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20세기 말을 향해가면서 춤 예술은 그 어느 시기 이상으로 다각적인 예술성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하나의 틀로 고정하거나 특정한 말로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다양하게 펼 쳐지고 있는 춤 예술은 바로 이 시대의 단면을 투영한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 적으로 복잡다양한 면모를 보이는 최근의 춤 예술을 컨템포러리댄스로 구체화할 수 있다. 낭만발레, 고전발레, 현대발레 그리고 현대무용과 포스트모던댄스로의 변용을 거친 예술춤 은 1980년대 이래로 서유럽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향을 발생시키기 이르렀는데 바로 컨템 포러리댄스다. ‘동시대의 춤’으로 해석 가능한 컨템포러리댄스는 전통적인 예술춤 혹은 기 존의 예술춤과는 차별화된 현재 진행 중인 창작춤을 의미한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세계적 으로 가장 주도적인 춤 예술로서 자리잡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프랑스 누벨바그와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인 누벨당스의 상관성을 연구 하는데 있다. 세계적인 무용 경향으로 자리매김한 컨템포러리댄스는 현재 우리나라 무용 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무용창작 현장에서의 활용도에 비해 컨템포 러리댄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으며 특히 컨템포러리댄스의 초기 생 성에 있어 누벨바그와 누벨당스의 상관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데 본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컨템포러리댄스의 초기 형태에 대한 심층적 인 인식을 도모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컨템포러리댄스의 이후 흐름에 대한 연계된 연구 에도 근간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와 누벨당스의 용어 혼용에 대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새 로운 무용사조가 등장할 초기에는 그 사조의 명칭이 미처 확립되기도 전이므로 새로운 무 용이나 앞서가는 무용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 20세기 초 독일식 현대무용을 노이에르탄 츠, 20세기 중후반에 포스트모던댄스를 아방가르드댄스, 1980년대 컨템포러리댄스를 누벨 당스로 불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는 고유명사로 남기도 하지만 일부는 사조 명칭에 흡수되곤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누벨당스는 1980년대 프랑스에서 확립된 초기 컨템포러 리댄스라는 시기적, 장소적, 성향적 특질을 지닌다.
본 연구의 논의를 위해, 우선 컨템포러리댄스의 초기 생성에 영향을 미친 주요 무용사조 와 철학으로 포스트모던댄스와 해체주의를 언급하며, 20세기 중엽 프랑스 누벨바그의 개 념과 특질에 대해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의 예술적 특질이 누벨바그 의 어떠한 요소와 연관되어 발현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당시 상당히 혁신적이고 그러 므로 난해하게 느껴졌던 컨템포러리댄스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본 연구 주제와 관련된 선행연구로는 「컨템포러리댄스에 나타난 포스트모던댄스의 미적 특성과 기능」(2012), 「해학적 해석을 통한 한국 컨템포러리댄스의 발전 방향 연구」(2015), 「컨템포러리 무용에 나타난 해체주의 경향 연구」(2007) 등의 학위논문과 「포스트모더니즘 의 이해와 컨템포러리댄스의 특징적 경향에 관한 연구」(2012), 「컨템포러리 무용에 나타 나는 해체현상」(2007), 「프랑스 현대무용의 시성과 시각성의 공헌」(1998), 「유럽 현대무용 의 미학적 변이와 표현형식 연구」(2010) 등의 학술논문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 누벨바그와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인 누벨당스의 상관성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부재하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구방법은 서적과 논문 등 문헌연구를 중심으로 관련 기사, 홈페이지, 백과사전, 동영 상 자료, 이미지 자료 같은 디지털콘텐츠를 포함하여 연구를 진척시킨다. 연구범위는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인 누벨당스가 누벨바그와 어떠한 상관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조사로 한정 되어 있다. 누벨바그와 누벨당스의 개념이나 성향 중에서 서로 연관성과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요소들을 도출하여 논의를 진척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확립된 누벨바그는 1950~60년대 가시적인 변화를 이루어낸 영화에 초점을 맞추며 누벨당 스의 경우 프랑스의 1980년대에 두드러지게 진행되었음을 고려하여 논의를 진행한다는 제 한점과 함께,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증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상관성 연구로 귀결하며 차후 연구에서 논의를 확대 및 심화시켜서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II. 이론적 배경: 컨템포러리댄스에 영향을 준 무용사조와 철학
오늘날 서유럽 컨템포러리댄스의 공연형태는 예술의 경계를 초월한 혼합된 창작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문화와 타 예술과의 만남, 융합, 수용을 통해 형성된 외형 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다. 서유럽 컨템포러리댄스의 주요한 특질로는 우선 역사적으로 참 조할만한 춤 혹은 규범적으로 따라야하는 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을 사로잡 은 춤은 발레나 현대무용이 아닌 동시대의(혹은 약간 앞선) 실험성 강한 미국의 포스트모 던댄스였다. 이를테면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우연성, 스티브 팩스턴(Steve Paxton)의 접촉즉흥, 로라 던(Laura Dean)과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의 미니멀댄스 등 포스트모던댄스의 수용과 확장으로 자신의 자유와 창조정신을 강화해 나갔다. ‘반무용 (anti-dance)’을 지향하는 안무가들은 고정된 춤형식과 획일화된 테크닉을 탈피하여 춤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허상을 깨부수는 작업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안무가들은 춤에 음악, 연극, 멀티미디어를 혼성하여 예술적 경계를 허물어갔 으며 독특한 시각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대중성을 확보하였다. 타 예술 분야에 무용으로 전향한 안무가도 다수 등장하게 된다. 이는 포스트모던댄스의 특질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 통하는 부분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도의 전문화로 인한 소통불가능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다른 분야와 교류하면서 다양한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였으며, 작품의 각 요소들 간의 독립성을 인정하여 이를 대등한 관계로 연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 부각시 키는 포스트모던댄스의 특질과도 연결될 수 있다.1)
포스트모던댄스의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활동은 1960~80년대로 한정되지만 그 실험적 인 정신은 이후 등장하는 무용가들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미쳐서 다양한 창조성을 발산하 도록 이끌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컨템포러리댄스가 기존의 무용미학과 고정관념에 대해 불복종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그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새로운 방식의 움직임 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스티브 팩스턴의 접촉즉흥 원리는 포스트모던댄스 무용가들뿐 아 니라 컨템포러리댄스 무용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컨템포러리댄스의 상호적 다양성을 촉진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포스트모던댄스 는 그 당시 문학과 예술을 지배했던 사조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춤적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논할 때 자크 데리다(Jarque Derida)의 해체주의2)를 언급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었던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해체주 의는 서구 형이상학의 뿌리 깊은 전통인 이분법적인 사유에 대항하여 전통적인 권위적 위 계질서를 역전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위계적인 관계 자체를 해체시키려고 하였다. 닫힌 세 계를 거부하고 열린 세계를 추구하는 철학이론이기도 한 데리다의 해체이론에는 차연, 흔 적, 대리보충, 상호텍스트성, 산종 등 많은 전략적 개념들3)이 내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된 철학적, 미학적 근간인 해체주의는 컨템포러리댄스에도 강한 영 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4) 이러한 해체주의는 포스트모던댄스를 거쳐 컨템포러리 댄스에 이르러 장르 간 혼합, 움직임의 변형과 왜곡, 구성의 다양화, 관객과 공연자의 수평 적 관계 형성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러한 특질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상호보완적으 로 작용하여 새로운 장르, 형식, 해석, 의미를 생성하기에 이르렀다.
컨템포러러댄스에 대한 논의에 앞서 영향을 준 무용사조와 철학에 대한 배경 설명은 기 존 양식에 대한 불복종, 타 분야와의 융복합, (접촉)즉흥의 활용 등과 같은 컨템포러리댄스 의 특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본다. 본 논문의 초점이 컨템포러리댄스에 영향을 미친 무용사조와 철학은 아니므로 이론적 배경으로 간략하게 다루었다.
Ⅲ. 프랑스 누벨바그와 누벨당스의 개념과 특질
프랑스에서는 1968년 5월 혁명(혹은 운동) 이래로 사회 체제와 문화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드골 정부 시절, 학생과 근로자들이 연합하여 벌인 대규모 사회 변혁 운동으로 서, 사회와 교육의 모순과 관료사회에서의 인간 소외 등을 비판하였다. 프랑스 사회 체제, 문화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혁명으로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뿐 아니라 언어, 행동, 사고 등에 있어 예술가의 창작 작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예술가들의 창작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금지하는 것조차 금지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문화예술계 전반에 확산시켰던 것이다.5)
이 저항의 시기에 문화, 예술적 변화를 누벨바그라고 불렀다. ‘새로운 물결(New Wave)’ 이라는 뜻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62년쯤 절정에 이 르렀다. 특히 영화분야에서 가시화되었는데 침체에 허덕이던 프랑스 영화산업에 대한 거 침없는 비평을 쏟아내면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였다. 기성 영화에 대해 반기를 든 20~30 대 젊은 영화감독들은 신선한 발상, 다양한 표현양식, 기술상의 혁신을 추구하였다.
영화의 탄생은 19세기 후반에 사진을 연속적으로 찍은 방법이 탐구되면서 예고되었다. 1891년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과 윌리엄 딕슨(Willam K. L. Dickson)이 ‘키네토 스코프’를 발명하였으며 1895년 뤼미에르 형제(Les frères Lumière)가 ‘시네마토그라프’를 개발한 후 세계 최초의 대중적인 영화인 <기차의 도착>을 상영하면서부터 시작했다6)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프랑스는 영화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였다. 1920년대에 이성보다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면서 충격적인 표현 효과를 통해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려 고 했던 초현실주의 역시 프랑스에서 주도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 빈곤, TV 보급 등과 함께 미국의 영화가 물밀듯이 들어오자 프랑스 영화는 침체일로에 들어서게 된다.7) 이러한 상황에서 누벨바그는 젊은 영화인을 중심으로 기성 영화의 방식에 대해 반 기를 들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끈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누벨바그를 추구한 영화인들은 기존의 고착되어가던 장르의 규칙을 타파하고 영화적 관 습을 깨뜨리면서 작가 개인의 영화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영화인들은 저마다 각각의 접근 방식과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질들을 내비추고 있다. 첫째, 인물은 당돌하고 비전통적이며 대체로 감상을 배제하여 다룬다. 둘째, 구성은 느슨하고 사실적이 며 혁신적이다. 셋째, 소형 촬영기와 경량 장비를 사용하여 우연적이고 사실적인 영상과 음향을 얻어낸다. 넷째, 현지 촬영과 야외 촬영을 선호한다. 다섯째, 생략 편집을 활용하여 이미지들의 연관, 이미지와 음향, 그리고 매체 자체에 대한 주의를 상기시킨다. 여섯째, 영 화적 공간과 시간에 관해 실험한다. 일곱째, 초창기 영화들에 대한 암시를 통해 전통의 지 속과 단절을 짚어내고 특정 작품이 품고 있는 영화적 자의식에 관해 언급하며 특정 감독이 나 영화에 경의(오마주8))를 표한다. 여덟째, 인간과 우주의 부조리함에 대한 실존주의적 감각을 갖고 있다. 아홉째, 즉흥적인 연출을 활용한다. 물론, 이런 공통점과 함께 예술가들 간에 상이점도 명료하다. 낭만적 경향의 트뤼포, 정치적 급진주의 성향의 고다르, 레네의 구조주의적 실험, 로메르의 도덕적인 감수성, 리베트 영화의 연극성, 루이 말의 절충주의적 성향 등이 그것이다.9)
영화를 중심으로 가시화된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예술적 물결은 초기 컨템포러리댄스 형 태인 누벨당스(Nouvelle Danse)와도 유의미한 상관성을 띤다.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요소 도 있으리라 본다. 누벨당스는 198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유럽에 나타난 새로운 ‘젊은 춤(Jeune Danse)’으로서 안무적 혁신뿐 아니라 시청각적 장치, 의상, 음악과 소리 등의 전 반적인 연출에 있어서도 기존의 무용예술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춤으로 일컬어지는 누벨당스는 198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확립된 새로운 미 학의 현대무용 경향을 말한다. 새로운 경향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무용가들은 춤추는 몸을 소유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창조할 수 있는 예술적 영역을 그려나갔다.”10) 컨템포러리댄스의 초기 형태로서 오늘날 서유럽의 동시대적인 창작춤의 정체성을 확립하 게 만든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컨템포러리댄스의 성장과 확산에 있어 프랑스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컨템 포러리댄스의 초기 형태인 누벨당스가 프랑스에서 태동하여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요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누벨당스는 누벨바그와 마찬 가지로 1968년 5월 혁명(혹은 운동)에 영향을 받았는데 마르셀 미쉘과 이자벨 지노 (Marcelle Michel & Isabelle Ginot)의 저서 『20세기 무용(La Danse au XXe Siècle)』에서 도 ‘프랑스와 전 세계의 누벨당스(La Nouvelle Danse en France et dans le Monde)’장에 서 1968년 5월 혁명(혹은 운동)11)에 대해 언급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1968년 5월 혁명은 사회 체제와 문화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예술 전 분야에 걸쳐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다.
둘째, 1980년대 무용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주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Francois Mitterrand)은 1981년부터 1995년까지 두 번의 재임기간 동안 전폭적인 문화예술 지원정책을 벌였다.12) 1980년대 초중반에 무용에 대한 재정지원을 4배 정도 증액하였으며 전국적으로 국립안무센터(CCN)를 설립하였다. 누벨당스의 특질 중 하 나로서 탈중앙화13)가 있는데 국립안무센터가 파리를 제외한 지역에 세워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는 1998년에서야 국립무용센터가 설립되었다.
셋째, 바뇰레 안무 콩쿠르를 통해 누벨당스 세대(혹자는 베이비붐이라고 지칭)가 등장하 여 프랑스 무용의 부흥을 가져왔다. 바뇰레 안무 콩쿠르는 1969년 시작되어 1974년부터 프랑스 정부 문화성으로부터 공인되었으며 1980년대 초에 전국 규모의 젊은 창작자의 등 용문으로서 역할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과 인지도를 확립함에 따라 1980년대 말부터 는 세계 각국에 플랫폼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14) 누벨당스의 대표적인 무용가들로 프란 시스 드 꼬닝(Francis de Coninck)의 “80년대 프랑스 누벨당스(Nouvelle Danse Française des années 80)”에서는 마기 마랭(Maguy Marin), 필립 드쿠플레(Philippe Decouflé), 장- 끌로드 갈로타(Jean-Claude Gallotta), 도미니크 바구에(Dominique Bagouet), 브비에-오 바디아 듀오(Joëlle Bouvier and Régis Obadia), 레진 쇼피노(Régine Chopinot)15)를 언급 하며 위키페디아(Wikipedia)의 “프랑스 누벨당스(Nouvelle Danse Française)”에서는 도미 니크 바구에, 클로드 부뤼마숑(Claude Brumachon), 필립 드쿠플레, 장-클로드 갈로타, 다 니엘 라리외(Daniel Larrieu), 앙줄랭 프렐조카주(Angelin Preljocaj)16)를 언급한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면서,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무용예술의 흐름이 서유럽으 로 점차 이동하게 되었다. 주로 신체성을 강조하면서 추상적인 표현 방식을 추구해온 미국 과는 달리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의 무용은 고유한 무용언어를 개 발해갔던 것이다.17) 특히 1980년대에 등장한 프랑스의 새로운 춤이란 의미의 누벨당스는 새로운 무용 미학을 제시함으로써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18)
컨템포러리댄스의 초기 형태로서 누벨당스의 특질에 대해 오선명(2010)은 다음과 같이 논한다.
무대장식의 과감한 사용, 텍스트와 보이스를 활용한 연기, 표현적인 움직임, 미니멀리즘 형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안무 구성에서도 반복 효과, 구조의 해체, 단편화, 음악의 몽타주 사용을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상투적인 장르적 제한에서 벗어나 몸의 무대연출, 성(性)이나 사회의 금기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표현을 지향한다. 또한 클래식의 수용을 거부하며 사회나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표현, 감정 등을 중요시하면서 연극, 시각예술, 서커스 등의 장르를 넘은 융복합을 추구한다. 안무가 내면의 영감의 다양성과 지성화된 작가 경향으 로 방향을 잡아갔다.
프랑스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서유럽 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되어간 컨템포러리댄스의 초 기 형태라는 의미에 누벨당스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발레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생성, 발전되어 서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러시 아에서 고전발레를 환성하였다. 이후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후유증에 허덕이던 서유 럽과 러시아에 비해 미국은 20세기 들어 전 세계 정세에서 엄청난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하 였다. 이에 현대무용과 포스트모던댄스까지 새로운 무용사조에 있어서 주도권을 갖게 되 었다. 1980년대에 미국 경제적 침체로 인해 예술 지원이 대폭 삭감되는 동시에 프랑스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에서 적극적인 예술 지원에 힘입어서 컨템포러리댄스라는 새 로운 무용경향을 정착시켜 갔으며 장르 자체가 지닌 엄청난 수용성(이를테면 다양한 분야 와의 융복합)은 곧 전 세계의 주도적인 무용경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1980년대 초기 컨템포러리댄스를 누벨당스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누벨바그와 누벨당스는 20세기 중후반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새로운 변혁의 추세와 그 맥을 같이 한다. 1968년 5월 혁명(혹은 운동)으로 대표되며 시기적으로 는 그 전후에 새롭게 대두된 변혁을 수용한 것이다. 기존의 방법론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던 여러 분야 예술가들은 ‘누벨(nouvelle)’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니는 ‘새로운’ 예술적 지향을 실현하였다.
Ⅳ. 누벨바그와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인 누벨당스의 상관성 연구
프랑스에서 1980년대 확립된 누벨당스는 누벨바그와의 상관성을 지닌 동시대적인 창작 춤으로서 표현성과 미적 가치 판단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미학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컨 템포러리댄스라고 칭하는 장르를 정착, 확산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누벨바그와 누벨당스의 개념이나 성향 중에서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요소들에 대해서 논의하도록 한다. 누벨바그는 1950~60년대 가시적인 변화를 이룬 영화 에 초점을 맞추며 누벨당스의 경우 1980년대에 두드러지게 진행되었음을 반영하였다.
1. 기존 방법론에 대한 불복종
프랑스 비평가 장 마크 아돌프가 지칭한 이중적 불복종은 자각의 새로운 경향의 의거한 것인데 누벨바그를 거쳐 누벨당스의 특징으로 자리 잡아 갔다.19) 이는 68혁명으로 자연스 럽게 변화 양상으로 ‘금지하는 것조차 금지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와도 그 맥 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저항 시기에 문화, 예술적 변화를 누벨바그라고 하며 특히 영화계 에서는 1962년 오버하우젠 영화 축제에서 알렉산더 클로케(Alexander Kluge)를 중심으로 기성 영화제를 질책하는 ‘오버하우젠 선언’을 하였는데 그 슬로건이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 다’였다.20) 누벨바그의 영향을 받은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인 누벨당스 역시 기존의 방법론, 이를테면 현대무용이나 그 이전에 고전발레에 대한 불복종을 단행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서 움직임을 테크닉으로 주체화하는데 몰두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비전통적인 등장인물이나 스토리의 전개, 느슨하면서도 혁신적인 구성, 우연적이고 사실적인 매체 사용, 생략 편집을 통한 이미지화, 시공간적인 실험, 고전의 재창조나 재구 성, 부조리함에 대한 실존주의적 감각, 즉흥 활용 등을 탐구하고 실현하기도 하였다. 기존 의 방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의도적인 반항인 셈이다.
이러한 특질로 인해, 누벨당스 당시 무용이 아닌 다른 분야를 전공했던 안무가들이 다수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원예학과를 전공했던 다니엘 라리외, 철학과 미학을 공부한 카린 사포르타(Karine Saporta), 미술을 탐구했던 장-끌로드 갈로타, 건축과 미술을 배웠 던 호세 몽딸보(José Montalvo)21) 등은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의 표현 영역을 다양하게 확 장시켰다.
2. 작가로서의 안무가
누벨당스는 무용의 역사보다는 문학, 영화, 비디오, 회화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적지 않은 영향을 준 누벨바그 영화는 감독의 개성있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영화 기법을 지향하는 작가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배우의 영화에서 감독의 영화로 발전시켜 작가의 영화(Cinéma d’auteur) 개념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누벨바그 영화의 개념이 무용에도 영 향을 미쳐서 안무가를 작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성던 것이다.22) 이는 작가의 안무 (Chorégraphie d’auteur) 개념으로 정착되어, 안무가들은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 기억, 심 리 등을 연구하는 시성(Poétique)을 추구하기도 하였다.23)
뿐만 아니라 다양한 표현 방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움직임의 연극이라는 개념을 확립 하기도 하였다. 이는 미국 현대무용이 신체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이 는데, 무용수 위주의 작품에서 안무가의 작품 세계가 구축되어 무용 작가로서 위상이 구축 된 것이다. 1968년 시작된 바뇰레 무용경연대회는 신체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가치 인식을 하는 젊은 안무가를 지원하는 산파 역할을 하였다. 조직위원장인 노리나 니콜라스는 ‘작가 로서의 안무가’를 지향하는 무용정책을 수립하여 일관성 있게 실천하였다.24)
1980년대 누벨당스에 대해 소개한 프란시스 드 꼬닝의 “80년대 프랑스 누벨당스”에서 도 춤추는 몸을 소유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창조할 수 있는 예술적 영역을 그려나 간 무용수들과 작가-안무가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작가-안무가(chorégraphe-auteur(e))’25)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3. 시각예술의 도입
시인 버나드 노엘(Bernard Noel)은 1971년 『신호의 장소』라는 저서에서 ‘현대의 근본적 인 문제는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의 발명으로 시각이 변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각이 변 화하였다는 데 있다’고 하면서 ‘이 변화에 맞게 모든 것이 변화하여야 한다. 그 변화는 우 리가 무엇이 변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행된다’26)고 한다. 이는 당시 프랑스 무용을 축약해주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누벨당스는 무용을 시각성이 강한 예술의 관점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혁신적 이다. 무용의 전통적인 방식보다는 문학, 영화, 비디오, 회화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영화와 회화 등의 시각예술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시각예술적 도입의 한 방식으로 무대미술, 무대장치, 소도구 등이 작품의 주요한 구성으로 작용하면서 안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를 테면 무대 디자인이나 조명의 컨셉에서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차원적인 구성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27) 이는 20세기 말의 영상문화 시대에 변화한 감각을 갖고 있는 동시대의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28)
뿐만 아니라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수용하여 연출적인 폭을 넓히기도 하며 극장이 가지 는 시공간적인 제한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가시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누벨당스는 표 현 방식에 있어 다양함을 특징으로 한다.
4. 몽타주 혹은 콜라주 기법
누벨당스는 작품 구성 자체에서도 누벨바그 영화의 인상적인 편집방식인 몽타주 혹은 콜라주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무용은 다른 예술의 새로운 변화 에 상대적으로 둔감했지만 1980년대 들어 누벨바그의 중심이었던 영화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두드러진 변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는 영상 편집기법인 몽타주나 콜라주의 활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컨템포러리댄스에서는 내러티브를 해채한 채 몽타주나 콜라주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어로 ‘조립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몽타주(montage)는 각각의 장면을 적절하게 이 어 붙여서 스토리가 있는 하나의 내용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분리되고 분할된 의 미 조각들을 전체로 이어 중심된 주제를 유추하게끔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콜라주는 서사 적인 연결을 배제하며 이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갖가지 이미지들을 산재시켜놓고 그 전체적인 연쇄반응을 유도한다. 캔버스에 인쇄물이나 헝겊 등을 붙여 만드는 '콜라주 (collage)'를 연상시키면 된다. 피나 바우쉬(Pina Bausch)는 가장 명료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콜라주기법을 활용하는 무용가다. 이렇게 내러티브가 해체된 채 몽타주나 콜라주를 활용 하는 작품들의 경우 이미지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기보다 작품 전체를 관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29)
5. 즉흥 활용
누벨바그 영화들은 기존의 영화 공정과정이 가지고 있던 특징인 ‘사전에 미리 해놓는 준비’라는 과정을 최소화하고 촬영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생성되는 이미지들에 초점을 두 는 것이었다. 감독들은 배우들에게 시나리오 없는 즉흥 연기를 시키거나 자신이 좋게 봤던 영화를 패러디하기도 했다.30)
누벨바그 영화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감독은 <네 멋대 로 해라>는 작품에서 시간 생략과 행위 축의 위반은 기존의 관습을 와해시키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두 장면 사이에 연속성의 상실을 유발하면서 매끄러운 전개를 단절하는 점프 컷을 시도하는 한편 핸드 헬드 기법으로 인물의 행위를 따라가고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상 황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이와 함께 두서없고 반복적인 대사, 인과 관계적인 연결성이 떨 어지는 행위 같은 누벨바그의 특질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기존의 표현 방법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실험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31)
이는 누벨당스에 이르러서 즉흥적 움직임이나 연출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원래 무용에서 즉흥은 직관적인 창작으로, 실행과 창조를 융합시켜서 사전 계획 없이 동작을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적인 검열없이 잠재의식의 흐름을 개방하는 방법으로 즉각적 이고 동시적인 개발력, 창조성, 실행 등을 가능케 한다. 원래는 안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초 단계로 학습되곤 했는데 누벨당스에 이르러 주요하게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특 히 즉흥의 한 영역인 접촉즉흥32)은 현재 컨템포러리댄스의 안무에 있어서 가장 주도적으 로 활용되고 있다. 접촉즉흥은 컨템포러리댄스 무용가들에게 다양한 움직임 실험의 기회 를 제공하면서 창작의 폭을 확장시켰다. 실제로 수많은 안무가들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 건 이러한 접촉즉흥의 장점을 수용해갔다. 즉흥적 연출 역시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전개를 통해 해프닝적인 변수를 수용하곤 했다. 이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위에 영화에서처럼 무용 에서도 안무가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취하곤 한다.
6. 댄스필름의 활성화
1980년대 프랑스 누벨당스가 영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영역으로는 댄스필름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정책 중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영화 육성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이러한 문화적인 분위기에서 영화는 영역을 넓혀 무용과 작업을 하 기도 하며 무용은 표현 매체의 확장을 찾아 영화감독과 공동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영화와 무용의 결합은 댄스필름 혹은 비디오댄스라는 분야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1995 년 프랑스의 현대 미술관 뽕빠두 센터에서 공식적으로 비디오댄스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공모전을 펼쳤다. 영화 혹은 비디오와 무용의 결합이나 융복합은 영상매체에 춤을 담아내 는 방식뿐 아니라 무대 공연에서 영상을 활용하는 방법에도 많은 발전을 기져왔다.33) 실제 로 컨템포러리댄스 무용가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댄스필름용 작품을 제작하곤 하는데 피나 바우쉬, 빔 반데키부스(Wim Vandekeybus), 로이드 뉴슨(Lloyd Newson), 필립 드쿠플레 등이 그러하다. 더 나아가 무대 위에 공연보다는 댄스필름에 집중하는 무용가들도 생겨났 으며 자연스럽게 댄스필름이라는 독립된 분야가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미국, 호주, 유럽의 여러 나라, 한국에 이르기까지 댄스필름 축제들이 속속 생겨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7. 관객의 비판적 관조와 사유
누벨바그 영화는 줄거리보다는 표현에 중점을 두고 현실과 카메라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중시하여 즉흥 연출, 장면의 비약적 전개, 완결되지 않은 스토리, 영상의 감각적인 표현 등을 통해 기존의 영화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34) 이러한 누벨바그 영화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관객의 시각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펼쳐진 것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부조리한 결말을 비판적으로 관조하고 사유하도록 이끄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혁적이고 급진적인 컨템포러리댄스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각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다. 기존의 춤이 치밀하게 조립된 완성품을 전달했다고 한다면 컨템포러리댄스 는 작품을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들을 산재시켜 나열한다. 무용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일 괄적인 의미를 제시하지 않으므로, 관객들이 소위 '정답'을 찾아내려고 분투하면 할수록 더 욱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따라서 컨템포러리댄스는 관객 나름의 방식대로 작품을 받아들 이도록 요구한다. 이는 관객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관객에게 무대 위에서 펼쳐 진 현상들을 임의조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보다 능동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 스스로 무언가를 자각하도록 유도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35)
이와 같이 볼 때, 누벨바그와 초기 컨템포러리댄스인 누벨당스의 상관성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분류가 도출된다. 첫째, 시대적, 개념적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으로 기존 방법론에 대한 불복종과 작가로서의 안무가 개념을 들 수 있다. 둘째, 시각예술의 도입, 몽타주 혹은 콜라주 기법, 즉흥 활용 등에서 연출 기법의 상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누벨바그 영화에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역은 아무래도 댄스필름이다. 넷째, 비판 적 감상 태도를 유도하거나 선호한 점에서도 누벨바그와 누벨당스의 상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Ⅴ. 결론
‘새로운 물결(New Wave)’이라는 뜻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62년쯤 절정에 이르렀다. 특히 영화분야에서 가시화되었는데 침체에 허덕이던 프랑스 영화산업에 대한 거침없는 비평을 쏟아내면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였다. 기성 영 화에 대해 반기를 든 20~30대 젊은 영화감독들은 신선한 발상, 다양한 표현양식, 기술상 의 혁신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예술적 물결은 누벨당스(Nouvelle Danse)와도 유의미한 상관성을 띤다.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요소도 있으리라 본다. 누벨 당스는 198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유럽에 나타난 새로운 ‘젊은 춤(Jeune Danse)’으로 서 안무적 혁신뿐 아니라 시청각적 장치, 의상, 음악과 소리 등의 전반적인 연출에 있어서 도 기존의 무용예술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누벨당스는 컨템포러리댄 스의 초기 형태로서 오늘날 서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동시대적인 창작춤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만든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누벨바그와 누벨당스의 개념이나 성향 중에서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파 악되는 요소들에 대해서 기존 방법론에 대한 불복종, 작가로서의 안무가, 시각예술의 도입, 몽타주 혹은 콜라주 기법, 즉흥 활용, 댄스필름의 활성화, 관객의 비판적 관조와 사유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여 연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시대적, 개념적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으로 기존 방법론에 대한 불복종 과 작가로서의 안무가 개념을 들 수 있다. 둘째, 시각예술의 도입, 몽타주 혹은 콜라주 기 법, 즉흥 활용 등에서 연출 기법의 상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누벨바그 영화에서 가 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역은 아무래도 댄스필름이다. 넷째, 비판적 감상 태도를 유도 하거나 선호한 점에서도 누벨바그와 누벨당스의 상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누벨바그와 누벨당스의 상관성 연구는 그 시대의 특수한 예술적 공감대를 설명 하는데 유용한 논의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컨템포러리댄스처럼 분야 간 융복합을 특징으 로 하는 장르의 경우 다른 예술 분야와의 연관관계를 논하는 연구는 의미를 지닌다. 다만, 누벨당스 뿐 아니라 모든 무용경향에서 본질적인 요소인 몸성과 움직임의 경우에는 무용 만의 고유한 특질로서 영화 분야와의 상관성을 논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독립적인 후속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컨템포러리댄스의 초기 형태 인 누벨당스에 대한 심층적인 인식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