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Documentation & History

pISSN: 2383-5214 /eISSN: 2733-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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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ssay for the New Ways of Writing Dance History in Korea 새로운 한국무용사 서술을 위한 시론(試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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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Dance Journal Vol.60 No. pp.77-93
DOI : https://doi.org/10.26861/sddh.2021.60.77

An Essay for the New Ways of Writing Dance History in Korea

Kim, Hoyoen*
Researcher, K Commune Cultural Studies
* 김호연 beneho@naver.com

+ 이 논문은 무용역사기록학회 제22회 국제학술심포지엄 - “국경너머의 무용사”(청년문화공간 JU 동교동 바실리 오홀, 2020.09.12.)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2021-02-10 2021-03-02 2021-03-25

Abstract


This paper presents an experimental discussion that examines previous literature and controversial discourses on dance history of Korea in order to suggest new ways of writing dance history. The dance history texts of the premodern time of dance history are mainly written by An Hwak, Kim Jaecheol, and Seong Gyeongrin after the Japanese rule. Most of these texts are restricted to introduce court dances in the literature due to the limited number of surviving materials. I suggest that dance history of premodern Korea would be discussed with more variety and depth if social and cultural perspectives are adopted. There are various discussions developed about the descriptions of modern dance history, however there is room for improvement in regards to the poor perceptions of the independent starting point of modern times and the concept of modernity. If the descriptions of dance history in Korea achieve expandability by embracing different genres and various literary methodologies as well as syntactic descriptions, the scope of awareness will broaden further for dance studies.



새로운 한국무용사 서술을 위한 시론(試論)

김호연*
문화연구소 케이코뮌 연구위원

초록


이 연구는 그동안 기술된 한국무용사 서술의 양태(樣態)를 살피면서 새로운 서술을 위한 논쟁적 담 론을 살피는 시험적 논의이다. 전근대 무용사 서술은 일제강점기 이후 안확, 김재철, 성경린 등을 중심 으로 기술되었는데, 자료에 대한 한계로 인해 문헌을 통해 나타난 궁중무용을 정리하는 개론적 기술이 강하였다. 이는 다양한 장르의 수용을 통한 사회문화적 관점을 포괄한다면 새로운 확장성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무용사 서술은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지만 주체적인 근대기점에 대한 인식과 모더 니티에 대한 개념 정립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제 한국무용사 서술은 통사적 의미의 새로운 무용사 기술뿐만 아니라 장르별 혹은 개념적 연구사도 함께 이루어진다면 무용학의 토 대를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Ⅰ. 서 언

    김윤식, 김현이 기술한 한국문학사(1973)의 첫 문장은 문학사 기술의 이중적 어려움 에 대한 토로로 시작한다. 문학사는 역사와는 엄연히 다른 감정적 차원에서 서술되어야 하는데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문학적 집적물은 반드시 감동과 향유 라는 정서적 반응이 요구됨에 기인한다는 것이다.1) 이는 역사라는 집단적 행위의 과거 기 술과 문학이라는 문자로 기록된 감정 표현의 연속성이 합을 이룬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문학의 역사적 기술이 그리 쉽지 않음을 토로하였지만 예술, 특히 무용사 기술은 더 큰 어려움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무용은 문자 기록을 통한 실증적 연구와는 다르게 시대정신을 서술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무대라는 공간에서 지금 이 순간의 대중과 소통이 중요한 의미를 지님에 기인한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사의 기술은 다양한 방법론에 의해 항상 새롭게 기술될 필요가 있으며 다양한 시각에서의 정립이 요구된다. 이는 무용사의 서술이 방대한 무용문화에 대 한 객관화임과 동시에 전통과 현대를 잇는 아카이브의 최적화된 집적물로 시대정신의 흐 름을 관념적으로 기록하는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3)

    이 연구에서는 그동안 기술된 한국무용사 서술의 양태를 살피면서 새로운 무용사 서술 을 위한 논쟁적 담론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그동안 한국무용사 기술은 개설적 성격이 강하 였다. 이는 무용을 사회문화사적 의미보다는 장르적 특질을 살피는데 집중한데 기인한다. 물론 각각의 기술이 변별적 시각을 보인 점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기존의 질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미시적인 측면에서만 언술을 달리 한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이에 이 글 에서는 항상 새로운 시각에서 무용사가 기술되어야 된다는 명제 아래 여러 쟁점을 되짚어 보며 새로운 무용사 기술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무용사 기술의 토대인 시대구분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도록 한다. 시대 구분의 문제는 역사 기술자가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에 귀결된다. 이는 왕조사나 고대, 중세, 근세, 근대로 나누는 보편적 구분에 입각하더라도 내용에 있어 서는 일관되고 체계화된 논리가 요구되기에 시대구분은 단순하게 시대적 구획이나 개설적 설명을 위한 분류가 아님을 말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그동안 무용사 기술에서는 어떠 한 개념적 정립이 이루어졌는지 살피고, 이에 대한 논쟁적 담론을 추출하여 쟁점을 공유하 고자 한다.

    연구의 접근은 무용사 서술 범위에 따라 전근대사와 근대사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전근대의 경우 공연 그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문헌을 토대로 분석하기에 제한적인 면모가 있으면서도 문화전통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연속성이 있고, 근대 이후는 시기가 짧음에도 서양의 근대적 문물이 들어오면서 복잡다단한 근대 담론이 형성되어 동시대 무용의 여러 양상이 형성되는 등 변별적 특징이 있기에 이러한 분리에 의해 살펴볼 것이다.

    Ⅱ. 전근대 무용사 서술의 다양한 관점

    무용사는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서사적 정리의 한 형태이기에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인 담 론이 담겨진다. 이는 시대정신의 체계적 인식에 따른 관계망의 형성이면서 문화적 형성물 에 대한 영속성의 발견이란 측면에서 그러하다. 이에 따라 무용사는 장르적 특질의 정립에 토대를 두면서 시대정신에 적합한 작품을 선별하는 혜안 속에서 무용이 지니는 문화원형 적 가치체계를 밝히는 작업으로 의미가 있다.

    한국무용의 흐름에 대한 정리는 안확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다. 안확은 국학(國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전방위에 걸쳐 다양한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조선문법(1917), 조선무사영웅전(1919), 조선문학사(1922), 조선문명사(1923), 조선의 음악(1930), 조선의 미술(1940), 시조시학(1940) 등 문예의 사적 검토와 주제별 정리에 집중하였 는데, 민족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살피면서 문화상대주의의 융화적 민족담론 형 성에 힘을 기울여 동시대 국학 연구에서 변별적 특징을 보인다.

    한국문화의 개념적 정리에 집중하던 안확은 “조선음악 연구”의 한 부분으로 무용의 흐 름을 기술하였다.4) 먼저 이 글은 제1장 삼한시대의 무, 제2장 삼국시대의 무, 제3장 고려 시대의 악무, 제4장 이조시대의 무용, 제5장 외국무, 제6장 근경의 무용으로 구분하여 한국 무용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기본적으로 시대구분은 왕조 교체에 따른 시기를 대체로 따르 고 있고, 문헌에 기록된 그 시기의 춤들을 나열하여 시대적 특질을 살피고 있다. 이러한 시대구분이나 춤 종목의 나열은 이후에도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 수용된다.

    이러한 기술 방법은 사회 지배세력에 의한 시대구분으로 한국의 역사적 흐름을 왕조사 의 변화에 따라 중심세력이 변화하였음에 바탕을 둔 생각이다. 이는 왕조의 이념에 따라 발생한 정치문화사적 담론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대외정책 등의 여러 현상이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일정한 시대적 성격을 형성하고 있기에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 역사구분으로 수용되는 근거이다5). 안확도 이러한 토대에서 왕조사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하여 한국무용을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그럼에도 그의 글에서는 시대구분에 대 한 논거나 시대적 특질에 대한 설명은 구체화되지 못하였다. 그가 이전에 긴 호흡을 가지 고 기술한 조선문학사조선문명사에서는 논거로 제시할 자료가 풍성하여 이를 체계 화하였지만 무용의 경우는 제한된 문헌에 의존하다보니 다양한 관점에서 담론을 형성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이 글은 무용사라는 광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개략적이고 문헌을 중심으로 작품만 을 소개한 한계를 드러낸다. 고려, 조선시대의 경우처럼 왕조별 구분으로 나눈 것에 대한 변별적 특징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거나 문헌에 의거하여 춤 종목만을 나열한 점에서 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용의 장르적 특질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묘파한 시각을 보여 주었다. 글의 첫 문장에서 ‘고대에는 무용과 음악이 구분 없이 병행하였고, 그런 중 무용이 오히려 우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음악은 춤의 부속물에 불과한 것이었다’라 기술 이 그러한 시각이다.6) 조선 음악 연구의 일부로 쓰인 글이지만 악가무를 분리적 인식으로 바라보고자 한 독특한 관점이다.

    또한 춤의 본질적 측면에 집중한 점도 주목할 수 있다. 이는 ‘상부운동이 많고 하부의 율동은 극히 적으며 엉덩이 운동은 전혀 없고 일체 표정은 없다’7)거나 ‘일체무용은 활기가 없고 표정이 극히 느리고 둔하였다’8)라는 언술처럼 문헌의 분석이 아닌 해석을 통해 무용 의 표현방법에 집중한 점도 의미를 지닌다.

    이와 대비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긴 호흡을 가진 글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 (1933)가 있다. 이 글은 한국연극을 사적으로 정리한 첫 시도로 동아일보(1931.04.15.-07.17.) 에 연재한 것을 보완 정리하여 1933년 조선어문학회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시대구분을 장르별 흐름에 따라 시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어 제1편에 가면극, 제2 편에 인형극, 제3편에 구극과 신극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조선연극사는 연극적 형태를 띤 공연을 총망라하여 살폈고, 풍성하지 않은 자료에 의거하면서도 전통극을 일목요연하 게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예술사에서 전범(典範)이 되는 연구 중 하나이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가면극 부분으로 그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제1편 가면극

    • 제1장 삼국이전의 가면극

    • 제2장 신라의 가면극 제1절 검무, 제2절 오기, 제3절 처용무, 제4절 무애무

    • 제3장 고려이조의 가면극 제1절 나례, 제2절 산대도감극

    • 제4장 내용으로 본 산대극 제1절 좌당, 제2절 산대극에 나타난 파계승과 양반, 제3절 배우의 생활 상태

    • 제5장 산대극의 무대구조

    • 제6장 산대극가면의 구조

    • 제7장 조선가면극의 계통

    김재철이 말한 가면극에 대한 기술은 이 부분만 떼어놓고 보았을 때 무용사 기술이라 하여도 긍정할 수 있게 무용이 중심에 놓인다. 이러한 기술은 전근대의 연희 형태가 여러 장르적 특질이 총체적으로 융합된 형태였기에 관점에 따라 극이면서 춤이고, 춤이면서 극 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면극, 탈춤의 명칭이 지니는 경계 적 담론으로, 판소리의 장르적 구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여러 관점이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측면에서 탈춤에 대한 무용학적 관점에서 밀도 있는 연구 가 더욱 진지하게 진행된다면 무용을 통해 기층문화에 대한 사회문화사적 담론의 논의가 확장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한국 전근대무용사 기술이 궁중무용사에 집중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재고의 가치 가 있다. 이는 역사의 기술이 사회적 지배세력(주도세력)에서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만 민중은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기층세력이라는 관점이 놓인다는 점 에서 그러하다.9) 기층문화에 대한 관점과 수용이 이루어진다면 무용사가 단순하게 왕조사 의 일부가 아닌 포용적인 시각의 언술이 다양하게 추출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장르적 분 류에 머물던 관점에서 확장적 의미를 가지며 사회문화사적 의미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토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송석하의 “조선무용의 사적 개관-우리 무용의 재인식”(동아일보, 1939.01.03.)은 민속학적 관점을 가지고 한국 무용의 흐름을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이 글은 문헌을 중심으로 정재 종목을 나열하면서도 탈춤의 현장성 그리고 승무, 한량무 등의 민속춤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등 한국무용의 확장성을 보인 언술로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이루어진 여러 노력은 문화원형의 계통적 체계를 인식하면서 한국무용이 가지는 특수성을 살피려하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여러 노력 이후 한국무용사에 대한 언술은 성경린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그는 한국의 무용(1976), 한국전통무용(1979)에서 한국무용의 흐름을 파악한 이후 “한국무용사 1”(1985)에서 개괄적으로 사적 정리를 하였다. 시대구분을 먼저 살펴보면 제1장 무용발생 의 계기, 제2장 삼한의 무용, 제3장 삼국시대, 제4장 고려시대, 제5장 조선시대, 제6장 현 대 속의 전통계승으로 나누고 있다. 기본적으로 왕조사 중심으로 궁중무용에 초점을 맞추 고, 여기에 민간무용을 포괄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궁중음악에 정통한 인물이었다는 측면 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특징적인 것은 조선시대를 태조부터 성종까지, 연산군부터 정조까지 그리고 순조부터 고종까지를 나누어 살피고 있는데 이는 악학궤범(1493, 성종 24)처럼 중요 문헌에 따른 분류방법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그는 정재의 특징으로 무태(舞態)에 있어서는 정중하고 느리며 깊이 있게 구사하는 것과 한국무용의 영적인 표현은 완만한 곡선 위에 유동적인 동작들이 억제된 움직임 ‘정중동’으 로 나타난다10)는 개념적 정립을 통해 한국 춤의 특질을 찾고자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무용사 서술은 전통의 재발견과 문화원형에 대한 인식이라는 관점에서의 개설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개설적이면서 한정된 문헌을 통한 기술은 이후 그대로 이어지면서 크게 변별성 을 보이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무용학으로 축적된 토대에서 전문연구가를 중심으로 기 술된 한국춤통사(2014)에서 이러한 기술을 어느 정도 탈피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책은 한 명의 저자에 의한 일관된 기술은 아니지만 통사적 의미를 가지면서 개괄적으로 한국춤 의 역사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우선 시기구분은 전근대사의 경우 선사시대, 부족국가시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 전기, 조선 후기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단순하게 문헌에 나타난 궁중무용의 나열이 아닌 길례 제향, 가례, 빈례 등 상황별 춤으로 분류하였고, 조선 후기의 경우, 궁중, 지방 교방, 민속춤으로 나누면 서 조선후기 무용의 성격과 의미를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기술과는 변별성을 두고 있다.

    이렇게 그동안의 전근대무용사들은 자료에 대한 한계나 관련 자료를 충분히 검토할 당 시의 역량이 쌓여있지 못하다보니 변별적이지 못하였고, 획일적인 개론서 성격이 강하였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사를 장르별 흐름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양한 방법론으로 바라보면서도 사회문화적 시각을 포괄한다면 한국전통문화의 확장성과 포용성 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이다.

    Ⅲ. 근대 무용사 서술을 위한 쟁점

    대한민국에서 근대는 많은 쟁점을 담고 있는 시기이다. 이는 조선 왕조의 쇠퇴와 강대국 의 침투가 동시에 일어났고, 근대적 인식으로 전환 속에서 다양한 담론이 형성됨과 동시에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그리고 한국전쟁 등 격변의 세월이 요동쳐 흘러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시기 일어난 다양한 현상을 바라보며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이 충돌하여 근대적 담론에 대한 여러 논쟁이 발생되었고, 이러한 담론 형성은 주체적 인식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문예도 근대 이행기 일어난 여러 현상을 바탕으로 근대성에 대한 논의가 첨예하게 이루어졌다. 문학은 근대 담론에 대하여 가장 활발하게 논쟁이 만들어졌 는데, 근대기점으로 출발하여 근대문학에 대한 개념 정립 등 관점에 따라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였다. 먼저 근대기점은 갑오경장 즈음인 1894년을 정설로 받아들인 이후 이를 수용 하거나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등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갑오경장을 근대기점으 로 바라본 것은 안확이 쓴 조선문학사(1922)에서 처음 이루어졌는데 갑오경장이 가지는 개혁의지와 신문명 개화의 깨달음 그리고 근대적 학교의 생성과 서양의 물질문명에 대한 의식을 담은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등을 그 논거로 찾고자 하였다.

    김태준도 갑오 개화운동은 신구시대의 경계였으며 정치 뿐만 아니라 문예, 소설에서 혁 명을 유인하였는데, 번역과 국문운동을 통하여 신문예운동의 서막을 열었고 언문일치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음을 밝히며 이 시기를 중요하게 바라보았다.11) 이는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근대적 양식의 수용과 더불어 정반합을 통해 근대적 변용이 이루어 진 계기로 이 시기를 중요하게 바라본 것이다.

    이는 근대문학만을 대상으로 문학사를 기술한 임화의 신문학사에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그는 조선 신문학사는 서구문화에 접촉하고 그것을 이식한 전부라 말한 이른바 ‘이식문학 론’을 설파하며 신문학사를 기술하였다. 그는 신문학을 조선의 문학에 대한 안티테제의 개 념으로 받아들이며 서구적 형태의 문학 장르의 수용으로 인식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근대문학에 대한 인식은 단순하게 이식, 이입이 아닌 전통문화의 변용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창조됨을 역설적으로 풀어낸 논리이다. 이는 문화이식이 고도화될 수록 반대로 문화 창조가 내부에서 성숙되고, 물질적 지향이 외래문화와 고유문화와의 문 화교류, 문화혼화(文化混和)에서 새로운 문화 창조의 형태와 본질을 안출(案出)한다고 말 한 것이다.12) 이는 전통의 토대 속에서 서양의 문물이 충돌되어 정반합의 논리에 의해 새 로운 가치가 형성된 것에 의미를 둔 것이었다.

    이러한 갑오경장 기점설은 자생적 발전론에 중심을 둔 18세기 기점설, 1866년 기원설, 3․1운동설 등이 논의되었는데 그 내용을 떠나 신채호가 말한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주체와 객체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근대적 담론이 생성된다는 공통된 생각이 발견된다. 이는 시기와 정치적 상황을 차치하고 서양의 다양한 문물과 자생적 근대의식이 충돌하였 고, 이에 따라 다양한 언술 행위가 등장하여 근대적 작품이 양산되어 이를 근거로 근대문 학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렇지만 무용의 경우는 근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따른다. 예술에 있어서는 역사적 의미에서 근대적 구조와 ‘작품으로 근대’가 일치하기 힘들기에 거리를 두어 발생하는데 무 용의 경우는 의식과 행위가 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난제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 춤 양식과 근대적 무용담론이 충돌하여 어떠한 문화가 창조될 수 있는가에 귀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근대무용사를 긴 호흡으로 기술한 시도는 안제승의 한국신무용사(1984)13)에서 체계 적인 형태로 처음 기술되었다. 이 글에서는 한국 근현대무용의 흐름을 신무용사라 규정 짓고, 먼저 근대무용을 요람기(1926-1945.08.), 혼미기(1945.08.-1950.06.), 교체기 (1950.06.-1961.05.), 성장기(1961.06.-1972.12.), 결론(1973-1983)으로 나누어 바라보고 자 하였다. 그는 먼저 근대 이행기에 대한 논의 없이 신무용사는 1926년 3월 21일부터 3일간 경성공회당에서 이시이 바쿠(石井幕) 공연을 신무용의 기점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이시이 바쿠의 공연이 이제까지 외래춤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예술무용이었다 는 점에서 무용문화사적 의의를 지니고, 이 공연을 계기로 형성된 인맥과 여기서 파생된 문하들에 의해 우리 신무용사의 태반이 점철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기점으로 삼는데 큰 잘 못이 없다고 보았다.14) 이시이 바쿠 공연이 아직까지 한국 전통공연의 근대적 변용이 제대 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심미적 근대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동시대적 감각을 전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은 것이다.

    또한 이 공연으로 형성된 인맥의 파생이란 최승희와 조택원를 대상으로 한 생각이다. 이 공연을 통해 최승희가 일본으로 가게 되는 계기이며 조택원도 본격적으로 무용에 입문 하는 계기로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 근대무용의 토대를 만든 최승희와 조택 원을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인물로 바라보고 요람기를 최승희와 조택원에 중점을 두어 서술 한 점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조동화는 한국 근대무용을 (1)무도기(1905-1925), (2)신무용기(1926-1928), (3)무용기(1929), (4)조선무용기(1930-1945), (5)한국무용기(1945년 이후)로 시대구분 하 였는데, 신무용기를 1926년으로 바라본 것은 이시이 바쿠의 공연에 원인을 둔 생각이었다. 이 공연을 중요하게 바라본 이유로 신무용이란 용어와 신무용 그 실체를 가지고 온 점과 이 공연이 한국인이 적었기에 흥행 성과가 좋지 않았지만 시민에게 준 감격은 컸다는 점에 근거를 두었다.15)

    여기서 조동화는 이시이 바쿠 공연 이후 최승희가 이시이 바쿠의 문하로 들어간다는 매 일신보의 기사가 연일 이어진 현상에 중점을 두고 이 부분도 하나의 논거로 제시하였다. 이는 근대화의 작업으로 내세울 인물을 찾던 언론에서 하찮은 춤 주변의 화제에 대하여서 도 관심을 보여준 것은 우리 사회의 무용무시 풍조를 쉽게 개선할 원동력으로 본 것이었 다.16)

    이렇게 두 사람은 근대무용의 출발을 이시이 바쿠 공연으로 바라보았다. 안제승은 이시 이 바쿠의 공연이 새로운 의식의 표현 방법에 집중하여 최승희와 조택원과 상호텍스트성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조동화는 새로운 무대공연예술로 예술적 분위기가 관중을 압 도하였다는 시각처럼 수용미학적 측면으로 공연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같으면서도 다른 두 사람의 시각에 대하여 이시이 바쿠의 공연이 대중에게 어 떠한 영향을 주었느냐는 문제와 최승희에게 영향을 준 공연이란 의미가 한국 근대무용의 기점으로 논의가 가능한가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게 만든다. 먼저 이시이 바쿠의 1926년 공연에 대한 영향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이 공연은 경성일보 주최로 공연이 이루어졌다. 경성일보는 총독부의 기관지 중 하나로 일본어로 쓰인 신문이기에 홍보 등에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이는 조동화가 말한대로 ‘흥행 성과가 좋지 않았지만 시민에게 준 감격은 컸다는 점’라는 말처럼 한계를 지니는 공연이었다. 이는 대중에 큰 파급이 없었 는데 무용사에서 표점으로 논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기준치에 미치지 못한 공연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최승희와 조택원에게 영향을 준 공연으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입문 단계에 있는 인물에 영향을 준 단초가 한국 근대무용의 기점으로 논의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이들의 이시이 바쿠의 영향을 받아 창조적인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닌 단순하게 문하에 들어간 계기 가 표점으로 의미를 부여된다는 것은 이시이 바쿠가 일본인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차치하 고, 상호 영향 관계에서 문제를 삼을 수 있다. 이시이 바쿠가 공연계에 영향을 준 점은 부분적으로 긍정할 수 있겠지만 대중과 미미한 소통관계와 최승희, 조택원에 영향을 준 것만으로 공연사적으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이러한 쟁점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으로 가지고 근대기점을 바라보고자 여러 논제가 몇 몇 있었다. 이는 1902년 협률사에서 이루어진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를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하였는데, 이는 서양식 극장의 도입, 새로운 춤에 대한 인식, 춤 유통방식의 변화와 춤꾼의 활동 방식에 대한 변화가 그러한 이유였다.17) 그렇지만 이 공연이 형식과 구조에서 미시적 변화를 보였지만 내용에서 근대적 담론이 형성되지 못한 공연이란 점에서는 이행 적 단계의 공연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근대무용의 기점은 근대적 담론을 담은 새로운 춤 그리고 그 소통구조의 측면에서 논의가 가능할텐데 그런 의미에서 1928년 배구자의 개인발표회를 주목할 수 있 다. 이 공연은 창작무용 <아리랑>과 발레 <빈사의 백조> 등 다양한 작품이 펼쳐졌고, 공연 기획자 이철에 의해 기획되어 관객과의 소통 구조가 제대로 이어지는 등 근대적 문화체계 가 형성되는 근대 무용의 첫 시도로 바라볼 수 있다.18) 이는 창작무용 <아리랑>에 담긴 전통과 근대적 자아에 의한 담론 추출에서 근대 무용의 들머리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배구자의 공연 자체만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포괄적으로 1930년 1월 최승희 공 연, 1934년 조택원 공연으로 이어진 주체적 인식을 가진 근대 무용의 여러 형태를 하나의 근대 무용의 집단적 행위로 바라보는 것이 더 합당할 듯 하다.

    여기서 신무용의 개념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필요하다.19) 이는 신무용을 장르적 개념으로 현재까지 수용할 수 있는가하는 부분에 대한 문제이다. 신무용이란 용어를 처음 받아들인 것은 이시이 바쿠의 경성 공연을 기사화한 <경성일보>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이후 이 용어 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장르적 개념으로까지 확대되어 수용되었다. 안제승은 신무 용에 대해 새로운 무용이란 개념과 새로운 한국 무용 창조를 지향하는 한국적 고유명사라 는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하여 정의를 내린다.20) 그 중 안제승은 후자를 한국무용의 근대적 전형성으로 파악하고 이를 중심에 놓고자 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무용에 대하여 사조 의 바탕을 현대적 감각에 두고 현대무용운동으로서의 새로운 이념과 방법으로 새로운 한 국무용을 창조해 가려는 활동이자 그 체제이며 그 결과로서 현현(顯現)되어진 실체21)라 말하면서 이시이 바쿠의 영향을 논하였다.

    조동화는 신무용이란 뜻은 서양춤과 신식춤의 의미가 함께 있으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창조와 표제가 있고, 무대를 의식하고 만든 춤으로 근대무용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았다.22) 이에 대하여 이시이 바쿠의 근대무용으로의 신무용보다 확대된 개념으로 신무용을 받아들 인 감이 없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새로운 의식을 전해준 점에 신무용의 가치를 평가하였다.

    그렇지만 이시이 바쿠의 무용이 신무용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떠나23) 신무 용이란 용어가 장르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재고의 가치가 있다. ‘신(新)’ 이라는 용어는 ‘구/신’의 이분법적 논리와 시대적 의미가 함유된다는 측면에서 이는 제한 적 용어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는 ‘컨템포러리’나 ‘포스트’라는 단어만큼이나 현재성을 지니 는 용어로 장르적 개념으로 수용하는 것은 어패가 있을 것이다.

    물론 신무용이란 용어를 최승희의 일제강점기 춤에서 적용될 수는 있겠지만 이후의 춤 에서 신무용이라는 용어를 아직도 고집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개념적 정립을 통해 새 로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무용사에서 다른 문예가 그러하듯 한국전쟁 이후는 불모지에서 새롭게 개편되어 토대를 만들었기에 이 시기에 대하여 중요 성을 인식하고 폭넓은 시각에서 깊이 있는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승희에 대한 평가도 종합적이며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의 근대 활동 양상이 로컬리티(locality)에 머물지 않고 확장성을 보인 측면에서는 논의 가 충분히 가능하면서도 그의 활동이 해방공간 이후 한국무용사에서 영속성을 이루는가에 대한 부분은 논의가 새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최승희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이나 비판보다는 일본, 중국, 북한무용사의 검토와 함께 그의 춤에 대한 계통적 연구 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와 함께 장르적 개념이 아닌 현대무용사의 획정에 대한 문제도 하나의 논점이 될 수 있다. 근대와 현대의 구분은 여타 다른 문예에서도 많은 쟁점이 되는 부분이다. 이는 근대, 현대에 대한 개념 정립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모더니티, 포스트 모더니티의 등의 다양한 논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라는 시대적 개념을 받아들여 무용사를 기술한 것은 우리무용100년(현암사, 2010)에서 처음 이루어진다. 이 무용사는 근대무용사를 1900-1960년, 현대무용사를 1961 년부터 현재까지로 나누었다. 1961년을 현대무용사로 획정한 논거나 현대 무용의 시대적 개념을 명확하게 논하지는 않았지만 국립무용단의 발족 즈음의 다양한 활동 새로운 세대 의 영속적인 활동에 주목한 생각이었다.

    한국춤통사(2014)는 시대적 개념보다는 근대 이후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해방-한 국전쟁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나누어 최근까지 무용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점은 시대구분 용어를 전근대 포함하여 국가의 명칭으로 일관되게 사용한 점이 특징이 며24) 대한민국 부분은 많은 작품을 포괄적으로 담으면서 10년 단위로 획정하여 여러 집필 자에 의해 기술된 장단점을 지닌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바라보자면 한국전쟁 이후 1960 년대 즈음을 하나의 문턱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만 근대, 현대를 구분 없이 모더니티의 개 념적 정립과 관련하여 동시대성도 논의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Ⅳ. 결언

    이상과 같이 한국무용사 기술의 여러 양태를 살펴보면서 미시적 쟁점을 제기하여 보았 다. 전근대 시기를 중심으로 한 무용사는 대부분 문헌에 바탕을 두다보니 궁중무용을 중심 으로 기술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장르사 정리에 그치고 공연예술로 가치나 무용 이 가지는 사회사적 의미에 대한 언술이 제대로 나타나지 못하였다. 이는 조선 시대부터 여러 문헌을 통해 살필 수 있는 탈춤을 비롯한 민속춤 혹은 연희의 여러 형태를 포괄적으 로 수용하고, 총체적 인식으로 기술된다면 여러 한계는 어느 정도 극복될 듯 하다.

    또한 근현대무용사에 대한 기술은 주체적인 시각으로 한국무용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함 께 살피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는 미적근대성을 함유한 여러 춤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 리고 만들어진 전통으로 생성된 여러 문화전통의 전승 양상에 대하여 자기중심적 사고가 아닌 포용적 관점에서 인식이 요구되는 쟁점일 것이다.

    무용사는 문화원형의 영속성을 파악하고, 동시대의 전형성을 이해하는데 큰 의미를 지 닌다. 게다가 한국에서 무용은 여타 다른 장르보다도 원형과 전형, 즉 전통과 동시대성이 실제화 되어 있기에 살아있는 연구로 가능한 것은 무용만의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무용사 기술은 다른 무용학 연구에 비해 새로운 시각에서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는 통사적 의미의 새로운 무용사 기술뿐만 아니라 장르별 혹 은 개념적 연구사도 함께 이루어진다면 무용학의 토대를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 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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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김호연은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근대 악극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문화연구소 케이코뮌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춤평론가회 회원으로 춤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연구 관심사는 한국 공연예술사이며, 주요 연구로는 “한국 근대 무용사”, “전통 춤의 변용과 근대 무용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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