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Documentation & History

pISSN: 2383-5214 /eISSN: 2733-4279

HOME E-SUBMISSION SITEMAP CONTACT US

Journal Detail

Journal Detail

Export Citation Download PDF PMC Previewer
A Study on the Transmission of Hallyangmu,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of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인물 계승별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의 구조 연구 ×
  • EndNote
  • RefWorks
  • Scholar's Aid
  • BibTeX

Export Citation Cancel

Asian Dance Journal Vol.68 No. pp.57-83
DOI : https://doi.org/10.26861/sddh.2023.68.57

A Study on the Transmission of Hallyangmu,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of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Park, Jihye*
*Gyeonggi-do Dance Company Dancer

* Park Jihye jh99631@naver.com

January 31, 2023 February 28, 2023 March 11, 2023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dance structures of Seoul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Hallyangmu, performed by different successors of the dance. The study utilizes the literature research method to examine the origins and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Hallyangmu by the successors. The research incorporated the personalities and viewpoints of each successor of this dance. The results of the study have been derived from the analysis of the following four aspects: 1) the characteristics of each role played in the dance based on the narrative, 2) the names of each role’s dance movements, 3) the costumes and props used in the dance, and 4) the rhythm structure in music used for the dance. I hope that this study will contribute to re-recognizing the value of Hallyangmu as a traditional dance and further develop Korean traditional dance.



인물 계승별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의 구조 연구

박지혜*
*경기도무용단 수석단원

초록


이 연구는 인물 계승별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의 구조를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문헌연구방법을 적용, 인물 계승별 한량무의 유래를 고찰하였고, 구조적 특징 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인물의 성격과 가치관에 의한 인물별 특색이 더해져 첫째, 서사에 의한 배역별 춤사위 특징, 둘째 배역별 춤사위 명칭, 셋째 복식과 소도구, 넷째 장단구조로 분류하여 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 연구를 통해 서울특별시무형문 화재 한량무의 전통춤으로써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한량무의 기초자료 확대 및 한국 전통춤 발전에 기여되기를 바란다.



    Ⅰ. 서 론

    2014년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閑良舞)가 지정되었다. 한량무는 한국춤의 원형과 전형이 잘 전승・기록된 민속춤 중 하나로 보유자는 조흥동(한량)과 고선아(색시), 보유단체는 한성준류 강선영춤보존회가 인정되어 활동하고 있(서울무형문화재교육전시장 2020). 한량무 는 1900년대 중반부터 극형식의 단체무보다는 독무로 알려지기 시작한 춤이다. 말 그대로 ‘한량의 춤’인 한량무는 남성 무용가가 멋들어지게 추는 ‘선비춤’을 시작으로 남성춤의 대명사 가 된 독무와 4인이 연행하는 단체무로 한국의 근대 극장무용 시조인 한성준에 의해 한량, 색시, 먹중의 삼각관계를 다룬 춤극이자 무언의 풍자극이 있다(윤대성 2021, 9).

    한량무는 정현석(1965)의 교방가요에 근원적 모습이 기록된 이래 개화기 기생들에 의 해 그 맥이 이어졌고, 한성준이 무대공연예술로 선보인 이후 다양한 형태로 현재까지 변 용・전승되고 있다(김호연 2018, 65). 한성준은 일찍이 경기 한량무에 근거를 두고“각 지방 민속 연희에서 전해지는 송파산대놀이와 봉산탈춤을 기초로 만든 춤”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세기 2003, 282), 산대놀이와 봉산탈춤에서 발전된 한량무의 원형은 교방가요의 승무에 서 파생되어 지금의 극형식 한량무로 이어 내려오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량무는 두 가지 형식으로, 무용극 한량무와 홀춤 한량무로 나뉜다. 처음엔 무용극 한량무로 발생되었으나 형식의 변용과 무대공연예술로의 그 의미가 확장됨 에 따라 1980년대 하나의 레퍼토리인 홀춤 한량무로 각 지역의 특수성에 맞게 발전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거친 한량무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한량무(진주) 지정(1979)을 시 작으로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동래한량춤(2005),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한량춤(2011) 그 리고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가 지정(2014)되었다. 이는 국립문화재연구소(1996)에 의해 지역적 유파별 전승 현황이 정리되면서 전통춤의 중요한 흐름으로 인정받았기 때문 이다(김호연 2018, 65). 이를 바탕으로 그간의 문헌고증과 변형적 발전을 살피는 한량무 연구들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

    한량무 관련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지역별 한량무의 파생과 전승 양상에 관한 연구(배 라영 2018;이희병, 한수문 2011;황규선 2018), 한성준, 강선영으로 이어지는 한량무의 역사적 배경과 춤사위 연구(김정임 2002), 한량무의 서사구조와 키치(kitsch)적 요소 연구 (김호연 2018;양진숙 2021),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극춤 한량무와 홀춤 한량무 비교 연구 (장주화 2020)를 통해 한량무의 형성과 전승 양상 및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극춤 한량무와 홀춤 한량무의 이질성 등이 연구되었다. 또한 단행본 한량무-극 형식 원류 한량무로 시대 를 엿보다-(윤대성 2021)에서는 한량무의 유래와 한성준 계열 강선영 한량무의 특징, 전 승과 구성 요소 등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보유자의 실연 과정과 보유자의 대담, 전승현황 및 향후 계획에 관해 연구되었다. 이렇듯 선행된 연구에서는 한성준으로부터 시 작된 한량무가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시대별로 해석한 연구와 최근 한량무 의 전승 양상을 다룬 연구들, 한량무의 서사 구조 그리고 드라마투르기 관련 연구들이 늘 어나고 있다. 아울러 한량무 연구는 지역적으로 파생되며 형성된 류파별 한량무와 그로 인해 형성된 춤사위의 특징과 명칭 등 그 외형적 비교 연구에 집중된 경향을 보이는 반면, 서울・경기지역의 극형식 한량무에 대한 구조적 측면에서의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한성준으로부터 시작하여 강선영, 조흥동・고선아로 이어지는 서 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의 구조를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 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설정하였다.

    • 첫째, 한량무의 인물 계승별 양상은 어떠한가?

    • 둘째, 인물 계승별 한량무의 구조적 특징은 어떠한가?

    이러한 노력은 문화재 지정 이후 계승별 한량무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문화재로서의 전 승 가치를 탐구하고 나아가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의 교육 자료로 활용됨으로써 한 량무 교육에 기여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Ⅱ. 연구방법

    1. 연구대상 및 자료수집 방법

    이 연구는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의 인물 계승별 작품구조를 도출하기 위하여 문 헌연구(A literature study)를 연구방법으로 채택하였다. 문헌연구를 위한 자료수집은 단행 본과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한국학술정보원(KISS)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한량 무’, ‘한성준’, ‘강선영’, ‘조흥동’과 관련된 학위논문과 학술지논문, 그리고 연구보고서를 취 합하였다.

    2. 자료분석방법 및 자료의 진실성

    이 연구는 역사적 및 문화적 현상의 범주와 맥락을 파악하고 체계적인 문헌 검토를 수행 하기 위하여 분석 자료를 선정하였다. 문헌연구인 수집된 자료분석을 통해 인물 계승별 소개와 한성준류 한량무의 양상 및 인물 계승별 구조적 특징을 고찰하였다. 한성준류 한량 무의 구조적 특징은 서사에 의한 배역별 춤사위 특징, 배역별 춤사위 명칭, 복식과 소도구, 장단 구조 분석 순으로 고찰하였다.

    아울러 이 연구는 자료수집 및 분석 과정에서의 오류를 줄이고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하여 홍혜전(2021)의 연구에서 사용된 전문가 집단의 타당성 검토방법을 이 연구에 맞 게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사용하였다. 본 연구자와 한국무용 전공 교수 1인, 무용학 박사 3인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이 수집된 자료의 내용 확인을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 <표 1> 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평정자간 신뢰도는 94%로 나타났다.

    표 1

    타당성 검토 결과(Feasibility study results)

    SDDH-68-57_T1.gif

    Ⅲ. 한량무의 인물 계승별 양상

    한량무는 무용극의 하나로, 조선시대의 퇴폐한 시대상을 풍자한 춤이자 진주지역에서 내려오는 교방계통의 풍자 춤극이다(양진숙 2021, 234). 한량무의 기원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재까지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고종 2년(1865) 진주목사를 지낸 정현석의 교 방가요에서 그 원형이 확인되는 민속춤이다. 동사일기교방가요에 의하면 한량무 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에 의해 연행되며 한량, 승려, 기생, 별감을 통해 남녀의 삼각관계를 묘사하는 형태가 발견되고 있다. 또한 1769년 강이천의 중암고에 수록된 한시 <남성관 희자>에서는 탈춤에서 한량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양진숙 2021, 234-236). 이 후 한량무는 근대 일제시기를 맞이하여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연극적인 요소가 줄어들고 정제된 무용극 형식으로 무대화되었으며, 남사당패의 해체로 인해 기방에서 연행되었다. 형식적 측면으로는 현재의 극형식 한량무와 유사하나 교방가요동사일기기록에 의 하면 승무로 기록되기도 하였는데, 승려보다 한량이 주목받는 1900년대를 전후하여 무대 화됨에 따라 그 명칭이 한량무로 개명되었다(양진숙 2021, 237).

    한량무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우선 성경린(1976)에 의하면, 구한말(舊韓末)시 기에 남사당패를 ‘무동패’라 한 점으로 미루어 한량무 역시 무동을 시켜 춤추게 한데서 비 롯된다. 즉, 한량, 승려, 기생, 별감으로 변한 무동들이 사당패의 어깨 위에서 삼각관계를 묘사한 춤으로, 애초 무동의 춤에서 권번 화류계의 춤으로 변이된 것이다. 김온경(1984)에 의하면, 조선 중기 이후 남사당패들이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연희를 펼칠 때 각종 재주를 선보이는 과정에서 여흥의 일환으로 한량무가 추어졌다. 이후 조선말까지 남사당패에 의 해 연행되다가 남사당패가 해체된 1910년 이후부터 교방으로 유입되어 성인의 춤으로 변 모된다(김온경 1995, 265; 박수현 2005, 35; 윤대성 2021, 20).

    또한 한량무는 1900년대 중반부터 극형식의 단체무보다는 독무로 발전되는데,이는 남성 무용수가 추는 ‘선비춤’의 일환으로 공연되기 시작하여 현재의 남성춤 대명사가된 것이 독 무 한량무이다. 그러나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4인이 연행하는 단체무로, 그 연원을 ‘한국 근대 극장무용의 시조 한성준’에게 두고 있다. 극형식 한량무는 한량, 색 시, 먹중의 삼각관계를 중심에 둔 춤극이자 무언의 풍자극으로, 색시를 유혹하는 중, 지조 없는 색시, 주모와 술을 마시는 한량 등 남녀의 변심과 중의 파계를 익살스럽게 꼬집는다. 현재 다양한 유형의 극형식 한량무가 존재하나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지정 한량무는 감 초 역할을 하는 주모까지 총 4명이 출연하는 4인극으로(윤대성 2021, 9), 이 연구에서는 문헌연구를 통해 한성준, 강선영, 조흥동・고선아로 이어지는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 무의 인물 계승별 양상을 고찰하였다.

    1. 한성준과 한량무

    1) 무용가 한성준

    한성준은 한국 근대무용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긴 인물로 개화기 이래 과도기적인 역할 을 한 인물이자 악(樂)과 무(舞)에 능해 사라져가는 조선의 가무를 보존시키고자 노력한 인물이다(배라영 2018, 11; 이병옥 2009, 31-35). 마당춤과 기방춤을 극장 무대용으로 재 구성하였고, 과거에 산재되어 있던 민간춤, 재인춤, 기방춤, 궁중춤, 종교의식춤 등을 무대 작품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조선 말기에 전통춤을 집대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의 ‘전통 춤’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민속춤은 대부분 한성준이 집대성한 것이다. 승무, 살풀이, 태평 무, 검무, 장고춤, 초립동, 학춤 등 당대 수많은 민속춤을 보고 배워 자신의 것으로 재안무 및 재구성하여 공연 활동을 벌였고, 1937년 쇠퇴해가는 조선 가무악을 올바르게 보존・계 승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설립하여 제자를 키우는 것에 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성기숙 2008, 431; 윤대성 2022, 284-285). 이러한 노력으로 한 영숙과 강선영, 김천흥, 김보남, 최승희, 조택원 등 한국 무용계에 큰 업적을 남긴 제자들이 배출되었다(배라영 2018, 11; 이병옥 2009, 31-35).

    한성준(1874-1941)은 충남 홍성 출생으로 명창들의 북소리를 도맡아 친 명고수였다. 청 년기에는 전국 유랑을 통해 각 지역에 존재하는 향토 음악과 춤을 체득하였고, 이를 바탕 으로 춤과 가락, 그리고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무대 양식화하는 작업이 본격화하였다(성기 숙 2008, 431). 서울에 정착한 이후 원각사, 광무대, 연흥사 등 서구식 극장무대에서 전문 예인으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한성준은 당대에 독보적인 존재로서 춤뿐만 아니라 국 악계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2) 한성준의 한량무 특징

    한성준의 한량무는 서울・경기지역 재인 계열의 춤이다(윤대성 2021, 25). 한성준 한량 무는 1905년경 처음으로 서구식 극장에서 공연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 형식이 독무인지 군무인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1908년 5월 광무대 공연을 시작으 로 권번과 기방예술로 무용극 형식의 한량무가 시작된다.

    한성준 한량무는 지역적 특색으로 경기도 도당굿 춤인 태평무가 등장하는 배경으로 세 습되고 훈련된 기교적인 무악으로 인해 한량무의 완성미와 예술성이 더해졌다. 고선아에 의하면 한성준은 탈춤을 보고 나서 강선영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대화를 시키자, 무 용으로 만들자”(박수현 2005, 37)라고 하며, 한량무에 마당춤인 탈춤을 차용함으로써 극에 서 춤으로의 분화, 그리고 무대에 적합하게 배역 인물, 내용 전개, 춤사위, 소도구, 의상 등을 변화시킨 무용극(이강용 2021, 18; 장주화 2020, 19)으로 전환 및 발전을 모색하였 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기지역 탈춤의 노장과장을 토대로 한량, 승려, 기생, 별감 4인 으로 구성되어 남녀의 애정관계를 몸짓언어로 표현하며 무대화한 무용극으로 재구성한 것 이다. 이 무용극은 각 지역에 전승되는 현재의 한량무와 그 형식이 비슷하며 승무와 현행 진주 한량무, 그 밖의 각 지역에서 전승되는 무용극 한량무와도 형식이 비슷하다(김온경 1995;박수현 2005, 35-36).

    지역적 특징으로는 한반도의 심장인 중부권이자 궁중 문화권에 속해 있어 자존을 지닌 특유의 담백함과, 경기도당굿의 영향을 받아 춤이 도도하고 수려하며 절제미가 강조되는 등 그 춤사위가 다양하고 화려하다. 또한 남사당패와 산대놀이 탈춤의 영향으로 희극적 요소를 지닌 4인 무용극 형태를 지녔으며, 단순한 바람기가 있는 한량의 춤이 아닌 음악과 춤을 아는 풍류가인을 내세운 ‘선비의 춤’이다(배라영 2018, 2-3). 이렇게 서울특별시무형 문화재 한량무는 한성준이 산대놀이의 노장 과장을 근거로 창작하여 1930년-1940년대에 추어졌다. 이후 홀춤 형식의 한량무 위주로 추어지다가 2000년대에 접어들어 강선영이 한 성준의 한량무를 복원하여 전승한다(장주화 2020, 74).

    2. 강선영과 한량무

    1) 무용가 강선영

    한성준의 한량무는 제자인 강선영(1925-2016)에게 전수된다. 경기도 안성 출신의 강선 영은 1937년 조부의 친구인 한성준 문하에 들어가 한성준이 서거하기 전까지 4년 동안 직접 경기류 전통춤 일체를 사사한다(윤대성 2021, 38). 강선영이 15세에 조선음악무용연 구소에 입소하여 한성준으로부터 사사한 춤은 검무, 남무, 농부춤, 농악무, 동자 무, 바라춤, 배따라기춤, 뱃사공춤, 북춤, 사공무, 살풀이춤, 승무, 승전무, 신선무, 왕의춤, 영남 덧뵈기춤, 장고춤, 장군무, 진사춤, 창부춤, 초립동, 태평무, 학춤, 한량무, 훈령무, 무당춤 등 총 40여 가지의 춤이다(성기숙 2008, 431). 이후 강선영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조선음악무용연구회에서 한성준의 춤을 지켰으 며, 일본 활동 후 귀국하여 1951년 ‘강선영 무용연구소’를 통해 제자 양성과 더불어 춤 활동을 지속하였다. 구체적으로 해방 이후에는 민족문화의 원형탐색을 토대로 전통을 재 창조한 무용극을 통해 우리춤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생의 후반에는 국회위 원 활동을 하였고, 1988년 국가무형문화재 태평무 보유자가 되기까지 평생을 한성준류 전 통춤 전승에 노력한 인물이다(윤대성 2021, 41; 황규선 2018, 187).

    특히 강선영은 한성준류 한량무가 남사당패에 의해 파생되었다는 자료들에 대해 부인한 다(김정임 2002, 16). 강선영에 의하면 한성준류 한량무는 남사당패에 의해 파생된 것이 아니라 한성준이 송파산대놀이와 봉산탈춤의 중 과장을 받아들여 한량무를 안무하였다는 것이다(이세기 2003, 282). 즉, 지금까지의 한량무는 남사당패에 의해 파생되고 발전된 반 면, 한성준류 한량무는 탈춤의 노장 과장을 토대로 산대놀이의 탈과 배역별 성격, 내용, 장단 및 의상 등을 무대작품으로 재창작한 것이다(배라영 2018, 71). 이는 신문 기사뿐만 아니라 강선영이 보관하고 있는 한성준의 한량무 공연 리허설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도판 1).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광무대와 부민관 등 서울의 근대식 극장 에서 항상 한량무가 공연되었는데 색시 역할은 강선영이 담당하였다. <도판 1>을 보면, 왼쪽부터 중 역할의 박연화, 리허설 지도중인 한성준, 색시역의 강선영, 한량역의 박학심을 볼 수 있다(윤대성 2021, 9). 박연화의 복식이 중의 복식이 아닌 것은 공연 첫날 스님들의 항의로 급하게 초립동 의상으로 바꿔 입었다는 것을 강선영의 증언으로 알 수 있었다(김정 임 2002, 17; 윤대성 2021, 73).

    도판 1

    서울 부민관에서 공연(1939년 혹은 1940년)된 한성준의 극형식 한량무 리허설 모습 (Han Seong-jun's dramatic Hallyangmu rehearsal at the Seoul Bumin Hall). 성기숙, 2008. 한성준류강선영춤보존회, 서울.

    SDDH-68-57_F1.gif

    이후 강선영은 국립무용단에서 초혼(산제), 열두무녀도, 원효대사, 황진이등 다수 의 작품을 통해 안무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또한 강선영은 서울시문화상(1965), 국민훈장 목련장(1973),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연예부문(1976) 등을 수상하였고,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1985-1986), 한국예총 회장(1990-1992), 제14대 국회위원 문화체육공보위원(1992-1996) 등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국가무형문화재 태평무 예능보유자(1988)로 지정되며 지금까지 수많은 이수자를 배출함으로써 그 맥을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윤대성 2021, 65).

    2)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 특징

    근대사회로 이행되면서 악가무의 일체로만 존재했던 우리춤은 서구적 공간에 대한 미학 을 추구하게 되고 프로시니엄극장 무대가 등장하면서 독자적인 장르화를 모색한다. 이 시 기 강선영은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했다는 점, 그리고 무용극 창작에 기여했다는 점을 예술 적 업적으로 들 수 있다. 즉, 한성준이 춤을 집대성하고 극장 무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 춤의 길을 열어놓았다면, 강선영은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춤들과 태평무의 형식미를 격조 있게 완성함으로써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성기숙 2008, 439-440).

    강선영은 한성준 선생 그 춤의 재현(문예회관 대극장 2000. 2. 28), 명가 강선영 불멸 의 춤(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005. 4. 22), 80년 명가 강선영 불멸의 춤(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2013. 4. 3)을 통해 한성준의 춤극 한량무를 재연출 및 재구성한다. 즉, 강선영은 스승인 한성준에 의해 무대화된 한량무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용극 한량무로 재구 성하는 과정에서 극적인 요소를 축소하고 미학적 요소를 가미한 무대작품으로 발전시켰다.

    강선영은 한성준류 한량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배역별 성격에 맞는 연기가 가미된 ‘몸짓춤’을 강조하며 한성준 한량무의 원형적 요소를 살린다. 연기와 춤이 강조되는 4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마임적 요소가 돋보이는 무대화는 물론 미학적 요소를 살린 무용극 한량 무로 복원한다. 움직임은 단순하지만 서사와 희극 구조가 강조된 그리고 시대상을 반영한 사회적 풍자를 관객이 쉽게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도록 해학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또한, 강선영은 탈을 쓰고 연기한 한량무에서 연기를 강조하기 위해 탈을 벗고 각각의 배역에 맞는 연기력을 몸짓춤으로 강조한다(윤대성 2021, 157). 몸짓춤으로 강조된 강선영의 한성 준류 한량무는 극의 주체를 색시로 변화시켰다. 변화된 색시의 모습은 우아하고 정숙한 모습으로 변별력 있게 강조된다. 한량무의 내용이 가볍다고 해서 춤추는 무용수의 태도까 지 가벼워서는 안되며, 특히 색시의 춤은 점잖은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강지처 가 아닌데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서사적으로 어긋나 보일 수 있겠으나 춤으로서의 예술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윤대성 2021, 158). 이는 무용계의 여장부로서 정치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친 강선영의 성격, 가치관 그리고 변화된 사회적 여권 등이 한량무 복원과 정에서 등장인물의 성격과 해석에 영향을 미쳐(윤대성 2021, 69) 색시의 지위가 그 어느 한량무보다 높아진 것이다. 색시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바람피운 색시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모와 놀아난 한량이 색시를 달램으로써, 다른 극형식 한량무와는 구별되는 남녀관계를 드러내었다. 통속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춤의 기품과 우아한 멋 또한 다른 점이다(김정임 2002, 30; 윤대성 2021, 11; 황규선 2018, 190). 아울 러 강선영은 한량을 학식, 인품, 인격을 겸비한 남자 중의 남자로 표현한다. 한량은 활달하 고 호방한 춤사위를 지닌 남성춤의 한 획을 이어가던 제자 조흥동을 통해 그의 춤 색깔을 반영한 한량으로 복원된다(김정임 2002, 30; 윤대성 2021, 11).

    3. 조흥동・고선아와 한량무

    1) 무용가 조흥동과 고선아

    조흥동은 1941년 4월 21일 경기도 이천에서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9세에 무용에 입문하였고, 14세에 서울로 올라가 부모님 몰래 정식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국립국 악원 국악사양성소에서 김보남과 주만향의 춤을 접하고, 김윤학의 추월강산검무, 김백초의 신무용 기법, 김천흥의 처용무춘앵전, 이매방의 승무오고무, 전사 섭의 설장고, 은방초의 무당춤공작무, 김백봉의 장검무와 신무용 기법, 한영숙 의 승무살풀이, 황재기의 소고춤 등을 사사한다. 또한 대학시절 김진걸과 송범에 게 사사하면서 장홍심의 장검무, 김석출의 동해안 별신굿 등 다양한 춤을 섭렵하였다. 졸업 후에도 임준동의 불교의식무용 작법범패, 안사인의 제주굿, 조한춘의 제석 춤대감놀이를 배우고 이지산, 박영호, 이용우의 진쇠춤을 배운다. 이용우의 터벌 림춤, 박병천의 진도북춤진도씻김굿, 우옥주의 황해도 만구대탁굿 등도 섭렵한 다(윤대성 2021, 163). 이렇게 수많은 대가들에게 춤을 사사하여 현재까지 자신만의 춤 세계를 구축해 온 한국 무용계의 명무(名舞)이다.

    또한, 조흥동은 1978년 한국 최초로 남성무용단을 창단하여 남성춤의 양식적 틀을 마련 한다. 여성스러운 자태로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았으며 춤이 유연하고 교태적인 특성까지 지닌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조흥동은 여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모의(模擬)하는 춤을 거부 하고 남성의 신체에 맞는 춤사위와 기법을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쌓아온 남성다운 춤의 격조를 지켜나가며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김기화 2021, 144).

    강선영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무용연구소를 찾아 태평무열두무녀도 를 배운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녀가 국립무용단 안무를 맡을 때에 늘 객원으로 초청하여 조흥동을 무대에 세웠으며, 강선영이 태평무 보유자로 인정된 이후에 더욱 심도있게 전수 받아 1992년 무형문화재 태평무의 첫 남성 이수자가 된다. 이어 강선영에게 한량무를 사사 하여 한량무의 복원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그는 이미 자신만의 고고함과 호방한 한량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독무 한량무로 명성이 높아 있었기 때문에 1999-2000년 복원과정에 함께 하면서 그는 한량의 역할을 채워 나갔다. 이어서 조흥동은 국립무용단 초대 상임 안 무자(1990-1992)를 거쳐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및 단장(1993-1994), 서울예술단 예 술총감독(1997-1998), 그리고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2000-2014)을 역임하였다. 또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1991-2005), 200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14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한량무 보유자로 지정되었다(윤대성 2021, 165).

    고선아는 1947년 9월 3일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한국전쟁으로 전주로 이주하여 유년시절을 보낸다. 6세가 되던 해 전주로 피난 온 동네 언니에게 처음 춤을 시작하였다. 이후 중학교 시절 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김조균에게 정식으로 춤 을 배웠고, 고등학교 시절 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호남살풀이춤 보유자인 최선이 부임 하면서 춤을 배웠다. 그리고 1967년 현재 중앙대학교인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면서 서 울로 상경하였다. 당시 학교와 박금슬 무용연구소를 오가며 춤을 배웠으며 졸업 후 교사생 활을 거친 이후 본인의 연구소를 차려 현재까지 고선아무용학원으로 큰 딸과 함께 운영하 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고선아에게 강선영은 무용인생에 뿌리 내릴 수 있게 해주는 평생의 스승이었다. 2000년 한량무 복원 공연인 한성준 그 춤의 재연 때부터 조흥동, 김미란, 원정숙과 함께 무대에 선 것을 시작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선아는 1980년대 초반 강선영의 온화함과 우아함에 반해 강선영의 제자로 입문하여 승무, 즉흥무, 살풀이춤, 무당춤, 검무, 학무, 바라춤, 강강술래, 장고춤, 부채춤, 삼고무 등을 사사한다. 1993년 국가 무형문화재 태평무를 이수하였고, 1998년-2004년까지 태평무전수관 부관장, 2009년부터 현재까지 태평무보존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윤대성 2021, 170). 서울시는 2014년 5월 15일 한성준계열 강선영 한량무를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로 지정하면서 한성준류 강선영춤보존회가 인정되었고, 보유자는 한량역에 조흥동, 색시 역에 고선아로 지정된다 (윤대성 2021, 87). 고선아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에는 사회에 봉헌하기 위해 소외계 층을 위한 문화활동은 통해 한량무의 보전, 전승, 발전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으며, 현재 현충로에 위치한 무용학원에서 전수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2) 조흥동・고선아의 한성준류 한량무 특징

    조흥동은 춤에 대해 가슴에 혼과 감정이 호흡을 통해 뭉쳐서, 손끝과 발끝, 머리끝까지 전달되어 마음과 혼이 깃든 춤을 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춤이라는 것이 넘쳐도 안되고 모 자라도 안되고 교태가 지나쳐도 안되며, 교양과 격과 인품이 춤 속에 깃들어 있어 예술이 라는 것이 끝이 없고 평생 갈고 닦아야 한다는 그의 춤에 대한 신념을 말한다(박지혜 2019, 15). 조흥동의 한량무는 멋과 흥, 고귀한 자태, 남성으로의 모든 감정과 사상을 표현 할 수 있는 춤이다. 그는 한성준에 의한 원형을 발굴하면서 강선영에 의해 고증, 복원 과정 을 함께 거치면서 지금의 한량무의 춤사위를 재정립한다. 한성준에 의해 구성되고 강선영 에 의해 재정립된 한량무를 조흥동은 복원과정에서 자신이 1980년대부터 추어온 홀춤 한 량무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조흥동의 춤사위 특징인 남성다움과 선비의 품격인 세련미, 그리고 호방함을 갖춘 단순히 바람기 있는 풍류량이 아닌 조선에서 가장 모던하고 호탕한 인물로 현재의 한량무를 완성시킨다(윤대성 2021, 66). 조흥동은 그의 자서전에서 원류 한량무는 마임보다는 오로지 춤으로 줄거리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춤사위가 아 주 단순하고 가짓수가 많지 않은데 이는 그만큼 기본기가 강조되는 춤이라는 말하였다. 발디딤은 어느 춤에서든 중요하지만 남성춤에선 더욱 중요하며, 그 디딤이 도포와 쾌자 자락이 흔들리는 분방한 멋을 좌우한다고 하였다. 자락을 손으로 쳐 날릴 수도 있겠으나 선비의 절제된 기품과 걸음걸이에서 나오는 호방한 멋을 강조하며 기본기의 춤사위에서 기교가 아닌 추어지는 사람 자체가 격이 있고 기품있는 선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윤대 성 2022, 287). 이렇게 한량무는 고전무용의 기본적인 춤사위이지만 내면에서부터 흐르는 내공과 농축된 춤사위로 멋스러움을 자아내며 조흥동 특유의 멋스러움과 담백함이 어우러 져 서울시무형문화재로서의 한량무로 정립, 보전되었다.

    고선아는 한량무가 배역에 따른 연기와 춤 장단에 따라 어우러진 종합예술적인 작품으 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강조한다(고선아 인터뷰 2020) 같은 시기에 조흥동은 한량, 고선아 는 색시로 문화재 지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강선영에게 지도받았던 한량무 색시춤의 원형성과 연기적 요소를 살린 춤사위를 강조하며 한량무 전승 보존을 위한 지도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색시춤은 고선아의 아담한 체구에서 나오는 여성성과 자태가 더해져 그녀 만의 아양과 애교의 성격을 가진 격조있는 색시춤으로 정립시켰다.

    Ⅳ. 인물 계승별 한량무의 구조적 특징

    1. 서사에 의한 배역별 춤사위 특징

    1) 한성준 한량무

    한성준 한량무에 대한 영상자료는 없다. 다만 신문자료에 의하면 한성준 한량무는 4명 의 인물 모두 여성들에 의해 추어졌다. 1938년 한량무 공연에서 한량은 박진홍, 별감은 홍경숙, 기생은 이남호와 조효금이 맡았고, 1939년이나 1940년 부민관 공연에서 한량은 박학심, 색시는 강선영, 먹중은 박연화가 출연하였다(윤대성 2021, 71-72). 모두 여성 무 용수들이기 때문에 현재 추어지는 한량무의 남성춤과는 거리가 있다.

    한성준의 한량무는 지역적 특색으로 경기도당굿의 토대로 완성된 춤인 태평무의 화려한 춤의 전개와 강직함 속에 연기적 요소를 갖춘 남사당패와 산대놀이 탈춤의 영향을 받아 희극적 요소가 더해졌다. 배역에 따른 춤사위 특징을 살펴보면, 한량은 곧고 강직한 남성적인 춤사위로 추어졌고, 색시는 여성스럽고 부드러우며 교태스러웠으며, 먹중은 산대놀이의 노승이 추는 늠실거리는 굿거리 춤사위와 비슷하고, 주모는 익살스럽게 엉덩이를 흔드는 등의 춤이 주를 이루었다. 무용극 형식의 한성준 한량무는 4인의 각 인물의 성격을 지니고, 몸짓이 주를 이루는 춤사위와 풍자적인 표현방식 등 무대 공연 예술로서 정립되었다(배라영 2018, 52). 이에 한성준 한량무의 서사구조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표 2>와 같다.

    표 2

    한성준 한량무의 서사구조(Han Seong-jun's narrative structure) 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SDDH-68-57_T2.gif

    2)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는 원형적 춤사위에 배역별 성격에 맞는 연기가 가미된 몸짓 춤이 강조된다. 배역간의 연기와 마임적 요소가 돋보이고 미학적 요소를 더욱 살려 무용극 한량무로서 복원되었다. 복원된 강선영의 한량무는 많은 춤사위들로 이어지기보다는 한량 의 사랑의 증표인 꽃신과 먹중의 증표인 염주를 통해 남녀의 사랑과 질투, 주모의 엉덩이 춤 등으로 등장인물의 묘사를 해학을 담은 연기와 몸짓으로 이어진다. 배역에 따른 내용과 서사는 영상자료를 통해 문화재연구소의 기록과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복원 이후와 현재까지 그 내용이 보전되고 있다. 그러나 4장의 내용에서 색시가 한량에게 용서를 구하 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기록(1996)과 한량이 색시를 달래는 복원공연(2000) 이후의 모습 에서 한량과 색시의 관계가 반전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내용은 <표 3>과 같다.

    표 3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의 서사구조 (The narrative structure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Hallyangmu)

    SDDH-68-57_T3.gif

    국립문화재연구소(1996)에 의하면 용서의 주체가 한량인 반면, 복원공연(2000)에서는 마음을 푸는 주체가 색시로 변한 양상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영향 및 해석자인 강선영의 성격과 가치관이 큰 영향을 끼쳤다(윤대성 2021, 68-69).

    3) 조흥동・고선아의 한성준류 한량무

    독무로 활동해오던 조흥동은 강선영이 한성준 한량무를 복원(2000)할 때 함께 한량 역할을 재구성하였다. 복원작업에서 춤의 전체적인 구성과 방향, 의상과 음악 등은 강선영이 주도하지 만, 이미 독무 한량무로 자신만의 명성을 굳혔던 조흥동은 여성스럽게 추는 것이 아닌 남성 춤의 정체성을 확실히 함과 동시에 학식과 인품, 덕망을 갖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기품있고 남성다운 한량의 모습으로 뚜렷하게 한다(윤대성 2021, 165). 이는 한량의 복식인 두루마기와 그 이미지가 연결되는데 상류층의 품격있는 한량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지는데(윤대성 2021, 179) 이렇게 조흥동에 의해 한량의 성격과 춤사위가 견고해진다. 또한, 고선아는 강선영 에 의해 복원된 원형성을 살린 지조 있으면서 애교 있고 풋풋한 색시 춤사위를 그대로 보전하여 추어지고 있다. 먹중의 역할도 여성에 의해 복원되었으나 서울시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한량과 먹중은 남성 이수자가 색시와 주모는 여성 이수자가 사사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이에 배역별 서사에 의한 인물별 춤사위 특징은 <표 4>와 같다.

    표 4

    배역별 서사에 의한 인물 계승별 춤사위 특징 (Characteristic of dance moves by character succession by narrative by role)

    SDDH-68-57_T4.gif

    2. 배역별 춤사위 명칭

    1) 한성준 한량무

    한성준 한량무의 영상자료가 없으므로 한성준류 강선영의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 무의 춤사위를 고찰하였다.

    2)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

    고선아에 의하면 강선영은 몸짓춤과 표정 연기를 강조하였으며, 객석에 그 감정을 전달 해야 함으로 먹중은 더 느물대는 모습을 보이고, 주모는 엉덩이춤을 강조하였다. 또한 색 시는 아양을 떠는 것과 울 때 손짓만이 아닌 어깨를 꼭 들썩여야 함을 강조하였다(윤대성 2021, 156-157). 강선영에 의해 배역별 특징적인 춤사위 명칭과 특징들이 정립되고, 춤사 위에 연기가 더해진 극춤으로 종합 예술적 가치가 드러난다.

    3) 조흥동・고선아의 한성준류 한량무

    춤사위를 살펴보면, 한량무가 처음 복원된 2000년도 복원공연 영상과 현재 추어지는 영 상을 비교하면 차이가 발견된다. 2000년 복원공연 당시 한량이 색시의 발을 쥐어보는 등의 연기 위주의 몸짓에서, 현재는 앉아서 도포자락을 크게 날리는 춤사위로 정립되었다. 또 3장에서 2000년도 복원공연은 주모가 노골적으로 한량에게 안기고, 한량이 부채를 흔들고 주모를 크게 옆으로 밀어버리는 등 연기 위주의 표현에서, 현재는 한량이 주모를 뿌리치기 위해 주모에게 팔을 위로 뻗어내는 동작 위주의 표현으로 정립되었다(윤대성 2021, 71). 이렇게 강선영에서 조흥동 고선아로 한량무가 계승되면서 배역별 연기 위주의 흐름에서 동작 위주의 춤사위 형태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한량 무의 연기적 요소가 섞인 마임적 요소들이 춤사위로서 재정립되면서 춤사위의 명칭 또한 상세히 분리되고 보완되어 한량무 춤사위의 완성도를 높혔다. 이에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 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배역별 춤사위 명칭과 설명 비교는 <표 5>-<표 8>에서 알 수 있다.

    표 5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한량> 춤사위 명칭과 내용 (The name and content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Cho Heung-dong and Go Sun-ah Hallyangmu's “Hallyang” dance) 월륜춤보전회, 서울.

    SDDH-68-57_T5.gif
    표 6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색시> 춤사위 명칭과 내용 (The name and content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Cho Heung-dong and Go Sun-ah Hallyangmu's “Saeksi” dance) 월륜춤보전회, 서울.

    SDDH-68-57_T6.gif
    표 7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먹중> 춤사위 명칭과 내용 (The name and content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Cho Heung-dong and Go Sun-ah Hallyangmu's “Meokjung” dance) 월륜춤보전회, 서울.

    SDDH-68-57_T7.gif
    표 8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주모> 춤사위 명칭과 내용 (The name and content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Cho Heung-dong and Go Sun-ah Hallyangmu's “Jumo” dance) 월륜춤보전회, 서울.

    SDDH-68-57_T8.gif

    3. 복식과 소도구

    1) 한성준 한량무

    1939년 혹은 40년 부민관 공연 리허설 사진<도판 1>과 1938년 조선일보 사진<도판 2>, 국립문화재연구소(1996)를 통해 한성준 시절 한량무 복식과 소도구를 확인할 수 있다. 한 량은 소매가 좁은 두루마기에 쾌자를 입고 부채를 들고 갓을 쓰고 있다. 색시는 고름이 없는 원삼을 겉옷으로 착용한 것으로 유추되며, 대대(허리띠)를 착용하였다. 소매가 좁고 손에는 긴 한삼을 착용하고 족두리를 하였다. <도판 2>를 보면 실제 별감이 등장한 것으로 판단되며, 별감(먹중)은 초립동 의상을 입었다. 아울러 <도판 1>은 공연 첫날 스님들의 항 의로 급하게 초립동 의상으로 바꿔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김정임 2002, 17; 윤대성 2021, 73).

    도판 2

    조선일보 1938년 4월 23일자에 실린 한량무 (Hallyangmu, published in the April 23, 1938 issue of the Chosun Ilbo) 조선일보, 1938.

    SDDH-68-57_F2.gif

    국립문화재연구소(1996)의 서술을 통해서만 확인하면 주모와 먹중의 복식이 <도판 2> 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주모는 역할에 맞는 치마저고리를 허용한 것으로 보이며 승려 역시 회색 장삼에 홍가사를 착용한다고 되어있다. 한량의 복식은 흑백으로 색이 명확하지 않지만 남색 쾌자와 옥색 도포임을 유추한다. 색시는 원삼에 대한 언급은 없고 치마저고리 에 한삼을 끼고 족두리를 한다고 되어있어 사진과 문헌의 차이를 보인다(윤대성 2021, 75).

    2)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

    색시의 의상이 연녹색의 원삼에 노랑저고리 홍색치마로 정해진 것은 여성의 순결과 이 제 막 혼례를 준비하듯 첫 시작을 상징한다(황규선 2018, 193). 먹중의 황토색 장삼과 홍 가사는 스님의 모습을 형상하고 있지만, 송낙을 쓴 것으로 능청스러운 먹중의 캐릭터를 살렸다. 복원 당시에는 먹중탈을 썼지만, 배역의 역할을 확실히 한 표정과 연기를 살리기 위해 강선영에 의해 먹중탈을 벗은 것으로 보인다. 주모의 의상 또한 분홍 저고리와 검정 치마, 연노랑 속바지로 캐릭터의 복식으로 배역의 역할이 확실해졌다.

    3) 조흥동・고선아의 한성준류 한량무

    복식과 소도구의 변화는 2000년 한량무 복원공연과 현재의 한량은 두루마기에 도포를 입고, 색시는 원삼, 승려는 장삼, 주모는 저고리와 속바지의 색이 각각 바뀌었다. 한량의 두루마기는 2005년에 도포로, 2003년에 원삼이 연녹색에서 초록으로, 2005년부터 먹중의 탈을 쓰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한량과 먹중의 부채 또한 꽃 그림의 변화가 있었다(윤대 성 2021, 75-76). 이에 인물 계승별 등장인물의 복식과 소도구를 정리하면 <표 9>에서 보는 바와 같다.

    표 9

    인물 계승별 등장인물의 복식과 소도구 (Costumes and props of characters by character succession) 월륜춤보전회, 서울.

    SDDH-68-57_T9.gif

    4. 장단구조

    1) 한성준 한량무

    당시의 타령장단과 굿거리장단은 탈춤과 산대놀이에 널리 사용되는 장단이기에 한성준 의 극형식 한량무의 연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윤대성 2021, 115). 한성준 한량무는 탈춤 의 양반 과장과 비슷한 한량과 색시의 2인무인 허튼 굿거리장단, 중의 독무인 타령장단, 중과 색시의 2인무인 자진 굿거리장단, 중과 색시의 2인무인 굿거리장단이다(국립문화재 연구소 1996, 36-37; 박수현 2005, 36-37).

    2)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 장구 반주는 채편의 복판을 치면서 장구, 피리, 해금의 악기 로 편성되며 장단은 허튼 굿거리장단, 자진 타령장단, 굿거리장단으로 진행된다. 허튼 굿거 리장단에 한량과 색시의 대무 장면부터 색시와 먹중춤까지 이어지고(1장-2장), 타령장단 에 주모가 술병을 들고 나올 때부터 퇴장까지 이어진다(3장). 굿거리장단에 한량과 색시의 화해와 사랑의 춤을 추면서 퇴장과 함께 극이 맺는다(4장)(황규선 2018, 192).

    3) 조흥동・고선아의 한성준류 한량무

    장단은 늦은타령으로 시작하여 자진타령장단, 굿거리장단으로 이어진다. 늦은타령장단 에 처음 한량과 색시의 춤(1장)과 색시와 먹중의 춤(2장)이 추어지고, 자진타령장단에 한 량과 주모의 춤(3장), 굿거리장단에 한량과 색시의 춤(4장)이 추어진다. 자진타령장단은 늦 은타령장단을 빨리 친 것이므로 두 장단의 악보는 같다. 한량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해 금과 피리가 주도적인 효과음을 내는 무장단 반주 부분이 이 작품의 특징적인 연주이다(윤 대성 2021, 117).

    한량무의 인물 계승별 장단구조를 정리하면 <표 10>에서 보는 바와 같다.

    표 10

    인물 계승별 장단구조 (Character succession-specific rhythm structure)

    SDDH-68-57_T10.gif

    Ⅴ. 결론 및 제언

    현재 전통춤으로 알려진 한국의 민속춤은 대부분 한성준이 집대성한 것으로, 그가 존재 하지 않았다면 고전무용은 상당 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의 ‘전통춤’이라고 불리는 춤의 큰 줄기는 한성준에게서 정리된 것으로 한국무용계의 가장 큰 유파를 이루고 있음은 필적 할 자가 없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한량무의 전통춤으로써 그 가치를 재인식하고 기초자료 확대 및 한국 전통춤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성준으로부터 시작하여 제자인 강선영으로 인 해 복원되고, 조흥동・고선아로 이어져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문헌을 통해 인물 계승별 양상과 서사에 의한 배역별 춤사위 특징, 배역별 춤사위 명칭, 복식과 소도구 및 장단의 구조적 특징을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서사에 의한 배역별 춤사위 특징은 곧고 강직한 남성적인 춤사위로 추어진 한량과 여성스럽고 부드러우며 교태스러운 색시, 산대놀이의 노승이 추는 늠실거리는 굿거리 춤 사위와 비슷한 먹중, 익살스럽게 엉덩이를 흔드는 등 주모의 춤이 특징이다. 또한 한성준 한량무는 4명의 인물 모두 여성무용수에 의해 추어져 지금의 남성춤과는 거리가 있다. 강 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는 배역별 성격에 맞는 연기가 가미된 몸짓춤이 강조되며, 복원되 면서 해석자인 강선영의 성격과 가치관의 영향으로 마음을 푸는 주체가 색시로 변화되었 다(4장). 2000년 강선영이 한성준 한량무를 복원할 때 조흥동이 한량 역할을 재구성하면서 남성춤의 정체성을 확실히 함과 동시에 학식과 인품, 덕망을 갖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기품있고 남성다운 한량의 모습으로 견고해졌다. 또한 고선아는 강선영에 의해 복원된 원 형성을 살린 지조 있으면서 애교 있고 풋풋한 색시 춤사위를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둘째, 배역별 춤사위 명칭은 한성준 한량무의 영상자료가 없으므로 강선영의 한성준류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춤사위를 고찰하였다. 몸짓춤을 강조하는 강선영에 의 해 배역별 특징적인 춤사위 명칭과 특징들이 정립되고, 춤사위에 연기가 더해진 극춤으로 서의 종합 예술적 가치가 드러난다. 강선영에서 조흥동・고선아로 한량무가 계승되면서 배 역별 연기 위주의 흐름에서 동작 위주의 춤사위 형태로 변화되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 기까지 한량무의 연기적 요소가 섞인 마임적 요소들이 춤사위 명칭으로 상세히 분리되어 한량무 춤사위로 재정립됨으로써 완성도가 높아졌다.

    셋째, 복식과 소도구는 국립문화재연구소(1996)기록에 의해 한성준은 한량이 전복, 남 색쾌자, 옥색두루마기, 갓에서 강선영에 의한 2000년 복원공연 때 술띠와 부채가 추가되었 다. 또한 조흥동에 의해 두루마기가 도포로 바뀌고 부채에 매화나 난 그림을 썼다. 색시는 치마저고리, 족두리, 한삼에서 강선영에 의해 연녹색 원삼, 홍대대, 노랑 저고리, 홍색 치 마, 족두리, 비녀, 꽃신으로 복식의 색이 뚜렸해졌고, 고선아에 의해 연녹색 원삼이 초록으 로 바뀌었다. 먹중은 회색장삼, 홍가사에서 강선영에 의해 황토색 장삼, 홍가사, 송낙, 먹중 탈, 부채(민무늬), 염주로 배역의 역할이 확실해졌으며 표정연기를 위해 탈을 벗었다. 조흥 동・고선아에 의해 난이 그려진 부채가 사용되었다. 주모는 치마저고리, 허리끈에서 강선영 에 의해 분홍 저고리, 검정 치마, 연노랑 속바지, 허리끈, 술상, 술병, 술잔으로 복식과 소도 구가 정해졌고, 조흥동・고선아에 의해 저고리만 붉은색으로 바뀐다.

    넷째, 장단은 한성준에 의해 허튼굿거리장단(1장), 타령장단(2장), 자진굿거리장단(3장), 굿거리장단(4장)에서 강선영에 의한 복원공연 때는 허튼굿거리장단(1, 2장), 자진타령장단 (3장), 굿거리장단(4장)으로 공연되었다. 현재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늦은타령장단(1, 2장), 자진타령장단(3장), 굿거리장단(4장)으로 장단이 정립되었다.

    이렇게 시대적・사회적・지역적 요소 그리고 인물의 성격과 가치관에 의한 인물별 특색이 더해져 한량무가 형성되는 과정은 한량무가 문화재 춤으로서 지정되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량무의 구조적 특징에서 확인된 그 문화재적 가치와 춤의 특징은 한성준으로부 터 시작하여 강선영에 의해 복원되고 조흥동・고선아가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의 모든 과 정에서 비롯된다. 이 연구를 통해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한량무의 인물 계승별 양상과 구 조적 특징 고찰을 통한 그 역사적 가치와 본질을 되새겨보았다. 기본 춤사위에 연기가 더 해져 극춤으로서의 종합 예술적 가치가 드러나는 한성준류 한량무는 인물별 계승 과정에 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며, 전수 교육 과정에서도 한량무의 역사적 가치 인식을 위해 지금까지의 춤의 정립 과정과 구조적 분석을 통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 해 심층적 과정에 의한 한량무의 재인식과 올곧은 무형문화재 춤의 전승 교육을 위해서라 도 앞으로의 후학들을 위한 전승 교육 자료로서 한량무의 연구 발전에도 기여되길 바란다.

    Figure

    SDDH-68-57_F1.gif

    서울 부민관에서 공연(1939년 혹은 1940년)된 한성준의 극형식 한량무 리허설 모습 (Han Seong-jun's dramatic Hallyangmu rehearsal at the Seoul Bumin Hall). 성기숙, 2008. 한성준류강선영춤보존회, 서울.

    SDDH-68-57_F2.gif

    조선일보 1938년 4월 23일자에 실린 한량무 (Hallyangmu, published in the April 23, 1938 issue of the Chosun Ilbo) 조선일보, 1938.

    Table

    타당성 검토 결과(Feasibility study results)

    한성준 한량무의 서사구조(Han Seong-jun's narrative structure) 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의 서사구조 (The narrative structure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Hallyangmu)

    배역별 서사에 의한 인물 계승별 춤사위 특징 (Characteristic of dance moves by character succession by narrative by role)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한량> 춤사위 명칭과 내용 (The name and content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Cho Heung-dong and Go Sun-ah Hallyangmu's “Hallyang” dance) 월륜춤보전회, 서울.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색시> 춤사위 명칭과 내용 (The name and content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Cho Heung-dong and Go Sun-ah Hallyangmu's “Saeksi” dance) 월륜춤보전회, 서울.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먹중> 춤사위 명칭과 내용 (The name and content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Cho Heung-dong and Go Sun-ah Hallyangmu's “Meokjung” dance) 월륜춤보전회, 서울.

    한성준류 강선영 한량무와 조흥동・고선아 한량무의 <주모> 춤사위 명칭과 내용 (The name and content of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and Cho Heung-dong and Go Sun-ah Hallyangmu's “Jumo” dance) 월륜춤보전회, 서울.

    인물 계승별 등장인물의 복식과 소도구 (Costumes and props of characters by character succession) 월륜춤보전회, 서울.

    인물 계승별 장단구조 (Character succession-specific rhythm structure)

    Reference

    1. 김기화 Kim, Gihwa. 2021.“조흥동의 춤에 담긴 ‘서사’와 ‘쾌(快)’의 미학 Cho Heungdong chum e damgin ‘seosa’ wa ‘kwae’ui mihak” [The aesthetics of 'narrative' and 'Fun' in Cho Heung-dong dance]. 월륜 춤 80년, ‘조흥동의 춤세계’. Wollyun chum 80nyeon, Cho Heung-dongui chwumsegye. [The dance world of Cho Heung-dong in the 80th year of Wollyun Dance]. 『공연과 리뷰 The performing arts&film review』 현대미학사[History of Modern Aesthetics] 27(1): 143-147.
    2. 국립문화재연구소 Gungnip Munhwajae Yeon-guso. [Nation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996. “무형문화재조사보 고서(19)입춤・한량무・검무 Muhyeong munhwajae josabogoseo (19) ipchum, hallyangmu, geommu”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Survey Report (19)].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 [Seoul: Nation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3. 김온경 Kim, Onkyeng. 1984. 『한국민속무용연구 Han-guk minsok muyong yeon-gu』[A Study on Korean Folk Dance]. 서울: 형설출판사 [Seoul: Hyeongseol chulpansa].
    4. 김온경 Kim, Onkyeng. 1995. “정현석의 교방가요 연구 Jeong Hyeonseokui gyobang gayo yeon-gu” [A Study on the Gyobang Song by Jeong Hyeon-seok]. 『한국무용연구 Han-guk muyong yeon-gu』[ A Study on Korean Dance]. Issue 13. 서울: 한국무용연구회 [Seoul: Korean Dance Research Association] 13(1995): 1-39.
    5. 김정임 Kim, Jeongim. 2002. “한량무 형성 및 춤사위에 관한 연구: 강선영류를 중심으로 Hallyangmu-ui Hyeongseong mit Chumsawi e gwanhan yeon-gu: Kang Sun-yeongnyulul cwungsimulo” [A Study on the formation and dance of Hallyangmu: focused on the style of Kang, Sun-young]. 용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master's degree thesis, Yongin University].
    6. 김호연 Kim, Hoyoen. 2018. “한량무의 전승 양상과 그 서사구조 연구 –한성준 계열 강선영류 중심으로- Hallyangmu-ui jeonseung yangsanggwa geu seosagujo yeon-gu -Han Seongjun gyeyeol Kang Sunyoungryu jungsimeuro-” [A Study on the transmission patterns of Hallyangmu and its narrative structure - Focused on Han Seong-jun's Kang Sunyoung style dance]. 『무용역사기록학 Muyongyeoksagirokhak [Asian Dance Journal』] No49: 63-82.
    7. 배라영 Bae, Rayeong. 2018. “한량무의 지역별 비교 연구 –부산, 서울 경기지역 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Hallyangmu-ui jiyeokbyeol bigyo yeon-gu: Busan, Seoul, Gyeonggijiyeok muhyeongmunhwajaereul jungsimeuro” [A comparative study of Hallyangmu by region - Focusing o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Busan, Seoul, and Gyeonggi-do-].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Master's thesis, Pusan National University].
    8. 박수현 Park, Suhyeon. 2005. “한성준 춤의 무대화 과정을 통한 현대적 계승에 관한 연구 Han Seongjun chumui mudaehwa gwajeongeul tonghan hyeondaejeok gyeseung e gwanhan yeon-gu” [A Study on the modern transmission through the stagification of Han Seong-jun]. 용인대학교대학원 석사논문 [Master's thesis, Yongin University].
    9. 박지혜 Park, Jihye. 2019. 『조흥동류 입춤 Cho Heungdongryu ipchum』. 도서출판 훈 [Hun Publishing House].
    10. 성경린 Seong, Gyeongrin. 1976. 『한국의 무용 Han-gukui muyong』[Korean dance].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Sejongdaewang ginyeom saeophoe [Commemorative Society of King Sejong]. 212.
    11. 성기숙 Seng, Kiswuk. 2008. 『태평무 인간문화재 강선영 Taepyeongmu Inganmunhwajae Kang Sunyoung』[Human Treasure of Taepyeongmu: Kang Sunyoung]. 연낙재 [Yeonnakjae].
    12. 서울무형문화재교육전시장 Seoul muhyeong munhwajae gyoyuk jeonsijang. [Seou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education exhibition hall]. 2020.
    13. 윤대성 Yun, Daesŏng. 2022. 『월륜 조흥동 자서전 Wollyun Cho Heungdong jaseojeon』 [Autobiography of Wollyun Cho Heungdong]. 댄스포럼 [Dance forum].
    14. 윤대성 Yun, Daeseŏng. 2021.『한량무 극형식 원류 한량무로 시대를 엿보다 Hallyangmu geuk hyeongsik wollyu hallyangmuro sidaereul yeotboda』 [See change over time through the case of Hallyangmu. 서울특별시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15. 이강용 Lee, kangyong. 2021. “중고제 4인 한량무의 역사성 고찰과 전승가치 파악 Junggoje 4in hallyangmuui yeoksaseong gochalgwa jeonseunggachi paak” [History of 4 person Junggoje Hallyangmu and the value of tradition]. 중앙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Ph.D. thesis Joong-ang University Graduate School].
    16. 이병옥 Lee, Byengok. 2009.『재인 한성준의 삶과 무용사적 의의 Jaein Han Seongjunui salmgwa muyong sajeok uiui』 [Han Seong-jun’s life and dance history]. 연낙재 [Yeonnakjae].
    17. 이세기 Lee, Segi. 2003.『여유와 금도의 춤 Yeoyuwa geumdoui chum』[A dance of generosity]. 명무 강선영 평전 [Myeongmu Kang Sunyoung pyeongjeon] 푸른사상 [Pureunsasang].
    18. 양진숙 Yang, Jinsook. 2021. “극형식 한량무에 내재된 키치(kitsch)요소 연구 Geukhyeongsik hallyangmu e naejae doen kichi yoso yeon-gu” [A Study on the kitsch elements in Hallyangmu].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Suncheonhyang inmunhwahak nonchong [Suncheonhyang humanities science workshop] 』40(3): 227-254.
    19. 이희병 Lee, Heebyung, 한수문 Han, Soomoon. 2011 “지역별 한량무의 파생과 전승에 관한 고찰 Jiyeokbyeol hallyangmuui pasaenggwa jeonseung e gwanhan gochal” [A Study on the derivation and transmission of Hallryangmu by region].『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Han-guk enteote-inmeonteu saneop hakhui nonmunji 』[Journal of the Korean entertainment industry association] 5(4): 32-40.
    20. 조선일보 Chosun ilbo “한량무 사진 Hallyangmu sajin” [A picture of Hallyangmu]. 1938.『조선일보』[Chosun Daily]. 1938. 4. 23.
    21. 장주화 Chang, Juhwa. 2020.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극춤 한량무와 홀춤 한량무의 비교연구 Muhyeong munhwajaero jijeongdoen geukchum hallyangmu wa holchum hallyangmuui bigyo yeon-gu” [A comparative study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Hallyangmu and theatre dance Hallyangmu]. 경상대학교대학원 석사논문[Gyeongsang University MA thesis].
    22. 황규선 Hwang, kyusen. 2018. “한량무의 춤사위와 서사구조 연구 –한성준 계열 강선영류를 중심으로- Hallyangmuui chumsawiwa seosagujo yeon-gu: Han Seongjun gyeyeol Kang Sun-yeongryureul jungsimeuro” [A Study on Hallyangmu dance and narrative structure -focusing on Han Seong-jun's rendition of Kang Sun-young style dance-] 『무용역사기록학Muyong-yeoksagirokhak』[Asian Dance Journal] 50(50): 177-198.
    23. 홍혜전 Hong, Hyejeon. 2021. “치매노인의 인지기능 퇴행방지와 잔존신체기능 유지를 위한 홀니스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 검증 Chimaenoinui injigineung toehaengbangjiwa janjonsincheganeung yujireul wihan holniseupeurogeuraem gaebal mit hyogwa geomjeung” [Development of wholeness program and validation of effectiveness to prevent cognitive function and maintain remaining physical function in the elderly with dementia].『무용역사기록학 Muyong-yeoksagirokhak』[Asian Dance Journal] 61(61): 123-148.
    24. 한성준류강선영춤보존회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chum bojonhoe. 2012. 『한성준류 강선영 춤 한량무 공개시연 프로그램북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chum Hallyangmu gonggaesi yeonpeurogeuraembuk』. 한성준류강선영춤보존회 [Han Seongjun-ryu Kang Sunyoung Dance Preservation Society]. 2012. 4. 26.

    저자소개

    박지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에서 예술사와 전문사를 졸업하고, 세종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 였다. 현재 경기도무용단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학위논문으로 는 “신무용가 김민자 연구”, “무용극 <춘향>분석을 통한 한류 컨텐츠화 방안 연구”가 있으며, 저서로는 “조흥동류 입춤”이 있다.
    Park, Ji-hye graduated from the dance department of the Korean National University of Arts, the Korean Academy of Traditional Arts, and obtained a doctorate from Sejong University. She currently works as a member of the Gyeonggi-do Dance Company and is an adjunct professor of dance at the Korean National University of Arts. Past papers include “A Study on the New Dancer Kim Min-ja” and “A Study on the Korean Wave contents through the analysis of the dance drama <Chunhyang>”, and the book “Cho Heungdong-ryu Introductory Dance.”

    Footnote

      LIST
      Export ci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