발전될 수 있었다. 조선족의 형성과 조선족의 이주사를 살펴보면 조선족은 독창적인 길을 걸어온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족무용의 형성 또한 그러하다. 중국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조선족의 이주사를 바탕으로 한 조선족무용의 형성, 조선족무용의 변 천과정,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에 대해 포괄적으로 연구된 문헌들은 다수 있으나 한 지역 을 상대로 세부적으로 조사 및 연구한 문헌은 소수에 속한다. 조선족무용이 정착하여 다방 면으로 발전을 이루고 있는 연변지역을 중심으로 그 사적 흐름에 대해 세부적으로 정립 및 연구한 자료는 아직 미비하다고 판단되며 연변지역의 무용 발전에 대해 다방면으로 접 근하여 연구할 필요성을 느낀다.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중국에 정착하면서 발전하게 된 조선족무용의 사적 흐름을 바탕 으로 조선족무용이 신속하게 계승 및 발전할 수 있었던 곳인 중국 연변지역에 초점을 맞춰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을 중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헌 조사를 통해 조선족의 형성배경과 조선족무용의 개념에 대해 살 펴보고, 다수의 조선족 무용사에 관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연변지역 조선족무용의 전반 적인 변천과정 및 발전양상을 포괄적으로 정리하는 분석이 되겠다. 세부적으로 연변자치 주의 각 도시별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제한점으로 두면서 이 부분은 향후 후속 연구로 추진하고자 한다. 미흡하나마 이번 연구로 중국 연변 지역의 조선족무용의 발전맥락을 이해하는데 자그마한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

    2. 선행연구 검토

    조선족무용의 역사는 조선족의 선조들이 중국 땅에 이주한 그 배경부터 시작된다. 백여 년 동안의 조선족 역사가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역사가 이어진 오늘날까지 괄목할 만 한 성적을 이루었다. 조선족무용의 사적 흐름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선족무용이 어떠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발전되어 왔는지 그 변천과정을 밝히는 한국의 선행연구는 다음과 같다.

    최미선1)은 중국 조선족무용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 고찰한 후 조선족무용의 시기별 작품 의 특성을 도출하였는데, 신중국 건국 이후의 조선족무용의 발전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언 급하여 각 지역의 발전에 대한 내용은 모호하게 나타났다. 또한 작품이 창작된 지역에 대 해서는 논문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 송정은2)은 중국 조선족무용을 해방 전과 해방 후, 그 리고 개혁개방시기를 연대순으로 나누어 조선족무용의 변천사를 고찰하였는데, 지역별 조 선족무용의 발전상태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애순3)은 중국문화권에서 조선민족문 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조선족무용의 문화사적 흐름을 통시적, 공시적 으로 연구하였는데, 중국의 특정 지역에서 생성된 무용을 언급하면서 조선족무용이 중국 에 정착한 후의 전반적인 발전양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하지만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어느 한 지역의 조선족무용 발전양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정영주4)는 중국 조선민족무용의 형성 및 발전과정과 해방 전, 후기의 무용작품을 연구하였는데,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조선족 무용작품 보다는 연변의 창작작품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김해금5)은 중국 조선민족무용의 문화사적 변모양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연변의 조선족무용 작품을 위주로 분석하여 창작적 특징을 고찰하였다. 김해금, 김기화6)는 중국 조선민족무용의 공연사적 변모양상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연변대학과 연변의 예술단체의 공연을 중점적으로 논하였다. Cao Ying7)은 조선족무용의 시대적 변천과정에 대해 연구하 였는데 지역별 조선족무용의 변천 보다는 각 시기별 대표 무용수, 무용단체의 작품을 중점 적으로 분석하여 특징을 도출하였다.

    오늘날 중국 조선족무용의 사적흐름과 변천과정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 어 이 분야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세부적인 연구를 진행해야하는 필요성을 느낀다. 일부 조선족무용의 발 전양상에 관한 연구에서는 지역에 대한 정보가 모호한 현상이 존재하며, 중국 연변지역에 대한 연구는 무용전공분야의 발전양상에 국한되어있거나 공연 및 작품분야에 치중되어 있 다. 중국 동북에 각 지역별로 분포되어 있는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 연구와 지역별 조선족무용의 세부적인 발전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상태이며 이와 같 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조선족무용의 사적 흐름 및 발전양상에 대한 보 다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조선족무용의 발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무용전공분야의 발전 외에도 민간에서 추어지는 조선족무용, 대중화 되고 있는 조선족무용 등에 대한 전반적인 발전양상 및 서로간의 연관 성 연구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위 논문들을 기반으로 연변지역에 초점을 두어 연변 조선족자 치주 내에서 계승 및 전파되고 있는 조선족무용을 세 방면으로 나누어 포괄적으로 고찰 및 재정립하고자 한다. 연변지역의 조선족무용을 이주로 인해 민간으로 전파되고 창작, 교 육, 무대화 되어 체계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과정을 거쳐 다시 민간으로 전파되기까지의 전반적인 발전양상에 대해 조선족무용의 발굴 및 창작, 조선족무용의 교육, 조선족의 대중 무용활동으로 나누어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중국 조선족무용의 역사적 배경

    1. 중국 조선족의 형성배경

    조선족의 형성은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조선인들의 이주사부터 짚어보아야 한 다. 고조선, 고구려 시기부터 조선인이 토착민족으로 이미 살고 있었다는 주장은 있으나 그 시기에 생활하던 조선인은 이미 주변 민족과 동화되어 현재 중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 의 이주사로 보기에는 거리가 멀다. 조선족의 이주사는 19세기중반 중국과 조선 두 나라간 의 변금정책(邊禁政策) 시기에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조(淸朝)는 동북의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봉금을 실시하여 경계선을 만들었다. 하지만 빈번한 자연재해, 전 염병, 척박한 농토 때문에 조선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반도에서 강을 건너 이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동북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봉착한 장애는 청조시기 중국과 조 선 두 나라의 변금정책과 청정부가 동북에 실시한 봉금정책(封禁政策)이다.8) 나라간의 정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동북지역으로 넘나드는 조선인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 였다.

    1883년, 중조 양국 간의 변금정책이 폐지됨에 따라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는 대이동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당시 연변지역은 ‘간도(間島)’9)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간도는 청조 이민실변 이후 본격적으로 개척되기 시작하였으며, 1902년 간도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 남 강(南崗)에 연길청이 설치되면서 이주민을 관리하는 최초의 민인관리기구가 설립되었 다.10)

    1910년, 일제강점기에는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의 탄압과 핍박 때문에 생 존을 위한 또 한 번의 조선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고향을 떠나 중국 동북으로 대거 이 동하게 되었다. 1920년에 이르러 연변에는 약 30만 명을 넘는 조선인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인해 이주하게 된 조선인들이다.

    중국으로 이주하게 된 조선인들은 항일투쟁 때 같은 피가 흐르는 조선민족의 독립을 위 해 전쟁에 뛰어들었고, 또 중화민족의 일원으로써 그들이 살고 있는 제2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일본제국과 맞섰다. 수많은 조선족들이 항일투쟁 때 목숨을 잃게 되었으며 마침내 1945년에 일본제국주의가 패배하고 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조선인들은 중국 동북지역을 제2의 고향으로 중국의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이 땅을 개척하면서 자신만 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중국 ‘조선족’의 신분으로 새로운 민족사를 펼치기 시작하였 다. 당시 중국에 거주하던 조선인들 대부분은 중국국적을 소지 하지 않았지만 중국 내 타 민족과 차별화되지 않고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중국인과 동등한 모든 권리를 향유할 수 있었다.

    1949년, 뼈아픈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따 라서 1952년에는 조선족들이 거주하고 있던 연변지역이 중국 조선족자치구로 설립되었으 며, 1955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변경되었다. 오늘의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총 8개의 현 급 행정구로 구성되어 있다. 연길시, 도문시, 돈화시, 훈춘시, 룡정시, 화룡시로 총 6개의 현급 시와 왕청현, 안도현 2개의 현으로 나뉜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설립은 조선족이 중 국의 소수민족, 즉 중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며, 연변지역의 주인으로써 자체적으 로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이는 중국 정부의 민족 평등, 민족자치정책의 구체적인 구현인 동시에 조선인 이주민들이 장기간에 걸쳐 이 지역을 개척하여 새로운 삶 의 터전, 즉 제2의 고향으로 가꾸어 간 근면한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11)

    2. 중국 조선족무용의 형성배경

    조선족의 전통문화는 이민과 함께 중국이란 새로운 땅 위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물론 조선족무용의 형성도 중국 땅에 이주한 그 배경부터 시작하였다고 보아 야 한다. 중국 조선족무용의 형성배경에 대해 조선인의 이주시기부터 건국 이전 까지 살펴 보고자 한다. 이 시기의 조선족무용의 변천과정은 총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이주시기 삶의 터전에서부터 이주를 동반하여 가지고 온 자체의 전통무용 의 전파와 중국 땅에 정착한 후 재생하게 된 민간·민속무용의 형성이다. 이주 후 사회환경, 생활환경에 변화가 생겼으며, 장기간의 불안정한 정착생활로 인해 이주민들의 춤도 변화 가 생겼다. 이주민들의 춤은 궁중무용, 전통무용보다는 서민문화인 민간·민속무용으로 전 환되기 시작하였다. 이주와 함께 조선반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오게 된 조선민족의 무용은 민속무용, 궁중무용, 기방무용 등 장르의 무용이 있는데 중국에 정착한 후에는 모두 민간 에서 추어졌으며 그 특성은 민속활동에서 추는 춤과 민간예인들이 계승한 춤으로 전해지 게 되었다.

    민간에서 행해지던 춤은 굿 놀이, 민속놀이 등 형태로 명절날, 마을의 경사, 잔치 등 풍 속세태 생활 속에서 추어졌으며, 본래의 춤동작과 율동, 리듬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따라서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된 춤의 뿌리가 점차 이 땅에 내려지면서 새로이 조 성된 환경 속에서 부단히 발전하여 오늘날의 조선족무용으로 형성되었다. 연변의 무용학 자들에 의하면 이때의 춤은 허튼춤, 모방춤, 소리춤의 형태를 띠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 다.12)

    조선족 밀집지역의 춤이 발전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집단적인 이주가 이루어 지던 시기 재기를 갖춘 민간예인들이 중국 내 조선족 밀집 지역으로 다수 합류되었기 때문 이다. 민간예인들에 의해 조선민족의 춤 형태가 보존이 되었으며 다양한 장르의 춤이 오늘 날 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다만 집단적인 공동체제 안에서 생활하면서 서로 다른 지역의 특색을 지닌 다양한 유형의 민간·민속무용이 서로 혼합이 되면서 조선족무용은 종합적인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민간예인들은 기존의 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춤들도 창작하였는데 민간에서 추어지던 이와 같은 춤들은 대체로 자유스럽고 오락적으로 추어졌 으며 이러한 춤들은 집단적으로 다듬어지고 전파되는 특징이 있어 춤의 형태나 대형, 구도 등에서는 일정한 변화를 보였다. 민간에서 추어졌던 가장 대표적인 민간·민속무용으로는 농악, 탈춤, 아박춤, 학춤, 수박춤, 삼삼이춤, 접시춤 등이 있다.13) 이 춤들은 민간예인들로 부터 전파되었거나 대중들의 생활 속에서 생성되면서 조선민족의 전통성과 특수성을 지닌 지역적 특색을 띠는 무용으로 인식이 되었으며, 새로운 역사배경 속에서 점차적으로 변화 와 발전을 이루었다. 동북 3성 조선민족의 집거구들에서 민속무용들을 전파시킨 대표적인 민간예인들로는 이금덕(李今德)14), 김선덕(金善德)15), 김재산(金在山)16), 조정숙(趙定 淑)17), 하태익(河兌鎰, 1906-1975)18), 김룡욱(金龍旭)19) 등이 있다.20) 이렇게 형성된 민 간·민속무용은 조선족무용의 발전의 토대가 되어 조선족무용의 중요한 뿌리와 정신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로는 항일투쟁을 위한 무장대오(武裝隊伍)와 해방 무장대오에서의 문예활동이 다. 이 역사 시기는 조선족 무용문화의 발전에 있어 소홀할 수 없는 중요한 구성 부분이다. 신중국 건국 이전 무장대오 내에서는 전사들을 고무하고 사기를 북돋우며 승리를 경축하 기 위하여 여러 가지 유형의 대중적 활동을 펼쳤다. 그중 무용활동도 포함되는데 무장대오 에서는 춤과 노래를 위주로 모두 함께 춤판을 벌이는 형태의 즉흥적인 오락활동과 재능을 갖춘 무용인재들이 앞장을 서 무용작품을 창작하는 대중적인 창작활동이 흥행하였다. 당 시 여러 지역의 조선족 예인들이 문예전사로 모여 무용창작활동과 공연활동을 조직하게 되면서 조선족무용이 무장대오에서 활기를 띄게 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조선족 무용 작품으로는 <곤봉춤>(1930), <재봉대원춤>(1930), 가무 <단심줄>(1933) 등이 있다.21) 이 외에도 적지 않은 무용작품들이 창작되었는데, 소무극 <참군>(1947), 가무극 <농부와 뱀>(1949) 등과 같은 소형무극형태의 작품들도 탄생하였다.

    항일투쟁시기와 해방전쟁시기의 조선족무용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창작이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풍습과 민간의 놀이형태의 춤을 결합하여 창 작한 작품, 두 번째는 조선민족의 민요에 맞춰 조선족무용의 춤사위를 사용하여 창작한 작품, 세 번째는 생활과 전쟁에서 따온 새로운 형식의 창작이다. 이중 세 번째 창작방식은 생활과 전쟁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사건이나 상황을 소재로 일상적인 움직임이나 싸움할 때의 움직임 등 요소를 조선족무용의 움직임에 결부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무용은 즉흥적으로 추어지던 오락적인 형태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추어졌으며 궁중무용, 전통무용, 기방무용, 민간무용과도 다른 사실주의적 표현방식으로 추어졌다. 이와 같이 무 장대오 내에서의 창작활동을 계기로 조선족무용의 작품창작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극장예술로서의 무용창작으로 전이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는 해외무용의 유입과 극장무용예술의 발전이다. 일본의 식민통치의 영향으로 해외문화의 침투가 조선민족이 살고 있는 도시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다. 해외예술인과 예 술단체들이 동북지역을 왕래하면서 극장무용예술이 흥행하게 된 것이다. 1930년대에 일본 은 식민통치의 목적으로 조선민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 예기관(藝妓館), 극장, 공회당 등을 개설하였다. 1935년에는 도문극장, 훈춘공회당, 연길 간도극장 등이 세워졌다. 중국의 주 변국가에서 중국 조선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조선민족의 전통무 용과 창작무용들이 무대예술로 극장에서 공연이 되었다. 이와 같은 교류와 공연이 빈번히 이루어짐으로 인해 조선족들의 무대예술에 대한 안목을 높여주었으며 조선족무용의 창작 내용과 창작방법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로부터 조선족무용은 점차 무대 화를 이루어가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극장무용예술이 대두되면서 감상예술로서의 조선족 무용이 형성된 것이다. 이 시기에 중국 동북지역에서 순회공연을 하였던 무용가로는 한성 준(韓成俊, 1874-1942), 조택원(趙澤元, 1907-1976), 최승희(崔承喜, 1911-1969) 등이 있는데 조선족무용의 발전에 있어 크게 영향을 주었던 무용가는 최승희이다. 그가 1940년 대에 중국에서 순회공연 했던 대표작품들로는 <천하대장군>, <관세음보살>,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았네>, <목동과 처녀> 등이 있었다.

    조선족무용은 이주시기 민간으로부터 전해지면서 신중국 건국 이전까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힘든 여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신중국 건국 이전까지 조선민족의 무용예술은 중 국의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해외에서 유입된 신무용의 영향을 받긴 하였지만 작품창작에 있어 신무용만큼의 무대예술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건 국 이전까지 조선족무용은 대부분 민간에 축적되어 있었으며 체계적이고 정규화 된 무용 예술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역 곳곳에 조선족학교들이 설립되고 노래와 춤을 결부 한 학생들의 예술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지역 곳곳에서 민간·민 속무용이 다양하게 전파 및 발전되고 있었다.

    조선족은 민족의 전통과 새로운 삶으로부터 얻게 된 민족의 경험을 결부하여 조선민족 의 의지와 품위를 품은 조선족무용을 창조해 냈으며 문화발전의 수요에 따라 조선족무용 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부분은 조선족무용의 춤사위와 무용작품에서 그 변화 를 발견할 수 있다. 조선족무용은 민족의 고유한 춤가락과 춤사위를 적극 발굴하여 조선족 의 독특한 개성과 특징을 가진 무용예술로 창조한 것이다. 즉 오늘날 조선족은 조선민족의 전통무용문화를 토대로 조선족만의 무용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 소수민 족무용의 한 부분을 형성하여 중화의 대가정 속에서 외부예술에 대한 인지와 수용, 그리고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화 흐름에 맞게 변화 및 발전을 하고 있다.

    Ⅲ. 신중국 건립이후 연변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

    신중국 건립이후의 연변지역의 조선족무용의 발전은 이주시기 민간에서 계승된 조선민 족무용의 연장선에서 항일무장대오와 해방무장대오를 이어 주변국가와 해외 예술인들을 통해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조선족무용을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신중국 건립 이전의 조선족무용의 변화와 발전은 연변지역의 조선족무용이 건국 이후 부단히 발전할 수 있었 던 토대가 되었으며, 연변지역의 조선족무용의 성장이 중국조선족무용이 전국적으로 전파 및 계승 될 수 있었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되었다. 즉 건국 이전의 조선족무용의 형성은 연변지역 조선족무용의 정착기로 볼 수 있으며 연변지역에 뿌리를 내려 적응하는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건국이후 조선족무용이 신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건국 이후 연변의 조선족무용은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발전양상을 고찰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민간 지역사회에서 추어지던 조선족무용과 민간예술인들이 계승한 무용에 대 한 발굴 작업, 그리고 기존 작품의 재창작 및 민간·민속무용의 무대화 작업이다. 두 번째로 는 조선족무용의 체계적인 계승과 전파를 위한 교육체계의 설립과 무용예술인재 양성을 위한 무용교재의 편찬이다. 세 번째는 이 두 과정을 거쳐 다시 대중으로 전파 및 보급되고 조선족 무용예술의 신속한 발전을 이루는 대중무용활동의 전개이다.

    이 세 가지 측면에 대해서는 첫째, 조선족무용의 발굴 및 창작, 둘째, 조선족 무용교육의 발전, 셋째, 조선족 대중무용활동의 전개로 초점을 맞추어 세부적으로 연변지역 조선족무 용의 발전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조선족무용의 발굴 및 창작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 창건되고 1952년 9월 3일 연변조 선족자치구가 설립되면서 연변은 조선족문화 및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조선족무용의 획기적인 발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56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었다. 수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대 가정이 중국의 특 색이며 각 민족들의 문화는 그 민족들의 소중한 자산이다. 때문에 중국은 각 민족의 고유 한 민족문화를 중요시하게 되었으며 각 민족문화예술의 보호와 보급을 강조하기 시작하였 다. 국가와 정부에서는 민간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자민족의 문화와 예술을 발굴하기를 추 진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도 이와 같은 국가의 지침에 따라 문화예술 발굴 작업에 몰두하도록 대대적으로 지지하였다. 따라서 조선족무용예술은 민간·민속무용의 발굴 작업 을 통해 보호와 보급이 되었으며 새로운 시기의 무용예술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연변지역의 조선족무용의 발굴 및 창작은 예술단체와 직업무용가들의 업적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연변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단체는 건국 전 동북인민해방군 의용군 3지대 선전 대의 전신이었던 연변문공단이다. 연변문공단은 1953년에 연변가무단으로 개칭되었고, 그 뒤를 따라 동북 3성에는 수많은 예술단체들이 설립되었다. 연변의 예술단체의 발굴 및 창 작에 대해서는 민속·민간무용의 발굴 사업, 예술무용창작과 공연 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부의 문예방침 정책이 실시됨에 따라 민속·민간무용 발굴사업이 연변에 자리 잡고 있는 연변가무단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었다. 당시 가무단에서는 민간·민속무용의 체계 적인 정리를 위해 <농악무>, <장고춤> 등을 지도한 하태익과 <승무>, <북춤> 등을 지도한 김룡욱 등 민간예인 30여 명을 스승으로 모시고 정리 작업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탈춤>, <칼춤>, <부채춤>, <접시춤>, <학춤>, <수박춤>, <사자춤>, <수건춤>, <장고춤> 등 20여 종에 달하는 민속무용의 원형을 정리하면서 전통무용의 재창조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22)

    민간예인들한테서 민간·민속무용을 계승한 직업무용가들은 이를 소재로 예술무용창작 작업을 진행하였다. 즉 전통무용, 민간·민속무용을 개발 및 가공하여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무대화 시킨 것이다. 1950년대, 조선족 무용예술의 발전을 위해 민간·민속무용의 발굴 및 창작을 꾸준히 하여 성과를 이룬 조선족 안무가들로는 조득현(趙得賢, 1931-2002),23) 양 상호(杨相浩, 1928-?)24) 등이 있다. 무대화 작업을 거쳐 재창작된 작품들로는 <북장고 춤>(1954), <부채춤>(1954), <장고춤>(1954), <물동이춤>(1955), <칼춤>(1956)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민간·민속무용 기본 원형을 바탕으로 응용하는 동시에 조선족의 삶과 감정, 사상 등을 반영하여 재창작 되었으며 직업무용가들은 연변과 중국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 면서 활발한 공연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족의 민간·민속무용을 소재로 하는 재창작의 경 험은 향후의 작품창작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었던 조득현이다. 1951년 8 월, 조득현은 농악을 무대예술무용으로 승화시켜 군무 <농악무>를 창작하였으며, 10월에 는 무용극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를 창작하여 조선족 민속무용 재창작의 새 영역 을 개척하였다. 이러한 실천이 본보기가 되어 1950년대에는 대중들의 생활, 정서, 사상 등 을 반영하는 창작무용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조선족무용은 연변가무단을 중심으로 인 민대중들의 생활 속에 깊이 심입하여 예술적인 무용작품들을 창작하고 공연활동을 진행하 였다.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군무 <절구춤>(1950), <빨래춤>(1950), <승리 경축부>(1952), <활춤>(1952), <모판에서>(1953), <샘물터>(1953), 무용극 <팔선녀>(1956), <금도끼와 은 도끼>(1957), 4인무 <독보조 노인들>(1964), 군무 <왕가물과 싸우는 처녀들>(1964) 등이 있었다.25) 이처럼 민간사회에서 발굴한 민족의 무용 소재들은 전통무용의 복원과 무대화 작업으로 연계되면서 조선족무용의 발굴과 무대작품의 창작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게 되 었다.

    1967년경에 들어서면서 조선족무용은 동란시기를 겪게 되었다. 많은 예술단체들이 해산 되고 조선족 전통무용 계승 및 변화 발전뿐만 아니라 조선족무용창작에 있어서도 매우 제 한적이었다. 조선족의 민간·민속무용의 발굴사업도 정지되었으며 직업무용가들의 작품창 작도 틀에 짜여 제한적인 작품만 창작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일부 무용단체들이 서서히 회복되면서 부분적인 무용창작과 공연 활동 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이시기에 창작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연변 인민 모주석을 열애 하네>(1970), <붉은 매화를 노래하네>(1972), <김치에 깃든 옹군의 정>(1972), <양돈 처 녀>(1973), <유쾌한 건축공>(1974), <벌목공>(1975), <풍년을 축하하세>(1975), <첫걸 음>(1975) 등이 있다.26)

    10년 동란시기를 거친 뒤 개혁개방의 새로운 역사시기에 접하게 되면서 조선족무용은 그 어느 때 보다 깊이 있고 폭넓게 발전하여 질적, 양적으로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연변의 무용공연단체들이 점차 회복되고 무용수들이 예술대오에 복귀 되면서 무용창작기 반을 새롭게 굳혀나가게 되었다. 1983년 연변에서는 전통무용이 다시 민간무용집성으로27) 인하여 대량적으로 발굴되면서, 기록되거나 새로운 시대정신과 현대적 심미 가치관으로 무대예술화 되면서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연변지역에서의 대내외 무용문화교류가 빈번해 지면서 조선족무용도 비교적 자유로운 발전공간에서 창조의 정신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 으며 독무, 2인무, 3인무, 군무, 소형무극, 무극 등과 같은 다양한 무용형식으로 주제, 소재, 내용면에서도 폭넓은 발전을 이루어 조선족무용창작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 무용작품의 창작은 <도라지 꽃>(1980), <새봄>(1980) 등 현실적인 소재를 활용하 여 과거 조선족들이 겪은 힘든 여정 속의 풍파를 다루는 작품과 <분배받은 기쁨>(1980), <과수원은 나의 집>(1982)과 같이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그중에서도 3인 북춤 <풍년의 기쁨>(1982), 상모군무 <명절의 밤>(1982), 향발군무 <달놀 이>(1984) 등 전통무용, 민간·민속무용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반영하는 성향의 작품들이 창조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은 내용면에서 풍부화 되었고 다양한 형식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하는 특징을 지녔다. 80년대 초까지의 조선족무용 작품은 신중국 건국 이전과 건국 초의 단일한 형식의 춤보다는 한 층 발전되어 차원이 달랐지만 여전히 형식적이고 외적인 미의 표현방식의 비중이 컸으며 심적인 미의 측면을 표현하는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뒤이어 80년대 중기부터는 전통무용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전통무용의 내재적 운율을 기 초로 외형적인 형태미가 돋보이는 새로운 동작구성을 가져오는 등 변화를 보였다. 1980년 대 후반부터는 해외교류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예술에 대한 관념, 의식, 가치관 등에 변화 가 생기면서 심층적인 전통무용의 문화정신을 발굴하는 것을 중요시하였으며, 창작에 있 어서는 조선민족의 심적 측면을 표현하는데 중심을 기울였다. 이 시기의 작품들로는 <눈 꽃>(1985), <수양버들>(1986), <달빛아래 서정>(1986)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인 간 내면의 모습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스토리를 배제하여 추 상적인 표현방식으로 인간내면의 정신세계, 심적인 경지를 예술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개혁개방 이후의 조선족무용은 국내외 무용문화교류와의 충돌 속에서 전통적 인 조선족 춤에 대한 본질적 파악으로부터 민족무용의 ‘심근(尋根: 뿌리를 찾는 것)’ 사조 와 함께 그것을 계승·발전하려는 자세가 드러났으며 외래무용문화의 교류와 영향 속에서 과학적인 원리와 방법을 수용하여 중국 조선족무용 특유의 발전양상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조선족무용의 창작에 있어 주체의식에 대한 각성과 예술적 추구가 선명해지면서 작품의 유형은 단일화에서 다원화로 정착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무용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수많은 무용문화교류와 학술교류를 통해 조선족무용에 대한 고민과 향후 발전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조선민족 의 무용문화가 끊임없이 전승 될 수 있도록 추진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외래문화 가 유입되면서 서양 현대무용의 창작이념과 주변 국가를 비롯한 중국 각 지역의 소수민족무 용과의 상호교류 속에서 다양한 창작기법을 개발하여 자체만의 특유한 예술성을 지향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형태의 조선족창작무용을 전개시켜 나갔다. 대표적으로 대형무용극 <춘향 전>(1990)과 민족무용 서사시 <장백의 정>(1997) 등과 같은 역작이 창작되면서 조선족무용 을 전국 전방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 외에 <심현>(1995), <장백폭포>(1995), <영각 소리>(1995) 등과 같은 사상 예술의 질이 비교적 높은 성과작들도 창작되었다.

    2005년에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28)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에 힘입어 국제문화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방침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무용계는 전통무용의 보호와 계승 및 발전과 함께 전통의 현대화라는 변별성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주류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조선족무용계에서도 조선족무용의 미래지향적 발전 방 향에 대하여 심도 있는 토론들을 진행하였으며, 무용창작에서도 전통무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무대 예술화의 작업에 담아 가고자 하는 예술 의지가 선명히 나타났다.

    이로써 2000년대부터는 대내외 무용문화교류가 더욱 빈번해 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무 용을 접하게 되었고, 외부 무용가들과의 다각적인 교류를 통해 전통무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간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영향으로 조선족의 무용창작은 더욱 신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시기에 연변에서 창작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풍년제>(2001), <메아 리>(2002), <서혼>(2006), <심궁>(2006), <장고락>(2009), <천년 아리랑>(2006), <자취를 찾아서>(2015), 대형무용극 <아리랑 꽃>(2016), 군무 <장고행>(2017), <심귀운처>(2019) 등이 있다. 2000년대부터는 전통무용의 형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자유롭고 독창 적인 표현, 현대 기술, 화려한 무대효과와 다채로운 의상 등을 통해 조선족무용의 현대적 인 발전양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들이 창작되는 추세를 보였다.

    현재, 조선족무용창작은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춤으로 재해석하려는 창 조적 의식성이 돋보이며, 독특한 민족적 특색과 미학을 드러내는 측면으로 깊이 있는 접근 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통과 현대의 수용으로 오늘의 춤을 표현하거나 개성있는 움직임 의 언어개발과 표현 매체의 다양성을 포함하여 독특한 창작 작품들을 선보이는 실험적인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2. 조선족 무용교육의 발전

    건국 이후, 50년대 초에 연변지역에는 전문적인 무용인재 양성 교육체계가 설립된 곳은 없었지만 연변가무단에서 무용수를 양성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초기에 연변가무단에서 무용을 가르친 교사는 조득현, 박용원(朴容媛, 1930-1992)29) 등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무용을 배우고 무용수 겸 안무가로 활약한 무용가는 최옥주(崔玉珠, 1951-),30) 최선옥(崔 善玉, 1937-),31) 리록순(李录顺, 1938-2013)32) 등이다.

    1957년 10월, 연변예술학교가 건립되면서 민족의 예술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문적이 고 정규화 된 예술교육체계를 설립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연변예술학교의 무 용체계의 설립은 조선족 무용교육의 개척자인 박용원의 공로가 가장 컸다. 1951년 3월 최 승희(崔承喜, 1911-1967)33)가 북경 중앙연극학원에 ‘최승희 무용연구반’을 개설하였는데 이를 통해 중국의 제1세대 조선족무용가들이 양성되었으며, 그중에는 연변 조선족 무용교 육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된 박용원도 최승희의 수제자로 조선민족무용을 배우 고 있었다. 이어 최승희의 입춤 기본34)을 바탕으로 한 조선민족 무용훈련체계가 주류를 형성하면서 중국 조선족 무용교육의 새로운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 무용교육 의 개척자이자 최승희의 직계제자인 박용원은 최승희의 입춤체계를 계승하여 연변예술학 교에서 이를 발전시켜 조선족 무용교육의 전면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 게 되었다.35) 박용원은 최승희의 조선민족무용체계와 훈련법을 흡수하여 조선족무용을 교 육적 차원에서 연구 및 모색하였다.

    하지만 1966년 중반부터 문화 침체기를 겪게 되면서 조선족무용의 교육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연변예술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 조선족 무용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조선족 무용인재 양성도 뒷전으로 물러서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족의 무용교육 을 중요시하던 박용원, 최호욱(崔虎旭, 1943-?)36) 등은 향후 조선족무용의 인재양성을 대 비하여 과학성과 체계성을 갖춘 교육체계의 수립을 위해 조선민족 무용 기본교수 대강, 조선민족 무용기본동작 등 조선족무용 교재를 편찬하고 있었으며 무용교육에 대한 탐구 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10년간의 침체기를 이겨낸 1977년부터는 조선족무용의 특색을 살리면서 다시금 체계적 인 무용교육의 구축사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연변예술학교가 다시금 회복되고 뿔뿔 이 흩어진 교육자들도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개혁개방을 맞이하면서 연변예술학교에서는 다시금 예술적 교육기반을 다지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족무용에 대한 새로운 탐구와 발전을 추구하면서 조선족 예술인재 양성을 위하여 민족무용의 체계적인 교육을 목표로 무용교육 을 재개하였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박용원은 최승희 입춤 기본을 수차례의 수정과 보완 을 거쳐 1977년에 조선민족 무용기본동작을 편찬하면서 중국 조선족무용의 독립적인 교 육체계를 확립하는데 실질적인 토대를 닦아놓았다.

    1980년대부터는 외래문화가 침투됨에 따라 조선족 무용교육도 개방적인 교육의 길을 걸어 외래무용의 정화를 수용하여 단일한 교육에서부터 종합적인 교육으로 개혁을 진행하 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조선족 무용교육의 내용, 방법, 체계가 점차 과학적으로 수립 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개방적이고 종합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국내외 교수들을 초 청하여 다방면으로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교사 및 학생들을 타국, 타 지역으로 파견하여 조선족의 다원화된 무용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연변예술학교에서는 다각적인 기 능과 지식을 겸비한 조선족인재양성을 목표로 발레, 현대무용, 소수민족무용 등 교과목도 개설하였다.

    연변예술학교 뿐만 아니라 조선족무용의 교육은 연길시 상업국 유치원, 연길시 6.1유치 원, 연길시 소년궁, 연길시 중앙소학교, 도문철도 제1소학교 등 연변지역의 유치원, 초등학 교에서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조선족 무용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족 소년아동무용기 본(1986, 김순자, 이복순, 김련숙 저), 유아사범무용교재(1988, 강현주, 이복순, 김명희, 김화 저)등 아동조선족무용 교재 편찬도 진행하였다.37)

    또한 이 시기에는 연변에 무용연구기관들이 설립되면서 조선족무용의 이론 연구를 진행 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으며, 조선족 무용교육에 관한 연구 성과와 무용평론들이 발표 됨으로써 조선족무용은 부단히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1979년에는 연변문학예술연 구소가 설립되었고 1983년에는 연변에 전문 민간·민속무용 수집 및 정리를 위한 집성사무 실이 설립되었으며, 1987년에는 조득현 무용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조선족무용실기와 이론 연구를 병행할 전문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이외에도 문학과 예술, 예술세계 등 무용관 련 평론과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잡지도 출간되었다.

    1990년부터는 외래무용문화가 자유롭게 도입되면서 조선족무용은 보다 긍정적인 발전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무용교육에 있어 다방면으로 북한과 한국의 무용문화를 접함 으로 인해 조선족무용은 더욱 튼튼한 기반을 닦을 수 있게 되었으며, 같은 민족의 무용문 화를 접하고 이해함으로써 조선족만의 특별함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연변의 무용교육은 지속적인 연구와 발전을 이루면서 더욱 과학적이고 세분 화된 교육체계가 형성되고 국제적인 무용학술교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조선족무용 의 학술분야의 활성화를 이루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국제적인 교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조 선족 무용교육에 있어서는 조선족무용기본(장영순, 2005), 조선족전통무용소도구춤기 본(김영화, 박해영, 2015), 조선족민속무용교재(박설화, 2015) 등이 출간되었다. 여러 장르의 민속무용 교재들을 편찬하였으며 국내외 무용교류, 콩쿠르, 심포지엄 등에 적극 참 여하여 국제적인 시야를 양성하고 포괄적인 교육체계를 형성하였다.

    3. 조선족 대중무용활동의 전개

    조선족무용은 조선족 대중들에 의해 중국 땅에 뿌리가 내려졌으므로 조선족무용문화 속 에는 대중적인 무용문화가 바탕이 되어있다. 때문에 대중무용문화는 전통적인 맥을 이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이는 조선족무용문화가 면면히 계승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될 수 있었다.

    신중국 건국 후에도 중국조선족의 대중적 무용활동은 지역별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조선족들이 모여살고 있는 연변지역에서는 명절이나 경축행사가 있을 때면 전통적인 민속놀이를 즐기면서 이주시기처럼 민간에서 추어지던 즉흥적이고 오락적인 민간·민속무용 이 추어졌다. 민간에서는 주로 농악이나 집단적인 즉흥춤이 추어졌는데 즉흥춤은 민요나 민속악기를 반주로 하여 추어졌다. 건국 후 50년대 초의 대중무용활동 형태는 민간에서 추어지던 민간·민속무용과 도시에서 추어지는 대중무용형태로 전개되었는데 민간에서 추어 지던 즉흥춤은 말 그대로 막춤 형태로 표현되었지만 점차 조직적인 활동형태를 띠면서 집단 무용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연변지역의 각종 예술단체들이 개설되면서 민간·민속 무용을 발굴하고 이를 소재로 다양한 작품들을 창작하여 공연을 통해 도시와 지역 곳곳에 빠르게 전파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대중문화를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민간에서 도 무용창작이 흥행되기 시작하면서 민간인들의 공연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건국 이후에 조선족들의 대중적인 무용활동을 보존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조선족들이 모여살고 있는 곳곳에 대중문화관을 설립하여 대중들을 위한 각종 콩쿠르나 행사를 개최 하였다. 민간에서 대중무용활동이 원활하게 장기간에 걸쳐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민간예인들이 앞장을 서 민족의 문화를 계승 및 전파를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민간인들을 상대로 개최되는 무용행사나 공연은 주로 민간예인들이 대중무용집단을 이끌 어 행사에 참여하였으며 점차 이런 형식이 민간에서 활발히 전개되면서 조선족의 민간집 단의 무용공연예술이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은 행사가 지속적으로 민간에서 진 행되면서 조선족의 무용문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따라서 많은 조선족무용작품들이 민간에서 창작이 되면서 직업무용가들이 민간에서 흥행하는 무용작품 들을 발굴 및 가공하여 다시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민간에서 창작되어 직업무용단과 직업 무용가들에 의해 다시금 무대에 올리게 된 작품들로는 <농악무>, <부채춤>, <장고춤>, <독 보조 노인들>, <왕가물과 싸우는 처녀들>, <물동이춤> 등이다. 이처럼 민간에서 창작된 작 품이 다시 예술화되어 흥행을 하면서 조선족의 무용예술은 뿌리를 잃지 않고 꾸준히 대중 화를 이루면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대중적 무용활동도 일정한 발전 추세를 보였는데 농촌, 광장, 문예 선전대의 활동들과 문예 콩쿠르 등 참여형 활동들이 흥행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 으로는 <북춤>(1973), <부채춤>(1973)등 민간·민속무용과 <선구자>(1973), <사회주의 정 원에 사랑도 많네>(1975) 등이었다.38)

    개혁개방 이후, 민간에서는 아마추어 극단들이 출현하여 무용창작 및 공연이 이루어 졌 으며, 민속놀이와 명절놀이로 진행되던 민간·민속무용 활동은 범위가 넓어지면서 점차 도 시로 확장되어 광장무용 및 집단무용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이 시기의 조선족의 대중무용 은 ‘극장 공연화’와 ‘사회화’ 추세를 이루었다.

    도시로 확장된 광장무용 및 집단무용은 사회무용 활동과 자유오락적인 막춤활동으로 흥 행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대중들의 무용활동은 활동공간의 특성에 따라 장소의 제한을 받 지 않는 ‘막춤’, 실내에서 진행되는 ‘사교무’, 광장에서 벌어지는 ‘광장무용’으로 나뉘어 발 전되면서 조선족무용발전의 대중적인 기반을 튼튼히 다져갔다.39)

    이어서 ‘극장 공연화’로 나아가던 대중적 무용활동은 경향이 바뀌면서 대중적 오락 활동 으로 변화하였다. 대중적 오락 활동은 경축 행사에 곁들여 규모가 큰 집체군무 방향으로 집중되어 진행되었는데 1000명이 넘는 집단무용을 형성하여 민속놀이 민속풍습, 그리고 농악, 장고, 물동이, 사물놀이 등과 같은 민속무용들을 추는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를 통 해 춤과 노래를 아끼는 조선족의 문화의식을 충분히 반영해 우리 민족의 무용이 대중 속에 뿌리박고 면면히 이어가는 맥락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Ⅳ. 결론

    본 논문에서는 중국 조선족무용의 사적 흐름에 대한 고찰을 논제로 신중국 건립이후 연 변지역 조선족무용의 변모양상에 대해 연구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족의 형성배경과 신중국 건국 이전의 조선족무용의 형성에 대해 고찰한 후 신중국 건국이후의 연변지역 조선족무 용의 발전양상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조선족무용은 한반도에서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 되었다. 민간에서 추어지던 민간·민속무용이 세월이 흘러 중국 땅에 뿌리를 내려 오늘날의 연변지역의 조선족무용의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다.

    연변의 조선족무용의 발전양상에 대해서는 조선족무용의 발굴 및 창작, 조선족무용교육 의 발전, 조선족 대중무용활동의 전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연구를 통해 파악되는 건국이 후의 연변 조선족무용의 전반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건국이후 연변 조선족무용은 대체적으로 민간 지역사회의 무용발전과 긴밀히 연 결되어 있다. 우선 민간에서 추어지던 조선족무용과 민간 예술인들이 계승한 무용에 대해 발굴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어 민간에서 추어진 민속·민간무용과 민간사회에서 창작된 작 품을 수정, 보완, 재창작의 과정을 거쳐 무대화시켰다. 또한 민간에서 발굴된 민속·민간무 용의 소재를 활용하여 새로운 성향을 지닌 예술적 무용작품을 창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민간에서 추어지던 민간·민속무용이 바탕이 된다.

    둘째, 연변에서는 조선족무용의 계승과 전파를 위해 무용교육체계의 설립과 조선족무용 인재양성을 목표로 추진하였다. 조선족무용의 체계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무용교육이 우선 적으로 해결되어야 되기 때문에 전문성을 겸비한 무용인재양성을 목표로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무용교육교재를 편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각종 교류행사와 국제적 인 심포지엄도 적극 참여하면서 무용실기와 이론분야를 병행하여 무용발전을 추진하였다.

    셋째, 대중으로부터 전파되고 계승이 된 민간에서의 무용문화가 예술단체와 예술인들의 손을 거쳐 무대화되고 전파가 되면서 다시금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건국 전부터 민간에 서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무용문화가 이루어졌으며 시대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문화를 보존 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와 창작 및 공연활동을 추진하였다. 민간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조선족무용이 전파되면서 대중적인 광장무용 및 집단무용으로 발전을 이루게 되었으며 나 아가 ‘극장 공연화’, ‘사회화’ 추세를 이루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무용예술은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민족과 그가 처한 환경, 그리고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이루어지며 외래문화와의 부단한 교류와 접촉 속에서 생성하고 변 화한다. 조선족무용도 전통무용을 전승하여 현대로 이행하는 발전 과정에서 현대화 작업 을 거치면서 조선족무용의 역사를 조성하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조선족무용은 이주민족이라는 특수한 여건 속에서 춤 문화를 발전시켰 기 때문에 조선족의 무용문화를 지키면서도 중국의 문예 정책에 따라 무용을 전개 시켜 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족무용은 전통무용들을 무대화하는 작업과 그것을 토대로 창작 무용을 생성하면서 극장형태로 진입하는 작업, 그리고 전통무용들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 소들을 발굴하여 무용수들을 양성할 수 있는 무용기본을 구성하는 교수 형태로의 진입 작 업, 이어 창작실천이나 교수실천들을 이론 계통에 넣어 이론 형태를 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후세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을 거쳐 다시 민간으로 퍼져나가 조선족무 용이 민간에서 민족의 뿌리를 잃지 않고 오랜 세월을 거쳐 전파되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상으로 서툴게 살펴본 글을 마무리 짓는다. 연변 조선족무용의 역사가 백여 년이 되어 가는 세월 동안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생존 및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과 예술을 사랑하 는 수많은 조선족무용가들의 땀과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조선족무용문화 가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조선족무용이 세계적 흐름과 변화 속에서 더욱더 신선한 자태와 강한 예술의 생명력으로 역사적 발자취를 남기며 비약적인 발전이 끊임없이 이루어질 것을 전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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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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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김선화는 중국연변대학교 대학원 무용학과 석사, 한양대학교 무용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중국연변대학교 예술학원 무용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며 조선족무용분야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 관심분야는 조선족무용의 창작과 발전에 관한 연구로 주요 연구성과로는 “국립무용단과 연변가무단 무용작품창작에 나타난 무대표현양상 연구,” “조선족 학원파무용의 형성 및 특징연구,” “형태학 시각으로 본 조선족 무용” 등이 있다.
    이미령은 중국북경사범대학교 무용학 학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인간의 기본감정인 칠정의 노(怒)를 중심으로 한 무용창작작품 [비(悲)와 희(喜) 그 사이]에 관한 연구”로 무용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무용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연구 관심분야는 민족무용사와 현대무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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