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칼은 원시시대 인간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농사, 사냥, 전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 다. 즉, 칼을 무구로 쓰는 검무는 한국 전통춤 중 하나이자 나아가 오랜 역사와 뿌리를 지니고 있는 춤이다. 검무에 관한 문헌 기록으로는 우리나라 춤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는『오경통의(五經通義)』에 지모무 조시생야(同異之樂 持矛舞)에서의 「지모무」, 검무의 대표 적 유래로는 신라시대 황창랑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황창무」가 있다(임수정 2011, 27-28).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초까지 가면극의 형태로 추어졌던 검무는 조선시대 숙종 이후 가면을 벗고, 여기(女妓)들에 의해 추어진 여기검무로 「황창검무」와는 또 다른 형태의 검 무가 나타났다. 이러한 여기검무의 모습들은 정조 4년 다산 정약용의 검무시 「무검편증미 인(舞劍篇贈美人)」이라는 시와, 18세기 후반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 신윤복의 「쌍검 대무」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후 궁중검무는 「진주검무」, 「통영검무」, 「호남검무」, 「경 기검무」, 「해주검무」, 「평양검무」 등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파생⋅전승되고 있다(임수정 2011, 27-28).
「호남검무」와 관련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호남검무」의 두 유파인 한진옥류 「호남검무」 와 이매방류 「호남검무」 비교 연구(임수정 2012), 다른 지역의 검무와 「호남검무」 비교 연 구(박미정 2018;이효선 2018;송미숙, 이지영 2023) 등 비교 연구를 하거나, 「호남검무」 로 잘 알려진 한진옥의 「호남검무」에 대한 연구(정미선 2010, 박정하 2017, 장수지 2020, 박정은 2021)가 있다. 임수정(2012)은 한진옥류 「호남검무」와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공 연양상을 통해 두 검무의 보편적 특성과 차이점을 분석하였다. 송미숙, 이지영(2023)은 진 주검무와 「호남검무」의 칼 사위를 비교 연구하였는데, 이 때의 「호남검무」는 한진옥류 「호 남검무」이다. 또한 정미선(2010)은 한진옥류 「호남검무」를 무보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이 러한 선행연구들을 살펴봤을 때 이매방류 「호남검무」에 대한 연구보다 한진옥류 「호남검 무」에 대한 연구들이 주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이매방류 「살풀이춤」과 「승무」이수자인 조혜정(曺惠貞, 1960년 10월 26일, 부산출생)을 통해 「검무」⋅「승무」⋅「살풀이춤」⋅「입춤」등 이매방류 작품들을 사사 받고 있다. 이매방류 춤을 배우면서 검무는 법무이기 때문에 이매방류 춤을 추기에 있어 가장 잘 춰야 하며 그만큼 어려운 춤이라는 설명을 여러 번 들었었다. 또한 검무를 출 때 호흡, 칼의 움직임, 대형 등 신경 쓸 것들이 많아 다른 이매방류 작품들에 비해 더 집중해서 춰야 하는 춤이라 여겨졌고 단순히 칼을 돌리는 것이 아닌 호흡에 따라 칼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되어 이매방류 「호남검무」에 대해 더 집중적으로 연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매방류 「호남검무」에 관한 연구로는 다른 유파와의 비교 연구이거나 한진옥류 「호남검무」에 관한 연구로 이매방류 「호남검무」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춤의 특징을 살 펴볼 수 있는 연구는 드물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연구자의 학습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문헌연구, 1994년 우봉 이매방 60주년 기념공연 「북소리 4」에서 연행한 「호남검무」의 영상자료를 분석하여 이매방류 「호남검무」에 나타난 이매방류 춤 특 성을 연구하고자 한다.
Ⅱ. 검무의 역사 및 유래
검무의 사료를 통해 시대별로 분류하자면 삼국시대 검무, 고려시대 검무, 조선시대 검무, 조선시대 이후의 검무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삼국시대 검무는 고구려의 벽화나 신라의 황창랑 설화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고구려 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대륙의 문화를 일찍이 받아들였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따르 면 “고구려 전성시대에 무사들이 연마하는 무예의 종목으로 칼로 춤추며, 활도 쓰며 혹 깨금질도 하며”라는 기록이 있는데(김태덕 2023, 97) 이때의 검무는 무예와 용맹을 숭상하 는 목적으로 추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검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동경잡기(東京雜記)』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동경잡기』는 조선 중기의 문신 민주면((閔周冕, 1629-1670)이 경주 지역을 대상으로 쓴 지리서이며 이 중 권 1에 해당되는 「풍속조(風俗條)」에는 황창랑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 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속조」에 따르면 “신라의 7세 소년 황창랑이 백제 궁중에 서 검무를 추다가 백제왕을 찔러 죽이고 황창랑 또한 죽임을 당했다. 이에 신라인들이 황 창랑을 가엽게 여겨 그의 형상을 본떠서 탈을 만들고 그 탈을 쓰며 칼춤을 추면서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라고 기록되었다(임순자 2013, 28-29). 이를 통해 신라의 검무는 가면무 의 형태로 추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삼국의 통일을 통해 진골(眞骨) 중심의 중앙 귀족 문화에서 지방 호족들에 의한 연합정권이 구축되었다. 또한 유교를 정치사상으로 채택하고 불교를 국교로 삼아 유 ⋅불의 조화를 통해 문화의 폭을 확장시켰다. 『동경잡기』에 따르면 고려의 검무는 삼국시 대의 검무를 이어받아 「황창무」라고 불리는 가면희의 형태로 검무가 행해졌다고 한다. 또 한 상고시대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의 문물제도를 총망라하여 분류 정리한 책인 『증보문 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악고(樂考)」에서는 고려의 검무가 「처용무」와 함께 추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박경미 2005, 13).
가면희로서의 검무는 조선시대 초까지 이어졌는데 이후 숙종 때 여기(女妓)들에 의해 가면을 벗고 검무가 추어지면서 여기검무라는 또 하나의 검무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쓴 『서포집(西浦集)』의 「관황창무(觀黃倡舞)」라는 칠언고시 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취미여아 황창무(翠眉女兒 黃倡舞)’라는 구절을 풀어보면 ‘푸른 눈 썹의 소녀가 황창무를 추도다’라는 뜻으로 검무가 여기들에 의해 가면 없이 추어졌음을 보여준다(백경우 1999, 26).
조선시대의 검무는 영⋅정조 시대에 달하면서 성행하게 되었다. 정조 때 검무는 궁중정 재로 채택되었는데. 이에 관한 기록은 진연의궤, 진찬의궤, 진작의궤, 그리고 정재무도홀기 등에 나타난다. 또한 영⋅정조 시대에는 검무를 「공막무」, 「첨수무」로 구분하였는데, 「공 막무」는 내연(內宴)에서 기녀들이 검무를 추었고, 「첨수무」는 외연(外宴)에서 무동들이 검 무를 춘 것이다(김태덕 2023, 100). 정조 4년(1780)때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무검편 증미인(舞劍篇贈美人)』 ‘칼춤을 추는 미인에게’라는 시를 통해 검무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정약용의 시는 다음과 같다(송미숙, 이지영 2023, 112-113).
雞婁一聲絲管起 (계루일성사관기) 계루고 소리에 풍악이 울리니
四筵空闊如秋水 (사연공활여추수) 넓디넓은 좌중이 가을 물처럼 고요한데
矗城女兒顏如花 (촉성여아안여화) 진주 촉석루 여인의 꽃 같은 그 얼굴
裝束戎裝作男子 (장속융장작남자) 군복으로 단장하니 영락없는 남자 모습이네
紫紗褂子靑氈帽 (자사괘자청전모) 보랏빛 쾌자에다 청전모 눌러쓰고
當筵納拜旋擧趾 (당연납배선거지) 관중 향해 절 올리고 발꿈치 들고 도네
纖纖細步應疏節 (섬섬세보웅소절) 사뿐한 걸음마다 장단에 어울리니
去如怊悵來如喜 (거여초창래여희) 쓸쓸히 물러가다 반가운 듯 돌아오네
翩然下坐若飛仙 (편연하좌약비선) 날으는 선녀처럼 사뿐히 앉으니
脚底閃閃生秋蓮 (각저섬섬생추연) 발 밑에 가을 연꽃 곱게 피어나네
側身倒揷蹲蹲久 (측신도삽준준구) 기웃이 뒤로 젖히며 한참동안 추다가
十指飜轉如浮煙 (십지번전여부연) 열 손가락 뒤쳐뵈니 뜬구름 같네
一龍在地一龍躍 (일용재지일용약) 한 칼은 땅에 두고 한 칼로 휘두르니
繞胸百回靑蛇纏 (요흉백회청사전) 푸름 뱀이 백번이나 가슴을 휘감는 듯
倐忽雙提人不見 (숙홀쌍제인불견) 홀연히 쌍칼 잡자 사람 모습 사라지니
立時雲霧迷中天 (입시운무미중천) 삽시간에 구름안개 허공에 피어났네
左鋌右鋌無相觸 (좌정우정무상촉) 이리저리 흔들어도 칼끝 서로 부딪치지 않고
擊刺跳躍紛駭矚 (격자도약분해촉) 치고 찌르고 뛰고 굴러 소름 끼치네
飇風驟雨滿寒山 (표풍취우만한산) 회오리바람 소나기가 차가운 산에 몰아치듯
紫電靑霜鬪空谷 (자전청상투공곡) 붉은 번개 푸른 서리 골짝에서 다투는 듯
驚鴻遠擧疑不反 (경홍위거의불반) 놀란 기러기가 높이 날아 안 돌아올 듯하다가
怒鶻回搏愁莫逐 (노골회단수막축) 성난 매처럼 감돌면서 노려보다가
鏗然擲地颯然歸 (갱연척지삽연귀) 쨍그랑 칼 던지고 날 듯이 돌아오니
依舊腰支纖似束 (의구요지섬사속) 예처럼 가는 허리 가늘기 한 줌일세
斯羅女樂冠東土 (사라여악관동토) 서라벌의 여악은 우리나라서 제일인데
黃昌舞譜傳自古 (황창무보전자고) 황창이 추던 무보가 지금까지 전하구나
百人學劍僅一成 (백인학검근일성) 칼춤 배워 성공하기 백에 하나 어려운 법
豊肌厚頰多鈍魯 (풍기후협다둔로) 살찐 몸매 가진 자는 흔히 둔해 못한다네
汝今靑年技絶妙 (여금청년기절묘) 네 이제 젊은 나이 그 기예 절묘하니
古稱女俠今乃覩 (고칭여협금내도) 옛 말에 일컫는 자협객 이제야 보는구나
幾人由汝枉斷腸 (기인유여왕단장) 얼마나 많은 사람 너 때문에 애태웠나
已道狂風吹幕府 (기도광풍취막부) 거센 바람 장막 안에 몰아친걸 알 만하네
이 시는 정약용이 1780년 3월에 장인 홍화보의 부임지인 경상도 진주에서 장인과 함께 남강(南江)에서 뱃놀이를 하며 검무를 보고 지은 시이다. 이 시를 보면 검무를 추는 장면이 그림을 보듯 연상된다. 32구로 되어 있는 시를 4줄씩 구분하여 여덟 개의 장면으로 묘사되 었음을 알 수 있다. 보랏빛 쾌자, 청전모, 쌍칼 등 검무의 복식에 대해 나와 있으며 서라벌 여악, 황창이 추던 무보와 같은 시 구절을 통해 신라시대의 검무가 전승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송미숙, 이지영 2023, 113).
조선시대 검무는 시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 자료로는 18세기 후반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새로 부임한 평양감사를 평양 백성들이 환영하는 장면 을 파노라마식으로 그린 「평안감사환영도(平安監司歡迎圖)」 중 「부벽루연회도(浮碧樓宴會 圖)」와, 신윤복의 「쌍검대무」가 있다(성기숙 2022, 109-112).
위의 그림들을 보면 저 당시의 검무 무복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전립, 쾌자, 치마, 저고 리, 전대로 구성되어 있고 무구로써의 칼은 쌍검이지만 칼과 손잡이가 일체형으로 된 장검 의 형태로 되어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 이후 검무는 선상기들에 의해 지방의 각 교방청(敎坊廳)에 파급되었다. 검무의 복식은 시대나 연희자에 따라 변화된 부분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전립(戰笠)을 쓰고 전복 (戰服)을 입었다. 또한 무구(舞具)인 칼은 길이가 짧아지고 19C 초 순조 때부터 조선 말기 까지는 구부러지지 않는 칼을 사용했으나 1900년대 이후부터는 칼목이 돌아가는 무구도 함께 사용되었다(백경우 1999, 35).
1909년,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각지의 교방 또한 폐지되었다. 그 이후 관청 소속 교방의 기능을 대신하는 사설 단체인 기생조합이 잠시 결성되었고, 1914년에 권번(券番)이 각 지 역에 설립되어 예기들이 교습 받게 되었다. 예기들의 교습 종목은 궁중정재와 민속춤이었 는데 이때 검무는 필수적으로 익혀야하는 종목이었다(황혜영, 소황옥 2011, 16). 또한 조 선시대 교방은 서울과 지방관아 사이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통한 교류가 잦아 각 지역 의 교방에서 우수한 여기들이 궁중의 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궁중의 공연에 참여한 교 방 여기들은 다시 자신들의 교방으로 돌아가 궁중에서 공연하였던 것을 전습하였고 그 지 역만의 춤사위를 접목시켜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검무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각 지역마다 의 검무는 교방청이 폐지되고 생겨난 권번에 의해 전습되었으며 권번이 해체된 후에는 국 악원을 통해 발전되고 변형되어 왔다(임수정 2011, 32-33).
Ⅲ. 이매방류 「호남검무」
1. 이매방의 학습과 호남검무의 탄생
이매방(李梅芳, 1925-2015)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이규태이다. 어릴 적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옆집에 사는 함국향이라는 기생의 권유로 함국향이 다니는 권 번에서 춤을 배우게 되었다. 함국향은 조도 출신으로 당시 목포 권번의 원로 기생이자 수 기생이었다(문철영 2012, 55). 권번에서 곁눈질로 춤을 따라 배우던 이매방은 그 권번의 춤 선생인 이대조의 눈에 띄어 정식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이매방은 초등학교 다닐 때쯤 만주로 넘어가 살게 되었는데 그때 매란방(梅蘭芳, 1894-1961)에게 영향을 받아 그의 춤에 있어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매란방은 당대 최고의 경극 배우로 이매방은 매란방의 경극 연습소에 있는 조교에게 세 가지 작품 을 배웠다. 이매방이 매란방에게 직접 장검무를 배웠다는 얘기도 있지만 문철영(2012)의 이매방과의 면담 자료에 따르면 매란방은 직접적으로 이매방 자신에게 춤을 가르쳐준적은 없고 매란방의 조교수가 이매방에게 춤을 가르쳤다고 한다. 매란방을 통해 춤꾼으로서 많 은 영향을 받은 이매방은 후에 매란방의 매화 매(梅)자와 꽃다울 방(芳)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 ‘이매방’을 지었다고 한다. 이매방은 만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목포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이대조에게 승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이창조에게 검무를 배웠다. 그는 승 무와 검무를 다 배운 후 권번에 들어가 입춤(기본무)를 배웠으며 이후 이창조에게 살풀이 까지 배웠다(문철영 2012, 60). 이대조는 이매방의 집안 어른이었으며 권번 사범으로 춤 과 음악이 뛰어난 전통예인이었다. 이후 이매방은 이장선, 박영구, 이창조 등 호남의 명무 들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다양한 춤가락을 익혀 자신만의 춤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성기숙 2009, 8).
이러한 결과 이매방은 그만의 춤의 특색을 살린 검무를 안무하여 무대 위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한명옥(1997)은 이매방류 「호남검무」가 이전에는 「광주검무」라는 명칭으로 사용 되었지만 이매방류 「호남검무」가 광주권번에서 배웠던 춤사위에 목포권번의 입춤사위 등 을 가미시켜 이매방류 검무를 안무하였고, 이매방의 「북소리 발표회」 및 여러 그의 공연에 서 검무를 「호남검무」라고 하였기에 이매방류 「호남검무」라고 명칭하는 것이 맞다고 하였 다(임수정 2012, 11에서 재인용).
2.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구성요소
이매방은 처음 춤을 배울 때 승무와 검무를 법무(法舞)로써 먼저 배웠다고 한다(백경우 1999, 39). 이를 통해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이매방에게 있어 춤의 기본이자 중요한 요소 를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다른 검무와 마찬 가지로 군무 형태로 구성된 춤이며 무대의 크기나 상황에 따라 4명, 6명, 8명, 10명, 12명 의 짝수로 인원을 맞춰 춤을 추게 된다.
1)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복식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무복은 치마, 저고리, 쾌자, 전대 순으로 입으며 머리에는 전립 을 쓴다. 치마는 홍색, 저고리는 연두색, 쾌자의 겉은 남색, 안쪽은 홍색, 전대는 홍색에 끝부분만 연두색으로 되어 있으며 전립의 색은 홍색이다. 그리고 치마에 끈을 묶어 허리치 마로 입어서 춤 선을 더욱더 잘 보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2)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무구
무구로 쓰이는 칼은 얇은 동이나 양철로 만들고 칼끝이 태극 모양의 곡선으로 되어 있고 길이는 손잡이 길이가 9cm, 칼 길이가 27cm이다. 칼자루와 손잡이 사이는 두꺼운 철사로 연결되어 칼을 잡고 춤을 출 때 칼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한 손잡 이와 칼 사이에 크기가 서로 다른 둥근 모양의 양철이 세 개가 있는데 이것을 ‘국화’라고하 며 이 국화는 칼을 돌리거나 뿌리고 젖힐 때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나게 된다. 이렇게 이매방 류 「호남검무」의 칼에 대해 전체적으로 살펴봤을 때 칼을 자유롭게 움직여야할 뿐만 아니 라 국화의 소리 또한 조절해야하므로 훈련된 기술이 필요하며, 다른 검무의 칼 손잡이 보 다 길이를 짧게 하여 칼을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기 위한 이매방의 섬세한 감각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반주음악과 춤사위 유형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반주음악은 염불 6장단, 타령 44장단, 자진타령 73장단, 당악 39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악기 편성은 삼현육각의 쌍피리, 해금, 대금, 장구, 북이 있다. 염불장단에 긴 호흡으로 묵직하고 끈끈한 맨손춤을 시작으로 마지막 당악장단에서 화려한 칼사위와 빠르지만 무거운 호흡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춤사위로 춤을 끝마치는 것이 이매 방류 「호남검무」의 묘미이다.
춤사위 유형은 2열종대로 서로 마주보는 대무(對舞)형식을 시작으로 ‘선 맨손춤’, ‘앉은 맨손춤’, ‘앉은 칼춤’, ‘선 칼춤’(대무 형식), ‘연풍대’, ‘제행이무’(齊行而舞)로 이루어져있다. 이때 제행이무란 나란히 서서 춤을 춘다는 뜻으로 2열종대의 대무형식을 시작으로 연풍대 이후 일렬 대형으로 대형이 바뀌게 된다. 또한 연풍대를 할 때에는 칼의 국화를 고정하여 칼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다. 반주음악에 따른 춤사위 유형은 다음과 같다.
이매방은 그만의 독특한 춤사위를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양우선사위, 비정비팔, 겨드 랑사위, 비디딤, 좌우걸이, 잉어걸이, 안가랑사위 등이 있다. 이러한 춤사위는 「호남검무」 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춤사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의 춤사위는 본 연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경우(1999), 임수정(2012)의 연구들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1) 양우선사위
이매방의 춤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춤사위로 팔을 앞⋅뒤로 들어 태극형태를 만드는 동작이다. 한쪽 팔의 손바닥이 위를 향하면 다른 쪽 팔의 손바닥이 바닥을 향하는 형태이다.
(2) 비정비팔
활 쏘는 자세에서 그대로 쓰는 용어로 발이 놓인 모양을 말한다. 두 발의 모양이 한자의 정(丁)자 모양도 아니고 팔(八)자 모양도 아니라는 말로, 즉 양 발을 약간 비스듬히 놓은 발 디딤새를 말한다. 비정비팔은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 시작 자세로 사용되거나 춤을 출 때 딛는 발사위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비정비팔(比丁比八)은 호남 춤에서 내려오는 오랜 기법 중 하나 로 한자의 형태와 발을 비슷하게 딛는 보법을 말한다(성기숙 2021, 205). 허순선(2004, 58-67)은 한국 전통 춤사위 용어를 족정팔정(足定八丁). 인서사팔(仁恕四八), 비팔비정(比 八比丁)으로 개념을 정리하였다. 그는 한국춤의 아랫몸사위에 있어서는 정확하게 두 발을 팔(八)자나 정(丁)자로 놓을 수도 있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팔(八)자처럼 정(丁)자처럼 놓을 수 있다 하였다. 또한 비팔비정(比八比丁)에는 한국춤의 중요한 미학정신이 담겨있다고 하 였는데 한국춤이 시작되었을 때 정지된 상태에서 동작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 자 세가 없이 곧바로 동작을 행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즉, 한국춤이 일반적으로 느린 동작 하나하나로 이루어진 듯 하지만 한 순간의 멈춤도 없는 것이다. 이는 정중동을 중요시하며 비정비팔의 디딤사위를 강조하는 이매방의 춤 특성과 공통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3) 평사위
두 팔을 일자로 펴서 드는 춤사위로 양 팔이 어깨 높이를 최대한 벗어나지 않게 하며 겨드랑이 호흡을 통해 팔이 일자보다는 약간의 곡선의 형태가 만들어지게 된다.
(4) 겨드랑사위
한 손은 관자놀이 쪽에서 팔을 굽히고 다른 한 손은 겨드랑 사이로 들어가는 춤사위이 다. 겨드랑사위는 통영검무의 한삼춤 사위와 칼춤 사위, 한진옥류 「호남검무」의 칼춤 사위 에서도 나타난다.
(5) 비디딤
한 발이 앞으로 내딛고 다른 한 발은 그 옆으로 끌어 붙이면서 두 발이 서로 비켜서도록 딛는 디딤 사위이다. 투스텝과 같은 형태로 볼 수 있는데 이때 양 발의 디딤은 끊기지 않고 계속 연결 지어 지는 것이 특징이다.
(6) 까치걸음
까치가 총총거리며 걷는 모습을 표현한 디딤새로 뒤꿈치를 든 상태에서 앞발로만 잔발 을 내딛는 것을 말한다.
(7) 대머리사위
대머리사위는 주로 왁대 사위와 연결되어지는 춤사위인데 맨손춤에서의 대머리사위와 칼춤에서의 대머리사위가 있다. 이 춤사위는 두 다리를 굽혀 상체를 숙인 상태에서 두 손 을 모은 후 상체를 살짝 세우면서 두 손을 옆으로 벌리고 다시 상체를 굽히면서 두 손을 자신의 배꼽 높이 정도까지 모으는 사위이다.
(8) 왁대사위
왁대사위는 한 팔은 어깨 높이에서, 또 한 팔은 머리 위로 올리는데 이때 손 모양을 ‘ㄱ’ 자 모양으로 꺾는 사위이다. 대머리사위에서 왁대사위로 연결되는 것이 이매방류 「호남검 무」만의 특색이다.
(9) 상오리사위
상오리사위는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한 손은 상대방 어깨에 올리고 다른 한 손은 상대방의 겨드랑이 가까이에 놓는 춤사위이다.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상오리사 위는 한진옥류 「호남검무」와 진주검무에서는 ‘쌍어리사위’, 통영검무에서는 ‘쌍오리사위’ 로 일컬어진다.
(10) 한칼사위
한칼사위는 땅에 엎드려서 앉은 맨손춤을 한 후 상체를 세우면서 한 쪽 칼만 잡고 칼사 위를 하는 춤사위이다.
(11) 쌍칼사위
양손으로 칼사위를 하는 춤사위이다. 이 춤사위는 자진타령장단에서 당악장단으로 넘어 갈 때 돋보이는 사위이다.
(12) 쟁기사위
한 발은 땅을 짚고 다른 한 발은 들어서 쟁기로 땅을 파듯이 각 박자마다 발을 구르면서 한 쪽 발을 다른 발 앞뒤로 움직이며 나아가는 춤사위이다.
(13) 항아리사위
항아리사위는 두 사람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허리, 다리 등 서로의 가운데 모양 이 항아리 모양처럼 보여지도록 움직이는 춤사위이다.
(14) 칼끝땅에대기사위
한 쪽 칼을 겨드랑이에서 빼, 바닥에 칼끝을 대는 춤사위이다. 이때 엄지손가락 등으로 칼의 국화를 잡아 칼의 소리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
(15) 양칼앞뿌림사위
양칼앞뿌림사위는 두 팔을 배꼽 높이로 뻗은 체 양 칼을 좌우로 같은 방향으로 뿌리는 춤사위이다.
(16) 외칼어깨사위
외칼어깨사위는 호흡을 통한 어깨짓으로 한 쪽 칼을 돌리는 춤사위이다.
(17) 머릿사위
한 팔은 머리 위, 다른 한 팔은 어깨 높이에서 칼을 돌리는 춤사위이다.
(18) 인사사위
머릿사위를 한 후 칼끝을 땅 쪽을 향하게 하고 팔은 어깨 넓이보다 조금 더 벌려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춤사위이다. 이때 상체와 하체가 서로 반대되게 약간 비틀어지며 손으로 칼의 국화를 고정시켜 칼 소리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인사사위는 「통영검무」의 시작부분 에서 한삼춤 사위에서도 나타난다.
이렇게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는 그만의 특색 있는 춤사위와 더불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울과 지방 관아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로 인한 다른 지역의 검무와 공통된 춤 사위가 나타나져 있다. 춤사위의 유형에 따라 활용된 춤사위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4)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대형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대형은 2열 종대로 서서 서로 마주보는 대무(對舞) 대형, 상오리 대형, 2열 종대로 앉은 대형, 연풍대를 통한 원 대형, 서로 어깨를 대고 도는 작은 원 대형, 삼진삼퇴 대형, 1열 횡대 대형, 가새물리기 대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열 종대의 대무 대형, 상오리 대형, 연풍대를 통한 원 대형 등은 다른 검무들과 공통적으로 구성된 대형이 지만 1열 횡대에서 무대 양쪽 끝에 있는 무용수가 서로 마주보고 무대중심을 향해 지그재 그 형태로 교차하는 가새물리기 대형은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만 보여지는 대형이다. 또한 삼진삼퇴는 대형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애주는 「춤사위 어휘고」에서 한국 전통춤 춤사위 어휘를 8가지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는데 그 중 춤의 대형을 나타내는 말(단어)에서 삼진삼퇴, 연풍대, 대무 등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이 때의 대형은 주로 군 무의 움직이는 선을 나타내는 말이라 설명하였다(김미자 2017, 9-12).
이렇게 이매방류 「호남검무」에는 다양한 대형들이 사용된다. 춤사위 유형에 따라 구성 된 대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Ⅳ. 이매방류 춤 특성을 통한 이매방류 「호남검무」
우리의 전통춤 춤사위에는 동양적 사상과 철학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춤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사상과 감정 등을 밖으로 표현시켜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이지선 2023, 40). 전통춤은 몸의 움직임에서 파생될 뿐만 아니라 그저 호흡만으로도 하나의 춤사위가 된다. 이매방의 춤은 대삼소삼(大衫小衫)을 통한 맺음과 풀음, 움직임의 정⋅중⋅동, 직선 보다는 곡선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이매방은 대삼소삼을 하나와 둘은 크고, 셋과 넷은 작으며, 수놈이 먼저 크게 나오고, 그 다음에 암놈이 작게 나오는 강박과 약박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 설명하였다(김말복, 김명숙 2004, 333). 즉, 큰 소매(大衫)와 작은 소매(小 衫), 큰 동작과 작은 동작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매방의 대삼소삼인 것이다.
이러한 대삼소삼은 나아가 태극의 원리를 통한 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태극(太極) 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중국 고대 사상 중 음양사상과 결합하여 만물을 생성시키는 우주의 근원으로 중시된 개념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극은 지구를 상징하며 음양이 생 성되는 모든 것을 말하며 이것은 나아가 우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만물지 생(萬物之生)은 음양을 통해 생겨나고 이 세상에서 낮과 밤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높음이 있으면 낮음이 있고, 원 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것과 같이 음양은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며 상대적인 것이다.
또한 음양의 변화는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변화한다. 김태진(1985)은 태극 중앙의 새 을(乙)자 곡선 모양이 점진 변화의 상징을 뜻한다 하였다. 새 을 자 곡선 모양의 양 끝이 가늘게 된 것은 변화의 시작과 끝이며 중앙의 둥근 형태는 자연의 무르익는 과정 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다(설자영 2002, 20에서 재인용). 태극은 절대적인 것 이 아니라 음과 양의 양면성을 함께 갖추고 동(動)과 정(靜)을 통하여 모습을 드러내는 상 대성을 가진 존재로 음양을 바탕으로 태극이 동하면 양이 만들어지고 태극이 정하면 음이 만들어지는, 동정이 서로를 근거로 하여 끊임없이 순환된다(설자영 2002, 21). 이렇게 태 극의 원리를 통한 음양의 조화는 이매방 춤의 전체적인 구성을 아우르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의 「호남검무」 또한 마찬가지다.
1.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호흡에서 나타난 특징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 대삼과 소삼의 흐름은 맨손춤으로 구성된 염불과 타령에서 두 드러져 나타나는데 첫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면 그다음 호흡은 작게 내쉬고, 발디딤을 강하 게 디디면 그다음 디딤은 약하게 딛게 된다. 이는 동과 정, 정과 동의 반복으로 크게 들이 마시고 강하게 딛는다 해서 그다음이 멈추거나 하지 않는 무(無)의 상태가 아니라 작지만 고요하게 흐르는 움직임을 통해 끊임없이 순환⋅반복 되는 것이다.
동과 정의 순환⋅반복을 통한 음양은 상체사위인 양우선사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큰 들숨의 호흡을 통해 한 쪽 손바닥이 위를 향하면 다른 쪽 손바닥은 아래를 향하게 되는데 이때 멈추지 않고 미세한 호흡을 통해 다음의 동작을 준비하다가 다시 큰 들숨을 하며 손 바닥을 뒤집고 엎는다. 이렇게 양우선사위는 음과 양의 움직임으로서 서로 대립적이면서 서로 의존적이다.
음양이 돋보이는 또 다른 춤사위에는 연풍대가 있다. 연풍대는 확장과 수축이 반복되는 동작이다. 몸이 확장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다시 몸이 수축되면서 제자리에서 돌면서 다 음 확장을 준비한다. 또한 연풍대의 확장과 수축은 이매방이 강조하는 대삼과 소삼, 그리 고 정중동, 동중정이 잘 담겨져 있는 동작이라고 볼 수 있다. 연풍대를 할 때 칼의 국화를 잡아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데 작품의 대형 중 확장성이 가장 큰 연풍대에서 칼의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잘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춤사위에 나타난 미적 특징
이매방의 「호남검무」는 남성성 보단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많이 내재되어있다. 호남권번 에서 춤을 배우고 익힌 이매방은 기방예술의 대가라고 볼 수 있다. 기방예술은 여성적 아 름다움이 응축된 춤으로서 이매방류 「호남검무」 또한 춤의 여성성이 많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이매방은 “요즘 한국춤은 활발하고 시원하고 대담하기는 하지만, 정(靜)이 없어, 모두 들 동(動)적으로만 춤을 추지. 안으로 고요하게 절제하며 요염한 자태를 품어내는 정의 요 소가 전혀 없다는 말이야. 그러나 내 춤에는 정이 있지(김명숙 2004, 10)”라고 정⋅중⋅동 에 관한 설명을 하는데 이를 통해 정이란 절제하며 요염한 자태를 품어내는 여성적 요소이 고 동이란 활발하며 시원하고 대담한 남성적 요소를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여성적 아름다움은 교태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데 교태(嬌態)란 사전적 의미로 아 리따운 자태, 아양을 부리는 태도를 말한다(표준국어대사전 2018). 교태의 ‘태(態)’는 자태, 태도, 나아가 모양, 형상, 몸짓 등 형태적인 면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러한 교태미는 주로 여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미라고 볼 수 있다(백경우 2011, 243). 비정비팔로 몸을 살짝 틀어 선 준비자세, 허리를 젖히고 꼬을 때 마다 몸 선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끈을 묶은 허리 치마, 몸과 얼굴을 겨드랑이 쪽으로 살짝 틀어 몸을 조금 수축시키는 겨드랑사위, 마지막 인사사위에서 상체와 하체를 반대되게 비틀어 입체적으로 보여지는 몸선 등이 교태미가 보여지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태극의 곡선미와 원형미가 잘 나타나져 있다. ‘우리 춤은 자연이다’라고 주장했던 이매방은 우리나라의 기와집, 저고리 소매, 치맛주름 등을 예를 들며 우리 춤에서의 곡선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문철영 2012, 62). 이매방류 「호 남검무」에서의 눈에 띄는 곡선미는 비정비팔로 선 준비자세, 겨드랑사위, 양우선사위, 비 디딤, 연풍대, 칼사위 등이 있다. 연풍대는 한국 춤에서 많이 활용되는 춤사위 유형으로 제자리에서 도는 것이 아니라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며 회전하는 것이다. 연풍대를 하면서 만들어가는 대형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 형태의 원형인데 이러한 곡선의 형태는 칼 을 돌리거나 뿌릴 때도 직선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곡선을 이용하여 움직이게 된다.
3.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공간적 특징
허순선(2004, 48)은 춤은 동서남북과 상하가 있는 공간에서 크고 작은 동작들이 어느 쪽으로 어떻게 움직여지는 것들이 합쳐져 시간과 공간의 조화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매방 류 「호남검무」의 가새물리기 대형은 무대의 양쪽 끝에서 무용수들이 서로 마주보며 지그 재그로 교차한 후 1열 횡대로 한 줄을 이룬다. 좌우의 대립 되는 방향에서 시작하여 호흡 을 통한 상하 움직임을 반복하며 칼을 좌우로 치며 각자의 반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좌우의 대립되는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방향으로 흩어지 는 듯 하다가 다시 하나의 줄로 합쳐지게 된다. 이는 빠른 움직임이라는 하나의 시간 속에 서 좌우로 이루어진 대형과 상하로 움직이는 하체사위가 합쳐져 시공간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구성적 예술이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춤은 몸으로 하는 예술일뿐더러 춤을 추는 사람의 감정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비정형 화적이고 비계산적이다. 또한 호흡을 통한 춤은 자연스럽게 곡선과 원형적 아름다움을 나 타나게 된다.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대삼과 소삼의 호흡을 통해 자연스러움 움직임을 형 성하며 이러한 춤사위들은 곡선미를 이루어 계속 순환되어진다. 자연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유기적으로 끊임없이 순환된다. 즉, 자연은 원, 태극 그리고 곡선들이 이루어진 확장 체라고 할 수 있다. 원은 만물의 생성 원리를 상징하며 태극은 음과 양의 상호작용을 통한 조화로움이다. 따라서 이러한 「호남검무」 춤사위는 이매방이 춤에서 강조하는 무한하고 유기적인 흐름의 자연미적 특성을 잘 담아낸 춤이라고 볼 수 있다.
Ⅴ. 결 론
본 논문은 이매방류 「호남검무」에 나타난 이매방의 춤 특성을 연구하였고,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호흡에서 나타나는 특징에는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대삼 과 소삼의 호흡이 순환하여 구성되어진 작품이다. 이매방은 그의 춤에 있어서 대삼과 소삼 의 흐름을 강조하였다. 대삼은 큰 소매, 소삼은 작은 소매라는 뜻으로 큰 동작과 작은 동작 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이매방의 대삼소삼이다.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는 맨손춤의 염불과 타령에서 두드러져 나타났다.
이매방의 대삼소삼은 나아가 태극원리를 통한 음양의 조화를 이르게 된다. 태극은 절대 적인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의 순환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하나와 둘이 크면 셋과 넷은 작 고, 첫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면 그 다음 호흡은 작게 내쉬는 것이 이매방 춤의 음양의 조화 이다. 이러한 음양의 조화는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상체사위의 양우 선사위, 연풍대, 가새물리기 대형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매방의 춤은 정⋅중⋅동의 원리로 구성되어있다. 이매방의 정⋅중⋅동은 움직임 이나 호흡이 크다고 해서 그 다음이 무(無)로써 정지된 상태의 흐름이 아니라 작지만 고요 하게 흐르는 것이다.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는 확장과 수축이 반복되는 연풍대에서 잘 찾아볼 수 있으며 이때 칼의 국화를 잡아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것도 음양의 조화를 통한 정⋅중⋅동의 흐름이 잘 구성되어있다.
둘째,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춤사위에 나타나는 미적특징에는 춤사위의 성향적인 부분 과 춤사위나 대형의 선적인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이매방은 정이란 절제하며 요염한 자 태를 품어내는 여성적 요소이고 그와 반대로 동은 활발하며 시원하고 대담한 남성적 요소 를 뜻하는 것이라 하며 그의 춤에 있어 정의 요소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매방의 정의 요소는 여성적 아름다움의 교태미를 느낄 수 있다.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의 교태 미는 비정비팔의 춤사위, 끈을 묶은 허리치마를 통한 몸 선의 극대화, 겨드랑사위, 상체와 하체를 반대되게 비튼 마지막 인사사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매방은 춤의 자연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자연성은 곡선미와 원형미로 나타난다.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 나타난 곡선미와 원형미는 비정비팔로 선 준비자세, 겨드랑사위, 양우선사위, 비디딤, 연풍대, 칼사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셋째, 이매방류 「호남검무」의 공간적 특징은 가새물리기 대형에 잘 내재되어 있다. 가새 물리기 대형은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 가장 특징적인 대형으로 빠른 움직임의 시간적 구성과 상하로 움직이는 하체사위와 좌우로 움직이는 대형의 공간적 구성이 조화를 이루 어 하나의 구성적 예술로 이르게 된다.
이렇게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이매방 춤사위의 공통된 특징이 내재되어 있을 뿐만 아 니라 칼의 국화, 가새물리기 대형 등 이매방류 「호남검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 또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호남검무」의 한 부분으로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앞으로도 끊임없는 보존과 발전, 이를 통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