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21세기 디지털 기술은 예술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미지, 영상, 코드와 같은 비물질적 형식으로 예술이 생성되고 유통되면서, 예술은 더 이상 전통적인 물리적 실체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최봉 2025).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표현 수단의 확장을 넘어, 예술작품이 어떻게 존재하며 창작자와 수용자 간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 감상과 소유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새롭게 제기한다(김 정은 2021, 3; 박대민 2021, 78; 김시은 2023, 1). 다시 말해, 예술의 존재 방식은 디지털 기술이라는 새로운 기반 위에서 철학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기반의 전환은 단순한 매체 변화의 차원을 넘어서, 예술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조건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실연성과 시간성을 본질로 하는 무용예술은 디지털 환경과 의 접점에서 고유한 존재론적 특수성을 드러낸다.
무용은 특정한 신체가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실현되는 예술로, 공연이 끝나는 순간 그 예술적 실재도 함께 사라진다. 이와 같은 특성은 무용을 ‘기록하기 어려운 예술’, 혹은 ‘소멸하는 예술’로 정의하게 만들며, 보존이나 소유, 유통과 같은 현대 예술시장의 중 심 논의에서 지속적으로 주변화되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나수진, 김연재 2024, 228; 송지 혜 2024, 77; 이소미 2025, 156). 결국 이는 무용의 고유한 존재 방식이 현대 기술 환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용이 지닌 존재론적 제 약을 극복하고자, 예술가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이를 기록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전 개해 왔다. 예컨대 영상 촬영, 모션캡처, 3D 스캐닝과 같은 기술은 무용의 움직임을 디지 털 방식으로 포착하고 보존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최문정 2021, 105). 그러나 이 러한 기술적 접근은 공연 현장에서 발생하는 실연의 즉시성과 현장성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무용예술의 실연성과 진정성이라는 본질적 조건에 대한 물음이 다시 제기되며, 이러한 맥락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예술의 존재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를 사유한 여러 이론가들의 논의와 맞닿는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 작품이 특정한 시간성과 공간성 속에 존재할 때 비로소 지니는 고유한 존재감을 ‘아우라 (aura)’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기술복제가 아우라를 해체함으로써 예술의 진정성과 고유성 이 약화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동시에 예술의 접근성과 전시 가능성을 확대시켜 예술의 민주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강조하였다(Benjamin 2007, 46). 이러한 이중적 관 점은 아우라의 상실을 단순한 쇠퇴로 보지 않고, 기술 환경 속에서 예술 향유 방식이 새롭 게 구성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이해하게 한다. 본 연구의 관점에서는 이와 같은 논의가 무형예술의 존재 방식을 해석하는 데에도 유효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특히 실연성과 현장 성을 핵심으로 하는 무용예술의 경우, 디지털 기술은 감각적 진정성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향유 구조와 보존 가능성을 확장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는 기술복제 시대에 예술 이 지닌 존재 조건의 변화 가능성과도 맞닿는다. 이러한 복제 기술에 대한 벤야민의 양가 적 시선을 한층 더 확장한 이론가가 바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이다. 그는 복제 이미지가 원본을 참조하지 않으면서도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를 ‘시뮬 라크르(simulacra)’라 명명하고, 이러한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기능하는 상태를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로 설명하였다(Baudrillard 2001, 27). 즉, 기술복제는 단지 진정성을 해체하는 수준을 넘어서, 예술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예술을 하 나의 기호적 체계 속에서 재구성된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시선은 디지털 기반 무용 영상이 실제 공연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상되고 소비되는 양상을 설명할 수 있으 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신체성과 감각적 기반이 점차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한편, 필립 아우슬랜더(Philip Auslander)는 『Liveness: Performance in a Mediatized Culture』(라이브니스: 미디어화된 문화에서의 퍼포먼스)에서, 기록된 공연도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고유한 시간성과 맥락을 지닌 실연(performance)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기술적 매체를 통해 ‘라이브니스(liveness)’가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Auslander 2008, 66). 이러한 해석은 디지털 기반 무용 콘텐츠가 단순한 기록물이나 대체물이 아닌, 고유한 퍼포먼스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예술의 존재 방식에 대한 해석이 다각화되면서, 무용은 디지털 기술과의 접점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실현 가능성을 탐색하게 된다. 무용은 라반노테이션(Labanotation)과 베네시 표기법등 다양한 기보 체계를 통해 반복과 기록의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전영선, 김지니 2020, 6). 넬슨 굿맨(Nelson Goodman) 역시 이러한 기보 체계를 근거로 무용을 ‘대필적 예술’로 분류하며, 작품의 동일성 이 노테이션을 통해 반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Goodman 1976, 113). 그러나 이들 체계는 움직임의 구조는 담을 수 있어도, 실연의 감각성과 현장성, 즉흥성과 같은 총체적 경험을 포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같은 제약으로 인해 무용은 ‘기록 가능한 예술’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속되어 왔으며, 디지털 환경은 바로 그 한계를 새롭게 사유하고 재구성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최근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 자리한 기술이 바로 NFT(Non-Fungible Token)이다. NFT 는 블록체인 기반의 구조를 통해 디지털 콘텐츠에 고유성과 유일성을 부여하며, 기존에 무한 복제가 가능했던 예술 객체에조차 독자성과 진본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 한다(김홍기 2022, 94; 천미림, 김홍규 2022, 399; 정현민 2023, 158). 이 기술은 단순한 거래 시스템이 아닌, 예술작품의 존재 조건을 기술적으로 증명하는 탈중앙화된 구조로 기 능하며, 디지털 예술의 존재론적 위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무형성과 시간성 을 본질로 하는 무용예술이 NFT 기술과 접목될 경우, 전통적으로 ‘소유 불가능한 예술’로 인식되어 온 무용이 디지털 환경에서 ‘소유 가능한 예술’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김 정은 2021, 11; 이소미, 서연수 2024, 169). 물론 무용은 기보 체계를 통해 창작자의 움직 임을 문서화하고, 저작권 보호의 기반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지속되어 왔다(전영선, 김지 니 2020, 6; 김유라 2021, 175). 이러한 시도는 무형예술에 소유 및 권리 개념을 적용하고 자 한 초기적 접근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실연성과 일회성을 특징으로 하는 무용의 본질 로 인해 ‘소유 불가능성’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NFT는 무용예술의 존재 방식을 기술적 조건 속에서 새롭게 사유하고 구성할 수 있는 전환 점으로 주목된다.
특히 무용은 무용수의 신체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며 실연되는 예술로, 감각적 에너지와 현장성 속에서 생성된다. 이러한 실연성과 신체성은 실시간성과 즉시성을 통해 예술적 진정성을 형성하는 요소였지만, NFT는 움직임과 시간, 맥락을 메타데이터로 기록 함으로써 신체적 흔적과 감각적 흐름을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 결과, 기술 매체는 퍼포먼스를 물리적 현존 없이도 하나의 실재로 인식하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퍼포먼스의 실연성과 진정성 역시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는 관점이 제시되고 있다(Dixon 2007, 212; Auslander 2008, 59; 장정윤 2004, 112). 이러한 맥락에서 NFT는 전통적으로 신체의 실존과 시간적 현존을 통해 형성되던 무용의 라이브니스와 현전성 경 험을, 매체적 구성과 감각적 단서에 기반한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하며, 이로 인해 무용예 술의 존재 조건 자체가 기술적으로 재해석되는 전환점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NFT 기술이 단순한 기록·유통의 기능을 넘어, 예술작품의 존재 조건 자체를 기술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철학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공연예술의 맥락에서, 예술은 고정된 아카이브에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수행을 통해 전승되는 ‘레퍼토리’로서 존재한다 고 본 다이애나 테일러(Diana Taylor)의 논의는, 무용처럼 실연성과 시간성을 본질로 하는 예술에 NFT가 어떻게 ‘기록 불가능한 수행’을 디지털 존재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고찰하 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은 NFT 기술이 공연예술의 일회성과 현장성 이라는 전통적 제약을 기술적으로 극복하는 동시에, 신체적 실연을 기반으로 한 예술작품 의 존재 방식을 디지털 구조 안에서 재정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존재 론적 전환 가능성을 중심으로, NFT가 무형예술로서의 무용에 부여하는 고유성, 진정성, 소유성 개념의 재구조화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NFT와 무용의 결합에 관한 논의는 주로 기술 응용(이소미, 서연수 2024), 저작권 보호(이루라, 이경주 2020;이상웅 2024), 유통 구조 및 시장 전망(정유진 2023)등 실용적 차원에 집중되어 왔다. 이러한 실 용적 접근들과는 결을 달리하여, 김정은(2021)은 벤야민과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디지털 무용의 진정성과 현실성을 고찰하며 미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다만 그의 연구 역시, 기술의 존재론적 구조나 수행예술과의 철학적 접속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미흡 하다. 한편, 무용의 존재론적 조건이나 소유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굿맨(Goodman 1976)의 ‘대필성(notationality)’ 개념이나 테일러(Taylor 2003)의 ‘레퍼토리(repertoire)’ 이 론을 통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 고전 이론이 NFT와 같은 디지털 기술과 철학적으 로 접속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여전히 드문 실정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학술적 간극을 인식하고, 디지털 기반 무형예술에 부여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론적 가능성 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에 본 논문은 무용예술의 존재 방식과 NFT 기술의 철학적 구조가 어떻게 접속될 수 있는지를 분석하고, 그 접점을 통해 ‘희소성 미학(scarcity aesthetics)’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희소성 미학’이란, 무형예술의 일회성과 실연성을 바탕으로 하되, NFT 기술이 제공하는 디지털 고유성, 위변조 불가능성, 소유 가능성 등 기술 기반 특성과 결합하여 형성되는 새로운 미학 범주이다. 이는 기술복제 시대에 약화된 아우라 개념을 기술적으로 복원하고, 디지털 예술의 독립적 존재 조건을 확보하려는 예술 존재론적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아우라 개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크르 이론, 필립 아우슬랜더(Philip Auslander)의 미디 어 퍼포먼스 개념을 이론적 기반으로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NFT가 무용예술의 실연성·실재 성·진정성과 어떻게 재구성 가능한지를 학제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Ⅱ. 본 론
1. 디지털 전환 속 무형예술의 존재론
디지털 시대는 예술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예술은 이제 더 이상 물리적 실체나 전통적인 장르의 범주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디지털 기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매체 속에서 변형되며, 때로는 완전히 다른 층위에서 재창조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매체의 진화라기보다,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 자 체를 다시 묻는 철학적 질문을 포함한다.
특히 무형예술의 대표적 장르인 무용은 그 일회성과 실연성, 그리고 물리적 실체 없음 (non-objecthood)이라는 고유한 특성으로 인해, 디지털 환경에서 보다 근본적인 존재론적 긴장에 직면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의 개입은 단지 표현 방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무용이 라는 예술의 본질적 존재 조건을 근본적으로 되묻게 만든다(성기숙 2004, 1; 임영길, 최창 희 2011, 410; 신채롱 2021, 82).
본 장에서는 무용예술이 지닌 존재론적 특성과 디지털 기술이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예술 개념의 전환,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성과 실재성 개념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고찰 하고자 한다.
1) 무용예술의 일회성과 진정성의 문제
무용은 흔히 소멸하는 예술로 불린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무용이라는 예술 형식이 지닌 존재 방식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이다. 실제로, 무용은 신체가 특정한 시 간과 공간 안에서 실현하는 움직임 그 자체이며,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동일하게 재현 될 수 없다(이은주 2019, 45). 같은 안무를 같은 무용수가 반복하더라도, 공연은 결코 완벽 하게 동일하지 않다. 시간은 흐르고 신체는 변하며, 관객의 반응, 조명, 무대 환경 등 수많 은 요인이 매 순간 공연을 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이라 는 속성이 무용의 예술성을 규정짓는 동시에, 그것이 기록되고 보존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준다. 무용은 그 본질적으로 현장성과 일회성을 핵심으로 삼으며, 이로 인해 다른 예술 형식보다 진정성에 대한 감각이 훨씬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와 관련하여 페기 필란(Peggy Phelan)은 『Unmarked』에서 “실연(performance)은 본질적으로 소멸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실연이 오직 한 번만 발생한다는 점에서 고유한 예술적 가치를 가지며, 이 고유성은 사진, 영상 등 기록이 개입하는 순간 손상된다고 보았다(Phelan 1993, 146). 따라서 기록은 실연의 본질을 부정하며, 그것이 지닌 예술적 진정성을 약화시키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관점은 무용의 일회성과 현장성을 단순한 제약이 아닌, 예술적 본질을 구성하는 철학적 요소로 이해한다. 무용은 관객이 존재하는 실제 공간과 시간 안에서만 실현되며, 이러한 실연성은 예술이 지닌 감각적 진정성과 즉시성을 강화하 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최문정 2021, 108). 이는 노테이션(Goodman 1976), 아카이브, 레 퍼토리(Taylor 2003) 등 무용의 기록 가능성을 다룬 기존 이론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들은 실연의 현장성과 감각성을 온전히 보존하기에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디지털 환경 속 기록·보존·소유 개념과 충돌하는 무용의 존재론적 저항을 보여준 다. 이와 같은 논의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제시한 아우라(aura) 개념과도 밀 접하게 연결된다. 벤야민(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의 아우라를 작품이 지닌 고유한 시간성과 공간성,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진정성의 감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기술 복제가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파괴하고, 그로 인해 예술이 지닌 권 위, 진정성, 신성한 거리감이 붕괴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아우라의 해체가 단 지 상실에 그치지 않고, 예술의 접근성과 감상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복제 기술에 대해 이중적인 시각을 견지하였다(Benjamin 2007, 46). 이와 같은 관점은 무용예술 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는 방식에도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무용은 아우라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예술 형식 중 하나로, 무대 위 실연에서 발생하는 긴장감, 순간의 에너지, 그리고 신체의 미세한 떨림은 영상이나 데이터로 온전히 재현되기 어렵다. 정옥희(2022)는 비디오 댄스와 디지털 매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무용이 지닌 감각적 밀도와 신체적 리얼 리티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무용의 디지털 화가 단순한 형식의 전환을 넘어, 예술 경험의 구조와 감각적 조건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 편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예술은 디지털 기술과의 접점을 통해 새로운 기록성과 존재 조건을 탐색하는 실험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기술이 무용의 실연 성과 감각성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무용은 점차 기술적 매체 속에서 또 다른 예술적 실재로 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최근의 디지털 기술 발전을 통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고해상도 영상 촬영, 360도 회전 시점의 모션 캡처, 실시간 스트리밍 기술 등은 무용의 복잡한 움직임을 정밀하게 기록하고, 동일한 공 연을 반복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아울러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공연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 경험을 가능하게 하며, 감상의 시공 간적 제약을 넘어서는 새로운 예술 경험을 열어가고 있다(신채롱 2021, 85; 박유나 2023, 10). 결과적으로 이러한 기술 환경은 ‘오직 한 번만 존재했던 예술’을 ‘언제든 다시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든 무용 장르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공연 기반의 무용은 실연성과 현장성 에 뿌리를 둔 감각적 진정성을 핵심으로 삼는 반면, 디지털 매체를 전제로 기획된 무용은 애초부터 상이한 존재 조건을 지닌다. 따라서 무용의 디지털화는 단순한 콘텐츠화로 환원 될 수 없으며, ‘진정성’ 개념 또한 공연의 맥락, 기획 의도, 기술적 매개 방식에 따라 다층 적이고 상대적으로 구성됨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일부 이론가들은 ‘진정성’을 고정된 본질로 보지 않고, 시대적 맥락과 기술 환경에 따라 구성되는 유동적 개념으로 이해할 필 요가 있음을 제기한다. 진정성은 변화하는 문화적 조건 속에서 그 의미가 역사적으로, 관 계적으로 설정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김연재 2022, 185).
즉, 오늘날의 진정성은 단순히 물리적 현존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고도로 설계된 무 용 데이터, 센서 기반 피드백을 활용한 실시간 반응형 작품, 인공지능과 협업하여 창작된 디지털 무용은 모두 전통적인 진정성 개념을 해체하고, 기술적 정체성과 감각적 경험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무용예술이 디지털 기술과 접속하 는 방식 자체가 예술의 존재 조건을 다시 쓰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2) 디지털 시대 실재성과 기술 매개의 재구성
예술의 실재성은 오랫동안 물리적 현존, 신체의 직접성, 공간적 장소, 시간적 고유성 등 전통적인 기준을 통해 정의되어 왔다.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특정한 시공간에서 실제 신 체를 통해 실현되고, 관객이 그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실재하는 예술 로 인식해왔다. 특히 무용은 이러한 실재성의 전통적 개념을 가장 강하게 구현해온 예술 장르 중 하나였으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흔히 ‘한 번뿐인 사건’, ‘눈앞에서 사라지는 예 술’로 간주되어 왔다(김말복 2007, 21; 진시영 2017, 15). 그러나 최근 디지털 기술이 예술 의 생산, 유통, 감상 방식 전반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실재성을 둘러싼 개념 자체가 점차 복잡하고 다층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단지 감각을 전달하는 매체가 달라졌다 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제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자체에 대한 철학적 재정 의가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이지선, 김말복 2012, 64; 진시영 2017, 65).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에서 현대 사회가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상태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오늘날의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지며, 반복된 복제와 시각적 재현 속에서 우리는 점차 원본과 복제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보드리야르(Baudrillard)에 따르면 시뮬라크르는 네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 첫 번째 단 계에서는 현실을 충실히 모방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현실을 점차 변형한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현실과 단절된 위장된 표상을 만들어내며,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에서 는 원본이 완전히 사라지고 복제물만이 자율적 실재로 존재하게 된다. 이 최종 단계에서 는 복제 자체가 현실처럼 기능하며,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Baudrillard 1981, 12). 이러한 시뮬라크르 개념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무용예술이 실재성과 진정성 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이론적 유효성을 지닌다. 전통적으로 무대 위에 서 실시간으로 실현되던 무용은 이제 영상으로 기록되고, 디지털 편집을 통해 보다 감각 적으로 재구성된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을 통해 이러한 콘텐츠는 물리적 공연장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관객은 공연장을 찾지 않고도 고화질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때로는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다”는 반응처럼, 디지 털 퍼포먼스가 오히려 더 높은 몰입감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감각적 경험은 시뮬라 크르의 네 번째 단계, 즉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작동하는 ‘자율적 실재’의 현상으로 해석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든 무용 장르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연 기반 무용은 실연성과 현장성을 핵심으로 하기에 디지털 매체로의 완전한 전환이 어렵다. 반면, 디지털을 전제로 기획된 무용은 애초부터 상이한 존재 조건을 지니며, 자 율적 실재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무용의 디지털화는 단순한 매체 변환을 넘어선다. 실재성과 진정성은 작품의 기획 방식, 기술적 매개, 장르적 특성에 따라 상이하게 구성되 며, 점차 물리적 현존 여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객의 감각적 몰입과 지각적 수용을 중 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조성희, 김은정 2018, 546; 마승연 2022, 55; 박진 서, 조남규 2023, 63).
이러한 논의와 맞물려, 필립 아우슬랜더(Philip Auslander)는 『Liveness: Performance in a Mediatized Culture』(라이브니스: 미디어화된 문화에서의 퍼포먼스)에서 “기록된 공연 도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주장한다. 그는 영상과 기술을 통해 전파되는 퍼포먼스가 단순한 실연의 대체물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새로운 종류의 라이브성을 획득한다고 본다 (Auslander 2008, 66). 특히 무용의 경우, 단순한 촬영을 넘어 VR 기반의 퍼포먼스, 인터 랙티브 동작 기반 미디어 아트,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이루어진 퍼포먼스는 기존의 실연 개념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벤야민(Benjamin), 보드 리야르(Baudrillard), 아우슬랜더(Auslander)는 디지털 기술이 예술의 진정성, 실연성, 실재 성에 어떤 전환을 가져오는지를 각기 다른 철학적 시각에서 해석해왔다. 이들의 이론은 무형예술이 기술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 공하며, 특히 진정성, 실연성, 실재성이라는 세 개념을 중심으로 각 사상가의 입장을 비교· 정리한 내용은 다음 <표 1>에 요약되어 있다.
표 1
디지털 시대 예술 존재론에 대한 주요 철학자들의 관점 비교
(Comparative perspectives of key philosophers on the ontology of art in the digital age)
철학자 | 핵심 개념 | 예술 존재 방식에 대한 관점 | 무용예술과의 연관성 |
---|---|---|---|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 아우라, 진정성 | 기술 복제는 예술 고유의 시간성과 장소성을 해체하며, 진정성의 약화와 동시에 예술의 대중화와 향유 가능성 을 확장함. | 무용의 실연성과 진정성은 아우라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음 |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 시뮬라크르, 하이퍼리얼리티 | 복제가 원본을 대체하고, 복제 자체가 자율적 실재로 작동함 | 디지털 무용 영상이 원본보다 더 실재하게 됨 |
필립 아우슬랜더 (Philip Auslander) | 기록 퍼포먼스의 실연성 | 기록된 퍼포먼스도 실연의 성격을 지니며 새로운 존재 방식을 구성함 | 디지털 기록 자체가 새로운 실연으로 인정됨 |
위와 같은 이론적 관점은, 디지털 기술이 실재성과 가상의 경계를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예술의 존재 조건 또한 기술 환경에 따라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VR 환경 에서 구현된 무용 퍼포먼스는 관객에게 무대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하지만, 그 경험은 실제 무대나 물리적 신체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은 헤드셋, 센서 등 기술 장치를 통해 생성된 공간과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실재감을 경험한다. 이때 존재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물리적 실체의 유무가 아니라, 지각 가능한 체험으로서 구성된 현존성의 문제로 이동하게 된다(신채롱 2021, 84; 김연재 2022, 54). 즉, 오늘날 기술은 단순히 예술을 기록하거나 보존하는 수단을 넘어,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을 실질적으로 구 성하는 매개로 기능하고 있다. 기술은 보조적인 도구가 아니라 예술의 형식, 감각, 리듬, 그리고 정체성 자체를 만들어내는 중심 요소로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기술 매개성 (mediated presence)은 감각적 조건, 창작의 구조, 관객의 수용방식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미학적 질서를 창출한다(박남식, 정문열 2009, 1082).
특히 디지털 무용은 이 같은 전환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무용수의 신체 움직임은 센 서를 통해 데이터로 전환되고, 알고리즘을 통해 해석되며, 관객의 반응에 따라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상호작용적 퍼포먼스로 재구성된다. 이는 과거의 ‘고정된 공연’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실시간 연결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구성한다 (조양희 2012, 149; 조성희, 김은정 2018, 551; 한혜리 2020, 94). 예를 들어, 센서 기반의 인터랙티브 무용에서는 관객의 움직임, 소리, 위치 변화 등에 따라 무용수의 동작이 실시 간으로 변화하며, 이로써 안무가 고정되지 않은 퍼포먼스가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상호작 용적 실재성(interactive realness)은 단지 신체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관객과 예술 사이의 기술적 매개와 몰입도, 그리고 감각적 응답에 의해 정의된다(조성희, 김은정 2018, 549).
결론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무용예술은 실연성과 물리적 존재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존 재 조건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실재성은 이제 더 이상 현장성이나 물리적 실체라는 전통적 기준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대신, 기술, 감각, 상호작용, 체험이라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구성되는 새로운 유형의 실재성, 즉 미디어화된 실재성(media-constituted realness)이 주요 개념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무용은 이러한 경계를 가장 역동적으로 재정 의하고 있는 예술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나수진 2018, 66; 김연재 2022, 46).
2. NFT와 무용예술의 미학
무형성과 시간 기반성을 지닌 무용예술은 디지털 기술의 개입 속에서 새로운 기록 방식 과 존재 방식을 탐색하게 된다. 앞선 장에서 고찰했듯이, 디지털 환경은 무용의 존재론적 특성인 일회성과 실연성, 실재성이라는 전통적인 개념들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으며, 예 술의 존재 방식과 감상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전환이 NFT(Non-Fungible Token) 기술과 만날 때 어떤 새로운 철학적 질문과 미학적 구조가 발생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NFT가 지닌 블록체인 기반의 고유성 부여 구조는 무형예술인 무용에 고유성과 진정성, 나아가 ‘소유 가능한 예 술’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와 함께, 이러한 기술적 전환이 어떻게 ‘희소성 미학’이라는 개념으로 이론화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찰한다.
1) 무용의 기록 방식과 NFT의 존재론적 전환
무용은 시대별 예술 사조와 기술 환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왔다. 대표적인 예로,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이나 베네시(Benesh) 표기법과 같은 기보 체계, 공연 영 상 촬영, 아카이브 구축 등의 방식은 무용의 휘발성과 소멸성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로 활 용되어 왔다(이호신 2016, 154; 최기섭 2017, 3; 전영선, 김지니 2020, 3). 이러한 기록 체계는 대체로 실연(performance)을 보조하거나 재현하는 기술로 간주되어 왔으며, 예술 작품으로서의 독립적 위상보다는 보존이나 해석을 위한 도구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록 행위 자체가 하나의 수행적 실천으로 해석되며, 고정된 형태를 넘어서 예술적 잠재력을 지닌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최윤영(2024)은 무용 기록을 고정된 매 체로 환원되는 대상이 아니라, 실연의 유동성을 반영하고 맥락에 따라 새롭게 의미화될 수 있는 ‘재맥락화 가능한 수행 흔적’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이러한 관점을 통해 기록성과 예술성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처럼 무용 기록이 단순 한 보조 수단에서 수행 중심의 예술적 실천으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NFT는 저장 방식 을 넘어 기록 개념 자체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제공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NFT 기술은 디지털 콘텐츠에 유일한 원본성을 부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메 타데이터, 생성 일시, 소유 이력 등 고유 정보가 탈중앙화된 네트워크에 안전하게 기록된 다. 이로써 디지털 콘텐츠 또한 고유성과 소유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김현경 2021, 395; 박경신 2021, 10). 이러한 기술적 조건은 무용과 같은 실연 기반 예술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무용 영상, 3D 모션캡처 데이터, 실시간 퍼포먼스를 바탕으 로 한 인터랙티브 요소들이 NFT로 발행될 경우, 그것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블록체인 상에 존재하는 고유한 디지털 퍼포먼스 객체로 전환될 수 있다.
NFT는 디지털 무용 이미지나 퍼포먼스 데이터를 단순한 기록물이 아닌, 유일성과 진본 성을 갖춘 고유한 예술 객체로 전환시킴으로써, 무형 예술의 존재 조건 자체를 디지털 환 경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김정은 2021, 5; 정유진 2023, 159).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NFT가 무용이라는 본질적으로 휘발적인 예술 형식에 기술적 고유성과 생성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단지 기록의 매개체를 넘어 새로운 예술 실천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방식으로 기록된 무용 데이터가 단순히 과거 실연을 보존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성과 맥락 속에서 수행되는 예술 행위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용의 움직임이 모션 데이터로 변환되고,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통해 유통되며, 특정 조건 하에서만 감상 가능하도록 설정될 경우, 이 데이터는 단순한 파 일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 실현으로 기능하게 된다(이소미, 서연수 2024, 156). 이는 필립 아우슬랜더(Philip Auslander)가 제시한 기록된 퍼포먼스 또한 하나의 실연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개념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조와 연결된다.
이와 함께 NFT는 무용의 감상 방식과 유통 체계에도 중대한 변화를 야기한다. 기존의 디지털 콘텐츠는 스트리밍 기반으로 다수의 불특정 다수에게 개방되었지만, NFT는 소유 자 중심의 감상 체계를 가능하게 만든다. 또 다른 예로, 특정 무용 NFT의 소유자는 그 작품을 비공개로 보관할 수 있으며, 전시 여부, 접근 권한, 2차 저작 활용 등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김정은 2021, 10). 이로 인해 무용예술은 단순히 경험하는 예술에서 ‘소유 가능한 예술’로 존재 지위를 확장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NFT는 무용예술에 새로운 존재론적 위상을 부여하는 동시에, 기록 방식 자 체를 하나의 미학적 실천으로 전환시킨다. 무용은 이제 단순히 휘발성의 실연으로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고정되면서도 살아 있는 디지털 예술 객체로 전환될 수 있 는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정유진 2023, 161).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이론적 상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 무용계에서도 NFT를 활용 한 퍼포먼스의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적인 무용수 나탈리아 오시포바 (Natalia Osipova)는 2021년 런던 Bonhams 경매를 통해 「Giselle」과 「Left Behind」 공연 장면을 포함한 세 편의 공연 영상을 NFT로 발행하여 판매하였다(Sherwood 2021;Bonhams 2021).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공연 기록물 제작을 넘어, 무용 특유의 감정성과 시·공간적 현장성을 고해상도 영상과 메타데이터를 통해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 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이소미, 서연수 2024, 165). 본 연구는 이러한 시도가 단순한 시각 정보의 저장을 넘어서, 무용의 감각적 긴장감과 정서적 밀도 또한 기술적으로 일정 부분 포착·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본다. 이러한 사례는 NFT 기술이 실연 기반 예술의 존재 방식을 단순한 보존이나 기록의 차원을 넘어, 기술적 구조 속에서 재구성 가 능함을 시사한다. 특히 오시포바의 NFT는 블록체인 기반의 기술적 고유성과 불변성, 그리 고 소유권 구조 속에서 유통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실연 예술의 본질로 간주되던 휘발성과 일회성을 기술적으로 안정화함과 동시에, ‘디지털 실연 객체(digitalized performance object)’라는 새로운 예술 존재 방식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오시포바의 사례는 NFT가 무형 예술을 단순히 보존하는 기록 도구에 그치지 않고, 예술의 존재 조건에 철학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는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이 디지털 환경에서도 재구 성될 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진정성과 희소성이라는 전통 미학 개념이 기술 매개를 통해 변형되고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나아가 이는 본 논문이 제안하는 ‘희소성 미학’의 실질적 적용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2) NFT를 통한 희소성과 진정성 개념의 재구성
NFT 기술이 무용예술에 제공하는 가장 핵심적인 전환 중 하나는 ‘희소성’이라는 미학적 가치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용은 본래 반복 불가능하고 실연 중심의 예술로서, ‘희소성’을 그 본질로 지닌 장르로 인식되어 왔다. 공연은 특정한 순간에 만 실현되며, 그것이 지나면 물리적으로 다시 동일하게 구현될 수 없다. 이로 인해 무용은 그 자체로 시간성과 소멸성을 지닌 예술이자, 고유성과 진정성을 내포한 일회적 현존성을 지닌 퍼포먼스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영상 기록의 발달과 디지털 유통 기술의 확산은 이러한 희소성을 점차 희석시켰다. 공연이 영상으로 반복 소비될 수 있게 되면서, 무용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콘텐츠’로 전환되고, 더 이상 본래의 비재현성이나 실연성에 기반한 예술로만 이해되지 않게 된 것이다(정유진 2023, 159).
NFT는 이러한 흐름에 기술적으로 역행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철학적 가능성을 제시 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NFT는 모든 토큰에 고유한 정보(메타데이터, 소유 이력 등)를 내장함으로써, 기술적으로 동일한 객체가 존재할 수 없는 구조를 구현한다(김정은 2021, 4; 김홍기 2022, 94). 이는 기술적 희소성(technical scarcity)이라 불리는 개념으로, 예술의 유일성과 원본성을 기술적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NFT는 디지털 콘텐츠에서도 복제 불가능한 유일한 원본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이다. 이러한 구조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기술 복제 시대에 제기했던 아우라의 상 실에 대한 철학적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 벤야민(Benjamin)은 예술작품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 속에서만 발현될 수 있을 때 진정한 아우라가 형성된다고 보았으며, 기술 복제는 이 러한 고유성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박대민 2021, 148). 그러나 NFT는 기술적 구조를 통 해 예술작품의 유일성, 생성 이력, 진본성과 같은 요소들을 보장하며, 결과적으로 디지털 환경에서도 아우라적 구조가 재구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진정성은 더 이상 실연의 현장성이나 물리적 원본의 존재 여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블록체인 상에 서 위·변조가 불가능한 형태로 기록되고, 소유 이력이 투명하게 추적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 투명성과 기록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진정성으로 전환된다(이경남 2019, 118; 김 종국 2023, 61).
이처럼 NFT는 예술의 희소성과 진정성을 기술적으로 재구성하며, 이는 일회성과 소멸성을 본질로 삼아온 무용예술에 새로운 미학적 지위를 부여한다(김정은 2021, 17; 정유진 2023, 158). 특히 이러한 기술적 전환은 단순히 예술작품의 보존이나 유통 방식에 영향을 주는 수준을 넘어서, ‘무용은 소유될 수 없다’는 기존의 철학적 전제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 철학적 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논의는 이론적 차원을 넘어, 실제 예술 현장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다양한 예술가들이 NFT를 활용해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구현하고 있으며, 그러한 실천적 사례 중 하나가 2022년 미디어 아트 그룹 김치앤칩스(Kimchi and Chips)의 프로젝트 「Collective Behaviour」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무용 퍼포먼스의 일부 장면, 움직임, 시각적 데이터를 NFT로 발행하고, 이를 관객이 직접 구매하거나 특정 조건 하에 감상할 수 있는 구조를 실험하였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NFT는 고정된 장면의 단순 기록을 넘어서, 감상자의 개입에 따라 시퀀스를 재구성하거나 단독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무용예술이 지닌 전통적인 실연성과 일회성 개념에 도전하며, 퍼포먼스를 상호작용 기반의 단일 소유 가능 객체로 전환하는 NFT의 존재론적 기능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예술 감상의 물리적 조건을 블록체인 기반의 ‘접근 권한(access rights)’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감상 방식 자체가 기술적 매개를 통해 재구성될 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Collective Behaviour」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진정성(digital authenticity) 과 상호작용적 희소성(interactive scarcity)이라는 개념이 실제 예술 시스템 내에서 구현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한 실험적 사례로 평가된다(김미영 2022;양은혜 2022).
무용은 시·공간적 실연에 기반한 특성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소유되기 어려운 예술로 간 주되어 왔다. 공연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회적으로 실현되며, 그 순간이 지나면 물 리적 재현이 불가능해지고, 흔적은 대부분 관객의 기억 속에만 남는다. 그러나 NFT는 이 러한 전통적 제약을 기술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무형의 퍼포먼스가 고유성과 소유권을 지닌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됨으로써, 예술 감상의 조건은 더 이상 물리 적 현장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신, 감상은 블록체인 기반의 접근 권한(access rights) 구조를 통해 매개되며, 실연예술의 존재 방식 자체가 재편된다. 실제로 NFT로 발행된 무 용 퍼포먼스는 명확한 소유 구조를 갖추며, 예술작품이 법적·기술적으로도 소유 가능한 객 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가 된다(이소미, 서연수 2024, 155).
결론적으로 NFT는 무용예술의 진정성과 희소성 개념을 단순히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 고, 기술적 매개를 통해 이들 개념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이는 NFT가 단순한 유통 기술을 넘어, 디지털 예술의 고유성과 진정성을 보장하는 철학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 다(김정은 2021, 5). 나아가, 무형예술로서의 무용이 NFT 기술을 통해 고유성과 실재성을 다시 획득하는 이 과정은, ‘희소성 미학’이라는 개념 틀 속에서 설명될 수 있으며, 이는 기술복제 시대에 해체된 예술의 진정성과 감상 구조를 새롭게 재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개념적 전환은 아래 <표 2>에 요약된 바와 같이, 전통 미학 개념과 NFT 기반 희소성 미학 간 항목별 차이를 통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표 2
무용의 전통 미학과 NFT 기반 희소성 미학의 비교
(Aesthetic comparison between traditional dance and NFT-based scarcity)
항목 | 전통적 미학 | NFT 기반 희소성 미학 |
---|---|---|
진정성 | 실시간 실연성과 신체적 존재에 기반한 현전성 |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고유성으로 매개된 진정성 |
실재성 | 현장에서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신체 중심 실재 | 기록과 데이터 기반의 감각적 대체 실재 |
소유 방식 |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 중심 | NFT를 통한 유일한 디지털 소유권 |
감상 구조 | 누구나 현장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감상 | 선택적 접근과 감정적 개인화된 경험 |
Ⅲ. 결 론
본 연구는 디지털 기술 환경 속에서 무형예술인 무용이 어떻게 존재론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고찰하고, NFT 기술과의 결합이 무용예술의 미학적 특성과 의미를 어떻게 확장시키는지를 이론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무용의 일회성과 실연성, 실재성이라는 전통적 철학 개념을 중심에 두고, 디지털 복제 기술과 블록체인 기반 NFT가 예술의 고유 성, 진정성, 희소성, 소유 구조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본 연 구는 디지털 기술이 예술 존재론에 제기하는 철학적 쟁점을 ‘희소성 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론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1장에서는 페기 필란(Phelan)의 실연 개념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아우라 이론을 통해 무용의 소멸성과 실연성의 본질을 분석하였으며, 기술 복제 시대에 이들이 어떤 도전에 직면하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또한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의 시뮬라크르 이론과 필립 아우슬랜더(Philip Auslander)의 미디어 퍼포먼스론을 통해, 디 지털 환경 속에서 실재성과 감상 구조가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이론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를 통해 무용예술은 단순히 소멸하는 형식이 아닌,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존재 조건 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며, 전통적 감상 방식 또한 재해석될 수 있음을 밝혔다.
2장에서는 NFT 기술이 무용예술의 존재 방식과 감상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였 다. NFT는 블록체인의 위변조 불가능성, 메타데이터 기반 고유성, 스마트 계약 구조를 통 해 디지털 콘텐츠에 유일성과 진정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실 연 기반 예술인 무용에 고유성과 소유 가능성을 부여하며, 기술 기반 예술로의 확장을 가 능하게 한다. 본 논문에서 제안한 ‘희소성 미학’은 이러한 기술 기반 진정성과 고유성이 결합된 새로운 미학적 조건으로서, 무형예술이 디지털 시대에도 독립적 예술로서 지속 가 능함을 보여주는 개념적 틀로 작용한다.
특히 본 연구는 기존 NFT 관련 논의들이 기술 응용이나 저작권 보호, 유통 구조 중심의 실용적 논의에 머물렀던 한계를 넘어, 예술 존재론이라는 철학적 층위를 본격적으로 조명 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전통적으로 실연성과 공간성에 의존하던 무용예술의 희소성과 진정성은 이제 기술 환경 속에서도 재구성될 수 있으며, NFT는 그 과정에서 단 순한 유통 수단을 넘어 예술의 존재 조건 자체를 매개하는 철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결론적으로, NFT는 무형예술로서의 무용이 지닌 진정성과 희소성을 해체하는 것이 아 니라, 이를 기술적으로 재정립하고 새로운 감상 구조와 소유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예술 존재론과 디지털 미학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희소성 미학’은 디지털 시대 예술의 본질을 사유하는 개념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향후 연구에서는 NFT 기반 무용예술의 구체적 사례 분석, 관객 감상의 변화, 저작권과 윤리 문제, 그리고 탈중앙화된 예술 생태계에 대한 비판적 논의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