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한 지역의 지역성을 반영하는 전통음악과 놀이는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체로 이러한 놀이나 축제는 풍년을 기원하며 제를 지내고, 명절이나 추수를 마친 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마을 놀이와 축제를 열었다. 이것은 지역의 공동체로서 마을의 구성원이 모두 하나가 되어 흥을 돋우어 춤추고 노래함으로 그 마을 공동체가 결속 을 꾀하는 역할도 하였다. 이러하듯 마을 단위의 놀이와 축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화되 며 점점 그 규모가 커졌다.
여러 지역의 축제 중 전라북도 전주시는 우리나라 전통음악과 놀이를 기반으로 한 축제 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바로 전주대사습(全州大私習)놀이이다. 이것은 판소리 명창들의 가장 권위 있는 경연대회이며, 판소리부(명창부, 일반부), 농악부, 무용부(명인부, 일반부), 기악부, 시조부, 민요부, 가야금병창부, 궁도부, 고법부 등 11개의 분야로 나뉘어 국악 각 분야의 공식적인 등용문이 되고 있다. 경연대회로 출발하였지만, 현재는 국악경연대회와 전야제, 축하공연 등의 공연을 함께 진행하여 전주시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1975년에 시작된 대회가 2024년 50회의 경연대회를 치러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매해마다 우리나라 최고의 판소리 명창을 배출하고, 맥을 이어왔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문화 유산을 지금 의 시대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는 충분하다.
그렇지만 전주대사습놀이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이것에 대한 역사적 유래는홍현식 (1988), 황미연(1995), 이정노(2010) 등의 연구자에 의해 진행되었다. 최근 들어 점차 다양 한 주제로 확대되어 연구되고 있는데 현재까지 발표된 주된 주제는 다음과 같다. 전주대사 습놀이 경연대회의 논점에 관한 연구는 김기형(2007), 최동현(2019)에 의해, 문화콘텐츠 개발에 관한 연구는 유영대(2011), 김용호(2024), 유영수, 이채현(2024) 등에 의해 이루어 졌다.
2024년에 전주대사습놀이는 50회를 맞이하여 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기원 은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회라 할 수 있다. 또한, 국악 전공자뿐 아니라 국악 애호가, 지역민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전공자들은 수상을 통해 명인,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입신(立身)의 기회를 얻는다. 이처럼 전주대사습놀이 전 국대회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전통예술 11개의 분야를 겨루는 우리나라 최대의 전통 예술경연대회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본고는 지금까지 연구된 것을 중심으로 전주대사습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알아보 고, 제1회부터 제50회까지의 역사를 분야, 종목, 등위, 경연 장소, 판소리 명창부 장원자 등으로 나누어 정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것이 전통예술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다섯 가지의 가치로 나누어 논하고자 한다.
Ⅱ. 전주대사습놀이의 형성과정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에 관한 학술적 고증(考證)은 자료와 문헌의 부재로 아직까지 불 분명하다. 현재 전주대사습놀이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는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1992)가 정리해 발간한 『전주대사습사(全州大私習史)』와 홍현식(1987)이 쓴 「대사습의 전통성」이 다. 따라서 2항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하고 이 외에 지금까지 선행연구 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전주대사습놀이의 연원과 시기에 관해서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영조(재위: 1724~1776) 때와 철종(재위 1849~1863)·고종(재위: 1863~1907)때로 보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전자는 숙종대의 마상궁술대회(馬上弓術大會), 영조대의 통인(通人)물놀이, 철종 후 기의 판소리 백일장 등의 여러 가지 민속무예놀이와 연희를 겨루었던 것을 대사습놀이의 시초라 보고 있다. 이것은 영조 8년 전주에 ‘재인청’과 ‘가무대사습청’이 설치되면서 4개의 정(군자정, 의방정, 다가정, 진북정)을 두어 그곳에서 처음 대사습대회가 열리며 연례행사 가 되었고, 영정조대까지 이어지다가 중단되었다(전주대사습보존회 1992, 165). 한편, 숙 종대에 민속무예놀이와 상관없이 통인들이 주관하는 순수한 판소리놀이로 보는 경우도 있 다. 이 놀이는 대사습 날에 통인이 광대를 초청하여 통인청 혹은 사정에서 광대의 판소리 를 듣고 즐겨 노는 날이라는 것이다. 영문(營門)과 본부(本府)로 나뉘어 자기 소속 광대의 위세를 했고 동지 한 달 전부터 광대를 불러 좋은 소리를 하도록 좋은 음식 등의 대우를 해주며 극진히 대접했다(홍현식 1987, 140-143).
후자는 19세기 초에 철종, 고종, 대원군 등의 왕실과 양반 관료들이 판소리를 애호하고, 중인, 일반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청중이 존재하면서 판소리는 절정을 이룬다. 이때 대원군이 ‘전주 단오절 판소리 경창대회’를 전주 감영에서 열게 하고, 장원한 명창을 서울로 상경하도록 하면서 이 대회를 ‘전주통인청대사습’으로 승격시켰다고 보고 있다(박 황 2000, 111-114). 하지만 어느 경우든 전주대사습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판소리 분야임 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것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 후기 전주대사습놀이는 매해 동짓달에 전주의 다가정(多佳亭)과 같은 정자에서 주 로 열렸다. 이것은 오늘날처럼 경연대회 형식을 치러지는 것이 아니었고, 어느 특정인에게 명창의 칭호를 안겨주는 것도 아닌, 순수한 축제 형태로 마련되었다. 전주대사습은 지금의 도청에 해당하는 영문(營門)의 전속 판소리 창자들과 지금의 시청에 해당하는 본부(本府) 의 전속 판소리 창자들이 두 패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전주대사습이 열리는 날에는 통인 은 각각 실력이 출중한 소리꾼을 초청하여 판소리를 감상했다. 광대의 인기에 따라 관중이 몰려 청중이 많은 편이 이기는 셈이 되므로 관객을 이끌기 위하여 양편의 통인, 한량, 관중 들이 두 패로 갈려서 설전이 되고 심하면 투석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광대들의 대우도 후하게 해주었는데, 음식 솜씨 좋은 집에서 그들을 극진히 대우했다. 또 한, 숨은 명창들을 찾는 경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해마다 동지 때가 되면 전국의 명창들, 젊은 판소리 창자들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판소리를 즐기는 구경꾼들이 모 여들어 판소리의 가장 큰 축제로 발전하였다(황미연 1995, 54-55). 당시 본부 전속으로 장자백(張子伯, ?-1907), 정창업(丁昌業, 1847-1889), 김세종(金世宗, ?-?), 송만갑(宋萬 甲, 1865-1939), 염덕준(廉德俊, ?-?), 영문 전속으로 이날치(李捺致, 1820-1892), 박만순 (朴萬順, 1830?-1898?), 주덕기(朱德基, ?-?), 장수철(張壽喆, ?-?) 등이 참여했다고 한다 (유영대 2011, 95). 이후 이것은 전라감영 통인청과 본부 통인청이 경쟁하며 보다 장대하 고 내실 있게 발전하였다.
『조선창극사』에는 이 외에도 전주대사습과 관련해 두 개의 내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삼십 세 경에 전주대사습장에 기량을 발휘하여 비로소 세간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정노식 1994, 187).
당시 전주부 통인청 대사습 시에 참예하여, <춘향가> 첫비두 이도령이 광한루 구경 차로 나갈 때 “방자 분부 듣고 나구 안장 짓는다. 나구 안장 지을 적에 나구 등에 솔질 솰솰”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나구 등에 솔질 솰솰’을 하는 말을 도수(度數)가 넘도록 몇 번이나 중목하고 아랫말이 막혔다. 좌중은 “저 혹독한 솔질에 그 나구는 필경 죽고 말테이니 차마 볼 수가 없다. 하고 인해 퇴장시켰다.” 그리되어서 그 후로 정은일시 낙명(落名)이 되어서 수년간 소리를 중지하고 근신하였다는 것이, 명창으로도 혹 실수가 있다는 것을 전하는 유명 한 이야기다(정노식 1994, 113-114).
첫 번째는 유공렬에 관한 내용인데, 유공렬(柳公烈, 1859-?)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30세에 전라북도 전주 통인청대사습에 나가 이름을 알리 게 되었다. 두 번째는 정창업에 관한 것으로, 정창업(丁昌業, 1847-1889)은 19세기에 활동 한 판소리 명창으로 전주대사습에 나가 「춘향가」를 부르면서 가사 실수를 하게 되어 명성 이 추락해 수년간 소리를 중지하고 근신했다는 얘기다. 이곳에 모인 관객들은 소위 귀명창 으로, 그들의 평가는 판소리 창자들의 등용문의 역할과 소리꾼을 높은 명창의 반열에 올리 거나 소리를 중단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김기형 2007, 96-97).
이를 근거로 보면 소리꾼이 당시 전라감영의 전주에서 대사습놀이에 참가하여 판소리를 하는 것을 큰 명예라 여겼고, 지방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소리꾼도 전주대사습에 참가하여 명성을 올리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소리꾼의 대우가 우리나라에서 최 고였으며, 전주에서 소리를 하는 것을 자랑이라 자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전주대사습놀 이는 지금의 경연대회처럼 제도화된 것보다는 청중과 함께하는 민속예능 놀이로 펼쳐졌을 것이다.
Ⅲ. 현행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연혁
전주대사습은 1910년을 전후한 시기까지 존속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행사 자체가 단절되기에 이르렀는데, 일제에 의해 강제 폐지되었다는 견해(정원지 2011, 222)와 저절로 명맥이 끊겼다는 견해(김판철 1984, 125) 등이 있다. 그러다 1975년에 전주대사습놀이 전 국대회는 오늘날과 같은 전통 국악경연대회로 부활되었다. 2024년 50주년을 맞이한 이 대 회는 판소리뿐 아니라 분야를 확대해 판소리부(명창부, 일반부), 농악부, 무용부(명인부, 일 반부), 기악부, 시조부, 민요부, 가야금병창부, 궁도부, 고법부 등 11개의 부문으로 나뉘어 각 분야의 공식적인 등용문이 되고 있다. 본항에서는 그간 치러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 회의 분야를 정리하며 그 문화적 가치를 말하고자 한다.
전주대사습은 1974년 전통예술에 많은 애정과 생각이 있는 박영선, 임종술, 송광섭 등이 모여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당시 문공부로부터 ‘전주대사습보존 회’로 승인을 얻으며 1975년에 이들 주관의 대사습놀이가 부활했다. 초기의 전주대사습놀 이는 국악을 애호하는 인사나 국악인들이 주축이 되어 재현되었지만, 예산, 기획, 임원진 구성에 문제점이 있었다. 대회 예산 염출(捻出)을 위해 독지가(篤志家)를 설득해야 했고, 전주지역의 화가, 서예가들의 도움으로 겨우 대회를 치르는 형편이었다(김판철 1984, 125).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보존회는 전주대사습대회의 역사적 의의를 ‘국내 최초 경창 형식의 판소리 백일장’으로 규정하였고, 판소리부, 농악부, 무용부, 시조부, 궁도부 등 5개 의 부문으로 경연이 치러졌다(유영대 2011, 96). 1975년 『월보 문예진흥』의 최종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린다.
대사습놀이란 본래 이조 숙종시대부터 전주지방에서 행해지던 궁술대회(달리는 마상에서 짚으로 만든 사람을 쏨)와 영조시대부터 행해지던 전주 특유의 물놀이, 그리고 철종조 후기부 터 국내 최초로 거행된 판소리 백일장 등의 고유민속놀이를 종합하여 명명한 것으로서 정조8 년에는 지방에 재인청과 가무사습청이 설치됨에 따라 전주의 대사습놀이는 성황을 이루어 전국적으로 인기가 집중되는 행사로 발전하였다(『월보 문예진흥』 1975, 12).
따라서 전주대사습은 숙종대의 ‘마상궁술대회→영조대의 통인물놀이→철종 후기의 판소 리 백일장’으로 이어지는 역사성이 형성되어 부활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정노 2010, 241). 이처럼 제1회 전주대사습놀이 대회는 ‘민속무예대사습’의 역사성을 내세우면서 1975년 음 력 추석인 9월 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제1회 전국대사습대회’ 막이 오른다. 그러나 제2 회 때는 풍남제추진위원회와 전주시가 주최하고 전주대사습전국대회 행사위원회가 주관하 여 1976년 6월 1일부터 3일간 음력 단오날의 기간에 맞춰 ‘제2회 전주대사습전국대회’로 치러지고 이때부터 거의 단오에 행사되고 있다. 단오에 대회가 치러진 이유는 1959년 단오 절이 전주시민의 날로 제정되었기 때문이다(진명숙 2006, 203-204; 이정노 2010, 247). 2회까지 국악협회에서 주도하던 대사습은 3회부터 사단법인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가 생 기게 되고 이때부터 사단법인 보존회의 주관으로 대회 운영체계가 바뀌게 된다. 명칭 또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로 고정된다. 명칭의 변화는 있었지만 ‘전주’의 ‘대사습’을 ‘전국 대회화’ 한다는 요지는 같다(이정노 2010, 248-249).
전주대사습놀이는 제2회부터 제8회 대회까지 전주시에서 주최를 맡아 대회의 성격을 격 상시켰으며, 1983년 제9회 대회부터 전주문화방송이 전주시와 공동주최가 되어 대회가 전 국에 생중계되며 그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유영대 2011, 96). 분야는 1978년 제4회에 기악 부가, 다음 해인 1979년 제5회에 민요부가, 그다음 해인 1980년 제6회에 판소리 일반부가 신설되었다. 이후 1985년 제11회에 가야금병창부가 신설되어 총 9개의 부문이 되었다. 이 로써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명실상부하게 당대 최고의 명창을 배출하는 경연대회로 자리잡았으며, 대사습의 지위가 확고해졌다. 2010년 제36회에는 명고수부가 신설되었지 만, 2019년 제45회에 폐지되었다가 2023년 제49회에 고법 일반부로 되살아났다. 2020- 2021년에 궁도부와 2021년의 농악부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2021년 제47회 무용부 명인부가 신설되었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 1>과 같다.
표 1
연도 | 회차 | 분야 | 총 | ||||||||||
---|---|---|---|---|---|---|---|---|---|---|---|---|---|
판소리 | 농악 | 무용 | 시조 | 궁도 (활쏘기) | 기악 | 민요 | 가야금병 창 | 명고수 | |||||
명창 | 일반 | 일반 | 명인 | ||||||||||
1975-19 82 | 1-8 | 0 | × | 0 | 0 | × | 0 | 0 | × | × | × | × | 5 |
1976 | 2 | 0 | × | 0 | 0 | × | 0 | × | × | × | × | × | 4 |
1977 | 3 | 0 | × | 0 | 0 | × | 0 | 0 | × | × | × | × | 5 |
1978 | 4 | 0 | × | 0 | 0 | × | 0 | 0 | 0 | × | × | × | 6 |
1979 | 5 | 0 | × | 0 | 0 | × | 0 | 0 | 0 | 0 | × | × | 7 |
1980 | 6 | 0 | 0 | 0 | 0 | × | 0 | 0 | 0 | 0 | × | × | 8 |
1981 | 7 | 0 | 0 | × | 0 | × | 0 | 0 | 0 | × | × | × | 6 |
1982 | 8 | 0 | × | 0 | 0 | × | 0 | 0 | 0 | × | × | × | 6 |
1983- 1984 | 9-10 | 0 | 0 | 0 | 0 | × | 0 | 0 | 0 | 0 | × | × | 8 |
1985- 1986 | 11-12 | 0 | × | 0 | 0 | × | 0 | 0 | 0 | 0 | 0 | × | 8 |
1987- 2009 | 13-35 | 0 | 0 | 0 | 0 | × | 0 | 0 | 0 | 0 | 0 | × | 9 |
2010- 2018 | 36-44 | 0 | 0 | 0 | 0 | × | 0 | 0 | 0 | 0 | 0 | 0 | 10 |
2019 | 45 | 0 | 0 | 0 | 0 | × | 0 | 0 | 0 | 0 | 0 | × | 9 |
2020 | 46 | 0 | 0 | 0 | 0 | × | 0 | × | 0 | 0 | 0 | × | 8 |
2021 | 47 | 0 | 0 | × | 0 | 0 | 0 | × | 0 | 0 | 0 | × | 8 |
2022 | 48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 10 |
2023 | 49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1 |
2024 | 5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1 |
<표 1>을 보면,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1975년 판소리부, 농악부, 무용부, 시조부, 궁도부 등 5개의 분야로 대회는 개최되었지만, 48년이 흐른 2023년 제49회는 6개의 분야 가 확장되어 판소리 명창부, 판소리 일반부, 농악부, 무용 일반부, 무용 명인부, 시조부, 궁도부, 기악부, 민요부, 가야금병창부, 고법부 등 11개의 분야로 대회가 치러졌고, 2024년 역시 11개의 분야로 치러졌다. 이처럼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양적으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상내용의 명칭에서도 다른 대회와 차별이 있는데, 다음 <표 2>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국악경연대회 일부의 시상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표 2
대회명 | 등위 | ||||
---|---|---|---|---|---|
1등 | 2등 | 3등 | 4등 | 5등 | |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전주) | 장원 | 차상 | 차하 | 참방 | 장려 |
임방울국악제(광주) | 대상 | 최우수상 | 우수상 | 준우수상 | 장려상 |
전국국악대전(서울) | |||||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 경연대회(남원) | 장려상 | × | |||
서편제보성소리축제 전국판소리고수경연대회(보성) | × |
<표 2>를 보면 일반적으로 등위는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등으로 수여된다. 하 지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여타 대회와는 다르게 장원, 차상, 차하, 참방 등으로 이 름하여 상장을 수여하는데, 이는 백일장(과거대회)때 수여되었던 입상자들의 등위이다. 이 처럼 전주대습놀이 추진위원회는 전주대사습놀이의 전국대회를 국내 유일의 판소리 백일 장인 ‘전주 통인청대사습’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기반으로 하여 전국대회를 발전시키는 모 습도 볼 수 있다(이정노 2010, 243-244).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첫 경연 장소는 전주공설운동장(현 전주종합운동장)이었다. 이곳에서 29년간 경연이 치러지다가 2004년 제30회부터 전주실내체육관으로 장소가 옮겨 지고, 2011년 제37회에 전주경기전에서 경연이 펼쳐진다. 이후 2021년 제47회부터는 전주 대사습청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경연이 치러졌다. 이것을 다음 <표 3>으로 정리하였다.
표 3
연도 | 회차 | 장소 |
---|---|---|
1975-2003 | 1-29 | 전주공설운동장 외 |
2004-2005 | 30-31 | 전주실내체육관 외 |
2006 | 32 | 전주화산체육관 외 |
2007-2010 | 33-36 | 전주실내체육관 외 |
2011 | 37 | 전주경기전 외 |
2012-2016 | 38-42 | 전주경기전 외, 한옥마을 일원 |
2017-2019 | 43-45 | 전주경기전, 국립무형유산원, 한옥마을 일원 |
2020 | 46 | 전라감영 외, 한옥마을 일원 |
2021-2024 | 47-50 | 전주대사습청, 국립무형유산원 외 |
<표 3>을 보면, 대회는 초기에 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 등의 제한된 공간에서 경연이 치러지다가 2011년 제37회부터 열린 공간으로 장소가 바뀐다. 바로 전주경기전 야외 특설 무대로 전환되는데, 이 외에도 한옥마을, 전라감영, 전주대사습청 등의 열린 공간의 야외무 대에서 경연이 진행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주대사습은 예부터 귀명창이라는 관 객들이 이 소리판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체육관 등의 제한된 공간과 방송중계 등의 여러 이유로 관객들은 함께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 자세로 대회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우리 전통예술의 가장 큰 특징인 관객과의 소통이 결여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 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다 2011년 제37회에 전주 경기전, 한옥마을 등의 열린 공간으로 경연장이 바뀌면서 관객과 소통하고, 지역성을 고려 한 변화를 이루어 냈다. 이는 귀명창들뿐 아니라 전주한옥마을의 다양한 관광객들이 연희 자와의 소통을 통해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공연방식에 물드는 효과를 주고 있다. 2021년에는 전주대사습청이 한옥마을에 개관되어 무대와 객석이 더욱 가까워 지며 관객과의 소통이 훨씬 원활해진 공간의 장이 되고 있다.
한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핵심은 판소리 명창부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 다. 이 대회에서 대통령상은 판소리 명창부 장원자 1명에게 주어지며, 수상자는 전주대사습 놀이 전국대회의 최고의 명예를 얻는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지금까지 총 50명의 판소리 명창을 배출했다. 다음의 <표 4>는 역대 판소리 명창부 장원자를 정리한 것이다.
표 4
연도 | 회차 | 장원자 | 생년/나이 | 연도 | 회차 | 장원자 | 생년/나이 |
---|---|---|---|---|---|---|---|
1975 | 1 | 오정숙 | 1935/40 | 2000 | 26 | 모보경 | 1964/36 |
1976 | 2 | 조상현 | 1939/37 | 2001 | 27 | 왕기철 | 1963/38 |
1977 | 3 | 성우향 | 1933/44 | 2002 | 28 | 염경애 | 1973/29 |
1978 | 4 | 성창순 | 1934/44 | 2003 | 29 | 송재영 | 1961/42 |
1979 | 5 | 이일주 | 1936/43 | 2004 | 30 | 장문희 | 1976/28 |
1980 | 6 | 최난수 | 1935/45 | 2005 | 31 | 왕기석 | 1966/39 |
1981 | 7 | 최승희 | 1937/44 | 2006 | 32 | 고향임 | 1957/49 |
1982 | 8 | 조통달 | 1945/37 | 2007 | 33 | 김금미 | 1965/42 |
1983 | 9 | 김일구 | 1940/43 | 2008 | 34 | 박영순 | 1973/35 |
1984 | 10 | 전정민 | 1949/35 | 2009 | 35 | 허은선 | 1975/34 |
1985 | 11 | 김영자 | 1951/34 | 2010 | 36 | 박정선 | 1961/49 |
1986 | 12 | 성준숙 | 1944/42 | 2011 | 37 | 조정희 | 1978/33 |
1987 | 13 | 박계향 | 1941/46 | 2012 | 38 | 강경아 | 1970/42 |
1988 | 14 | 은희진 | 1947/41 | 2013 | 39 | 조희정 | 1980/33 |
1989 | 15 | 김수연 | 1948/41 | 2014 | 40 | 김나영 | 1978/36 |
1990 | 16 | 이명희 | 1946/44 | 2015 | 41 | 정수인 | 1980/35 |
1991 | 17 | 방성춘 | 1948/43 | 2016 | 42 | 김도현 | 1981/35 |
1992 | 18 | 최영길 | 1948/44 | 2017 | 43 | 방윤수 | 1971/46 |
1993 | 19 | 이임례 | 1941/52 | 2018 | 44 | 이지숙 | 1984/34 |
1994 | 20 | 송순섭 | 1939/55 | 2019 | 45 | 최영인 | 1974/45 |
1995 | 21 | 조영자 | 1957/38 | 2020 | 46 | 김병혜 | 1969/51 |
1996 | 22 | 주운숙 | 1953/43 | 2021 | 47 | 양혜인 | 1988/33 |
1997 | 23 | 전인삼 | 1962/35 | 2022 | 48 | 박현영 | 1989/33 |
1998 | 24 | 윤진철 | 1965/33 | 2023 | 49 | 서진희 | 1983/40 |
1999 | 25 | 이순단 | 1948/51 | 2024 | 50 | 김예진 | 1984/39 |
<표 4>를 보면, 1975년 제1회부터 이 대회를 통해 명창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오정숙 (문공부 장관상), 조상현(제2회부터 대통령상), 성우향, 성창순, 이일주, 최난수, 최승희, 조 통달, 김일구, 전정민, 김영자, 성준숙, 박계향, 은희진, 김수연, 이명희, 방성춘, 최영길, 이 임례, 송순섭 등이다. 이처럼 장원을 수상한 대부분의 명창들은 당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지금도 국악계에서 큰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다. 또한, 이들은 국가무형유산, 도지방 무형유 산 등으로 인정받아 판소리를 전승하는 데 큰 힘을 쏟고 있으며, 이들의 활약으로 지금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자는 그 궁금증으로 그 해 많은 국악인, 애호가들, 대중매체 등의 관심을 받고 있다. 다음 <표 5>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 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자 중 보유자로 인정받은 명창들을 정리한 것이다.
표 5
연도 | 회차 | 장원자 | 보유종목 | |
---|---|---|---|---|
1975 | 1 | 오정숙 |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 동초제 |
1977 | 3 | 성우향 |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 김세종제 |
1978 | 4 | 성창순 |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 강산제 |
1979 | 5 | 이일주 |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 동초제 |
1980 | 6 | 최난수 |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 박초월제 |
1981 | 7 | 최승희 |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 정정렬제 |
1983 | 9 | 김일구 |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 박봉술제 |
1985 | 11 | 김영자 |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 강산제 |
1986 | 12 | 성준숙 |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 동초제 |
1989 | 15 | 김수연 |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 박초월제 |
1990 | 16 | 이명희 | 대구광역시 무형유산 판소리 「흥보가」 | 만정제 |
1991 | 17 | 방성춘 | 광주광역시 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 동초제 |
1993 | 19 | 이임례 | 광주광역시 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 강산제 |
1994 | 20 | 송순섭 |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 박봉술제 |
1996 | 22 | 주운숙 | 대구광역시 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 동초제 |
1998 | 24 | 윤진철 |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 강산제 |
2000 | 26 | 모보경 |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 정정렬제 |
2003 | 29 | 송재영 |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 동초제 |
2004 | 30 | 장문희 |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 동초제 |
2005 | 31 | 왕기석 |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수궁가」 | 박초월제 |
2006 | 32 | 고향임 | 대전광역시 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 동초제 |
<표 5>를 보면, 50명의 역대 장원자 중 21명이 국가와 각 지방에서 보유자로 인정받았 다. 이들은 수십년 또는 평생을 득음하여 명창이 되기 위해 올곧게 소리에 공력을 들여온 판소리 창자이다. 또한, 강산제, 동초제, 만정제, 박녹주제, 박봉술제, 박초월제, 정정렬제 등 유파별 소리의 특징을 고이 전수해 우리 소리 명맥을 잇는 대표적인 명창이다. 이러한 당대 최고의 창자들이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통해 장원자로 선정되었을 때는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앞에 제시된 <표 4>의 연령대를 보면 제1회부터 제20회까지의 장원자의 평균 연령대는 40대이다. 하지만 제21회부터 제49회까지의 장원자 평균 연령대는 30대로 점차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특히 2002년 제28회와 2004년 제30회 장원자의 나이는 각각 29세, 28세로 젊은 명창들의 등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판소리 창자는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힘든 수련을 거친다. 수련 후 그동안 갈고 닦은 소리를 창자는 경연대회를 통해 선보인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명창의 수련 은 스승 10년, 입산 10년, 유랑 10년의 역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황미연 1995, 61-62).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판소리 창자들은 명창의 반열에 오른다. 따라서 대회의 장원자들의 평균 연령대는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각각의 장원자들은 피나는 노력을 인정 받고 당당히 명창의 반열에 오른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궁도부는 조선 숙종대의 마상궁술대회를 다시 복원시켜 전주대사습의 오랜 역사 를 조명하는 분야로 볼 수 있다. 원래 마상궁술대회는 말을 타고 과녁을 맞히는 기마무예 (騎馬武藝)이지만 현재 대회에서 치러지는 것은 궁도(弓道)로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어 승 부를 겨루는 전통 궁술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조부 역시 궁도부와 같이 경연부문으로 선정되어 제1회부터 지금까지 치러지고 있다. 경제(京制)시조와 함께 완제(完制), 영제(嶺 制), 내포제(內浦制) 등 향제(鄕制) 시조의 저변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외에 기악부, 무 용부, 가야금병창부, 민요부 등에서도 실력 있는 인재들이 이 대회를 통해 발굴되며 사회 적 위상이 높아졌다. 이처럼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예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명 창과 명인들을 탄생시켜 우리 전통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Ⅳ. 전주대사습놀이의 문화적 가치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50년의 역사를, 길게는 3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경연대회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전통예술의 문화유산을 지금의 삶에서 함께하는 축제로서 그 가치는 충분하다.
전통은 인간사상의 근원적인 유형으로서 인간 문화의 기초이고 생활지침이 되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 세대의 행위에 영향을 주는 규범으로 중시한다. 이것은 과거 와 현재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이다. 그러므로 전통은 본질적으로 문화에서 기인되며, 전 통문화는 정신적, 기술적, 방법적으로 새로운 양식으로 되살릴만한 가치와 미래의 발전 및 창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자들, 우리의 정체성 및 존재성인 예법과 방식, 의미를 함유하 고 있다(이영선 2017, 95-96).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판소리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우리 전통문화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잇고 있다. 현재도 오랜 역사를 통한 문화적 정체성 을 통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은 이 문화적 가치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논하고자 한다.
첫째, 18세기 조선 숙종대의 마상궁술대회 등의 민속무예놀이가 시초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역사적 가치이다. 숙종대의 마상궁술대회, 영조대의 통인물놀이, 철종 후기의 판소리 백일장 등의 여러 가지 연희와 민속무예놀이가 후에는 전주의 ‘재인청’과 ‘가무대사 습청’이 설치되면서 연례행사가 되었다. 이후 중단되었지만 1975년에 300년 역사의 전통 예술경연대회로 부활하면서 제1회 ‘전국대사습대회’가 개최된다. 이후 ‘전주대사습놀이 전 국대회’로 명칭이 확정되어 2024년 50회의 경연을 치렀다. 300여 년, 짧게는 50여 년의 세월을 지켜온 우리 전통문화 대회는 과거의 유산만이 아니라 현재도 그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전승하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둘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전통예술인들의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인정받으며, 분야별 경연의 공식적인 등용문이 되는 상징적 가치이다. 판소리 명창부, 판소리 일반부, 농악부, 무용부 명인부, 무용부 일반부, 기악부, 시조부, 민요부, 가야금병창부, 궁도부, 고 법부 등 11개의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으며 예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명창과 명인 들을 탄생시켜 예술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판소리 명창부에서 장원을 수상하는 창자 는 대통령상을 수여 받고, 수상자는 이 대회의 최고의 명예를 가진다. 50명의 역대 장원자 중 21명이 국가와 각 지방에서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이들은 강산제, 동초제, 만정 제, 박녹주제, 박봉술제, 박초월제, 정정렬제 등 유파별 소리의 특징을 고이 전수해 우리 소리 명맥을 잇는 대표적인 명창들이다. 이러한 당대 최고의 창자들이 전주대사습놀이 전 국대회를 통해 장원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전통예술 분야 최고의 경연에서 그 자질과 실 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셋째, 전주라는 전통문화 도시의 지역 사회적 가치이다. 전주시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으며, 전주에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뿐 아니라 전주세계소 리축제 등 전통음악(판소리)을 기반으로 한 축제가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특히 전주한옥 마을에 급속하게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으며 연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전주시청 2024)하며 다양한 지역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전주는 소리의 고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전통예술 중 특히 판소리가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대사습놀이 역대 장원자 중 무 형유산 보유자는 21명인데, 이 중 오정숙, 이일주, 최난수, 최승희, 김일구, 김영자, 성준숙, 모보경, 송재영, 장문희, 왕기석 등의 창자 11명이 전북지역에서 활동하였거나 현재 활동 하는 창자들이다. 이처럼 전주는 판소리가 집약되어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통 음악 애호가들과 수많은 관광객에게 전주는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음악과 예술이 살아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 안에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일부 영향을 주고 있다.
넷째,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비롯한 문화를 경연이라는 형식을 통해 발전시키고 높은 예 술성을 추구하는 미적 가치이다. 경연 참가자들은 전통예술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오랜 시 간 동안 훈련하여 본인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받고자 한다. 이를 통해 대회는 참가자들에게 수준 높은 음악성 더 나아가 예술성을 무대에서 연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판소리는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우리 전통음악의 수준 높은 예술성과 역사성, 기술성 등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경연을 통해 참가자들이 최고 의 경지에 도달하여 전통예술의 아름다움, 조화, 형식 등의 특징들을 잘 발현할 수 있도록 이바지한다.
다섯째, 지속 가능성의 가치이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 러 올라간다. 이것은 수 세기에 걸쳐 지금의 시대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우리 문화예술의 역사적,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여 당시의 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한다. 또한, 대사습이 라는 본질을 유지하면서 일부 양적, 질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거쳐왔다. 전주대사습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국악 경연대회로 자리매김하였으며, 매해 분야별 우리나라 최고의 국악 인들을 배출하여 그 지위가 확고하다. 따라서 앞으로 경연뿐 아니라 국내외 공연, 더 나아 가 교육, 연구 등의 상호 작용을 통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가치와 미래의 번영 을 추구하여 지속 가능성의 모습이 예견된다.
Ⅴ. 맺음말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현재 판소리 명창들의 가장 권위 있는 경연대회로 인정받고 있으며, 판소리부(명창부, 일반부), 농악부, 무용부(명무부, 일반부), 기악부, 시조부, 민요 부, 가야금병창부, 궁도부, 고법부 등 11개의 분야로 나뉘어 국악 각 분야의 공식적인 등용 문이 되고 있다. 이 대회는 1975년에 시작되어 2024년 50회의 국악경연대회를 치러 특별 한 의미를 지닌다. 본고는 지금까지 연구된 것을 중심으로 전주대사습의 형성과정을 알아 보았고, 50여 년의 역사에 대해 정리하여 보았다. 그리고 이를 통한 문화적 가치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논하였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숙종대의 마상궁술대회, 영조대의 통인물놀이, 철종 후기의 판소리 백일장 등의 여러 가지 민속무예놀이와 연희를 겨루었던 것이 시초이다. 이것은 지금의 도청에 해당하는 영문의 전속 판소리 창자들과 지금의 시청에 해당하는 본부의 전속 판소 리 창자들이 두 패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판소리를 즐기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판소리 의 가장 큰 축제로 발전하였다.
1975년에 부활 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50년간의 연혁을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여타 대회와는 다르게 백일장에서 수여되었던 입상자들 의 등위와 같이 장원, 차상, 차하, 참방 등으로 이름하여 상장을 수여한다. 이것은 국내 유일의 판소리 백일장인 ‘전주 통인청대사습’의 역사와 전통성을 기반으로 하여 전국대회 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의 첫 경연 장소는 전주공설운동장이었다. 대회는 초기에 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 등의 제한된 공간에서 경연이 치러지다가 2011년 제37회 부터 열린 공간으로 장소가 바뀐다. 이는 귀명창들 뿐 아니라 전주한옥마을의 다양한 관광 객들이 연희자와의 소통을 통해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공연방식에 물 드는 효과를 주고 있다. 한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각 분야 중 최고의 명예와 함 께 대통령상을 수상받는 자는 바로 판소리 명창부 장원자이다. 장원을 수상한 명창들은 당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지금도 국악계에서 큰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다. 또한, 이들은 국 가무형유산, 도지정 무형유산 등의 보유자로 인정받아 판소리를 전승하는 데 큰 힘을 쏟고 있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판소리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우리 전통문화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잇고 있으며, 비단 과거의 유산으로 머무를 수도 있는 우리 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역사적, 상징적, 지역 사회적, 미적, 지속가능성 등 다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시초가 조선조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성과 전통성을 지닌 우리나라 대표적인 국악 경연대회이다. 이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대중과 희로애 락을 함께 하였다. 이러한 강점을 기반으로 앞으로 방송중계, 공연, 심사위원 선정 및 관리 등의 운영을 세심하게 계획하며, 등용된 분야별 수상자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다양한 기 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값진 문화에 고유의 정체성을 담아 효율적인 정책 수립을 세워야 하겠다.
앞으로 더욱더 이것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현재의 과제들을 고민하며 미래지향적 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경연뿐 아니라 국내외 공연, 교육, 연구 등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전북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그 내용이 한정적이었으나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향후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는 바이며, 계속해서 다양한 주제의 후속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