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본 연구는 페미니즘과 컨템퍼러리 안무의 미학적, 정치적 개념 및 실천의 관계를 살피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지난 30여 년간 컨템퍼러리 예술에서 페미니즘과 예술의 관계는 다양 한 관점을 통해 분석되고 실천으로 전개되어왔으며 페미니스트적 의제를 통해 예술의 다 면적인 감각을 제시했다.1) 무용의 영역에서도 페미니즘적 접근을 통해 모던댄스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춤에서 여성의 주체적 표현과 생물학적 여성의 본성을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 춤의 미학과 실천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컨템퍼러리 댄스가 전개된 시기의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을 살펴보고 이를 춤의 주체, 행위, 예술, 정치 등 다층적 측면과 교 차하여 논의하고자 했다.
컨템퍼러리 댄스에서는 이전의 무용에서 페미니즘적인 접근이 여성과 남성을 생물학적 으로 구분하며 여성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한계에서 벗어나 다각도로 확장되어 왔다. 1990년대 젠더와 성(sex)의 구분을 해체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수행성 (performativity)’의 개념을 통해 이전까지의 페미니즘에서 ‘규범적’ 여성성을 구축해온 것 을 비판하고 미리 전제된 여성성이 아닌 행위를 통해 정체성을 발견해가는 것이라고 강조 했다.2) 수행성의 개념은 페미니즘에서 ‘여성’ 중심으로부터 인종, 국가, 민족, 장애 등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체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무용의 영역에서 다양한 신체가 무 대에 진입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다.
초기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개별’ 신체의 정치적 제스처를 드러내는 작업은 가장 급진적 인 예술적 실천으로 고려되었으며, 무용수의 규범적 신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신체적 대안 을 통해 미학적, 형식적 실천이 전개되었다.3) 이는 모든 성별의 평등을 주장하며 가부장적 인 질서에서 구축된 정체성과 지식을 해방시키는 페미니즘의 근원적인 목적과 맞닿아있다. 즉 무용의 역사에서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소외되어있던 다양한 주체들의 시각과 신체를 참조하게 했으며, 이를 통해 안무가들은 기존의 형식과 다른 방식의 무용을 제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안무가 라 리보(La Ribot)는 <Still Distinguished>(2000)에서 남근 중심적인 위계적 질서를 상징하는 수직적 공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했다. 이 작업은 미술관 공간에서 공연자의 나체를 가까이 들여다보는 공연의 방식을 취하면서 대상을 응 시하면서 발생하는 ‘의미화’를 무력화하고 현존하는 신체의 수행적인 움직임들을 감각하도 록 유도했다.4) 또한, 포르투갈의 안무가 베라 만테로(Vera Mantero)는 <One Mysterious Thing, Said e.e.>(1996)에서 20세기 흑인 무용수이자 가수인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의 정체성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제시했다. 이 작업에서는 무용에 전제된 백인, 남성, 유럽 중심의 식민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며 역사와 예술의 ‘주체’ 로서 여성을 바라보고자 했다.5)
현재 페미니즘의 관점은 여성을 넘어 ‘다른’ 주체을 포함하며 더욱 확장되고 있다. 특히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으로부터 전개된 퀴어 댄스(Queer Dance)에서는 성별 뿐 아니라 인 종, 계층, 장애/비장애, 민족, 국가 등이 복잡하게 얽힌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정체성을 드 러내는 상호교차적(intersectional) 방식을 취한다.6) 퀴어(Queer)란 ‘이상한, 낯선’의 뜻으 로 여성과 남성의 이분화된 성의 분류 밖에 존재하는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nd queer)의 이질적인 성을 말한다. 춤에서의 퀴어적 접근은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중심으로 이성애중심의 역사에서 발전된 춤에 저항하고 새로운 미학을 실험한다. 무용이 공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적 행위라는 정치적 본성을 고려했을 때, 퀴어 댄스는 사회적 변화를 강력하게 촉구할 수 있는 행동주의(activism) 성격을 지니며 규범화 된 사회와 예술을 전복하는 전략을 토대로 ‘다른’ 미학과 춤을 제안하고 있다.
예컨대, 안무가 리기아 루이스(Ligia Lewis)의 작품 <Minor Matter>(2017)에서는 여성 이자 흑인인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니는 자신의 신체를 통해 흑인 신체를 바라보는 백인의 관점을 비판하고 사회적 분류에 속하지 않은 물질로서의 육체를 통한 춤을 제안했다.7) 이 는 흑인 여성의 인종적, 민족적, 성별적 차별에 저항하며 백인 중심에서 구축된 지식의 역사 와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페미니즘의 대안적 지식과 경험을 제안하는 블랙 페미니즘(Black Feminism)의 입장을 취한다. 안무가 댄 도우(Dan Dow)는 <On One Condition>(2017)에 서 게이이자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춤을 통해 신체적 다름에서 발생 하는 개인의 신체적 감각과 경험을 춤을 통해 소개했다.8) 이 작업은 규범화된 하나의 시각 이 세상에 속하지 못하는 다른 신체들을 ‘비정상’의 범주를 통해 차별과 억압과 폭력의 역 사를 생산한 것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정상(normal)이란 무엇인가?’를 재질문한다.
이처럼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페미니즘적 접근은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퀴어의 영역 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페미니즘과 더불어 후기구조주의, 후기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사회와 문화의 뿌리 깊은 편견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페미니즘의 참조가 무용의 주변부에 머무르며 ‘여성의’, ‘여성을 위 한’ 예술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춤의 형식과 미학을 변화시키는 주요 담론으로 고려하며, 다음과 같이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문헌연구를 통해 컨템퍼러리 댄스의 이론 및 담론적 논의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논의했다. 주로 주디스 버틀러,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엘리자베스 그로츠 (Elizabeth Grosz) 등의 이론과 퀴어 공연예술 이론가 호세 에스테반 뮤노즈(José Esteban Muñoz), 사라 아흐메드(Sara Ahmed) 의 논의와 컨템퍼러리 무용 이론가, 미학자의 이론 을 논의했으며, 여기서 발견된 주요 개념들은 사례 연구를 위한 분석틀로 사용했다. 사례 연구의 대상은 컨템퍼러리 안무가 중, 후기 페미니즘 이론에서 섹슈얼리티, 젠더, 퀴어 및 상호교차적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을 작업의 주요 주제로 삼으며 안무와 예술 실천을 확장 하고 있는가를 살펴봤으며, 메테 잉바르첸과 제레미 웨이드를 선정했다. 사례 분석의 방법 으로는 두 명의 안무가의 작업와 관련된 인터뷰, 강연자료, 텍스트, 비평, 기사 등의 자료를 수집하고 안무 방법, 창작 과정, 비평 및 성찰 등 안무의 실천 과정에서 발견되는 지식을 본 연구에서 논의된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들을 근거로 논의하고자 했다.
본 연구에서는 페미니즘이 춤에서 새로운 안무와 담론 생산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가부장적, 이성애적 역사의 토대에서 구축된 지식과 관점과는 다른 방식으로 춤과 안무의 지식에 접근하는 것에 의미를 찾고자 했다.
Ⅱ. 컨템퍼러리 댄스의 페미니즘 개념 논의
무용의 역사에서 춤은 추상적이며 실증적으로 다룰 수 없는, 시적인 은유로 존재하며, 실재계의 모든 인과관계를 차단하는 ‘순수한’ 영역으로 고려해왔다.9) 즉 춤은 언어나 사물 로 구체화되는 다른 예술보다 모호하며 신비로운 것으로, 사유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춤은 종종 ‘여성적인 것’으로 바라보았으며, 춤과 여성의 공통적 인 한계로 지적되어왔다. 니체(F.W. Nietzsche)는 춤과 여성은 잡히지 않고 사유될 수 없 는 속성이 있다고 했으며,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지속되는 춤의 소멸성을 여성성과 비교했다.10) 데리다의 춤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 는 춤을 ‘현존’의 개념으로 논의하고 춤의 젠더화된 물질성을 제시한 것으로 페미니즘과 춤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주장에서 춤추는 ‘주체’에 대한 질문이 빠져있는 것은 비평의 지점이 되어왔다.11)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춤은 추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의 문제를 담고 있으며, 신체의 행 위를 통해 정치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춤의 속성을 밝히기 위해서 모던 댄스와 이전의 철학에서 제시되었던 ‘익명’의 ‘비어있는 신체’ 대신 ‘주체화된’ 신체를 제안한다.12) 춤추는 신체는 모더니스트들이 강조하는 ‘순수한 영역’이 아닌 사회, 문화, 제 도와 긴밀하게 작동하며, 신체를 둘러싼 성, 젠더, 주체에 관한 페미니즘의 의제들은 춤의 새로운 지식과 관점의 생산으로 연결될 수 있다.
1. 원료(Raw Materials)로서의 신체: 육체성(Corporeality)
1990년대 이후 컨템퍼러리 댄스에서는 사회적 문화적 틀에 의해 분류된 ‘신체적’ 재현 을 거부하고 공연의 시간 안에서 신체의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변형되는 신체를 제안하기 위해 ‘신체(the body)’를 대체하는 ‘육체성’이라는 용어가 제시되었다. 이는 ‘신체’라는 용 어가 지니는 존재론적인 양면성과 고정된 문제들에 비평적으로 접근한다.13) 육체성은 신 체를 하나의 물질로 다루는 것으로 무용수의 신체에 달라붙은 기호로 전제된 의미체계에 서 벗어나 아직 형상화되지 않은 질료의 상태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자베스 그로 츠(Elizabeth Grosz)가 말하듯이 신체는 변덕스러운 것이며, 약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구체화, 수행적 실천, 번역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생산하고 재현한다.14) 육체성 은 하나의 성(sex), 인종 등 다른 육체성과 관계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개별화된 신체를 의미한다. 즉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여성’의 육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15), 성의 다름은 어떤 위계도 만들지 않는다. 이는 가부장적인 역사에서 신체에 관습적,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신체를 통해 공연의 미 학적 의미를 발견하고 작품과의 관계를 탐색하게 한다.
안드레 레페키(André Lepecki)는 1990년대 이후 육체성의 개념은 신체에 대한 다감각적 이고 비평적이며, 주체의 규범을 해체하는 것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16) 이는 중립적인 (neutral) 신체를17) 통해 순수한 춤의 미학을 강조하는 모더니스트들의 입장과는 반대로 신체는 열려있는 개체로서, 신체의 잠재성을 발견하며, 신체를 둘러싼 상황에 다각도로 접근 하기 위한 다매체적 실험으로 연결되었다. 최근의 컨템퍼러리 댄스에서는 신체를 하나의 물질로서 안무의 재료로 삼으며,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해체하는 급진적인 실험으로 나아간다. 이는 포스트페미니즘 이론에서 이분법적인 질서에서 생산된 모든 지식을 거부하 며, 인간에 대한 개념을 유예하는 전략과 연결될 수 있다. 포스트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 이는 서양 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역사의 기원과 질서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고 젠더의 권력관계와 상관없는 ‘사이보그(Cyborg)’로서의 정체성을 제안했다.18) 춤에서의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수용은 기존의 규범화된 성의 구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개념을 유예하고 ‘탈인간화’를 시도하는 실험으로 연결되었다. 즉 ‘인간’에 한정했던 춤에서 벗어나 동물, 사물, 기계로 확장하고, 춤의 고정된 이미지를 해체하는 안무에 영향을 주었다.
컨템퍼러리 안무가들은 젠더화된 신체를 기준으로 춤을 고안해왔던 것에 비평적 태도를 취하며, 보다 복잡한 범주에서 육체를 다루기 위한 안무를 재탐색한다. 예컨대, 자비에 르 로이(Xavier Le Roy)는 작품 <Self Unfinished>(1998)에서 물질로서 신체의 지속적인 변형 과정을 안무로 구체화한다. 움직이는 인간과 비인간적인 신체 표현에서 관객이 신체의 무 엇을 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관객의 인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형성하는 장 치를 통해 안무를 구조화했다.19) 이 작품은 안무가가 언급했듯이 페미니즘 이론가 엘리자 베스 그로츠의 ‘신체’의 불완전성과 연결되며, 신체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다양성, 차이 의 영역, 신체와 주체의 다름에 의해 재형태화된다.20)
공연예술에서의 육체성에 대한 탐색은 창작 뿐 아니라 관람자와 작품의 의미 창출에 관 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한다. 현대의 공연예술에서 변화된 미학을 제시한 에리카 피셔-리 히테(Erika Fischer-Lichte)는 공연에서 육체의 물질성을 강조하면 오히려 관객들이 이를 지각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의미의 창조자’가 되게 한다고 했다.21) 공연에서 육체성은 미리 정해놓은 이야기나, 감정 등을 재현하는 신체가 아닌 특정한 공연의 시간과 공간에서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신체에 잠재된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다. 육체성의 개념 은 무용의 역사에서 무용수의 고정된 신체, 즉 탈육체화를 전제하고 춤의 스타일과 형식에 서 구축된 미학적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2. 젠더의 생산과 재생산: 수행성(Performativity)
컨템퍼러리 댄스에서는 신체에 대한 젠더나 계층, 인종 등의 구분을 통한 정체성대신 행위를 통해 어떻게 주체를 생산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주어진 성별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 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신체의 ‘차이’에 따른 가정되지(assumed) 않은 신체에 대 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며, 주체화 과정의 전제가 된다. 여기서 ‘차이’에 관한 접근은 순수 한 범주에 의해 정체성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발생시키는 권력, 사회적 정체성 을 구분하는 방식, 차이의 이미지로 발생하는 것들을 살피는 것이다.22) 서로 다른 신체에 각각 작동하는 힘과 사회적 규범은 무용수의 기술에 의존하는 춤의 스펙터클 이면에 보이 지 않는 신체의 요소들을 탐색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용수에서 발생하는 신체 이미지, 구 분된 성역할, 춤의 미학과 형식 등 모든 측면에서의 기존의 창작 및 담론 생산에 다른 접근 을 시도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기존의 페미니즘 이론에서 여성이라는 범주를 통해 주체의 일관성을 강조해온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개별 신체와 행위에 따라 정체성이 생산 된다는 ‘수행성’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 버틀러에 의하면 젠더와 구분되는 생물학적인 성(sex)의 구분 역시 근원적인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 즉 젠더의 문제였으며 젠더의 정체성은 주체의 수행에 따라서 새롭게 구성된다.23) 수행성 의 개념은 무용에서 행위주체로부터 발생하는 정치성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었다. 컨템 퍼러리 안무가 마르텡 스팡베르그(Mårten Spångberg)는 ‘수행성’의 개념이 1990년대 이후 의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춤의 정치와 안무의 미학을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 했다.24) 무용수는 고정된 역할과 춤의 형식에서 정체성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그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으며, 이는 신체에 영향을 주는 모든 연결되어있 는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또한, 이러한 수행성은 이전의 능동적인 행위자와 수동적인 관객의 관습적인 구분을 해 체한다. 자끄 데리다는 완전한 수행자가 되기는 불가능하며 수령자에 의해 다양한 의미가 생성될 수 있다고 했다.25) 즉 무대 위 무용수의 행위와 발화는 고정된 의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 의해 항상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성의 관점에서 무용수, 관 객, 여성, 남성, 인종, 계층 등의 고정된 정체성을 해체하며 다른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정치는 서로 다른 신체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와 권력을 추적하여 무대 위에서 폭로함으로써 안무에서의 정치적 접근 및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탐색하는 것에 영 향을 주었다.26)
무용에서의 창작은 사회 문화 속에서 생성되고 의미화된 상징들과 이미지를 어떻게 실 어 나를 것인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범주화할 수 없는 개별적인 신체와 그것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에 있다. 버틀러는 ‘수행성’에 대해 우리가 누구인가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관리되는 이미지, 표준, 이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27) 공연에 서 신체는 육체이자 주체로 존재하며 수행으로서의 춤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 의 관계 속에서 인간에 대한 문제를 질문하는 ‘실제적인 것’이 된다. 페미니즘은 이론과 운동을 모두 포함한 용어로서 행위와 실천이 강조된다. 수행성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의 관 점이나 전략이 안무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행동주의(activism)’로서의 춤의 사회적 역 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레페키는 안무적인 계획은 본질적으로 수행성을 통해 서 나타나며, 그것은 무용의 미학에서 핵심이 된다고 강조했다.28) 주체와 주체에 접근하는 안무의 전략은 은유나 환상의 영역이 아닌 ‘현실’의 영역에 있으며, 이는 춤이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3. 퀴어: 반규범적, 비정상성의 미학
페미니즘 이론 및 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혹은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컨템퍼러리 댄스의 퀴어 장(queer scene)에서는 백인, 남성, 이성애중심의 가부장적 무용의 역사에 다른 미학 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춤에서 퀴어는 일반적으로 LGBTQ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젠더와 섹슈얼리티(sexuality)의 ‘차이’를 다루지만 사회적 구조 내부에서 퀴어와 관계를 맺는 것 들에 집중하면서 정치적 입장을 취한다. 호세 에스테만 무뇨즈(José Esteban Muñoz)는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s)’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정상으로 불렸던 것들은 실제로 백인과 이성애자들의 것이라고 비평하면서 헤게모니의 체제 내부에서 다수의 주체들과 동일시하 지 않는 방법으로서 공연의 형식을 제시했다.29) 따라서 춤에 퀴어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시각으로부터 동일시되는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이며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해온 역사와 지식의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다.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비정상적인, 이상한, 낯선’의 의미를 지니는 퀴어의 탐색을 통해 ‘정상성(normality)’에 대한 비평적 물음이 제기되었으며, 사회구조 내부에서 ‘정상’으로 분 류되지 않은 모든 신체들이 춤과 안무, 그리고 공연으로 진입했다.30) 즉 정상성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며, 잘못 인식되었거나 인 식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성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혐오와 폭력의 대상이 되어왔던 사회적 약자들- 유색인종, 이민자, 장애인, 난 민을 퀴어 담론에 편입시키며 그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예컨대, 비장애인의 신체를 중 심으로 춤의 형식을 구축했던 것에서 벗어나 장애의 몸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중심으로 춤 의 관념을 재검토할 수 있다. 이는 소수자에게도 균등한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포용성 (inclusion)의 개념을 넘어 개별적인 신체에서 발생하는 서로 다른 감각을 중심으로 한 창 조를 가능하게 한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퀴어적인 관점에서 개인에서는 정체성의 범주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 상호교차성에 대한 탐색과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의 필요 성이 강조된다.31) 이전의 페미니즘에서 범주화된 정체성을 견고히 하며 사회의 지배적인 개념들과 대립점을 만들었으며, 오히려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주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킴벌리 크렌쇼(Kimberle Crenshaw)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는 힘과 공 동체, 그리고 지적인 발전의 원천이었으나 각 범주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차이가 종종 무시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의 교차성을 가진 유색 인종 여성은 하나의 범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과 인종주의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고려해 야 한다고 주장했다.32)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교차성 페미니즘의 개념은 다양한 섹슈얼리티와 젠더, 흑인과 유 색인종 등 서로 다른 신체에 안무적으로 접근하며, 춤의 창작, 해석, 감상을 위해 지금까지 와는 다른 미학이 요구된다. 뮤노즈는 과거와 문화적 생산과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이성애 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현재에는 퀴어적인 것들을 찾을 수 없으며, 퀴어가 가시화되는 것은 지금의 제한적인 것들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33) 이는 정상의 범주에 서 벗어난 퀴어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규범들을 어떻게 퀴어적으로 해 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정치적 행위, 즉 수행을 의미한다. 퀴어 이론의 핵심인 섹슈얼리 티는 사적인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사회적인 공간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며, 이데 올로기적 힘의 관계와 차별, 혐오, 배제, 소외 등 세계가 가진 문제에 대한 정치적 반응으 로 나타난다.
이처럼 퀴어적인 관점에서 균열된 정체성으로부터 발생하는 정치와 이성애적인 규범으 로부터 구축되어온 춤의 본질 등은 재검토되어야 하며, 신체를 주체이자 객체로 사용하는 안무에서 다른 관점과 형식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무용의 역사에서 ‘하나’의 규범을 따르며 견고한 지식을 만들어온 시간만큼 이것을 전복하기 위한 퀴어의 창조적 힘은 무한하게 잠 재되어있다. 춤에서의 퀴어적인 감각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았던 것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며 그것은 현재가 아닌 아직 의식되지 않은 미래의 것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시대 의 실험적인 예술 형태를 지닌다.34)
Ⅲ. 사례 연구
1. 메테 잉바르첸(Mette Ingvartsen): 섹슈얼리티의 정치
잉바르첸은 덴마크 출신의 안무가로 2003년 무용단을 조직하고 현재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The Red Piece’ 시리즈를 통해 사적인 영역인 여성 의 신체와 공적 공간이 맺는 관계를 탐색하고 섹슈얼리티와 누디티(Nudity) 이미지를 재현하 고 소비하는 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평적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 시리즈 중 <69 positions>(2014)에서는 1960년대의 실험적인 공연의 자료들을 아카이브하고 이를 재연하며 성적인 유토피아가 현대 사회와 공연예술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로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냈 다.35) <7 pleasure>(2015)는 12명의 알몸을 드러낸 무용수들이 엉키며 서로의 감각과 접촉에 대한 반응, 떨림 등의 움직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형되는 형태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신체는 성적인 대상이 아닌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하나의 물질이자 형태로 존재한다. <21 pornographies>(2017)는 덴마크에서 1960년대 이후 산업으로 유동되는 포르노그래피 에서 나타난 성적인 욕망과 힘의 관계를 폭로하는 정치적 입장을 취한다.36)
잉바르첸의 페미니즘적인 접근의 방식은 섹스화된 신체가 사회, 자본, 정치가 맺는 관계 를 탐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성과 권력의 관계에 벗은 몸과 행위와 형태 등에 대해 안무적으로 접근하며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몸의 정치를 자본의 영역까지 확장한 것 에 의미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The Red Piece’ 시리즈 중 2019년 한국에서 공연된 <69 Position>37)을 중심으로 섹슈얼리티와 몸의 정치적 관계를 논의하고자 한다.
1) 섹슈얼리티의 역사적 재연
<69 Position>은 극장의 무대 위에 또 다른 무대를 설치하여 잉바르첸이 2년간 모은 섹 슈얼리티와 누디티에 관련한 텍스트, 비디오 등의 퍼포먼스 자료들을 전시하고 언어, 신체 적 행위, 춤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공연이다. 이 공연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공연예술에 서 정치와 섹슈얼리티의 관계를 탐색하기 위해 사회문화적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1960년 대 전개된 68혁명은 ‘자유로운 사랑(Free love)’을 슬로건으로 성적인 해방을 주장했으며, 개인의 공간이 아닌 정치적, 사회적 공적 공간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었다. 이로부터 10년 뒤 미쉘 푸코(Michel Foucault)의 성담론에 관한 계보학적 논의인 『성의 역사(History of Sexuality)』가 발간되면서 섹슈얼리티는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억압과 권 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체화의 과정으로 고려되었다.
60년대 성의 해방 운동과 푸코의 성과 정치, 역사에 대한 논의는 페미니즘에서 몸의 성 적인 특수성에 대한 문제를 통해 가부장제의 바깥에서 여성의 자율성에 근거한 새로운 담 론과 실천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과 교차된다. 그로츠는 “섹슈얼리티가 몸의 결정적인 한 유형이자 성적으로 특수한 것으로 성적 관계의 영역을 넘어서거나 성차를 구성하는 관계 를 벗어나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고 했다.”38)
잉바르첸의 작업에서는 섹슈얼리티가 공적 공간에서 어떻게 재현되어왔는지를 아카이 브 형식을 통해 탐색한다. 60년대부터 잉바르첸 자신의 지난 10년간의 공연에 이르기까지 의 섹슈얼리티와 누디티의 이슈를 담은 공연을 주로 다루며 역사적 시기를 세 부분으로 구성하여 장면으로 발전시켰다. 첫 번째는 60년대의 정치적 저항으로서의 누디티를 도구 로 사용했던 것, 두 번째는 1990년대 이후 자비에 르 로이나 제롬 벨 등 컨템퍼러리 안무 가들에 의한 자기 재현 및 물질로서 육체를 다루는 방식, 마지막으로 상품경제와 연관된 섹슈얼리티에 관한 것이다.39)
이러한 역사를 관통하는 섹슈얼리티, 누디티는 사회, 문화, 정치의 문맥에서 다른 해석 을 시도하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성적 욕망, 성 적 지향, 성행위, 성적 현상에 대한 섹슈얼리티는 공공의 공간에서 가부장제와 남성중 심적인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드러낸다. 이 작업의 동기가 되었던 캐롤리 슈니먼 (Carolee Schneemann)의 <Meat Joy>(1964)는 누디티를 통해 “현재의 문화적 금기와 억압 적인 관습의 사회적 범위를 폭로하고 직면했다”고 했다.40) 잉바르첸은 <Meat Joy>를 현 재의 문맥에서 재해석하여 무대에 올리고자 했지만, 작가의 허락을 얻지 못했고, 이 공연 과 같은 시기인 1960년대의 다른 퍼포먼스를 수집했다. ‘The Performance Group’에서 리 차드 쉐크너(Richard Schechner)에 의해 제작된 <Dionysis in 69>(1968), 야요이 쿠사마 (Yayoi Kusama)와 잭 스미스(Jack Smith)의 작업 등 규범화된 섹슈얼리티에 저항하는 10 개의 공연을 자료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처럼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누디티를 사용하는 방식은 몸을 규정되지 않은 물질로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매체로 다루며 이분법적인 구분에 의해 규정된 몸과 이에 따른 차별과 혐오에 대해 문제제기 한다. 잉바르첸은 60년대의 정치적 환경에서 성적 해방을 위해 누디티를 도구로 사용했지만, 여전히 공공영역에서 노출은 금기시 되어 있으므로 예술에서 허가된 방식으로 누디티를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된 것들에 저항하는 하나의 정치적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했다.41)
이 작품에서는 벗은 몸을 매체로 모든 이분법적인 경계를 벗어나 인간이 아닌 모든 것들 과의 성행위를 시도한다. 책상에 앉아서 렉처를 진행한 이후 잉바르첸은 전등, 책상 등 사 물과 성행위를 시도하며 섹슈얼리티의 다른 이미지와 언어를 생산한다. 인간이 아닌 대상 들과의 성행위 장면을 묘사하는 것은 금기된 행위를 공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역사 안에서 재현되어왔던 자본주의의 상품경제와 국가의 통제에서 규범화된 성의 방식에 위반을 시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정치와 안무의 관계
제목에서 사용된 ‘69 Position’ 이란 성행위에서 평등한 주체를 드러내는 자세를 의미한 다. 이는 그간 페미니즘에서 저항했던 남성 중심적인 위계적인 관계에서 평등한 (Egalitarian) 관계를 재연한다. 잉바르첸은 관객과 공연자,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고 위 계가 발생하지 않은 공연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며, 이러한 안무의 방식을 ‘부드러운 안무 (Soft Choreography)’로 명명했다.42)
이 공연에서 관객들은 잉바르첸의 가이드에 따라 무대를 돌아다니며 공연자의 행위를 근접한 거리에서 바라본다. 잉바르첸은 관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과 시선을 교환하면 서, 극장에서 행위와 관람이 고정된 틀을 해체한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도중에 관객은 공 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공연자로 초대되기도 한다. 그들은 오르가즘 소리를 모 방하거나, 서로 얽혀서 난교를 재현하거나 함께 춤을 춘다. 이러한 상황은 관객들이 당황 할 수도, 혹은 참여를 거부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갖지만, 관객이 언제든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관객과 공연에 대한 책임을 나누고 그들의 욕망이 이 작업과 만날 수 있도록 하나의 장치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관객참여형, 인터렉티 브 형식에 집중하기보다는, 안무의 ‘민주적’인 방식을 고민하는 것으로 ‘함께 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다.43)
‘부드러운 안무’는 서로 다른 신체가 어떻게 모일 것인가, 집합체로서의 신체는 어떤 공 간을 점유하는가를 질문하는 확장된 관점에서의 안무를 제안한다. 개별 신체가 하나의 집 합을 이룬다는 것은 개별화된 신체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 비춰본다면 하나의 유 토피아적인 상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무대 위에서 이러한 상상을 펼치기 위해서는 기존의 ‘단단한 안무’의 방식에서 공간을 구분하는 것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자유 가 있고, 해방된 공간의 내부에서 자유롭게 다른 신체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안무에서 공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제안하는 것과 동시에 모든 주체의 평 등을 지향하는 페미니즘의 입장으로 볼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민주적인 방식에서의 안무 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잉바르첸은 공연에서 안무의 정치적인 기능과 사회문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방식에 관심 을 두며, 언어적 행위가 공연의 다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고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다. 이 작업에서 참조로 삼고 있는 과거의 퍼포먼스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말하기’를 통해 특정 공연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맥락과 현재의 시점을 언 어의 과정으로 연결시키고 ‘강연’의 형태로 발전시킨다.
나는 글쓰기와 발화에 대한 인터뷰의 형식을 탐구하면서, 담론을 생산하는 방식으로서의 공연의 형식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능과 역사에 익숙한 강연 형식이 아닌 ‘추론’을 중심으로 한다. 역사의 어떤 것을 호명할 때, 그것이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목적이었 기 때문에 과거 작품을 정직하게 재구성하는 것을 피했다. 말과 담론의 수행적인 실제가 무엇 인가를 고민하고, 또 어떻게 상상과 가상현실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으로 안무의 형식 을 구축하게 되었다.44)
안무에서 담론을 강조하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여 개념적인 것에 접근하고 공연을 정치 적인 매커니즘과 연결시켜 공연과 사회문화와의 상호 작용을 구성하는 과정으로 고려된다. 이 작업에서 Testo Chunki 텍스트를 사용한 자본주의와 섹슈얼리티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잉바르첸의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21 Pornography>로 발전되 었다. 이 작품은 시각중심의 문화에서 포르노그래피가 어떻게 남성중심적인 권력과 폭력 을 실어 나르는가를 살핀다. 그로츠는 “포르노그래피가 부분적으로는 남성 관객에게 여성 섹슈얼리티의 수수께끼에 관한 지식으로서, 사실 남성 관객 자신의 성적 쾌락의 투사”라고 했다.45) 즉, 포르노그래피라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남성에 의존적인 것으로 구조화 하며, 남성 욕망의 재현으로서 성의 행위는 자본의 힘과 더불어 가속화된다.
잉바르첸이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담론적 접근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성별화된 문화에서 지속되는 폭력과 권력 등에 근거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양한 안무의 프레임으로 작동하며 공연에서의 이미지와 감각을 생산하기 위한 방법론과 연결된다.
2. 제레미 웨이드(Jeremy Wade): 퀴어링의 안무
웨이드는 미국 출신의 안무가로서 2006년 뉴욕에서 안무를 시작했으며 현재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안무의 퀴어적 재연을 작업의 방법론으로 취하며 성별의 다름에서 발생하는 ‘차이’의 정체성을 춤과 신체, 조각, 음악, 액티비즘을 통해 안무를 발전 시켜왔다. 대표적으로 베를린 HAU(Hebbel am Ufer)에서 공연한 <DrawnOnward>(2015) 는 춤에 퀴어적 감각과 퀴어의 과학으로 접근하면서 지금까지 ‘보편적’이라고 통칭되었던 모든 세계의 질서를 재연하고, 다르게 기억하는 방식으로서의 안무를 제시했다. 웨이드는 개인적 작품 활동 이외에 퀴어 예술을 소개하는 큐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에는 베를린 TanzFabrik Berlin에 초청되어 공연 형식의 포럼 <This Care Thing is Critical>(2018)을 연출했다. 그는 드래그(Drag)46) 간호사의 복장으로 장애인의 경험에 관 한 대화를 나누며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된 ‘돌봄’의 현상을 통해 국가 시스템 의 문제점과 정책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신체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했다. 이는 퀴어와 장 애인이 다른 정체성을 지녔지만 사회의 소수자로서 경험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정치적 입 장을 취한다.
본고에서는 웨이드의 작업 중 2017년도부터 시작된 공연, 큐레이팅, 컨퍼런스, 파티 등 예술의 광범위한 형식을 소개한 프로젝트인 ‘Future Clinic for Clinical Care(FCCC)’를 분 석의 대상으로 한다.
1) 페미니즘과 퀴어의 교차성
제레미 웨이드의 ‘Future Clinic for Critical Care(FCCC)’ 프로젝트는 ‘돌봄’과 ‘치료’라 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이들을 사회에 드러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난민, 장애인, 퀴어 등 사회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을 서로 연결하고 인종차별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고립 등에 대한 문제를 함께 제기할 수 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47) 웨이드는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프로젝트 를 진행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페미니즘이 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인 질서에서 성차별주의와 이성애중심주의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계급, 인종, 연령 등 다양한 기 제와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이다.48)
페미니즘과 퀴어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페미니즘에서는 “본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비평적인 입장을 취한다. 만약 페미니즘이 본질주의와 싸운다면, 그것은 여성의 지위 가 매우 제한적이라 낡은 서사를 입증하는 것이다. 본질주의는 더 이상의 급진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가부장적인 자본주의에서 여성의 본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동이나 자본 등에서 오는 취약성은 여성의 가치를 더 깎아내릴 뿐이다.49)
컨템퍼러리 무용에서 퀴어는 이미 하나의 장을 이루어 퀴어적인 실험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웨이드는 사회의 구조에 문제제기하고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차별과 억압에 저항 하며 더 많은 주체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와 운동의 방식이 필요 하다고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1960년대 페미니즘의 제 2의 물결과 함께 젠더 평등과 차별 없는 평등한 기회를 요구한 것은 지금의 퀴어 예술과 운동을 이해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 고 있다.
퀴어는 교차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지 남자들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스커트를 입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교차적인 장소에 살고 있다. 유색인종이 정체성의 정치를 하고, 동성애 결혼을 위해 투쟁하고, 동시에 미투 운동이 일어난다. 그들은 서로 다른 투쟁으로 사회에 저항한다. 이것은 소수자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삶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그들이 일하는 장소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50)
FCCC에서 장애인과 퀴어의 교류와 연대는 예술과 퀴어의 운동이 사회적, 문화적 변화 를 이끌어내기 위한 핵심적인 프로젝트이다. 이는 페미니즘이 이성애적 가부장제 주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제도 바깥의 주체들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제레미는 퀴어는 교차적인 것들이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며, 컨템퍼러리 예술가 들이 누구에게 말을 걸고, 누구를 언급하고 있는지, 누가 배제되어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지 금 컨템퍼러리 예술에서 퀴어적 감각이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51) 웨이드의 작업에서는 퀴어, 여성, 장애인의 교차성과 연대를 중심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제 시할 수 있는 퀴어의 역할을 제안했다. FCCC의 프로젝트 중 렉처 퍼포먼스인 <The Battlefield Nurse>는 5000세 나이의 전장의 간호사라는 허구적 인물을 중심으로 장애, 퀴 어를 중심으로 정서적이고 정치적인 미래주의적 상상력을 제안한다. 이 작업에서 ‘미래’는 지금을 볼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이자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웨이드 미래에 대한 희망의 원칙들은 지금의 복잡한 문제에 처해있지만 연대를 통해 제안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에 변화와 희망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사회적 저항을 이뤄내야 하며, 이는 퀴어적인 접근으로 성취할 수 있다. 뮤노즈가 퀴어의 미래는 현재에서 예상가능한 환상을 통해 구축되는 것으로 퀴어의 미래상은 현재에 있다고52) 강조한 것과 같이 퀴어의 상상은 현실의 정치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지금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라는 비자연적인 인터페이스를 제안했을 때 나는 신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 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이 퀴어 이론이다. 이미 웹스터 사전에 여성 과 남성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유예하는 ‘they’라는 용어가 등재되었다. 이와 같은 용어를 만들 어내는 것은 삶에서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53)
사회와 예술에 퀴어적으로 접근할 때에는 낯설고 기이한 방식이 요구된다. 새로운 이야 기를 만들고, 낯선 것으로부터 아름다움, 즉 미학적인 발견을 시도하는 것이다. 웨이드는 그의 안무의 방식에서 정형화된 움직임을 만들지 않기 위해 ‘탈지향(Disorientation)’의 방 법론을 고안했다. 이미 사회적으로 권력을 갖는 움직임의 매커니즘이 무엇인지를 연구하 고 근원이 없는, 방향성을 상실한 움직임으로부터 새로운 춤의 감각을 회복하고, 발생하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과정을 춤의 형식으로 구축했다. 웨이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춤이 퀴어적이라고 느꼈으며, 조직되지 않은(disorganization) 춤은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창조의 잠재력이 존재한다”고54) 하면서 언어보다 강력하게 신체적으로 경험되는 춤에서의 퀴어 방식을 강조했다.
2) 행동주의(Activism)와 예술의 연결
FCCC는 동시대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돌봄’의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예술과 사 회의 각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작업에 초대한다. 이는 돌봄의 되는 대상들과 관련한 복지 와 치료의 문제를 의학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신체와 관련된 정치적 전략으로 다루는 것이 며, 취약한 주체들과 제도의 관계에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행동주의이자 예술 프로젝트라 고 할 수 있다. 버틀러에 의하면 “우리가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조건들을 만났을 때, 그것은 우리가 무엇에, 혹은 무엇으로 취약한 상태가 되었나를 인식하게 되고, 그것은 우리를 저 항으로 이끈다.”55) FCCC에서 돌봄이 필요한 취약한 계층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폭로하 고, 이것에 저항하는 몸짓을 가시화함으로써 취약한 신체를 공공의 장소에서 수행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식으로 예술과 운동을 연결시킨다.
거리에서 시위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퍼포먼스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다. 행동 주의와 예술은 모두 수행적이다. 행동주의와 예술의 연결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관점을 바꾸 기 위한 것이다. 퍼포먼스는 문화적 생산과 관련이 있는 것이며, 사회적인 항의 중에서도 유머러스한 역할을 한다. 시위를 하는 것과 공연은 모두 정신적인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은 ‘공공의 상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퀴어적인 것은 시위, 공연, 예술, 정치의 구분을 해체하는 것으로 한 번도 경험되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점을 변화시킨다. 예술과 행동주의가 모두 변화를 창조하고 희망을 품 기 위해서 공공에서 퀴어는 필요한 원칙이다.56)
안무의 관점에서 미학과 행동주의는 별개가 아니며 이는 예술의 역사에서 안무의 시스 템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핌으로서 알 수 있다. 수잔 리 포스터(Susan Leigh Foster)는 Choreographies for Protest에서 에이즈 혐오 반대와 흑인 인종 차별에 저항하는 시위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신체로부터 안무적 구조를 발견하여 개인의 주체화와 사회성을 발견하기 위한 신체의 역할을 강조했다.57) 이는 수행성의 관점에서 시위도 하나의 퍼포먼 스로 고려하는 것이며 사회의 내부에서 신체의 행위를 통해 안무를 구성하는 하나의 ‘사회 적 안무’로 바라보는 것이다.58)
FCCC에서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는 것은 수치심이나 두려움과 같은 감 정은 거리에서 실제의 문제를 만났을 때 발생하며, 이는 우리의 현존과 사회적 구조의 밀 접한 관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웨이드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의 이러한 증상은 혼자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돌봄의 문제로 확장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 어떤 행위를 유발하고 미래에는 다른 사회를 꿈꾸기 위해서 는 ‘사회적-문화적 생기(Social-Cultural Animation)’로서의 춤의 기능을 제안했다
우리가 춤이 아니고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먹지 않고 어떻게 같이 모일 수 있을까? 우리는 연대나 시위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항상 특정한 상황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춤은 서로 다른 사람이 모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인 대변인이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규범과 정상성에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정상’이라는 사회적 범위를 벗어난 취약한 주체들이다. 춤을 통해서 신자유주 의 체계에서 취약성을 가진 여성, 유색인종, 퀴어, 장애인들을 드러내게 하고, 새로운 힘을 가질 수 있게 한다.59)
퀴어의 작업에서 사회의 다른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니 는 신체들로 ‘공동체를 구축하는(Building Community)’ 것은 춤의 행동주의적 접근에서 발생한다. 퀴어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인 ‘접근성’이란 사회의 어떤 곳에서도 배제되지 않고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예컨대, 무용이 공연되는 극장은 중산층으로 구 성된 특정한 계층이 주로 모이는 공간으로 커뮤니티 센터처럼 다양한 계층과 젠더, 인종들 이 모일 수 있는 공간과는 다르다. 따라서 퀴어적인 접근에서 극장에서 누가 배제되었는가, 누구의 목소리로 발화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춤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무엇이 공적이고 누 가 공공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이처럼 공동체와 연대를 강조하는 퀴어적인 접근은 서로 다른 주체들의 차이를 인정하 고, 서로 지지하는 방식에서 예술의 정치성을 강조한다. 춤을 중심에 둔 연대의 방식은 이 질적인 주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낯설고 이상한 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공 동의 상상을 통한 사회적 변화를 꿈꾸는 것이다. 퀴어는 식민주의, 젠더 불평등, 미투 운동, 난민,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등에 대한 동시대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들이 발생하는 공간 이며,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서로를 지지하며 다른 상태로 공존하기 위한 방법을 상상하 는 것이다.
Ⅳ. 결론: 페미니즘과 안무 미학의 관계
1. 페미니즘의 확장된 실천으로서의 안무
1990년대 이후 무용은 ‘정치적’인 것과의 관계를 통해 무용의 미학과 형식, 그리고 실천의 내용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드라마투르그이자 무용미학자인 보야나 스베이지(Bojana Cvejić)은 이러한 현상에서 “오늘날의 무용은 미학적 부담감과 정치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고 하면서 (유럽)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미학과 정치적 관계를 강조했다.60) 이전의 모던댄스 에서는 특정한 스타일과 움직임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방식에 고정되어있었다면,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정치적 접근을 통해 고정된 신체의 이미지와 춤의 미학을 전복하는 과정에서 새로 운 춤의 형식을 제안한다. 본고에서는 90년대 춤에서 정치적인 것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컨템퍼러리 댄스가 페미니즘과의 공모를 통해 새로운 형식과 안무, 춤의 담론을 제시했음을 밝히고 페미니즘과 안무 미학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했다.
먼저 신체를 주요 매체로 하는 춤에서 육체성과 주체에 대한 논의를 통해 지금까지 무용 수에 대한 고정된 정체성을 해체한다.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신체를 성별의 구분이 사라진 하나의 물질로 바라보고, 사회적 코드나 식민화된 성적인 유형의 구분에서 벗어나 춤을 구성하는 하나의 ‘원료’로서 하나로 설명되기 어려운 상태로 실제하는 것으로 고려한다. 변화무쌍한 물질로서 신체는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의 해체, 탈계층 화를 통해 ‘유연한 안무’로 연결된다. 메테 잉바르첸의 <69 Position>에서 물질로 존재하는 신체를 통해 역사적으로 재생산되어온 모든 억압된 규범과 왜곡된 신체의 이미지를 드러 낸다. 또한, 웨이드의 ‘Future Clinic for Critical Care’ 프로젝트에서 퀴어의 신체적 이미지 는 해러웨이가 제시한 잡종 유기체, 즉 사이보그로 존재한다. 이는 가부장제의 바깥에 존 재하는 신체들, 이들은 기존의 성별이나 계층, 인종 등으로 구분된 신체가 아닌 새로운 이 름이 필요한 신체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신체는 물질로서 뿐 아니라 특정한 상황과 맥락에서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 롭게 구성하는 주체로서도 기능한다. 무용수 주체에 대한 재탐색은 현재의 시간과 장소에 서 늘 새롭게 창조되는 춤에 대한 시각을 제시한다. 웨이드는 특정한 정체성의 본질주의적 인 접근은 예술에서의 어떤 가능성도 만들지 못한다고 강조했으며, 이는 컨템퍼러리 댄스 에서 주체를 중심으로 안무의 형식을 고안하는 것과 더불어 그동안 억압되어왔던 신체를 창조적 잠재력의 장소로 고려하는 것이다.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신체와 신체를 둘러싼 상황에 관한 문제의식은 기존 춤의 매커니 즘에서 벗어난 새로운 창조로 이어진다. 웨이드가 제안한 ‘탈지향(disorientation)’의 안무 방식은 기존 춤의 포지션에서 벗어나 퍼포머의 성격, 젠더, 감정, 신체적 특성에 따른 움직 임으로 조직되고 재구조화되는 과정을 생산한다. 이것은 정해진 방향과 틀이 없으므로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퀴어 이론가 사라 아므헤드(Sara Ahmed))가 말하듯 “방향 상실의 신 체적인 감정은 불확실한 것이고, 그것은 그가 머무른 곳에서 신뢰의 감각을 산산히 부수는 것이다. 버티기 위한 행동을 하게하고, 비평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61)
일상에서 느끼는 이러한 상실의 감각은 신체적인 형태를 구성할 뿐 아니라 사회적 형태 와도 관계가 있다. 잉바르첸이 제안한 ‘부드러운 안무’는 관객에 따라 실패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 욕망, 반응, 대화를 만들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둔다. <69 Position>에서 관객과 퍼포머는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공연이 이루어진다.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고 가까운 거리에서 나체로 행위를 하는 것은 퍼포머의 상태를 취약하게 함으로써 주위의 공간을 더 확장시킬 수 있다. 웨이드는 <Glory>에서 나체로 무대에 섰을 때, “모든 것이 포기되고, 모든 것들에 항복한다. 친밀감, 취약성, 불안정성은 주이상스(Jouissance)와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으로 오히려 공간이 초 자연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62) 이러한 누디티는 공연 에서 누구와도 근접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속하는 경험을 하고, 취약한 상태로 존재 하는 것으로 이는 오히려 공간을 확장시키는 전략이 된다. 이는 퀴어적 접근에서의 ‘무한 대적 친밀감’이며 무용에서 서로의 신체가 감각적, 정서적, 정신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 ‘초근접성의 안무’로 설명될 수 있다.
2. 안무의 사회적 연결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이론이자 ‘운동’으로 고려된다. 여성이 처한 현실의 문제와 생존 을 위한 투쟁은 페미니즘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컨템퍼러 리 댄스에서 무용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의 문제를 담고 있으며, 실증적인 방식으로 탐구되고 구현된다는 입장과 맞닿아있다. 신체는 무대 위와 동시에 일상의 삶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현실에 처한 신체적 체험과 수행은 춤이 실제의 문제에 접근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된다.
제레미 웨이드는 페미니즘에서 시도되었던 제도 비평이 여성 뿐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 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기회를 주었다고 강조했다.63) ‘Future Clinic for Critical Care’에서 구성원들의 경험과 시각은 사회, 문화, 정치적 영역에 실제의 문제들을 예술의 내부에서 다루며, 이는 예술 작업의 결과물로 생산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출연하는 장애인, 유색인종, 퀴어, 여성의 교차적인 정체성을 지니는 참여자들은 페미니즘에서 문제로 제기 되었던 내부에서의 차별과 폭력에 대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차이’를 통한 연대의 가능 성을 제시한 페미니즘의 교차성을 드러낸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이들의 다중적인 서사를 재현하고, 각 신체가 지니는 한계와 취약성에서 발생하는 춤을 통해 사회의 규범과 정상성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안무인 동시에 사회적인 실천이다.
또한, 안무는 사회적 연결을 시도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나아가 사회의 문제 해결을 시도하 기 위한 수행으로 고려된다. 이는 안무가들이 춤, 움직임, 그리고 신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미와 상징들이 역사적으로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는 안무의 재연 방식으로 연결된다. 잉바르첸의 <69 Position>에서 역사적으로 공연에서 섹슈얼리티와 누디 티가 재연되는 방식을 연구하며 신체와 성행위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욕망, 규범 등 공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이는 섹슈얼리티와 누디티가 성적인 해방과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정치적 입장에서, 또한 민간 자본과 국가와의 동맹을 통해 개인의 섹슈얼리티에 미치는 영향 등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컨템퍼러리 안무에서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한다는 것은 사회의 이슈를 안무작업의 주제 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행위에서 작동하는 권력과 폭력의 관계를 발견하고 이를 구조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용의 역사에서 신체, 춤, 안무는 저항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공적인 장소에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해 왔다. 웨이드의 프로젝트가 극장을 벗어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극장은 특정한 계층이 모이고, 예술의 규범화된 프레임 으로 이루어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찾고 발굴하는 것은 춤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생하는 공간성을 염두에 둔 안무의 방식으로 연결된다.
함께 모여서 ‘공동’의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협업’은 예술에서 노동의 방식을 재고하는 것이며, 힘과 제도의 논리가 아닌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재분배하는 공동의 생산방식 을 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웨이드의 프로젝트에서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다층적인 경 험과 관점은 작업의 주요 내용이 되며, 이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문제들을 다양한 경험들을 포용하는 하나의 미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FCCC’에 참여자들은 협업을 통해 서로 불안정하고 취약한 주체들의 상호의존을 통한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서로 모두 다른 상태로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이 참여하는 공연의 형태는 기존의 극장식의 무대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다른 형식을 제 안한다.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종종 소개되는 실험적인 안무와 다매체적인 방법론의 사용은 단지 장르나 매체적 결합을 목적에 두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예술의 사회적 연결, 그리고 역사 와 제도 비평을 통한 공연예술의 새로운 용어의 제안 등으로 발생한다. 컨템퍼러리 예술의 경향에서 신체와 주체, 행위와 춤에 관한 페미니즘적인 관점은 단지 여성 주체에 의한 춤 의 생산이나 형식적 제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춤의 미학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 인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안무는 작업에 참여하는 개별 주체의 실천으로 구성되는 것이 며, 규범화된 예술에서 벗어난 새로운 예술의 미학적, 정치적인 제안을 통해 예술가의 사 회적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