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Documentation & History

pISSN: 2383-5214 /eISSN: 2733-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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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 State for National Dance Education in the Korean-Japanese Society: 재일동포사회에 있어서의 민족무용 교육의 현황: 동경한국학교와 조선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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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Dance Journal Vol.60 No. pp.95-118
DOI : https://doi.org/10.26861/sddh.2021.60.95

Current State for National Dance Education in the Korean-Japanese Society:

Park, Kyoungran*
Teacher, Tokyo Korean School
* 박경란 linecroserkran@gmail.com

+ 이 논문은 무용역사기록학회 제22회 국제학술심포지엄 - “국경너머의 무용사”(청년문화공간 JU 동교동 바실리 오홀, 2020.09.12.)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2021-02-10 2021-03-16 2021-03-25

Abstract


This paper aims to compare the forms of basic and creative dances in Tokyo Korean School (hereafter Korean School) and Joseon School by focusing on the national dance education conducted by them, consider what a role the national dance has placed in internal and external events and suggest some tasks that they should perform in the future.



From the consideration , following findings can be summarized:



First, in terms of basic dance, Joseon dance is taught by dance instructors trained in a consistent system with systematic curriculum in Joseon School, while Korean dance education is conducted in an autonomous form at the discretion of the instructors in Korean school. Second, in terms of creative dance, although Korean School put an emphasis on creative activities reflecting the current generation's senses, by considering the flow of times, Joseon School is biased toward the nationalist tendency and has no modernistic perspective. Third, the national dance education in both schools has commonly served as an important medium for promoting the relation with Japan, the country of residence, through external activities.



Based on the findings, the tasks of the national dance education can be suggested, on which the new generation should focus. First, it is important for both Korean and Joseon School to co-host the cultural events in which they can watch and learn each other's dance and create the environment for them. Second, a joint research on the traditional dance of South and North Korea should be conducted, based on regular exchange between dance instructors working in both schools.



재일동포사회에 있어서의 민족무용 교육의 현황:
동경한국학교와 조선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박경란*
동경한국학교 무용담당교사

초록


재일동포 사회에 있어서 조선학교와 동경한국학교(이하 본고에서는 ‘한국학교’로 칭함)의 사례를 들 어 무용교육의 현황과 역할을 고찰하는 것은 차세대가 지향해야 할 민족무용 교육의 방향을 가늠해 본다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본고에서는 양 학교에서 이루어진 민족무용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양 학교의 기본무용과 창작무용의 형태를 비교하며, 대내외 행사 등을 통하여 민족무용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고찰하고 앞으로의 과제 에 대해 제언하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다.



연구 방법으로는 선행연구와 영상, 인터뷰 자료를 중심으로 하고 연구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다.



위의 고찰을 통하여 첫째, 기본무용에 있어서 조선학교는 체계적인 수업내용을 갖추고 일관된 시스 템 안에서 양성된 무용 지도자들에 의해 조선무용이 교육되고 있는 것에 비하여, 한국학교는 지도자의 재량에 따라 자율적인 형태로 한국무용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창작무용에 있어서는 한국학교 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세대의 감각을 반영하는 창작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나, 조선학교는 민족주의적 인 성향에 편중되고 현대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셋째, 양 학교의 민족무용 교육은 대외활동을 통한 거주국 일본과의 관계를 도모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는 공 통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차세대가 지향해야 할 민족무용 교육의 과제로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 한국학교와 조선학교가 서로의 무용을 관람하고 배울 수 있는 문화행사의 공동 개최를 위한 노력과 그를 위한 환경 창출이 중요하며, 둘째, 조선학교와 한국학교의 무용교육 지도자들의 정기적인 교류를 통한 남북의 전통 무용에 관한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양 학교 간의 협력과 교류는 현재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전통예술이 갖는 융합력은 정치적 장벽을 극복 할 수 있으며, 예술을 축으로 하면 학교 간의 소통을 통하여 학교가 민족무용의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다. 이 논문이 재일동포 사회에 있어서의 민족무용 교육의 현황 파악 과 차세대가 지향해야 할 무용교육의 방향 설정에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Ⅰ.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1920년 이후 재일교포 사회에 배구자(裵龜子, 1901-2003)와 같은 무용가들이 등장하였 다. 송안중에 따르면 ‘당시의 고된 생활 속에서 동포들의 마음을 달래 준 것이 바로 ‘아리 랑’과 같은 신민요에 맞춰 창작무용을 춘 배구자의 공연이었으며, 그 무대를 할머니들은 눈물을 흘리며 보곤 하였다’고 한다.1)

    그 후 최승희(崔承喜, 1911-1969)‚조택원(趙澤元, 1907-1976)을 포함한 다수의 무용가 들의 출현은 일본에서 지배국에서 소수의 민족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인하여 당시 동포들은 민족무용에 대한 관심을 갖고 무용을 배우고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2)

    조선에서 태어나 자⋅타의적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해방 후에도 한국전쟁에 의한 분단으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재일동포3) 1세대는, 차세대의 언어교육과 민족 교육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어 국어교육을 시작하게 되었고, 문화 활동과 민족 계몽운동에 힘을 쏟아 교육기관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추후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이하 민단 民団), 계열의 한국학교와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 総連), 계열의 조선학교로 각각 설립되어 무용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까지 국내외에서 일본에서의 조선학교와 민족교육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이루어 져 왔다. 하지만 “총련계 조선학교의 폐쇄적인 자세와 그로 인해 한국에서 갖는 배타적인 시각으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4)고 정진미가 지적하였듯이, 교육기 관을 통한 민족무용5) 교육의 현황에 관한 연구는 미흡한 상태이다. 더욱이 한국학교와 관 련된 민족무용교육에 관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이에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조선학교는 무용교육에 있어서 다수의 학생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운영 중에 있으나, 급변하는 세대교체와 소자화(少子化), 국적 변화 등으로 인하여 학생모집이 어려워 학교 수가 감소하는 추세이다. 또한, 관동지역의 유일한 한국학교인 동 경한국학교는 조선학교와는 반대로 학생수가 증가하여 제2학교 설립을 계획하고 있으나 무용교육에 있어서는 소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체육 교과목에 여학생의 무용수 업을 두고 있었으나, 현재는 창체무용수업과 부활동으로 바뀌어 소수 학생들만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무용의 종류와 양식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무용이 재일동포 사회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교육기관인 한국학교와 조선학교의 무용교육에 초점 을 맞추어 살펴보겠다. 그리고 양 학교의 기본무용과 창작무용의 형태를 비교하며, 대내외 행사 등을 통하여 민족무용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고찰하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제언 하는 것이 목적이다.

    2. 연구방법

    1945년 이후, 재일동포 1세대들의 사회에서 당시의 민족무용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교육기관의 설립 전과 후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1990년대부터 최승희 관련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재일조선 무용 관계자들과 의 접촉과 자료의 수집이 가능해지면서 조선무용의 양상과 춤의 변천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지고 있다.

    최근 재일동포들의 교육,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근래에는 동경한국학 교 제2 학교 설립과 관련하여 사회학자들이 향후의 교육에 관하여 연구한 자료를 볼 수 있으나, 재일동포 사회의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전통’ 문화로서의 민족무용에 대한 교 육적 관심은 희박하며 연구도 미비한 상황이다.

    선행연구인 정진미의 ‘일본 오사카지역 조선학급 초급부6) 무용교수법에 관한 연구’는, 이제까지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조선무용 ‘소조’(小組, 부활동)교육의 지도법과 무용교육법의 체계적인 구조를 밝히고 있다. 또한 연구자 자신의 경험과 배경에 입각하여 현 일본에서의 교육현황이 상세히 기술된 조선무용의 소조활동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논문이다.7) 그러나,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한 무용교육 연구에 편중되어, 민단계 학교의 민족교육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야마모토가호리(山本かほり)는 ‘조선학교에 있어서 ‘민족’의 형성-A조선중고급학교 에 서의 참여 관찰로부터’에서, 2011년부터 A조선중고급학교를 주 1회 방문하여, 교장선생님 이하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형들과 인터뷰를 하며 학교생활과 수업과목 등의 현장조사를 실시하여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 긍정적인 정체성을 배양하는 요인 등에 대하여 기술하였 다.8) 그 중 하나의 환경적인 요인으로서 조선무용⋅조선음악 등을 열거하였으나 조선무용 의 형태와 내용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또, 조선대학교 무용 담당, 박정순의 논문, ‘재일조선 학생들의 민족성 교양과 민족무용 교육’과 ‘재일 조선인들 속에서 민족무용을 통한 민족성 교양에 대한 연구’9)를 통하여 조 선무용 교육의 역사와 교육과정 등의 전반적인 내용을 참고하였고, 보충내용은 서면상의 질의응답 형태로 연구내용을 재확인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를 중심으로 하여 일본과 한국에서 연구된 선행자료와 동경한국 학교 측에서 발행된 교지 연륜(年輪), 보고서 등을 1차 자료로 사용하였으며, 민단 산하 의 한국계 학교의 연구 대상으로서는 동경한국학교의 무용부를 대상으로 하였다. 그리고 조선학교의 연구대상으로서, 동경도의 모 조선학교의 조선무용 ‘소조’ 활동을 담당하고 있 는 교사에게 조선무용 소조 수업형태와 내용, 교내⋅외부행사에 관한 질의를 메일로 요청 을 하였으나 회답이 없어, 상기 학교의 초등부와 중등부에서 조선무용 ‘소조’ 활동을 하고, 한국학교로 전학 온 H학생의 서면 자료를 참고하였다. H학생과의 질의응답을 통하여 확 인한 조선학교의 무용수업 내용은 정진미의 ‘일본 오사카지역 조선학 초급부 무용교수법 에 관한 연구’에서 언급된 수업내용과 거의 일치하였고, 조선학교의 조선무용기본⋅기초무 용은 각 조선학교에서 동일한 내용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조선대학 박정순으로부터 재확인을 받아 본고에서는 조선학교연구에 관하여서는 학교를 특정하지 않고 선행연구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

    조선학교의 창작 작품을 고찰하기 위한 영상자료로서는 제47회 재일본 조선학생 예술경 연대회의 유튜브 영상자료를 참조하였다. 한국학교의 무용부 관련 자료로서는 한국학교 설립 시부터 발행된 교지 연륜과 필자가 2006년부터 2021년 2월 현재까지 동경한국학 교에서 약 15년간 중고등부의 무용담당교사로서 지도를 하면서 경험한 내용, 그리고 재일 동포 3세 S학생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였다.

    Ⅱ. 학교기관의 설립배경

    1. 민단과 총련의 설립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 후, 일본에서 생활을 하던 재일동포들은 언어교육을 위한 ‘국어 강습소’를 일본 각지에 개설하였고, 1945년 10월에 재일조선인연맹(조련 朝連)이 결 성된 후에 ‘국어 강습소’는 ‘조선인 학교’로 변경 후, 동포들의 민족계몽운동과 민족문화의 대중화 교육을 위한 문화활동에 주력하였으나,10) 조련 내에서 동포들 간의 사상적 분열로 인하여 1946년에 민단이 새로이 설립된다.11)

    1955년 5월 25일에 조련은 총련으로 재정립되어 북한으로 귀속되었고, 민단은 한국으 로의 귀속을 선언하여 민단계의 한국학교와 총련계의 조선학교로 각각 설립되었다.

    총련 산하의 조선학교는 북한의 경제 원조를 받으며 민족교육이 시작되었으며, 조선학 교의 교육에 대하여 이수경은 “강한 내셔널리즘 교육을 내포하고 있기에 사상적 신념이 어린 학생들에게도 요구된다”12)고 하였듯이, 무용교육에 있어서도 북한의 무용 방식을 따 른 교육이 강화되었으며, 조선무용의 창작에 있어서도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념 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볼 수 있다.

    한편, 민단 산하의 한국학교는 한국의 교육과정을 도입하여 글로벌 시대에 맞춘 교육을 하고 있으며 무용 교육에 있어서도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무용 지도자의 재량에 따라 다양 한 한국의 무용을 통하여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전개하면서 창작무용에도 힘을 넣고 있다.

    이처럼 양 학교는 각각 다른 교육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는 우리의 정서가 함축된 민족무용을 교육하며 전통을 계승하는 유일한 기관이며, 60년 이상 동포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아직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지만, 민단과 총련의 화합이 이루어진다면 양 학교의 민족무용의 교육에 있어서도 남북한이 융합된 프로그램이 재구축되어 새로운 무용의 역사가 열릴 것으로 사료된다.

    2. 민족무용의 동향

    민단과 총련으로 분리되었지만, 민단과 총련이 조직된 초기에는, 공동으로 통일기원 무 대를 준비하기도 했다. 무용가로는 민단을 대표하여 정민이라는 무용가가 출연, 총련의 대 표로는 I씨가 출연하여 쌍방의 대표가 출연하였다.13) 하지만, 그 자세한 내용의 기록이 없 어서 당시 연출된 종목과 출연자에 대하여서는 현재 파악이 어렵다.

    재일조선무용가 1세 임추자(任秋子, 1945-2019)에 따르면, 동포 1세대로서 고된 삶을 살았던 자신의 부모가, “최승희의 춤은 삶에 힘과 용기가 되었으며, 미래의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고 하였기에 자신도 무용가가 되고 싶어 무용을 배웠다고 했다.14) 임추자는 구 술 인터뷰에서, 당시(해방 직후부터 1960년 초) 일본에서 활동을 하던 무용가로서는 조택 원, 김장안, 조봉희, 정민, 부수현 등이 있었는데, 특히 조택원에게 <가사호접>을 비롯하여 검무, 초립동, 한삼춤 등을 배웠으나 그가 조선으로 귀국을 한 후, 동경 에다가와(枝川) 지 역에 위치한 조선제2초급학교에서 ‘조선적인 무용(북한에서 전해온 조선무용은 아닌 것으 로 여겨지며 정확한 무용의 장르파악은 어렵다)’을 지도하고 있던 김장안에게 무용을 배웠 다고 한다. 김장안은 1956년에 창립된 조선대학교의 무용 강사 1세대이지만, 그 후 북한으 로 넘어가15) 당시의 무용의 형태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또, 한영혜에 따르면, 정무연(1927-2011)은 가와카미코로(河上五郎)에게 스페인무용을 배우고, ‘정무연무용연구회’를 열어 한국무용을 가르쳤다고 했다.16) 오사카지역의 민단에 서 정민은 한국무용을 지도하였고, 현재는 그의 딸 정유선이 ‘정민류교방춤 보존회’를 만들 어 보존하고 있다.17) 해방 이후, 1960년 초에 북한에서 정식으로 북한 무용이 전수되기 전까지는 재일동포 2세들은 임추자와 같이 민단에 속하지 않고, 한국과 북한의 구별 없이 춤을 춘 것으로 필자는 유추한다.

    Ⅲ. 조선학교와 무용교육

    1. 조선학교의 연혁과 현황

    북한을 조국으로 지지하는 총련 산하의 조선학교에는 1957년 북한으로부터 ‘교육지원 금’ ‘장학금’이 지원되었으며 지금까지 158회에 걸쳐 총액 469억 2505만 390엔이 보내졌 다고 한다.18) 북한의 귀국사업, 즉, 북송사업이 촉매가 되어 민족교육을 하는 조선학교는 폭발적으로 생겨나게 된다.19) 총련을 통하여 북한으로부터 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조선학교 는 교육 내용도 북한의 ‘재외공민’ 육성을 위한 내용으로 바뀌게 되며, 교과서도 개편이 되어 ‘북한식’ 민족교육20)이 실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일본에의 영주를 전제로 교 육 내용이 바뀌었고, 특히 2003년도 부터는 ‘글로벌시대’에 초점을 맞춰 교육내용이 변화 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총련 및 북한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 교내 운동회에서도 ‘통일 기(統一旗)’를 사용한 체조를 하며 각 학교의 고급부의 교실, 직원실, 교장실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행사 때에도 초상화를 거는 것이 원칙이다. 21)

    주로 재일동포 3,4세가 재적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국적은 조선국적⋅한국국적이 과반수 를 차지하며 일본 국적자는 소수이다. 조선국적22)을 소지하는 경우는 해외에 나가는데 있 어 불편함이 있어 국적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23)

    도판 1.

    박경란(연구자), 동경도 모 조선학교, 2019년 10월 26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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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조선학교는 구성원들의 일본인과의 결혼으로 인한 국적 변화, 일본과 북한의 관계 악화, 그리고 납치문제 등으로 인해 구성원들이 총련을 떠나게 되면서 ‘소자화’(少子化)의 영향과 함께 ‘고교무상화제도’24) 대상에서 제외가 되면서 재정문제로 인한 존속의 위기에 놓여 있다.

    2. 조선학교의 무용 교육의 양상

    조선학교는 ‘소조’ 활동이라는 소위 동아리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 들은 소조에 소속되어 있으며, 본고에서는 ‘조선무용소조’(이하 소조로 칭함)활동을 중심으 로 고찰한다.

    ‘총련의 민족교육사업은 이국땅에서 우리 동포들이 민족성을 지키며 자라나는 새 세대 들을 재일본조선인운동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키우는 중요한 교육’이라고 하였으며, 그 부 분에서 민족무용교육은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 주는 수단이며, 또한 민족무용을 널 리 배우고 즐기게 하기 위하여 무용보급과 소조활동을 강화하고, 전교생에게는 군중무용 을 가르쳤다.25)

    조선무용이 처음 도입 된 것은 1960년 초, 북한에서 일본 니가타(新潟)항에 귀국선(북송 선)이 입항하게 되고, 그 이후에도 북한에서 배가 일본으로 들어오면서 총련 산하의 ‘재일 조선예술단’(현 ‘금강산가극단’의 전신)의 무용지도원이자 무용부장이었던 임추자 등이 그 배에 올라, 북한의 조선무용 지도자들에게 조선무용을 배우면서였다고 한다. 그러한 방식 으로 최승희 저서, 조선민족무용기본(1958)도 일본으로 유입되고,26) 이어서 소⋅중학교 용 교재 조선아동기본(1963,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 학생소년무용기본(1971, 사 노청출판사)이 일본으로 보내져왔다.

    이렇게 ‘조선무용’(북쪽에서 전승된 춤)이 도입되면서 총련 산하의 ‘재일조선예술단’(현 ‘금강산가극단’의 전신)이 북한무용을 익혔고, 임추자를 비롯한 무용가들이 초기에 조선학 교의 소조에서 지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조선대학교 출신의 일반과목 담당교원, 혹 은 무용지도교사가 없을 경우에는 별도로 외부강사들이 초빙되어 지도하며, 그러한 경우 는 생활지도교사가 협력을 하여 소조를 지도한다. 그 교사들을 지도하기 위해 조선대학 박정순씨를 중심으로 교사양성 강습회와 무용기술지도법을 구축하고 있으며 1996년부터 는 조선(북한)의 무용전문가들을 초청해 기본동작 강습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조선무용은 일본 전국의 조선학교 학생들에 보급‚ 전승되기 시작하였다.27)

    소조 활동은 조선학교의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이어진 체계적인 프로그램으 로 조선무용 기초⋅기본 동작이 통일되어 있고, 학년별 과정별로 지도내용이 체계적으로 구성된 지도법이다. 박정순에 의하면 ‘조선무용기초동작’과 ‘조선민족용기본동작’의 기초 동작을 충실히 다지는 것을 중점으로 하며, ‘민속무용종목별기본’ 에서는 장고춤기본, 칼춤기 본, 소고춤기본, 부채춤기본, 탈춤기본, 한삼춤기본, 살풀이춤기본 등의 ‘소도구춤’ 기본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28) 언급하였다. 조선학교 졸업생이며 재일동포 3세인 H학생의 서면 자료에 의하면, 초등부에서 팔의 위치, 방향 등의 번호를 파악하는 기본동작으로 시작하여 중등부와 고등부를 거치면서 동작의 난이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1) 무릎 꿇은 동작, 2) 어깨의 동작, 3) 굴신동작, 4) 무릎 드는 동작, 5) 내차는 동작, 6) 감기, 7) 메기, 8) 손목, 9) 걷기, 10) 발 구르기 등의 정해진 동작을 하면서 돌기, 뛰기 동작 등을 순서대로 진행한다.29) 고 기술한 내용과 정진미가 언급한 ‘조선학교 무용교육 지도법’의 ‘조선무용기초동작’의 내용 이 일치되는 것으로 보아 각 조선학교에서 동일한 내용의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소조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1년에 한번 개최되는 ‘재일조선학생중앙예술경연대회’ 에 참가하며 이 대회에의 출전을 목표로 연습에 임한다. 이 대회는 북한으로부터 전해 온 기성작품과 창작작품의 두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기성작품은 북한에서 찍은 동영상 을 보며 연습하는데, 박정순에 따르면 ‘조국(북한)의 아이들이 추는 춤이 기본이기 때문에 기성작품은 그 아이들이 추는 춤과 같이 춰야 한다’30)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특정 이수자의 춤을 배우는 것 같이, 원형과 흡사하게 묘사해 내려는 방식으로 추정된다. 창작 작품에 있어서는 학생들의 생활을 담은 ‘생활무용’, 오랜 인민들의 생활감정과 풍속내용을 담은 ‘민속무용’, 그리고 동화를 주제로 만든 ‘동화무용’ 등의 작품이 그 내용을 이루며31) 독무, 중무, 군무 형태로 만든다. 정진미는, 창작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표현력 을 키우며, 생활주변의 주제를 찾아 대본을 작성하고 군무작품 앙상블을 통하여 학생들의 협동심을 기르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동작을 맞춰 집단 속에 자신을 어떻게 융합시킬 것 인가를 배우고 협력하는 정신, 조직성, 규율성을 배운다고 했다.32)

    야마모토가호리가 1970년대에 조선학교에서 조선무용을 배운 학부형과 행한 인터뷰 내 용을 보면, 초등학교부터 사상교육이 있었고, 북한에서 총련을 통하여 조선학교로 경제 원 조를 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소재로 무용을 만들고, 동시에 사상교육을 받았으며, 춤을 출 때는 “수령님(김일성)의 얼굴이 떠올라 감정이 복받쳐 눈물로 춤을 추었다”33)고 한 것 으로 보아, 초기에는 사상적인 내용이 작품에 많이 반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제47차 ‘재일조선학생중앙예술경연대회’의 창작작품의 제목을 살펴보면 <대를 이어 지 켜갈 우리 교과서>, <한마음 하나 된 조국을 위하여>, <즐거운 소년단 야영> 등의 작품이 있으며,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조선학교가 제외된 내용을 가리키는 팻말을 들고 춤을 추는 등 시사적인 내용과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소재의 창작작품을 발표하고 있 다. 한결같이 밝은 미소를 띤 학생들의, 조선기본무용을 바탕으로 한 숙련되고 뛰어난 기 술을 볼 수 있었으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단어 등을 적은 종이를 들고 춤을 추는 경향이 있었다. 의상과 음악 등의 스타일은 북한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듯하였다.

    앞서 야마모토가호리가 서술한 인터뷰 내용처럼, 조선학교의 초기 무용교육에 사상적인 부분이 반영되었다면, 현재는 창작무용 형태가 변화되고 있음을 영상기록 자료를 통하여 볼 수 있으나, 아직은 민족주의적인 내용이 두드러져 현대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조활동을 통하여 조선무용을 체계적으로 배운 학생들은, 졸업 후에는 전문 단체인 ‘금 강산 가극단’이나 ‘가무단’에 속하거나, 혹은 무용 애호가들의 모임인 ‘문예동’에서 그 활동 을 계속 이어나간다. 이처럼 조선학교의 소조활동은 일본에서의 조선무용의 보급과 저변 확대에 뿌리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내 활동은 물론, 동포들의 행사를 비롯한 각종 대외활동과 일본과의 친선문화 교류에 도 참가하고 있다. 조선 학교는 “개인은 전체를 위해, 전체는 개인을 위해”라는 집단주의를 몸에 익히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34) 외부행사 등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이와 같은 소조의 교외활동에 대해 정진미는, 정치적 혹은 사상적 견해의 차이 없이 일명 ‘어린 이 외교관’, 즉 홍보사절단의 역할을 한다고 논하고 있다.35)

    도판 2.

    Choson Sinbo, “제47차 재일조선중앙예술경연대회” 2014.11.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0d84rshg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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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Ⅳ. 동경한국학교의 무용교육

    1. 동경한국학교의 연혁과 현황

    한국을 조국으로 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민단(1948년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 개칭, 1994년 재일본대한민국민단으로 개칭)은 일본정부에서 각종학교로 인가를 받고 한 국 학교를 재건한다. 현재, 일본 내의 한국 학교는 동경한국학교(1200명), 교토국제학교 (210명), 오사카금강학교(480명), 건국한국학교(690명)의 4교가 있다.36) 1953년에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 내에 민족교육을 위한 학교의 설립을 지시하였으며, 1954년에 자유 민주주 의를 신봉하는 민단은 민단중앙본부를 중심으로 신주쿠에 26명의 학생으로 동경한국학교 를 설립하여 ‘각종학교’37)의 형태로 독자적인 민족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61년, 해방 이 후 처음으로 한국정부로부터 보조비가 지원된다.38)

    한국학교의 설립 당시는 주로 올드커머(オールドカマー, old comer)39)가 중심이 되어 재 일 동포를 위한 학교로 출발했다.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1980년대의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본국에서 파견된 기업 주재원의 자녀와 정주자, 일시 체류자가 증가하면서 현재는 올드커머의 수는 감소하고 뉴커머(ニューカマー, new comer)40)는 증가하는 추세이 다. 본래 조선학교와 같이 민족교육을 지향하였지만, 한국으로의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학 생 수가 늘어나 수험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증가함에 따라 교육과정도 개편이 이루어졌 고, 시대에 맞는 글로벌 교육이 강화되었다.

    1974년에 한국학교가 발행한 20주년 기념 연륜(교지 제18호)에 의하면, ‘한국인으로, 재일 사회의 리더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양성’을 교육의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를 중점적으로 교육하며, 더불어 한국사를 배운다고 되어있다.

    2. 동경한국학교의 무용교육의 양상

    학교 설립 초기부터 모국어와 한국역사는 물론, 장래의 적성에 맞는 직업탐색을 위한 특별교육으로서 1인1기(1人1技) 직업기능 교육을 행하였다. 특활지도에 있어서도 1인1기 (1人1技)에 주력하여 문화부, 체육부, 특별부를 별도로 두었으며, 문화부에는 ‘가야금’, ‘무 용부’가 속해 있던 것을 알 수 있다.41)

    1974년 연륜에 나오는 당시의 무용부 주장의 글에 따르면, 무용부는 한국학교에서 가 장 오래된 부서이며 주3회의 연습을 하고, 칼춤, 장구춤, 화관무, 무당춤, 승무, 가면춤 등 우리 고유의 전통 민족무용을 배우고 민족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학교의 경우도 조선학교의 소도구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들이 전승 되어, 현재까지 위의 작품들은 담당교사의 지도하에 그 형태를 이어가고 있다. 기본무용은 조선학교의 소조활동과 같이 학년별, 과정별 대상에 따라 차이를 두거나 단계적인 시스템 을 구축하고 있지는 않다. 전통 기본 무용에 있어서도 한국학교의 경우는 담당지도교사가 익힌 무용의 ‘류’를 따르며, 그 교사의 재량과 자율적인 교수법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기본동작(굿거리, 자진모리)과 발동작, 회전동작, 연풍대 등으로 기본동작을 간소화 하고 기존 작품(칠고무, 부채춤, 화관무, 장구춤, 북춤)을 습득한다. 2000년대에는 한국무 용의 기본 동작을 바탕으로 하여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아이디어 작품을 창작하는 수업방 법을 택하고 <환희>, <태풍>, <북의 향연>등의 창작사물놀이와 <어디로 갈까나>, <청춘>, <달>, <아리랑> 등의 창작무용 작품을 스스로 만들어 한국대학의 시험에 응하는 학생들도 생겼다.

    한국학교 무용부의 지도자를 살펴보면, 1960년대 당시 일본에 주재하고 있던 지성자(池成 子)씨가 가야금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재일동포 2세인 C교사가 무용부에서 전통무용을 지도 하였다. C교사는 조선학교를 다니며 조선무용을 습득한 경험이 없이 한국으로 유학하여 특정 유파의 전통무용을 사사하였으며, 현재도 일본에서 재일한국무용가로서 활약 중이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대학에서 고등 무용교육을 마치고 일본에 주재하 게 된 무용가 또는 일본에 유학 가 있던 무용학과 출신자들이 지도를 맡았으며, 당시의 기록과 사진을 통하여 학생들은 주로 신무용에 해당하는 칠고무를 비롯하여 화관무, 부채 춤, 탈춤, 농악. 사물놀이, 등의 작품을 익히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으로부터 방승환(房承煥)이 집중 워크숍을 위해 한국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사 물악기를 지도하였고, 한류 붐과 함께 오사카에서 열렸던 김덕수 사물놀이의 공연이 반향 을 일으키면서 동경에서도 이광수(李光壽) 사물놀이 워크숍이 한국학교에서 열리게 되어 다수의 학생들과 동포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참가하였다. 그것에 비해 한국무용의 워 크샵은 빈도수도 적고 참가 인원수도 적어, 조선무용의 교사양성 강습회와 무용기술지도 법을 활발히 구축하고 있는 조선학교에 비해 활성화 되어있지 않다.

    관동(関東)지역의 유일한 한국학교인 동경한국학교의 문화제와 운동회는 학생과 학부형 뿐 아니라 한자리에 모인 동포들을 위로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기록사진(1964 년)에는 학생들이 부채춤을 추는 모습과 강강수월래와 농악을 하는 다수의 학생들의 모습 이 나와 있으며,42)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8.15 광복절 행사 등에서도 눈물을 흘리는 동 포들을 볼 수 있다.

    도판 3.

    “강강수월래-동경올림픽기념 대운동회에서”(1964) (동경한국학교, “연륜” 18(197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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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한국무용을 통하여 민족의 문화를 체득한 학생들은 지역사회의 행사와 한일간의 각종 교류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특히, 2019년에 50주년을 맞이한 이즈나나시마(伊豆七 島), 코우즈시마(神津島)에서 열리는 ‘쥬리아제’(ジュリア祭)43)행사에는 한국학교 무용부가 매년 참가하여 공연을 하고 있다.

    도판 4.

    동경한국학교 모 학생 촬영, 제50회 “쥬리아제”(ジュリア祭) (코우즈시마(神津島)),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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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한국학교를 대표하여 일본사회에서 일본인들 혹은 일본에 거주하는 다민족에 게 한국의 전통 문화와 한국무용을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무용부에 속한 동포 학생들은 한국무용의 지도용어로 무용을 익히고 한국의 정서와 문 화를 배우게 된다. 재일동포 3세인 S학생의 경우는, 한국학교를 들어오기 전에는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지 못하였고, “한국무용을 흉내 내보고 싶어 무용부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한국학교에서 한국무용과 사물놀이를 배우고 일본의 약학대학으로 진학을 한 동 포 3세 S학생은 “다시 한국무용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44) 이렇게 한국학교에서 한국의 전통무용을 익히고 경험함으로서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 다고 본다.

    이하, 본고에서 고찰한 재일동포사회의 두 교육기관인 한국학교와 조선학교의 무용교육 의 양상을 항목별로 비교하여 제시한다.

    표 1

    동경한국학교와 조선학교의 무용교육의 양상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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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Ⅴ. 결론 및 제언

    다케무라요시아키(竹村嘉晃)는 ‘민족무용’이란, 한 국가에 전승된 전통적인 무용이라고 상기시키면서, 특정 마이너리티 사회에서 계승하는 무용으로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경우 도 있지만, 거기에는 국가가 상정된다45)고 하였다.

    재일동포 2세들은 1세대와는 다르게 일본에서 출생하여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무 용가들에게 조선의 민족무용을 배우며 전통문화를 습득했지만, 사상의 분열로 동포사회의 기관이 민단과 총련으로 분리된 것과 같이 학교와 민족무용도 분단된 한반도의 축소된 모 습으로 동포사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처럼 각 학교의 민족무용은 국가가 상정되어 있 고, 이념적으로 엇갈린 환경 속에서 서로의 평행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양 학교의 민족무 용 교육을 통하여 각각의 민족무용은 계승되고 학생들에게 민족의 정서를 함양할 수 있게 하였으며, 전통을 체험하는 유일한 문화로 자리매김하여 왔다.

    조선학교의 소조 활동은 학생들에게 민족무용을 통하여 민족의 긍지를 심어주는 민족교 육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기본⋅기초무용으로 학생들의 신체를 단련하고, 창 작활동을 통해 실제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찾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며, 군중무용을 통한 협조성과 조율성을 키워준다. 더불어, 대외활동을 통해 조선학교와 일본 사회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민단 산하의 한국학교는 당초 1인1기(1人1技) 교육의 일환으로 무용부가 만들어 졌다. 한국무용의 지도용어로 한국의 정서와 문화가 함축된 전통무용을 배우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시대의 흐름에 맞는 창작활동을 통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창작력을 키우는 기능적인 역할도 하고 있다. 더불어 대외활동을 통하여 한국무용을 일본 사회에서 선보이고, 한일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동포들에게도 큰 위안과 힘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학교와 조선학교는 무용교육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양 학교가 전 통무용을 통하여 학생들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신체기능은 물론 창작활동을 통한 창 작력을 키우고, 거주국 일본과의 관계를 도모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역할을 해 온 필수불 가결한 요소로서 민족무용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국에서 온 예술가들의 일본 공연이 이어졌고, 공연 후에는 민단이 개최하는 워크숍에 총련 산하의 금강산 가극단원이 참가하기도 하며, 평양에서 온 무용 강사의 ‘조선무용강습회’에 민단관계 무용가들이 참가하는 국적을 초월한 만남의 장이 이 미 열리고 있다. 조선 무용가들이 한국무용을 습득하고, 또한 한국 무용가가 조선무용을 배우는 경향이 생겨나 이미 개별적인 영역에서는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시도 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학교와 조선학교의 두 학교간의 소통과 민족무용의 교류의 장은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의 민족무용의 교육을 위한 과제 를 이하와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남북관계 정상화 선언으로 한국에서 남북공동공연(일본 금강산 가극단과 조선 대 학생이 참가)이 열린 것과 같이, 한국학교와 조선학교가 서로의 무용을 관람하고 배울 수 있는 문화행사의 공동 개최를 위한 노력과 이를 위한 환경 창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한국무용과 조선무용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학교 설립도 기대하 여 본다.

    둘째 , 조선학교와 한국학교의 무용교육에 관련된 지도자들의 교류를 통해, 남북의 전통 무용에 관한 공동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대학의 박정순은 조선학교의 민족 무용교육에 있어서,

    남조선의 궁중무용과 종교무용은 봉건통치의 사상/감정과 생활을 반영하고 있으나, (중략) 반인민적이고 진부하지만, 민족적 특성과 색채가 깃들어 있어, 재일조선학교생들의 민족무용 교육에서 궁중무용과 종교무용의 특색 있는 춤가락을 배워야 한다.46)

    한국학교와 조선학교의 무용 교사가 서로 지켜온 민족무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움직 임의 방법은 이질적이라도 뿌리는 동질적인 것임을 상호간에 이해하며 결핍된 부분은 서 로가 보완하며 수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학교는 학년별로 체계적인 수업내용을 갖추고, 일관된 시스템 안에서 연수와 워크숍 을 통해 양성된 무용지도자들에 의해 교육 되며 예술경연대회를 통하여 기술 함양을 꾀하 고 있다. 졸업 후에는 전문무용단체와 무용애호가단체들이 함께 조선무용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은 한국학교에서도 참조해야 하는 부분이다. 한국학교의 무용부는, 한국 무용계와의 연계와 한국의 전문 무용가들에 의한 워크숍의 개최가 필요하며 새로운 커리큘럼이 고안되어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수업 방법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작무용 활동에 있어서 한국학교의 경우는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세대의 감각을 반영 하는 창작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조선학교는 초기에는 북한을 예찬하는 사상적이고 민족 적 성향이 드러나는 창작적인 요소가 가미 되었다면, 현재의 시점에서는 ‘열린교육’과 ‘글 로벌교육’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였고 창작무용 작품의 소재가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아직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에 편중되고 현대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표현방식의 변화와 세련된 작품의 구성을 위한 새로운 창작법이 고안되어야 하며, 이것은 한국학교의 무용부가 주력하고 있는 창작활동을 참고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조선학교와 한국학교의 교육의 연혁과 현황, 그리고 무용교육의 역할을 고찰 하는 것은 차세대가 지향해야 할 민족무용교육의 방향을 가늠해 본다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민단과 총련의 관계로 인한 양 학교간의 협력과 교류는 현재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전통예술이 갖는 융합력은 정치적 장벽을 극복 할 수 있으며, 예술을 축으로 하면 학교 간의 소통도 가능해져, 학교가 민족무용의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은 서로 다른 정치 이념이 가져온 분단국가의 현실에 놓여 있지 만, 역사적·문화적 동일성을 공유하는 같은 민족”47)이며, 1세대의 재일 동포들을 위로하고 하나로 만들었던 것처럼 조선학교와 한국학교의 민족무용의 교류를 모색해야 하며, 그를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향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두려 한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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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란(연구자), 동경도 모 조선학교, 2019년 10월 26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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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oson Sinbo, “제47차 재일조선중앙예술경연대회” 2014.11.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0d84rshg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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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강수월래-동경올림픽기념 대운동회에서”(1964) (동경한국학교, “연륜” 18(197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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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한국학교 모 학생 촬영, 제50회 “쥬리아제”(ジュリア祭) (코우즈시마(神津島)), 2019.05.17.

    Table

    동경한국학교와 조선학교의 무용교육의 양상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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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재일동포 3세 S학생과의 면담[Kaeildongpo3se S haksaeng gwaui myeondam, Interview with 3rd generation Korean-Japan student], 2018.07.01./2019.10.26.
    28. 동경한국학원 홈페이지[Dongyeong hangukhakwon homepeiji, Tokyo Korean Academy Website], [검색일: 2020.08.01.], http://www.tokos.ed.jp/smain.html.
    29. 민단신문 홈페이지[Mindan sinmun hompeiji, Mindan Newspaper Website], [검색일: 2021.01.15.], https://mindan.org/old/kr/front/newsDetail1c41.html?category=3&newsid=11209.
    30. 민단 홈페이지[Mindan hompeiji, Mindan website], [검색일: 2020.08.02.], https://www.mindan.org/kr.
    31. 장혜순[Jang, Hyesoon], “발생기 우리학교 Vol.39 조선무용 기본동작의 보급”[Balsaenggi urihakgyo Vol.39 joseonmuyong gibondongjak-ui bogeup],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사람들 몽당연필[joseonhaggyowa hamkke haneun salamdeul mongdang-yeonpil,People with Chosun School Mongdang Pencil], 2019.05.05., [검색일자: 2021.03.22.], http://mongdang.org/kr/bbs/board.php?bo_table=school_series&wr_id=41.
    32. 조선신보 홈페이지[Joseonhinbo homepeiji, Joseonsinbo Website], [검색일: 2020.08.02.], https://www.chosonsinbo.com/2013/04/sinbo-k_130410-2.
    33. 제47차 중앙예술경연대회 초/중/고급부문 영상[Je47cha jung-ang-yesulgyeong-yeondaehoe cho/jung/gogeupbu mun yeongsang, The 4th Central Art Contest Elementary/Intermediate/Advanced Categoy], [검색일: 2021.03.05.], Youtube video, 6:31 min. https://www.youtube.com/watch?v=J0d84rshga0.
    34. 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 小項目事典[Buritanika kokusai daihyakkajiten ko kōmoku jiten], [검색일: 2021.02.09.], https://kotobank.jp/word/%E5%90%84%E7%A8%AE%E5%AD%A6%E6%A0%A1-43648.

    저자소개

    박경란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일본 국립오차노미즈여자대학원에서 “최승희가 지향한 무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의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2006년부터 동경한국학교의 무용담당교사로 재직중이다. 연구의 관심사는 최승희 <칼춤>에 관한 연구 - [조선민족무용기본] 중<칼춤>의 기본동작 재현(복원)을 통하여 전통성과 독자성을 밝히는 것이다.

    Footnote

    • 宋安鍾, 在日音楽の100年(青土社, 2009). 고정자, “일본에서 전승되는 경기도 예술 ―재일코리언들의 민족예술 전승의 변천―,” 우리춤과 과학기술 5(3), 2009, 178-179쪽, 재인용.
    • 朴貞順, “재일 조선인의 민족 무용을 생각한다” (1), 조선신보, 2012.11.18.
    • 정진성, “재일동포 민족학교: 분단과 탈식민의 역사,” 일본비평 16, 2016, 209쪽에서 재인용. 이를 참고하였으 며, 남북한 분단 상황에서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으로 명칭을 분리 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많아, 본고에서 는 “재일동포”로 통일된 명칭을 사용하였다.
    • 정진미, “일본 오사카지역 조선학교 초급부 무용교수법에 관한 연구”(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2쪽.
    • 흔히 북한의 무용을 ‘조선무용’, 한국의 무용을 ‘한국무용’으로 칭하나, 조선무용 관계자들은 조선무용을 ‘우리 춤’, ‘전통춤’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한국무용을 가리켜 ‘우리춤’, ‘전통춤’, ‘한국춤’ 이라고도 한다. 본고에 서는 두 무용을 편의상 ‘민족무용’으로 칭하였다.
    • 한국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조선학교에서는 초급부, 중급부, 고급부라고 칭한다.
    • 정진미, “일본 오사카지역 조선학 초급부 무용교수법에 관한 연구”(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 山本かほり,“朝鮮学校における民族の形成‚”(愛知県立大学教育福祉学部論集第61号,2012).
    • 박정순, 재일조선 학생들의 민족성 교양과 민족무용교육(북한: 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0); 박정순, “재일 조선 인들 속에서 민족무용을 통한 민족성 교양에 대한 연구(북한: 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12).
    • 박정순, 재일 조선인들 속에서 민족무용을 통한 민족성 교양의 대한 연구, 30-31쪽.
    •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홈페이지, [검색일:2020.08.02.], https://www.mindan.org/kr/.
    • 이수경, “재일동포교육을 통한 글로벌 코리안 육성 제안,” 동경한국학교 연구프로젝트위원회의 검토 보고서: 동경 한국 학원 제2학교 설립 구상과 민족 교육, (동경: 동경한국학원), 2015, 57쪽.
    • 한영혜, “재일 조선인 사회의 민족무용의 전승과 아이덴티티,” 일본비평 창간호, 2007, 326-327쪽. (한영혜의 논문에서는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머리글자(I)로 표기하였으므로 논문 표기대로 인용함.)
    • 임추자와의 면담, 가와사키(川崎)총련회관, 2017.06.20.
    • 박정순과 서면 질의응답, 2021.01.20. 박정순, 재일 조선인들 속에서 민족무용을 통한 민족성 교양의 대한 연구, 30-32쪽.
    • 한영혜, “재일 조선인 사회의 민족무용의 전승과 아이덴티티,” 일본비평 창간호, 2007, 326쪽.
    • “교방춤,” 민단신문, [검색일: 2021.01.15.], https://mindan.org/old/kr/front/newsDetail1c41.html?category= 3&newsid=11209.
    • 山本かほり, “朝鮮学校における民族の形成,” 愛知県立大学教育福祉学部論集第 61, 2012. pp.151-152.
    • 정병호, “문화적 저항과 교육적 대안: 재일 조선학교의 민족 정체성 재생산,” 비교문화연구 9(2), 125-155쪽.
    • 서정근, “도쿄한국학교 제 2학교 구상과 재일동포의 시각에서 본 민족 교육의 방향성,” 동경한국학교 연구프로젝트위원회의 검토 보고서: 동경 한국 학원 제2학교 설립 구상과 민족 교육,(동경: 동경한국학원), 2015, 51쪽.
    • 山本かほり, “朝鮮学校における民族の形成,” 愛知県立大学教育福祉学部論集 61, p.148.
    • 1945년 해방 후 모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인으로 귀화도 하지 않은 재일 한국인(조선인).
    • 山本かほり, “朝鮮学校における民族の形成,” 愛知県立大学教育福祉学部論集, 61, p.147.
    • 김소연, “일본 조선학교, 10년 사이 보조금 75% 급감,” 한겨례신문(2021.02.08.), [검색일: 2021.03.30.],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982293.html#csidx2e84b7d2b3639d4a3e12c23165caf7b. 일본에서는 2010년 민주당 정부 시절 수업료를 국가가 부담하는 고교 무상교육 조처를 시작했지만 조선학교의 경우 북한 문제를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보류돼 오다가 자민당으로 정권이 바뀐 2013년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 박정순, 재일조선 학생들의 민족성 교양과 민족무용교육, 6-71쪽.
    • 임추자와의 면담, 가와사키(川崎) 총련회관, 2017.06.20.
    • 장혜순, “발생기 우리학교 Vol.39 -조선무용 기본동작의 보급-,”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201 9.05.05.9-12쪽,[검색일자:2021.03.22.], http://mongdang.org/kr/bbs/board.php?bo_table=school_series& wr_id=41.
    • 박정순, 재일조선 학생들의 민족성 교양과 민족무용교육, 48쪽.
    • 재일동포3세 H학생과 서면질의, 2021.02.28.
    • 정진미, “일본 오사카지역의 조선학교 초급부 무용교수법에 관한 연구”(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7), 88쪽.
    • 앞글, 80쪽.
    • 앞글, 80-81쪽.
    • 山本かほり,“朝鮮学校における民族の形成,” 愛知県立大学教育福祉学部論集, 61, p.152.
    • Ibid, p.155.
    • 정진미, “일본 오사카지역의 조선학교 초급부 무용교수법에 관한 연구,” 114-115쪽.
    • 서정근, “도쿄한국학교 제 2학교 구상과 재일동포의 시각에서 본 민족 교육의 방향성,” 동경한국학원, 2015, 49쪽.
    • 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 小項目事典홈페이지, [검색일: 2021.02.09.], 학교교육과 비슷한 교육을 행하나 정규 학교 이외의 시설. https://kotobank.jp/word/%E5%90%84%E7%A8%AE%E5%AD%A6%E6%A0%A1-43 648.
    • 동경한국학교, 동경한국학원개교50주년기념지(2005), 45쪽.
    • 金侖貞 ,“地域社会における多文化共生の生成と展開、そして、題,” 自治総研通巻 392, 2011, 59-60쪽.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일본에 살고 있던 조선의 출신자와 그 자손, ‘특별영주자’를 일컬음.(한국학교계의 교육연 구서에서는 재일동포들의 체류형태를 논 할 때에 올드커머와 뉴커머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본고에서도 한국학교 학생들의 구분을 상기의 명칭을 사용함.)
    • Ibid, 59-60쪽. 1970년대부터 일본으로 들어와, 1989년 입관법 개정을 경계로 증가한 외국인.
    • 동경한국학교, “연륜” 18(1974), 134쪽.
    • 동경한국학교, “연륜’” 18, 134-149쪽.
    • 동경한국학교, “연륜” 16, 1972, 34-39쪽. 임진왜란 7년, 일본장수 코니시유키나가(小西行長의 양녀로 일본으 로 오게 된 한국 여성 ‘오타쥬리아’를 기리는 행사이다.
    • 재일동포3세 S학생과의 인터뷰, 동경한국학교, 2018.07.01./2019.10.26.
    • 竹村嘉晃, “<sup>「</sup>伝統<sub>」</sub> を支える多元的位相-シンガポールにおけるインド舞踊の発展と国家,” 舞踊學 38, 2015, 120쪽.
    • 박정순, 재일조선 학생들의 민족성 교양과 민족무용교육, 37쪽.
    • 김미영, “남북한 통일 문화에 대한 민속학적 접근,” 국학연구 10, 2007, 345-378쪽.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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