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우리 춤의 뿌리를 붙들고 무궁 창성에 앞장섰던 전통춤 계승자, 추악하고 해로운 액운을 제치고 새로운 세상 문을 열어 이로운 기운을 불러들였던 시국춤 창안자, 그가 시대의 춤 꾼 이애주1)이다. 옛 전통과 시대적 창안을 오가며 무한히도 개전되었던 그의 춤 세계는 세기에 부응하여 신명의 날개를 활짝 펴고 민족의 춤으로 거듭났다. 가락에 흥과 멋을 얹 어 신명에 거듭난 춤으로 불태웠고, 그 자태는 궁극에 달하여 예술로 승화되었다. 그 춤새 가 혼돈에 처한 시국에 올라앉으니 그 또한 민주화를 울부짖는 바람맞이춤으로 승화되었 다. 전통춤 계승자로 그리고 민중의 희로애락을 풀어낸 시대의 바람맞이 춤꾼으로 우뚝 선 그가 우리 시대를 풍미한 이애주이다.
본 글은 학술적 이론을 내 세우거나 특정 논지를 쟁점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2022년 5월 세 번에 걸쳐 개최된 춤꾼 이애주 추모행사2)에 참여하며, 상기한 그의 전통 춤 계승 가치, 그가 시대적으로 창안한 창작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춤의 생명철학을 사회 적 시각과 사상적 관점에서 살핀 것이다. 이러한 작업 이면에는 오늘날 한계에 도달한 한 국춤의 기능적, 형태적, 예술미학적 접근을 뛰어넘어 사회와 정치 그리고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되고 응용되는 우리 춤의 본질 및 존재 가치를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학 적 예술 현상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움직임의 목표가 삶의 생명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첫째 이애주 전통춤의 「승무」, 「살풀이춤」, 「태평춤」을 예증 삼아 그의 춤 생애 그리고 그의 전통춤 세계관을 살펴 볼 것이다. 둘째, 이애주 창작 춤 「땅끝」, 「나눔굿 밥」, 「도라지꽃」 등 세 개 작품에서 드러난 기획 의도, 춤판 현장, 이면 에 담긴 이애주 춤의 생명관에 대해 논할 것이다. 세 개의 작품에는 겉 치장을 요하는 미학 적 춤이 아닌 내면의 정신세계를 아우르는 이른바 영혼이 살아 숨쉬는 춤, 공동체 정신을 살리는 춤, 민중의 아픔을 품어 내는 치유의 춤 사상과 사회적 시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전통춤과 창작춤을 넘나들며 표명하고자 했던 이애주 춤의 본성과 의미를 탐색하고 그 속에 담긴 생명철학을 파악하고자 한다.
Ⅱ. 시작하며
1. 이애주의 전통춤 및 계승
여기서는 전통춤 계승자 이애주가 전수한 「승무」, 「살풀이춤」, 「태평춤」 그리고 이애주 춤 맥을 잇고 있는 현재의 계승자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애주가 전승한 여러 전 통춤 중, 「승무」, 「살풀이춤」, 「태평춤」만을 다루는 까닭은 첫째, 한성준-한영숙-이애주가 전승한 여러 전통춤 들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면서 기본적인 춤이라는 점, 둘째, 경기제 대풍류 및 경기 무속음악을 춤 장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셋째, 살풀이춤을 통해 보건 대, 단아하고 우아한 독창적 춤 새로 추어진다는 점(이은주, 1998), 넷째, 전승 계보가 명확 하다는 점 등의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중, 「태평춤」은 이애주 자신이 늘 주장한 바와 같이 태평무의 원 춤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공연에서도 원 춤에는 원 장단을 써야 한다 며 경기도당굿 악사를 대동하여 「태평춤」 공연에 임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애주 전통춤은 춤계에 익히 알려진 충남 홍성출신 한성준(남, 1874-1941) 그리고 그 의 손녀 한영숙(여, 1920-1990)으로 이어져 온 족보 있는 전승계보를 갖고 있다. 한성준은 일찍이 전통연희 무대화와 예술화에 주목하여 이를 성취적으로 이룩해 낸 한국 근대 연희 사의 거목이다. 그의 민족춤 예술화에는 신앙, 놀이, 의례로써 사유된 민중사상과 시대적 철학이 담겨 있어서 민족주의적 사고와 미래를 향한 예술 창달의 미래관을 일깨웠다. 그동 안 버림받고 묻혀 있던 옛 춤을 세상에 펼쳐 보이며 춤 예술 발전을 도모하였기에 그를 한편에서는 춤 문화운동가라고도 한다. 한성준의 춤 무대화 업적 뒷면에는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질을 바탕삼아 이루어진 우리 것 지키기에 대한 투철한 의지가 서려 있다.
한편, 한성준의 「승무」 및 여타 춤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경기도 용인 출신의 명인 김인호(남, 1858-1932)와 연결된다(이병옥, 2022, pp. 1-21). 그 까닭은 명고수 한성준이 광무대(光武臺, 1898에서 1930년까지 서울에 존속했던 전통연희전문극장)에서 김인호 춤 을 전문적으로 반주했고, 김인호가 권번에 나가 춤을 가르칠 때도 동참하여 장단을 잡아 주었다(이병옥, 2018). 명인으로 이름 석 자를 떨친 김인호는 전남 담양 출신 이날치(남, 1820-1892)의 제자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성준은 김인호에게서 많은 춤을 익혔고, 1930년대에 이르러 김인호가 사망한 후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여 김인호가 남긴 춤 을 정립하고 가르치게 된 것이다(이병옥, 2022, 15). 이와는 또 달리, 한성준의 「승무」 등 전통춤은 또한 전북 정읍 세습무 출신의 전계문으로부터 전수되기도 하였다. 전북지역 단 골로서 큰 명성을 얻었던 전계문(남, 1865-?)은 명고수였을 뿐만 아니라 거문고, 가야금, 해금, 해적, 대금 등의 기악과 성악 그리고 춤에도 밝았던 인물이었다(김익두, 2022, 48; 김익두, 전종구, 최동현, 최상화, 1992, 245-247). 이처럼 한성준 춤은 윗대로 올라가면 그 전승 계보가 김인호 그리고 전계문과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 이러한 명인들이 모두 남자였다는 것이고, 또한 음악에 능통한 고수였다는 것이며 그 출신 지역을 호남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정통한 계보를 잇는 이애주는 1947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3남 3녀 중 다섯째로 출 생했다. 그가 출생할 당시, 운니동에는 국립국악원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 이애주 는 일찍이 국악원 활동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애주는 어머니 손을 잡고 국악원 악사 로 활동하다 춤을 가르치고 있던 김보남(남, 1912-1964) 문하에 입문하게 되었다. 한국동 란 때 황해도 사리원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부모는 일찍이 이애주의 춤 길을 열었고, 특히 어머니의 뒷바라지는 헌신적이었다. 어린 이애주가 김보남으로부터 배운 춤은 기본춤을 비롯한 「승무」, 검무, 소고춤, 무고, 민요 가락으로 추어졌던 아리랑, 밀양아리랑, 노들강 변, 양산도, 천안삼거리 및 궁중정재 춘앵전 등이었다. 성장한 이애주는 1965년 서울대 사 범대학 체육교육과에 무용 전공으로 입학하였고, 국립무용단 객원으로 공연 활동에 참여 하기도 하였다. 대학 4학년이던 1968년 문화공보부가 주최한 무용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주의를 놀라게 하였다.
1) 승무
무의미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한없이 채워가며 우리 춤의 미적 세계관을 찰지게 한 춤, 그것이 「승무」이다. 이애주의 스승 한영숙은 13살 때부터 그의 조부 한성준으로부터 춤 학습을 받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춤이 「승무」이다. 한영숙은 나이 18살 되던 해 독자적 발표회를 가질 정도로 춤에 몰두함으로써 일찍이 할아버지의 춤 예술을 활짝 꽃피우게 한 공로자로 각인되었다(양종승, 2019, pp. 27-44). 1946년 조부 한성준이 운영하였던 조선 음악무용연구회를 인수하여 한영숙고전무용연구소로 개칭한 후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 백 회에 달하는 국내외 공연에 참여하였고, 국악예술학교(현 한국전통예술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서라벌예술대학 및 이화여대 강사를 거쳐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조교수를 지냈다. 이후 한영숙은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그리고 1971년 국가무형 문화재 학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승무」는 예술적 법도와 주어진 규범 위에서 춤꾼의 자세와 태도를 가늠케 하는 전통춤 의 백미이다. 불교 의례로 시작되어 절 밖의 탁발승과 사당 춤으로의 전환된 후 교방 기녀 의 흥춤 그리고 무대 예술의 예술적 춤을 거쳐서 오늘날 문화재춤으로 거듭났다. 그리하여 「승무」는 전통춤을 이어가는 계승자가 소화해야 하는 교과서적인 춤이 된 것이다. 민족의 춤을 전승하고 춤꾼으로 명성을 얻게 하는 데에도 늘 「승무」는 기준점을 갖는 수준 높은 춤으로 군림하는 이유이다. 정성을 들여야만 미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춤이 바로 「승 무」이기에 이 춤을 잇는 계승자의 예능적 재주는 절대적이다. 「승무」가 춤꾼의 예술적 법 도와 주어진 규범을 지키며 올바른 자세와 태도를 가늠케 하는 전통춤의 백미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계승자의 명성 또한 「승무」 춤새를 펼쳐 보이는 예능적 솜씨와 재주로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규범의 춤으로 삼아지곤 한다.
정통한 한영숙류 「승무」 계승자 이애주는 한영숙 직계제자 중 가장 앞서 전통성과 예술 성을 인정받은 계승자이다. 이애주 「승무」를 두고 찬연한 음악과 장단으로 꼿꼿하게 춤새 를 이은 명무의 춤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승 한영숙으로부터 이어진 전통춤의 진맛을 자신의 춤 생애에서 아낌없이 펼쳐 보였다. 그렇기에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게 하는 춤의 술법사 이애주가 펼쳤던 「승무」는 우아함, 장엄함, 정중함, 섬세함, 정교함 등이 끊임 없이 풍겨진 전통춤의 진수와 진리를 표명하였다. 그가 떠난 지금의 시간에서도 그의 「승 무」 평가에서는 흥과 멋, 맛과 참이 어우러진 우리춤의 밑거름으로 기억된다.
이애주 「승무」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그의 춤새며 춤을 대하는 태도며 춤의 원리를 다루 는 안목에 대한 깊은 통찰력 때문이다. 춤의 근본과 진리를 앞세워 내면의 미학 세계를 흥과 멋으로 표출한 춤꾼, 우리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수 있도록 내면의 기운을 끌어 올릴 줄 아는 춤꾼, 그가 이애주이다. 「승무」를 통해 평생토록 우리에게 보여줬던 미학과 사유 체계는 이애주가 춤꾼으로서뿐만 아니라 무형유산 전승자의 역할까지도 더불어 책임졌던 교육자로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애주의 장엄한 장삼 사위가 내 품는 기운을 타 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고달픈 정신을 보듬어 준 춤사위, 아픔을 달랜 북 가락, 이애주 「승무」에서 우러난 혼신의 예술이다.
2) 「살풀이춤」
굿에서 살풀이 의례를 주관하는 무당은 악가무를 동반하여 ‘풀이’ 행위를 구체화하는데, 그 중심에 상징적 춤 행위가 기능한다. 따라서 살을 푸는 의례로서의 ‘풀이 행위’는 종교적 목적의 신앙이지만 그 형식의 춤을 미적 표현예술로 탈바꿈한 것이 「살풀이춤」이다. 따라 서 춤예술로써의 「살풀이춤」은 민중의 정서를 안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당대의 수준 있 는 춤꾼과 만남으로써 새롭게 태동한 시대적인 민족의 춤이다. 그래서 살풀이는 무당의 종교 신앙의례로 삼는 것이지만, 「살풀이춤」은 춤꾼의 미적 표현 행위예술로 논의된다(양 종승, 2019). 그리고 「살풀이춤」은 순발력을 기반으로 즉흥성이 자유자재로 구사될 수 있 는 춤이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흩뜨리게 추는 춤이 아니라 정해진 규범 속에서의 융통성을 갖는 춤이다.
이애주 「살풀이춤」은 의례(살풀이)에서 예술(「살풀이춤」)로의 전환 속에서 시대적인 민 중의 감정과 정서를 감싸 안고 구축된 뿌리 깊은 전통춤이다. 재인청, 신청, 권번, 어정판 등에서 내 뒹굴던 의례춤이 무형문화재 명성으로 흥과 멋을 껴안은 예술춤로 거듭났다. 억제와 절제로 한없이 피어오른 내면의 기운을 들어 올려 긴장과 이완을 자극하며 정중동 의 미를 극대화하는 문화재춤으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이애주의 한영숙류 「살풀 이춤」에는 전통적으로 대물림 된 기교가 곳곳에 살아 숨 쉰다. 스승이 그랬듯이, 이애주 역시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함과 깔끔함을 앞세워 정갈한「살풀이춤」으로 우리의 정신세계 를 움직인다. 단아하고 우아함에 집중하여 춤사위 하나하나의 의미 표출에 방점을 찍는 것이기에 분장술, 조명술, 의상술 등의 형식적 겉치레는 중요치 않은 이애주의 「살풀이춤」 이다. 춤의 원리와 본질을 꿰뚫어서 그 속에 담긴 심미적 기운을 드러내는 데보다 무게를 두기에 그의 「살풀이춤」은 각별하다.
3) 「태평춤」
위엄을 드높이는 당당한 기상으로 춤새를 엮어내는 이애주의 「태평춤」은 음양 화합을 중시하며 상생과 화합, 공존과 공생의 어울림을 묘사한다. 춤새 하나하나에 시화연풍의 희 망찬 꿈을 싣고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우리의 몸짓 「태평춤 」이다. 이러한 이애주 「태평춤」은 서울·경기무속 음악을 바탕삼아 화려하고 절제된 손놀 림, 묵직하면서도 재빠른 발디딤, 정제된 몸 굴림 등으로 무궁한 태극형 춤새를 교묘하게 엮었다 풀었다 하며 곱디고운 자태를 풍기며 신명의 정수를 달린다. 그야말로 전통춤의 예술적 묘미를 펼쳐내는 춤의 향연이 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시작과 끝맺음까지도 단 한 번의 풀어짐이나 멈춤이 없이, 마냥 쪼이고 쪼여 수백 년 곰삭은 맛을 우려내듯 깊은 위세 와 위엄을 떨친다. 이로써 이애주 「태평춤」이 얼마나 삶의 희로애락을 논하고 그 내면의 세계를 트인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자 하는 춤인가를 가늠케 하는 것이다.
이애주 「태평춤」은 경기 도당굿과 맞닿아 있다. 춤새가 그렇고 가락이 그러하며 선율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애주 「태평춤」은 신앙의례로부터 출발한 옛 모습을 가득히 담 고 있다. 20세기 초, 한성준에 의해 나라의 태평성대와 국태민안 그리고 민중의 안과태평 과 부귀영화를 꿈꾸며 작품화된 「태평춤」은 20세기 중엽 한영숙에게로 이어졌고, 다시 그 의 제자 이애주에게 전수돼 새천년 선상에서 거듭났다. 「태평춤」을 오늘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태평무 모체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태평무의 본디 춤인 「태평춤」은 억제와 절제 기법을 억누르고 대소삼 원리를 기본 삼아 밀고 달고 맺고 풀어 춤의 풍미를 더 한다. 끼를 표출하면서도 정도를 지키는 춤꾼의 참 정신을 보여주는 이애주 「태평춤」에는 생명철학이 살아 숨쉬기 때문에 절묘한 가락과 음 률을 춤새 마디마디에 붙여 마치 영기(靈氣) 위에 신선이 노니는 듯 형이상적 춤사위를 품어낸다. 장단이 가락을 내고 그 가락이 춤으로 녹아나므로 절정에 달한 「태평춤」 극치가 참으로 미적 극치를 이룬다. 그러하기에 이애주 「태평춤」은 마치 무녀가 영적 존재를 영접 하는 무아경 세계에 들기 위한 묘술적 몸놀림을 연상케도 한다.
4) 정리
이애주는 전통춤 지킴이로서 소임을 다 했다. 특히 그의 「승무」, 「살풀이춤」, 「태평춤」 은 그의 각별한 전승 철학을 담아 구전심수로 전수하였다. 이애주 춤 사상에서 중요한 것 은 역사성, 집단성, 공유성을 담아낸 문화 속의 진액, 전통이다. 그에게 전통춤은 전승되는 모든 춤의 바탕이었다. 그 개념은 옛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온 옛 춤을 주체적 으로 수용하여 오늘의 시간 선상에서 자신이 이해하고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의 훗날 전개 된 그의 창작춤 모두가 전통춤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었다. 옛 춤이 그대로 전통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춤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그 뼈대와 정신을 올곧이 지켜낼 때 비로소 전통춤이 되는 것임을 익히 깨달았던 이애주였다.
이애주의 전통춤은 마치 영기(靈氣)가 오장육부를 돌고 나와 길고도 먼 강물로 흘러내리 듯 끈끈하고 흐트러짐 없이 이어져 가는 선을 그리고, 묵직하게 곰삭은 춤사위로 표출하였 다. 옹골차게 뭉쳐지는 지숫기, 샘솟듯 솟구치는 돋음새, 음양을 섞어내는 양우선 등은 이 애주가 전통춤에서 품어내는 향연이었다. 이애주 전통춤에서 또 하나의 절대적 생명은 악 (樂)이었다. 춤 생성의 힘이며 기틀이며 이애주 춤 세계를 논하는 뼈대였다. 그러기에 춤에 묻어 우러나오는 삼현육각의 음률은 이애주의 신명적 춤을 더욱 돋구었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춤과 강구연월을 읊는 악이 버무려져 뼈저린 번민과 허덕이는 고통을 제치고 열락의 환희와 기쁨을 찬미했던 이애주 전통춤은 스승 한영숙류에게서 물려받은 것과 자신이 전 통을 기반으로 정립한 것으로 나뉜다. 「승무」, 「본살풀이」, 「살풀이춤」, 「태평춤」, 「태평무」, 「학춤」 등이 전자의 것이고 「본춤」, 「예의춤」, 「바라춤」, 「검무」, 「무극살풀이」, 「오방북놀 이」 등이 후자의 것이다.
이애주는 참 춤꾼의 자세에서 「승무」, 「살풀이춤」, 「태평춤」 정신을 살리기 위해 오랫동 안 공들였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의 기교가 아니라 안으로 다스려지는 내면의 정신을 논리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렸다. 그 결과가 춤꾼 이애주가 구축한 전통춤의 세계관이 요 우주관이다. 이는 오로지 여타의 겨를이나 짬에 대한 셈법에서 자유로운 외길 춤 삶을 묵묵히 걸어온 그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애주는 1996년 스승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리 고 2000년부터는 자신의 「승무」 및 전통춤을 익힌 문화생으로 이수자를 배출하였다. 윤영 옥, 김옥희, 백혜연, 홍성님, 류제신, 김수정, 이금주, 주연희, 안지현, 김경은, 김영희, 육영 임, 변진섭 (악사), 정숙자, 김민지, 옹영신, 권효진, 김연정, 임경희, 김응화, 김미자, 이숙 자 등 22명이 그들이다. 이제 한성준-한영숙-이애주로 이어졌던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는 국가무형문화재춤 전승계보에 입적된 이애주 문하의 이수자들이 이어간다.
2. 생명을 담은 이애주 창작춤
1) 「땅끝」
한국춤 현실에 대한 이애주의 비판의식을 잘 드러낸 이애주의 창작춤 「땅끝」, 「나눔굿 밥」, 「도라지꽃」은 당시 춤계가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풀어 내기 위한 갈망의 몸무림이 었다. 첫 번째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인 1974년, 6월 22일부터 23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진 제1회 이애주 전통춤판 및 창작춤「땅끝」이었다. 낮 3시 30분과 밤 7시 30분 등 총 이틀간 4회 공연은 국악국악원 악사들 반주 음악과 함께 이애주의 스승 한영숙 을 비롯한 동료 정재만, 채희완 그리고 한두레 회원 및 대학 탈꾼 그리고 무용 전공 학생들 이 함께한 성대한 춤판이었다. 1부 전통춤은 <이애주의 춘앵전, 이애주, 정재만의 학무, 한영숙의 살풀이, 채희완 외 7인의 봉산탈춤의 팔목중, 이애주의 미얄춤, 김민기, 장민철, 이애주, 유갑수, 김석만 등의 불교의식춤 그리고 이애주의 「승무」>의 공연이었고, 2부 창 작춤은 「땅끝」으로 막을 올렸다.
20대 중반을 갓 넘긴 이애주가 춤판에서 던진 메시지는 강렬했다.
오늘 이 땅에서 춤을 춘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는 데에 춤꾼의 절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춤 현실은 어떠한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우리 춤이 무의식적 태만과 무사상적 몸짓으로 저급하게 전락했고, 소수인의 독점적 전유물로 고립되어 문화 형태에서 가장 무관심의 대상이 대어 버렸으니 오욕과 슬픔으로 가득 찬 문화 현실 속에서 아무 탈 없이 있다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부끄럽기만 하다. 뜻을 같이한 동료 학우들 과 함께 하는 춤판은 참을 수 없는 아픔의 몸짓이다. 퇴폐와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지는 현존의 춤을 정리키 위해 전통춤을 바탕으로 우리 춤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번 춤판 은 전통문화의 전승 발전이라는 과업 아래 우리 춤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어 우리의 몸짓에 바탕을 두고 오늘의 문제의식을 표출코자 한 것이다. 이에, 오늘의 춤은 절규의 몸부림이 될 것이다.(채희완, 2022b, 2)
이애주의 비판의식은 아픔, 통감, 절규였다. 그것은 우리춤의 본질을 파악하고 전통의 정통성 토대 위에 민족문화의식을 살리기 위한 춤꾼의 몸부림이었다(채희완, 2022b). 민족 예술이 처한 시대적 현실에 대한 뜨거운 비판으로부터 출발한 이애주의 춤에 대한 시대적 인식 그리고 그가 안고 있었던 춤 사상은 마치 1930년대 전통춤 현실을 개탄하며 죽어가 는 조선춤 되살리기에 매달리며 울부짖던 한성준의 문제의식을 되살리는 것 같았다(한성 준, 1937, 57). 당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조선의 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예술 정신을 이어 나가기 위해 분투하였던 한성준의 문화예술 계승 정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오욕 과 비애에 젖은 춤계 현실을 극복하고, 우리 춤의 진리와 도리를 향한 민족춤 회복 추구의 시대적 춤으로 거듭나기 위함이었다. 무의미한 몸짓과 국적 불명의 겉치레 형식에 사로잡 혀 고착화로 치달았던 독점적이며 폭압적 실상을 파헤치고, 얼룩진 과오를 태만함으로 바 라보는 춤계의 나태함을 고발한 문화적 저항이요 예술적 반항의 한 판이었다. 당시 사회 문화 의식에 대한 저항, 분노 그리고 쟁투로 인해 민족춤이 갖는 미의식으로의 전환을 도 모하는 생명성이 꿈틀거리는 참 춤 활동의 선언이기도 하였다. 춤판 구성에서도 첫날 마련 된 고사굿 그리고 매번의 공연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난 제의성과 역동성은 춤꾼과 관객이 소통하여 춤판의 참 의미를 공유하고 현실에 대한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아 갈 희망찬 우리춤 미래를 담론화하였다.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춤을 창출해 내기에 넉넉 한 판이었다. 그러한 춤판 이면에는 춤에 대한 생명철학이 담겨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가 춤을 추게 하는 것이며, 그의 근본은 삶의 활동상(活動相)이고, 이는 결국 생명력을 기반 삼아 자기분출로 이루어지는 생성론적 원리에 의한 것이었다(채 희완, 2022a, 66-73). 또한 이애주 춤판에서는 춤과 미학에 대한 학구열도 부추기는 현실 주의적 춤극의 시도이기도 하였다. 이로써 이애주의 춤 그리고 그가 주창한 춤론은 세간을 시끄럽게 하고도 남았다. 썩은 춤을 끊어버리고 외부로부터 들어온 신무용과의 결별을 선 포하였으며, 우리네 춤 사상을 담아낸 생산적인 우리 춤 실현을 공표하였기에 그렇다. 그 러나 신무용으로 점철된 기성춤계는 침묵하였다. 비평의 목소리 또한 고요했다.
2) 「나눔굿 밥」
춤판이 펼쳐진 지 10년이 지난 1984년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애주는 국립극장 실험 무대에서 <춤패 신>를 창단하여 첫 번째 창작춤판을 펼쳤다. 그것은 겨례 곳곳에 담겨 있 는 신인일체적(神人一切的)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는 터 벌림의 춤판「나눔굿 밥」이었다. 지 향하는 바는 다름 아닌 춤계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모두가 함께 배불 리 먹을 수 있는 밥을 주제로 한 나눔굿을 펼쳐 밥과 떡 그리고 술을 나누어 먹는 공유정신 의 되살림이었다. 불교의식 춤 식당 작법이 이애주 춤판에 등장하면서 또 한 번의 사회 예술적 주제로 승화시켰다. 터를 정화하자 춤판에는 은덕을 베푸는 거대한 괘불이 모셔졌 다. 연등을 띄우고 향을 피어 짓소리 홋소리의 어산으로 바라춤과 나비춤, 팔정도 수행을 다짐하는 타주가 이어지면서 춤판을 고조시켰다. 솥뚜껑, 밥뚜껑, 주걱, 국자, 냄비, 깡통 등의 식기를 두드려 소리를 내자 밥그릇을 향한 아귀다툼의 아수라판이 펼쳐지고 번개 속 불꽃인 듯 밥그릇이 강림하였다. 드디어 고해 속 깨달음이 밥그릇 나눔으로 드러나자 만유 의 밥을 나눠 먹으며 밥 춤판이 전개되었다. 누구나 평등하며 함께할 수 있다는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고 참 정신을 회복하는 춤판이었다. 그리하여 그 속에서 피어오른 평화, 생 명, 상생의 제의 그리고 잔치로 의미를 살리는 것이었다.
3) 「도라지꽃」
다음 해인 1985년 6월 23일부터 24일까지 서울놀이마당에서 <춤패 신>의 두번째 창작 품 「도라지꽃」으로 또 다시 세상을 흔들었다. 일제에 의해 태평양 전쟁에 강제 동원된 조 선 누이들의 가혹하고 잔혹한 인권 짓밟힘을 고발하는 춤판이요, 그들의 원혼을 달래고 생명을 되살리는 치유의 춤판이 전개되었다. 여성 해방과 참인간 해방이라는 주제를 중심 에 놓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춤판을 펼쳤다. 그림, 노래, 문학을 끌어들여 장르 연합이라 는 또 다른 세계로의 춤 형식과 구성 그리고 의미와 역할을 탐색하는 춤의 축전이기도 하 였다. 판을 여는 초입에서는 경건한 의식으로 일본군 강제위안부 징용에 끌려간 원혼을 도깨비로 형상화하여 그려냈다. 첫째 마당의 너울춤과 일 춤으로 민중들의 평화로운 일상 을 그려내고, 둘째 마당의 역사적 질곡으로 빠져든 징용춤, 징병춤, 일본군강제위안부춤으 로 몸부림을 쳤다. 셋째 마당의 억압과 굴레에서는 피나는 고통과 힘든 역경을 깨치고 생 기가 돋는 되 살아 숨쉬는 부활춤을 그려냈다. 해방의 땅, 민족의 터, 민중의 생명력을 살 려내는 춤이었다. 춤이 우리네 가슴속에 맺힌 한과 신명을 드러내는 행동 양식임을 보여주 는 이른바 억눌림에서 일탈하는 해방춤으로 마무리하였다.
4) 정리
주지하다시피, 개화 이후이 한국 춤계는 서구 문화와 함께 서양의 민속춤(folk dance) 및 사교춤, 모던댄스 등의 서양춤이 수입되었다. 1926년 일본의 이시이 바쿠의 신무용도 도입되어져 ‘춤’은 ‘무용’으로 바뀌게 되면서 선진적 예술과 후진적 놀이로 인식되었다(김 영희, 2018, 57) 그리하여 식민주의적 세계관 사상으로 뒤덮인 서양춤 현실을 안고서 외래 춤 수용과 전래춤 거부라는 이원론적 사고에 싸여 있었다. 급기야 기존의 것이 들어온 것 과 충돌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기존의 것은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유럽 풍조의 신무 용이 전통춤을 배척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새로운 무용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존의 틀을 부셔야 한다는 춤계의 패러다임 전환 요구에 따라, 전해져 내려온 춤은 혼돈의 시기 를 맞게 된 것이다. 한국춤계가 받아들인 신무용은 다름 아닌 유럽 무용의 진보적 사상과 형식의 수용이었다. 이는 기존 고전적 발레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독일 무용계로부터 시작된 이른바 중앙유럽무용(central European dance)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한국 춤계에 서 살아남기 위한 전래춤계는 유럽풍 형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적 처지에 몰렸다. 그것 은 사방의 트인 춤에서 서양식 정면을 향한 무대 춤으로, 신앙성을 배경으로 한 춤에서 과학성을 추구하는 춤으로, 삶이 녹아 있는 서민의 춤에서 예술철학을 담는 고급화된 상류 계층의 춤으로, 더불어 공감하는 춤에서 관객 주입식 춤으로, 즉흥성을 갖는 춤에서 정형 화된 춤으로의 탈바꿈 등이었다(양종승, 2014, 9-12). 이러한 현상은 무용계뿐만 아니라 여러 각 분야에서도 외래 문물의 소용돌이 속에 갇히게 되었다.
드디어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한국학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때를 같이하여 전통문화복 원을 위한 주체성 찾기 명분으로 민족춤 회복 운동이 전개되었다. 춤계에서는 선구적으로 예술지상주의적 신무용의 탐미성을 제압하는 몸짓으로 이애주 춤판 땅끝이 서막을 장식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1970년대 초부터 전개된 탈춤부흥운동과 새로운 대동놀이를 위한 신 명풀이 등으로 이어져 우리시대의 판놀이로 확대되었다.(유해정, 1985, 151-173).
1974년 이애주가 내세운 <춤판>은 용어 그 자체만으로도 기존의 패러다임을 파괴하는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우리춤의 민족성과 생명성 그리고 예술의 독 창성을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왕의 외래적 표기 ‘무용’에서 우리 고유 몸짓 ‘춤’으 로의 전환을 선포하며, 올바른 춤 터 닦기를 묵시적으로 선언하였기에 그가 던진 용어 하 나가 춤계를 흔들었다. 춤추기에서의 판은 응어리진 고통과 쓰라림을 쓰다듬고 아픔을 어 루만지기 위한 치유의 공간으로 개념화되었다. 그러하기에 이애주가 펼친 춤판에서는 생 명성을 담보한 이애주 춤 철학의 진수를 드러내고 있었다. 희망찬 밝은 환희가 내리쬔 꽃 밭의 움직임이 피어난 판의 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훗날 이애주 바람맞이 마지막 판에서 피어오른 꽃춤으로 승화되어졌다. 그것은 민중의 자주 그리고 권리 회복의 희망으 로 피어난 새 생명의 꽃이었다(김경은, 2015, 47-96).
1984년 이애주의 「나눔굿 밥」은 열려 있는 춤판, 살아 숨 쉬는 생명의 몸짓, 시대의식을 꿰뚫는 생산적 춤새, 관중과 더불어 놀고 나누는 참 춤 의미를 살리는 춤판이었다(채희완, 2022a, 66-73). 이로써, 아수라 밥 판을 척결하고 생성력 본질을 회복하는 의례와 예술의 복합적 춤판으로 되살아 나게 한 것이다. 그리고 1985년 「도라지꽃」은 생명 되살림을 울 부짖는 멍든 민중 가슴을 쓰다듬기 위한 영혼 살림의 또 다른 이애주의 생명철학을 담은 춤이다. 이렇듯 이애주 춤에서 되살아 난 생명 춤 하나하나에는 전통의 정통으로 녹아든 춤새를 촘촘히 살려내 응집하고 응용하여 실천적 몸놀림이 되게 하였다. 심미적 춤 예술의 극치를 사회적이고 시대적 상황에 맞춰 극적으로 해석하고 풀어낸 삶의 철학이 이애주 해 방춤으로 그려낸 것이어서 주목된다.
Ⅲ. 마치며 - 이애주 춤론과 생명철학
이애주 춤에는 시대 철학이 깃들어 진 우리네 춤 근본이 살아있다. 뿌리 있는 기틀과 원리를 인식하고, 그를 바탕삼아 품어내는 이애주의 춤은 민중의 영혼과 사상을 펼쳐 보이 는 마력과도 같은 춤으로 읽힌다. 섬세하고도 장엄한 춤사위로 환희와 기쁨을 품어내어 이애주만의 춤 맛을 우려내고, 정갈하고 기품 있는 전통의 맛을 살려낸 것이다. 대를 이어 오며 예술적 번뇌와 역경을 이겨내고 이애주 당대에 그 극치를 만끽한 것이다. 춤의 미학 적 형식과 의미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경지에 도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애주의 춤은 예술로서의 가치 뿐만이 아니다. 그 속에 녹아내린 춤의 원리와 사상으로 감 싸워진 생명철학이 함께 동반되어 있다. 이는 춤으로써 신인(神人) 상생과 인인(人人) 화합을 끊임없이 추구하여야 올바른 춤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춤꾼의 내면적 감정을 표출하고 흥과 멋의 극대화를 통해 삶의 평정을 도모하기 위한 삶 속의 예술로 빛내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이 춤꾼 이애주가 평생토록 소망하며 그렸던 이른바 신명을 불러 일으키는 춤,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노는 생명의 춤으로 정착될 수 있다.
이애주의 춤에는 민중의 고뇌와 아픔의 다스림 그리고 인내가 곳곳에 서려 숨 쉰다. 유 장한 여운을 남기는 신명적 흥과 멋도 담겨져 있다. 그것은 오랜 숙련으로 곰삭은 진 맛을 품어낼 수 있는 평생의 춤꾼 이애주가 전통춤을 깨우쳐 몸으로 온존하면 새로운 시대적 창안과 창작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지론을 확립하였기에 그러하다. 춤은 겉치레의 미학적 형식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 그리고 사유가 병립된 시대적 사고, 정서, 감각, 감정을 사회적으로 피력하는 움직임의 논리이기에 그렇다. 「땅끝」, 「나눔굿 밥」, 「도라지 꽃」 등이 그러한 실증적 작품들이다. 이애주는 또한 춤추기의 궁극적 목적은 생명을 담보 하는 것이며, 이를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밝음을 지향하는 수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에는 도(道)를 얹어야 하며, 마음과 정신, 자세와 몸가짐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나가는 일련의 단련과 학습을 강조한다.
이애주가 한밝사상으로 설명하는 춤 기조는 삶의 표현이고 시대의 몸짓이다. 그러기에 그 근원은 움직임의 시작이며, 실천하는 원천은 기(氣)를 들어 올리는 영가무도(詠歌舞蹈) 이다. 이는 움직임의 궁극적 목표가 춤으로 승화되는 것이고 소리로 울려지는 것이기에 오장으로부터 끌어올려 진 내면의 숨이 밖으로 나와 소리로 음성화된 후 다시 몸으로 귀환 하면서 발화되는 움직임 그것이 곧 무형적 현상의 춤인 것이다(김연정, 2022, 89). 내면의 정신적 기(氣)가 외면의 움직임에 접목되어 무위자연적 경지로 치솟게 되면 정신과 소리와 몸짓이 한데 묶여 황홀경의 세계로 들어가 삼라만상의 무궁한 기운을 돋우어 낸다. 도법의 가락과 도술의 춤이 곧 영적 세계로 접어들게 하는 소리이며 움직임 그 자체이다. 이는 이애주 춤론이 지향하는 무위자연의 춤, 음양 합일의 춤, 생명 살림의 춤을 말하는 움직임 의 진실이며 근본이다. 이와같은 영가무도의 근본이 한국 고유 사상인 한 사상과 음양오행 을 깔고 있는 한민족의 밝은춤이다(임재해, 2022, 32). 그리고 춤의 진리와 원리를 집약한 이와같은 한밝춤은 한민족의 이상세계인 한밟사상에 기반한다. 이는 태곳적부터 우리 겨 레가 숭배해 온 태양숭배사상으로써 대(大·太), 크다, 하나[一〕, 정(正), 시(始), 원(元), 최 (最), 극(極), 영(永), 장(長), 광(廣), 중(衆), 다(多), 제(諸) 등으로 풀이되는 ‘한’과 광명 및 태양을 뜻하는 ‘밝’이 합쳐진 한민족 대일광명 세계이다(이종익, 2001). 이와같은 사상 을 몸에 실어서 읊조리다 소리하고, 꿈틀거리다 뛰고, 춤추다 놀아나는 어울림의 총화가 곧 한밝춤이다. 이러한 사상에 기반한 정신적 사유와 육체적 율동이 진정한 춤예술로 승화 될 때 생명철학의 극치를 내보이게 된다.
이애주 춤론에서 주목되는 것은 근원 탐구이다. 이것의 애초 모습은 굿이다. 그래서 춤 의 근원이 굿 속에 있다고 본 이애주는 경기도당굿에 몰두하여 이를 몸소 전수하며 구조적 실기와 이론 탐구에 몰두하였다. 한민족 악가무극의 옛 모본을 찾아 거슬러 무속으로 들어 간 이애주가 우리 춤의 원초적 모습을 갖춘 굿 형식에 천착하여 오랜 시간 학습하며 연구 하였던 까닭은 우리춤이 신앙의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굿은 영적 존재인 신령의 베품 과 문화적 존재인 인간의 누림을 목적으로 의식화되는 악가무극적 신앙의례이다. 이때 춤 은 반드시 추게 되며, 그것은 손 놀림, 발 디딤, 몸 굴림의 삼 화합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 이애주의 모든 춤이 신앙의례춤의 기본적 틀에서 이루어지는 들이석배 내리석배로서 세 번의 내 딛음과 세 번의 물러 디딤으로 행해지는 삼진삼퇴 디딤판 도형의 신앙의례의 그것 이다. 이때의 삼진퇴법(三進退法)의 삼(三)은 시작, 완성, 안정, 조화, 변화, 무한, 무진, 재 생, 반복 등을 상징하는 민족 삼신신앙의 기둥이다. 환인, 환웅, 단군왕검으로 모셔지는 세 분의 삼신이 하늘, 땅, 사람 등 천지인 사상을 앞세워 우리 역사문화 속에 존속되어 있다 (양종승, 2015, 12-14). 역사적 그리고 신앙적 의미를 담아 움직이는 발 디딤은 땅을 밟고 구르는 반복적 굴신의 답지저앙(踏地低仰)을 부추긴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 삼아 땅을 밟 고 솟구치며 내면의 기운을 끌어 올렸던 이애주는 끝없는 자신의 춤 생애를 헌신하며 한민 족 춤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손과 발의 협력, 협동, 협심으로 몸과 사지를 움직여서 수족상응(手足相應)의 춤새를 벌렸다. 이는 태극사위에 엮어진 너울 질로 엎어지듯 제치듯 파도를 출렁거리며 만물을 동적 세계로 몰아쳐 만물을 생성케 하는 에너지원 태극상이 조성되는 의미를 담아 냈다(채희완, 2020). 그의 실천적 움직임은 춤 이론가 채희완이 확립한 춤 구조론과 형태론에 근거하여 움직임 속의 자연성, 즉흥성, 함 축성, 역동성, 신명성, 창조성을 몸소 깨달아 터득하였다(이애주, 2004, 22-24). 이러한 원 리를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움직이는 몸짓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觀)이 열린 춤꾼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김연정, 2022, 87).
이애주 춤론은 동양사상과도 합치된다. 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 움직임인데, 그 까 닭은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자연순환(自然巡還)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춘생하장 (春生夏長), 추수동장(秋收冬藏), 봄에 나서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추수하고 겨울에 갈무 리하는 자연적 순환은 하늘의 법칙이며, 이를 어기면 천하의 기강을 세울 수가 없는 논리 를 갖게 될 뿐이다. 이와같은 이애주의 춤 원리에는 신라 대학자 최치원이 설한 접화군생 (接化群生), 즉 뭇 생명의 만남으로 변하는 이치와 같은 것으로 변화, 진화, 감화하는 춤의 접화군생적 의미가 담겨 있다(채희완, 2022a, 66). 춤의 조화와 통일의 음양오행(陰陽五 行), 끝맺음은 새로움 시작의 종즉유시(終則有始),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 등에서 나타내 보이는 화합성, 통일성, 영속성 등의 춤 원리 또한 주역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이애주 춤은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살아 숨 쉬지 않거나 생명에 반하는 헛된 움직임에는 동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이애주의 춤과 소리와 가락 모두에는 생명의 움직임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원리는 자연적 법칙에 의한 영적 현상으로부터 기인한 다. 즉, 바람은 자연이며 삼라만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바람을 좌우하는 자 연 그리고 그로부터 일어나는 힘은 스스로 움직여 꿈틀거리는 기운이기에 사물의 감각과 느낌의 현상 속에서 주어진 소임을 다 하게 한다. 맞이 또한 영적 존재의 힘에 의한 지극히 물리적 현상이다. 영기(靈氣)로 얻어진 몸짓이 맞이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 은 사고에 의해 표현되는 생명을 가진 움직임 그 자체이다. 그러하기에 춤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 따라서 이애주 바람맞이춤은 영적 존재가 뿜어내는 생산적 기운으로써 스스로 자각을 일으켜 천지 만물의 생명을 일으키는 물리적 현상이며 움직임의 귀결이다. 이와같 은 춤의 생명철학은 어떠한 목적을 두고 행해지는 춤 추기이던지 꼭 존재하여야 하는 움직 임의 근본적 원리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의 문화 중심은 무형유산에 쏠렸다. 무형문화예술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류의 지혜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생명 그리고 사상과 철학 이 담긴 문화의 보고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인류 생명과 역사문화를 일깨우고 살 찌우며 계승 발전되어 춤 문화는 인류 삶의 핵심이며 무형유산의 정수이다. 그래서 그 가 치는 남다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의 춤 문화는 이애주의 춤론과 생명철학에서 설파한바, 자연과 더불어 이어져 온 삶 그 자체의 움직임이다. 막연한 움직임으로 춤을 설명하는 것 이라 우리의 삶 속에 담겨져 있는 환희와 희열, 아픔과 고통이 함께 우러나는 춤, 그것이 곧 생명을 담론화하는 춤의 철학이고 예술 미학이라는 것이다. 무한히 무형적이며 사상적 이고 또한 이념적이고 사유적일지라도 예술 미학의 관점에서 논할 수 있는 춤의 생명철학 이다. 이것이 응집돼 예술 미학의 극치를 이루며 무형유산의 결정체로써 그리고 총체로서 역할 하게 된다. 이제 현대사회의 새 문화 창조에 큰 틀로 역할 하게 되었고, 그 선상에 춤꾼 이애주의 춤이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제 이애주가 계승하고 창작한 춤 그리고 그의 춤론과 그 속에 담긴 생명철학은 더없이 한국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춤은 은유적 사유를 근거로 문화예술의 시대적 변화를 이끌며 미학적 창조를 선도하는 신명 풀이의 몸짓이다. 시대적 이념을 담은 삶으로 그리고 살아 숨 쉬는 실천적 움직임으 로 우리네 정신, 생각,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를 표방한다. 춤꾼 이애주는 그러므로, 살아 숨 쉬는 공동체 사상을 달구면서 창세에서 오늘에 이르도록 춤의 본성과 본질을 시대적 담론으로 정착게 한 춤꾼이다. 그의 춤은 정치적 전제, 사회적 고난, 경제적 궁핍, 문화적 혼란, 예술적 무엄(無嚴)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중의 불림으로 그리고 윤택한 사회와 매끈 한 삶을 담보하는 완명(頑命) 속에 정주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세 상 밖으로 드러낸 신명의 춤사위, 생명이 깃든 감흥 세계의 향연, 그것이 춤꾼 이애주가 춤의 본질과 원리를 꿰뚫어 세상 밖으로 내보인 춤 의미와 가치이다. 그리고 그의 몸짓은 그가 내세운 판을 통해 활짝 꽃 피어짐으로써 세기의 주역으로 승화되었다.
춤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관(內觀)으로 추어지는 깨달음의 몸짓이라는 지론 또한 이애주 의 거시적 안목으로 설파된 춤에 대한 이해력이다. 그러하기에 춤추기에는, 이른바 악에서 선으로의 개심, 거짓에서 참으로의 회개, 어두움에서 밝음으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생명 살림 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는 그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애주는 우리 춤과 철학으로 사회적 구원을 외쳤던 시대의 춤꾼이었다. 그래서 평생 우리 춤의 뿌리를 붙들고 무궁 창성에 앞장섰던 전통춤 계승자, 추악하고 해로운 액운을 제치고 새로운 세상 문을 열어 이로운 기운을 불러들였던 시국춤 창시자 이애주는 타고난 생득적 자질로 면면한 학습 과 심미적 재능의 삼위일체를 곧게 갖추어 세기의 춤꾼으로 우뚝 섰다(양종승,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