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무용사에서 근대의 기점은 단일한 사건으로 정의되기보다 사회·정치적 근대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다각도로 논의되어 왔다. 이송, 박선욱(2000)은 ‘근대’라는 학문적 개념이 서구에서 유입되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 일정 기간의 토대가 필요했음을 지적하며, 현재 이 용어의 사용 범위가 극대화된 상태라고 분석한 바 있다(186). 이처럼 근대의 개념 규정과 기점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학계 내 다양한 시각과 담론이 공존하고 있다.
현재 서양에서는 프랑스혁명 이후 무용이 궁정의 위계에서 벗어나 독립된 공연예술로서의 미학적 토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1910년대를 전후하여 서양 무용계는 가시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Ballets Russes)를 통한 발레의 근대화, 이사도라 덩컨에 의한 자유무용(Free Dance) 정신의 만개, 그리고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태동은 무용이 전근대적 규범을 탈피하고 현대적 예술로서의 자율성을 확보해 나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한국에서도 1910년대를 기점으로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나타났다. 당시 한국사회는 기존의 ‘기술’적 차원에 머물렀던 예능의 개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맥락 속에서 근대적인 ‘예술’의 개념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시기의 예술은 단순한 기교를 넘어 ‘미적 창조 활동’이라는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는데(송인재, 펑칭 2023, 208), 이러한 관념의 재정립은 한국 무용이 전통적인 예능의 틀을 깨고 근대적인 예술 장르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특히 1910년대 이후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고난의 시기에 역설적이게도 서구 예술무용의 유입과 함께 ‘신무용’이 태동하였다.
이 시기에 등장한 ‘신무용’은 한국 무용사에서 가장 치열한 전환기의 핵심적 산물이다. ‘신무용’은 한국의 전통사회가 현대사회로 진입하는 시기에 신문화와 함께 무용 분야에서 가장 큰 주류를 이루었으며, 중요한 전환기적 역할을 한 근대적 무용으로 평가되고 있다(정진한 2004, 6).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신무용’에 대한 가치 평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다층적인 시각 속에 놓여 있다. 김호연(2016)은 한국 근대무용사에서 국내 무용사 연구의 흐름이 ‘신무용’=‘근대무용’을 아무런 고민 없이 수용했다고 전하며 ‘신무용’의 개념에 대해 장르로서나 예술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시한다(21).
이에 본 연구는 ‘신무용’을 둘러싼 기존의 범주론적 논쟁이나 개념적 이견에 매몰되기보다, 현시대 문화유산 담론이 근대예술에 부여하는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근대 춤으로서 ‘신무용’이 점유하는 위상과 유산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즉, 무용사의 흐름 속에 박제된 고유명사로서 ‘신무용’의 정체성을 분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신무용의 태동 이후 현재까지 축적되어 온 ‘전승적 계보’ 내 예술적 산물들이 지닌 현시대적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탐색하는 데 목적을 둔다.
현재 ‘신무용’ 관련 선행연구는 대개 특정 예술가의 작품세계 분석이나 근대적 현상에 관한 역사적 고찰에 편중되어 왔다. 또한 무형유산 담론 역시 전통무용의 종목화에 국한되어 논의되면서, ‘신무용’을 전승적 실체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소외되었다. 따라서 근대예술의 무형유산 제도적 관점에서 ‘신무용’의 위상을 규명한 선행연구는 현재까지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한 학술적 공백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를 수행하는 근거는 ‘신무용’을 과거의 산물로 고착시키기보다, 미래지향적 자산으로서 그 실체를 고찰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현대 무형유산 담론이 근대 예술을 조명하는 다각적인 관점을 검토하고, 이러한 분석적 틀 안에서 ‘신무용’의 계보를 통해 창출된 근대 춤 자산의 내재적 속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특히 현대적 유산 가치의 평가 척도와 글로벌 무형유산 보호의 보편적 원리를 핵심 준거로 설정하여, ‘신무용’의 전승적 특성이 해당 요건에 어떠한 정합성을 지니는지 실증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무용’의 유산적 범주 내 성립 가능성과 학술적 위상을 원점에서 재검토함으로써, 한국 근대무용 자산의 학술적 외연을 확장하고 체계적인 보존 및 전승을 위한 객관적 담론의 토대를 구축하는 실천적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Ⅱ. 연구방법
본 연구는 근대무용 예술을 바라보는 현대적 유산 담론의 지평에서 한국 ‘신무용’이 지닌 학술적 성격과 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질적 연구 방법론을 채택하며, 구체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헌 연구 및 담론 분석을 통해 ‘원형(Prototype) 중심’에서 ‘가치와 과정 중심’으로 변화한 현대적 무형유산 담론의 지형을 파악한다. 자료 수집의 기준은 ① 무형유산 보호의 공적 틀을 규정하는 국내외 법령 및 국제협약문, ② 유산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공공기관의 정책 보고서, ③ 근대예술의 유산적 수용 사례를 입증하는 국제 등재 사례 및 언론 보도이다. 공신력 확보를 위해 국가유산청,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세계유산센터 등 공적 기관의 1차 사료를 우선 활용하였으며, 언론 보도는 국내 주요 일간지 및 통신사 자료로 한정하였다.
둘째, ‘신무용’의 실체와 전승 양상을 규명하기 위한 문헌 연구 및 사례 중심 분석을 병행한다. 본 단계는 먼저 ‘신무용’의 실체 규명을 위한 선행 연구 분석을 진행하고, 다음 단계로 현재 ‘신무용’의 위치 및 전승 실체 규명을 위한 사례 중심 연구 두 하위 절차로 구성된다. 먼저 선행 연구 분석에서는 근대무용과 신무용의 개념적 범주 및 상관관계에 관한 학계의 주요 담론을 고찰하였다. 선정 기준은 ① 한국 근대무용 및 신무용의 개념 정의를 직접적으로 다룬 연구, ② 신무용의 역사적 위상과 미학적 가치를 논한 연구, ③ 학술적 인용 빈도와 대표성을 지닌 연구이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RISS, DBpia 등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신무용’, ‘근대무용’, ‘한국 근대 춤’ 등의 키워드로 검색·수집하였다.
셋째, 앞선 담론 분석과 사례 연구를 통해 도출된 시사점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 무용 전승 체계 및 교육 현장에 내재된 사각지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신무용의 유산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를 도출한다. 본 단계에서는 ① 한국 무용계 내부의 인식적 위상 재정립, ② 전공 교육 내 ‘신무용’ 미학의 문화적 자산화, ③ 국가 무형유산 체계 내 ‘신무용’의 실질적 수용, ④ 학술적 체계 정립 및 통합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이라는 네 가지 과제 범주를 설정하고, 각 범주에 해당하는 제도 현황, 학계 논의, 최근 정책 포럼 자료 등을 교차 분석하였다. 특히 2024년 11월 개최된 ‘무용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 제4차 정책 포럼 관련 언론 보도를 분석하여 신무용의 제도적 수용을 둘러싼 진보적·보수적 담론의 대립 양상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본 연구의 전 과정은 학술적 객관성과 분석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삼각 검증(Triangulation) 전략을 활용하였다. ① 자료 원천의 다각화: 학술 논문, 법령, 정책 보고서, 국제협약문, 언론 보도, 제도 운용 규정 등 성격이 상이한 자료를 교차 검토하였다. ② 시각의 다각화: 신무용에 관해 대립하는 학계의 담론(근대 춤=신무용 동일시론 vs. 구분론, 시간의 숙성론 vs. 제도적 수용론)을 균형 있게 제시하였다. ③ 공공 데이터와의 교차 검토: 국가유산청·유네스코·대한무용협회 등 공공기관의 공식 데이터를 학술 문헌과 병행 분석함으로써 분석의 신뢰도를 제고하였다.
Ⅲ. 현시대의 근대예술에 관한 문화유산적 시각
과거의 무형유산 담론은 주로 ‘원형의 보존’과 ‘전통의 순수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관점에서 무형유산은 오직 근대 이전의 민속예술이나 궁중 기예만을 포괄했으며, 근대기 외래 양식과 결합하여 탄생한 예술은 그 대상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무형유산 보호의 세계적 흐름은 근대유산까지 시각을 확장하며 ‘살아있는 유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유산의 가치는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멈춰 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공동체에 의해 어떻게 재해석되고 전승됐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근대예술 보존에 대한 시각의 변화는 2024년 5월 17일부터 시행된 ‘국가유산기본법(www.law.go.kr)’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기존의 문화재가 ‘국가유산기본법’ 체계로 바뀌면서 ‘근현대 문화 유산법’이 함께 시행되었고, 이를 통해 50년 미만의 현대 유산까지 보호하는 예비 문화유산 제도 등이 도입되어 보존 범위가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이는 현시대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의지가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넓혀졌음을 상징한다.
법제처가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www.law.go.kr)’ 자료를 보면 2025년 10월에 시행된 법률 제20914호 ‘근현대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해당 법령은 그 제정 목적을 ‘근현대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 및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 미래세대의 문화 창달 및 인류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근대 자산의 보존이 단순히 과거의 유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문화적 가치 창출에 이바지해야 함을 법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렇듯 한국에서 보존의 영역을 근현대 문화유산까지 확장하게 된 구체적 배경은 국가유산청(2026)이 발간한 근현대 문화유산 길라잡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1장에 제시된 제정 배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존 대상이 근대 시기 유산과 20세기 건축물로 확대됨에 따라 국제적 추세에 대응할 필요가 있어 ‘근현대 문화 유산법’을 제정․공포(2023.9.14.) 및 시행(2024.9.15.)하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국내 법제의 변화는 무형유산의 보존 대상을 동시대적 가치로 확장하고자 하는 유네스코의 국제적 흐름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994년 ‘글로벌 전략’을 발표하였으며, 이 전략의 목표를 세계유산 목록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세계의 문화적, 자연적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는 것으로 기재하였다. 그리고 세계유산의 범위를 고대나 중세의 기념비적 건축물에 국한하지 않고, ‘문명의 모든 층위’를 균형 있게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식화했다(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1994). 이러한 변화는 유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단순히 ‘시간적 오래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창의적 역량이 특정 시대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역사적 연속성’을 확보해 왔는가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네스코의 유산 개념에 관한 범위 확장은 무형유산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무형문화 유산에 관한 규정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공식 홈페이지(https://unesco.or.kr)에 자세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2003년 유네스코 총회는 무형유산의 소멸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그 가치에 대한 높아진 인식을 반영하여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공식 채택하였다. 이 협약문(2003) 제2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형문화유산이라 함은 공동체·집단과 때로는 개인이 자신의 문화유산의 일부로 보는 관습·표상·표현·지식·기능 및 이와 관련한 도구·물품·공예품 및 문화 공간을 말하며, 세대 간 전승되는 이러한 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 및 집단이 환경에 대응하고 자연 및 역사와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이들이 정체성 및 계속성을 갖도록 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한다(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홈페이지 2026).
이 협약문의 정의에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핵심 단어들이 있다. ‘공동체’, ‘세대 간 전승’, ‘재창조’, ‘정체성’, ‘계속성’, ‘창조성 증진’ 등이다. 이는 유네스코가 유산이 고정된 유물이 아니라 ‘공동체와 집단이 환경, 자연, 역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것’으로 재정의했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으로 위의 단어들만 살펴봐도 이미 유산의 범위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을 보존하는 데에만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네스코의 태도는 단순히 이론적인 지향이나 막연한 취지에 머물지 않았고, 실제 등재 심사 과정에서 근대예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실천적 결과로 이어졌다.
바로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독일의 현대무용’이 채택된 것이다. 서울신문 기사에 따르면 당시 독일의 현대무용은 각 위원국이 협약 제2조에 명시된 ‘무형문화유산’ 정의에 맞는지 찬반 의견이 치열했다고 전하였고(류재민 2022), 연합뉴스 기사에는 국가유산청 관계자가 “찬반 의견이 팽팽했지만 결국 등재에 성공했다”며 “향후 인류무형문화유산 정의 및 등재 기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한 사항으로 주목된다”고 설명했다(김예나 2022). 20세기 초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등장한 ‘독일의 현대무용’은 유네스코 세계 인류 무형유산 홈페이지(2026) 자료에서 유네스코가 치열한 의견 대립에도 불구하고 채택된 사유를 찾아볼 수 있다. 자료에 근거하면 오늘날까지 독일의 큰 도시 지역에서 개인과 단체에 의해 연행되고, 양성되고, 전승된다는 점에서 유효한 성과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유산은 개인 문서 및 관련 행사의 기록물 형태로 보호, 유지되고, 전승된다는 점을 밝히며, 오늘날 무용 기록물뿐 아니라 일부 대학 소장품 및 개인 소장품들의 보호에 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밝힌다(유네스코 세계 인류 무형유산 홈페이지 2026).
이처럼 독일의 현대무용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근대기에 형성된 예술적 사조라 할지라도 현재까지 공동체에 의해 전승되고 기록화된 실체가 있다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앞서 도출한 ‘공동체’, ‘세대 간 전승’, ‘재창조’, ‘정체성’, ‘계속성’, ‘창조성 증진’이라는 무형유산의 본질적 요건이 근대예술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단, 아직까지는 독일의 현대무용만큼 ‘현대성(Modernity)’을 정면으로 내세운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유네스코에 지정되어 있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스페인의 플라멩코 등도 고착된 고대 전통이 아니라 근대기 도시 문화와 예술적 혁신을 통해 형성된 종목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 모두 유네스코가 유산의 범위를 ‘오래된 과거’에서 ‘역동적인 근대적 성취’로 확장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이렇듯 한국이 『근현대문화유산법』을 제도로 도입한 점과 함께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현대무용’이 지정된 점들을 살펴보면 확연히 국제적 추세가 이제는 근대예술에 그 시각을 확장했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더 나아가 유산의 개념이 기존의 통념에서 바라보는 단순한 보존의 효과가 아닌 전승과 현대적 영향력까지 그 가치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의 『근현대문화유산법』을 살펴보면, 근대 건축물이나 시설물 등 유형 자산의 보호에 상당 부분 치우쳐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근대의 무용 예술까지도 근대유산의 핵심 대상으로 간주하는 유네스코의 국제적 흐름에 비추어 볼 때, 한국 역시 앞으로는 무형의 정신적·예술적 가치를 포괄하는 통합적 유산 관리 체계로 진화되고 확장되리라는 것이 예측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유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단순히 ‘시간적 오래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창의적 천재성을 증명하거나 특정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층위’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국제적 기준의 변화는 근대기 격동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예술적 산물들이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보호받아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Ⅳ. 근대예술 담론에서의 한국 ‘신무용’의 위치와 전승 실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네스코와 국가유산청이 강조하는 무형유산의 핵심은 과거의 형태를 고착시키는 ‘원형의 보존’이 아닌, 현시대와 호흡하며 이어져 온 ‘전승 가능한 살아있는 유산’에 있다. 이러한 근대예술로의 문화유산 시각 확장은 시기적 한정성으로 인해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모호한 위치에 놓여 있던 ‘신무용’을 근대유산의 체계 안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근대예술 담론에서의 한국 ‘신무용’의 실체와 현재 전승 체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근대예술 담론에서의 ‘신무용’
일반적으로 서양의 근대예술은 18세기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을 거쳐 형성된 근대적 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이 예술의 전 영역에 투영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거시적 흐름 속에서 무용의 위치는 ‘예술’이라는 현대적 개념의 정립과 더불어, 무용이 독립된 예술 분과로서의 자율성을 확보하며 일어난 미학적 전환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서양의 근대무용은 개인의식에 눈뜬 근대 시민사회의 대두와 함께 귀족사회의 정신적 소산이었던 발레에 대한 반동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근대적 사조를 반영한 새로운 무용(New Dance, Neuer Tanz)이 탄생했다(정진욱 2005, 196). 이렇듯 서양의 근대무용은 그 시대의 사상, 예술 전반의 변화, 미학의 범주 확장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확장되어 현재까지도 무대예술로서의 다양한 표현을 위주로 다양한 무대 메커니즘의 개발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서구의 흐름과 달리, 한국의 근대는 개항과 식민 지배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로 속에서 전개되었다. 역사학계가 1876년 개항을 기점으로 삼는 것과 달리, 예술계에서는 근대적 예술 양식의 태동과 전환이 본격화된 1900년대에서 1920년대 사이를 실질적인 근대예술의 전환기로 파악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무용 역시 이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단, 한국의 근대무용은 서론에 언급했듯이 근대라는 기점에 대한 논제와 더불어 근대시기라고 인식되는 한국사 격변기의 다양한 형태의 춤을 통칭하는 것이라는 시각과 ‘예술’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한국의 춤이 서양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진화되는 기점을 다루는 것으로 나뉘어 논의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1920년대 ‘이시이바쿠’의 표현 무용이 소개된 시점으로 보는 외인론적 시각과 전통 기생교육기관 출신의 무용수들이 근대적 직업 무용가로서 무대예술화한 과정을 강조하는 내재적 발전론을 우선시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이러한 다층적인 관점들은 한국 근대무용이 단순한 현상이 아닌, 전통의 변용과 외래 양식의 수용이 교차하며 형성된 복합적인 산물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한국의 근대무용을 다루는 데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는 ‘신무용’이다. 근대무용’과 ‘신무용’의 개념적 범주 및 상관관계에 관한 학계의 주요 담론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공영호(2003)는 근대무용의 개념을 전통적인 한국무용을 그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발전시키는 모든 계층의 춤을 한국 근대무용이라 하겠고, ‘신무용’의 개념은 개방으로 유입된 여러 형태의 무용을 우리화시킨 작업으로 근대무용의 한 장르에 속한다고 정의했다(223). 이송, 박선욱(2000)은 기존의 몇몇 원로들에 의한 근대 춤 연구가 ‘근대춤=신무용’ 으로 공식화되고 있고 새로운 춤, 외국 춤의 도입 등에 맞춰 근대춤의 기점을 설정하기도 한다고 말하며(185), 신무용은 근대춤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산물이며 신무용이 곧 근대춤으로 대변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198). 김영희(2000)는 우리의 근대춤은 특징적인 전개 과정을 갖고 있는데, 우선 국내의 자생적인 변화보다는 외국에서 현대무용을 배워 한국에 소개하거나 현대무용을 한국화(양식적으로 ‘신무용’의 춤들을 말함)하는 활동으로 촉발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237). 성기숙(1995)은 근대춤이 ‘신무용’과 동일시하는 것이 개념적 혼란을 가중시킨 것이라고 지적한다(72). 그는 근대춤의 전개 양상을 권번춤, 한성준의 민속춤의 무대화, 배구자의 변형된 전통춤과 기예적인 춤, 최승희․조택원의 신무용 등 네 갈래라고 정리하며, 그중 ‘신무용’은 1980년대 이후 활발해진 창작무용의 모태로 자리했다고 분석한다(성기숙 1995, 90).
이러한 주장들을 종합해 볼 때, 기존의 학술적 통념 속에는 근대춤과 ‘신무용’을 동일 범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쟁점들은 양자의 개념적 위상을 엄밀히 재정립함으로써, 한국 근대무용의 독자적 정체성과 외래 양식인 ‘신무용’ 사이의 역학 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학계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다각적인 논의 자체가 역설적으로 한국 근대춤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신무용’이 차지하는 중추적 위상을 입증하는 강력한 방증이다. 결국 학자마다 개념 설정에 대한 학술적 이견은 존재할지언정, ‘신무용’이 근대춤의 역사적 산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본질적인 명제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간의 다양한 논의들은 ‘신무용’의 기원을 한국 근대춤의 전형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비판과 논쟁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이러한 개념적 공방을 넘어, 신무용의 태동과 그 흐름이 한국 무용사에 남긴 실질적인 궤적이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안병주(2016)는 ‘신무용’의 개념 정의 역시 과거 연구자들의 시각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며, 동시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정하며, 한국 무용사에서 중추적인(Crucial) 역할을 수행한다는 ‘신무용’의 재정의를 피력하였다(81-82). 최해리(2000)는 근대 한국 춤사위에서 일본이 한국에 전해 준 서구적 신무용인 현대무용은 주류로 자리 잡는 데 실패하였고, 대신 주체적 자각 아래 시작된 한국적 ‘신무용’이 중요한 기둥으로 자리 잡아 갔음을 알 수 있다고 정리한다(76). 유옥재(1998)는 한국 춤을 군무로 무대화시킨 점, 서구적 이미지를 삽입하여 예술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음악을 작곡하고, 의상을 획기적으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 무용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주장하였다(75). 정진욱(2004)은 우리 춤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있어 ‘신무용’은 극장 예술로서의 무용을 시도한 양식적인 것뿐만 아니라 무용가들의 창작정신과 창의성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하며, 무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계몽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화를 선도했다고 주장했다(2008).
즉, 발생론적 관점에서 외래 양식의 유입이라는 한계를 지닐지라도, ‘신무용’이 한국적 정서와 결합하여 자생적인 변용을 거치고 오늘날 한국의 무대예술로서 무용의 근간을 형성해 온 과정은 그 자체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실체라는 것이 확인된다. ‘신무용’의 태동의 중심에 있는 최승희는 창작무용만으로 ‘정식 공연무대’를 가진 첫 번째 무용가로,조택원의 작품 ‘부여회상곡’은 당시의 스태프 진영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보고 있다(이송, 박선욱 2000, 196). 이처럼 그들이 서구의 춤 양식을 습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예술창작을 위해 전통에 눈 돌리고 또 그것을 창작의 관점에서 재창조의 문제로 바라본 것은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근대적 의식의 적극적 수용이었던 것이라고 평가된다(정진욱 2005, 199-200). 안병헌(2010)은 ‘신무용’의 개념과 성격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여러 논란과 함께 수정하게 되었지만, ‘신무용’을 한국적 미의식과 한국의 정체성에 작용하여 방향을 제시했던 자생성, 즉 자기화할 수 있는 주체적 문화창조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데 반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40). 결국 ‘신무용’은 한국 춤의 전통적 운용 방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표현 기제를 수용함으로써, ‘창작’이라는 예술적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무대예술무용’으로의 질적 진화를 견인하는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종합하면, ‘신무용’은 한국 무용사가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업을 마주하며 겪어낸 필연적인 미학적 결과물이다. 발생론적 차원의 외래 양식 수용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국적 미의식으로 투과시켜 주체적으로 ‘자기화’한 과정은 무대예술로서 한국 춤의 독자적 체계를 세우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실체는 단순히 과거의 양식적 변화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한국 무용계의 중추를 이루는 한국 창작춤의 미학적 메커니즘을 형성한 근대무용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이 본 고찰을 통해 명확히 입증되는 것이다.
2. 현재 ‘신무용’의 위치와 전승 실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무용’의 다양한 학술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근대예술의 범위 내에서 ‘신무용’은 전통의 미학적 원형을 근대적 무대 양식으로 자기화하며 한국 무용의 현대적 전환을 이끈 핵심적 동인이자 역사적 실체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신무용’은 발생론적 한계를 극복하고 주체적인 예술 패러다임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무용 현장에서의 위상은 담론적 가치와 현실적 대우 사이의 괴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현재 한국 무용계의 생태계가 ‘전통’과 ‘창작’이라는 두 개의 견고한 축으로 양분됨에 따라, 근대기 한국 춤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던 ‘신무용’ 계보의 작품들이 공공 지원 체계나 공연 시스템, 주요 대회 등의 규정 등에서 어느 곳에도 온전히 편입되지 못하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안병주(2016)는 지금까지 ‘신무용’의 개념 정의는 그것이 처음 등장했던 과거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임의적이거나 편의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문화예술 정책 방향이나 무용 공연 및 경연대회의 규정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한다(81-82). 이러한 상황은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주요 무용 경연대회의 운영 방식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대표적으로 ‘동아무용콩쿠르’는 한국무용 부문을 오직 ‘전통’과 ‘창작’으로만 구분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2026년 고지된 과제작품을 살펴보면 ‘전통’부문은 ‘국가무형유산 및 시도무형유산 지정 종목 중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한량무, 산조춤, 춘앵전, 무산향에 한함’이라고 제시되어 있다(동아무용콩쿠르 운영 규정, 2026). 심선정(2016)은 “국내무용콩쿠르 한국무용부문의 참가규정에 대한 고찰”에서 전통과 창작이라는 이분법적 이해와 시각은 이미 시간과 역사의 흔적 속에 엄연히 하나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적 구분 앞에 그 어느 쪽으로도 포함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낳게 하였으며, 이미 상당 기간 대구분 영역으로 자리해 온 전통무용마저도 한국무용 전통부문으로 무형문화재 중심의 작품만이 참가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만큼 한국무용의 다양성은 역사 대비 매우 소수의 전통춤만이 존재하는 수구적 정체현상을 낳게 하였다고 지적한다(26).
이러한 한계는 공적 지원사업의 카테고리 구분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실제로 공공 지원사업은 전통춤보다는 창작 작품을, 그리고 창작 영역 내에서도 구작보다는 신작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이경민 2006, 39). 아울러 전통춤 지원사업의 분류 체계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며(한아름 2023, 53), 지원사업 전체에서 전통무용이 차지하는 예산 비중 또한 최소 0%에서 최대 6%대에 불과한 실정이다(홍승욱 2000, 83). 이처럼 전통예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신무용’은 지원 신청 분과를 선택하는 단계부터 ‘신무용’을 전통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견 대립에 부딪혀왔다. 무용평론가 성기숙은 언론 기고를 통해 “전통춤과 신무용은 신체 호흡과 춤사위 기법, 몸짓의 형(型)과 미학적 질감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하였다(성기숙 2019). 이는 전통무용계가 ‘신무용’의 고유한 장르적 속성을 ‘전통’의 범주와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신무용’을 전통무용의 범주로 포섭하는 데 대해 지니고 있는 배타적 시각과 제도적 진입 장벽을 명확히 보여주는 방증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 창작 지원 영역 역시 신작이나 동시대적 속성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기에,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형성된 특정 무용가 중심의 소품형 레퍼토리 보존을 골자로 하는 신무용 계보의 작품들은 구조적 특성상 어느 카테고리에도 포함되기 난해한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고무적인 부분은 사단법인 대한무용협회에서 주관하는 ‘신인무용콩쿠르’에서 ‘신무용’의 유산적 가치를 수용하려는 실천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무용 전통부문에서는 ‘신무용’의 대표작인 「김백봉부채춤」이 이북5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음에 따라 공식적인 참가자격을 갖고 있으며, 한국전통명작무부문을 별도로 운영하며 협회가 지정한 ‘명작무’라는 제도를 통해 조택원, 김백봉, 송범 외 다수의 신무용가들의 작품이 참가가능하게 구조를 개선하였다. 이 ‘명작무’라는 제도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그에 버금가는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을 발굴하여 사장되지 않도록 보존 계승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대한무용협회 2026).
종합하면, 현재 ‘신무용’의 위치는 사단법인 대한무용협회의 추진사업을 제외하고는 주요 경연대회와 공적 지원사업의 이분법적 카테고리 속에서 어느 곳에도 온전히 편입되지 못하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신무용’은 제도적 사각지대라는 불안정한 위치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를 지켜내고자 하는 전승자들의 실천적 행보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비록 김채현이 80년대 후반기 춤의 현장에서 간파되는 예술적 흐름에서 보면 신무용의 위력은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는 추세라 하면서 신무용 시대의 종말을 예견(김선미 2017, 879-880)하기도하였으나, ‘신무용’ 1세대인 최승희·조택원 등에서 발원하여 2세대인 김백봉·송범 등으로 이어진 미학적 계보는 오늘날까지도 독자적인 전승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무용 현장에서 확인되는 ‘신무용’의 전승 실체를 중심으로, 주요 ‘신무용’의 연행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신무용 1세대인 조택원의 「가사호접」은 그 전승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는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조택원의 제자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무용가 김문숙에 의해 춤의 미학적 원형이 엄격히 보존되었으며, 그 인적 계보를 통해 오늘날까지 면면히 전해지고 있다. 「가사호접」은 남성 신무용의 서막을 연 초기작으로 후세대 무용인들에게 전승되며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특히 이 춤은 전통 ‘승무’를 모태로 삼으면서도 이를 근대적 무대 문법으로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조택원의 초기 작품은 근대무용 유산으로서, 최승희의 ‘신무용’에 가려졌던 가치를 점차 인정받아 최승희의 작품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황희정 2023, 228). 이 작품도 1993년에는 근대무용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사단법인 대한무용협회가 지정한 ‘명작무’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대한무용협회 2026).
최승희의 대표 작품 역시 특정 전승자와 기록물을 통해 그 미학적 원형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승희의 직계 제자인 김백봉이 스승으로부터 직접 사사받은 무용적 자산을 바탕으로 「초립동」, 「옥적의 곡」, 「향기」 등의 주요 레퍼토리를 재연 및 전승해 왔고 현재까지도 공연장에서 확인이 되는 작품이다. 김백봉은 최승희의 춤사위가 지닌 미학적 정수를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현대적 무대 메커니즘에 맞게 체계적으로 재안무하여 현재까지도 그의 후학들에 의해 활발히 연행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김백봉의 이러한 예술적 행보는 스승의 작품을 보전하는 데 국한되지 않고 독보적인 춤 유산 작품들과 제자들을 생성하였다.
2세대 신무용가 김백봉은 60여 년의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해 냈으며, 오늘날 한국무용사에 중요한 위치를 갖춘 대표적인 무용가로서 알려져 있다(정진한 2004, 18). 전후세대에게 ‘신무용’이라 하면 그의 스승 최승희의 춤보다는 김백봉의 춤을 더 많이 접하게 되었다. 최승희는 오랜 기간 잊혀진 전설의 인물로 그의 춤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신무용=최승희는 기록으로 만나본 것일 뿐, 현실적으로 우리가 직접 대면한 것은 김백봉의 춤으로 그가 신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룬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이송 2015, 359). 신무용가로서 김백봉은 대표작인 「부채춤」과 「화관무」라는 한국의 중요 레퍼토리를 만들어냈고, 이 작품들은 오늘날 한국무용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독보적인 예술자산으로서 그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김백봉부채춤」은 2014년 평안남도 무형유산 제3호로 등재되며 근대 창작물이 지닌 유산적 가치를 제도적으로 공인받았으며, 「김백봉 화관무」 역시 사단법인 대한무용협회 지정 ‘명작무’로 선정되어 엄격한 원형 보존과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대한무용협회 2026).
그리고 송범의 활동 역시 ‘신무용’ 전승의 실효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송범은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으로 재임하며 ‘신무용’의 예술적 지평을 공적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킨 인물이다. 송범의 활동은 국립무용단의 발표 공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국립 무용단의 공연부터 송범은 한국무용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빈번한 한국무용작품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고(장동환 2003, 18), 이후 그의 작품활동은 1984년에 발표된 「도미부인」이라는 대작을 탄생시켰고, 이 작품은 단시간 여러 나라의 공연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일정 부분의 공감대를 끌어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적 브랜드화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홍정윤 2017, 48)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2014년 국립무용단 레퍼토리 시즌에서 송범 탄생 80주년을 기념한 전막 재현이 이루어진 이래, 현재는 주요 장면 위주의 발췌 공연이나 헌정 갈라 형식으로만 연행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렇듯 ‘신무용’ 계보의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실질적 동력은, 신무용가들의 활동이 단순히 안무 활동에 그치지 않고, 후대 교육과 전승 체계 구축에 실천적 역량을 집중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신무용가들은 무용연구소를 중심으로 각자의 예술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후학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안귀호 2015, 29). 1946년 함귀봉이 조선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성인과 청소년에게 당시로는 상당히 체계적인 무용 교육을 실시했고, 최승희는 발레의 우수한 훈련 체계의 방법을 참조하여 조선민족 무용기본의 이론적 기초 확립을 위한 신체 훈련과 민족무용 동작의 체계화를 위해 1958년 평양에서 조선민족무용기본을 발간하기도 했다(안귀호 2020, 912). 1950년대에는 김천흥, 김보남, 이매방, 강선영, 김백봉, 송범, 권려성, 김진걸, 김문숙, 임성남, 주리 등 다수의 무용가들이 무용연구소를 열어 제자를 양성하며 공연을 했다(권윤방 2003, 143).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1953년에는 김백봉이 ‘김백봉무용연구소’를 개소하면서 후학양성을 위한 훈련법을 만들었고(안귀호 2015, 28), 1954년 송범 역시 기본동작이 몸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여기고 권여성, 박금술 등의 춤을 보고 연구한 기본동작을 만들었는데(김수영 2002, 14), 이들이 정립한 움직임의 원리가 오늘날까지도 ‘김백봉 기본’, ‘국립 기본’이라는 명명 아래 교육 현장에서 생생히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안귀호 2015, 28)이다.
결과적으로 신무용가들은 ‘작품’이라는 결과를 내놓기 위해 그 뿌리가 되는 기본 움직임의 정립에 집중하고 이를 교육 현장에 이식함으로써, 개별 작품이 단절 없이 계승될 수 있는 구조적 기틀을 스스로 마련한 것이다. 이는 ‘신무용’이 단순히 작품을 창작하고 보존하는 데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무용의 신체 언어를 구성하는 근간으로서 제도화되고 전승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신무용’ 세대들이 구축한 체계적인 교육의 토양은 단순히 기술적인 신체 훈련의 차원을 넘어, 후학 양성에 쏟은 신무용가들의 집요한 실천적 노력과 열망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기본동작 하나를 정립하는 과정에서조차 이토록 철저한 체계성과 열정을 보였다는 점은, 그들의 예술적 정수가 응축된 개별 작품을 전승하는 과정에서는 얼마나 더 밀도 높은 집중과 노력이 기울여졌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결국 이들이 보여준 교육적 열망은 개별 작품 전승으로 확장되어, ‘신무용’의 작품 레퍼토리들이 시대를 건너 현재까지 자생적인 생명력을 유지하게 한 근본적인 원동력이 된 것이다.
위와 같이 ‘신무용’ 세대들의 교육 사례와 그 실증적 과정을 살펴본 결과 ‘신무용’의 전승 역시 안무가 개인의 예술적 독창성과 그를 따르는 후학들의 인적 결속을 바탕으로 하는 ‘인물 중심의 전승 구조’를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리고 그 전승의 중심에는 ‘신무용’의 계보 내에서 탄생된 개별 ‘작품’이 구체적인 실체로서 현존한다는 것이 확인된다. 즉, ‘신무용’은 안무가 고유의 미학이 응축된 개별 작품을 중심으로, 특정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공고한 인적 계보를 축 삼아 ‘살아있는 유산’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신무용’의 전승과 유산적 가치를 논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특정 형식이나 계보 전체를 일반화하여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전승의 연속성과 역사적 독보성이 입증된 구체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선별적이고 실증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즉, ‘신무용’의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장르론적 접근을 넘어, 신무용가 개개인이 남긴 구체적인 기록물과 그 제자들에게 이어지는 전승의 계보를 ‘인물 중심의 개별 작품’으로 추적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확인된다.
여기서 짚어볼 부분은 현재 한국무용 분야의 국가 및 시도무형유산 지정 현황을 살펴보더라도 그 실질적 보존 대상은 대개 역사적 배경을 근간으로 함과 동시에 한국의 정체성과 민족성, 전통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인물 중심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즉, ‘전통’의 범주에 안착한 종목들 또한 특정 명무의 류파적 전승과 작품적 독창성을 근거로 유산적 지위를 획득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신무용’이 지닌 인물 중심의 작품 전승 구조가 기존 무형유산의 전승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즉, 기존 무형유산이 취하고 있는 인물 중심의 전승 체계와 ‘신무용’의 작품 전승 구조 사이의 실질적 유사성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사성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신무용’은 비록 근대적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내면의 전승 방식은 한국 춤의 전통적 원리인 ‘류파(流派)’적 속성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이는 ‘신무용’이 지닌 인물 중심의 전승 실체가 결코 유산적 가치와 대립되는 요소가 아니며, 오히려 한국무용 전승의 보편적 원리가 근대적 양식 안에서 발현된 구체적인 사례임을 시사한다.
한국무용의 이러한 구조는 무용이 지닌 본질적 특성, 즉 전승의 실체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행되는 신체적 경험의 공유에 있다는 무용학적 관점에 기인한다. 무용이란 본질적으로 인체예술이며 모든 춤은 형식이나 장르를 막론하고 고정된 텍스트나 박제된 유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 의해 전승되는 인적 계승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신무용’은 과거의 형식에 박제된 상태가 아니라 체계화된 교육과 계보 전승을 통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연행되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이러한 전승의 생명력은 ‘신무용’이 현대적 무형유산 보호 체계 안으로 편입되어야 할 정당성을 부여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무용’의 전승 양상은 현재 현대적 무형유산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들인 ‘공동체’, ‘세대 간 전승’, ‘재창조’, ‘정체성’, ‘계속성’, ‘창조성 증진’과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신무용’은 특정 안무가 개인이 남긴 과거의 산물에 머물지 않고, ‘세대 간 전승’을 통해 「김백봉부채춤」 등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레퍼토리들을 정착시켰으며, 이는 한국인의 정서적 원형을 형상화한 문화적 자산으로서 국민적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무용 예술에 강력한 ‘정체성’과 ‘계속성’을 부여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신무용’이 보여주는 전승의 실재성은 한국 춤의 신체 언어를 더욱 풍성하게 확장하며, 궁극적으로 한국 무용의 ‘창조성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신무용’이 지닌 인적 계보와 작품 중심의 전승 연속성은, 변화된 현대적 유산 담론 안에서 그 가치를 재평가받고 제도적으로 수용되어야 할 가장 실질적이고도 필연적인 근거가 된다.
Ⅴ. ‘신무용’의 문화유산적 위상 제고를 위한 실천적 과제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한국의 ‘신무용’은 전통의 단절이 아닌 현대적 변용의 산물이며, 인적 계보를 통해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전승 유산임이 확인되었다. 특히 근대예술을 무형유산의 범주로 수용하는 현대적 담론의 변화를 고려할 때, 신무용은 이미 유산적 가치 논의의 핵심적 대상으로 자리한다. 현재 무형유산 보존제도가 지향하는 ‘살아있는 유산’ 패러다임은 유산의 가치를 물리적 시간의 깊이보다는 전승 과정에서 나타나는 ‘역동성’과 ‘현재적 가치’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이러한 유산적 당위성을 바탕으로, ‘신무용’의 실질적인 위상 제고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실천적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제언하고자 한다.
1. 한국 무용계 내부의 인식적 위상 재정립
‘신무용’의 유산적 가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한국 무용계 내부의 인식적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전통’과 ‘창작’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의 틀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그 사각지대에서 위축되었던 ‘신무용’의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전통’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전통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후행하는 시대의 경험이 끊임없이 덧입혀지며 누적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들 역시 당대에는 파격적인 ‘현대’였으며, 시간의 층위가 쌓임에 따라 그 시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공인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근대기 한국적 미의식의 현대적 변용을 주도했던 ‘신무용’은 이미 우리 무용사의 견고한 한 축으로서 ‘전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국가무형유산 중심의 ‘전통’과 동시대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작’ 사이에서 ‘신무용’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근대무용의 산물인 「김백봉부채춤」이 평안남도 무형유산 종목으로 등재된 일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이분법적 제도 내에서 무형유산의 위계 차이로 인해 실질적인 무용 생태계 내에서 여전히 인식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신무용’을 한국무용사 내의 독립되거나 분절된 형식이 아닌, 한국 무용의 역사적 연속성을 담보하는 필수적인 영역으로 인식해야 한다. 즉, ‘전통’과 ‘창작’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잣대로 ‘신무용’ 계보의 자산들의 위치를 한정을 짓기보다는, 한국무용의 외연을 실질적으로 지탱해 온 자산으로서 제도적 수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2. 전공 교육 내 ‘신무용’ 미학의 문화적 자산화
전공 교육 내 ‘신무용’ 미학의 문화적 자산화를 추진하고, 이분법적 평가 체계에 따른 교육적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이제는 교육 현장에서도 ‘신무용’을 특정 계보의 전유물이 아닌, 한국 춤의 예술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차세대 인력을 양성하는 보편적 교육 자산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신무용’은 한국 춤이 전통적 운용 방식에서 탈피하여 ‘창작’이라는 현대적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무대예술무용’으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오늘날 한국 창작무용의 미학적 원류이자 변용의 출발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신무용’은 전공 교육에 있어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산이다. 특히 ‘신무용’은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와 미학을 근대적 신체 언어로 정제한 결정체이자, 2세대에 의해 확립된 군무(群舞)의 미학과 정교한 훈련 체계를 통해 무대예술의 구조적 완성도를 체득하게 하는 독보적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신무용’ 교육은 무용수의 신체적 숙련을 넘어, 무대 전체를 조망하는 안무가적 시야를 확장하는 실질적 기제로서 그 위상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예중·예고 및 대학의 교육 현장에서 ‘신무용’은 특정 교수자의 계보 유무에 따라 소수의 현장에서만 교육되고 있을 뿐, 보편화된 교육 자료로서 자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신무용’이 한국 무용사의 공통 자산으로 기능하기보다 개인 교수자의 전승 영역에 의존하게 되는 교육적 한계를 낳고 있으며, 그 근본 원인은 취업과 직결되는 국공립 무용단 단원 선발이나 주요 콩쿠르에서 ‘신무용’이 명확한 평가 영역으로 자리 잡지 못한 인식적 현실에 있다. 어쩔 수 없이 현재 한국무용계는 무형문화재 지정종목이 대학 무용교육의 커리큘럼으로 채택되고 국공립무용단의 학습종목으로 선택되며, 나아가 각종 무용콩쿨대회의 경연종목으로 선정되기 때문이다(진보연 2024).
따라서 전공 교육 현장에서는 ‘신무용’을 단순한 선택 종목이 아닌, 한국 무용가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 예술 역량이자 공적 교육 자산으로 재인식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공립 무용단 입단 실기 및 주요 콩쿠르 등 현장 평가 체계 내에서 ‘신무용’의 미학적 숙련도가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개선하고 이를 교육과정과 긴밀히 연계할 필요가 있다.
3. 국가무형유산 체계 내 ‘신무용’의 수용
국가무형유산 체계 내에서 ‘신무용’을 실질적 보존 및 관리 대상으로 수용하기 위한 제도적 인식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형문화유산제도와 같은 관 주도의 전통문화창출은 과거의 재현만이 민족의 독자성으로 정당화하였고 신무용을 비롯한 근대무용들은 문화유산보존의 과제에서 제외되었다(심선정 2016, 27). 이에 본 연구자는 ‘시간의 숙성’이라는 관점이 자칫 무형유산의 본질인 ‘전승의 실재성’보다 물리적 연대기에 치중하여, 현재 활발히 재창조되고 있는 예술적 생명력을 간과할 우려가 있음을 제기하고자 한다. 현시대가 바라보는 유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흐른 ‘절대 시간’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얼마나 밀도 높은 교육 체계와 인적 계보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독자적 미학을 유지해 왔는지, 그리고 미래 무용 자산으로서 후대에 한국 춤의 정통성과 예술적 위대함을 전수할 실질적 가치가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앞서 본고에서 실증한 바와 같이, ‘신무용’은 이미 반세기가 넘는 전승 과정을 통해 한국 춤의 근대적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후학들에 의해 그 생명력이 지속되고 있는 검증된 유산이다. 따라서 이를 먼 훗날의 얘기로 유보하는 것은 오히려 전승의 단절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형유산의 패러다임이 근대 예술로 확장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현존하는 전승 실체를 제도적 보호 체계로 수용하기 위한 실천적 논의이다. 특히 유네스코 협약 제12조가 명시한 선결 조건, 즉 ‘자국 무형유산 목록 등재’라는 요건은 한국 ‘신무용’이 국제적 평가를 받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다. 독일이 현대무용을 자국 목록에 먼저 수용함으로써 세계유산 등재의 자격을 획득했듯이, ‘신무용’을 국가 목록으로 포섭하는 정책적 결단이 요구된다.
이러한 제언이 긴요한 이유는 현행 제도가 기원의 유구함이나 민족적 고유성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어 근대기 외래 예술의 수용과 변용을 통해 형성된 ‘신무용’의 가치를 온전히 포착하기에 한계가 있으며, 2024년 11월 개최된 ‘무용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 제4차 정책 포럼에서도 확인되듯 ‘신무용’의 유산적 가치를 둘러싼 논의가 여전히 물리적 시간의 축적을 중시하는 보수적 담론과 시대적 변화에 따른 제도적 수용을 강조하는 진보적 담론 사이에서 팽팽한 대립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진보연 2024). 또한 지금까지 무형문화유산제도와 같은 관 주도의 전통문화 창출은 과거의 재현만이 민족의 독자성으로 정당화되어 신무용을 비롯한 근대무용이 문화유산 보존의 과제에서 제외되어 왔다는 점에서(심선정 2016, 27), 이제는 ‘오래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기한의 한계나 ‘외래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 ‘신무용’이 한국적 미의식을 토대로 근대라는 시대적 요청에 어떻게 응답하며 우리 춤의 지평을 넓혔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4. 학술적 체계 정립 및 통합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
‘신무용’의 지속 가능한 전승을 위한 학술적 체계 정립 및 통합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동안 ‘신무용’에 관한 학술적 규명과 기록화 작업은 일부 연구자나 개별 전승 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이에 따라 유산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공적 데이터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민간 소장 기록물들은 체계적 관리 부재로 소실될 위기에 놓여 있어, 이를 공적 영역에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김윤영, 안병헌(2012)은 한국 무용계는 공연 자료를 문화자산으로서 가치를 부여하고 역사화하는 일에 소홀해 왔고, 사회적 인식과 제도 마련, 경제적 지원의 부족으로 인해 장대한 역사를 가진 ‘신무용’ 자료들은 흩어져 소멸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21). 현재 무용학계에서도 근대무용의 가치에 주목하며 한국무용협회의 ‘명작무’ 지정 등을 통해 무형문화유산 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명작무’로 지정된 작품들조차 여전히 체계적 학술 연구나 실증적 자료 구축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어 그 근대적 가치에 대한 학술적 토대는 빈약한 상태(황희정 2023, 229)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보존 가치가 증명된 ‘신무용’ 관련 아카이브 시스템은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는 차원을 넘어, 파편화된 전승 정보를 객관적 ‘학술적 전승 모델’로 표준화함으로써 ‘신무용’의 전승적 실체를 가시화하고 그 가치를 증명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데이터의 공공화는 유산의 진정성이 전승 과정의 투명성과 기록을 통한 객관적 실체에 있다는 유네스코의 새로운 가치 척도와도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독일의 현대무용이 개인 문서와 기록물을 대학 및 공공 아카이브 등 공적 전승의 근거로 체계화함으로써 세계유산 등재의 자격을 획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신무용’이 근대 무형유산으로서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산재한 계보별 자료를 통합 아카이빙하고, 이를 기반으로 근대예술 유산을 위한 제도적 보존 모델을 마련함으로써 전승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이러한 아카이브 구축은 한국 무용의 역사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향후 국가무형유산 체계 내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실증적 토대를 마련하는 최종적 선결 과제가 될 것이다.
Ⅵ. 결 론
본 연구는 한국 무용사의 격동기적 산물인 ‘신무용’을 현대 무형유산 담론의 변화된 지평에서 재조명하고, 그 유산적 가치와 전승 실체를 규명함으로써 실질적인 위상 제고를 위한 실천적 과제를 제안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핵심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시대의 무형유산 담론은 ‘원형 중심’에서 ‘가치와 과정 중심’으로 변화하며 근대예술 자산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한국의 ‘근현대문화유산법’ 제정과 2022년 독일 현대무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사례는 유산의 가치가 ‘시간적 오래됨’이 아니라 공동체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실체’에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전환점이다. 이러한 국제적 기준의 변화는 근대기 격동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예술적 산물들이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보호받아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며, ‘신무용’을 근대유산의 체계 안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를 제공한다.
둘째, ‘신무용’은 한국 춤의 전통적 운용 방식을 탈피하여 ‘창작’이라는 근대적 예술 패러다임을 주도한 한국 창작무용의 미학적 원류이자, 근대예술로서 확고한 역사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발생론적 배경을 둘러싼 외래성 시비나 제도적 수용에 대한 시기상조론 등 그간의 학계 이견에도 불구하고, ‘신무용’은 전통의 미학적 원형을 근대적 무대 양식으로 전이시키며 한국 무용의 현대적 전환을 이끈 결정적 기점이다. 서구 근대무용의 형식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한국적 미의식과 결합하여 자기화해 온 과정은, 오늘날 한국 무용계의 중추를 이루는 창작 미학의 메커니즘을 형성한 근대무용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따라서 ‘신무용’은 분절된 과거의 양식이 아닌, 한국 무용의 역사적 연속성과 근대적 정체성을 담보하는 필수적 유산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셋째, ‘전승의 실재성’과 ‘역동성’을 갖춘 ‘신무용’은 이미 ‘살아있는 유산’으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신무용’은 최승희·조택원으로부터 발현된 미학이 김백봉·송범 등 2세대 거장들을 통해 한국적 양식으로 체계화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현시대 무용가들의 창작적 변용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인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전승은 인적 계보에만 머물지 않고 거장들의 핵심 레퍼토리가 후학들에게 전수·변용되는 작품 단위의 실체로 확인되며, 특히 ‘신무용’의 인물 중심 전승 구조는 한국 춤의 전통적 원리인 류파적 속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기존 무형유산 전승 방식과의 정합성도 확보하고 있다. 이는 ‘신무용’이 박제된 기록물이 아닌 현재까지 생동하는 실효적 유산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이다.
넷째, ‘신무용’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전통’과 ‘창작’ 사이의 이분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본연의 위치를 회복하기 위한 전방위적 정책적·교육적 개선이 선행되어야 함을 제언한다. 이를 위한 실천적 과제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 무용계 내부의 ‘전통’의 범주에 대한 인식적 위상의 재정립이 요구되며, 문화유산의 범위가 근대예술의 산물인 ‘신무용’ 계보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전공 교육 내 ‘신무용’ 미학의 문화적 자산임을 인정함으로서 이제는 국공립 무용단 입단 실기 및 주요 콩쿠르 등의 평가 체계를 재정비하고 이와 연계하는 교육과정이 현장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따라서 무용계와 문화유산청 등 관련기관은 ‘시간의 숙성’이라는 보수적 담론에 머물기보다 현존하는 전승 실체를 국가 무형유산으로 보호하기 위한 포용적 행정으로의 인식 전환이 요구되며, 이는 유네스코 협약 제12조가 명시한 ‘자국 무형유산 목록 등재’의 선결 조건을 충족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신무용’ 계보의 전승자들도 지속 가능한 전승과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공연활동뿐만 아니라 현재 산재한 기록물과 거장들의 구술 자산 등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능동성이 요구되며, 제도적으로도 통합 관리가 가능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학술적 전승 모델의 표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언한다.
본 연구는 ‘신무용’을 둘러싼 기존의 발생론적·범주론적 논쟁을 넘어, 현대적 유산 담론의 관점에서 전승의 실체를 증명하고 실천적인 위상 제고 방안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연구 과정에서 ‘신무용’의 공적 지원 배제 현상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다년간의 세부 유통 데이터의 접근이 제한적이었으며, 전승 주체들의 구술 외에 객관적 아카이브 소스가 부족하여 개별 레퍼토리에 대한 미학적 심층 분석에 이르지 못했다는 방법론적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한계를 바탕으로 제언하건대, 향후 후속 연구에서는 본 연구에서 도출된 유산적 정합성을 준거로 삼아, 유관 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신무용’ 계보별 실증 데이터 확보와 이를 표준화할 수 있는 디지털 전승 모델 개발 등보다 구체적이고 현장 지향적인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결론적으로 신체를 매개로 하는 무용 예술의 연속성은 결국 후대가 그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전승하는가에 달려 있다. 본래 예술의 가치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무용’은 한국 춤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소중한 자산이자, 미래 창작을 위한 무한한 토양이다. 이제는 ‘신무용’을 ‘오래되지 않은 과거’라는 물리적 시간에 가두기보다, ‘현재 진행형의 유산’으로서 그 역사적 지평을 넓혀야 할 시점이다. 본 연구를 통해 ‘신무용’이 단순한 과거의 산물이 아닌, 현재 한국 무용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실체적 자산임이 확인된 바, 이를 토대로 한국 무용 유산의 외연이 더욱 확장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