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본 연구의 목적은 질 들뢰즈(G. Deleuze, 1925~1995)의 ‘차이(différence)’ 개념을 바탕 으로 순헌무용단의 작품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2021)를 분석해 한국 창작 춤을 철학 적으로 설명하는 관점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시대 춤의 양상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고 있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여전히 한국적 정체성의 고찰과 다양한 표현방식 개발에 관한 고 민들을 여러 모습의 작품들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최근 동시대적 감각을 표현하는 다양한 한국 창작 춤 중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를 통해 탈경계의 시대적 요청 속에서 어떻게 한국적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적으로 창작작업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볼 것이다. 또한 ‘예술에서 차이의 창조를 추구하면서 일상의 자유를 도입할 수 있 다’(Deleuze 1968, 375)는 들뢰즈의 사유를 바탕으로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을 분석 함으로써 한국 창작 춤을 철학적으로 독해 가능함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이에 본 연구는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 나타나는 ‘죽음을 통해 가능해지는 삶 의 긍정성’을 들뢰즈의 타나토스(Thanatos)로 상정되는 무한히 열린 절대적인 차이 개념에 근거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들뢰즈는 플라톤(Plato)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동일성에 관 한 사유방식에 반하는 제3의 새로운 시간성을 통해 차이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들뢰즈는 주체의 존재에 분열을 일으켜 끊임없이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시간성을 강조한다. 이는 통상적인 시간과 구별되며 과거와 미래로 무한히 분할되는 생성의 시간이 자 타나토스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1) 또한 들뢰즈에게 차이는 이성의 질서에 벗어나 어떤 관계성도 없이 모든 개체가 매 순간 힘들의 연결접속에 따라 변신의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본질적으로 긍정의 대상, 긍정 자체”이다(한국프랑스철학회 2015, 361). 특히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생성을 포착할 수 있는 차이의 현현은 예술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나며, 예술 작품 안에서 이 호명 불가능한 신체를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들뢰즈의 죽음 과 연결되는 차이 개념을 바탕으로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 나타나는 바다라는 장소는 죽음이 아닌 생명력이며 삶의 용기 그 자체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한 연구의 구성 및 방법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들뢰즈의 ‘차이’ 개념을 이해 하기 위해 니체(F. W. Nietzsche)의 영원회귀 사유를 가로지르는 그의 ‘차이와 반복’에 관 한 관점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들뢰즈의 차이가 발현되는 신체의 ‘되기(becoming)’ 과 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2장에서 살펴본 들뢰즈의 차이, 반복, 죽음, 되기의 개념을 논거로 삼아 3장에서는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 나타난 작품의 이야기 구조, 움직임, 음악, 소도구, 무대연출 등 무용예술 요소를 내재적 관점으로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긍정 성을 되살려주는 죽음과 생성의 경계로서 ‘바다’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죽음을 관통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새로 쓰는 들뢰즈의 차이 개념과 춤의 접점을 논의하여 인문학적 사유의 공간으로서 춤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먼저 들뢰즈의 차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영원회귀, 반복, 기관 없는 신체, 되기 등의 키워드를 중점적으로 살피는 문헌연구를 할 것이다. 들뢰즈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차 이와 반복 Difference et Repetition』(1968)과 가타리(F. Guattari)와 함께 쓴 『천개의 고원 Mille plateaux』(1980) 등을 중심으로 그의 철학적 사유를 고찰하고, 논문 및 논평들을 참 조하고자 한다. 연구대상인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는 실제 공연감상을 한 경험과 영 상물을 통해 분석할 것이다.
본 연구의 선행연구로는 연구자의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의 코러스 활용에 나타 난 컨버전스적 특성 연구”를 들 수 있다. 또한 발레 「심청」에 관한 연구만 진행되었고, 「심 청전」을 소재로 삼은 한국 춤에 관한 논의는 간행물(정옥희 2005, 배금연 2020, 제임스전, 양승하 2012)에서만 리뷰 형식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 본 연구는 필요성을 가진다.
Ⅱ. 들뢰즈 철학에서 차이의 의미
1. 차이와 죽음의 긍정성
들뢰즈의 차이 개념은 그의 시간에 관한 관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삶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선형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들뢰즈는 이같이 인식하는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로 설명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현재는 흘러서 과 거가 되고 경험 이전의 상태는 미래가 되기에, 현재만이 늘 존재하게 된다(Deleuze 1969, 279). 즉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은 현재를 척도로 삼기에 우리가 실재적으로 경험하는 시간 은 현재인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는 현재라는 절대적 기준을 제거하고 경험의 시간인 현재, 경험 불가능한 과거, 무한히 열린 미래를 향한 시간을 제안하는데, 이는 일직선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 의 시간과 구별된다. 들뢰즈의 시간은 미래와 과거로 나뉘어 순간의 현재만이 존재하고, 그때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Deleuze 1969, 96). ‘순간의 현재’로서 미래를 향해 있는 들뢰 즈의 시간은 ‘아이온(Ion)’이다. 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잠재적 영역의 시간이므로, 여기 에서는 절대적 본질이나 규정은 소거되고 우연의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즉 아이온의 시간은 현재라는 상식(doxa)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탈피해 과거와 미래로 무한히 분할하며 언제나 자기임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새롭게 열며 더 분할 가능한 순간으로 이끌어 나가는 아이온의 시간에 서는 고정 불가능한 유목적 공간이 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들뢰즈는 무근거성을 지니 는 이 시공간에서 반복에 의한 무한한 차이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차이는 반복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복은 똑같은 것을 되풀 이하지 않기에 항상 불안정하고 불균형하고 비대칭을 머금고 자아에 균열을 낸다. 이것은 동일성에 의존하지 않는 차이를 포착하면서 되돌아가기 때문에 과거도 현재도 아닌 언제 나 미래와 관련이 된다.
이에 따라 들뢰즈의 차이는 니체의 ‘영원회귀’2)와 같이 반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반복이므로, 무한한 잠재성을 실현하는 장을 발현시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반복 은 차이를 전제하기에 존재 자체를 다양화하는 우연이자 매번 반복하는 영원으로서 긍정 적으로 받아들여진다(Deleuze 1968, 152). 그리고 들뢰즈는 반복으로부터 차이가 생겨나 기 때문에 차이 안의 무한한 차이를 감수하지 않고는 아무런 창조도 이뤄질 수 없다고 생 각한다. 즉 반복은 ‘차이의 반복’이므로 동일한 반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원회귀가 본질적으로 죽음과 관계되는 것은 영원회귀가 하나인 것의 죽음을 단 한 번 촉진하고 또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영원회귀가 본질적으로 미래와 관계되는 것은 미래가, 다양한 것의, 서로 다른 것의, 우연적인 것의, 그 자체들을 위한, 또한 매번의 전개이며 펼침이 기 때문이다(Deleuze 1968, 260).
그러므로 들뢰즈의 관점에서 반복은 어떤 의미에서든 본질적으로 미래와 연관되며, 반 복의 동력이 되는 차이는 ‘다양한 것’ 혹은 ‘우연적인 것’을 매번 생성하는 ‘현재의 모험’이 라 할 수 있다.
특히 들뢰즈는 차이를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으로 구별하며 ‘절대적인 차이’를 중요 하게 여긴다. 이는 헤겔(G. W. F. Hegel)의 변증법에 대한 들뢰즈의 생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헤겔은 인식의 세 가지 단계를 정립(正)-반정립(反)-종합(合)으로 보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부정성을 전제로 한다. 헤겔의 변증법에서는 하나의 정립된 항을 부정하면서 다른 항이 나타나기에 차이를 제시하지만, 결국 이 부정성의 대립적 항들이 관계를 맺으면 서 종합된 새로운 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전체성에 종속시키며 동일한 것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3)
하지만 들뢰즈의 차이의 세계에서는 차이 나는 것들이 부정되지 않는다. 헤겔의 입장에 서 무엇인가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idea)의 전제 아래에서 가 능해지지만, 들뢰즈의 차이는 그 이면의 것이 없이도 생성의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 므로 차이는 상대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는 비관계적이며, ‘존재의 생성에서 차이 자체가 궁극적 단위’임을 알 수 있다(한국프랑스철학회 2015, 360).
차이 나는 것들은 언제나 서로를 긍정하면서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되풀이하며 무 언가를 끊임없이 창조하고자 한다. 들뢰즈는 차이의 반복을 죽음본능인 타나토스와의 관 계 안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차이를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반복은 죽음과 같은 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들뢰즈의 사유에서 죽음은 생이 다한 물리적 신체로 더이상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신체의 죽음이 아닌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죽음을 언급한다. 이는 사회화된 나로서 존재하는 경험 바깥에 있는 차이화된 경 험이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을 발현시킨다. 이때 죽음은 고착화된 현실의 존재 방식을 벗어나 그 자체의 재생산의 원리이자 차이 반복의 원리를 획득한다. 들뢰즈는 영원히 계속되는 차이의 반복이라는 실험을 통해 늘 가장 창조적인 상황을 보여주고자 하 는 것이다.
2. 되기의 존재론
들뢰즈의 차이의 운동은 이데아라는 동일성을 향한 목적론적인 운동에 저항하며 영원히 반복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고 반복의 시간에서 자아는 무한하게 배분되는 차이를 전 제하므로, ‘언어 이전에 이야기하는 말, 조직된 신체보다 앞서 형성되는 몸짓, 얼굴 이전의 가면’ 등 비인칭의 신체로 드러날 수 있다(우노 구니이치 2008, 100). 이에 따라 들뢰즈는 자신의 차이 운동의 실체를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 개념을 토대로 설명하며 삶의 긍정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기관 없는 신체는 강도의 힘에 따른 차이의 운동을 통해 생성될 수 있다. 여기에서 강도 는 강한 힘이 아닌 ‘차이 그 자체’이다. 이에 들뢰즈는 ‘서로 차이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반복되는지에 관한 질문에 힘’이라고 자답하며, ‘무언가의 생성됨’은 힘의 강도 차 이에 의해 가능해진다고 강조한다. 즉 들뢰즈의 신체는 다수적 힘들의 관계에 따라 늘 새 롭게 배치되며 지속적인 변신의 과정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을 그는 ‘도곤 족의 알과 강도의 배분’에 관한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천 개의 고원 Mille plateaux』(1980)에서 도곤 족의 알은 곧 기관 없는 신체라 할 수 있다. 알은 ‘강도=0’인 상태이자 기관들의 역할이 규정되기 이전의 미분 화 상태이다. 이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생성의 강렬함 0의 상태이므로 알에 어 떤 강도가 가해지는지에 따라서 신체의 수행력에 차이나는 각양각색의 분화된 실재(le reel)가 생산된다(Deleuze, Guattari 1987, 294). 즉 기관 없는 신체는 미리 존재하거나 완 전히 만들어진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Deleuze, Guattari 1987, 287).
기관은 문턱을 넘고 기울기를 바꾸면서 변화해간다. 어떤 기관도 기능과 위치와 관련해서 항상적이지 않다. (⋯⋯) 성기는 어디에서나 출현하며, (⋯⋯) 항문은 여기저기서 입을 벌리고 오물을 뱉어내고 다시 닫힌다 (⋯⋯). 10분의 1초마다 조정되면서 유기체 전체가 색과 고름을 바꾼다(Deleuze, Guattari 1987, 294).
기관 없는 신체는 대상의 상태를 나타내는 ‘이다(be)’와 다르게 ‘되다(become)’로 이해 할 수 있다. 이는 자기 동일적 상태로부터 벗어나 무엇과도 접속이 가능한 중간 과정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변재희 2018, 156).’ 따라서 규정 가능한 삶의 한계 너머의 언제나 변 형 가능한 신체의 생명력을 제안하는 것으로 의미화될 수 있다.
‘되기(becoming)’의 과정에 놓인 신체는 다수의 힘들과 매 순간 색다르게 종합되고 동시 에 각각의 힘들이 어떻게 종합되는지에 따라서 그것의 속성도 변화한다. 이에 되기는 정착 이 아닌 유목을 추구하며 계속해서 차이를 바탕으로 지도를 다시 그리는 우발적인 탈영토 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기관 없는 신체가 운동하는 지도는 열려있고 모든 차원들 안에 서 연결접속되므로 시작도 끝도 없이 자기 자신 위에서 진동하고, 정점이나 외부 목적을 향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을 전개하는 강렬함들이 연속되는 지역인 것이다(Deleuze, Guattari 1987, 49). 그래서 되기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실재는 각자의 신체에 잠재된 차이를 계속해서 찾고 새롭게 관계를 맺으며 삶에 존재하는 코드화된 모든 기의(signified) 와 기표(signifier)를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되기는 어느 방향으로든 열려있는 시공간성 안 에서 발현되며, 이를 통해 신체는 삶에 관한 긍정성을 지닌다고 살펴볼 수 있다.
다음 절에서는 예술 활동에서 차이를 통한 ‘되기’의 존재론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보는 들뢰즈의 관점에 따라, 그의 차이 개념을 가로지르고 있는 영원회귀로서의 죽음본능과 되 기의 존재론을 근거로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 나타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바다’의 의미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Ⅲ.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 나타난 들뢰즈의 차이 개념
1. 작품설명
2021년 9월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순헌무용단의 기획공연으로 초연된 「淸, The Blue 바 다를 열다」4)의 대본의 토대가 되는 고전소설 『심청전』의 이야기는 처음 만들어진 후로 무용작품으로도 여러 번 각색이 되었음에도, 이를 모티브로 삼아 작품을 창작한 사례는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작발레 「심청」(1986), 김매 자의 「심청」(2001) 그리고 국립무용단이 김매자의 작품을 재창작해 무대에 올린 「심청」 (2016)은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작품은 효(孝)를 강조점으로 두고 한국 창작발레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으며, 김매자의 작품은 판소리 「심청가」의 완창과 한국춤을 한 무대 위에 동시에 펼쳐 보이며 한국춤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작품을 국립무용단이 2016년 독일 출신의 루카스 헵렙(Lukas Hemleb) 드라마투르그(Dramaturg) 를 참여시키면서 새로운 시각을 더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렸다. 이전의 작품과 다르게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는 심청에게 주인공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하기보다 마을 친구들 중 한 명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즉 고전소설에서 전해 내려오는 효(孝)라는 상징성을 지닌 착한 심청의 모습이 아니라 또래 친구들과 싸우고 고민하고 짜증내는 등 심청의 모습을 일상에서 한 번쯤 지나쳤을 ‘아무나’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녀와 공감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 각자에게 대입해 삶에 관한 긍정의 의지를 전달받도록 만들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는 총 네 장 ‘청의 탄생’, ‘청의 죽음(세상을 마주한 청)’, ‘청의 용궁(바다 속에서)’, ‘청의 환생(천 길 파도 위, 꽃과 나비 춤춘다)’이라는 소제목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작품 안에서 심청이라는 인물이 가진 무게감과 한국춤이 지니는 움직임의 원형을 지키면서도 내용, 움직임, 의상, 소도구 등 무대 요소들이 작품의 중요한 공간적 배경인 바다와 어떻게 관련 맺으며 삶에 대한 긍정의 의지를 발현하는지 장별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차이 개념을 통해 본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 의 분석
1장 ‘청의 탄생’에서는 푸른 바닷가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박씨 부인이 청을 낳고 죽은 이후, 앞이 보이지 않는 심봉사가 홀로 어린 딸을 키워나가는 과정들이 나타난다. 청이 태 어나기 전 군무와 심봉사가 함께 무대 위에서 흰 종이배를 들고 춤을 추는데, 마치 바다에 빠져 죽고 바다로부터 다시 생명을 얻는 청의 운명을 미리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이는 ‘바다’와 가깝게 위치한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작품의 주요 인물인 청이의 탄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푸르른 바다는 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라는 이미지와 연결 지을 수 있어 보인다.
따라서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의 전체적인 배경이 되는 ‘바다’를 작품에서 전달하 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는 의미체로 살펴보고자 한다.
2장 ‘청의 죽음’에서 청은 가난 속에 힘들게 성장하며 16살이 된다. <도판 2>처럼 오른 쪽 장면에서 군무는 주요인물인 청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면서 무대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이때 군무는 1장에서는 청 어머니의 조문객으로 역할을 수행했지 만, 2장에서는 청이를 조롱하고 놀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완전히 다른 성향의 인물로 변 신한다. 그러면서 마임적인 동작과 운율적 소리, 한국적 색채가 녹아 있는 움직임과 음악 등의 요소는 매 장면마다 새롭게 관계를 설정하면서, 한 순간도 고정된 역할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구박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청은 상황 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일상적인 움직임으로 보여준다. 한국 전통춤의 두드러지는 특성인 곡선적 움직임이 상체에서 여전히 드러나고 발디딤 또한 전통춤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던 지지 않았음에도, 여기에 상황과 일치하는 일상적 소도구와 움직임이 청의 솔직한 감정 표현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한국 전통춤의 팔사위, 호 흡, 발디딤, 음악적 선율 등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적 움직임, 주어진 삶을 마냥 순응하 지 않는 청의 감정표현 등과 결합하면서 확정되기 이전의 변형 가능한 들뢰즈 신체처럼 이질적 에너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나타난 청의 이미지는 상대와 어떠한 관계도 맺지 않고 차이 운동을 통해 스스로 삶을 다시 쓰는 들뢰즈의 신체와 닮아 보인다. 들뢰즈의 차이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을 혐오하거나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의 신체에 잠재된 다양 한 힘의 강도를 새롭게 배치하면서 클리셰(cliche)를 무너뜨리기에,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 표출된 청의 이미지는 들뢰즈의 ‘차이를 통한 되기’의 과정 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청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 그리고 자신의 삶에 관한 고민 사이에서 괴로움을 겪는 다. 작품에서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만드는 공양미 삼백석을 상징하는 쌀, 바다를 의미하 는 파란 천, 생의 마감 장소인 배를 표현하는 흰 종이배 등을 무대 하수에 놓고 청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작품에서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chorus)처럼 작용하는 군 무는 가면을 활용해 다양한 움직임을 수행하고 소리를 내뱉는데, 이 군무의 융합적 이미지 와 비장한 클래식 선율의 중첩은 작품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가중시킨다.
이처럼 가면을 쓰고 응집된 연출구도로 서로 움직임을 주고받는 군무는 쳇바퀴 도는 일 상에 얽매여 생의 에너지를 상실하고 자기 동일성적 상태에 존재하는 유기체로 파악할 수 있다.
<도판 4>를 보면 군무들은 누워있는 청을 반원으로 둘러싸고, 그 중 한 명이 종이배에 있는 물을 청의 몸에 떨어뜨리고 있다. 이 장면에서 점차 어두워지며 청이에게 초점이 맞 춰지는 조명, 가면을 들고 위아래로 불균형하게 움직이는 군무들, 점점 빨라지는 음악 속 도 등의 무대 요소들이 중첩되면서 불안정성을 증폭시킨다.
이 순간 군무는 목적 지향적 운동을 반복하는, 즉 남들의 시선에 갇혀 자신의 의지로는 어떤 것도 될 수 없는 순응적 삶을 사는 신체로 탐색된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정착적 존재는 코드화된 삶에 지속적으로 위치하면서 ‘생명력이 소거된 채로 살아 있는 것’이다. 이에 가면을 쓴 군무는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세상을 관망하고, 주변에 모든 것들 을 부정적인 항들과 연결하면서 청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일조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때 청은 부동의 상태가 아닌 떨어지는 물 아래에서 상체 위주로 위 아래로 혹은 좌우로 움직임을 실행하는데, 제한되고 부자연스러운 청의 움직임은 극적인 상황을 더 부 각시켜 준다. 삶의 전체화된 기준을 끊임없이 제거하고자 몸부림치며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선형적 시간성을 탈주하는 듯 보인다. 따라서 삶의 척도를 무너뜨린 청이 마주하게 되는 ‘바다’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다시 살아가는 용기를 되찾는 의미화된 공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본 연구의 강조점이 되는 ‘바다’는 바닷속을 배경으로 하는 3장과 바다로 빠져 죽 음으로부터 다시 생명을 얻어 뭍으로 나온 4장을 통해 더 깊이 고찰할 수 있다. 3장은 청 이 바다로 몸을 던진 이후 용궁에서 지내는 3년 동안 용왕이 가엾게 여겨 은덕을 베풀어서 육지로 올려보낸다는 극적 줄거리를 가진다.
<도판 5>에서 나타난 인형은 청의 물리적 육체라 할 수 있다. 청은 이 자신의 분신인 인형과의 이인무 장면에서 원형의 조명 아래 원으로 회전하는 움직임을 행하는데, 이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들뢰즈의 차이의 운동과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 즉 바다로 뛰어 든 순간 무용수로서 실재하는 청은 보편적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와 일상적 경험 너머에 있 는 차이화된 경험을 토대로 창조적인 자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바다에 빠진 청은 크 로노스의 시간에서 보면 사망이지만,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 바다는 ‘죽음이 아 닌 생명력’이므로 습관으로 둘러싸인 주체로 되돌아가지 않는 호명 불가능한 신체로 볼 수 있다. 작품에서 실행되는 죽음은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아닌 무궁무진한 잠재성 을 담는 들뢰즈의 차이 운동인 것이다. 여기에서 죽음은 생성(=되기), 즉 삶의 긍정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다 안에서 청은 물리적 신체인 자신과 손을 맞잡고 돌고 안고 눈을 마주하면서 과거와도 현재와도 결별하고, 오로지 ‘매 순간 변용 가능성을 지닌 긍정의 대상’이 된다.
4장에서는 용왕의 도움으로 청이 뭍으로 올라가고, 이후에 우연히 송천자를 만나 사랑 을 나누며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청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4장에서 ‘송천자와의 이인무’는 2장의 ‘심봉사와의 이인무’와 비교 가능하다. 심봉 사와의 이인무에서 청은 표상적 영역에 머무른 채 도그마적 사유를 한다. 청은 눈이 먼 아버지에게 효의 마음을 다하도록 임명받은 것처럼 심봉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은 아버지를 위해 바다에 목숨을 내던져야만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괴로움을 동시에 표현하는데, <도판 6>에서 가면 쓴 심봉 사를 보고 놀라는 청의 모습을 통해 본질은 양식이나 상식이 아님을 살펴볼 수 있다. 중요 한 것은 청에게 부여된 효의 수행이 아니라 ‘습관화된 자아’를 지속적으로 분열시키며 매 순간 ‘우연적으로 재생성되는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때 발현되는 자아는 내가 누구인 지 명명된 현실에서 암묵적으로 규정된 역할을 벗어던지고 어떤 것도 실현 가능해지는 들 뢰즈의 비규정적 신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장의 이인무에서 청은 삶의 경계를 넘지 못 하고 여전히 정해진 자리를 맴도는 고착화된 인간으로 보인다.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음을 직면하고 되살아나 뭍으로 나온 청이야말로 비로소 ‘자신을 결락시킨 역설성으로 삶의 긍정성을 획득한 신체’로 살펴볼 수 있다(이규원 2021, 78). 차 수정 예술감독에 따르면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의 바다라는 공간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작품에서 바다는 역설적으로 죽음과 삶을 의미하고 있다. 제목 ‘바다를 열다’는 청 이 바다로 몸을 던지는 것과 <도판 7>처럼 다시 육지로 걸어 나오는 것이 모두 청 스스로 바다를 열어냄으로써 가능해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도판 5>에서 이미 살펴봤듯 청의 죽음은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보면 바다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온의 시간으로 보면 바다를 열고 모든 긍정을 만들어내는 차이 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 죽음은 가장 창의적인 상황을 작동시키는 차이화된 경험으로서 비유기체적 생 명을 현전하게 한다(우노 구이니치 2008, 116).
어떤 유기적 연결고리도 맺지 않는 차이를 통한 죽음은 다채로운 탐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에 청은 인간으로서 두려움의 극치인 죽음에 대적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개체의 독 자적인 긍정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제 2의 삶을 창출하는 죽음의 경험으로 인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을 지각하게 되는 것 이다.
특히 <도판 8>의 오른쪽 이미지에서 무대 양쪽으로 순간 켜지는 조명은 마치 청이 세상 을 새롭게 인식하는 순간을 시각화하고 있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순간은 차이의 반복 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고, 이것은 끊임없이 희망하는 탈기관화된 신체의 체험이므로 모든 인칭성을 삭제해 버린다. 이에 청은 기존의 어떤 개념이나 통상적인 감성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잠재적인 존재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 청은 바다라는 비재현적 시공 간을 통해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진짜 나’로서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희망과 용기 를 획득하고 있다. 그러므로 ‘차이를 통한 반복’이 가장 독창적인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바다로부터 가능해지는 청의 ‘죽음을 통한 새로운 인생’은 역할이 지정되기 이전에 아무나가 될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Ⅳ. 결론
본 연구는 들뢰즈의 차이 개념을 바탕으로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를 분석함으로써 한국 창작 춤을 철학적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하고자 했다. 이에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 나타난 청의 죽음과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바다’라는 상징적 공간을 중심으로 들뢰즈의 차이 개념이 작품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분석하였다.
재현에 대한 비판을 핵심으로 하는 들뢰즈 철학에서 차이 개념은 그의 사유 전반을 가로 지르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의 차이 개념을 아이온의 시간, 영원회귀, 죽음, 반복, 되기 등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고찰함으로써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서 의미화하고 있는 청의 죽음에 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들뢰즈는 상식적으로 사고하는 체계에서 벗어나 삶에 서 항상 어떤 작은 차이를 캐내 매번 다른 수준들 사이에서 반복을 만들어냄으로써 유희하 는 일상을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서동욱 2014, 323). 이처럼 상식을 탈주한 일상 은 비현재적이고 비정형적인 아이온의 시간을 작동시키고, 이 순간의 시간에서 주체는 자 기 안에 잠재된 힘을 늘 새롭게 발산시키는 운동을 되풀이하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되 기의 과정에 배치된다. 그래서 차이 운동을 통해 나타나는 존재는 확정된 주체를 죽이고 언제나 다시 태어나므로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담고 스스로를 새롭게 열어낼 수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들뢰즈의 차이 개념을 근거로 삼아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에 표현된 죽음은 통상적으로 인식하는 의미가 아닌 고착화된 현실의 나를 해체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생성의 힘’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총 4장으로 이뤄진 작품의 장마다 등장하는 청의 움직임과 바다라는 공간의 접속은 차이를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미규정적 되기의 과정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작품에서 청은 한국 전통춤의 곡선적 상체의 움직임과 호흡, 발디딤과 함께 일상적 움직임과 극적 표정 등이 결합하며 주어진 삶은 온 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진취적인 청의 신체 이미지를 표현했다. 특히 청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청을 원으로 둘러싼 하얀 배와 물, 가면을 쓴 군무들의 무대 요소 등이 극적인 분위기를 가중시켰고, 그 아래에 누워있는 청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상체 위주로 움직임을 실행했다. 또한 3장 바다 속에서 청은 자신의 물리적 육체라 할 수 있는 인형과의 이인무를 할 때 원형의 조명 아래서 원으로 회전하는 움직임의 진행은 무한한 차이의 운동과 같은 선상에서 살펴볼수 있었다. 그리고 4장에서 뭍으로 올라와 무대 양쪽 에서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조명에서 이뤄지는 청의 움직임은 ‘자신을 결락시킨 역설로 삶의 긍정성을 획득한 신체’로서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죽음본능을 통해 일상에서 유희를 느끼고 긍정의 힘을 내재하는 들 뢰즈의 차이 운동과 같은 선상에서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를 살펴봤다는 점에서 의미 가 있다. 특히 청의 움직임을 조명, 소도구, 무대공간, 음악 등 다양한 작품요소와의 접속을 바탕으로 어떻게 의미화 되었는지 탐색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와 토대로 본고는 죽음을 통과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다시 생성하는 들뢰즈의 차이 개념과 무용예술의 접점을 살피며 인문학적 사유의 시공간으로서 춤의 확장된 해석의 가 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고전문학의 재해석을 통해 청의 죽음과 바다라는 상징적 장소를 의미화하기 위해 「淸, The Blue 바다를 열다」 작품에서 보여준 무용예술 요소의 연결접속을 통해 한국 창작 춤의 표현의 잠재성을 고찰해 보았다. 이에 본 연구가 향후 여전히 존재하는 엄격한 경계 아래에서 춤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해체하여 다양한 논 의를 이어나가는데 하나의 토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