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부산은 반도적 특성과 고대 국가 이후 신라시대에 접어들면서 소통과 교류의 장점 등으 로 인해 북방지역이나 서해안 지역에 비해 특유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강이문 2015, 108). 통일신라 때에는 삼국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흡수하였고, 한민족의 고유한 문화 기틀 을 마련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부산의 정체성을 확보하여 왔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를 거친 후 근현대로 들어서면서 부산은 일본을 비롯하여 다양 신문물이 유입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박소윤 2022, 51). 무용의 역사적 흐름을 따져보면 통일신라 이전의 황창량무, 통일 후 당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오기, 신라 말기의 상염무, 처용무, 무애무 그리고 팔관회, 연등회 등에서 살펴볼 때, 부산지역은 기천년(幾千年)을 이어 온 전통예술의 보고 임을 알 수 있다(이병욱 2011, 134).
부산은 1876년 부산항의 개항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 을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모 발전하였으며, 개항을 시작으로 서구 문물이 유입되는 통로가 되었다. 또한, 이후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시기인 1900년대에는 항 구도시가 그러하듯이 외국과의 왕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다양한 외래 문화들이 유입 되었다(부산광역시 홈페이지 2023). 무용계에 있어서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일본에 서 들어 온 신무용, 교육무용, 아동무용연구소가 개설되기도 했다(박소윤 2022, 72).
부산의 문화예술을 시기별로 구분해 보면, 제1기는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50년 한국 전쟁까지의 시기로 일제의 왜곡된 문화의 잔재를 제거하지 못한 채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 말려 들었던 시기이다(부산광역시 홈페이지 2021).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다른 지역으로부 터 피난 온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고유의 민속예술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무용가들 역시 이 지역에 모이게 됨에 따라 부산은 한국 춤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들을 통해 부산 지역 의 무용 특성이 형성되었다(박소윤 2022, 48). 또한, 이러한 기회를 통해 춤의 교류가 활발 해졌으며, 권번의 학습공간이나 극장, 그 외에도 다목적 공간, 군예대, 교습소, 개인 학습 공간 등을 통해 춤이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박미경 김미숙 2020, 61-62).
제2기는 1951년부터 1962년까지로 서울과 지방과의 문화예술인들의 교류가 활발히 이 루어진 것이 특징인 시기로(부산광역시 홈페이지, 2021), 이 시기까지는 우리나라의 문화 정책이 전통문화와 문화유산에 한정되어 있던 시기로 기록되기도 한다(최경희 2007, 1). 그러나 1960년대는 활발한 경제 재건의 움직임과 함께 4.19혁명 5.16군사정변과 같은 정 치적 사건들도 빈번하게 일어났던 시대였고, 무용계도 이와 같은 변화와 발맞추어 독자적 인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는데, 체육대학 내 무용전공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특히,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대학 무용과 졸업생들이 본격적으 로 공연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세대교체의 징조가 점차적으로 보이기 시작하였으며(강이문 1991, 344), 부산지역의 무용계가 자체적인 노력을 통해 독립적 주체로서 뻗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함에 따라 부산 무용계만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김 완수 2023, 10).
제3기는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문화창조를 위한 시 기로 경제부흥에 따른 사회문화의 개발이 이루어졌고, 이에 조직적이면서 규모가 큰 예술 행사가 개최되며 부산문화의 중흥기로 구분할 수 있다(부산광역시 홈페이지 2021). 80년 대 중반에는 ‘지역문화의 활성화’ 사업이 추진되어 문화시설 건립이 이루어져 지역주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향유권이 확대되는 시기였다. 또한, 1995년에 지방분권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문화가 지역활성화에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기 시작되었고,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됨에 따라 지역의 문화정책이 활성화가 되는 중요 한 시기로 인식되었다(최경희 2007, 53).
이와 같은 과정에서 무용인들 상호 간의 돈독한 친목을 토대로 국내·외의 무용 예술의 문화적 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된 (사)대한무용협회 부산광역시지회, 부산의 전통문화를 보존 하고 생명력 넘치는 문화재 전승을 위해 노력하는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끊임없는 창의 력으로 우리 춤을 계승 발전시켜 부산은 물론 한국 무용계를 선도하고 있는 부산시립무용단 역할은 지대했다. 그리고 이러한 단체들이 활발하게 그 명맥을 이어가는 데에는 지역 학교를 중심으로 한 무용교육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3년 한성초급여자대학(현, 경성 대학교)을 시작으로 1970년 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 1983년 부산대학교와 동아대학 교가 차례로 무용과를 개설함에 따라 발레와 현대무용 등 외국 무용이 정착될 수 있었고, 부산지역의 무용의 발전과 저변확대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었다(김은영 2020, 18). 또한 이러한 무용인구 증가는 해양도시 부산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부산의 무용축제’가 활성화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의 활약을 통해 부산의 무용계는 발전해왔다.
이와 같이 오랜기간 여러 단체의 노력으로 부산의 무용계가 화려하게 성장하였으며, 전 국적으로도 다수의 무용관련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무용계 는 최근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학령인구의 감소와 교육부의 취업 중심 교육정책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대학 무용 관련 학과는 개편되거나 폐과되고 있으며 (이종희 2020, 32) 부산광역시 소재 대학 역시 예외는 아니다. 더 이상 부산의 인재가 부산 에 머무르지 못하고 상향평준화된 지역민의 무용예술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부산지역의 무용계를 진단한 연구로는 부산지역의 무용 활성화 방안 연구(이 민주, 2018), 부산문화정책 관련 연구(최경희, 2007), 부산광역시 소재의 대학 무용 관련 연구(박헌주, 2021;이혁 2016), 지역 무용축제에 관한 연구(강장군, 2022;황인주, 2010) 등이 있었으나, 부산의 무용계를 이끌어가는 단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 았다. 특히, 부산의 오페라하우스 건축으로 부산의 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이 시 기에 보다 더 많은 지역민들의 관심을 통해 설립목적에 따라 지역민들이 무용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발전적 방안을 통해 보다 풍성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 기 위해서는 각각의 조직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대해 조망하고, 성패를 진단함으로써 나아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부산지역의 무용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부산지역의 무용계 발전을 위한 노력과 이에 따른 성과를 문헌고찰을 통해 살펴보고, 부산 무용계의 현재를 진단하고 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부산 무용계에 영향을 미친 각 단체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동안에 이루었던 성과는 무엇이었으며, 현 시대성을 구현하고 있는 무용활동에 대한 대 안적 관점을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연구는 부산지역의 무용계가 직면한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며, 보다 부 산만의 색채를 지닌 예술로서의 발전적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Ⅱ. 부산지역 무용단체의 성과와 기대 역할
1. (사)대한무용협회 부산광역시지회
(사)대한무용협회 부산광역시지회의 역대 회장을 중심으로 그들의 활약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대 회장 김미화(1922-1984)는 서울 출생으로 전북여자고등보통학교(전북 여고)를 졸업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외국어전문학교를 마치고 이시이 바쿠의 치바호순무용 연구소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하였다. 이후 최승희무용학원에서 조선춤(신무용)을 사사하였 다. 1956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1957년에 무용연구소를 부산 동광동에 개설하였으며,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송수남 1999, 205).
제2대 회장 황무봉(1930-1995)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부산 충무동에 황무봉 예술무용학원을 개원하여 많은 중진급 무용가를 배출하였다. 부산에서 한국 창작 무용의 텃밭을 일군 부산지역 무용계의 선구자로 부산시립무용단 창단과 초대 안무장을 역임하였다. 많은 제자를 배출하면서 전통춤과 창작 춤의 교두보 역할을 해내는 역량을 보여주었고, 신무용의 대가이자 교육자였다(이정필 2023, 32-34).
3대·4대 회장으로 김혜성(1920-1988)은 부산 출신으로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일본 시오 다여자대학을 유학한 유학파로 1960년 푸리마발레단을 창단하였다. 그해 11월 푸리마발레 단의 창단공연으로 당시 한국춤이 중심이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발레공연 자체가 흥미로운 관심거리였다(부산예총 2012, 587). 모던발레와 한국 춤까지 작품발표회 등 장르를 불문하 고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67년에는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부산지역 무용계 발전 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무대를 떠난 후에도 부산 문화예술계의 발전을 지속적으 로 헌신하였다(하정화 이훈상 이송희 이진옥 박지현 손숙경 이혜주 2009, 325-328).
5대·6대 회장으로 강이문(1923-1992)은 함경남도 출생으로 일본대학 척신과를 수료하 고 월성국민우급 학교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한성여자대학에서 무용 미학과 무용사를 강의하였다. 춤 비평계의 1세대로 40여 년간 춤을 지척에 두고 4백여 편의 공연 평을 남기 며 무용극의 연출가로 평론가 그리고 학자로 부산 춤 계의 탄탄한 뿌리를 내리며 부산여자 대학교(현. 신라대학교) 교수로 정년퇴직하였다.
부산은 일제에 힘든 36년을 겪으면서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의 최전방에 위치함으로써 가장 혹심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기도 하였으나(강이문 1991, 336),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서양 문화와 혼합하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부산은 권번을 중심으로 한 교방춤, 풍류 춤꾼들의 마당 춤 등을 통해 우리 춤의 명맥을 잇고 있었으며, 한국창작무 용인 신 무용을 비롯해 발레, 남방춤 등 외국 춤이 유입되면서 향토 춤 일색이던 부산에서 벗어나 다양한 양상으로 춤이 변화되고 발전하였다(이대진 2017). 특히, 한국전쟁 당시는 피난민들이 집결한 곳으로 전쟁 발발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한국 근현 대무용계의 새 막을 열어었던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의 무용가들이 부산이라는 지역에 모여 춤이 교류되고, 확장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에 춤을 위한 새로운 공간들 도 생겨났고 더불어 무용공연도 활발했다. 그 당시 부산의 춤 공간으로는 권번의 학습공간, 극장, 다목적 공간, 군 예대의 무대공간, 교습소, 개인의 학습공간 등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서 알 수 있듯이(박미경 김미숙 2020, 56), 부산은 춤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무용가들은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무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에 제5, 6대 지회장을 역임한 강이문은 이와 같은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국제신보’에 컬럼을 기고하 는 것을 시작으로 무용평론, 무용이론에 대한 집필 등을 통해 당시 부산지역 무용계를 하 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으며, 무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와 부산 무용공연의 질적 향상 및 무대예술의 활동을 고취하는 데 일조하였다는 평가를 얻었다(강이문 2015A, 108). 구 체적인 (사)대한무용협회 부산광역시지회는 대한 역대 지회장을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표 1
(사)대한무용협회 부산광역시지회 역대 지회장 (The President of Busan Metropolitan City Branch of the Korean Dance Association)
구분 | 이름 | 임기 | 비고 |
---|---|---|---|
제1대 | 김미화 | 1962 | (1년 임기) |
제2대 | 황무봉 | 1963-1965 | (이후 3년 임기) |
제3,4대 | 김혜성 | 1966-1971 | |
제5,6대 | 강이문 | 1972-1977 | 비평 및 무용이론 |
제7,8대 | 배혜경 | 1978-1984 | 1984년은 부산예총 회장 겸직 |
제9대 | 황창호 | 1985-1986 | 1987년은 김온경(회장 직무대리) |
제10대 | 배혜경 | 1988-1990 | 제16,18,19대 부산예총 회장 역임 |
제11,12대 | 김진홍 | 1991-1996 | |
제13대 | 심지영 | 1997-2000 | (이후 4년 임기) |
제14대 | 김온경 | 2001-2004 | |
제15대 | 김정순 | 2005-2008 | |
제16대 | 최은희 | 2009-2012 | |
제17대 | 서지영 | 2013-2016 | |
제18대 | 윤여숙 | 2017-2018 | 2019-2020년 김갑용(회장 직무대리) |
제19대 | 김갑용 | 2021-현재 |
출처: 부산예총 50년사, 2012 585
또한 부산예총 창립이래 모든 무용공연 활동은 부산무용협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산무용협희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500여 명이 출 연(부산무대예술인 총출연)한 뮤지컬 플레이「조국창가」가 있으며, 문화공보부 창작지원 선정작품인 강이문 구성, 정병호 안무, 정막 연출의 창작무용 「산하 억만년」이 있다(강이 문 2015D, 93). 부산무용협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속적이고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였는 데 부산예총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부산무용예술제에 1977년부터 2023년까지 60회 이상을 출연하였으며, 1987년을 시작으로 부산청소년무용예술제를 36회 개최하여 부산예술의 미 래 동량을 발굴하고 예술 꿈나무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예술적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 는 행사로 각인되었다. 또한, 보다 수준 높은 무용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지도자 강습회 및 세미나를 개최하고있으며, 차세대 무용가들의 창작 의욕을 높이기 위해 21세기 부산무 용의 비젼을 제시하고 신인 무용가 발굴의 목적으로 매년 시행하는 새물결 춤 작가전 프로 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대한무용협회 부산광역지회 n.d.).
문화예술 분야의 여러 단체들은 높아진 국민소득과 활발한 문화교류 현상에 따라 증대 된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김인춘 2001, 193). 이들 단체의 역할은 국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의 문화예술을 보존하는 것 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민들의 요구에 맞는 작업을 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단체에 가입되어 있는 회원들과 무용수들의 권익 역시도 보호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한무용협회의 경우 서울시와 손잡고 실시하고 있는 ‘서울형 뉴딜 일자리 청년무용예술가 양성사업’은 2022년에 청년무용예술가 60인에게 17억 9천만 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지급하였으며(김창일 2022), 2023년에도 70인에게 약 16억 8천만 원을 지원하 였다(박세희 2023). 특히 이 사업이 크게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는 현장에서의 실무교육을 통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인큐베이팅 목적을 담고있에 이 사업에 참여하는 젊은 예술가들은 역량을 키워나가 수 있으며,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 호응도가 높다. 반면 부산의 대한무용협회의 경우 꾸준하게 공연의 장을 마련하고 여러 행사를 진행 하고 있지만, 과거의 행사 규모를 뛰어 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환경에 대해 이정윤은 부산시의 문화예술 예산이 가장 적다는 것을 지적하였 다(김은영 2023). 좋은 무용수와 안무가가 이곳에서 상주할 수 있는 자금이 바탕이 되어야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원금이 다는 아니다. 자금력이 있다 면 보다 쉽게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에 더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서로의 마음을 하 나로 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한정적 자원 안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구현해 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대면 보다는 비대면, 대화보다는 문자가 편한 세대로 기존 원로회원과 신규회원과의 소통은 예 전과 달리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될 수 있다. 따라서 협회장은 회원들이 통합할 수 있는 구심 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대화 방식을 이해하고, 의견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할 것이 다. 또한 부산의 무용계에서 가장 먼저 창립된 단체이며 충추적인 역할을 해왔던 것과 같 이 이 단체의 회원을 넘어서 각 단체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제안하고 도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2.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의 초기 명칭은 1934년 기영회로 동래줄다리기와 동래야류를 위한 공연자를 모집하기 위하여 결성하였으며, 이전의 민속예술을 재연 및 발굴하였다. 이 후 기영회는 1966년 5월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로 개칭되었고, 좀 더 큰 조직으로 발전하 게 되었으며, 1969년 3월에는 단체의 법인화가 이루어졌다.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로 개칭하였으며, 초대 이사장에 김하득을 임명하고 법인 등기를 완료하였다. 협회 산하에는 국가무형유산 동래야류, 부산광역시 무형유산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동래고무, 동래한 량춤 등을 비롯하여 지역 내 민속예술 단체 및 개인들이 소속되어 있다(부산민속예술보존 협회 n.d.). 구체적인 역대 이사장 명단은 <표 2>와 같다.
표 2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 (The Foundation Director of Busan Folk Art Preservation Association)
구분 | 이름 | 임기 |
---|---|---|
초대 이사장 | 김하득 | 1969-1972 |
제2대 | 이백순 | 1973-976 |
제3대 | 김기섭 | 1977-980 |
제4대 | 곽영욱 | 1981-982 |
제5대, 제6,제7대 | 윤우동 | 1983-995 |
제8대, 제9대,제10대 | 문장원 | 1996-008 |
제11대 | 김온경 | 2009-012 |
제12대,제13대 | 백정강 | 2013-020 |
제14대 | 박순희 | 2021-현재 |
출처: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홈페이지
이중 문장원 보유자의 업적은 대단하다. 국립부산국악원(2011)에서는 그를 “1960년대 근대화의 깃발 아래 국가적 민속예술보존사업이 시작된 후 무형문화재를 발굴하여 1967년 동래야류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게 하였다”고 하였는데, 그는 실제로 동래학춤, 동래 지신밟기, 동래고무, 동래한량춤을 시지정 무형유산으로 끌어 올렸으며, 특히, 현존하는 부 산민속예술보존협회는 문장원 업적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문장원 보유자는 스 스로 빼어난 춤꾼으로 전통춤의 미와 멋을 전승하였으며, 일제에 의해 명맥이 끊겼던 도래 민속춤과 놀이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정신혜 2015, 72).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는 동래전통민속예술축제,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 청소년민속 예술제, 무형유산 정기 전수 교육(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동래고무, 동래한량 춤), 찾아가는 무형유산 공연, 전통 놀이 한마당 토요 상설무대, 각 무형유산 특별강습회와 무형유산 정기공연 등 다양한 행사, 교육, 공연을 펼치면서 1934년부터 2024년 오늘날까 지 부산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생명력 넘치는 문화재로 전승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 고 있다. 또한 부설 제45기 동래전통예술문화대학 강좌를 개설하여 도살풀이춤반, 동래한 량춤반, 살풀이춤반, 춤‧민요 장단반, 동래학춤반, 장고춤반, 설장구반, 태평무반, 진도북춤 반, 지전춤반, 산조춤반, 동래한량춤반, 동래학춤반을 운영하며 부산지역 무용계의 저변 확 대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용 교육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는 여러 민속예술보존협회 중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 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협회 안의 여러 무형유산의 단체를 분리함으로써 회원들은 자신이 속한 주 종목에만 매진할 수 있어 전문성을 키우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하면서도, 한달에 한 번은 4개 단체가 함께 모여 연습함으로써 동래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전수생 선발에 있어서도 1년의 회원 단계를 거친 후 선발함으로써 보다 그 기간동 안 이 단체에 대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생각해보도록 하여 교육에 임하는 데에 있어서 성실 한 자세를 갖도록 하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현대사회는 교통을 발달로 지역문화 전승 에 있어 물리적 거리감은 매우 낮아졌지만 아직까지 이 단체는 주소지가 부산으로 되어 있는 지역민만을 대상으로 전승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즉, 원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이수자 나 전승교육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동래학춤이나 양반춤이 원래 남자춤임에도 불구하고 점차적 여성 전수장학생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여성 무용 수들도 그 형태를 잘 구현할 수도 있으나, 민속은 우리 조상의 생활문화를 이어가는 것으 로 원형의 무형문화유산이 잘 기록되고 보존되며 육성되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이와 같은 전통이 잘 이어져 갈 수 있도록 새로운 방안을 간구하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한편으로는 좀 더 다양한 연령대에 맞는 다양한 공연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하다. 민속에 대한 친숙함을 고취 시키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지역 자긍 심을 심어주고 문화가 전승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지방 인구소멸과 청년층의 도시 이주로 인하여 지역축제와 같은 무형유산을 지켜나가는 형태가 바뀌고 있으며, 인구가 줄어들수록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중요시 된다고 한다. 더 이상 어른들만으로는 지역민속축제를 이끌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어린이 또는 청소년의 참 여가 절실해졌으며, 교육기관에서의 홍보가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신근영 2022, 41). 부산의 인구는 매년 감소하고 있으며, 약 10년 전인 2014년(약 351만 9천 명)과 비교해 보면 약 25만명(2024년 11월 기준 약 326만 8천명) 이상 줄어들었다(KOSIS 2024). 급속 하게 인구가 소명되고 있는 도시로서 무형유산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한 번 돌아봐야 할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3. 부산시립무용단
1973년 2월 25일 전국 최초의 시립무용단으로 창단된 부산시립무용단은 끊임없는 창의 력으로 우리 춤을 계승 발전시켜 부산은 물론 한국 무용계를 선도하고 있는 무용예술 단체 이다. 부산광역시 산하의 시립 무용 단체인 부산시립무용단은 전국 최초의 시립무용단으 로 창단된 무용단으로 초기에는 부산시민회관에서 연습 및 공연 활동을 하였으나, 1993년 부산문화회관 전관 개관 이후 이전하여 현재까지 부산문화회관에서 상주하며, 시민들의 정서 함양과 지역 춤의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부산시립무용단, n.d). 초대 안무 자 황무봉으로 시작해 현재의 이정윤에 이르는 동안 부산시립무용단은 한국 춤의 로컬리 티와 동시대성을 살리면서 전통춤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김은영 2023). 역대 부산시립무용단의 안무자는 <표 3>과 같다.
표 3
(재)부산시립무용단 역대 안무자 및 예술감독 명단 (The Choreographers and artistic directors of Buasn Metropolitan Dance Company)
구분 | 이름 | 임기 |
---|---|---|
구분 | 황무봉 | 1973.03-1975.06 |
제1대 | 김현자 | 1979.04-1982.12 |
제2대 | 최은희 | 1983.04-1984.09 |
제3대 | 손세란 | 1984.09-1988.03 |
제4대 | 홍민애 | 1988.04-1992.12 |
제5대 | 김진홍 | 1993.02-1995.02 |
제6대 | 이노연 | 1995.03-2003.03 |
제7대 | 홍기태 | 2004.01-2012.12 |
제8대 | 홍경희 | 2013.01-2015.12 |
제9대 | 김용철 | 2016.04-2018.12 |
제10대 | 이정윤 | 2020.08-현재 |
출처: 이정필(2023) 부산시립무용단 50년사 p.10-11.
황무봉 제1대 부산시립무용단 안무자는 예술가이자 무용가였으며, 안무가, 교육자, 신무 용가, 신무용의 대가, 창작춤의 미래를 제시한 실천적 선구자 등 다양한 수식어로 그 실력 을 인정받았다. 춤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그는 한국 전통춤의 어법을 바탕으로 춤의 기본 을 완성함으로써 새롭게 춤의 전통을 만들었다(김영태 2005, 66). 그는 신무용과 한국창작 무용을 연계하였고, 중앙과의 교류를 통해 창작의 활로를 넓혔다. 또한 전통무용의 무대화 과정과 창작 활동, 그리고 교육과의 연결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예술가로 서의 재능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그 능력을 크게 인정 받았다(박선욱 2014, 114).
부산시립무용단 50년사(이정필 2023, 150-151)에서는 역대 안무가들을 대상으로 인터 뷰를 진행하고 그들의 업적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중 제7대 부산시립무용단 수석안무자인 이노연은 무용단원의 실력향상을 위한 무용단 내 검증시스템을 안정화 시킨 인물로 평가 된다. 단원들의 기량 향상을 위한 단원평가 항목 심사기준을 확립하였으며, 전문적인 직업 무용단의 무용수로 오디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예술감독이 다시 된다면 8년간 개발 한 작품 중 수작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하였다.
제8대 홍기태 수석안무자는 전통과 창작을 안무하여 예술인과 시민들을 눈높이에 맞는 작품을 제시하였으며 부산 시민들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위한 공연활동을 가장 성실히 수 행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홍기태는 시민들 속으로 더 다가가야 하며 시민들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작품으로 찾아가는 전통과 창작이라는 예술성이 깊은 작품으로 부산시립 무용단만이 가질 수 있는 작품 선택으로 관객을 끌어당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두 안무 가는 8년 동안 직책을 수행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장기간의 직책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수정 및 보완된 기획을 통해 부산시립무용단을 위한 체계적 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부산시민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공연기획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으로도 판단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신무용의 바탕을 둔 무용극 형식의 공연인 1973년 창단 정기공연 「아! 동래성」은 향토의식과 민족의식이 강조되어 있으면서도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띤 작품이었으며, 문화예술계의 거장들이 대거 참여해 창단공연에 걸맞는 대작이라는 평 가를 받았다. 또한, 1973년 이주홍의 ‘가시리’를 신소양이 각색하고, 안무에 황무봉과 송준 영, 강이문의 연출을 통해 구현된 「구원의 곡」도 좋은 평가를 얻었는데, 부산국악관현악단 의 생음악과 함께 펼쳐져 종합예술로서의 형태를 갖춘 작품인 만큼 많은 무용인과 대중의 관심을 이끌었으며, 이 두 작품을 통해 부산시립무용단의 토대가 구축되고, 창작무용의 길 을 맞이한 작품이며 부산시민의 문화적 욕구를 상승시키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는 평가를 얻기도 하였다(강이문 1991, 354-355).
그 외에도 「바람이어라」, 「있으라 하면 가랴마는」, 「강과 바람과 새」, 「하늘이여 사랑이 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자갈치에서」, 「천상의 길」 등의 작품은 안무 자의 장편 극무용작품으로 유명하며, 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춤을 더 매력적이고, 내용이 더 쉽게 전달됨으로 부산시 전문 직업무용단의 작품으로 매우 적합했다는 평을 받 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한국 무용계에서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며 선·후대를 아우르는 위치에서 탁월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정윤 예술감독의 한국 춤의 정통성과 국제적인 감각으로 부산 시립무용단의 춤 콘텐츠화 작업을 위해 「남풍」, 「소생」, 「본색」 등을 시작으로 2023년 부산 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공연까지 다양하고 독창적인 기획과 방향으로 영남을 아우르며 춤 예술 시장을 선도하는 부산 시립무용단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3).
부산을 대표하는 순수예술단체로 창단된 부산시립무용단은 창단된 이후 2009년 국립부산 국악원 무용단이 생기기까지 부산의 유일한 전문 직업무용단으로 부산의 무용 예술 활동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부산문화재단 전자아카이브 2017). 또한 전통춤의 계승 발전에 소명 의식을 갖고 우리 춤 현대화의 실험적인 작업과 아울러 꾸준히 한국 무용공연을 해왔으며(부산 역사문화대전 n.d.), 한국무용을 바탕으로 한 창작 작품을 활발하게 선보이고 있다.
순수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은 상당한 기간동안 예술을 접촉했다는 의미이다. 즉, 시민들이 원하는 예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이는 정부가 중심 이 되어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정홍익 1989, 243). 즉,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공연을 하는 것,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 보다 대중화 시키고 저변확대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부산시립무용단의 공연 횟수를 보면 이와 같은 활동 이 저조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예시로 2023년의 경우 부산시립무용단은 정기공연 3회, 특별공연 4회, 찾아가는 예술단 3회, 해외공연 5회 등 공연횟수가 15회로 집계된 반면, 직전 김용철 예술감독이 정기공연 2회, 특별공연 16회, 순회공연 3회, 찾아가는 예술단 39 회, 해외공연 2회, 기타 3회 등 총 65회로 집계된 것과 비교해 볼 때(부산시립예술단, n.d.), 크게 공연 횟수가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중 찾아가는 공연의 경우 극단적으로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공연을 보러 움직이기 힘든 취약계층들을 위한 공연으로, 예술공연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사람들이 이를 통해 마음에 위안과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홀히 하면 안되는 공연이다. 특히, 시민들에게 문화 향유권을 누리게 하는 것이 이 단체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점에서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무용인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우선 춤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계층의 관람객이 함께 할 수 있는 부가적인 프로그램을 구성하 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공연을 기획하더라도 홍보가 부족하다면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 2024년 10월에 공연된 「용호상박」에 대해 부산문화회관 서포터즈 10기의 후기를 빌리자면, “홍보 때 장수들의 늠름한 장면 하나라도 넣어줬다면!! 유튜브에 짧은 영상이라도 올렸다면”이라는 아쉬움을 가장 먼저 토로했다. 홍보물만으로 는 참가 인원의 규모, 지루하게 여겨지는 판소리와의 결합 정도 등을 알 수 없었기에 관람 장벽이 높아졌음을 지적했다. 또 다른 하나는 팜플렛에서 제시된 판소리의 배경과 줄거리 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각각의 등장인물이 삼국지 적벽대전의 누구를 표현하고 있는지, 스토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푸른 색과 붉은 색의 대치구도는 무엇을 나타내고 자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후 정확한 정보를 뉴스 등을 통해서도 정확한 정보 를 얻기 힘들었다고 하였다. 역시 홍보가 실제 관람객들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루트를 찾아내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다.
4. 부산의 대학 무용학과
대학 무용의 목적은 무용 예술 전반에 걸친 전문가 양성을 위하여 춤 예술 교육의 체계 적인 이해도를 높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하며, 특히 창의력과 지도력을 길러서 우수한 무용 예술 전문가, 이론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에 있다(박헌주 2021, 142). 또한, 음악, 미술, 국악, 연출, 연기 등 예술 관련 전반에 걸쳐 무용과 연계한 학문을 무용학적 측면에서 연구하여, 효율적인 춤 연구에 따른 앞으로의 춤 이론 및 실기연구의 시야를 폭 넓게 넓혀 나갈 수 있는 무용 전반의 기초적 학문을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부산대학 교 무용학과 2023). 부산의 무용계를 주도하던 대학의 무용학과들의 활동은 크게 4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1960년대부터 1980년 초반까지는 ‘대학 무용교육의 도입기’이다. 해방 전후 무용 교육은 무용가들이 운영하는 연구소를 중심으로 행해졌으며, 무용학과 설립 이전에는 무 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체육학과의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부산에서 최초로 대학 내 무용 전문 교육이 이루어진 시기는 1963년으로, 한성여자실업초급대학(현 경성대학교)에 서 4개 학과(음악과, 미술과, 체육과, 보육과)를 개설하면서 그 중 체육과에 무용전공이 처 음 도입되었다(조영미 2021, 262). 이후 1970년에 부산여자대학교(현 신라대학교)에서도 체육과 내 무용전공이 도입되었고, 그로부터 9년 뒤인 1979년에 독립학과로 무용학과가 처음 개설되었으며, 이를 시작으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산대학교, 동아대학교, 동주 여자전문대학, 부산여자전문대학(현. 부산여자대학교), 부산 경상전문대학 등이 무용학과 를 신설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부산지역 무용계의 구심점이 사설 무용연구소에서 점차 대학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며(이민주 2018, 9), 무용예술로서 하나의 학문 체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순수 공연예술로 부상 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부산시 소재의 대학 무용학과 개설 연도는 <표 4>와 같다.
표 4
부산의 대학 무용학과 개설 연도 (The Opening Year of the Department of Dance in Busan)
학교명 | 개설연도 | 소속 대학 |
---|---|---|
부산여자대학교(현. 신라대학교) | 1970년 | 체육학과 |
경성대학교 | 1980년 | 예술대학 |
부산대학교 | 1983년 | 예술대학 |
동아대학교 | 1983년 | 체육대학 |
출처: 각 대학 홈페이지
둘째, 1980년대 후기부터 1990년대까지는 ‘대학 무용교육의 정착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대학마다 무용(학)과의 개설이 증가하면서 같은 장르의 전공자들이 모여 공 동작업을 시도하였고, 이와 함께 무용 단체의 태동이 가속화되었다. 대학의 교수들을 중심 으로 대학에 적을 둔 무용가들은 제자들을 기반으로 무용공연을 활발하게 이어갔으며 동 문 단체의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발전하였는데(조영미 2021, 271), 이러한 공연활동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한국 무용계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대학무용 단의 창단 연도 및 지도교수는 <표 5>와 같다.
표 5
부산시 소재 대학 중심 무용단 창단 연도 및 지도교수 (The Establishment Year and Advisor for Dance Organization of College in Busan)
대학 | 장르 | 연도 | 지도교수 | 무용단명 |
---|---|---|---|---|
부산여자대학교 (현. 신라대학교) | 한국무용 | 1986 | 김온경 | 춤두레무용단 |
1987 | 양학련 | 창작무용연구회 | ||
1991 | 김온경 | 겹사위무용단 | ||
발레 | 1988 | 김정순 | 부산새싹발레단 | |
1989 | 김정순 | 땡브르발레단 | ||
현대무용 | 1985 | 하정애 | 하야로비 현대무용단 | |
경성대학교 | 한국무용 | 1985 | 최은희 | 춤패배김새 |
1992 | 이영희 | 새앎춤회 | ||
발레 | 1991 | 신정희 | 그랑발레 | |
현대무용 | 1988 | 남정호 | 현대무용주-ㅁ | |
부산대학교 | 한국무용 | 1986 | 엄옥자 | 연무회 |
1989 | 이윤자 | 연정춤모임 | ||
1998 | 강미리 | 강미리 할무용단 | ||
발레 | 1993 | 주수광 | 부산발레연구회 | |
1998 | 민병수 | 브이쉬발레단 | ||
현대무용 | 1986 | 정귀인 | 부산현대무용단 | |
1994 | 박은화 | 현대무용단 자유 | ||
동아대학교 | 한국무용 | 1986 | 김은이 | 한국춤모임 짓무용단 |
발레 | 1993 | 김복선 | 동아발레 연구회 | |
현대무용 | 1990 | 장정윤 | 로고 현대무용단 |
출처: 윤여진 2022. 우여곡절 삭인 몸의 언어, 부산은 춤 역사의 살아 있는 현장. 부산일보
셋째,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는 ‘대학 무용교육의 확산기’라고 할 수 있다. 1986년 이후에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동문 단체의 공연이 급증하면서 부산지역 무용계는 대학을 중심으로 무용 교육이 정착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부터는 부산 무용의 공연 활동이 급격한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 이는 대학 무용 교육의 결과 중 하나이다. 안무가, 창작가, 행정가 등 예술가 및 관련 전문가로 활동하고자 하는 무용인들이 증가하였으며, 예술의 기초적이고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무용인구가 증가하는 시기였다(이지선 2016, 102).
이 시기에는 각 전문기관과 협력하여 무용교육이 이루어졌는데, 21세기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진로와 긴밀한 연계성을 지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고, 일부 직업군에 편중된 것이 아닌 실용적이고 전문성이 심화된 교육내용으로의 특성화를 추진하였다(김미 숙 2014, 52). 보다 전문성과 경쟁력을 지닌 무용 예술 분야의 교육 인재 양성을 위하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한국예술강사 지원사업(2005-현재)에 대학이 적극적으로 참여 하고 있으며, 대학을 거점으로 이루어지는 자격증 제도인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 제도 (2013-현재)를 통해 무용인이 교육적, 인문학적, 문화 예술적 소양을 두루 갖추도록 하였 고, 학교무용교육을 통한 전문 무용 교육, 사회교육으로서의 사회 무용 교육의 활성화를 이끌어냄으로써 무용강사의 입지를 넓폈다(이지선 2016, 109).
넷째, 2010년 이후는 ‘대학 무용교육의 침체기’라고 할 수 있다. 무용 교육의 발전 역량 을 보여주었던 부산은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제운영과 IMF 사태를 겪으면서, 부산에서 활 동하던 무용인들이 서울로 이탈하게 되는 문제를 겪었다(이민주 2018, 24). 이러한 문제는 공연 현장에서 예술 춤 공연의 위축과 함께 부산 대학 무용학과의 폐지라는 실질적인 교육 현장의 문제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부산 춤의 위기로 극명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민주 2018, 38). 그동안 부산 무용의 침체는 춤 비평가들과 이론가들에 의해 진단되고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학의 무용교육 과정은 무용의 세계화에 대한 대비와 무용 인재의 사회진출, 창조성 개발 방안 마련 등과 같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무용 교육 환경변화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데 미흡했다(장윤정 박준길 2005, 805). 또 한 2010년대 이르러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삶의 의식이 변화하면서 교육정책(대학구조개혁 정책 2011-2015년)과 사회구조의 변화, 대학 간 경쟁 구도, 대학 교육프로그램의 낙후 등의 이유로 대학 무용학과는 더욱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이 지선 2016, 100-101), 부산도 2012년 동아대학교 무용학과 폐과를 시작으로 2018년 경성 대학교의 무용학과가 폐과로 이어졌으며, 수도권의 다양한 무용 활동, 예술지원 등으로 부 산지역 무용인 이탈, 수도권 입시편중에 따른 무용 인구감소, 무용공연 축소 및 수도권과 지역 간의 문화 격차로 인한 무용 인구 이탈을 극복하지 못함에 따라(이민주 2018, 28), 부산대학교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으며 결국 현재와 같은 침체기에 이르렀다.
2023 전문예술법인단체 백서(예술경영지원센터, 2023 115-119)에 의하면 부산광역시 소재의 총 145개 전문예술 법인 및 단체가 있으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항목은 ‘전문예술법인·단체 지정 시 각 시·도 별 행정적 지원 강화(55.7%)’ 였으며, ‘전문예술법인·단체 대상 교육 및 컨설팅 확대 (16.5%)’, ‘전문예술법인·단체 홍보 강화(14.4%)’, ‘전문예술법인·단체 자격요건 명확화(지 정범위 재설정 등, 2.1%)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는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많은 단체들이 행정 처리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해 전미애(2022 305)는 무용가 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관련 법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행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한계점을 가진다고 하였다. 이는 대학의 교육과도 연결되는데, 교과목 개편을 통해 대학의 무용교육이 단순히 무용수를 양성하는 기관에서 벗어나 졸업 후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례로 많은 예술가들은 지원정책을 구체화함에 있어서 무용가로 활동해 본 직원의 채용을 언급하기도 한다. 일처리를 함에 있어서 실제 무대에 작품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사안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직원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무용학과에서는 무용수나 안무가를 양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용단체 에 필요한 전문적인 행정가를 배출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5. 부산국제무용제
지역 축제는 그 지역에 내재하는 특성을 기초로 한다. 지역축제의 경우 특정 지역의 전 통적이고 향토적인 축제를 의미해 왔으나 현대에 와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무형 문화 자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지역민의 총체적 삶을 반영하는 문화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서효은 2007, 4). 이러한 지역축제는 지역의 이미지 제고와 지역인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 문화관광 활성화에 공헌함으로 지역발전에 이바지한다(강장군 2022, 13-14). 상징성, 교 환성, 주체성, 흥미성, 지역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지역의 산업 발전과 문화적 공감 을 형성할 수 있고,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특히,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시작 된 이후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반영한 축제는 경쟁적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무용 축제 역시 그러하다. 지역문화축제로서의 문화적 요소와 상징성, 지역의 향토적인 주체성, 문화의 교 환성, 축제의 흥미성 등의 요소를 통해 참가자들은 축제의 가치를 지각하게 된다(윤홍열 2007, 72).
부산은 현재 서울 다음으로 제2의 도시로 영남권 제일 도시이며, 해양의 도시이다. 이러 한 지역의 다채로운 국제적인 행사인 부산국제영화제, 불꽃축제, 부산국제무용제, 국제락 페스티벌,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등 매년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황인주 2010, 121).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무용축제는 부산국제무용제로, 2005년 부산국제해변무용제(광안리 해변 특 설무대)로 시작되어 2008년 (사)부산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를 설립하고 부산국제무용제 (해운대 해변 특설무대)로 명칭을 변경하여 재탄생하였다. 이러한 축제가 성공적으로 개최 하기 위해서는 조직위원회의 역할이 크다. 부산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는 이전까지만 해도 춤으로 국제교류가 미미했던 국내 무용계에 변화를 준 축제라고 할 수 있는데, 해가 거듭 될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의미있는 국제적인 행사로 성장해가고 있다.
2024년 제20회를 맞는 부산국제무용제는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부산의 기업, 그리고 각국 주한대사관과 외국 정부 기관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협업을 통해 진행되고 있으며, 2009년부터는 국제안무가 육성프로그램인 AK21(Art Korea 21)를 열어 참신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통해 젊은 안무가 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김은영 2024A). 또한, 부산국제무용제 는 지역 주민의 문화축제로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로 부산국제무용제는 모바일 댄스챌린스 공모, 찾아가는 학교공연, 어린이 춤 그림 공모, 부산국제무용제 매해 행사의 주제를 공모를 통해 수상하는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이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관객 개발과 직간접적인 홍보역할이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 라 2012년부터는 부산국제무용제 행사의 주제를 전국민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선정되도록 하였는데(부산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 2024), <표 6>에 제시된 바와 같이 화합과 전진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부산을 상징하는 힘찬 주제를 내세우고 있임을 알 수 있 다. 부산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2023A)는 부산국제무용제에 세계무대에서 검증 받은 높은 수준의 무용단들의 참여, 폭 넓은 네크워크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무용단의 참여를 통해 국제교류의 창구 역할을 해왔다. 즉, 부산국제무용제는 대중들의 문화의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민참여형 무용콘텐츠이자, 신진 및 중견 안무가들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레파토리 를 선보이기 위한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표 6
부산국제무용제 참가국수, 단체수, 작품 수 및 행사주제 (The Number of Participating Countries, Dance Company, Performance, and the Theme in Busan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회차 | 개최날짜 | 참가국 수 | 단체 및 | 작품 수 | 주제 |
---|---|---|---|---|---|
20회 | 2024.6.7-6.9 | 15개국 | 40여개 | 60개 | 부산국제무용제 20년, 춤으로! 꿈으로! 세계로! |
19회 | 2023.6.2-6.4 | 10개국 | 40여개 | 60개 | 춤과 하나로! 부산과 세계로! |
18회 | 2022.6.3-6.5 | 10개국 | 40여개 | 66개 | 희망의 춤 부산에서 하나되다 |
17회 | 2021.6.4-6.7 | 17개국 | 46여개 | 56개 | 춤의 꿈결, 꿈의 물결 |
16회 | 2020.9.11-9.12 | 2개국 | 26개 | 49개 | 춤, 바다 위 푸른 몸짓 |
15회 | 2019.6.7-6.9 | 10개국 | 45개 | 60개 | 세계인의 춤, 부산에서 피어나다 |
14회 | 2018.6.1-6.3 | 15개국 | 50개 | 66개 | 춤으로 여는 부산, 세계로 잇는 감동 |
13회 | 2017.6.2-6.6 | 14개국 | 45개 | 54개 | 부산愛 물들다! 춤으로 通하다! |
12회 | 2016.6.3-6.7 | 11개국 | 57개 | 65개 | 춤추는 부산, 흥겨운 세상 |
11회 | 2015.6.12-6.15 | 11개국 | 46개 | 53개 | 세계인의 몸짓 부산이 춤춘다 |
10회 | 2014.5.30-6.3 | 11개국 | 26개 | 34개 | 10년의 몸짓, 날개를 달다 |
9회 | 2013.5.31-6.4 | 10개국 | 44개 | 52개 | 춤! 바다를 열다 |
8회 | 2012.6.1-6.5 | 14개국 | 155개 | 200여개 | 소통과 화합 |
2024년에는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다. 2023년도에 특별 초청공연 작품 ‘낮이 밤에 빚진 것(프랑스, 에르베쿠비컴퍼니)’의 안무가 에르베쿠비를 다시 초청하여 2주간의 안무가 캠 프를 열었다. 그는 한국무용수에 대해 “부족한 점도 없진 않지만, 굉장히 빨리 배우고 익히 면서 부족한 점을 지워나갔다”고 언급했으며, “한국 댄서들은 표현력이 참 좋은 편이다. 한국의 무용수들이 최소 1년에서 2-3년이면 훨씬 좋은 댄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으며, 이에 무용단의 정단원으로 캐스팅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김은영 2024B). 실제로 부산의 무용계는 창·제작 요청을 칸시(市)로부터 받으면서 서울이 아닌 부 산(BIDF)과 손을 잡게 된 것에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이로써 부산의 무용가가 국제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제작과 함께 유통의 매개 역할을 하게 된 것 에 변화되는 부산의 무용계를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국제무용제 역시 숙제를 안고 있다. 부산지역의 무용은 무한한 잠재력과 우수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는데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는 지역 무용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는 의식을 공공화해야 한다. 그리고 부산국제무용제 가 가지는 지역성을 인정받아 지역 무용 축제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심정민 2019). 그러나 지역의 무용과도 폐과되는 과정을 겪었으며, 입시생들도 수도권에 진학하기를 희망하고 있어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 어려운 것이 실정이다. 즉, 이 도시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갖을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인재 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역의 축제는 지역 문화 축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유산, 매력적인 문화 공간, 우수한 자연환경 등 독특한 성격을 지니는 지역 마케팅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강장군 2022, 11). 2023년 개최된 부산국제무용제 포럼에서는 ‘부산국제무용제 20주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전’이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특화된 부산지역 이미지의 불명확성, 시민들의 관심 부족과 재무적 취약성 및 업무 연속성의 한계, 양적 확장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 선정 등이 지적되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축제의 통합 운영, 부산국제무용제 운영 위원의 연임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azation) 통한 지역 이미지 제고 등이 제안되었다 (부산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 2023B).
특히, 김혜라(2022)는 부산국제무용제가 다양성과 공공성은 확보되었으나, 테마를 갖춘 프로그램의 구성과 공연시간, 작품의 결에 따른 일관성 있는 배치 등이 부족하여 차별화된 축제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즉,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이다. 따라서, 매해 찾고 싶은 무용축제로 자 리 잡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개성을 가진 국제무용제로 거듭나기 위한 마케팅 요소를 개발하고 지역민 외 방문객이 유입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간구 되어야 할 것이며, 공연 관람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Ⅲ. 결 론
이 연구에서는 부산의 주요 무용단체들이 지금까지 이루어 온 성과를 살펴보았으며, 나 아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부산의 무용계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대표적인 단체로 ‘(사)대한무용협회 부산광역시지회’, ‘(사)부산민속 예술협회’, ‘부산시립무용단’, ‘부산의 대학 무용과’, 그리고 ‘부산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를 선정하였으며, 이들 단체의 역사와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언급하였 다. 첫째, ‘(사)대한무용협회 부산광역시지회’는 부산의 무용계를 이끌어 오는데 구심적 역 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회장의 임기가 4년 단임제임에 따라 장기적인 기획력을 갖기 어려웠으며, 이로 인해 변화를 통한 회원들의 권리 신장과 새로운 도전을 통한 지원이 여전히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었다.
둘째, ‘(사)부산민속예술협회’의 경우 다양한 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내부 단체들이 어느 민속예술협회보다도 독립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부산의 민속춤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회환경의 변화를 인지하고 회원 의 지역적 범위를 넓혀 지역춤의 한계를 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셋째, ‘부산시립무용단’의 경우 역대 안무가들을 바탕으로 다수의 공연이 이루어져 왔으 며, 무용 공연의 대중화에 힘써 왔다. 다만, 최근 해외공연은 5회까지 증가한 반면, 찾아가 는 예술단의 공연은 이전 39회에서 0회로 줄어 무용단 설립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한 무용 단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으며, 무용단의 존재 이유에 맞는 공연 계획이 필요하 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넷째, 부산광역시 소재 대학의 무용과의 경우 200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개설되면서 호 황기를 누려왔었다. 그러나 무용과가 폐과되면서 무용교육의 주축을 이루던 대학교수 중 심의 무용단체들은 활동의 지지기반을 잃게 되었다. 특히, 학과 개설의 양적 팽창에 비해 교육과정에 대한 질적 성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실제로 많은 예술단체들이 예 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력의 행정적 지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해 이를 충 족할만 한 인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교육과정의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섯째, 부산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의 경우 운영위원장의 계획 아래 여러 나라의 다양 한 춤을 소개하고, 젊은 무용수 및 안무가를 발굴하며, 많은 시민들이 관람하고 직접 참여 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안정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 다. 특히, 특별초청공연의 유료화를 통해 수익을 거두기 위한 변화를 이끌어 왔으며, 우수 한 무용수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진로를 개척하는 등의 성과를 통해 발전해나가는 모습 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축제는 부산의 이미지를 담은 정체성을 찾지 못하 여 여느 국제축제와 다를 바 없으며, 테마를 바탕으로 한 일관성 있는 무용단체의 공연작 품으로 기획하지 못했다는 혹독한 평가도 얻고 있다. 다만, 조직운영위원회의 공식적인 정 관 변경으로 운영위원장의 임기를 임기 2년 연임 및 재임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앞으로 는 좀 더 장기적인 기획력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공연이 계획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부산의 무용계는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많은 무용단체들의 노력으로 여러 성과를 이루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각 단체가 처한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이들 무용 단체의 존재 목적은 보다 효율적인 경영 속에서 지역민들의 문화향유권을 높이는 것, 각 회원 활동의 기회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각 단체의 회원이 궁극적으로 경제적으로 또는 자기계발과 같이 어떤 방향으로든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활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교육이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유능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창립목적을 가지 단체라도 결국 그 목적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의 지속성은 조직원들의 이익과 함께 간다. 즉, 회원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다. 그러나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만 단체가 움직인다면 그 단체는 또 다른 한계에 다다 를 것이다. 따라서, 각 단체의 수장들이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고 자신의 무용단체 의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산의 무용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단체와의 상생의 길을 협의하는 자세를 통해 효과적으 로 의견을 수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함으로써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특유의 고유성을 기반으로 한 무용예술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저자소개
이경화는 부산대학교에서 “부산 지역의 무용 발전을 위한 활성화 방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부산광역시 국가유산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연구로는 “동래학춤의 전승·보존을 위한 문제점 분석 및 활성화방안 모색”, “부산국제무용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비판적 검토”, “예술무용의 기능과 정체성” 등이 있다.
Lee Gyunghwa [Yi Gyeonghwa] received her PhD from Pusan National University for the dissertation Promotion Measures for the Development of Dance in Busan. Yi is currently serving as a specialist member of the Busan Metropolitan City National Heritage Committee. Her research includes “Analysis of Problems and Exploration of Activation Measures for the Transmission and Preservation of Dongnae Hakchum,” “Critical Review for Establishing the Identity of the Busan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and “The Function and Identity of Artistic Dance.”
추나영은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부산대학교 박사후연구원, 한국교통대학교 연구원, 동의대학교 연구교수 등으로 재직하였다. 주요 연구로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과정 방향 제안: 좌수영어방놀이를 중심으로”, “민속축제에 대한 부산 지역민의 인식 차이”, “부모의 양육태도가 무용전공 학생의 정서지능 및 그릿에 미치는 영향” 등이 있다.
Choo Nayoung [Chu Nayeong] received her PhD from Pusan National University and later worked as a research professor at Dong-Eui University. Her major research includes “The direction of curriculum for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Focus on Jwasuyeong Eobang Nori,” “The Difference in Folk Festivals of Busan Residents,” “The Effect of Parenting Attitudes on Emotional Intelligence and Grit of Students Majoring in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