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Documentation & History

pISSN: 2383-5214 /eISSN: 2733-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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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nsive Image in Minamimura's Scored in Silence 미나미무라 치사토의 「침묵 속에 기록된 Scored in Silence」에 나타난 생각에 잠긴 이미지 J. ranciere의 미학적 사유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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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Dance Journal Vol.78 No. pp.71-90
DOI : https://doi.org/10.26861/sddh.2025.78.71

The Pensive Image in Minamimura's Scored in Silence

Lee Seohyeon*
*Lecturer, Korea National Sport University
*Lee Seohyeon emu21@naver.com
August 8, 2025 September 14, 2025 September 30, 2025

Abstract


This study, drawing on Rancière's concept of the 'pensive image' examines the deconstruction of the medial boundaries of dance and the sensory limitations of life as depicted in Minamimura's Scored in Silence. The ‘pensive image’ does not focus on one side of the dichotomy, but rather on creating a new arrangement by connecting the incompatible elements in a new way. Referring to the concept of ‘pensive image’, this study examins the meaning of Minamimura's one-person performance, Scored in Silence, by dividing it into ‘spoken visual sound’ and ‘haptic vibration’. I suggest that the process of expressing the narrative through the deaf performer in the work mixes the identities of fine art media and opens up the possibility of new interpretation through the individual senses of the audience.



미나미무라 치사토의 「침묵 속에 기록된 Scored in Silence」에 나타난 생각에 잠긴 이미지
J. ranciere의 미학적 사유를 중심으로

이서현*
*한국체육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강사

초록


본 논고는 랑시에르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 개념을 통해 미나미무라의 침묵 속에 기록된 에 나타난 춤의 매체적 경계와 삶의 감각적 한계의 해체를 연구하는 데 목적을 둔다. 생각의 잠긴 이미지는 랑시에르의 미적 사유의 핵심인 미학적 체제의 특성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개념으로 능동성과 수동성, 예술과 비예술, 사유와 비사유 등의 이분 법적 체계를 벗어나 있다. 이 개념의 특성은 이분법의 한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관시켜 새로운 배열을 만드는 것이 다. 이에 본 연구는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논거로 삼아 미나미무라의 1인 공연인 침묵 속에 기록된 의 의미를 ‘발화된 시각적 소리’와 ‘촉각적 진동’으로 나누어 탐구하였다. 이를 통해 침묵 속에 기록된 에 나타난 서사를 표현하는 과정이 순수 예술 매체의 정체성을 혼합하며 감각의 도식체계를 해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아가 이는 관객 개개인의 감각적 사유를 촉발시키며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따라서 본고는 무용예술이 관객 스스로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어 전제된 삶의 방식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진 장소임을 발견하였다.



    Ⅰ. 서 론

    본 연구는 랑시에르(J. Ranciere, 1940~)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pensive image)’ 개념을 통해 미나미무라(C. Minamimura)의 작품 침묵 속에 기록된 Scored in Silence(2018)을 논의하는데 목적이 있다. 침묵 속에 기록된은 청각장애인 퍼포머인 미나미무라가 실제 로 원폭 피해의 참혹함을 겪은 청각장애인 생존자들의 인터뷰와 영상 기록 등 리서치를 기반으로 제작된 ‘접근성 공연’1) 작품이다. 작품은 이들의 이야기를 춤 움직임과 수어뿐 아니라 3D 애니메이션, 영상, 자막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함으로써 춤의 매체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동시에 관객의 감각과 사고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랑시에르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그가 제시한 독특한 개념으로 “마음에 떠올리는 활발 한 사유의 능동성과 의도하지 않고 그러한 생각에 빠져든 상태의 수동성 사이의 비규정 지대다(황대원 2018, 174).” 이는 ‘생각, 예술, 행위, 이미지 사이의 지위를 변화시키는데, 이 변화는 랑시에르의 모든 철학적 사유와 얽혀있는 주요한 개념인 미학적 체제로 가는 이행을 표식한다(J. Ranciere 2016, 172).’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적 인 서사와 표현의 관계를 멈추고 규범화된 모든 행위의 논리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는 각 자의 역할을 교환하고 삶의 과정에서 소진된 감각적 가능성을 깨우며 비인격화의 과정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최근 국내에서 공연된 청각장애인 안무가의 작품 중 거의 유일하게 수어를 움직임 의 한 방법으로 활용해 보편적 감각의 틀을 해체하며 침묵을 통한 소리 없는 증언으로 사회의 비판적 현실을 가감 없이 폭로하는 침묵 속에 기록된이 랑시에르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임 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춤이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해 감각의 재분배를 발생시켜 삶의 고립된 방식을 전복시킬 긍정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창구임을 밝힐 것이다.

    본 연구의 선행연구는 랑시에르의 미학적 개념을 통해 무용예술을 논의한 연구(이서현, 2017, 2018;박유나, 2023)가 있다. 랑시에르의 미적 사유가 예술의 정치적 실천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 무용예술의 화두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에도 다른 예술 분야에 비 해 몇 편의 선행연구만을 찾을 수 있었음에 아쉬움이 있다. 또한 국내에서 접근성 공연 제작 및 가치에 관한 생각이 활발해지면서 논의된 연구(위보라, 2024;한가람, 2024)들은 접근성 공연의 현황 및 예술 경영학적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접근성 공연에 관한 무 용의 미학적 연구는 아직 미흡해 보인다. 이에 본고는 침묵 속에 기록된을 통해 랑시에 르의 예술적 사유를 바탕으로예술과 정치를 동일선상에 놓고 몫 없는 이들에게 몫을 부여 하는 실천적 개념인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춤 안에서 발견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연구의 구성은 2장에서 랑시에르의 사유를 통해 생각에 잠긴 이미지 개념을 살펴보고, 예술로서 생각에 잠긴 이미지의 특성을 ‘예술 표현 방식의 재위치화’, ‘관객의 능동적 사유’ 로 나누어 고찰할 것이다. 이를 통해 예술 작품과 관객의 관계에 관한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2장을 논거로 삼아 3장에서는 침묵 속에 기록된을 생각에 잠긴 이미지와 동일선상 에 놓고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발화된 시각적 소리’와 ‘촉각적 진동’으로 나누어 작품에 표현된 춤의 요소들을 분석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본 연구는 정치적 실효성을 지닌 미적 경험의 장으로서 춤의 해석적 층위를 확장시키는 관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가 동시대 춤의 정체성 및 발전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초자료가 되어 향후 무용학 연구에 기초 토대를 담당하기를 기대해 본다.

    주된 연구방법은 문헌연구로 이루어질 것이다. 먼저 랑시에르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미적 사유를 살펴보는 문헌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특히 랑시에르가 이 개념을 제시한 해방된 관객 Le Spectateur Emancipe(2016)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고, 감성의 분할 Le Partage du sensible(2000), 이미지의 운명 Le Destin Des Images(2014) 등을 중점적으로 그의 사유 전반을 가로지르는 미학적 체제에 관한 의미를 알아보 고자 한다. 미나미무라에 대한 단행본은 출간되지 않았으므로 그와 관련된 국내외 평문, 잡지나 신문 등의 자료를 살필 것이다. 특히 연구대상인 침묵 속에 기록된은 ‘202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SPAF)’2) 기간 중 아르코예술극장 소 극장에서 10월 17일부터 18일 이틀 동안 올려진 공연을 직접 관람한 내용과 이후 미나미 무라 안무가로부터 직접 공유받은 영상 자료를 참고하여 논의할 것이다.

    본 연구의 제한점은 생각의 잠긴 이미지가 랑시에르의 사유 전반을 포괄하는 개념임에 도 본 연구에서는 해방된 관객의 5장 ‘생각에 잠긴 이미지’을 통해 그의 예술에 관한 사유를 고찰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이 개념을 적용해 춤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미나미무라의 침묵 속에 기록된을 선정하였다는 점이다.

    Ⅱ. 랑시에르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

    1. 생각에 잠긴 이미지의 개념

    랑시에르는 해방된 관객의 5장 ‘생각에 잠긴 이미지’에서 생각에 잠긴 이미지라는 자 신의 독특한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이 장의 서두에서 대부분의 이미지는 인간처럼 생각한 다고 여겨지지 않기에 생각에 잠긴 이미지라는 표현은 자명하지 않다고 밝힌다(J. Ranciere 2016, 153). 그럼에도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생각되지 않은 생각을 내포하는 이 미지라 할 수 있다. 이는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낸 사람의 “의도에 할당할 수 없는 생각, 그 이미지가 특정 대상과 연결되지 않아도 그 이미지를 보는 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 각”(J. Ranciere 2016, 153)을 품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수동성을 드러낸다. 이때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통해 나타나는 수동성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어떤 순간에 우발적으로 사건을 경험하면서 각자만의 생각을 펼쳐내는 잠재성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생각의 잠김은 많은 것을 생각하는 주체가 마음에 무수한 것들 을 떠올리는 능동적인 것과 감상자가 의도하지 않은 그런 생각들에 빠져든 수동적인 상태, 사유와 비사유,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비규정 사태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개념은 랑시에르의 ‘미학적 체제’3)에 속하는 예술이 지니는 특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미학적 예술 체제는 삶에 존재하는 이분법적 분할을 재설정하는 독특한 감각의 존재 방식이며, 이것은 미적 경험의 양상이자 랑시에르의 미학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재현적 예술 체제는 포이에시스(poiēsis, 예술의 제작 방식)와 아이스테시스(aisthēsis, 존 재 방식)의 관계를 미리 결정하는 규범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맞는 주제와 형식을 정할 때, 비극의 제작 규칙들을 설정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예술의 의미와 연민, 공포, 카타르시스 등 관객의 경험까지 예측한다. 하지만 랑시에르의 미학적 체제(미학)는 아이스테시스를 통한 미적 경험을 폐기하고 재현적 체제에서 예측 가능했던 포이에시스와 아이스테시스의 상호관계를 중단시킨다. 또한 재현적 체제에서는 이미지보다 말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미지에 어떤 이야기나 생각을 보충하는 표현의 지위 를 부여하였다(황대원 2018, 183). 그러나 미학적 체제에서 예술은 이미지와 말의 규정된 관계를 제거하고, 이미지, 말, 생각이 뒤섞이는 규정 불가능한 관계를 나타낸다. 이에 생각 에 잠긴 이미지로서 ‘예술은 순수한 감각적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명백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생각과 의미를 담는 비규정적’(황대원 2018, 186)의 지대임을 알 수 있다.

    2. 예술로서 생각에 잠긴 이미지

    랑시에르에게 예술은 상상력의 자유를 낳는 이미지를 제시한다는 것, 감상자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예술로서 생각에 잠긴 이미지의 의미를 ‘예 술 표현 방식의 재위치화’, ‘관객의 능동적 사유’라는 두 방향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랑시에르의 사유에서 예술과 미적 경험을 잇는 매듭을 이해하고자 한다.

    1) 예술 표현 방식의 재위치화

    예술 표현 방식의 재위치화로서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예술과 사유의 계산을 좌절시키 는 변용력과 동일시된다(황대원 2018, 156). 여기에서 이미지는 제작 대상으로서의 역할을 벗고 비인칭적 존재의 현전으로서 작동한다. 이 같은 ‘생각에 잠긴’의 의미는 미학적 체제 를 특징짓는 이미지로서 하나의 이미지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비규정성의 ‘매듭’4)이라 할 수 있다. 즉 상이한 요소들 간의 단절 및 연속성의 긴장된 결합이다.

    랑시에르(2016)에 따르면 “변증법적 몽타주와 상징적 몽타주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이 질적 요소들 사이에서의 단절과 연속을 살펴볼 수 있다(J. Ranciere 2016, 240). 변증법적 몽타주는 사회 비판적 시각을 표현하는 정치적 예술에서 흔히 발견되는 방법이다. 이는 정해진 법칙이나 질서로부터 단절한다. 즉 양립 불가능한 요소를 합하고 친숙해 보이는 장면에 개입하며 충돌과 갈등을 연출하는 것이다. 반면 상징적 몽타주는 서로 다른 요소들 간에 긴밀한 유사성의 관계를 맺으며 예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함께-속함’을 연출한다. 랑 시에르에게 이것은 공통된 규범 없이 파편화된 조각들을 묶어 또 다른 공통 세계의 가능성 을 밝히는 신비의 형식이다(황대원 2018, 180).

    랑시에르는 생각의 잠긴 이미지가 이 두 극단 사이에 긴장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충돌과 신비 중 하나로 흡수되며 끝나는 게 아니라 상반된 두 힘을 긴장 안에서 합침으로써 기존 의 척도로는 규정 불가능한 새로움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이질적 요소를 통합하지 않으면서 결합시키는 형상의 새로운 지위라 할 수 있다(J. Ranciere 2016, 173). 이는 존재하는 모든 행위의 동질화 논리로부터 벗어나 뚜렷하게 규정된 관계없이 서로 얽힌 해방의 상태인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의 잠김은 시각과 언어예술, 추상과 재현 등의 차이를 통해 장르의 순수성을 규정짓는 경계에도 물음을 제기한다. 따라서 랑시에르 의 생각의 잠긴 이미지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며 시시각각 새롭게 재설정되는 동시대 춤 예술 작업을 해석하는 핵심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랑시에르는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소설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 (1857)에서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찾는다. 작품에서는 연애의 순간을 표현하는 한 구절인 ‘엠마의 작은 양산에 떨어져 녹아내리는 눈의 물방울, 해속의 물방울, 수련 잎 위의 곤충 한 마리, 마차가 일으키는 먼지구름’ 등의 텍스트를 시각적인 한 장면, 즉 캔버스 위의 그림으로 치환해 나타낸다(J. Ranciere 2016, 175). 이 같은 이미지는 연애 감정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거 나 유비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말을 보충 설명하는 역할로부터 벗어난다.

    따라서 예술의 이미지는 다른 표현의 자리에 들어간 어떤 표현이 아니며, 둘 혹은 그 이상의 예술 표현 체제가 뚜렷한 연관 없이 얽힌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때 이미지의 생각의 잠김은 각각의 예술 장르의 표현 체제를 동질화하지 않는 동시에 결합시키며, 미증유 과정 의 ‘이질발생’을 표출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예술적 매체는 무용, 영화, 사진, 데생, 캘리그래피, 시 등의 또 다른 순수 예술적 매체를 절단하는 도구가 되고, 이 과정 안에서 각각의 예술은 힘을 섞고 자신 의 예술적 독특성을 교환하는 작업을 실행한다.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하나의 표현 체제가 다른 표현 체제에 잠재적으로 현전하는 것이다(J. Ranciere 2016, 175). 이에 서로 교착되 어 융합하고 교환하고 차이 안에서 독특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표현 체제라 할 수 있다.

    2) 관객의 능동적 사유

    한편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통해 관객의 수동성과 능동성의 분할에 대한 담론 비판이 가능해진다. 여기에서 수동성은 프로시니엄 무대 공간에서 권위적 예술가의 안무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관객의 역할에 대한 의미를 넘어서 있다. 오히려 랑시에르에게 관객의 수동 성은 돌발적으로 경험하는 순간에 발현되는 것으로, 이를 통해 관객은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며 이해한 것을 각자의 관점으로 능동적인 번역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호, 사물, 행위의 숲에서 자기 고유의 길을 펼치는 해석을 수행하는 것이다. 관객의 능동성으로 유발 되는 사건으로서의 예술현장은 예술가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번역가 공동체의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이때의 공동체는 뚜렷한 목표를 향해 힘을 모으거나 동일한 생각을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다. 지적 능력의 평등에 근거한 이 공동체의 힘은 자신의 지적 모험을 교환하 는 익명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만든 작품의 형식과 미적 경험의 매듭 을 이루는 여러 미규정 지대로서의 생각의 잠긴 이미지는 관객의 역할에 관한 랑시에르의 생각으로 연결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황대원 2018, 187).

    특히 랑시에르는 에번스(W. Evans)의 사진을 통해 이 같은 이미지의 특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도판 1>은 에번스가 앨라 배마에 있는 부엌의 나무벽 일부를 찍은 사진으로, 1930년대 말 농업 안정국이 후원해 이뤄진 빈농 실태 조사라는 사회 기 획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에 사진에서는 앨라배마 농 부들의 비참한 생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다른 한편 이 작품 에서 비참을 표현하는 요소들은 동시에 어떤 예술적 구조를 구현하기도 한다. 즉 삶에서 식사 도구를 정돈하는 역할을 하 는 이 직선의 널빤지는 뚜렷한 사회적 목적 없이 찍은 모더니 즘 예술가의 이데올로기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랑시에 르에 따르면 에번스는 ‘예술의 자율성과 타율성’5)의 경계 자 체를 해체함으로써 사회의 비판적 현실을 가감 없이 기록하는 것과 비농들의 희생으로 예 술을 위한 예술만을 추구하는 것 모두를 벗어난 작가라 할 수 있다(J. Ranciere 2016, 166). 그의 사진은 사회적 리얼리즘과 순수한 예술적 형식사이의 긴장감을 유발하며 비규 정성을 담는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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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판 1

    또한 랑시에르는 에번스가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겠지만 무엇보다 감상자 는 그가 사진을 작업하며 어떤 것을 생각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이는 감상자가 사진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의 관점으로 해석 가능한 미적 경험이 가능해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에번스의 사진은 예술의 경계, 일상의 행동, 예술과 감상자의 생각 사이의 관계에 위치 변동을 일으키는 생 각에 잠긴 이미지로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랑시에르의 사유는 예술 작품에서 관객의 역할을 재고하게 만든다. 그는 관객이 작품과의 거리를 무너뜨리며 직접 작품에 개입하는 상황을 관객의 능동성으로 파악하는 일반적인 인식에 물음을 제기한다. 그는 작품과의 물리적인 거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관 객이 작품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생각을 펼쳐내는 상황에 주목한다. 자기 스스로에게 몰입 하는 순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관객의 능동성이 작동한다고 강조한다. 생각에 잠긴 이미 지는 이러한 과정으로 관객을 해방시킴으로써 각자의 방법으로 해석 및 소통하는 실천적 방향을 열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때 랑시에르가 강조하는 것은 “저자의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저자의 의도도 고려하되 이를 넘어서는 것들을 느끼고 상상하는 관 객의 해석임”을 알 수 있다(황대원 2018, 188).

    그러므로 이미지의 새로운 지위의 산물인 생각에 잠김은 예술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의 새로운 짜임을 그리는데 한 몫을 한다고 살펴볼 수 있다(J. Ranciere 2016, 146). 이는 신체와 정신의 배치를 다시 그리므로, 이때 입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없고 눈은 자기가 보는 것을 미리 알 수 없으며 생각은 자기가 그것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미리 알 수 없다. 예술이 본질적으로 어떤 변화의 힘을 가진다면 그것은 결국 관객의 시선을 통해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지나치게 순수한 형식 또는 지나치게 현실을 짊어진 사건을 그것들 바깥에 두는 두 조작 간의 관계로, 이 관계의 이미지는 예술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관객만이 그 관계의 척도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하여 감각의 재분배를 발생시키는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통해 춤이 표현 체제들 사이 긴장의 장소이자 창작자가 생각한 형식과 감상자의 미적 체험을 맺는 이질 발생의 장소로서 관객을 수동성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을 탐구 하고자 한다.

    Ⅲ. 침묵 속에 기록된에 나타난 생각에 잠긴 이미지

    1. 미나미무라의 예술 세계

    일본에서 태어나 런던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는 미나미무라는 청각 장애인 퍼포먼스 아티스트와 안무가이자 영국 수어(British Sign Language, BSL) 예술 가이드이다. 미나미무라는 일본에서 일본화 전공으로 학사 학위와 요코하마 국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 를 받았다. 그리고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고민하던 찰라에 런던에서 진행 예 정이었던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한 무용 워크숍을 제안받고 처음으로 춤을 접하게 된다. 그 이후 그녀는 런던의 트리니티 라반(Trinity Laban)에서 교육을 받고 캔두코 댄스 컴퍼 니(Candoco Dance Company)에 입단해 전문 무용수로 활동하였다. 또한 그레이아이 씨 어터 컴퍼니(Graeae Theatre Company)와의 공중 퍼포먼스,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과 리우 패럴림픽 문화 올림피아드 등에 참여했다. 현재는 런던 무용제작극장 더플레이스(The Place)에서 상주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미나미무라는 캔두코 댄스 컴퍼니에서 전문 퍼포머이자 안무가로서 막 활동을 시작했을 때, 비장애인의 시각에서는 보이지 않는 감각적인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힌다(L. Tate 2020. 4. 27). 그녀는 무용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을 1년 정도 경험한 상태에서 기술적인 측면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춤을 접근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같은 고민 안에서 미나미무라는 예술적 활동을 통해, 감각적 지각(sensory perception), 시각적 악보(visual score), 수화 무용(Sign Mime), BSL 아트 가이드(BSL art guiding), 디지털 기술 및 퍼포먼스(digital technology and performance)를 융합하여 새로운 예술 형태를 창조하고자 한다. 그녀는 청각 장애인으로서 시각적 소리와 음악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며 독특한 새로운 무언가를 보기를 원한다. 이처럼 미나미무라는 청각 장애가 심해서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숫자 표기법을 사용하여 시각적 사운드와 음악을 안무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무용 움직임을 사용하여 ‘시각적 악보’라고 부르는 것을 개발한 것이다. 즉 그녀에게 음악은 다양한 요소를 통해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만들어진다.

    미나미무라의 예술적 관점이 적극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작품들은 세금 Scot(2007), 듀엣을 위한 캐논 Canon for Duet(2008), 새로운 비트 New Beats(2009), 변화를 울 려라 Ring the Changes+(2014), 시간의 흐름 Passages of Time(2016), 청각 장애인을 위한 4분 33초 Deaf for 4'33''(2022)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여성의 흔적 Mark of A Woman(2023)과 본고의 연구 대상인 침묵 속에 기록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청각 장애인을 위한 4분 33초는 2022년 7월 개최된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정 의하는 시각 예술가 조직인 DASH(Disability Arts In Shropshire)의 프로젝트 ‘We Are Invisible We Are Visible(WAIWAV)’6)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미나미무라는 DASH 소속 예술가로서 존 케이지(J. Cage)의 4분 33초 4'33''에 대한 청각 장애인으로서의 답응인 청각 장애인을 위한 4분 33초를 공연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4분 33초는 오전 10시 에서 오후 4시까지 정각마다 4분 33초 동안 퍼포먼스가 이뤄진다. 모두 7번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퍼포머인 미나미무라는 “피아노를 여러 도구를 활용해 해체하며 피아 노는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들릴 수 있는지”(이서현 2025, 34)에 대한 통념에 저항하고자 한다. 미나미무라는 청각 장애인이 청각 세계와 관계 맺고 그 속에서 움직이는 방법에 대한 자기의 탐구를 무대에 실천하며 소리를 바탕으로 삶의 특정한 시간, 기억, 장 소로 이동해 감각을 재배치하는 방법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2023년에 더 플레이스(The Place)에서 초연된 여성의 흔적에서도 이 같은 예술적 실천 을 실행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여성과 문신 문화 간의 과소평가된 관계에 관한 개인의 역사와 진정한 이야기를 기리고 탐구하는 디지털 퍼포먼스 프로젝트다(chisato minamimura 홈페이지 2025). 여성의 흔적에서는 미나미무라가 작업에서 주로 활용하는 매체인 시각적 언어인 수화, 디지털 애니메이션, 키네틱 프로젝션과 우저(Woojer) 기술 등을 통해 여성의 신체 표시, 사회문화적 그리고 역사적인 관계에 대한 색다른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또한 다양한 매체와 렉처 퍼포먼스 형식을 결합해 “세계 최초 여성 타투이스트와 유방 절제술 이후 가슴에 문신을 새긴 유방암 환자 등을 소개”(이서현 2025, 34)하며 현재와 과거의 여성에 대한 시각적인 한계에 질문한다. 안무가는 재현적 체제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서사적 구조와 매체의 융합을 바탕으로 진솔한 서사를 전하며 여성만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타자들에 대해 성찰 가능한 공간을 열어 낸다.

    따라서 미나미무라 작업 방식은 기존에 공존할 수 없다고 여겼던 요소들의 생경한 결합 이므로 무용 예술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관객의 사유를 개방시키는 수단으로 살펴볼 수 있 다. 이와 같은 그녀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인간의 감각이 별의 모양과 같다고 전제’하는 것이다(L. Tate 2020. 4. 27). 미나미무라는 오감을 다섯 개의 별로 지칭 하고 사람마다 이 별의 모양이 다르다고 본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조금의 차이는 있을지 라도 다섯 개의 꼭짓점이 별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지만, 오감에 장애가 있는 이들에 게는 하나의 꼭짓점이 아예 상실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나미무라는 자신 같은 경우 에도 감각적 별의 네 가지 명확한 지점과 더불어 다섯 번째 지점인 청각도 존재한다고 강 조한다. 즉 “청각 장애를 장애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감각적 상태”(이서현 2025, 38)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그녀의 작품에서는 무용, 수어, 디지털 기술 등 그녀 자신만의 고유 한 방식으로 감각이 작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생각에 잠긴 이미지’ 개념을 통해 침묵 속에 기록된을 분석함으로써 동시대 춤이 예술의 관습적 질서뿐 아니라 삶의 지배적 감각에 관한 증언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논의하고자 한다.

    2. 침묵 속에 기록된 에 나타난 생각에 잠긴 이미지

    침묵 속에 기록된은 2018년 영국에서 초연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24년 ‘서울국제공 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SPAF)’ 기간 중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0 월 17일부터 18일 이틀 동안 공연되었다. 특히 이 작품의 핵심은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청각장애인 안무가인 미나미무라가 1인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 방식을 사용하 여 전달하는 접근성 공연이라는 점이다. 2018년 미나미무라가 일본에 갔을 때 만난 한 청 각장애인의 약 80년 전 히로시마에서의 경험을 들은 것을 계기로 작품을 기획하였다. 침 묵 속에 기록된은 히바쿠샤라고 불리는 원폭 피해자들 중 청각장애 생존자들의 서사를 다루기에 일본에 가서 직접 이들을 인터뷰하고 모든 기록들을 영상으로 남겨 안무화하였 다. 미나미무라는 청각장애 생존자들의 몸짓과 말을 음악과 소리로 전달하기 위해 춤 움직 임, 수어, 우저(Woojer) 벨트, 3D 애니메이션, 영상, 스크린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결합 해 춤의 경계를 확장시켰다.

    무엇보다 미나미무라가 이 대화 안에서 가장 충격받은 부분은 ‘폭발이 아름답다’고 표현 한 점이라고 밝힌다(월간 객석 2024. 10. 7). 미나미무라에 따르면 이 작품은 전화, 라디오, 구전으로도 소식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원자폭탄이 무엇인지 그 당시에는 모른 채 세월이 흘러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는 원폭 피해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 자신도 청각장애인으로 서 살며 겪은 어려움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을 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 올리고자 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 익숙한 춤 매체를 탈피해 퍼포머의 침묵을 통한 소리 없는 증언으로 발현되는 낯선 이미지와 새로운 서사가 춤의 통속적 관습뿐만 아니라 삶의 지배적 감각을 무너뜨리는 랑시에르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임을 논의할 것이다. 이를 위해 침묵 속에 기록된을 ‘발화된 시각적 소리’와 ‘진동의 촉지성’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자 한다.

    1) 발화된 시각적 소리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하나의 특정한 감각이 소실된 몸을 무대에 발현하기 위해 여 러 장치들을 활용한다(조형빈 2024. 12. 23). 퍼포머는 투명 스크린 뒤에서 수어와 함께 일상적 움직임을 통해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의 주요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 일본 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기 전 상공에서의 조종사 모습, 폭탄 투하 후 생존한 히바쿠샤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인터뷰 영상과 역사적 사실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러티 브 형식의 공연이지만 그 표현 방식은 다양한 디지털 매체와 수어를 활용한 춤적인 움직임 을 통해 생경한 이미지를 만들어 냄으로써 기존의 예술 표현 방식에 관한 재배치를 실천하 는 것이다.

    작품 초반에 퍼포머인 미나미무라는 미국의 루즈벨트(F. Roosevelt) 대통령과 영국의 처 질(W. L. S. Churchill) 총리의 영상을 스크린에 띄우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부 터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직전인 1945년 8월까지의 주된 사건들과 이 전쟁의 주요 국가들 의 상황을 상세히 묘사한다. <도판 2>처럼 퍼포퍼는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사진, 지도, 역사적 기록 등의 이미지와 수화 및 일상적 몸짓의 결합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작품의 표현 방법에서 음성이 아닌 움직임을 활용해 정치적 서사를 설명한다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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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판 2

    침묵 속에 기록된 에서 수어를 통한 발화 (Speech through sign language in Scored in Silence). (https://www.youtube.com/watch?v=IbqfBa7d-Mw, 2025. 7. 10.)

    왜냐하면 작품에서 표출되는 움직임이 미나미무라에게는 음성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수 어와 결합된 움직임은 단순히 춤의 주요 매체로서의 움직임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주요 감각의 발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표현 방식에서 움직임 이미지는 어떤 말보다 과거의 참혹했던 모습을 힘 있게 전달하는 요소가 됨으로써 ‘말과 움직임(이미지)의 재현적 관계를 중단’시킨다. 서구 형이 상학적 사고에서 이미지는 항상 열등한 것이었고, 말을 보충 설명하는 표현적 지위를 가진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이같은 관계를 파기하고 말과 이미지가 뒤섞이는 우연적인 관계로 재배치시킨다. <도판 2>의 이미지도 보편적인 감각의 작용, 즉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쓰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등 규정된 감각적 상태로부터 벗어나 이질적인 감각 방식이 작동하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으로 살펴볼 수 있다.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 는 수화라는 언어가 무용예술의 매체로 변용되고, 디지털 매체와 결합한 움직임이 역사적 사건을 폭로하는 내러티브로 치환되며 ‘각 예술 간의 역할 교환을 수행하며 사건을 유발하 는 생각에 잠긴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특히 작품에서 발현되는 수어의 예술적 표현 행위로의 변용은 춤에서 주요한 매체인 움 직임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다. 이는 ‘말하기’와 ‘움직이기’라는 둘의 이분적 관계를 무화시켜 ‘이미지, 말, 생각이 뒤섞이는 규정 불가능한 관계’를 드러낸다. 컨템포러리 댄스 에서는 언어에 대한 의존 없이 신체만을 매개체로 삼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발화 행위가 낯선 것은 아니다(박성혜, 박인자 2015, 52).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춤 무대에 서 말의 영역이 움직임의 비중보다 높아질 때 무용예술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들이 제기되 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퍼포머의 움직임으로 발화 행 위가 이뤄지면서 전통적인 말과 이미지 예술의 척도를 새롭게 설정한다. 작품에서 사건의 폭로는 음성을 통해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 침묵을 통한 움직임 이미지로 가능해지고, 이 때의 움직임은 청각장애인인 퍼포머에게는 음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침묵 속에 기록된 은 생각에 잠긴 이미지처럼 말과 움직임의 언어적 위계를 철폐하여 역할 교환으로 공존하 며 예술 장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매체에 관한 고정된 시각을 벗어나고 있다.

    한편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 나타난 실제 청각장애인 원폭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통한 내러티브의 방법과 당사자성의 피해자 신체를 통한 연출은 더 이상 새로운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박다솔 2024. 12. 18). 하지만 침묵 속에 기록된의 인터뷰 장면에서는 수어 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침묵에 관한 통상적 의미를 소거하여 청각장애 생존자들에게 목 소리를 부여하고 이들의 몸짓과 말을 무대 위로 끌어 올린다는 점에서 특유의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다. 또한 작품 전반에서 나타나는 수어라는 또 하나의 고유 언어를 안무의 매체로 활용함으로써 작품의 주요 움직임 언어로 표현했다는 점에 강조점을 둘 수 있다.

    인터뷰 영상에서는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던 청각장애인들이 겪은 이야 기를 그들의 언어인 수어를 통해 시각화한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K. Takabu는 14살에 자신의 동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거대한 폭발과 함께 벽에 던져졌던 순간에도 자신은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그 폭발음을 들을 수 없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전 혀 알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또 다른 인터뷰이인 T. Kurohawa는 12살이었을 때 경험한 원자폭탄이 너무나 끔찍했고 모든 것은 잔해가 되었으며, 냄새는 지독했고 어디에서나 벌 거벗고 죽은 몸은 볼 수 있었다고 밝힌다.

    이들이 무대에서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상황을 수어로 상세히 밝힐 때 나타나는 움직임 은 “우리가 볼 수 없던 것을 보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신체의 목소리”(이서현 2020, 60)처 럼 들린다. 이 목소리는 침묵을 통해 가시화되는 삶의 고발로서의 웅변이라 할 수 있다.7) 수어는 더이상 청각이라는 한 감각이 부재한 상태를 규정짓는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 다. 이것은 무용은 움직이고 회화는 보고 문학은 쓰고 음악은 듣는 것이라는 예술의 경계 를 허물고 감각적 교환의 상태를 이루는 생각에 잠긴 이미지와 같아 보인다. 미나미무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출발해서 여러 요소를 바탕으로 음악을 시각적 으로 만드는 방법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 퍼포머는 ‘자신이 이용하는 시각 언어를 수단으로 무용의 형식적인 한계를 벗어나 타자의 소리를 시각화’하고자 한 것이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참혹 한 역사를 침묵으로 경험한 신체들의 발화는 기술적으로 잘 훈련된 무용수의 신체 움직임을 벗어난 새로운 움직임 이미지를 발현하고 동시에 역사적 사건을 폭로하며 ‘예술의 자율성과 타율성’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새로운 감각적 상태의 제안이자 전제된 예술의 담론을 해체하는 비규정의 장을 발견할 수 있다(이서현 2025, 33).

    ‘미나미무라에게 청각장애는 결핍이나 부재가 아니므로 청각장애인은 소리를 읽을 수 있다(L. Tate 2020. 4. 27).’ 그녀는 언어를 받는 유일한 방법은 입으로 말을 하고 귀를 통해 입력해 듣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위치를 완전히 전환해 몸으로 말하고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디지털 예술을 통해 청각적 소리와 시각적 소리의 결합 가능 성을 만들어 내고, ‘입→귀→인식’의 도식을 해제시킨다. 이러한 미나미무라의 언어에 관한 사유는 ‘무용, 문학, 회화, 영화, 사진 등의 예술은 상이한 매체들이 가진 힘을 교환하고 독특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관계’라고 본 랑시에르의 사유와 맞닿아 있어 보인다. 이에 침 묵 속에 기록된에 나타난 감각의 치환 상태로서의 예술 매체 간의 상이한 연결은 뚜렷히 규정된 관계없이 서로 얽힌 해방된 ‘생각에 잠긴 이미지’로 살펴볼 수 있다.

    2) 진동의 촉지성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우저 벨트(진동 감각 기계)를 통해 공연의 음향을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청각적 소리를 촉각적으로 변환해 전달한다. 이는 ‘장애가 결국 어떤 감각의 크고 작은 소실이라는 관점에 따라 해당 감각을 어떤 감각이 유사하게 혹은 새롭게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조형빈 2024. 12. 23). 작품에서는 역사적인 참혹함을 경험한 청각장애인들의 침묵의 순간을 우저 벨트의 진동으로 가시화하여 삶의 ‘영토를 재구축하는 공동체의 새로운 실재적 몸’을 발현하였다(J. Ranciere 2016, 56).

    청각장애인들은 1945년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을 아름다웠다고 표현할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대부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커다란 사건이 지나간 이후에도 이들은 들을 수 있는 ‘감각의 차이’로 일본 정부 하에 이뤄진 지원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 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피해자들에 비해 더 큰 힘듦을 겪어내야 했다.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이들의 상황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저 벨트를 활용해 침묵 속에 울림을 표현해 낸다.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도판 3>처럼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폭발할 때 우저벨트가 강하게 울린다. 그리고 곧 전투기와 시골의 자연스러운 소음들은 모두 사라지고 순간적으 로 소리 없는 침묵의 순간으로 전환된다. 이때 울리는 우저 벨트는 청각에서 촉각으로 치 환된 ‘생각에 잠긴’ 상태로 살펴볼 수 있다. 이는 마치 ‘두 감각 기관을 대립시키지 않고 눈이 보는 것 이외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 촉지적 감각의 작용과도 같아 보인다(J. Deleuze, F. Guattari 2003, 938). 그러면서 침묵의 순간 하늘에서 쏟아지는 먼지로 모든 것이 덮여 깜깜해진 무대에 홀로 존재하던 퍼포머가 희미해지는 미장센(mise-en-scène) 효과와 이어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폐허가 된 흑백 사진의 연속적 장면들은 진동과 침묵의 감각적 변용 과정을 더 극대화시킨다(조형빈 2024. 12. 23). 이에 관객은 작품에서 발현되는 진동으로서의 소리를 통해 우리가 소리라고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작품의 고요함 속에서 표출되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분할을 재분할하는 힘을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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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판 3

    침묵 속에 기록된 에서 원자폭탄 투하 이미지 (The image of the atomic bomb dropped in Scored in Silence). (https://www.youtube.com/watch?v=ujEJkG47FIk, 2025. 6. 30)

    또한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이외에도 작품에서는 내러티브의 중요한 순간마다 우저 벨 트를 울림으로써 침묵을 가시화하고 동시에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틈을 연 다. 예를 들어 퍼포머가 원자폭탄이 가져오는 세 가지의 영향인 열화상(thermal burn), 트 라우마(trauma), 방사선(radiation)을 수어와 3D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할 때, 당시 원자폭 탄 피해자들이 전염시킨다고 오해를 받아 사랑하는 연인이 나비로 변해 떠나는 장면, 헤어 디자인에 소질이 있는 한 청각장애인 남성이 살롱을 열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가서 거절당하는 순간 등 주요 사건마다 우저 벨트를 울려 청각장애인 관객을 비롯한 모든 관객 들이 작품에 각자의 사유를 개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안무가는 우저 벨트를 사용하 여 청각장애 생존자들의 소외된 움직임과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이 진동으로서의 소리를 통해 관객은 ‘청각적 소리’ 대신 ‘느끼는 소리’를 경험하며 퍼포 머와 감각을 공유하고 내러티브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다. 미나미무라는 이러한 상황에서 발현되는 ‘촉지적 소리’를 통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많은 것들이 모두 ‘소리와 같은 것’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미나미무라는 ‘청각 세계에서는 청각장애인이 침묵 의 우주에 갇혀 있다는 생각에 집착한다’고 밝힌다(L. Tate 2020. 4. 27). 그녀는 삶에서 당연시해 온 ‘귀로 소리를 듣는 힘’을 ‘온몸으로 소리를 느끼는 힘’인 촉지적 감각으로 바꿈 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적 치환 과정’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 서 관객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울리는 우저 벨트의 진동을 통해 생각에 잠길 수 있다. 따라 서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예술 작업에서 실현되었던 보기와 행위의 관계에 저항하며 보고 말하고 수행하는 요소 사이의 확실성의 체계를 깨뜨리는 해방된 관객의 실천이 가능해진다.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며 전통적인 무용예술에서 추구해 온 훈 련된 기술과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없다. 그리고 작품은 퍼포머로서 역할 전환의 과정을 통해 무대와의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다만 관객은 현실에 서 여전히 타자의 영역에 존재하는 청각장애인 퍼포머가 밝히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담은 작품의 무대를 통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느낌을 받으며 보편적인 인류애에 관해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관객은 안무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세상 속의 소외된 신체 감각들에 관해 인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넘어 관객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 즉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수동적으로 이뤄지는 관객의 촉각적 체험은 무 대와 객석이 분리된 전통적 무용 무대 구조에서 퍼포머와 관객의 역할을 전복시킬 수 있 다. 그러므로 관객은 진동의 떨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등의 통상적 감각의 체계를 벗어나 자기만의 감각의 별을 다시 그리는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미나미무라는 침묵 속에 기록된을 통해 참혹한 역사적 사실을 침묵으로서 체험한 신체들이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재현하며 동시에 소수자로서 의 정체성이 역사에서 얼마나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작품에서는 청각장애를 가진 몸이 겪어내야 했던 낙인을 통해 다른 감각을 가진 몸을 소환하고 그것을 예술의 매체적인 속성을 뒤섞고 변경함으로써 관객에게 전달하여 관객의 감각을 무한한 잠재 가능성을 가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랑시에르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침묵 속에 기록된과 같은 선상 에 놓고 논의함으로써, 작품에서 청각장애인 퍼포머를 통한 내러티브의 표현 과정이 순수 예술 매체의 정체성들을 뒤섞으며 발현되어 관객 각자의 감각으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 을 열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Ⅳ. 결론

    본 연구는 랑시에르의 생각에 잠긴 이미지 개념을 바탕으로 미나미무라의 침묵 속에 기록된에 나타난 춤의 매체적 경계와 삶의 감각적 한계의 해체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생 각의 잠긴 이미지는 랑시에르의 미적 사유의 핵심인 미학적 체제의 특성과 밀접하게 연결 되는 개념으로 능동성과 수동성, 예술과 비예술, 사유와 비사유 등의 이분법적 체계를 벗 어나 있는 것이다. 이 개념에서 주목하는 점은 이분법의 측면에서 어느 한쪽에 중심을 두 는 것이 아니라 이 공존 불가능한 요소를 새로운 방법으로 관계 맺음으로써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생각의 잠긴 이미지의 예술적 특성을 두 가지로 나누어 탐색하였다. 첫 째, ‘예술 표현 방식의 재위치화’이다.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상이한 요소를 통합하지 않으 면서 결합시키는 이미지의 새로운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각 예술의 매체적 차이로 장르의 순수성을 규정하는 경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서구 전통 철학에서 언어를 보충 설명 하는 이미지의 위치를 재배치한다. 이에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예술의 정체성을 고착화하 는 하나의 표현 체제를 벗어나 각 표현 체제가 서로 교환하고 융합하며 독특한 조합을 만 들어 내는 새로운 표현 체제로 볼 수 있다.

    둘째, ‘관객의 능동적 사유’이다.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전통적인 예술 표현 체제를 전복 하여 관객의 능동성과 수동성의 경계를 해방시킨다. 즉 랑시에르는 관객의 능동적인 사유 가 퍼포머로서의 역할 전환으로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몰입하는 순간 우발적 으로 생성되는 생각의 펼쳐짐으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생각에 잠긴 이미지는 결 국 관객의 시선으로 발현되며, 이는 삶과 예술에 존재하는 모든 분할의 경계에 물음을 제 기하는 불화의 무대로 살펴볼 수 있다.

    생각에 잠긴 이미지를 논의의 근거로 삼아 청각장애인 미나미무라의 1인 퍼포먼스인 침묵 속에 기록된을 ‘발화된 시각적 소리’, ‘촉지적 진동’으로 나누어 의미를 고찰하였다.

    첫째,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다채로운 디지털 기술과 춤 움직임 매체로 활용한 수어 를 결합해 히바쿠샤라 불리는 원폭 피해자들 중 청각장애 생존자들의 역사적 서사를 폭로 하고 보편적인 감각의 발화 과정을 새롭게 변형시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퍼포머는 자신이 사용하는 시각 언어를 통해 전통적인 무용의 형식적 한계를 넘어 타자의 소리를 시각화하였다. 이에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는 명백한 관계 없이 예술 매체의 교유한 역할 을 해체하고 교환하며 ‘입→귀→인식’의 도식체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미증유의 이질발생을 생성하는 생각에 잠긴 이미지가 나타났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둘째, ‘촉지적 진동’에서는 우저 벨트를 활용해 공연의 모든 소리를 몸으로 느낄 수 있도 록 청각적 소리를 촉각적으로 치환해 전달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침묵 속에 기록된에서 는 보편적 감각의 방식인 ‘귀로 소리를 드는 힘’을 ‘온몸으로 소리를 느끼는 힘’인 촉지적 감각으로 변환시킴으로써 삶의 통속적인 감각의 의미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우발적인 순 간 울리는 우저 벨트의 진통을 통해 관객을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즉 작품에서는 중요 한 순간마다 우저 벨트를 울려 침묵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관객들이 각자 자신만의 감각 으로 작품을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내었다.

    본 연구에서는 생각에 잠긴 이미지가 나타난 침묵 속에 기록된을 논의함으로써 청각 장애 퍼포머의 움직임으로 표현된 내러티브 이미지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A. Lepecki 2014, 122). 이것은 오히려 더 강력한 목소리로서 작동해 소수자로서의 신체의 비가시화된 목소리가 어떻게 역사 아래 존재해 왔고 지금까지도 여 전히 가라앉은 존재로서 기능하는지를 드러내며 관습적인 삶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힘을 발산시킨다. 따라서 본 연구는 무용예술이 삶과 멀리 떨어진 이상화된 아름다움의 표현만 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발적으로 생각에 잠기게 만들어 전제된 삶의 방식을 벗어날 수 있는 생성의 힘을 가진 장소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본 연구가 무용예술의 정치적 실효성을 지닌 미적 사유에 관한 후속 연구에 하나의 토대가 되길 기대해 본다.

    저자소개

    이서현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서 “유럽 컨템포러리 댄스에 나타난 헤테로토피아적 특성 연구: 후기구조주의 신체개념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무용철학 및 미학, 무용교육 등으로 춤에 나타난 다양한 의미를 해석하고 언어화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Lee Seohyeon [Yi Seohyeon] received her Ph.D. from the Department of Dance at Ewha Woman’s University with a dissertation titled Heterotopic Characteristics of European Contemporary Dance: Focused on the Body Concept of Post-structuralism. She currently lectures at institutions such as Korea National Sport University and Sookmyung Women's University. Her research interests include dance philosophy and aesthetics, as well as dance education, and she is interested in interpreting and verbalizing the diverse meanings expressed in dance.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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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드 필즈 가족 농가의 부엌 벽(Kitchen wall in bud fields’ house). (https://www.jacksonfineart. com/artists/walker-evans/k itchen-wall-alabama-farmst ead-1936-from-the-full-wa lker-evans-selected-photo graphs-portfolio-1974/, 2025.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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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 속에 기록된 에서 수어를 통한 발화 (Speech through sign language in Scored in Silence). (https://www.youtube.com/watch?v=IbqfBa7d-Mw, 2025.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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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 속에 기록된 에서 원자폭탄 투하 이미지 (The image of the atomic bomb dropped in Scored in Silence). (https://www.youtube.com/watch?v=ujEJkG47FIk, 2025. 6. 30)

    Tabl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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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침묵 속에 기록된┚ 영상 자료. https://vimeo.com/353441316/a8f7fd9e98.

    저자소개

    Footnote

    • 1960년대 이후 건축 분야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물리적 장벽을 없애기 위해 사용되어 온 배리어 프리는 문화예 술계에서 적용되면서 사회 소외계층의 문화 향유를 위한 공연예술의 다양한 접근을 향상하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 접근성 공연은 2018년에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많은 안무가들이 접근성 공연을 개발 및 제작해 무대화하고 있다(위보라 2024, 233). 국내의 경우 국내 예술단체의 접근성 공연제작을 지원해 주는 아르 코·대학로 예술극장의 공연 및 국내 주요 공연예술제들을 통해 최근의 이 같은 접근성 공연의 현황과 미학적 가치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국내 공연 예술계에서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용어가 활용되며 자막, 수어 통역, 음성해설, 터치투어 등 접근성 공연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접근성 공연은 지배적 감각이었던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촉각, 후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많은 실험적인 작업들을 선보이며 예술로 인식의 전환 계기를 마련하고 타자를 수면 위로 올리는 시도들을 한다.
    • 2022년부터 배리어프리 접근성 기획을 시작해 다양한 공연을 배리어 프리로 제작하고 있는 서울국제공연예술 제에서는 올해 ‘새로운 서사: 마주하는 시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제안하였다(한가람 2024, 17).
    • 랑시에르는 예술을 식별하는 세 가지의 예술 체제, 즉 윤리적 이미지 체제, 재현적 예술 체제, 미학적 예술 체제 를 주장한다. 이 체제들은 시기적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구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어떠한 행위나 사물을 예술로 볼 것이며, 무엇이 이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지에 관한 관점을 설명한다. 윤리적 이미 지 체제는 플라톤(Plato)의 관점에서 공동체의 질서에 해가 되지 않는 기준으로 예술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진실성과 도덕성이 예술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재현적 예술 체제는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의 시학 poetica을 따라 적합한 재현 법칙과 이로 인해 기대되는 효과를 통해 예술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랑시에르의 미학적 예술 체제는 윤리적 이미지 체제와 재현적 예술 체제 모두와 단절되어 있다.
    • 매듭은 둘 이상의 서로 분리된 사물을 묶으면서 생긴 마디를 의미한다. 매듭의 의미를 몇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매듭은 풀리고 끊어질 수도 있고, 다시 풀어진 매듭을 누군가에 의해 묶어 새롭게 존재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에 매듭은 영원한 결합은 아니다. 둘째, 매듭은 어떤 일의 순조로운 진행을 막는 난관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랑시에르가 주목하는 매듭들도 이러한 의미를 가진다. 즉 랑시에르가 삶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 개입하는 불화의 무대를 강조하는 것처럼 대부분 매끄러운 상황이나 설명을 방해하는 모순 혹은 논란의 지점이 매듭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매듭은 어떤 일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을 가리키는 은유다. 생각에 잠김처럼 랑시에르 이론에서 매듭들은 우리가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태의 핵심을 나타낸다(황대원 2018).
    • 예술의 자율성은 춤은 움직임, 문학은 글, 회화는 캔버스 등 예술 장르 각각의 순수한 매체를 통한 예술 작업이 이뤄질 때 가능해지고 예술의 타율성은 사회 비판적 시각을 표현하는 정치적 예술에서 발현된다.
    • WAIWAV는 1920년 국제 다다 전시회 102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예술가들이 풍자와 넌센스를 예술에 사용하여 1차 세계 대전의 공포에 반응한 전시회이다(이서현 2025).
    • 랑시에르는 클로드 란즈만(C. Lanzmann)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쇼아 Shoah (1985)에서 나타나는 증언의 역할은 눈물,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 등과 같은 침묵의 요소라고 본다(J. Ranciere 2014,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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