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본 연구는 대한민국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북5도 문화유산 무용 종목을 중심으로 그 예술적 가치와 전승 방향성을 고찰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에 대해 문화유산(무형) 춤 종목은 국가 문화유산 및 시ㆍ도 문화유산 그리고 향토 문화유산으로 구분된다. 관련 종목 정보는 향토 문화유산을 제외하고는 국가유산청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이북5도 문화유산 또한 국가유산청에서 관련 종목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은 국가유산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국가 및 시ㆍ도 문화유산에는 아직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북5도위원회에서 지정된 종목만 확인 가능하다. 이 종목들은 국가문화유산처럼 국립무형유산연구원(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지속적인 조사연구 및 아카이빙이 존재하지 않아 자료접근과 연구축적의 한계를 가진다.
이북5도 문화유산은 행정안정부 소속의 이북5도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북5도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살펴 본 이북5도1) 지역은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미수복 경기, 미수복 강원을 포함한다. 여기에 현재 지정된 이북5도 문화유산은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5개 도 지역을 구분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 다루는 문화유산과 관련된 ‘이북5도 무형유산’의 정의는 2025년 10월 22일 국가법령정보센터 웹사이트 중 ‘이북5도 등 무형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규정: 이북5도위원회 훈령 제175호(2025.02.06.개정)’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목적) "…전통문화를 대한민국에서 전승ㆍ유지하고 창조적으로 계승ㆍ발전시키기 위하여 이북5도등의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 ‘이북5도등 무형유산’이란 이북5도등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전통문화로서 무형의 문화적 유산 중 가치가 있는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가. 전통적 공연ㆍ예술 …"이다.
이북5도 문화유산의 종목들은 1945년 해방 이후 분단국가가 되며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을 통해 계승되었다. 다만 이북과의 교류가 제한되어 있어 현재도 문화유산들이 이북에서도 전승되는지는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남한에 정착한 실향민들을 통해 북한지역의 문화예술이 여러 세대를 걸쳐 전승되어오는지에 대한 배경은 보유자들의 인터뷰 자료와 각 종목 보존회의 문화유산 지정 신청서와 위원회 심의 조사자료 등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이북5도 문화유산 종목지정 과정은 홈페이지에 공지된 지역별 문화유산 신규 발굴 공고를 통해 ①지정 신청서와 첨부 서류2)를 이메일 및 우편으로 제출→②조사 및 검토→③이북5도위원회 문화유산위원회 안건 상정→④종목 지정여부 심의ㆍ의결→⑤결과 및 통보 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이북5도위원회에서는 2026년 1월 현재 20개의 무형유산 지정종목이 존재하며 그 중 지정된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은 황해도 지역의 화관무, 평안남도 지역의 평양검무와 평남수건춤 그리고 김백봉 부채춤, 함경북도 지역의 함북선녀춤 다섯 가지 종목이다.
그 중 이북5도 춤에 대한 선행 연구는 크게 이북5도 문화유산, 분단이전의 북한의 민속춤, 그리고 이북5도 춤 종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북5도 문화유산’과 관련된 선행 연구는 총 3편으로 국가 및 시ㆍ도, 이북5도 문화유산에 포함된 북한지역의 문화유산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차지언 2019;최희아 2021;홍태한 2021). 이 연구들은 주로 정책적 차원의 안정된 계승 방안을 논의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다음으로 ‘분단 이전의 북한의 민속춤’과 관련된 선행 연구로는 동경원(2025)의 연구 1편에 한정된다. 동경원은 남북한의 문헌 자료 등을 토대로 분단 이전의 북한 민속춤을 탈춤, 농사춤, 노동춤 등으로 범주화하여 그 성격을 정리하였다. 다만 현재 남한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들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과 관련된 선행 연구는 화관무의 경우 학위논문 9편, 학술논문 편으로 ‘민천식 화관무’와 ‘김백봉 화관무’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종목 자체를 직접적으로 다룬 연구는 차지언(2017ㆍ2020ㆍ2022ㆍ2024ㆍ2025) 5건이 있었다. 평양검무 연구는 학위논문 27건, 학술논문 및 인터뷰 15건으로 ‘검무’와 관련된 논문들에 활용되거나 종목과 직접적인 연구 8건이 있다(이지연 2004;조보라 2005;황지윤 2005;김영란 2006;임영순, 정은영 2015;임영순 2017;유안나 2020;이득춘 2023). 평남수건춤의 경우에는 이예지(2015) 학위논문 1건만 있었다. 김백봉 부채춤의 경우 ‘부채춤’의 종목, 교육, 활용, 콘텐츠 등의 다양한 주제로 학위논문 16건, 학술논문 및 기사 25건이 존재하며 이 중 종목과 직접적인 연구는 6편이 있다(안병주 2004, 2005; 천호정 2013;이진영 2018;원채빈 2025;원채빈, 정승혜, 안병주 2025). 함북선녀춤은 학술연구 1건으로 김민지(2024)의 연구가 유일하며, 전승가치에 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선행 연구들을 통해 본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의 연구는 종목별 유형, 동작 분석, 교육적 활용 등으로 전승 확장성에 비례한 연구물들과 정책적으로 안정적이 못한 환경에서 기록 및 미래전승 가치 필요성에 집중된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종합적으로 그동안의 이북5도 문화유산 춤과 관련한 연구들은 정책적인 아쉬움과 각 종목별 연구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북5도 문화유산’의 춤 종목 모두를 함께 다루며 그 지역의 특수한 춤의 가치를 담아내거나 문화유산 종목으로서의 전승 방향성을 다룬 연구는 찾기 어려웠다.
본 연구를 통해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 전체를 통합적으로 고찰하고, 그 예술적 가치를 분석하여 체계적인 전승 방향성을 제시하고, 학문적 공백을 보완함과 동시에 분단 이후 형성된 무형유산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갖고자한다. 이는 단순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 이북5도 문화유산 춤의 지속가능한 전승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 연구로서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연구를 통해 이북5도 문화유산의 공통적인 춤 종목 가치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전승 방향성을 다루고자 한다.
연구 방법은 문헌연구에 기반하여, 온/오프라인을 통해 수집된 문헌자료와 이북5도위원회에서 제공받은 사단법인 전통공연예술연구소(2024)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3)등을 포함한 이북5도위원회 기관 자료와 전통무용가이자 연구자 김정녀(1939-2025)가 2년간 책임연구자로 참여하여 발간된 국립문화재연구소(1996)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9) 입춤ㆍ한량무ㆍ검무』(1996) 등을 중심으로 활용한다. 연구과정은 첫째, 문헌조사를 통해 다섯 가지 춤 종목 현황을 살펴보고 둘째, 예술적ㆍ향토적ㆍ교육적 등 측면에서 춤의 가치를 분석하고 셋째,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전승 방향성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이북5도 문화유산 춤의 가치와 전승 방향성 제안을 통해 무형유산 보존의 의미를 확장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Ⅱ.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 현황
2026년 1월 현재까지 이북5도 지역 중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춤 종목은 국가 및 시ㆍ도문화유산은 해당 없으며, 이북5도위원회에서 지정된 춤 종목이 유일하다.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은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북도, 함경남도, 미수복 경기, 미수복 강원 5개도와 2개 미수복 지역 중에서 황해도, 평안남도, 함경북도 3개도만 지정되어있다. 종목은 평안남도 지역의 평양검무와 평남수건춤 그리고 김백봉 부채춤, 함경북도 지역의 함북선녀춤, 황해도 지역의 화관무 다섯 가지 종목이다.
이북5도위원회에서는 종목지정과 보유자 및 보존회 지정절차가 함께 지정되며, 절차과정에 따라 동시 지정이 되거나 따로 지정되는 경우가 있다. 아래 <표 1>에서는 춤 종목만을 포함하였으며, 종목별 설명에서 관련 내용을 자세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표 1
이북5도위원회 문화유산 춤 종목 목록 (List of Cultural Heritage Dances of the Committee for the Five Northern Korea Provinces)
| 지역 | 지정번호 | 나형유산 종목명 | 종목유형 | 지정일자 |
|---|---|---|---|---|
| 평안남도 | 제1호 | 평양검무 | 단체 | 2001.02.23 |
| 제3호 | 김백봉남계춤 | 개인 | 2014.10.15 | |
| 제5호 | 평남수건춤 | 개인 | 2018.04.30 | |
| 함경북도 | 제3호 | 함북신녀춤 | 개인 | 2018.05.01 |
| 황해도 | 제4호 | 황관무 | 개인 | 2011.08.11 |
1. 평양검무(平壤劍舞)
검무는 조선시대 궁중과 각 지역의 관아 그리고 민간 향연을 통해 가장 많이 연행된 작품으로 4인무 또는 8인무로 구성된다. 기원은 모든 검무가 동일하게 신라시대 황창랑의 고사를 토대로 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검무 또한 예술적 변화를 가지게 되는데, 그 영향을 통해 각 지역의 향토적 특성을 가지게 되면서 음악, 춤사위, 복식 등이 조금씩 차이를 가지게 된다.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2024, 7-15) 보고서에서 확인한 평양검무는 2001년 2월 23일 평안남도 무형유산 제1호로 지정된 단체종목이다. 종목지정 당시 보유자 이봉애(1923-2019)와 평양검무보존회가 함께 지정되었다. 현재는 2011년 4월 29일 정순임(1950-) 보유자, 2016년 4월 11일 임영순(1952) 보유자가 추가 지정되어 2명의 보유자가 존재한다. 그런데 보존회는 내부사정으로 보존회는 2명의 보유자가 각각의 평양검무보존회(정순임 보유자)ㆍ(사)평양검무전승관(임영순 보유자)를 운영하여 계승을 이어가고 있다. 이 중 평양검무보존회는 1985년 5월 창립되었으며, 같은 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계승을 해오고 있었다(10-12).
1) 보유자 이봉애와 평양검무 복원과정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에서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9) 입춤ㆍ한량무ㆍ검무』(1996)를 통해 전국에 있는 지역별 계보 및 전승현황을 조사보고서로 발행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검무는 ‘황해도 지역의 검무-해주검무’와 ‘평안도지역의 검무-평양검무’(1996, 56-58)를 다루며, 관련된 인물을 조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중 이봉애가 평양검무 보유자가 되기 이전 당시 인터뷰 내용을 위 보고서 ‘20.이봉애’(110-112)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정리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23년생인 이봉애는 평안남도 평양시 서성리에서 태어나서 14세 평양서문고녀에 입학할 시기에 춤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춤을 접하게 된 계기는 같은 반 친구 김옥선의 언니이자 춤과 소리로 능한 평양 예기로 유명했던 40대 김학선을 만나게 되면서 춤의 소질이 발견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이 때 친구 김옥선과 함께 평양검무와 승무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평양검무를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춤이었다고 한다(110).
이봉애는 평양서문고녀를 졸업 후 평양의 취하지성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다 결혼하면서 춤을 그만두었었다. 한국전쟁 이후 월남하여 1980년대 초반 월남한 평양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도소리보존회를 찾아가며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보유자였던 故김정연(1913-1987)과 故오복녀(1913-2001)를 만나게 되며 소리를 배우게 되었다. 이 경험으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베짜기, 모심기, 농요 등으로 참여하면서 평양검무의 재현의 틀을 경험했던 것으로 보인다(110-111).
평양검무 재현작업은 1985년부터 이북5도청 강당을 빌려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봉애는 수년간 어려운 환경에서도 복원작업을 이어가며 평양검무보존회를 설립하고 199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여하여 공로상을 받고 같은 해 정기공연을 개최하며 현재의 평양검무를 계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111).
2) 평양검무 특성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2024, 7-15) 보고서에 조사된 평양검무 특성은 다음과 같다.
평양검무는 평양지역의 특성을 담은 음악, 춤사위 등을 가지고 있다. 평양검무의 음악은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며 염불과 타령 장단을 바탕으로 연주된다. 복식은 전립, 남색속치마 및 겉치마, 노란 저고리, 파란 쾌자, 홍색 전대를 입는다. 소품은 검을 사용하는데, 검은 목이 꺾여 돌아가는 칼로 칼 가장자리 끝에는 나비모양의 금속장식이 달려있다(9-10).
임수정(2007)에 따르면, 평양검무의 대표적 춤사위는 다음과 같다.
"손춤사위, 일자사위, 도는 사위, 두 손 모아 허리춤, 옆으로 허리춤, 두 손 뒤로 모아 허리춤, 엎드려 땅 짚기, 쾌자 사위, 앉은 칼 사위(외칼 사위, 쌍칼 사위),서서 기본동작(모둠 사위), 외칼 좌우 치기, 위로 칼 뽑기, 양팔 벌려 칼 돌리기(돌림사위), 칼 돌려 머리 쓸기, 칼 옆에 끼고도는 사위, 앞으로 칼 뽑기, 연풍대 1(도는 연풍 앉아 양팔 벌리기), 연풍대 2(머리 쓸며 까치걸음), 연풍대 3(칼로 땅 치기), 연풍대 4(칼 옆에 끼고 돌아 기본동작), 칼 사위(기본동작, 돌림사위, 번개 사위)"이다(124).
2. 김백봉 부채춤
김백봉 부채춤은 2014년 10월 15일 평안남도 무형유산 제3호 개인종목으로 지정되었으며, 2015년 5월 29일 원작자의 자녀이자 제자인 안병주(1961-)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원작자 김백봉은 종목지정 당시 80세가 넘은 고령이라 보유자로 선정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되며. 유일하게 원작자 김백봉(1927-2023)이 생존한 상황에서 지정된 춤 종목이다. 보존회는 개인종목이라 이북5도위원회에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보존 계승을 위해 김백봉부채춤보존회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부채춤은 유치원 발표회부터 학교 운동회, 리틀엔젤스 예술단, 전문무용단 등에서도 교육 및 공연이 될 만큼 대중적인 작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채춤에 대한 다양한 활용과 발전이 되는 과정에서 원작의 중요성을 이어가기 위해 김백봉 부채춤은 강습회와 연구 등을 지속해오며 노력하고 있다.
1) 원작자 김백봉과 김백봉 부채춤 창작과정
김백봉 부채춤은 평안남도 강서리 초리 출신인 故김백봉(1927-2023)이 경험한 지역적 역사와 문화예술 경험과 송씨와 양씨를 통해 춤을 시작한 것에 신무용가 최승희의 예술적 춤의 학습 및 공연 등의 경험을 더해 1954년 만들어진 신무용 계열의 작품이다.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국가유산사랑 소식지에 실린 안귀호의 「부채춤 꽃을 피워 모란 향기 멀리 퍼지기를」(2016) 글을 통해 본 이 춤의 역사는 1947년에 최승희의 무당춤을 본 김백봉이 ‘부채’소품을 활용한 작품구상을 떠올리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최승희와 상의를 하였으나 무신론적 유물론과 맞지 않아 반대하여 진행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적인 창작 욕구를 가지고 한국전쟁 중에 어렵게 부채를 구해서 1952년 ‘소녀를 위한 소녀들의 부채춤’이라는 부제를 달고 첫 시연을 하였으며, 공식적으로는 1954년 ‘김백봉 제1회 무용발표회’에서 독무로 부채춤을 선보였다고 한다. 최승희의 무당춤과는 달리 김백봉이 창작한 부채춤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문화예술 축제에 한국사절단으로 참가한 한국민속예술단을 통해 군무로 확장된 작품으로 재탄생하였다. 당시 군무 부채춤은 국내외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춤으로 자리 잡게 된다.
2) 김백봉 부채춤 특성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2024, 22-26) 보고서에 조사된 김백봉 부채춤 특성은 다음과 같다.
김백봉 부채춤은 평안남도 역사와 문화를 기초하여 한국춤의 근현대 예술적 변화를 아우른 신무용 계열의 작품이다. 음악은 경기민요 창부타령을 악기로만 연주되며, 장단은 굿거리와 자진모리장단으로 이루어진다. 악기편성은 피리, 가야금, 장고를 기반으로 하지만 독무, 군무 또는 공연상황에 따라 소바라까지 사용되기도 한다. 복식은 엷은 황금색 계열 당의(나비, 목단꽃, 연꽃, 봉황새 문양자수), 홍색 계열 비단 겉치마, 연분홍 명주 속치마, 하얀색 명주 허리 속치마, 하얀색 속바지를 입으며, 소도구는 부채 한 쌍과 족두리 및 쪽/비녀를 착용한다. 이 춤의 춤사위와 동선은 팔자(八字)형과 갈지자(之字)형이 주축을 이루며, 태극선과 포물선상의 곡선을 만들어가는 부채사위의 기본 구조는 자연의 이치를 근본으로 삼아 묘사되었다고 한다(23).
3. 평남수건춤
수건춤은 수건을 들고 추는 춤으로, 지역마다 전승자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는 춤이다. 이 춤은 지역마다 전승되어오면서 살풀이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한영숙류 살풀이춤과 이매방류 살풀이춤 등이 있다. 반주음악은 대체적으로 각 지역의 삼현육각에 맞추며, 장단은 굿거리-자진모리-굿거리 형태를 가진다.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2024, 27-30) 보고서에 따르면 평남수건춤은 2018년 4월 30일 평안남도 제4호로 지정된 개인종목이다. 종목지정 당시 보유자 한순서도 함께 지정되었다. 이 춤은 개인종목으로 보존회가 이북5도위원회에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전승을 위해 지정되기 전 2017년부터 평남수건춤 보존회가 개설되어 이미 운영되고 있었다.
1) 보유자 한순서와 평남수건춤 복원과정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에서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9) 입춤ㆍ한량무ㆍ검무』(1996)를 통해 전국에 있는 지역별 계보 및 전승현황을 조사보고서로 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순서(1934-)와도 인터뷰가 진행되어 관련 내용을 보고서(104-105)에서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이예지(2015, 14-15)의 연구에서도 관련내용이 있어서 두 자료를 연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생인 한순서는 평안남도 신리 출신으로 1951년 1.4후퇴 때 가족과 월남을 하였다고 한다. 보유자 한순서는 월남 이전 평양에서 최승희 공연을 자주 관람하였다고 한다. 어릴 적 춤에 소질이 있었던 한순서는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를 원하였으나 어린 나이라 15세 이후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아쉬운 마음을 최승희의 춤을 관람한 것을 모방하여 연습하는 것으로 대체했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김동민에게 춤을 배우고, 음악가이지 무용가였던 강태홍에게 판소리와 춤을, 이매방에게 입춤, 살풀이춤, 승무, 검무, 바라춤, 장고춤, 장검무 등을 배웠다고 한다. 13세 때는 지인의 추천으로 은방울소년국극단에 입단하여 활동을 하고 국극단이 해체가 된 이후 16세 때 이매방을 따라 광주로 이주하면서 그의 제자로 춤조교 활동했다. 이매방이 서울로 상경할 때에도 함께 올라와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을 하였으나 개인사정으로 졸업은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후 21세에 결혼을 하면서 서울 신촌에서 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후학들을 본격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104-105). 그리고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 실태조사 당시 한순서의 증언에 따르면, 한순서는 서울에서 무용연구소 운영 당시 같은 동향(이북)사람인 김정연을 만나 교류하게 되면서 수건춤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2) 평남수건춤 특성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2024, 27-30) 보고서에 조사된 평남수건춤 특성은 다음과 같다.
평남수건춤은 서도소리 명창이자 『한국무용도감』(1971)도 집필했던 김정연의 수건춤을 기반으로 형성된 춤이다. 김정연은 명무 이장산의 제자이며, 따라서 평남수건춤 명맥은 이장산-김정연-한순서로 이어진 것이다. 다른 지역 살풀이춤에 비해 수건을 서사적으로 표현하여 단아함과 역동성의 간극을 만들어내는 것이 춤의 특징이다. 복식은 흰색 저고리에 녹색 치마를 입으며 다른 살풀이춤과 달리 허리끈으로 치마를 감싸며, 흰색 긴 수건을 사용한다. 음악은 서도삼현육각으로 사용된다(27-28).
4. 함북선녀춤
선녀춤은 2025년 10월 8일 네이버 국어사전을 통해 보면 ‘하늘에서 인간 세계로 내려오 는 선녀들의 모습을 상징하여 추는 춤’이라고 한다. 신무용가 최승희를 비롯해 여러 무용 가들에 의해 선녀춤은 창작 및 연행된 춤이다. 김민지(2024)의 연구에서 언급된 함북선녀 춤은 “하늘에서 구름과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폭포에서 목욕하고 놀다가 천상으로 돌아가 는 것까지를 일부 표현한 춤”(3)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춤은 “민족 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향토적이고 민속적이면서도 여타의 민속춤과는 달리 새로운 근대의 신무용적 성격 또한 내포하고 있다”(3)고도 말했다.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2024, 87-90) 보고서에 따르면 함북선녀춤은 2018년 5월 1일 함경북도 무형유산 제3호로 지정된 개인종목이다. 보유자는 같은 해 7월 24일 이성자로 지정되었다. 개인종목이므로 이북5도위원회에서 보 존회를 지정하지 않았으나 종목 지정 이후 2019년에 함북선녀춤보존회가 출범하여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이 춤은 함경도 출신의 한성준 제자인 장홍심의 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지정되었다고 한다. 현재 함북선녀춤은 한성준-장홍심-이성자로 이어진다(90).
1) 전승자 장홍심과 보유자 이성자의 함북선녀춤 전승과정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에서는 1992년부 터 1994년까지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9) 입춤ㆍ한량 무ㆍ검무』(1996)를 통해 전국에 있는 지역별 계보 및 전승현황을 조사보고서로 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장홍 심과도 인터뷰가 진행되어 관련 내용(98-99)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진행된 ‘한 국민족문화백과사전’ 중 ‘장홍심’의 개요를 바탕으로 함 북선녀춤의 계승자이자 전승자인 장홍심의 조사된 연계 내용을 통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장홍심(1914-1994)은 본명은 장월순으로 함경남도 함흥 출신 춤꾼이다. 12세 때 함흥권번에서 이름난 춤 선생이자 조택원의 외할머니이기도한 배씨 할머니에 게 검무, 승무, 살풀이춤, 입춤 등을 배웠다고 한다. 21세 때에는 한성준(1874-1942)의 조선음악무용연구소 입소를 위해 서울로 이주하였다. 이 때부터 한성준에게 승무, 검무, 한량무, 태평무(당시 진쇠춤이라고도 불림) 등을 배웠다 고 한다.
이후 결혼을 하면서 7여년 정도 춤을 그만두었다가 함흥 친정으로 돌아가면서 본격적으 로 음악 동맹에 들어가 춤 활동을 이어가고, 함흥음악무용학교에서는 교육자로 활동을 했 다고 한다. 장홍심이 함흥에서 한성준에게 배웠던 춤들을 교육하고 공연을 하고 있었을 때 최승희가 그녀의 춤을 보고 한성준의 제자라는 부분에 호감을 가지고 딸 안성희에게 춤을 가르치기를 권유하여 승무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최승희를 따라 평양으로 옮겨 활동을 이어가려다 준비하던 ‘세계 청년예술축전’(체코슬로바키아)공연을 사정이 생겨 연 습 중에 그만두고 다시 함흥으로 돌아가 음악동맹에 다시 복귀하여 1급 배우 무용수로 활 동하였다. 하지만 사상불순을 이유로 음악동맹에서 제명을 당하고,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월남하여 1953년 부산에서 고전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국군위문공연도 하다가 1967년 서 울로 상경하여 명창 박초월의 교습소에서 9년 정도 춤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말년에는 장홍심고전무용교습소를 개소하여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썼다고 한다. 대표 적인 제자는 이성자, 여연화라고 한다.
보유자 이성자는 강선영, 송범, 이매방, 장홍심, 김백봉에게 춤을 사사했다. 장홍심과의 인연은 1967년부터 ‘장홍심 고전무용교습소’에 입소하여 장홍심의 대표 제자가 되었다. 본 격적으로 2000년 1월에 장홍심류 춤 보존회를 설립하여 함흥검무, 바라승무, 선녀춤 등을 계승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성자는 군산여상 교사로 재직한 후 이성자무용학원을 통해 후학양성에 힘을 썼으며, 1978년 5월 21일 국립극장에서 첫 무용발표회4)를 열기도하였다.
2) 함북선녀춤 특성
함북선녀춤은 지정보고서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김민지(2024)의 연구에서 특성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원류를 함경북도 마을춤에서 시작된 선녀춤을 한성준이 백두산 선녀설화를 바탕으로 재창작하여 민속춤화한 것이다. 이 선녀춤을 제자 장홍심이 학습을 하고, 함흥에 서 활동할 당시에 선녀춤을 지속적으로 공연하며 전승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2024, 87-90) 보고서에 따르면 함북선녀춤은 7명의 선녀로 구성되어 군무형식으로 진행된다. 음악은 수심가토리 를 기반으로 무음→느린 굿거리→빠른 굿거리→자진모리→느린 굿거리로 진행되며 지정 당시 음악을 이생강 국악인이 구성하였으며 악기구성은 소금, 가야 금, 장구, 양금이다. 지 정 당시 춤의 구성은 ‘무음으로 시작 → 느린 굿거리에 맞춰 춤사위 실행(부채 기본동작, 부채 위치와 각도 조절)→빠른 굿거리(부채를 가지고 발동작, 손동작 중심으로 조화롭게 춤사위 실연)→자진모리(부채를 여닫는 동작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서 아름답게 실연)→느 린 굿거리(호흡을 조절하며 동작 정리 및 인사)→무음으로 퇴장’으로 진행된다(89).
5. 화관무
화관무는 일반적으로 ‘화관(花冠)’을 쓰고 ‘한삼’을 들고 추는 춤으로 전문적인 무용가들 에 의해 무대예술로 발전하였다. 이북5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황해도 민천식류 화관무는 2011년 8월 11일 황해도 무형유산 제4호로 지정된 개인종목이다. 종목지정 당시 보유자 김나연이 함께 지정되었다. 2021년 김나연이 명예보유자가 되면서 김나연의 자녀이자 제 자인 차지언이 보유자가 되었다. 가족 간 계승으로 춤맥을 통해 작품의 형식은 물론이고 혈맥을 통해 보유자의 정신까지도 계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명예보유자 김나연 및 차지언 화관무 전승과정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된 구술채록문(2023)5)을 살펴보면, 보유자 김나연(1939)은 황해 도 연백군에서 태어나 1950년에 인천으로 이주하여 1955년부터 민천식의 문하생이 된 이 후 꾸준히 그의 춤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의 스승 민천식(1898-1967)은 본명은 민관식이 며, 소리꾼으로 활동할 당시 예명은 민형식이다. 그는 7세부터 황해도 봉산 관아에서 탈춤 을 배웠고, 애기 탈꾼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풍족한 집안 환경 속에서 다양한 전통예술을 배웠으며, 이왕직아악부 아악생양성소에서 2년간 수학하며 궁중의 춤과 음악까지도 섭렵 하였다. 민천식은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이근성, 양소운 등과 더불어 봉산탈춤의 복원에 힘 쓰며 초대 보유자로 지정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일찍 작고한 탓에 그가 황해도 춤 의 전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민천식은 월남한 이후 인 천에 정착하여 ‘인천국악원’을 열어 춤 뿐 만이 아니라 소리와 탈춤 등의 황해도 지역의 악가무를 널리 전파한 예술인이었다.
황해도 연백 출신인 보유자 김나연은 민천식에게 춤을 사사하였으며, 민천식고전무용연 구소(인천국악무용학원)의 대표 제자 중 한 명으로 정기공연 및 다수 공연에 참여하였다. 1960년 본인의 고전무용연구소를 개소하였고, 민천식의 춤을 전승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민천식의 춤들이 2021년 현재 보유자 차지언으로 계승되면서 화관무의 춤맥은 민천식-김 나연-차지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유자 차지언은 춤 계승에만 그치지 않고 실기와 연구 를 병행하여 <화관무>의 역사성과 특성을 지속해서 밝혀가고 있다.
2) 화관무 특성
초기 민천식의 화관무의 특성은 차지언(2022)의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천식이 이 시기에 완성한 화관무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춤의 전개형식이다. 전체적으로 는 궁중의 양식을 하고 있으며, 세부적 춤사위는 권번 기녀들 의 교방춤 양식을 입혀 궁중과 교방의 혼용양상(混用樣相)을 갖는다. 민천식의 교육 하에 활동하던 해주권번의 여기들은 주로 그들이 학습해 온 궁중의 춤과 여기 춤 양식을 토대로 한 화관무의 무대화를 원하였고 이러한 요구를 수용한 민천식은 교방의 양식과 궁중의 체계를 융합하고 시대에 부합하는 민중의식을 담아 민천식의 화관무로 재창조한 것이다(140).
그리고 『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개선방안 정책연구용역』(2024, 120-125) 보고서에 조사된 민천식-김나연-차지언으로 이어진 화관무 특성은 다음과 같다.
황해도 화관무는 원작자 민천식에 의해 만들어진 춤이다. 이 춤은 민천식의 고향이자 활동지역인 황해도의 문화와 춤사위 그리고 음악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보유자 김나연 으로 이어진 민천식류 <화관무>는 정(靜)ㆍ중(中)ㆍ동(動) 각각의 특성을 살리며 절제미의 무게와 극대화된 기교 등을 화려하게 표출하는 춤으로 발전되어 왔다. 음악은 서도삼현육 각을 바탕으로 도드리장단과 삼현장단(허튼 타령장단)이 바탕이 되어 사용된다. 이 춤은 황해도 해서지방의 특징적인 한삼뿌림 춤사위 등이 향토적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의상은 황색 몽두리, 붉은 가슴띠와 통치마를 입고 폭과 길이가 좁고 짧은 여섯 가지 색상의 한삼 을 사용한다(120-121).
Ⅲ. 이북5도 문화유산 춤의 가치
기본적으로 이북5도위 문화유산은 1945년 해방이후 분단국가가 되어 남한으로 온 실향민들을 통해 전승되어지는 북한의 향토적 가치를 지닌다. 동경원(2025)의 연구를 통해 북한의 분단이전의 민속춤이 현재 북한에서의 민속춤 전승의 어려움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남한에서 전승되는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들 춤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동경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단 이후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민속춤이 정치적 선전과 집단주의적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며 공동체적 가치가 약화되고 북한 민속예술 존립에 영향을 주어 전통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156).
현재 남북교류 제한으로 분단 이전의 북한 문화예술은 실향민들의 기억과 경험으로만 전승되고 있다. 이북5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다섯 가지 종목은 모두 원작자들의 고향이자 활동지역이 북한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북한 지역의 문화가 내포되어 있어 춤사위와 음악이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북한의 문화유산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각 지역별 춤사위와 음악의 차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한 해석이 가능하다. 단,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의 경우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실향민들의 기억과 체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는 일제강점기와 분단국가가 되면서 훼손되거나 사라진 문화적ㆍ사회적 영향으로 판단의 어려움을 가지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승자들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춤들은 미학적으로 우수한 춤들이 추어졌을 것을 추정해볼 수 있다.
춤사위는 보통 지역의 문화와 특히 음악의 영향을 받는다. 권번이 존재했던 평양과 해주 등의 지역은 기생들에 의해 전통문화들이 공연되고 교육되는 환경이 활발하였다.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의 원작자와 보유자들은 대부분 각자의 지역 권번의 기생들 또는 당시 공연자들에 의해 춤을 사사 또는 영향을 받고 그 기억과 체험을 바탕으로 복원 및 재현 그리고 창작을 하였다. 그렇다면 지정된 문화유산 춤 종목들이 복원 및 재현 되는 전승과정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춤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번 장에서 예술적ㆍ향토적ㆍ교육적 측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첫째,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 다섯 가지 종목의 ‘예술적 가치’를 살펴보면 다음 <표 2>와 같다.
표 2
이북5도 춤 종목 예술적 가치
Artistic Value of the Dance Repertoire of the Five Northern Provinces of Korea
| 종목 | 예술적 가치 |
|---|---|
| 평양검무 | 삼현육각 반주와 염불·타령 장단 위에 정중동의 미가 조화를 이룸. 검의 회전, 번개사위 등으로 긴장과 절제의 미 표현 |
| 김백봉 부채춤 | 부채의 조형미를 활용한 창작무용. 자연의 원리를 시각화하며 전통과 현대의 미를 결합한 신무용 대표작 |
| 평남수건춤 | 수건의 선과 흐름을 통해 단아함과 역동성을 표현. 굿거리·자진모리 장단으로 감정의 완급 조절 |
| 함북신나춤 | 부채와 유려한 곡선 동작으로 천상과 인간세계를 상징. 수심가토리 기반의 음악과 구성미가 조화 |
| 화관무 | 한삼의 선과 절제미를 강조한 궁중무·민속무 융합 작품. 정·중·동의 미학이 조화된 고전무용 |
먼저 예술적 가치 측면에서 볼 때, 평양검무는 삼현육각 반주와 염불·타령장단을 바탕으로 정중동의 미를 강조하며, 검의 회전과 번개사위 등 절제된 동작을 통해 긴장미를 극대화한다. 김백봉 부채춤은 부채의 조형미와 군무 구성을 통해 자연의 원리를 시각화하며, 전통적 정서와 신무용적 창의성이 결합된 대표적인 춤으로 평가할 수 있다. 평남수건춤은 수건의 흐름과 리듬을 활용하여 단아함과 역동성의 대조미를 드러내며, 북한지역 특유의 완급 있는 장단 구조로 정서적 울림을 형성한다. 함북선녀춤은 부채와 곡선의 유려한 움직임으로 천상과 인간 세계를 상징화하며, 수심가 토리 음악구성과 조화로운 군무 형식으로 예술성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화관무는 한삼의 선을 통해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구현하고, 절제미와 화려한 기교가 공존하는 예술적 완성도를 지닌다.
둘째,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 다섯 가지 종목의 ‘향토적 가치’를 살펴보면 다음 <표 3>과 같다.
표 3
이북5도 춤 종목 향토적 가치
Regional Value of the Dance Repertoire of the Five Northern Provinces of Korea
| 종목 | 항도적 가치 |
|---|---|
| 평양검무 | 평양 예기 문화와 세련된 도시미가 반영된 향토무용. 월남 예인 이봉애의 복원으로 평양 지역 정 체성 회복 |
| 김백봉 부래춤 | 평안남도 예술 전통을 무대무용의 형식으로 재구성. 분단 이후 평안도 지역 예술의 정신 계승 |
| 평남수건춤 | 서도소리 및 춤을 이었던 김정연의 춤맥을 잇는 평남 지역 특유의 정서 반영 |
| 합북신나춤 | 백두산 선녀설화를 모티프로 한 향토적 창작무용. 함경북도 지역의 민속·설화 전통을 무용화 |
| 화관무 | 황해도 해서 지방의 리듬과 한삼 뿌림사위 등 향토미 반영. 민천식-김나연-차지언으로 이어진 혈 통적 전승 |
향토적 가치 측면에서는 각 종목 춤들이 모두 북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평양검무는 평양의 지역적 문화와 예기무의 전통을 계승하며, 평남수건춤은 서도소리꾼이자 춤꾼이었던 김정연의 정서가 김정연-한순서로 이어지는 지역춤의 맥을 보존하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함북선녀춤은 백두산 선녀 설화에 기반한 향토적 신무용으로, 함경도 지역의 민속적 상상력을 무용화한 점에서 특히 강한 향토성을 지닌다. 화관무는 해서 지방의 장단과 춤사위를 반영하여 민천식류의 지역 예술 전통을 충실히 담고 있으며, 김백봉 부채춤은 평안도 지역의 예술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셋째,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 다섯 가지 종목의 ‘교육적 가치’를 살펴보면 다음 <표 4>와 같다.
표 4
이북5도 춤 종목 교육적 가치
Educational Value of the Dance Repertoire of the Five Northern Provinces of Korea
| 종목 | 교육적 가치 |
|---|---|
| 평양검무 | 검무 계보와 전승을 통해 무형문화재 보존 의식 고취. 전통무용 교육 및 문화유산 교육 교재로 활용 |
| 김백봉 부채춤 | 유치원-전문무용단까지 활용되는 대표 교육 무용. 한국적 미의식과 전통 창작정신을 교육하는 사례 |
| 평남수건춤 | 정중동의 신체 표현 학습과 장단 감각 교육에 적합. 살풀이춤 계열 비교 학습 자료로 활용 가능 |
| 함북선녀춤 | 신무용과 민속춤의 경계를 이해하는 교육적 사례. 설화 기반 예술교육 및 창작무용 연구 자료로 활용 |
| 화관무 | 전통장단과 춤사위의 관계 학습에 적합. 무형유산 전승 교육의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의 실제 모델로 가치 높음 |
마지막으로 교육적 가치 측면에서, 다섯 종목 모두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전승 의의를 지닌다. 김백봉 부채춤은 학교 교육 및 예술 교육에서 널리 활용되어 한국적 미의식을 교육하는 대표적 무용이며, 화관무는 전통장단과 춤사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교육적 모델이다. 평남수건춤은 정중동의 신체 표현과 장단 감각을 익히는 데 적합하고, 함북선녀춤은 설화 기반 창작무용의 교육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평양검무는 무형문화재 전승 교육 및 문화유산 보존 의식 함양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Ⅳ. 이북5도 문화유산 춤의 전승방향성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들은 종목 전승자들의 의해 수 십 년간 개인 예술가 또는 보존회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이북5도위원회에 종목으로 선정된 이후에는 정책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전승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하응백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의 2025년 7월 11일 경향신문 뉴스 특별 기고 ‘이북5도 무형유산 전승지원금도 시급한 민생이다’에 따르면 2025년까지도 종목 전승자들은 전승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2025년 12월 4일 하응백 위원장의 SNS 게시글 “이북5도 무형유산 전승지원금 지급 확정’에서 2026년부터 전승지원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공식적인 실행여부가 없었던 것을 기반으로 연구는 진행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정책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바라며 전승방향의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아카이빙을 통한 전승 사료 확보’이다.
대부분의 초기 전승자들은 고령이었으며, 대부분 실기와 교육에만 집중하다보니 기록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 시기를 걸치면서 본인들의 기억과 체험만을 유지하며 지금의 춤들을 전승하는 노력을 이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종목별 아카이빙 상황 차이는 있을 수도 있으나, 아쉬운 종목들은 지금이라도 현재 남아있는 자료들과 진행되고 있는 전승과 관련된 춤 종목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아카이빙하는 것이 후학들 전승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카이빙 방법으로는 자료들을 수집하는 것과 초기 전수교육을 받았던 전수자 및 이수자들의 구술인터뷰 등의 기록방법론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방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있는 이북5도위원회 및 보존회에서 국립무형유산원, 국립국악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등의 아카이브 공공기관과의 협업을 추진하고, 아카이빙을 실행하기 위한 매체별 정리, 보관방법, 디지털화 등의 기록방식을 다양하게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앞서 3장에서 다룬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의 춤의 가치인 예술적ㆍ향토적ㆍ교육적 가치에서 다룬 내용들과의 연계로 춤 종목 아카이빙 자료들이 공연 콘텐츠 제작, 이북5도 문화유산 교육자료 등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둘째, ‘춤의 계보 및 음악 관련 연구조사 체계 구축’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실향민들의 기억과 체험을 바탕으로 전승이 되는 과정에서 파편적으로 나타나거나 아쉬운 부분들은 춤의 계보와 관련한 인물 및 작품을 조사하고 음악에 대한 이해를 위한 조사를 병행하여 현재 종목의 타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으로는 남북한 활동을 모두 경험했던 김백봉, 김정연, 이장산, 장홍심 등의 원작자 또는 전승자 정보를 조사연구로 더 양질의 연구 결과들을 통해 분단 이전의 북한지역의 전통 문화예술의 특성이나 예술적인 활동 등을 확보하는 연구 활동이 지속적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연구자들의 참여와 이북5도위원회의 예산 등의 행정과 인력이 필수이다. 또한 디지털화가 진행되지 않은 신문, 잡지, 음성자료, K-TV 등의 예전 자료수집 및 해제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 또한 기록관련 공공기관과의 연계가 필수이다.
셋째, ‘이북5도위원회의 새로운 종목 확장 및 연대’이다. 위에서 두 가지 언급했던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국가무형유산을 춤 종목과 관련된 예를 들면,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에서는 1988-90년까지 ‘승무ㆍ살풀이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입춤ㆍ한량무ㆍ검무’ 조사연구를 장기적으로 전국에 있는 지역별 계보 및 전승현황을 조사보고서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로 발행하였다. 이 중 ‘검무’의 경우 황해도 지역의 해주검무, 평안도 지역의 평양검무를 담고 있으며, 본 연구에서도 언급하고 활용된 이봉애, 장홍심, 한순서 등 인물 내용들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이북5도 문화예술과 관련된 조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하여 새로운 종목을 발견하거나 현재 지정된 종목을 국가문화유산으로 확장시키는 방법을 찾는 토대로 활용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북5도 문화유산 온라인 플랫폼 구축’이다. 현재 이북5도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종목과 관련한 정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 2024년 진행된 사단법인 전통공연예술연구소(2024)『이북5도 무형유산 실태조사를 통한 대선방안 정책연구용역』자료집에서만 종목들의 종합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뿐, 공개된 종목 정보는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또한 국가유산 위주의 정보로 종목명과 지정일과 간단한 소개만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북5도위원회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거나 이북5도 문화유산 자체 플랫폼을 제작하여 각 종목별 홈페이지 또는 페이지 개설 후 연계하거나 국가 및 시도문화유산 등과 연계를 확장하는 단계가 필수적이다. 이 또한 예산과 인력이 필수이다.
Ⅴ. 결론 및 제언
이 연구에서는 남한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북5도위원회에서 지정한 문화유산 춤 종목을 통해 춤의 가치와 전승 방향성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북5도 지역의 춤 종목은 현재, 국가 및 시ㆍ도 무형유산에는 지정 된 것은 없었으며, 이북5도위원회에서 지정한 다섯 가지 종목만 있었다. 그 대상은 황해도 지역의 화관무, 평안남도 지역의 평양검무와 평남수건춤 그리고 김백봉 부채춤, 함경북도 지역의 함북선녀춤이다.
연구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시대적 어려움에도 분단 이전의 북한의 문화유산을 전승시키고자 노력한 전승자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연구 과정은 이북5도 문화유산 중 춤 종목 다섯 가지 현황을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먼저 이 종목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자료가 생성되어있지 않은 한계부터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전승 방향성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아카이빙 등의 기록과 관련된 체계가 필수적임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종목들의 춤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예술적 가치ㆍ향토적 가치ㆍ교육적 가치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공통적으로 분단 이전 북한 출신으로 각각의 지역 문화를 접하고 활동을 한 경험을 토대로 후대 전승자들에게 이어져 예술적이고 향토적인 특성을 내제한 춤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앞서 연구된 내용을 바탕으로 전승 방향성을 다루었다. 첫째. ‘아카이빙을 통한 전승 사료 확보’, 둘째, ‘춤의 계보 및 음악관련 연구조사 체계 구축’, 셋째. ‘이북5도위원회의 새로운 종목 확장 및 연대’, 마지막으로 ‘이북5도 문화유산 온라인 플랫폼 구축’이다.
즉, 본 연구를 통해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들의 전승 방향성은 지속적인 조사연구와 체계적인 아카이빙 작업을 토대로 플랫폼 구축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이북5도 문화유산 춤 종목을 파악하고 유지시키는 틀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서서 장기적으로 다른 춤 종목들 뿐 아니라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까지 확장시키는 토대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북5도위원회와 종목별 전승자들 그리고 춤 실기 및 이론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실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후 본 연구에서 제안한 방안들의 구체적인 후속연구를 지속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