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현대 사회에서 감정의 표현은 점차 규범화·통제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자유는 더 이상 해방의 공간이 아니라 불안과 책임을 동반하는 조건이 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 을 바탕으로 지젤 비엔느(Gisèle Vienne)의 무용 작품 「사람들」(Crowd)을 중심 사례로 삼 아,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 이론을 주된 분석 틀로 설정하고, 현대 개인이 어떻게 자율성과 감정 능동성을 상실하며 내면화된 통제 속으로 진입하게 되는지를 고찰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신체적 실천과 공간적 배치가 감정 과 자유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 가능한 질서로 전환시키는지를 분석한다. 또한, 프롬의 심 리 구조 분석을 보완하기 위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감시와 처벌』(Discipline and Punish)에 나타난 규율 권력 개념을 보조 이론으로 활용함으로써, 오늘날 감정 통제의 심리적·사회적 메커니즘을 입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2024년 한국 배우 송재림이 일본인 사생팬의 지속적인 스토킹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사 망한 사건은 대중문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2024년 2월 12일의 중앙일보 웹사이트에 의하면, 이 팬은 송재림의 개인정보, 가족 및 지인의 정보, 여행 일정까지 온라인에 유포하 며 그의 삶을 심각하게 침해해왔다(이지현, 2024). 한편, 2021년 중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청춘유니3」(Youth With You 3)은 특정 브랜드의 우유를 구매해 병뚜껑 속 코드를 입력 해야 투표권을 얻는 구조로 운영되었고, 팬들은 투표를 위해 대량의 우유를 구매한 후 그 대로 폐기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처럼 감정의 과잉, 통제 불가능한 애정, 그리고 사회 구조가 부여한 참여 조건 속에서 ‘자발적’이라고 믿었던 행위들은 실상 특정한 규범과 감정 코드 안에서 조율되고 규율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이러한 감정의 정치학에 대한 분석은 사라 아메드(Sara Ahmed)의 『감정의 경제』(Affective Economies, 2004) 이론을 통해 보다 구조적으로 설명 될 수 있다. 아메드는 감정이 단순한 내면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권력 구조에 의해 구성되고 배분되는 과정임을 지적한다. 따라서 현대 팬덤 문화에서 나타나는 행위들은 자 율적 주체의 표현이라기보다, 정체성 혼란과 존재적 불안을 은폐하는 집단적 감정 의례로 기능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사람들은 자유보다 노예 상태를 더 두려워한 다”고 설명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가 야기하는 불안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 명하였다(Fromm 1941, 25). 그는 전통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표면적으로는 자유를 경험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고립, 책임, 방향 상실 등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권위나 질서에 자발적으로 종속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즉, 자유는 해방이 아닌 불안을 유발하는 조건이며, 현대인은 자율적 주체로 남기보다 안정된 질서 속에서 통제와 복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감정의 상품화와 규율화는 오늘날 예술 및 대중문화 현장에서도 유의미하게 작 동한다. 사라 바넷-와이저(Sarah Banet-Weiser)는 『어센틱: 브랜드 문화의 양가성의 정치 학』(Authentic™: The Politics of Ambivalence in a Brand Culture)에서 팬덤 문화가 자율 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소비주의적 불안과 정체성 위기를 감추는 집단적 의존의 구조로 재 편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감정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공간이 아니라, 상품성과 규범 에 의해 매개되는 장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오늘날 무대 예술 작품은 단순한 미적 형식을 넘어서, 현대 사회가 어떻게 감정 을 배치하고 규율하며, 개인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어떤 ‘자유’를 경험하고 감정화 되는지 를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공간이 된다.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감정 통제 메커니즘과 집단적 감정 구조가 무대 예술 작품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재구성되는지를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현대 무용극 「사람들」에서 ‘폭력적인 집단성’이 어떻게 표현되고, 그것이 음악, 신체, 공간이라는 예술적 장치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관객 에게 감정적 질서로 전달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예술이 사회 적, 정치적, 감정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감정의 억압과 자율성 상실의 과정을 감각적으로 시현하고 있으며, 본 장에 서는 이 작품 속 음악, 신체, 공간 요소가 감정 통제의 미학으로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분석 한다. 이러한 이론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프롬의 이론을 중심으로, 무대 작품 내 감정, 신체, 공간 요소 간의 구조적 연관을 분석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설정하였다. 본 연구는 문헌 연구, 현장 관람, 인터뷰 자료를 병행하여 수행되었다. 우선, 프롬과 푸코의 이론을 중심으로 주요 사회철학적 담론들을 검토하여 이론적 분석 틀을 구성하였으며, 2024년 10월 26일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관람한 「사람들」의 무대 장면, 신체 움 직임, 음악, 공간 구성 등 감각 요소를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하였다. 또한 공연 이후의 안 무가 인터뷰 및 관객 반응을 보조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사람들」의 감각적 구성 속에서 자유 회피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양상을 고찰하였다.
본 연구는 현대 사회에서 감정 통제와 자유의 환상이 어떻게 예술적 재현을 통해 시각 화·신체화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 목적에 따라, 지젤 비엔느의 무용 작품 「사람들」을 분석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 작품은 다수의 군중 인물, 반복적이고 규율화된 신체 움직임, 불균형한 공간 배치, 감정을 환기시키는 비선형적 음악 구성 등을 통해 감정 의 내면화 및 자기 규율화를 드러낸다. 특히 프롬이 말한 ‘자유의 불안’을 무용의 신체성과 공간 구조로 체현하고 있어, 본 연구의 이론적 틀에 부합하는 분석 사례로 기능한다. 또한 비엔느의 무대는 언어 없이도 감각의 층위를 활용해 정치적·철학적 문제의식을 설득력 있 게 전달함으로써, 오늘날 자유의 심리적 조건과 감정 구조를 예술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비판적 장치로 작동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분석 과정을 따른다. 첫째, 지젤 비엔느의 작품 「사람 들」에서 감정과 자유의 통제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예술적으로 재현되는지를 프롬의 이론 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둘째, 음악, 신체, 공간이라는 세 감각 요소를 중심으로 감정의 규율 메커니즘을 구체화한다. 셋째, 감정의 억압과 자율성의 상실이 예술 속에서 어떻게 제도적· 구조적 미학으로 조직되는지를 밝힘으로써, 오늘날 자유라는 가치가 어떻게 환상화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Ⅱ. ‘자유로부터의 도피’ 이론과 감각 분석 프레임의 구축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외형상 전례 없는 자유 를 제공하지만, 이 자유는 오히려 고립과 불안, 존재의 무근거성을 심화시키며 진정한 해 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Fromm 1941, 25). 다시 말해,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불안의 조건이며, 개인은 이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종속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자유로부터의 자유’와 ‘자유를 향한 자유’(freedom to)라는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전자는 전통적 권위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지만, 그것이 곧 자아 실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면, 후자는 사랑, 창조성, 이성적 실천을 통해 자기를 긍정하고 능동적으로 세계에 참여하는 자유를 의미한다(Fromm 1941, 257). 그러나 사회 구조와 심리적 능력의 발달이 비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 유가 수반하는 책임과 불확실성을 감당하지 못한 채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하고, 이를 통해 다시 질서와 안전을 얻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현대성의 불안(the anxiety of modernity)’이라는 개념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선택, 자율성, 위험’이라는 요소들을 생존의 의무로 제도화된 조건으로 마주할 때 발생하는 근본적 심리적 곤경을 지칭한다.
프롬은 이러한 ‘현대성의 불안’을 구조적 심리 곤경의 근원으로 간주하며, 이를 바탕으 로 세 가지 전형적인 자유 회피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첫째, 권위주의적 경향은 개인이 자 율성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강력한 외부 권위나 집단 의지에 자신을 위탁함으로써 확실 성과 소속감을 얻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를 말한다. 둘째, 파괴성은 내면의 불안을 외부 공 격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세계 혹은 자기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일시적인 통제감을 확보 하려는 전략이다. 셋째, 가장 현대적인 특징을 지닌 ‘기계적 동조’는 개인이 자신의 지각과 판단을 사회의 주류 질서에 자발적으로 동화시키는 경향으로, 겉보기에는 자율적인 순응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자와의 차이에서 비롯된 실존적 불안을 회피하려는 방식이다. 이러한 세 가지 경로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제도, 미디어, 문화 습관 등을 통해 구조적으로 활성화되며 개인의 내면에 지속적으로 내면화된다. 그 결과 자유는 더 이상 자기 실현의 출발점이 아니라, 관리되고 회피되어야 할 부담으로 전 환된다.
이러한 전제하에, 프롬이 제시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이론은 단지 심리학적 분석에 그 치지 않고, 오늘날 사회에서 신체, 감정, 권력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비판적 틀로서 유의 미한 설명력을 제공한다. 특히 프롬의 이론은 억압이 아닌 선택이라는 형태로 작동하는 자발적 규율의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데 유용하며, 이는 「사람들」에서 등장하는 신체의 느 림, 리듬의 통제, 공간의 유도적 배치 등과 정합적으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프롬의 이론은 작품 속 감각적 장치들이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현대성의 심리 구조를 내면화한 결 과임을 밝히는 분석 도구로 기능한다. 특히 프롬이 제시한 자유 회피 메커니즘은 감정, 판 단, 질서에 대한 내면화 과정으로 설명되며, 이는 무대 예술에서 감각적 구조를 통해 시각 화될 수 있다.
본 논문은 이 점에 주목하여, 프롬의 이론이 무대 속 감정 표현, 신체 움직임, 공간 구성 과 어떤 방식으로 접속 가능한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여기서 설정한 ‘음악–감정 통제’, ‘신 체–자율성 포기’, ‘공간–질서 수용’의 세 가지 분석 축은 프롬의 심리 구조 이론을 무용 작품의 감각 층위로 번역하기 위한 분석적 장치이다. 이러한 구성은 단지 이론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관람, 안무가 인터뷰, 그리고 문헌 고찰을 통해 확인된 감각 경험을 프 롬 이론과 연결하기 위한 실천적 시도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감각 요소는 프롬의 권위주 의·파괴성·기계적 동조와 일대일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이 함의하는 심리–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무용에서 감각적으로 구현되는지를 추적하기 위한 해석적 틀로 기능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론과 작품 간의 논리적 대응 관계를 구축하고자 다음의 세 가지 분석 차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음악 구조와 감정 통제이다. 자유가 불안을 야기할 때, 개인은 자율적 판단의 불확 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외부의 리듬 구조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 맥락에서 음악은 더 이상 감정 표현의 매개가 아니라, 감정을 조율하고 억압하며, 무용수와 관객의 감정 리 듬을 통제하는 규율적 구조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정서적 반응은 예측 가능한 박 자 안으로 수렴된다.
둘째, 신체 움직임과 질서의 내면화이다. 무용수들은 장시간 동안 극도로 느리거나 거의 정지에 가까운 움직임을 유지한다. 각 동작은 길게 늘어나고, 지연되며, 정돈되어 나타난 다. 이러한 신체 표현은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상 고도로 규율화된 양상이며, 개인이 사회 규범을 내면화하여 자유의 책임을 회피하고 안전한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심리 메커니즘의 미학적 구현이다.
셋째, 무대 공간과 집단 복종이다. 무대는 개방성과 혼란스러움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 내부에는 개인을 집단으로 이끄는 질서 지향적 메커니즘이 숨겨져 있다. 무대에는 명확 한 중심이 존재하지 않지만, 무용수들의 집단적 움직임과 동선은 점차 일종의 질서를 형성 하며, 이는 개인이 자율성을 포기하고 리듬과 궤도에 스스로를 일치시키는 과정을 시각화 한다.
이처럼 세 가지 감각적 차원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통해, 본 논문은 「사람들」이 서사나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유의 중력’이라는 문제의식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구성하는지를 밝히고,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심리 구조를 어떻게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무대 언어로 전환해내는지를 논의할 것이다.
Ⅲ. 지젤 비엔느의 예술세계
지젤 비엔느는 197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오스트리아계 안무가로, 스트라스부 르 국립연극고등학교(École supérieure nationale des arts de la marionnette)에서 인형극 을 전공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지식인으로, 특히 시각 예술과 문 학에 깊은 관심을 지녔으며, 예술 표현과 철학적 사유에 대해 자주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 고, 이러한 대화는 그녀의 예술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형극이라는 형식을 체 계적으로 탐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비엔느는 2000년대 이후 인간의 내면 감정과 사회적 억압 사이의 관계, 즉 신체, 규율, 통제, 욕망의 조건들이 어떻게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지속 적으로 탐색해 왔다.
2004년 작품 「아이 어폴로자이즈」(I Apologize), 2007년의 「킨더토텐리더」(Kindertotenlieder)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녀의 작업은 “초현실과 초현실주의를 결합하여 현대 무용의 표현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Winship 2019)라는 평을 받아왔으며, 특히 “조명, 음악, 무용수의 움직임 등 모든 세부 요소들이 결합 되어, 관객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 진실과 마주하게 만드는 몰입형 경험을 만들어낸다”(Festival d’Automne à Paris 2017)는 점에서 감각 구조 자체를 통제 장치로 활용하는 데 탁월한 연출미학을 보여준다.
201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초연된 그녀의 대표작 「사람들」은 테크노 음악과 극 단적 슬로모션, 폐쇄적이면서도 유동적인 무대 구성 속에서 레이브 파티라는 집단적 열광 의 장면을 감각적으로 해체한다. 에브게니 보리센코(Evgeny Borisenko)는 이 작품에 대해 “광기 어린 열정과 솔직한 빛의 연출로 이루어진 무대”라 평하며, 이전 작품보다 더욱 음 울하고 치밀한 감정 구조를 형상화한다고 보았다(Borisenko 2017). 데이비드 산손(David Sanson) 역시 “꿈과 현실, 진실과 환상이 교차되는 다층적 분리 구조를 통해 시간의 왜곡 감을 창출해낸다”(Sanson 2017)고 평가했으며, 레이첼 배(Rachel Bae)는 “시간, 공간, 공 동체에 대한 인식을 뒤흔드는 심리적 여정”(Bae 2018)이라 보았다.
이러한 평가들은 「사람들」이 단순히 무용의 미학적 실험을 넘어, 관객이 규율·자율성·감 정이라는 핵심적 사회 문제를 신체와 리듬을 통해 직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론적 접근 가능성을 열어 준다.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무대 구성과 리듬, 신체, 공간의 조 직 방식을 중심으로, 작품이 제시하는 ‘자유의 환상’과 ‘감정의 규율’ 구조를 세밀히 살펴보 고자 한다.
Ⅳ. 지젤 비엔느의 작품 「사람들」(Crowd)에 나타난 현대성의 불안
이처럼 지젤 비엔느의 예술 세계와 「사람들」의 미학적 구조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 닌, 자유, 감정, 규율에 대한 깊은 사유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본 작품은 테크노 음악과 슬로 모션의 충돌, 무용수들의 비동기적 동선, 소비주의의 잔해로 채워진 공간을 통해 감각의 리듬, 신체의 규율화, 공간의 통제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현대 사회 에 내재된 ‘자유의 환상’과 ‘감정의 제거’를 예술적으로 가시화한다. 이제부터 본 연구는 이 세 가지 측면―음악, 신체,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자유로부터의 도피라 는 현대성의 구조를 감각적으로 구성하고 있는지를 단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1. 「사람들」 작품 개요
2017년 11월 8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CDCN에서 초연된 지젤 비엔느의 작품 「사람 들」은 비엔느가 20세기 말 유럽 청년 문화, 전자 음악 레이브 파티(rave party)의 열광적 현장, 그리고 소비주의 물결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아 자신의 초기 인형극 예술에 대한 체 계적인 학습과 실천 경험을 바탕으로 구상한 작품이다(Zhang, Xuanhao 2025, 174).
광적인 파티의 장면을 재현하는 데 무대는 모래로 덮여 있고 일상적인 옷을 입고 있는 무용수들로 인해 친근하면서도 이질적인 현실적 공간을 형성한다. 이는 마치 야외 음악 페스티벌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자 음악의 빠른 비트에도 불구하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대부분 슬로 모션으로 연출되며 극히 일부분만 음악의 비트와 함께 움직임이 연 결된다.
공연은 무대 전체가 모래로 덮인 상태에서 시작되며, 조명은 어둡고 절제되어 있다. 무 용수들은 일상복 차림으로 무대 한쪽에서 천천히 입장한다. 각 무용수의 동작은 극도로 느리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상태로 유지되며 서로 간의 명확한 상호작용은 없다. 그들 은 무대 전체 공간으로 점차 흩어지고 일부는 서 있고 일부는 앉아 있으며 동작은 작고 느리게 확장된다. 이와 동시에 무대에는 고강도의 빠른 리듬을 가진 전자음악이 울려 퍼지 며, 음악의 속도와 신체의 리듬 간에 강한 대비를 형성한다. 도입부에서는 무용수들이 서 로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며 공간과 리듬의 기본 구도를 구축한다.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무용수들 간에 짧은 상호작용이 시작된다. 일부는 소규모 집단을 형성하여 미세한 신체 접촉이나 회전 동작을 수행하지만 이는 곧 해체되어 개인적 궤도로 돌아간다. 감정 표현은 여전히 절제되어 있으며 동작은 느린 속도를 유지한다. 공연 중반쯤, 무대 위에서는 총성 과 함께 조명 및 음악 리듬의 급변이 일어나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일시적으로 정상 속 도로 회복되며 신체의 도약 및 접촉이 활발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리듬의 변화는 아주 짧게 지속되며 곧 다시 느린 운동 상태로 복귀한다. 이후에도 음악은 빠른 리듬을 유지한 채 지속되며 무용수들은 느린 동작을 지속함으로써 더욱 강한 리듬의 긴장을 형성 한다. 무용수들은 개인과 집단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며 감정의 변화는 잦지만 안정적인 지속성은 결여되어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무용수들의 상호작용은 점차 줄어들고 신체의 이동 범위도 좁아진다. 일부 무용수는 모래 위에 소금을 뿌리거나 물을 붓는 동작을 하며, 여전히 느린 속도를 유지한다. 이 시점에서 무대에는 플라스틱 병, 캔 등과 같은 잡동사니 가 점차 쌓이기 시작한다. 음악은 여전히 연주되고 있지만 무용수들은 하나둘씩 무대를 떠나며 커튼콜이나 명시적인 종료 동작은 없다. 최종적으로 무대에는 흩어진 쓰레기와 텅 빈 공간만이 남아 있고 조명이 서서히 꺼지며 관객은 비워진 장소를 마주한 채 공연은 마 무리 된다.
2. 지젤 비엔느의 작품 「사람들」에 나타난 현대성의 불안
1) 음악의 조종: 감각적 충격부터 순종적 메커니즘까지
「사람들」에서 음악은 단순히 무용의 리듬을 이끄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 감각적 충격과 질서의 규율 사이에서 긴장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통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줄리 앤더슨(Anderson Julie)이 “「사람들」은 청각적으로는 몸을 이끌고 가는 음악이지만, 시각적으로는 이를 완전히 거부하는 신체의 충돌을 통해 감각적 통제와 심리적 착각 사이 의 간극을 극대화한다”(Anderson 2018, 212)고 한 것처럼 비엔느는 극도로 빠른 테크노 전자 음악과 극도로 느린 무용수의 움직임 간의 대조를 통해 시간의 단절감을 구축하는데 이러한 단절은 단순한 시각적·청각적 불일치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외부 리듬을 받아들이는 방식, 감각적으로 통제되는 과정,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유로부터의 도 피를 선택하는 현상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
비엔느가 한 인터뷰에서 “테크노 음악은 나에게 감각의 정치이며, 집단적 정체성과 통제 간의 경계선을 탐색하는 장치이다”(Vienne 2017, 84)라고 말한 것처럼 이 작품에서의 테 크노 음악은 정밀한 반복 리듬, 고주파의 저음 진동, 밀집된 드럼 비트를 통해 벗어날 수 없는 감각적 몰입을 형성한다. 이러한 음악적 논리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외부적 힘으로 작용하며, 관객의 청각적 경험을 장악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리듬에 동조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관객은 점차 흥분 상태로 빠져들고 음악이 제공하는 감각적 흐름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무용수들의 신체는 이러한 리듬에 맞춰 움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의도적으로 극히 느린 동작과 끌려가는 듯 한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확장하면서 음악의 리듬과 비조화적인 대립 관계를 만든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현대 사회에서 자유가 관리되는 방식 중 하나를 보여준다. 개인은 리듬의 억압을 인식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무용수 들은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하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여전히 음악이 주도한다.
「사람들」에서 표면적으로는 체계화된 리듬 속에서 개인이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듯한 저항을 시도하지만, 보다 깊은 차원에서 볼 때 이러한 움직임은 리듬의 통제를 완전히 벗 어나지 못하는 구조로 귀결된다. 전자 음악의 고주파적 추진력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리 듬에서 완전히 독립할 수 없도록 만들며, 관객의 생리적 반응 또한 음악이 제공하는 감각 적 흐름에 수동적으로 동기화된다. 다만, 일부 관객의 경우 감각적 과잉이나 반복 구조에 대한 피로, 혹은 해석의 유예를 통해 능동적인 감각 저항 또는 간헐적인 비동기화가 발생 할 여지도 존재한다. 겉보기에는 아무도 무용수들에게 특정 리듬을 강요하지 않지만, 그들 또한 완전히 그 바깥에 머물 수 없다. 속도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양도되며, 끊임없는 감각적 자극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외부의 지배 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오히려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시대적 불안은 작품이 제시하는 역설의 반영이며, 이는 자유의 결핍이 아니라 과부하에서 비롯된다. 사회가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을 제공할 때, 개인은 오히려 결정 마비에 빠지고, 결국 자율성을 포기한 채 더 강력한 외부 지침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 인해 자유는 ‘통제 된 자유’로 전락하며, 비엔느는 작품에서 음악과 신체를 통해 이러한 자유의 역설을 구축 한다. 예를 들어, 작품 초반부에서 무용수들은 빠르고 고조된 전자 음악 위에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자율성을 드러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반복 되는 박자 구조 안에서 제한적으로 분산되어 있으며, 무용수들 간의 동선은 충돌을 피해 일종의 비동시적 질서를 형성한다. 음악이 강렬해질수록 무용수들의 신체는 점차 완만한 느림과 순간적 가속 사이에서 리듬의 긴장감을 형성하며, 특정 구간에서는 집단적으로 일 시에 멈추거나 동시에 무너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처럼 감각적 동기화는 자율적 판단이 아닌 리듬에 내재된 통제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관객 또한 이러한 음악적 흐름과 신체 동기 화에 감각적으로 휩쓸리며, 선택 없이 주어진 자극에 따라 반응하게 된다. 물론 감각적 과 잉이나 지연된 해석을 통해 간헐적인 저항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작품은 전반적으로 자율 성이 외부 질서 속에서 서서히 해체되어 가는 감각 구조를 시각화한다. 이는 프롬이 지적 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오늘날 어떤 감각의 장치와 미학적 구성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점이다.
즉 「사람들」에서 음악은 단순한 무용의 배경 요소가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로 기능하며 음악과 신체의 리듬적 불일치 관계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감각적 규율 아래에서 어떻게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하는지를 드러낸다. 개인은 외부 리듬에 따라 자신의 움직임을 조정하며, 결국 스스로 자신의 리듬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한다. 개 인은 자신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믿지만, 정작 자유를 마주했을 때 보다 권위적인 시간 논리를 따름으로써, 시스템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선택을 한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기법 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근본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자유의 본질적 딜레마는 자유의 박탈이 아니라, 개인이 어떻게 권력의 보이지 않는 작동 방식 속에서 스스로 자유 를 포기하고, 통제된 리듬 속으로 스며드는가에 있다.
2) 신체의 규율: 개인의 소멸과 집단 의존
「사람들」에서 무용수의 신체는 자율적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철저히 조율되고 형식화 된 상태 속에서 작동하는 감각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억압적인 규율 권력을 직 접적으로 가시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도로 느린 움직임, 정제된 반복 동선, 그리고 집단 적 흐름 속에서 개인이 점진적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통해, 자유라는 환상의 장 아래에서 자발적 자기 감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이는 곧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심리 구조를 시각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프롬은 “자유가 행복이 아닌 고립과 책임을 수반할 때, 사람들은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질서, 정체성, 의존을 택하게 된다”고 지적한다(Fromm 1941, 27). 작품 속 무용수들은 마 치 끌려가는 듯한 느린 움직임과 반복적 정지를 통해, 리듬 속에서 자율적 운동에 대한 주저와 연기를 드러낸다. 그들은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리듬의 긴장 속에서 ‘정지’를 선택한다. 또한 이들은 외부로부터 집단에 강제적으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 라,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이러한 ‘선택’은 겉으로는 자유로 보이지 만, 실제로는 자유의 무게를 회피하는 심리적 반응이다.
무용수들은 각기 다른 시간과 경로로 무대에 등장하며 개별적인 움직임을 보이지만, 시 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유사한 움직임 패턴과 통일된 리듬을 따르게 된다. 개별성은 희미 해지고, 자유 의지는 확장된 리듬 질서 속에서 점차 소멸된다. 이러한 동화는 외부 억압이 아니라, 공간의 리듬 구조, 음악의 논리, 집단의 움직임이 함께 조직하는 감각적 환경 속에 서 이루어진다. 푸코의 규율 권력 개념은 이와 같은 비가시적 통제의 과정을 보조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는 “현대의 권력은 더 이상 폭력을 통해 작동하지 않고, 일상의 신체를 세 분화하고 규칙화함으로써 자발적 규율을 유도한다”고 말한다(Foucault 1975, 203). 이러한 시각은 프롬이 말한 심리 기제가 신체의 감각 구조를 통해 구체화되는 방식에 대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처럼 「사람들」에서 신체의 소멸은 단순한 정지가 아닌, 흐름 속의 수동성이다. 무용수 들의 움직임은 계속되지만,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하지 않으며, 존재는 계속 펼쳐지지만 자 율적 주체로서의 불가대체성은 사라진다. 자유로운 선택에서 집단적 반복으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개인의 존재 양식은 구조의 일부로 재조정된다. 프롬이 말하듯, 개인은 자유 의 불안을 회피하고 순응과 복종을 선택하며, 그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다. 「사람들」 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느린 동작과 집단 리듬, 반복된 신체 언어를 통해 시각적으로 형상 화된다.
결국 「사람들」에서의 신체는 단순한 조형적 장치가 아닌, 프롬이 지적한 ‘자유 회피’의 심리 구조가 어떻게 감각과 리듬 속에서 조직되는지를 드러내는 핵심 매개이다. 현대의 개인은 억압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과잉과 고립의 책임 사이에서 자유를 스스로 양도하고, 리듬화된 질서 속으로 자신을 귀속시킨다. 무용수의 신체는 이 심리-사회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흔적이자, 그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적 인 덱스이다.
3) 공간의 설정: 자유와 통제 사이를 유동하는 개인
「사람들」의 무대는 단순한 현실 속 파티의 재현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자유와 통제 사이를 유동하는 자유의 경계를 의미하는 실험적 공간으로 표현된다. 무대 바닥에는 흙이 깔려 있어 야외 파티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주변에는 플라스틱 병, 캔, 기타 폐기물 등이 흩어져 있어 현장의 사실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무용수들은 후드 티셔츠, 청바지, 트 레이닝복, 반짝이는 운동화 등 1990년대 청년 문화를 반영하는 캐주얼 복장을 착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특정 시대의 사회적 정서와 젊은 세대의 집단 정체성이 시각적으로 재 현된다. 이 모래 위에서 자본주의의 부산물의 결과인 쓰레기들, 무용수들이 집단적으로 이 동하는 동선, 음악의 리듬이 결합하며 특정한 규칙 없이 무심한 태도로 등장하는 열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은 개방된 공간에서 자유롭 게 이동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대의 시간·리듬·물리적 구조가 지속적으로 개인을 특정한 질서 속으로 유도하는, 현대 사회가 내세우는 자유의 논리와 유사하게 표현된다.
이러한 무대는 무용수들의 이동 경로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무대에서 어떤 존재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까지 결정한다. 무용수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결코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정지하려 할 수도 있지만, 집단의 리듬이 결국 다시 그들을 움직임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과정에서 무대의 기호들은 공간이 자유와 통제 사이에서 어떻게 긴장을 형성하는지를 더욱 강조한다. 모래는 단순히 무용수가 신체적으로 접촉하 는 매개체가 아니라, 아직 완전히 규율되지 않은 자유의 상징이다. 무대 위에서 모래는 무 용수들의 발 아래 흐트러지며, 정제된 질서나 구조 없이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흩어진다. 이러한 물리적 특성은 작품 전체에서 나타나는 반복적 리듬과 정지된 동작과는 대조를 이 루며, 자유가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상태를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장치로 작용 한다. 따라서 모래는 통제된 질서 속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자유의 흔적 혹은 그 가능성을 내포한 물질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간의 설정은 개인의 자유 상황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경로는 직접적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이들은 모래 위에서 걷고, 멈추고, 서로 상호작용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보이지 않는 힘의 장 속에서 끌어당겨지고 분산되며 다시 집결된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은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하지 않고, 각기 다른 방향에서 천천히 진입해 들어온다. 이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흩어져 있지만, 음악의 박동이 강해질수록 동작의 속도와 방향이 점차 일치하고, 마침내 무대 중심에 밀집 되며 정지한다. 이후 다시 해산되는 일련의 흐름은 마치 보이지 않는 자석에 의해 끌어당 겨졌다가 풀리는 듯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외부적 명령 없이도 동기화되는 감각 구조, 즉 자율적 규율의 미학적 형식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유동적 공간은 개인이 진정한 자아를 확립하기 어렵게 만들고,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결국 주체성 을 상실하게 한다. 그 결과, 개인은 집단의 질서 속에서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 게 된다.
무용수들이 개방된 공간 속에서 이동할 때 관객의 시선에서 보면 그들은 결코 안정적인 위치를 점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존재 상태가 조정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움직임 동선 은 점점 유사해지며, 개인은 집단의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러한 현상은 무용수와 공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무대는 벽이나 명확한 구 획이 없는 개방된 평면 구조로 되어 있어, 무용수들은 특정한 중심을 향해 걷다가 다시 흩어지며, 어느 위치도 지속적으로 점유하지 않는다. 무용수들은 특정 오브제 없이 모래 위를 걷거나 멈추며 공간 속에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은 곧 다른 무용수들의 이동에 의해 덮이거나 지워진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무대 공간을 점유하려는 시도와 그 시도의 실패가 반복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이 점점 집단의 흐름에 따라 조정되는 것을 시각화한다. 무용수들의 신체 움직임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칙 속에서 유도되며, 그 결과 집단에 흡수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무대 위에 소비주의의 잔여물(흩어진 쓰레기, 빈 술병 등)이 점차 쌓이며, 이러한 상징적 의미는 점진적으로 침식된다. 초반에는 무용수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대 곳곳에 쓰레기가 축적되면서 이동 가능한 동선 이 좁아지고, 무용수들은 장애물을 피하거나 그 위를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움직임을 보인 다. 일부 무용수는 쓰레기에 걸려 움직임을 멈추거나, 신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정지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리적 간섭은 자유롭게 펼쳐지던 움직임이 점점 제한되는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내며, 자유가 자본의 흔적에 의해 침투되고 조절되는 감각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자유는 자본의 잔해 속에서 점차 사라지며, 이로 인해 개인 의 행동 공간은 획일화되고 규율된다. 연출가는 무대 디자인 측면에서 공간의 경계를 의도 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었지만, 쓰레기의 물리적 배치와 축적은 오히려 그 경계를 역설적으 로 강화시키며,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은밀하게 통제한다.
Ⅴ. 「사람들」에서 나타난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에 대한 성찰
음악, 신체, 공간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중심으로 한 앞선 분석을 통해, 안무가는 이들 요소 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통해 자유의 중력을 둘러싼 감각적 체계를 점진적으로 구 축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빠른 전자 음악과 극도로 느린 신체 움직임의 비동시적 조합, 움 직이는 듯 멈추는 반복적 경로, 탈중심적이지만 결국 집단의 응집으로 수렴되는 공간 구성 은 서로 맞물리며 역설적인 무대 논리를 형성한다. 자유는 부여된 것처럼 보이지만 감각적 으로는 제거되고, 신체는 표현하는 듯하지만 반복 속에서 침묵으로 귀결되며, 공간은 개방 된 듯하지만 더욱 깊은 포섭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다층적인 감각 구조는 시각적으로 ‘자유로부터의 도피’ 심리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구현하며, 관객은 단지 외부에서 관찰하는 주체가 아니라, 점차적으로 이 자유 소멸의 과정에 내재화되는 존재로 위치하게 된다.
이러한 감각 구조는 오늘날 현실 사회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양상과 높은 동형성을 보인 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팬덤 활동에서의 자발적 몰입, 투표 시스템 아래에서의 이성적 판단의 이양, 소셜 미디어에서의 발화의 동질화는 모두 자기 주장과 자기 소거 사이의 역 설적인 실천으로 해석될 수 있다. 프롬은 “자유가 지나치게 무거워질 때, 사람들은 그로부 터 벗어나고자 갈망한다”고 지적한다(Fromm 1941, 41). 「사람들」에서는 이러한 회피가 리듬에의 자발적 적응, 신체의 자동화, 공간적 위치의 획일화 등을 통해 은밀하게 실현된 다. 무용수들은 강제적으로 집단화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보폭으로 집단 리듬에 들어서 는 ‘선택’을 수행하며, 관객 또한 감각적 긴장 속에서 점차 판단의 거리를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자발적 순응은 「사람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동시대 사회에서 의 규율 권력은 더 이상 억압을 통해 작동하지 않고, 욕망 자체의 관리 가능성에 기반하여 기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은 단순한 움직임 형식의 실험적 무용 작품을 넘어, 사회의 구조적 질서에 대한 의식적 응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작품은 비언어적 방식을 통해 자유의 존재론적 위상을 비판적으로 질문한다. 즉, 자유는 여전히 자기 실현의 장인 가, 아니면 이미 질서와 알고리즘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심리적 방어 기제로 전환된 것인 가? 무대 위에서 반복, 지연, 분산과 집합으로 구성된 구성은 침묵하는 정치적 서사를 형성 하며, 관객에게 보여준다. 자유가 선택이 아닌 부담이 되는 순간, 개인이 감정을 억제하고 행동을 자동화하는 경향은 현대성의 불안이 정서적 차원에서 드러나는 가장 깊은 투사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은 단지 사회 구조적 증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환기시키고 순응에 맞서는 하나의 실험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자유와 희망은 무용이라는 예술의 저변 논리로 작용하며, 「사람들」은 이를 오늘날의 실 어증적 현실에 투사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자유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무대적 질 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이 성립되기 위한 전제는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사회에 서 실제로 규율되는 것은 더 이상 신체가 아니라, 감각하고 느끼는 능력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이다.
Ⅵ. 결 론
본 논문은 지젤 비엔느의 작품 「사람들」(Crowd)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오늘날 사회에 서 자유와 통제가 교차하는 현실 조건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선택’이 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자발적 행위들이 실상 고도로 제도화된 감각 구조 내에서 발생하 며, 그로 인해 판단력과 자율성의 경계가 약화되는 양상에 주목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이론을 중심 분석 틀로 삼고, 「사람들」의 감각적 구성—즉 음악, 신체, 공간의 세 요소—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분석적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음악은 감정의 규율을 가능케 하는 감각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빠른 테크노 음악의 강한 리듬과 반복 구조는 몰입을 유도하며, 감각 체계를 압도함으로써 자유를 선택 이 아닌 부여된 질서로 전환시킨다.
둘째, 신체는 자율적 표현의 매개가 아니라, 규율화된 반복과 속도 조절을 통해 자유가 어떻게 내면화되고 구조화되는지를 가시화한다. 이는 자율성보다는 책임 회피와 안정성 추구의 심리 구조를 드러내며, 신체는 질서의 표상으로 기능한다.
셋째, 무대 공간은 ‘유동적 통제’의 감각 구조를 구축한다. 개방적으로 보이는 공간은 쓰레기의 점진적 축적, 이동 경로의 제한 등을 통해 신체의 흐름을 점차 집단 질서로 수렴 시키며, 이는 물리적 장애물과 리듬, 시각적 구성을 통해 수행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유가 미학적 표상이 아닌 규율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시각적 으로 형상화하며, 이는 동시대 사회에서 감각과 판단의 능력 자체가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 지를 드러낸다. 본 연구는 이 작품을 자유라는 개념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비판적 장치로 해석하며, 이를 통해 동시대 예술의 사회적 실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