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장고춤은 장고를 메고 연주하면서 추는 춤을 말한다(양종승 2021, 16). 장고춤의 유래는 요고(腰鼓)나 세요고(細腰鼓)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고분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고분벽화에 는 B.C 6세기경 고구려 고분인 집안현 오호분 4호묘와 5호묘, 둔마리(屯馬里) 고분벽화 등이 있다(고경희, 백현순 2014, 7). 이 중 현행 장고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고분벽화는 12-13세기인 고려시대 경남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에 위치한 ‘천녀상(天女像)’이다. 2022 년 10월 3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거창둔마리벽화고분의 ‘천녀상’은 장고를 메고 손을 들어 연주하면서 춤추는 모습을 뚜렷이 보여준다.
장고춤의 유형은 크게 교방계열과 농악계열, 신무용계열로 구별된다(양종승 2021, 16). 교방계열의 예술은 기방이나 권번에서의 학습으로 이어지게 되고, 농악계열은 각 지역 길 놀이나 판굿에서 나오는 설장구놀이로 전승되었다. 신무용계열 장고춤은 1942년 최승희가 일본에서 첫 선을 보인 장고춤을 효시로 보는데, 기생의 장고춤을 모티브로 삼아 무대예술 로 전환시켜 주목을 받았다(한혜경 2004, 173-179).
그중에서 교방계열의 장고춤은 1918년 발간된 『조선미인보감』에 수록된 기생 김취홍으 로부터 하나의 계보를 찾을 수 있다. 당시 22세였던 김취홍은 평안도 출신이며 대정권번 소속의 기생으로 장고춤을 잘 추었다고 하는데, 대정권번은 1913년 설립된 다동기생조합 에서 1918년 대정권번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만들어졌고 평안도 출신이 가장 많았다고 한 다(고경희, 백현순 2014, 18-19).
십이체(十二體)장고춤은 대표적인 교방계열의 장고춤으로 소개되었다(이은영, 손수현 2018, 34-35). 십이체장고춤은 김취홍으로부터 오천향에게 전수되다가 한혜경(韓惠慶, 1952년생)에 이르러 널리 알려졌다(한혜경 2007). 1915년부터 1917년까지 3년간(『매일 신보』 1915.09.18., 1915.09.22., 1915.09.26., 1915.09.30., 1915.10.06., 1915.10.27., 1916.02.19., 1917.04.07.) 김취홍 관련 기사는 8개가 있다. 이 기사에는 김취홍이 다동조 합에 출연하여 정재를 췄던 종목명과 소송기록, 그리고 재산 상황을 다룬 내용이 있지만, 장고춤과 관련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한혜경은 9세부터 오천향(본명 오정자, 1932년생)의 무용학원에서 십이체장고춤의 장단 과 노래, 춤을 익히다가 14세에 이르러 오천향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전수했음을 증언 한 바 있다. 한혜경에 따르면, 오천향은 자신의 춤과 음악을 “취홍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고 한다(한혜경 2022).
이러한 십이체장고춤의 음악은 「긴난봉가」, 「청춘가」, 「자진한강수타령」이다. 「긴난봉가」 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만들어진 서도민요로서, 느린 굿거리장단과 반수심가토리로 된 곡이다(손인애 2008, 452). 「청춘가」는 원래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이팔청춘가(홀과수타 령)」이었는데, 후대 소년훈계가로 가사 내용이 바뀐다. 이 곡은 반수심가토리에서 진경토리 로 바뀐다(이보형 1996, 131). 「한강수타령」은 1900년대 초 서도음악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로서, 반경토리의 곡이다(손인애 2001, 452). 이 세 곡 가운데 「긴난봉가」는 반수심가토 리인 서도민요로 살아남았고, 「청춘가」는 반수심가토리 또는 반경토리에서 진경토리인 경기 민요로 바뀌었으며, 「한강수타령」은 반수심가토리에서 반경토리인 경기민요로 바뀐 것이다.
장고춤의 다양한 작품과 십이체장고춤이 여러 차례 공연되어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었고 그에 따라 이 춤에 관한 다수의 연구가 있었다. 이러한 연구 성과에는 십이체장고춤 음악인 「긴난봉가」, 「청춘가」, 「한강수타령」에 대한 연구도 포함된다. 장고춤에 대한 연구자로는 전은자(2002), 한혜경(2021), 고경희, 백현순(2014), 이은영, 손수현(2018) 등이 있고, 십이체 장고춤과 관련한 경서도 민요음악에 대한 연구자로는 「이팔청춘가」를 연구한 이보형(1996), 「한강수타령」을 연구한 손인애(2001), 「긴난봉가」를 연구한 김락기(2014), 오복녀와 박기종의 서도소리를 비교한 한채연(2017),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산염불」, 「자진염불」을 비교 연구한 주민지(2019)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십이체장고춤의 역사와 유형, 전개과정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십이체장고춤 음악인 「긴난봉가」, 「청춘가」, 「한강수타령」의 선율과 장단 구조를 이해하는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이체장고춤 음악이 형성된 배경은 무엇인지, 선율과 장단의 구조 는 무엇이고, 춤과 음악은 전수과정에서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이러한 춤 음악의 선정 배경과 구조 및 상관성을 논하는 것은 십이체장고춤의 형 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글은 김취홍류 십이체장고춤의 형성을 이해하기 위해 이 춤 음악의 형성과 선율 및 장단의 구조, 춤과 음악의 상관성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Ⅱ. 십이체장고춤 음악의 형성
십이체장고춤의 음악은 「긴난봉가」, 「청춘가」, 「자진한강수타령」이다. 선행연구를 통해 이 음악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긴난봉가」의 선율과 가사, 장단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힌 연구자로는 손인애(2008), 김락기(2014), 한채연(2017)을 꼽을 수 있다.
손인애(2008)는 소논문에서 「긴난봉가」의 음악적 형성과정과 배경을 다루었다. 저자는 이 곡이 황해도 민요로서 서도소리 중에서 반수심가토리이며, 경기 산타령패 및 평양 날탕 패 출신들에 의해 무대용으로 만든 레퍼토리의 하나였음을 언급하였다. 또한, 저자는 「긴 난봉가」가 사당패 「동풍가」에서 재창출된 서도 신민요로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만 들어졌다고 보았다. 그는 아래 인용문과 같이 「긴난봉가」의 유래에 대해 밝혔다.
손인애는 “그렇다면 이러한 「긴난봉가」는 누구에 의해 어떤 음악적 상황과 배경 속에서 형성된 것일까. 이 소리는 사당패의 「동풍가」에서 유래된 소리이므로, 사당패 계승집단과의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는데, 과연 사당패 계승집단인 경기 산타령패 출신의 박춘재와 평양 날탕패 출신의 문영수에 의해 최초로 음반작업(1911년)이 이루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손인애(2008)는 「동풍가」가 수심가토리이고 20세기 전반기의 옛 「긴난봉가」는 수심가 토리로 만들어졌으며, 20세기 후반기 신제 「긴난봉가」부터 반수심가토리로 변하여 현재의 「긴난봉가」로 전승되어왔다고 결론지었다.
한채연(2017)은 오복녀와 박기종의 서도소리 중 「긴난봉가」를 비교 분석하여 출현음, 박자, 선율을 비교하였다. 비교 결과, 세부적인 음률이나 리듬분할은 조금씩 달라도 주요음 진행은 같았음을 언급하였고, 박기종의 소리가 비교적 빠르고 오복녀의 선율 변화가 더 많았음을 도출하였다.
「청춘가」의 형성과정과 변화를 다룬 대표적인 연구자로는 이보형(1996)을 들 수 있다. 이보형(1996)은 그의 논문에서 현행 「청춘가」의 사설이 1920년대 나온 소년훈계가 「청춘가」 와 일치함을 밝혔다. 그런데 박춘재가 1920년대 이전에 부른 홀과수타령 「이팔청춘가」는 현행 「청춘가」 가사와 달랐다는 것이다. 이보형(1996)은 연정요이자, 반수심가토리로 된 홀과수타령 「이팔청춘가」가 소년훈계가로서 진경토리인 오늘날의 「청춘가」로 바뀌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22년 10월 4일 한국유성기음반에는 『매일신보』 1912년 7월 12일자 일본축음기상회 광고란에 김홍도, 박춘재가 부른 「이팔청춘가」 음반 정보가 수록되어있다. 여기에는 「청춘 가」와 관련된 음반정보가 191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52개나 포함되어있다.
「한강수타령」의 연구자로는 손인애가 있다. 저자는 반수심가토리를 3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A형 반수심가토리는 라-도'-미'-솔'로 된 5음계 구조이고, 미'가 시김새와 요성, 중심 음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두 번째, A'형 반수심가토리는 라-도'-레'-미'-솔'의 5음계이고, 미'가 중심음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B형 반경토리는 레'-파'-솔'-라'-도''로 이루어진 5음계 이고, 라'가 중심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손인애 2001, 147-165). 이 논문에서는 「한강수 타령」이 1900년대 초, 서도음악가들의 영향 아래에서 생성된 노래이며 이 노래를 반수심 가토리가 반경토리화된 대표적인 사례로 보았다(손인애 2001, 157).
1927년 4월 33일자 일축전선가반총목록(日蓄朝鮮歌盤總目錄)에는 류운선(柳雲仙), 박채 선(朴彩仙)이 부른 「한강수타령」이 보인다. 2022년 10월 4일 한국유성기음반에는 1920년 대부터 1930년대까지 총 26종의 음반이 소개되어 있다.
지금까지 십이체장고춤 반주음악으로 구성된 「긴난봉가」, 「청춘가」, 「한강수타령」의 역사 적 형성배경을 고찰한 결과, 이 세 곡 모두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생성되었음을 밝혔다. 「긴난봉가」는 수심가토리에서 반수심가토리로 바뀌었고, 「청춘가」는 반경토리에서 진경토 리로 바뀌었으며, 「한강수타령」은 반수심가토리에서 반경토리화된 곡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주된 이유는 서도민요와 경기민요가 지역적으로 차이를 보이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러 교방에서 기방, 그리고 권번으로 예술 전승의 토대가 바뀜에 따라 서울 중심의 경토리가 점차 서도민요의 변화를 촉진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평안도 기생이었던 김취홍은 19세기 말 출생해서 20세기 초 서울에 위치한 대정권번에 서 활동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바로 그 시기는 「긴난봉가」, 「청춘가」, 「한강수타령」이 형성되는 시기였고, 점차 반서도토리나 반경토리, 또는 진경토리화되는 시기였으며 십이체 장고춤 음악이 형성되는 시기였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Ⅲ. 십이체장고춤 음악의 선율구조
지금까지 선행연구를 통해서 살펴본 십이체장고춤의 「긴난봉가」의 선율구조를 파악하 기 위해 아래와 같이 <도판 1>을 제시할 수 있다.
2022년 10월 4일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긴난봉가」는 구성음이 라-도'-레'-미 '-솔'이고, 음계는 단3도+장2도+장2도+단3도의 5음계 구조이다. 이를 반수심가토리라고 부른다. 음정은 제1음을 기준으로 단3도, 완전4도, 완전5도, 단7도이다. 주요 시김새의 특 징으로는 라가 평으로 내는 음, 제4음인 미'는 중심음과 요성, 솔'에서 미'로 흘러내리는 음, 상행 종지음 미'이다.
수심가토리는 레'-미'-솔'-라'-도''의 구성음이고, 장2도+단3도+장2도+단3도의 5음계로 구성된다. 반수심가토리와 수심가토리의 변별점은 수심가토리 제2음 mi'의 위치가 상향하 여 반음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 레'-파'-솔'-라'-도''로 변하게 되는데, 이를 반수심가토리 라고 한다.
<도판 2>에서 「긴난봉가」의 1절 가사는 “정방산성/ 초목이 무성헌데/밤에나 울닭이/대 낮에 운다”이다. “닭이 대낮에 운다”라는 표현은 바로 가창자 자신이 울고 싶은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장고춤을 추는 춤꾼의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 이러한 가사는 지나간 사랑이나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내고 있다.
<도판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청춘가」의 구성음은 솔-라-도'-레'-미'이고, 음계는 장2 도+단3도+장2도+장2도의 5음계로 이루어진다. 이 노래는 도' 중심음이며, 솔'로 종지하는 진경토리 곡이다. 음정은 제1음으로부터 장2도, 완전4도, 완전5도, 단6도로 이루어진다. 주 요 시김새로는 솔'을 평으로 내고, 제4음인 레'를 떤다. 제3음 미'는 레'로 흘러내린다.
현재 「청춘가」에 담겨있는 가사는 소년훈계가의 성격을 지니는데, ‘청춘의 세월이 덧없 이 지나가 버리니 학문에 힘을 써야 한다’는 교훈을 담으면서 동시에 본인의 지나간 세월 의 아쉬움을 내포한다. 그러하기에 이 곡은 진경토리의 밝고 명랑한 선율과 흘러간 시간의 무상함을 담은 가사가 대비를 이룬다.
<도판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강수타령」은 구성음이 라-도'-레'-미'-솔'로 이루어진 반경토리곡이다. 이 곡은 단3도+장2도+장2도+단3도의 5음계 구조이고, 음정은 제1음인 라로부터 단3도, 완전4도, 완전5도, 단7도로 구성된다. 주요 시김새는 제1음 라가 평음, 제4음 미'는 떠는음, 중심음은 미'이며, 도'는 라로 흘러내리는 음이고 종지음 라로 끝맺는 다. 「자진한강수타령」은 「한강수타령」의 빠르기를 한층 높인 곡인데, 메트로놈으로 ♩.= 70-95의 자진모리장단이다.
십이체장고춤 음악의 가사를 전체적으로 일괄해보면, 슬픈 주제에서 밝은 주제로 전환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긴난봉가」의 가사가 닭의 울음소리를 통해 서글픈 마음을 표현 하고 있고, 「청춘가」의 가사는 지나간 청춘의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자진한강수타령」 에서는 선유놀음의 즐거운 기분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십이체장고춤 음악 세 곡은 「긴난봉가」의 반서도토리에서 「청춘가」의 진경토리, 그리고 「자진한강수타령」의 반경토리로 변화한다. 반서도토리의 슬픈 곡조에서 진경토리의 가볍 고 밝은 곡조로의 이동은 대비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이후에 다시 반경토리로 전환함에 따라 선율의 변화를 가져와 극적인 마무리를 이룬다. 이는 아래 <표 1>과 같이 표로 나타 낼 수 있다.
Ⅳ. 십이체장고춤 음악의 장단구조
십이체장고춤에 나오는 노래는 「긴난봉가」, 「청춘가」, 「자진한강수타령」이다. 「긴난봉 가」는 중모리장단, 「청춘가」는 굿거리장단, 「자진한강수타령」은 자진모리장단이다. 이 세 장단의 구조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도판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긴난봉가」 장단은 빠르기 ♩= 65이고, 12박의 중모리 15장단으로 구성된다. 아래와 같이 「긴난봉가」 중모리 한 장단을 채보하여 제시할 수 있다.
<도판 6>에서 「청춘가」 3소박 4박의 굿거리장단으로 한 박의 빠르기는 ♩.= 40이다. 「청춘가」는 굿거리 28장단으로 이루어진다. 아래와 같이 「청춘가」의 굿거리장단을 제시할 수 있다.
아래의 <도판 7>과 같이, 「자진한강수타령」은 3소박 4박의 자진모리장단으로 속도는 ♩.= 70-95이다. 「자진한강수타령」 자진모리장단은 56장단으로 구성된다.
십이체장고춤 장단의 순서는 중모리에서 시작해서 굿거리로 전개하다가 자진모리로 맺 는 3단계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3단계 구조의 전개과정은 고려시대 전통음악에서 활용되 던 세틀 형식, 삼기형식(三機形式)과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만중삭(慢中數)의 원 리라고 하는데, 만・중・삭의 구조는 아악이나 당악에서는 보이지 않고 고려가요와 같은 향악에서만 발견된다. 그래서 십이체장고춤 장단의 3단계 구조는 전통음악의 만중삭의 개 념과 유사하다. 서로 다른 3곡의 민요선율을 붙여서 속도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는 고 악보에 수록된 악곡과는 또 다른 차별점도 있다.
Ⅴ. 십이체장고춤과 음악의 관련성, 그리고 전수과정
십이체장고춤을 추는 춤꾼은 음악의 선율과 가사, 장단의 속도와 어떤 교감을 갖는가. 이러한 문제는 춤꾼 자신의 음악적 해석에 따라 춤의 멋과 결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십이체장고춤의 음악이 왜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지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그 논의의 일환으로 춤의 전수과정에서 춤과 음악이 어 떻게 학습되어왔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혜경은 지난 면담 과정에서 제기한 ‘음악과 춤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한혜경 2022).
「청춘가」 는 가사는 슬퍼요. 멜로디는 흥겨운데, 가사는 슬픈 가사예요. 가사는 구슬프고, 멜로디는 흥겹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장고춤을 출 때 눈물이 난대. 왜 눈물이 나냐고 했더니, “모르겠어요. 분명히 흥겨운데 눈물이 나요” 이러거든. 이런 영향이 있을 거 같아요.
실향민이고, 평안도에서 내려와서 그 한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기녀가 된 자신의 한도 있을 거 아니에요.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가야 행복하잖아요. 춤이라는 것은 현실을 떠난 어떤 이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의 힘인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애절하게 내 삶의 한이나 그리움이나 서글픔을 담은 심정이 서려 있는 음악들이 차츰 밝아져요. 그래서 「청춘가」 에서는 멜로디에서는 밝지만, 가사에서는 서글픔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자진한강수타령」 으로 넘어가면 훨씬 더 활기차고, 활기찬 것으로 맺으면서 현실을 뛰어넘으면서 유토피아를 생각해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그리면서. 밝은 내일을 바라보는 생동감을 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위 면담내용에는 이 춤사위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동작들이 음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긴난봉가」에서 「청춘가」로 갔다가 「자진한강수타령」으로 가면서 가사와 곡의 분위 기가 한층 더 밝아져 점차 생동감을 가진다는 춤 전승자의 해석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것은 음악과 춤이 어떻게 연관되어 전승됐는지 의 문제이다. 이는 전승의 맥락에서 음원이 존재했는지, 춤 학습과정에서 음악은 어떻게 인지됐는지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답은 십이체장고춤의 형성을 이해하는데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혜경은 이러한 문제에 아래 인용문(한혜경 2022) 과 같은 답을 제공하였다.
면담자: 그러면 배우실 때 오천향 선생님은 음원을 활용하셨나요?
한혜경: 배울(가르칠) 때는 선생님께서 장고를 쳐서 가르치니까. 전 지금도 수업할 때 장고 를 쳐서 가르쳐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쭈욱 갈 때는 음악을 틀어주지만, 가르치거 나 부분 수정해주거나 부분 설명해줄 때는 제 가 다 장고 수업을 해요. 그래서 손에 관절이 온 거야. 뼈는 약한데, 나이는 먹어가는데, 관절 이 다 왔어요. 전 지금도 장고가 없으면 수업을 못 하겠어요.
면담자: 오천향 선생님께 배울 때 공연을 했을 거 아니 에요. 공연할 때 「긴난봉가」, 「청춘가」, 「자진 한강수타령」 음악이 있었나요?
한혜경: 아니에요. 이 십이체장고춤은 따로 선생님 계실 때 공연을 하지 못한 게, 선생님한테 레슨만 받은 거예요...(중략)...그때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란 말이야. 중학교 2학년 때니까 총기가 얼마나 좋을 때예요. 그리고 그전에 해왔던 거고, 그때 선생님 께서 설명을 진짜 하나하나 두 동작 가지고 하루를 보내. 그렇게 가르쳤어요. 여기는 어떤 거. 어떤 느낌. 어떻게 해야 해. 장단은 뭐야 그렇게 하면서 14살 때 거의 일 년 가까이 장고춤을 했어요. 그리고 나는 몰랐는데 선생님이 미국으로 가신 거예요. 가시기 전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부어주시고 가신 거예요. “혜경아 너가 장고춤 지켜라.” 그때는 지키라는 게 무언지 막연한 거지. “네 ~” 대답은 했죠.
춤 전승의 맥락에서 장단과 선율이 함께 전수되었다는 위 면담내용은 십이체장고춤과 음악의 실체를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준다.
Ⅵ. 결 론
이 글은 김취홍류 십이체장고춤의 형성을 이해하기 위해 음악적 형성과 구조를 분석하 고, 춤과 음악의 상관성을 고찰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에서 「긴난봉가」, 「청춘가」, 「자진한강수타령」의 형성배경과 선율, 장단의 구조와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춤과 음악의 상호관련성에 대해 면담자료를 중심으로 논의하 였다. 그 결과, 세 가지 결론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이 글은 「긴난봉가」, 「청춘가」, 「자진한강수타령」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만 들어지거나 경토리화 됐음을 밝혔다. 즉, 그 시기 「긴난봉가」가 만들어져 후대에 반수심가 토리로 바뀌었고, 그 시기 반수심가토리인 「이팔청춘가」가 진경토리인 「청춘가」로 바뀌었 으며, 그 시기 「한강수타령」이 만들어져 후대 반수심가토리에서 반경토리로 바뀐다. 바로 그 시점은 평안도 출신으로 장고를 잘 다뤘던 김취홍이 서울 권번에서 활동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그 시대적 상황은 김취홍의 장고춤과 그러한 음악이 만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여준다.
둘째는 십이체장고춤의 장단이 중모리(♩= 65), 굿거리(♩.= 40), 자진모리(♩.= 70-95) 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려가요 향악의 만중삭의 원리와 통하는데, 이러한 고려시대 장단의 원리가 이 춤의 장단 흐름에 내재해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셋째, 십이체장고춤은 「긴난봉가」, 「청춘가」, 「한강수타령」의 가사 내용, 선율의 곡조, 장단의 속도와 함께 긴밀한 상관성을 갖고 전수되었다는 점이다. 그러하기에, 이 논문의 의의는 이 춤의 음악이 춤의 형성과 전승적 맥락을 강화해주고 있음을 밝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