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Society for Dance Documentation & History

pISSN: 2383-5214 /eISSN: 2733-4279

HOME E-SUBMISSION SITEMAP CONTACT US

Journal Detail

Journal Detail

Export Citation Download PDF PMC Previewer
Historical Research on the Establishment of the Accompanying Music of Sibiche Drum Dance 「십이체장고춤」 반주음악의 형성에 관한 역사적 고찰 ×
  • EndNote
  • RefWorks
  • Scholar's Aid
  • BibTeX

Export Citation Cancel

Asian Dance Journal Vol.81 No. pp.247-270
DOI : https://doi.org/10.26861/sddh.2026.81.247

Historical Research on the Establishment of the Accompanying Music of Sibiche Drum Dance

Lee Yong-Shik*
*Professor, Chonnam National University [Jeonnam National University]
* Lee Yong-Shik yongshiklee@hanmail.net
March 24, 2026 June 28, 2026 June 30, 2026

Abstract


Janggo chum is a dance performed while carrying and playing the janggo. Choe Seunghui re-choreographed the traditional janggo chum she learned from Han Seongjun. Following a separate lineage, the sibiche janggo chum of Gim Chwihong was transmitted through O Cheonhyang, and is now preserved by Han Hye-gyeong. This dance is accompanied by the Gyeonggi folk songs “Hangangsu Taryeong” and “Cheongchun-ga” together with the Seodo folk song “Gin Nanbong-ga,” reflecting the musical background of Gim Chwihong as a Pyeongyang gisaeng skilled in Seodo japga. folksongs of the Northwestern area. The accompanying music exhibits the origin creator of the dance, Gim Chwihong. Gim likely chose Seodo folk songs rather than “Daepungnyu,” the conventional accompaniment for Pyeongyang gisaeng dance. Her original accompaniment was probably replaced by Gyeonggi folk songs that gained popularity, particularly after the wide reception of Han and Choe’s Janggo chum. As Gyeonggi folk songs of the cultural center eclipsed the Seodo repertoire of the periphery, and as the division of Korea further erased the Seodo tradition, the coexistence of both regional folk song traditions in Sibiche Janggo chum likely reflects this historical process of displacement.



「십이체장고춤」 반주음악의 형성에 관한 역사적 고찰

이용식*
*전남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초록


「장고춤」은 장고를 메고 장고 연주와 더불어 추는 춤이다. 최승희는 한성준에게서 배운 전통 「장고춤」을 새롭게 안무하여 「장고춤」을 만들어 다양한 유파의 춤으로 발전했다. 이와 계보를 달리하는 김취홍으로부터 시작하여 오천향을 거쳐 한혜경으로 전승되는 「십이체장고춤」이 있는데, 이는 경기민요인 「한강수타령」, 「청춘가」과 서도민요인 「긴난봉가」로 반주한다. 이는 평양 기생인 김취홍의 성향에 의한 것이다. 김취홍은 「장고춤」을 전통적인 평양 기생춤 반주음악인 대풍류가 아닌 서도민요를 선택했을 것이고, 이는 김취홍이 서도잡가에도 능했기 때문이다. 그의 반주음악은 본래 서도민요인 「난봉가」, 「이팔청춘가」, 「간지타령」이었던 것이 이들 노래를 서울 스타일로 바꿔 부르면서 인기를 얻게 된 경기민요 「청춘가」와 「한강수타령」으로 한성준와 최승희의 「장고춤」 이후 대체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중심부의 음악인 경기민요가 인기를 얻으면서 주변부의 음악인 서도민요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고, 서도민요의 존재감은 남북분단으로 완전히 지워졌다. 「십이체장고춤」의 반주음악이 서도민요와 경기민요가 쓰이는 현상은 서울에서의 서도민요의 퇴화에 따른 현상일 것이다.



    Ⅰ. 머리말

    「장고춤」은 장고를 메고 장고 연주와 더불어 추는 춤이다. 「장고춤」은 농악에서 시작된 설장구춤과는 궤를 달리한다. 설장구춤은 농악에서 비롯되어 춤동작과 가락이 전통적인 농악의 춤사위와 가락을 그대로 연행한다. 이에 비해 「장고춤」은 기생이 기방에서 추던 교방춤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춤동작과 가락이 설장구와는 전혀 다르다. 무용계에서는 「장고춤」을 현대적으로 만든 인물로 최승희(1911-1967)를 꼽는다. 최승희가 1930년대 일본에서 이시이 바쿠(石井漠, 1886-1962)에게서 현대무용을 배우고 귀국한 후에 한성준(1874-1942)에게서 배운 전통 「장고춤」을 새롭게 안무하여 만들었다(성기숙 1998, 23; 이금용 2001, 13; 임진희 2012, 20). 한성준에서 최승희로 이어지는 「장고춤」은 20세기 초기 기방에서 기방춤 형태로 추던 것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최승희는 1942년 일본 동경 제국극장에서 개최한 독무 공연에서 신작 작품으로 「장고춤」을 선보였다. 이 작품에 대해 당시 프로그램에서 ‘장고의 흥겨운 리듬을 타고 멋을 부리며 노는 기생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하여, 자신의 「장고춤」이 기방춤에서 새롭게 안무한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했다(정병호 2004, 219). 최승희의 「장고춤」은 그의 제자인 김백봉(1927-2003)에 의해 널리 보급되어 현재는 다양한 유파의 「장고춤」을 형성했다.

    한편, 한성준과 최승희의 「장고춤」과는 계보를 달리하는 「장고춤」이 현재 전승되고 있다. 이는 평양 출신의 대정권번 기생 김취홍(1896-몰연도 미상)이 추었던 교방 「장고춤」이다. 이는 최승희가 한성준에게 배워서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장고춤」보다 이른 시기의 「장고춤」이다(한혜경 2004, 178; 한혜경 2006, 21). 이 「장고춤」은 이후 오천향(본명 오정자, 1932-몰연도 미상)에게 전승되고, 그의 제자인 한혜경(1952-)에게 전승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장고춤」은 12체를 갖춘 「장고춤」으로 「십이체장고춤」으로 명명되었다(양종승 2021, 35-37).

    「십이체장고춤」은 주로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으로 반주하는 다른 유파의 「장고춤」과는 달리 「한강수타령」 외에 「청춘가」와 서도민요 「긴난봉가」로 반주한다. 이는 「십이체장고춤」을 처음 시작한 평양 출신 기생 김취홍의 음악 성향에 의한 것이다. 평양 출신 김취홍은 당시 서울에서 유행했던 경기민요보다는 자신의 출신지 음악인 서도민요가 더 익숙했기에 서도민요를 반주음악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에 평양 기생의 춤을 어떤 음악으로 반주했는지는 음원 또는 문헌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김취홍이 서도민요를 반주음악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당대 음악문화의 지형을 살펴보면 평양 기생의 춤을 어떤 음악으로 반주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이는 1920-1930년대 발간된 각종 음반 자료, 신문 기사, 도상 자료, 각종 기록 등에서 평양 기생의 춤 반주음악으로 쓰이는 서도민요의 전개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도상 자료를 통해 기생 춤 반주음악으로 쓰이는 삼현육각 음악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 음반을 통해 당대 서도민요의 확장과 춤 반주음악의 쓰임새를 규명하고, 각종 문헌 자료를 통해 춤 반주음악으로 쓰인 서도민요의 종류 등을 파악하고자 한다. 특히 각종 문헌 자료는 김취향의 「십이체장고춤」 반주음악이 형성된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하더라도 당대의 문화 현상을 통한 정황 증거가 된다. 이 글에서는 20세기 전반기 평양 기생춤의 반주음악을 통해 평양 기생 김취향으로부터 시작된 「십이체장고춤」의 반주음악으로 쓰이는 서도민요의 역사적 근거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는 「십이체장고춤」 반주음악의 역사적 전통성을 확인하고, 무용 반주음악의 형성 과정을 밝히는 의의를 갖는다.

    Ⅱ. 평양 기생춤의 반주음악

    평양 기생춤은 기본적으로 삼현육각(三絃六角)으로 반주한다. 삼현육각 편성은 쌍피리(목피리와 곁피리), 해금, 대금, 장구, 북으로 구성된다. 삼현육각 편성은 18세기 이후 우리나라 음악의 보편적인 편성으로 지방 감영에서는 대부분 삼현육각 악사가 소속되었고 이들은 지방 감영의 각종 의식과 행사의 음악을 도맡아 연주했다. 이외에 각종 무용 반주음악도 삼현육각 편성으로 반주했다.

    18세기는 군영 체제를 새롭게 재편하면서 삼현육각을 담당하는 세악수(細樂手)와 고취악(鼓吹樂, 현재의 대취타)을 연주하는 취고수(吹鼓手)의 군영 악대가 틀을 갖추었던 시기이다<도판 1>.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조선은 중앙에 5군영을 설치하고 지방에는 속5군을 조직했다. 새로운 군사 체제를 위해 취타 악기로 편성하는 취고수와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세악수가 중앙의 5군영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이숙희 2007, 19). 취고수와 세악수는 지방 감영과 병영에도 설치되어(배인교 2007, 142) 전국망을 갖춘 음악 체제로 확립되었다. 중앙 군영과 지방 병영의 음악인들은 병조 소속이었고, 지방 감영의 음악인들도 대부분 병조 소속이었다. 이외에 중앙의 장악원과 지방 감영의 악공 일부는 예조 소속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전라도 광주읍과 충청도에도 예조 소속의 악사들이 존재했다(배인교 2005, 118-119; 이용식 2024, 14). 지방 관속 음악인은 관아의 의례, 행진, 연향 등의 음악을 맡았다. 18세기 도상자료에 그려진 대부분의 지방 관속 음악인들은 병조 소속이었다. 18세기 도상자료의 삼현육각 편성 음악인들 중에 전립을 쓴 음악인들은 병조 소속의 악사였다. 관속 음악인들은 민간의 각종 연향 등에 참여하여 음악을 연주했다<도판 2>(이용식 2025, 394-395).

    SDDH-81-1-247_F1.jpg
    도판 1

    김홍도. 「안릉신영도」(Being welcomed in Anneung). 1786. 종이에 유채. 25.3 x 633.0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SDDH-81-1-247_F2.jpg
    도판 2

    김홍도. 「무동도」(Dancing boy). 미상. 종이에 유채. 26.8 x 22.7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여지도서』(1775-1765)에 기록된 평양부의 삼현육각을 담당하는 세악수(細樂手)는 감영 소속으로 12명, 병영 소속으로 6명이 있었고, 이외에 평양부에 악공이 28명 있었다. 이외에도 고취악(鼓吹樂, 현재의 대취타)을 연주하는 취수겸군(吹手兼軍) 21명과와 나취(羅吹) 259명이 병영에 소속되었다. 평양부 소속의 기생은 180명이었다. 이들을 위한 악공청(樂工廳) 3간과 기생청(妓生廳) 5간이 있었다(배인교 2007, 부록 90).

    김홍도(1745-1806경)의 「평양감사 환영도」에는 삼현육각 악사가 기생의 무고, 검무, 포구락, 입무, 사자무를 반주한다<도판 3>. 『여지도서』의 기록에 평양부에는 감영 소속 세악수 12명과 병영 소속 세악수 6명이 있다(배인교 2007, 부록 90), 세악수 6명은 삼현육각을 담당했던 악사로서, 병영 소속 6명과 감영에는 6명의 두 패가 있었던 것 같다. 이들 세악수가 기생의 춤을 반주했다. 이들의 복식이 감영 소속 악사가 입는 홍주의이고 박을 치는 집박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평양부 소속 악사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SDDH-81-1-247_F3.jpg
    도판 3

    김홍도. 「평양감사 환영도」(Being welcomed in Anneung). 18세기 후반. 종이에 유채. 71.2 x 196.9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18세기 평양부 소속 세악수들이 연주했던 음악은 아마도 대풍류이었을 것이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평양부 소속 기생들이 담당했던 춤은 「포구락」, 「무고」, 「처용」, 「향발」, 「발도가」, 「아박」, 「무동」, 「연화대」, 「학무」였다. 평양부 소속 음악인들이 연주했던 음악은 「여민락」, 「만전춘」, 「감군은」, 「보허자」, 「쌍화점」, 「한림별곡」, 「서경별곡」, 「봉황음」, 「관서별곡」 등이었는데, 당시 “지금 악곡은 전하지 않는다[曲今不傳]”고 기록되었다(배인교 2007, 부록 90). 이들 음악은 주로 고려가요로서 세조시대 음악을 수록한 『대악후보』 등에 수록된 것을 보면 조선 전기까지는 연주했지만, 18세기 중엽에 연주되지 않았다. 이들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피리, 해금, 대금 이외에도 거문고, 가야금 등의 대규모 편성이 필요한데, 18세기에 평양부 소속의 세악수만으로는 연주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악곡은 18세기 평양부에서 연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평양부 소속 음악인들이 삼현육각 편성의 세악수들로 정착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현재 전승되는 삼현육각 편성의 대풍류는 18세기부터 연주했을 것이다. 대풍류 악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하고 중요한 악곡은 「삼현도드리(三絃還入)」, 「염불도드리(念佛還入)」 등의 도드리장단 악곡이다. 도드리장단이 전통음악계에서 폭넓게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이다. 응천후인(생몰연도 미상)이 1724년에 편찬한 『한금신보』에는 「영산회상환입(靈山會上還入)」이 있고, 서유구(1764-1845)가 편찬한 19세기 악보인 『유예지』에는 「삼현회입(三絃回入)」이 있다. ‘환입’과 ‘회입’은 ‘도드리’를 의미한다. 「영산회상환입」과 「삼현회입」은 거문고 악보로 수록되었기에 현재의 줄풍류에 속하는 악곡이다. 그러나 18-19 세기 줄풍류 음악 형성에 깊이 관여한 음악집단은 관속 음악인들이었다. 풍류방 음악인 줄풍류와 세악수들이 발전시켰던 대풍류는 ‘다른 듯한 음악이면서도 하나의 음악’이다(조석연 2019, 794). 지방 감영의 관속 음악인들은 지방 풍류음악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예를 들어, 전라도 정읍 세습무계 출신으로 전주 재인청 악사였던 전계문(1872-1940)은 정읍 인근의 줄풍류 음악 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음악인이었다. 전주 감영에서 대풍류를 연주했던 전계문은 굿판과 각종 민속판에서 대풍류를 연주했고 풍류방에서 관악 줄풍류를 연주했다(이용식 2023, 243-244). 전계문이 대풍류와 줄풍류를 넘나들면서 연주했던 음악전통은 그의 당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전승되던 관속 음악인의 음악관행의 전승이다. 18세기 홍대용(1781-1783)의 풍류방이었던 유춘오악회에서 생황을 연주했던 장악원 공인 박보안(생몰연도 미상)과 연익성(생몰연도 미상), 북학파 풍류방에서 양금을 연주했던 장악원 악공 문명신(생몰연도 미상) 등은 풍류방에서 연주했던 관속 음악인들이었다(길현주 2023, 73-74). 이들 장악원 악사들은 궁중의 각종 연회에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세악수 음악에 익숙했다. 그리고 세악수들이 연주했던 도드리장단의 음악인 ‘환입’과 ‘회입’은 18세기에 풍류방에서 연주하는 줄풍류 악곡이 되었다. 더욱이 『유예지』의 「삼현회입」이라는 악곡명은 이 곡이 본래 대풍류 음악이었음을 시사한다. 대풍류는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지금도 「삼현(三絃)도드리」라고 한다. 그러나 줄풍류 음악인 「(현악)영상회상」에서는 이 악곡의 제목은 「상현(上絃)도드리」이다. 줄풍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거문고의 7괘에서 연주하기 때문에 ‘높은 줄’에서 연주한다는 의미로 ‘상현’이라 한다.1)유예지』의 악곡명이 「삼현회입」인 것은 이 음악이 본래 세악수들이 연주하는 대풍류 악곡이었는데 양반들의 풍류방에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이용식 2025, 407-408). 결국, 18세기 평양부 소속 세악수들이 무용 반주음악으로 연주했던 곡목은 대풍류이었을 것이다.

    평양 기생의 무용을 삼현육각 편성으로 반주하는 전통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평양 기성권번에서의 「검무」도 삼현육각 편성으로 반주한다<도판 4>. 현재 평양 「검무」의 반주음악은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대풍류로서 6박 도드리장단의 「염불(도드리)」과 4박 타령장단의 「타령」, 「자진타령」을 연주한다. 삼현육각 편성의 대풍류는 평양 「검무」 이외에도 대부분의 서도 무용 반주음악으로 쓰인다.

    SDDH-81-1-247_F4.jpg
    도판 4

    평양 기성권번 검무(Sword dance)(좌)와 승무(Monk dance)(우). 2000. 田邊尙雄. 『조선·중국음악 조사기행』. 서울: 갑우문화사.

    평양 기생춤을 대부분 삼현육각 편성의 대풍류로 반주하는데 비하여, 김취홍의 「장고춤」은 「긴난봉가」와 「한강수타령」으로 반주한다. 이는 「장고춤」이 평양 기생춤의 주요 레퍼토리인 「검무」와 「승무」 등과는 다른 맥락을 갖는 춤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리고, 「장고춤」을 민요로 반주하는 전통은 기록이나 음원 자료를 찾을 수 있는 한성준으로부터 시작되어 최승희가 발전시킨 「장고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Ⅲ. 한성준 「장고춤」의 반주음악

    「장고춤」의 주류는 한성중과 최승희로 전승되고, 최승희 이후 여러 무용가들에 의해 구성되어 연행되고 있다. 최승희 「장고춤」의 반주음악은 굿거리장단의 「한강수타령」이다. 최승희 탄생 100주년 기념 『전설의 무희』 DVD에 의하면 최승희 「장고춤」 반주음악은 피리, 대금, 해금, 가야금, 장구의 편성으로 「한강수타령」을 연주한다. 모두 57장단으로 제17장단부터 템포가 빨라지면서 자진모리 형태의 장단으로 연주한다. 이어 제25장단, 제41장단, 제49장단에서 점차 템포가 빨라진다(임진희 2012, 23-40). 최승희의 수제자인 김백봉에 전승되는 김백봉류 「장고춤」도 굿거리 48장단 구성이다(한혜경 2006, 45-47). 그러나 한성준의 제자 강선영으로 전승되는 강선영류 「장고춤」은 「한강수타령」 - 「자진한강수타령」 - 「한강수타령」으로 굿거리장단(32장단) – 자진모리장단(24장단) – 굿거리장단(8장단)의 구성이다(백설 2910, 52). 또한 배경혜류와 조흥동류 「장고춤」은 각각 타령(4장단)- 굿거리(46장단) 구성과 자진모리(20장단) - 굿거리(24장단) - 자진모리(4장단) 구성이다(한혜경 2006, 54-65). 즉, 한성준으로부터 시작된 「장고춤」은 현재 각 유파마다 다른 장단에 맞추어 추고 있다<표 1>.

    표 1

    「장고춤」 장단 구성(Structure of rhythmic patterns of janggo-chum)

    장단 구성(장단수)
    최승희 굿거리(57)
    김백봉류 굿거리(48)
    강선영류 굿거리(32) - 자진모리(24) - 굿거리(8)
    배경혜류 타령(4) - 굿거리(46)
    조흥동류 자진모리(20) - 굿거리(24) - 자진모리(4)

    실제로 한성준이 「장고춤」을 짰을 때에는 어떤 음악으로 반주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성준의 「장고춤」 반주음악은 음원 또는 문헌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한성준에게서 직접 배운 최승희와 강선영의 「장고춤」은 「한강수타령」으로 반주하기에 한성준의 「장고춤」도 「한강수타령」으로 반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성준은 대부분의 춤을 삼현육각 반주에 맞춘다.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으로 구성되는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음악은 주로 대풍류와 경기와 서도 지역의 민요인 경우가 많다. 한성준은 1937년에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쳤다. 이 조직에는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가입하여 무용 반주음악을 담당했다. 예를 들어 조선음악무용연구회는 1940년 10월에 매일신보사의 후원으로 북선(北鮮) 만주 순업공연을 가졌는데, 출연자 명단에는 한성준 외에 방응교, 박성옥, 김덕진, 정해시, 이재원, 김재선, 고준성, 김광채, 지영희, 한기종, 심상건, 이철진 등의 연주자들이 포함되었다<도판 5>. 이들은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심상건(1889-1965)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기도 출신으로 경기 지역 대풍류와 민요를 연주했던 음악인들이었다. 한성준의 「장고춤」을 춤을 추기 가장 좋은 굿거리장단의 흥겨운 가락의 경기민요인 「한강수타령」으로 반주했을 가능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강수타령」은 이영산홍(1901-몰연도 미상, 기성권번 출신)과 백모란(1900-1945, 기성권번 출신)이 1929년에 음반에 취입한 이후 이진봉(1900-몰연도 미상, 기성권번 출신), 김옥엽(생몰연도 미상, 평양 출신), 박부용(1901-몰연도 미상, 경상남도 창원 출신), 박추월, 박산월, 김란홍 등 당대 인기를 구사하던 경성의 권번 출신의 기생 가수들이 1930년대까지 음반으로 취입했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던 경기민요이다<표 2>. 한성준이 「한강수타령」에 「장고춤」을 추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한성준의 춤을 재구성한 최승희가 「한강수타령」을 「장고춤」 반주음악으로 선택한 것은 「한강수타령」의 장단과 가락, 그리고 당시 이 노래의 인기를 감안하면 충분한 선택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SDDH-81-1-247_F5.jpg
    도판 5

    「조선음악무용연구회 북선, 만주순업공연」(Performance of Joseon music and dance research center in North Korea and Manchuria). 『매일신보』 1940.10.7.(4).

    표 2

    1920-1930년대 음반에 취입된 한강수타령("Song of the Han River" recorded during the 1920s and 1930s)

    가창자 음반 번호 연도
    이영산홍, 백모란 Columbia 40050-B 1929
    이진봉, 김옥엽 Taihei 8043-B 1931
    김옥엽, 이진봉 Polydor 19008-B 1932
    박부용 Okeh 1643 (K829) 1934
    박추월, 박산월 Columbia 40609-B 1935
    김란홍 Victor KJ-1269 (KRE414) 1939

    Ⅳ. 김취홍의 「장고춤」과 음악

    김취홍의 「장고춤」은 서도민요인 「긴난봉가」와 경기민요인 「한강수타령」와 「청춘가」의 반주로 연행한다. 김취홍이 평양 출신 기생이지만, 그의 「장고춤」은 평양 기생들의 전통적인 춤 레퍼토리는 아니다. 평양 기생춤에서 「장고춤」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취홍의 「장고춤」은 평양 교방에서 전승되는 전통춤이 아니라 그가 창작한 신무용이다. 그리고 그의 신무용의 반주음악으로 전통적인 대풍류가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민요를 반주음악으로 썼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그 민요는 평양의 유명한 음악 집단으로 날탕패의 레퍼토리였을 것이다.

    평양 날탕패는 주로 잡가 등을 연행하던 집단으로 20세기 초에는 서울에서도 활발한 공연 활동을 했다. 예를 들어 1909년 3월 22일부터 28일까지 단성사에서 공연했던 목록에 평양 날탕패가 포함되었다.

    SDDH-81-1-247_F6.jpg
    도판 6

    「연극」(Theater). 『황성신문』 1909.3.22.(3).

    단성사 공연은 거의 평양 출신 연행자들이 담당했다. 음악가 집단으로 평양 날탕패와 세악수가 있다. 평양 기생의 가무, 입창, 가야금병창[가야의琴聲], 법고, 무고, 승무 등이 공연 레퍼토리이다. 기생의 춤으로 법고, 무고, 승무가 있는데, 이들 무용은 평양 기생이 전통적으로 전승하던 단골 레퍼토리였다. 평양 기생의 춤은 세악, 즉 삼현육각으로 반주했기에 이 음악은 대풍류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평양 기생의 학습 악기 중에 가야금도 있었기에2) 평양 기생이 가야금병창도 공연했다. 이 공연에서 평양 날탕패는 입창을 노래했다.

    평양 날탕패는 19세기부터 평양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악집단이었다. 평양 날탕패의 문영수(1867-1930)는 평양을 벗어나 서울 원각사와 광무대에서도 활동했고, 당대 최고의 인기 명창이었던 박춘재(1881-1948)3)에게 서도소리를 전수했다. 문영수는 허득선에게 소리를 배웠고, 박춘재와 함께 원각사, 광무대 등에서 「산타령」을 공연했다(신현남 2017, 50).

    평양 날탕패의 레퍼토리로 1915년에 발간된 강희영의 『신구유행잡가』에는 「판염불」,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 「방아타령」, 「자진난봉가」를 ‘평양날탕패션소리부(平壤茶蕩牌立唱歌部)’로 소개했다(정재호, 2002, 607-612). 이중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은 현재 서도 산타령패의 레퍼토리인데, 「산타령」은 평양 날탕패 문영수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판염불」은 1915년에 간행된 『무쌍신구잡가』에 의하면 현재 경기 산타령패의 레퍼토리인 「놀량」과 같은 노랫말인 것으로 미루어 「판염불」은 「놀량」을 일컫는 것이다(정재호 2002, 521). 한편 『무쌍신구잡가』에는 「산염불」, 「신제산염불」, 「아리랑타령」, 「긴방아타령」, 「방아타령」, 「자진난봉가」, 「난봉가(홍도소리)」, 「판염불」,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이 차례로 수록된 점으로 미루어(정재호 2002, 515-523) 이들 노래가 모두 평양 날탕패의 레퍼토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난봉가」에 ‘홍도소리’라는 부제가 있는데, ‘홍도소리’는 당시 광무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펼쳤던 기생인 홍도의 ‘더늠’을 의미한다. 즉, 「난봉가」는 날탕패 외에도 기생들의 주요 레퍼토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07년 미국 콜롬비아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서도소리인 「산염불」과 「양산도」4)가 수록된 이후, 서도소리는 유성기 음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갈래였다. 예를 들어 『한국유성기음반 총목록 색인』(송방송, 2008)에 따르면, 서도소리인 「수심가」가 100회, 「난봉가」가 99회로 음반 녹음 회수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다(고은지 2006, 106). 유성기 음반은 상업적 성패에 좌우되는 것이기에 서도소리가 가장 많이 음반으로 발매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서도소리가 가장 인기 있는 갈래였고, 특히 「수심가」와 「난봉가」는 당대에 가장 인기 많은 소리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구유행잡가』(1915)에서 「수심가」는 ‘좌창잡가부’로 분류했고, 「(자진)난봉가」는 ‘평양날탕패 입창가부’로 분류했다(정재호 2002, 612). 즉, 서도소리 중에서 좌창인 「수심가」와 평양 날탕패의 입창인 「난봉가」가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인기 있는 소리이었다.

    결국, 평양 출신의 김취향이 신무용인 「장고춤」을 만들면서 반주음악으로 쓸 수 있었던 선택압은 서도소리였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기 위하여서는 좌창인 「수심가」보다는 입창인 「난봉가」가 적합하다. 조선연구회에서 1918년에 발행한 『조선미인보감』(조선연구회 1918)에 의하면 김취향은 가무에 능한 기생이었다<도판 7>. 김취홍의 특기로 노래, 가사, 시조(명창), 서도잡가(특등), 정재 24종무, 거문고, 장구, 장수무(長衫舞)를 꼽았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장구를 메고 춤을 추면서 잡가를 부르면 보는 사람이 입에 침이 마르겠다고 한다(장고메고, 들낙날낙, 잡가할적에 / 아모라도, 입에침이, 다말으갯데). 그의 유래 없는 춤맵시와 노래소리는 화류계에 첫손가락에 꼽힌다고 한다(유례없는 춤맵시와, 노래소리는 / 화류계에, 첫손가락, 꼽아줄게오).

    (金김聚취紅홍) (二十二才)

    原籍; 平安南道 平壤府

    現住; 京城府 仁寺洞 265

    技藝; 歌, 歌詞, 時調(名唱), 西道雜歌(特等), 呈才二十四種舞, 玄琴, 杖鼓, 長衫舞

    生長平壤, 時年二十二, 性溫色白行敏言恭, 一嚬一笑, 金錦立至八歲就妨, 十六來京, 刱立本券歷任重役, 技能歌詞, 俚謠, 玄琴, 杖鼓, 舞能二十四關,

    綾羅島萬條柳는너의, 前生이오, 錦繡峰爛慢花는너의後身이라, 너의歌聲은, 大同江가을물결이, 汪洋하고, 너의性情은, 愛蓮堂이참벗이, 따뜻하도다, 아마도, 西京千古風流業寃은金聚紅인가

    눈에익고, 귀에져즌, 평양김취홍

    운빈아미, 그림갓치, 잘도생겻고

    세류춘풍, 가는허리, 테태잇도다

    사람보고, 반겨라고, 상긋웃는양

    업덩졍이, 졀노나셔, 입맛붓고오

    장고메고, 들낙날낙, 잡가할적에

    아모라도, 입에침이, 다말으갯데

    산월명옥, 몃동무와, 한게셔울와

    자유영업, 다동죠합, 창셜한후로

    류에업는춤맵시와, 노래소리는

    화류계에, 첫손가락, 꼽아줄게오

    무릅우에, 삼쳑오동, 말근가락은

    사마장경, 봉구황곡, 다시듯겟네

    SDDH-81-1-247_F7.jpg
    도판 7

    「김취홍」(Gim Chwi-hong). 조선연구회, 『조선미인보감』, 서울: 민속원, 1918(2007).

    김취홍의 특기로 24종무와 장수무를 꼽았다. 김취홍은 1915년 9월에 원화홍, 최섬홍, 김옥진, 김춘도, 윤농월, 이난향과 더불어 공진회에서 「고구려무」, 「공막무」, 「첨수무」, 「쌍승무」를 공연했다<도판 8>. 이외에도 다동조합 출신으로 「성택무」를 공연했다<도판 9>. 김취홍은 전통적으로 전승되는 가사, 시조, 서도잡가에도 뛰어난 기생이었다. 『조선미인보감』에서 김취홍의 시조는 ‘명창’으로 평가했고, 그의 서도잡가는 ‘특등’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191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하여서 김취홍은 재산도 많이 축적하여 400-500석 추수하는 토지를 소유한 갑부 기생으로 신문에 날 정도였다5)<도판 10>.

    SDDH-81-1-247_F8.jpg
    도판 8

    「공진회 연예관」(Performing arts by Gongjinhoe). 『매일신보』 1915.9.18. (3).

    SDDH-81-1-247_F9.jpg
    도판 9

    「금일의 연예관」(Today’s performance). 『매일신보』 1915.9.22. (3).

    SDDH-81-1-247_F10.jpg
    도판 10

    「기생 노릇에 천석 추수, 경성 화류계에는 섬홍이가 갑부」(Female entertainers have one thousand packs of rice, Seomhong is the rich in the Seoul arts world). 『매일신보』 1916.2.19. (3).

    다동기생조합 기생의 현상을 들은 즉 백여명 기생 중에 가장 재산이 풍족하여 가히 사람들의 뜻하지도 못할 만한 기생 오륙명이 있으니(중략) 평양 기생으로 섬홍과 설도와 김취홍 등은 사오백석의 추수하는 토지를 소유하였으며

    김취홍은 한성준보다 먼저 「장고춤」을 추었다. 장고와 정재에 두루 능했던 김취홍이 장고를 매고 춤을 추는 것은 그리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그리고 『조선인보감』에서 그렸듯이 그는 장구를 매고 춤을 추면서 잡가를 불렀다. 이는 전통적인 평양 기생춤이 대풍류로 반주하는 것과는 다른 연행이다. 김취홍이 새롭게 만든 「장고춤」은 전통적인 평양 기생춤의 반주음악인 대풍류가 아니라 잡가 또는 서도민요로 반주했을 것이다. 그가 전통적인 기생춤이 아닌 춤을 추면서 전통적인 반주음악보다는 새로운 음악 반주를 입히는 것이 춤을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김취홍은 『조선미인보감』에서 알 수 있듯이 서도잡가는 ‘특등’의 장기였다. 서도민요의 선택압으로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입창 「난봉가」가 가장 유력하다. 「난봉가」는 이미 많은 음반으로 발매되어 경성에서도 인기가 있었던 노래이기에 소비자의 취향에 가장 어울리는 서도소리였다.

    김취홍과 같이 기생이 「장고춤」을 잡가에 맞추어 추었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1921년 조선을 방문했던 일본인 음악학자 다나베 시게오(田邊尙雄, 1883-1984)는 4월 2일에 경성 단성사에서 보았던 기생춤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의 조사기인 『조선·중국음악조사기행』에 기록했다.

    밤이 되어 창덕궁 앞의 활동 小屋(당시는 영화관을 活動小屋라고 했다) 단성사에서 기생춤이 있다는 것을 여관의 女中에게 들었기 때문에 두 학생과 때마침 내리는 비를 무릅쓰고 구경하러 갔지만, 활동사진쪽이 주였고, 기생의 춤은 겨우 한 개뿐이어서 크게 실망하였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기생춤을 봤으니 대단히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 노래의 제목은 잘 몰랐지만 기생 둘이서 연장인 쪽(나이는 20세 전후인가)은 杖鼓를 가슴에 걸고, 이것을 두 손으로 치면서(왼손에 긴 막대모양의 부를 들고 북의 왼쪽 면을 치고, 오른손은 손가락으로 오른쪽 면을 두들긴다) 노래하면서 조용히 몸을 구불거리고, 좌우로 걸어가듯하며 춤춘다. 그 발놀림은 자연스러워 재미있다고 느꼈다. 다른 한쪽의 작은 편(13, 4세쯤 될까)은 이에 맞추어 노래만 부를 뿐이며, 때때로 양손을 매끄럽게 자연스레 움직이면서 조용히 몸을 움직인다. 이것은 잡가의 일종이라 하였다(田邊尙雄 2000, 21-22).

    다나베 시게오는 단성사에서 기생춤을 보았다. 두 명의 기생이 출연하여 나이가 많은 기생은 노래하면서 「장고춤」을 추었고, 나이가 적은 기생은 이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기생들이 부른 노래는 “잡가의 일종”이었다. 단성사에서 「장고춤」을 춘 기생이 누구인지, 정확히 어떤 노래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21년에 단성사 무대에서 기생이 잡가를 부르면서 「장고춤」을 추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김취홍은 주로 1915년을 전후로 활동했고, 김취홍 스타일로 무대에서 잡가를 부르면서 「장고춤」을 추는 기생이 1921년에 있었다는 사실을 다나베 시게오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김취홍류 「장고춤」의 또다른 반주음악인 「청춘가」는 본래 20세기 초에 박춘재가 일본축음기회사 음반에 취입한 「이팔청춘가」(닛보노홍 K-216-B)이었을 수 있다. 「이팔청춘가」는 「청춘가」의 ‘모형(母型)이 되는 곡’이다(성경린, 장사훈 1942, 12). 박춘재가 부른 「이팔청춘가」는 반수심가토리와 반경토리가 섞여 있는 서도민요 어법의 노래이다(이보형 1996, 129). 김취홍이 선택한 노래도 아마 서도민요 어법으로 되어 있고, 1910년대 이후 인기가 있었던 「이팔청춘가」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지금의 경기민요 「청춘가」는 「소년훈계가(少年訓戒歌)」라고도 하는데, 「이팔청춘가」를 서울 지역의 음악어법인 경토리로 바꾸고 서도소리의 장단 리듬형을 유지하면서 만들어진 노래이다. 서도민요 「이팔청춘가」는 경기민요 「청춘가」가 인기를 얻으면서 점차 도태되었다. 김취홍의 「장고춤」도 본래 서도민요 어법으로 된 「이팔청춘가」를 반주음악으로 썼을 가능성이 많다. 이후 「청춘가」가 인기를 얻고 「이팔청춘가」를 대체하면서 「청춘가」가 「십이체장고춤」의 반주음악으로 대체되는 현상은 극히 자연스럽다.

    김취홍은 경성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경성에서 인기가 많았던 경기민요 「한강수타령」도 반주음악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 사실 「한강수타령」은 서도민요 「간지타령(簡紙打令)」에서 만들어진 노래이다. 「간지타령」은 간지, 즉 편지를 매개로 사랑 타령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로서, 평양잡가 또는 서도잡가의 하나이다. 「간지타령」은 1929년 발매된 「한강수타령」보다 이른 1926년에 박월정이 음반으로 발매했다. 이후 「간지타령」은 1935년에는 당대 최고의 인기 명창이었던 박춘재와 평양 날탕패 문영수가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또한 당대 최고의 평양 기생으로 꼽히는 기성권번 출신의 박명화(1903-몰연도 미상)와 장학선(1905-1970, 1969년 국가무형유산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인정)도 1938년에 음반을 발매했다<표 3>. 「간지타령」은 삼현육각으로 반주했다. 예를 들어 장학선의 「간지타령」은 고재덕(피리), 김계선(젓대), 김승진(제금), 김영순(장구)로 반주했다. 고재덕(1889-1952)은 서울 출신의 악사로 이왕직아악부 악공이었던 이응룡을 굿판에서 만나 피리 풍류와 삼현을 배웠다. 그는 1929년부터 경성방송 전속악사로 활동하며 피리로 서도잡가를 반주했다. 그는 경성방송에서 대금과 해금 등으로 줄풍류, 가곡, 경기민요 등의 다양한 음악 반주를 맡았던 명인이다(이용식 2016, 25). 김계선(1891-1943)은 이왕직아악부의 대금 명인으로 「청성자진한잎(청성곡)」으로 유명했다. 고재덕과 김계선 같은 삼현육각 명인이 장학선의 「간지타령」을 반주했던 사실은 서도잡가가 무용음악과 마찬가지로 삼현육각으로 반주하는 전통이 잇는 것임을 반영한다.

    표 3

    1920-1930년대 음반에 취입된 간지타령("Song of Letters" recorded during the 1920s and 1930s)

    가창자 음반 번호 갈래 연도
    박월정 Nt B00 서도잡가 1926
    김춘홍 Polydor 19092-B 서도잡가 1933
    박춘재, 문영수 Victor 49030-A 평양잡가 1935
    박명화 Columbia c357 (1KR376) 평양잡가 1936
    최명선, 김주호 Shochiku S21-B 1933
    장학선 Okeh 12182 (K948) 1938

    「간지타령」은 음악적으로 굿거리장단으로 부르고 서도민요의 음악어법인 반수심가토리와 경기민요의 음악어법인 반경토리로 되어 있다. 기성권번 출신의 박명화가 부른 노래는 반수심가토리로 되어 있고, 박춘재와 문영수가 부른 노래는 반경토리로 되어 있다(손인애 2001, 150). 즉, 본래 서도민요인 「간지타령」은 서도 음악어법으로 된 것이지만, 경성 광무대를 중심으로 하던 박춘재와 문영수는 서울 음악어법으로 살짝 바꿔서 부른 것이<도판 11>. 수심가토리와 경토리는 음악어법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서도 출신 소리꾼이나 경기 출신 소리꾼이 모두 부를 수 있다. 그리고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장학선의 노래를 서울 악사인 고재덕과 김계선이 피리와 대금으로 반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은 서도민요 「간지타령」의 곡조를 이어받아 형성된 노래이다. 이는 두 가지 사실로 알 수 있다. 첫째, 20세기 전반기 「한강수타령」에서 「간지타령」 가사 일부와 서도 지역의 자연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둘째, 반수심가토리를 근본 토리로 삼는 「간지타령」의 음악 경향을 그대로 차용했다(손인애, 2001, 150). 실제 박춘재와 문영수가 부른 「간지타령」과 김추월과 박산월이 부른 「한강수타령」<도판 12>은 후렴구가 같은 노래이다. 또한 이진봉이 부른 「한강수타령」<도판 13>의 메기는 부분의 곡조는 「간지타령」의 메기는 부분의 곡조와 같다. 결국 두 곡은 곡조가 거의 같은 곡이다.

    SDDH-81-1-247_F11.jpg
    도판 11

    박춘재, 문영수 창 「간지타령」("Song of Letters" sung by Bak Chunjae and Mun Yeongsu). 손인애. ‘경기민요 한강수타령 연구’. 『한국음반학』 11. 2001. 152쪽.

    SDDH-81-1-247_F12.jpg
    도판 12

    김추월, 박산월 창 「한강수타령」("Song of the Han River" sung by Gim Chuwol and Bak Sanwol). 손인애. ‘경기민요 한강수타령 연구’. 『한국음반학』 11. 2001. 154쪽.

    SDDH-81-1-247_F13.jpg
    도판 13

    이진봉 창 「한강수타령」(Song of Han River sung by Yi Jinbong). 손인애. ‘경기민요 한강수타령 연구’. 『한국음반학』 11. 2001. 155쪽.

    <표 2>에서 보았듯이 「한강수타령」을 1930년대에 음반에 취입했던 기생 가수들은 평양 출신이 많다. 이영산홍, 백모란, 이진봉, 김옥엽이 모두 평양 기성권번 출신이다. 박부용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이지만 서도민요에 능했다. 이들은 많은 서도민요를 음반에 남겼다. 예를 들어 이영산홍과 김옥엽은 서도잡가 「놀량」, 「앞산타령」, 「가진방아타령」을 시에론음반에서 취입했다. 김옥엽, 이진봉, 박부용, 이금옥은 「개성난봉가」, 「방아타령」을 시에론음반에서 취입했다. 김옥엽, 이진봉, 이영산홍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을 태평음반에서 취입했다. 백모란, 이영산홍, 박춘재는 「개성난봉가」, 「긴배다래기」를 콜럼비아음반에서 취입했다. 김옥엽과 이진봉은 서도잡가 「배다래기」, 「자진배다래기」를 취입했고, 김옥엽, 이진봉, 박부용, 이금옥은 「개성난봉가」, 「방아타령」를 취입했다. 박부용은 경상남도 출신이지만 서도잡가에 능해 「공명가」, 「관산융마」, 「난봉가」, 「수심가」, 「엮음수심가」, 「영변가」, 「박연폭포」 등을 취입했다.6) 이들이 음반에 남긴 서도잡가는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등의 평양 날탕패 레퍼토리 외에 「공명가」, 「관산융마」, 「수심가」, 「엮음수심가」, 「난봉가」, 「개성난봉가」, 「영변가」, 「박연폭포」, 「방아타령」, 「산염불」 등의 좌창과 입창으로 부르는 서도잡가를 망라한다. 결국, 「한강수타령」을 부른 기생 가수들은 모두 서도잡가도 음반에 취입했던 평양 기성권번 출신이었다. 「한강수타령」은 이후 서울 지역의 음악문화가 서도 지역의 음악문화보다 더 우세했기 때문에 대중화되면서 서도민요 「간지타령」은 1940년대 이후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 이는 평양 기성권번 출신으로 경성에서 활동했던 기생 가수들이 자신의 출신지의 「간지타령」보다는 경성의 「한강수타령」을 선호하면서 서도민요 「간지타령」은 도태되었다.

    김취홍이 「장고춤」을 주로 언제 추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1912년 무렵 상경하여 1910년대에 대정권번에 소속되어 활동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는 1910년대 중엽 이후 경성에서 「장고춤」을 추었을 것이다. 이 무렵에 김취홍이 선택했던 반주음악은 경기민요 「한강수타령」보다는 이의 음악적 모태가 되는 서도민요 「간지타령」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김취홍 이후에 「장고춤」을 춘 한성준은 서도민요 「간지타령」보다는 이와 비슷한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을 반주음악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간지타령」과 「한강수타령」은 비슷한 곡조와 굿거리장단으로 된 노래라는 점에서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이 한성준의 선택압으로 작용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더구나 한성준은 장학선의 「긴난봉가」, 「긴아리」 등의 음반에 장고 반주를 하면서 장학선 등의 평양 기생이 부르는 서도잡가에 익숙했다. 그렇기에 한성준이 「간지타령」과 비슷한 「한강수타령」을 「장고춤」 반주음악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은 이미 조성되어 있었다. 어쩌면 한성준도 「한강수타령」이 아닌 「간지타령」을 반주음악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최승희는 20세기 중반 이후 「장고춤」을 추면서 서도민요 「간지타령」보다는 이와 곡조는 같지만 서울에서 인기가 있던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으로 반주음악을 선택했고, 「한강수타령」이 「장고춤」의 반주음악으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과 「간지타령」이 1940년대 이후 도태되면서 김취홍류 「십이체장고춤」의 반주음악도 「한강수타령」으로 대체되었을 수도 있다.

    Ⅴ. 맺는말

    「장고춤」은 현재 한성준에게서 배운 최승희가 무대 공연화한 후에 다양한 유파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이와 맥을 달리하는 「장고춤」이 평양 출신의 대정권번 기생 김취홍으로부터 시작되어 오천향을 이어 한혜경으로 전승되는 「십이체장고춤」이다. 현재 「십이체장고춤」은 「한강수타령」으로 반주하는 여느 「장고춤」과는 달리 서도민요인 「긴난봉가」, 「청춘가」, 「한강수타령」으로 반주한다. 이는 평양 출신인 김취홍의 출신 지역과 그의 성향에 의한 것이다.

    김취홍은 한성준보다 먼저 1910년대부터 「장고춤」을 추었다. 김취홍의 「장고춤」은 평양 기방에서 전통적으로 추는 검무, 승무 등과는 다른 춤이다. 평양 기방의 전통춤은 삼현육각 편성의 대풍류로 반주한다. 그러나 김취홍은 전통춤과는 다른 「장고춤」을 경성에서 연행하면서 전통 반주음악이 아닌 새로운 반주음악을 선택하여 자신의 「장고춤」이 신무용임을 확인시켰을 수 있다. 이 경우 신무용의 반주음악 선택압은 서도민요로서 당시 경성에서 가장 인기 많았던 입창 「난봉가」이었을 것이다. 김취홍 자신이 서도잡가의 ‘특등’으로 꼽힐 정도의 명창이었기에 「난봉가」는 그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다. 경기민요 「청춘가」는 서도민요 「이팔청춘가」를 서울 스타일로 바꾼 노래이다. 「이팔청춘가」는 당대 최고의 인기 명창이었던 박춘재가 취입했을 정도로 인기 있던 노래였다. 그렇다면 김취홍은 경기민요 「청춘가」가 아니라 서도민요 「이팔청춘가」를 반주음악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 다만 경기민요 「청춘가」가 20세기 전반기에 워낙 인기를 끌면서 서도민요 「이팔청춘가」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고, 김취홍류 「장고춤」에도 「청춘가」가 반주음악으로 대체되었을 수 있다. 「한강수타령」은 한성준 「장고춤」의 맥을 잇는 최승희가 반주음악으로 썼다.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은 서도민요 「간지타령」을 서울 스타일로 바꾼 노래이다. 그렇다면 김취홍은 「한강수타령」이 아닌 「간지타령」을 반주음악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한강수타령」이 인기를 끌면서 「간지타령」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고, 김취홍류 「장고춤」에도 「한강수타령」이 반주음악으로 대체되었을 수 있다.

    결국, 현재 김취홍류 「십이체장고춤」의 반주음악은 본래 서도민요인 「난봉가」, 「이팔청춘가」, 「간지타령」이었던 것이 이들 노래를 서울 스타일로 바꿔 부르면서 인기를 얻게 된 경기민요 「청춘가」와 「한강수타령」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서울이 경제 중심지이기에 중심부의 음악이 주변부의 음악을 생존투쟁에서 제압하여 주변부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 게다가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은 서도민요의 존재감을 지워버렸다. 김취홍류 「십이체장고춤」 반주음악의 형성과 역사적 변화는 이런 경제와 정치 상황에 따른 음악의 변화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많다.

    저자소개

    이용식은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University of Hawaii에서 음악학(음악인류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관심사는 민속음악의 전승과 변용이고, 주요 저서로 『음악으로 읽는 다민족 코드: 캐나다와 한인 디아스포라 음악』(2025), 『음악인류학 이론』(2024), 『신성한 소리: 공감을 부르는 종교음악의 비밀』(2023), 『음악인류학』(2015) 등이 있다.

    Lee Yongshik [Yi Yongsik] is professor of Korean music at Chonnam National University [Jeonnam National University]. He received a BA and MA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a Ph.D. from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He is interested in the transmission of folk music in contemporary society. His publications include "Multi-national Code in the Music" (2025), "Theories for Ethnomusicology" (2024), "Sacred Sounds: the Hidden Dimension of Religious Music" (2023), and "Ethnomusicology" (2015).

    Figure

    SDDH-81-1-247_F1.jpg

    김홍도. 「안릉신영도」(Being welcomed in Anneung). 1786. 종이에 유채. 25.3 x 633.0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SDDH-81-1-247_F2.jpg

    김홍도. 「무동도」(Dancing boy). 미상. 종이에 유채. 26.8 x 22.7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SDDH-81-1-247_F3.jpg

    김홍도. 「평양감사 환영도」(Being welcomed in Anneung). 18세기 후반. 종이에 유채. 71.2 x 196.9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울.

    SDDH-81-1-247_F4.jpg

    평양 기성권번 검무(Sword dance)(좌)와 승무(Monk dance)(우). 2000. 田邊尙雄. 『조선·중국음악 조사기행』. 서울: 갑우문화사.

    SDDH-81-1-247_F5.jpg

    「조선음악무용연구회 북선, 만주순업공연」(Performance of Joseon music and dance research center in North Korea and Manchuria). 『매일신보』 1940.10.7.(4).

    SDDH-81-1-247_F6.jpg

    「연극」(Theater). 『황성신문』 1909.3.22.(3).

    SDDH-81-1-247_F7.jpg

    「김취홍」(Gim Chwi-hong). 조선연구회, 『조선미인보감』, 서울: 민속원, 1918(2007).

    SDDH-81-1-247_F8.jpg

    「공진회 연예관」(Performing arts by Gongjinhoe). 『매일신보』 1915.9.18. (3).

    SDDH-81-1-247_F9.jpg

    「금일의 연예관」(Today’s performance). 『매일신보』 1915.9.22. (3).

    SDDH-81-1-247_F10.jpg

    「기생 노릇에 천석 추수, 경성 화류계에는 섬홍이가 갑부」(Female entertainers have one thousand packs of rice, Seomhong is the rich in the Seoul arts world). 『매일신보』 1916.2.19. (3).

    다동기생조합 기생의 현상을 들은 즉 백여명 기생 중에 가장 재산이 풍족하여 가히 사람들의 뜻하지도 못할 만한 기생 오륙명이 있으니(중략) 평양 기생으로 섬홍과 설도와 김취홍 등은 사오백석의 추수하는 토지를 소유하였으며

    SDDH-81-1-247_F11.jpg

    박춘재, 문영수 창 「간지타령」("Song of Letters" sung by Bak Chunjae and Mun Yeongsu). 손인애. ‘경기민요 한강수타령 연구’. 『한국음반학』 11. 2001. 152쪽.

    SDDH-81-1-247_F12.jpg

    김추월, 박산월 창 「한강수타령」("Song of the Han River" sung by Gim Chuwol and Bak Sanwol). 손인애. ‘경기민요 한강수타령 연구’. 『한국음반학』 11. 2001. 154쪽.

    SDDH-81-1-247_F13.jpg

    이진봉 창 「한강수타령」(Song of Han River sung by Yi Jinbong). 손인애. ‘경기민요 한강수타령 연구’. 『한국음반학』 11. 2001. 155쪽.

    Table

    「장고춤」 장단 구성(Structure of rhythmic patterns of janggo-chum)

    1920-1930년대 음반에 취입된 한강수타령("Song of the Han River" recorded during the 1920s and 1930s)

    1920-1930년대 음반에 취입된 간지타령("Song of Letters" recorded during the 1920s and 1930s)

    Reference

    1. 고은지 Ko, Eunji [Go, Eunji]. 2007. “20세기 전반 소통 매체의 다양화와 잡가의 존재 양상 20segi jeonban sotong maecheui dayanghwa wa japgaui yangsang” [The diversion of mass media and the existence of japga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고전문학연구 Gojeon munhak yeon-gu』 [Study of Classical Literature] 32: 99-138.
    2. 길현주 Kil, Hyeonju [Gil, Hyeonju]. 2023. “18세기 말~19세기 초 줄풍류 전문음악가 연구 유춘오악회와 북학파 풍류방을 중심으로 18segi mal-19segi cho julpungryu jeonmun eumakga yeon-gu: Yuchuno akhoe wa bukhakpa pungryubangeul jungsimeuro” [A study of the professional musicians of Julpungryu music during the end of the 18th century and the early 19th century: centering on the pungryu clubs of Yuchunoakhoe and Buhakpa school]. 전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Master’s thesis, Chonnam National University].
    3. 박애경 Park, Aekyung [Bak, Aegyeong]. 2009. “서도소리의 서울 유입과 도시문화로의 전환 Seodo soriui Seoul yuip gwa dosi munhwaroui jeonhwan” [The import of Western songs into Seoul and the change of civic culture]. 『고전문학연구 Gojeon munhak yeon-gu』 [Study of Classical Literature] 35: 33-63.
    4. 반재식 Ban, Jaesik. 2000. 『재인 천년사: 한민족의 재담과 재담달인 박춘재 일대기 Jaein cheonnyeonsa: Hanminjokui jaedam gwa jaedamdalin Bak Chunjae ildaegi』 [One thousand years of Artists: The comic stories and the life story of Ban Chunjae, the master of comic stories]. 서울: 백중당 [Seoul: Baekjungdang].
    5. 배인교 Bae, Ingyo. 2005. “조선 후기 충청도 지역 읍지의 음악기사 검토 군액과 읍사계 기록을 중심으로 Joseon hugi Chungcheongdo jiyeok eupjiui eumakgisa geomto: Gunaek gwa eupsagye girokeul jungsimeuro” [The review of musical notes in the village records in Chungcheong-do Provin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focusing on the records of the military expenses and village affairs]. 『한국음악연구 Han-guk eumak yeon-gu』 [Study of Korean Music] 37: 111-132.
    6. 배인교 Bae, Ingyo. 2007. “조선후기 지방 관속 음악인 연구 Joseon hugi jibang gwansok eumagin yeongu Joseon hugi jibang gwansok eumakin yeon-gu” [Study of local music officials in the late Joseon dynasty].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Ph.D. diss., Academy of Korean Studies].
    7. 백설 Baek, Seol. 2019. “한성준 장고춤의 전승 고찰 Han Seongjun janggochumui jeonseung gochal” [Study of the transmission of drum dance by Han Seongjun].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학위논문 [Master’s thesis,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8. 성경린, 장사훈 Sung, Kyungrin [Seong, Gyeongrin] and Chang, Sahun [Jang, Sahun]. 1942. 『조선의 민요 Joseonui minyo』 [Folk Songs of Korea]. 서울:국제음악문화사 [Seoul: Gukje eumak munhwasa].
    9. 성기숙 Sung, Kisuk [Seong, Gisuk]. 1998. 『전통의 변용과 춤 창조 Jeontongui byeonyong gwa chum changjo』 [Modification of tradition and creation of dance]. 서울: 현대미학사 [Seoul: Hyeondae mihaksa].
    10. 손인애 Son, Inae. 2001. “경기민요 한강수타령 연구 Gyeonggi minyo hangangsu taryeong” [Study of Hangangsu taryeong, folk song in Gyeonggi Province]. 『한국음반학 Han-guk eumbanhak』 [Korean Discology] 11: 147-165.
    11. 송방송 Song, Bangsong. 2008. 『한국유성기음반 총목록 색인 Han-guk yuseonggi eumban chongmokrok saekin』 [Index of the lists of SP records in Korea]. 서울: 민속원 [Seoul: Misokwon].
    12. 송방송 Song, Bangsong. 2012. 『한겨레음악인대사전 Hangyeore eumakin daesajeon』 [Dictionary of Korean musicians]. 서울: 보고사 [Seoul: Bogosa].
    13. 신현규 Sin, Hyeongyu. 2021. “일제강점기 권번 기생의 일람표 연구(1) - 종로권번(1938년) 소속의 기생 중심으로 Ilje gangjeomgi gwonbeon gisaengui illampyo yeon-gu (1): Jongro gwonbeon(1940) sosokui gisaeng jungsimeuro” [Study of index of female entertainers in gwonbeon during Japanese colonization (1): centered on the female entertainers attached to Jongro gisaeng school (1948)]. 『문화와융합 Munhwawa yunghap』 [Culture and Amalgamation] 43(5): 445-467.
    14. 신현남 Sin, Hyeonnam. 2017. 『산타령 연구 Santaryeong yeon-gu』 [Study of Santaryeong]. 서울: 민속원 [Seoul: Minsokwon].
    15. 양종승 Yang, Jongseung. 2021. “김취홍류 <십이체장고춤>의 역사적 유래와 계승 그리고 예술적 형태 Gim Chwihongryu 'Sipiche janggochum'ui yeoksajeok yurae wa gyeseung geurigo yesulseok hyeongtae” [History, transmission, and artistic form of <twelve body drum dance> of Gim Chwihong school]. 한혜경 편, Han, Hyegyeong, ed. 『김취홍류 십이체「장고춤」무보 Gim Chwihongryu sipiche 'janggochum' mubo』 [Choreography of twelve body drum dance of Gim Chwihong school], 13-47. 서울:(사)한국십이체「장고춤」보존회 [Seoul: Sibiche Janggochum Society of Korea]..
    16. 이금용 Lee, Geumyong [Yi, Geumyong]. 2001. “장고춤에 관한 연구 정은혜의 춤사위를 중심으로 Janggochume gwahan yeon-gu: Jeong Eunhyeui chumsawireul jungsimeuro” [Study of drum dance: centering on the dance of Jeong Eunhye].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Master’s thesis,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17. 이난향 Lee, Nanhyang [Yi, Nanhyang]. 1971. “연재물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명월관 Yeonjaemul 'namgigo sipeun iyagideul' myeongwolgwan” [Serial <Stories to be handed down. Myeongwolgwan]. 『중앙일보 Jung-ang Ilbo』 [Jung-ang News].
    18. 이보형 Lee, Bohyung [Yi, Bohyeong]. 1996. “이팔청춘가(홀과수타령)에 대한 연구 Ipal cheongchunga (Holgwasu taryeong)e daehan yeon-gu” [Study of Ilpalcheongchun-ga (Holgwasu taryeong)]. 『한국음반학 Han-guk eumbanhak』 [Korean Discology] 6: 115-151.
    19. 이보형, 이용식, 이진원, 김유석, 최태영, 김수현, 전지영, 김수미, 노재명 Yi Bohyeong [Yi, Bohyeong], Yi Yongshik, Yi Jinwon, Kim Yuseok, Choi Taehyeong, Kim Suhyeon, Jeon Jiyeong, Kim Sumi, No Jaemyeong. 『지영희를 말한다 다시 보는 지영희 명인의 예술 세계 Ji Yeonghuireul malhanda: dasi boneun Ji Yeonghui Myeong-inui yesul segye』 [Talking about Ji Yeonghui: Reexamintion of the artistic world of the master Ji Yeonghui]. 서울: 채륜 [Seoul: Chaeryun].
    20. 이숙희 Lee, Sukhee [Yi, Sukhui]. 2007. 『조선 후기 군영악대 Joseon hugi gunyeongakdae』 [Military Music Troup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서울:태학사 [Seoul: Taehaksa].
    21. 이용식 Lee, Yong-Shik [Yi, Yongshik]. 2016. “경기 지역 기악 명인의 음악활동 Gyeonggi jiyeok giak myeonginui eumak hwaldong” [Music activities of master musicians in the Gyeonggi area]. 이보형 외. Yi Bohyeong et al. 『지영희를 말한다 다시 보는 지영희 명인의 예술 세계 Ji Yeonghuireul malhanda: dasi boneun Ji Yeonghui Myeong-inui yesul segye』 [Talking about Ji Yeonghui: Reexamintion of the artistic world of the master Ji Yeonghui]. 서울: 채륜 [Seoul: Chaeryun]. pp. 20-34.
    22. 이용식 Lee, Yong-Shik [Yi, Yongshik]. 2023. “근현대 호남 풍류음악의 전개양상에 관한 연구 Geunhyeondae Bonam pungryu eumakui jeongaeyangsange gwanhan yeon-gu” [Study of the development of pungryu music in Honam area in the modern era]. 『한국음악사학보 Han-guk eumaksa hwakbo』 [Journal of Korean Music History] 70: 241-271.
    23. 이용식 Lee, Yong-Shik [Yi, Yongshik]. 2024. “근대 나주·광주의 삼현육각 존재 양상에 관한 연구 Geundae Naju Gwangjuui samhyeon yukgak jonjae yangsange gwanhan yeon-gu” [Study of the existence of samhyeon yukgak music in Naju and Gwangju in the modern era]. 『민속학연구 Minsokhak yeon-gu』 [Study of Folkore] 55: 5-30.
    24. 이용식 Lee, Yong-Shik [Yi, Yongshik]. 2025. “판소리 음악의 기원에 관한 연구 소리북과 고수를 중심으로 Pansori eumakui giwone gwanhan yeon-gu: soribuk gwa gosureul jungsimeuro” [Study of the origin of Pansori music: centering on the barrel drum and drummer]. 『공연문화연구 Gong-yeon munhwa yeon-gu』 [Study of Performing Arts Culture] 51: 385-417.
    25. 임진희 Im, Jinhui. 2012. “최승희 장고춤의 무용도해 Choe Seunghui janggochumui muyongdohae” [Choreography of the janggo drum dance by Choe Seunghui].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Master’s thesis, Sukmyeong Women’s University].
    26. 정병호 Chung, Byungho [Jeong. Byeongho]. 2004. 『춤추는 최승희 Chumchuneun Choe Seunghui』 [Dancing Choe Seunghui]. 서울: 뿌리깊은나무 [Seoul: Bburi gipeun namu].
    27. 정재호 편저 Chung, Jaeho [Jeong, Jaeho]. 2002. 『한국속가전집이 Han-guk sokgajeonjip 2』 [Anthology of Korean Secular Songs, vol. 2]. 서울: 도서출판 다운샘 [Seoul: Daunsaem Publishing Co.].
    28. 조석연 Cho, Seokyon [Jo, Seokyeon]. 2019. “정읍 줄풍류와 대풍류의 사회적·공간적 연관성 Jeong-eup julpungryu wa daepungryuui sahoejeok gongganjeok yeon-gwanseong” [Social and spacial relations of julpungryu and daepungryu in Jeongeup]. 『공연문화연구 Gong-yeong munhwa yeon-gu』 [Study of Performing Arts Culture] 39: 796-798.
    29. 조선연구회 Joseon yeon-guhoe. 1918(2007). 『조선미인보감 Joseon miin bogam』 [Anthology of Korean Beauties]. 서울: 민속원 [Seoul: Minsokwon].
    30. 한혜경 Han, Hyegyeong. 2004. “사적 흐름으로 본 장고춤의 교육적 효용에 관한 연구 Sajwok heureumeuro bon janggochumui gyoyukjeok hyoyonge gwanhan yeon-gu” [Study of educational effectiveness of drum dance based on its historical context]. 『대한무용학회논문집 Daehan muyong hakhoe nonmunjip』 [Society for Korean Dance] 38: 169-186.
    31. 한혜경 Han, Hyegyeong. 2006. “장고춤의 특성과 효용가치에 관한 연구 Janggochumui teukseong gwa hyoyong gachie gwanhan yeon-gu” [Study of characteristics and effectiveness of drum dance]. 세종대학교 박사학위논문 [Ph.D. diss., Sejong University].
    32. 한혜경 Han, Hyegyeong. 2021. 『김취홍류 십이체「장고춤」무보 Gim Chwihongryu sipiche 'janggochum' mubo』 [Choreography of twelve body drum dance of Gim Chwihong school]. 서울:(사)한국십이체「장고춤」보존회 [Seoul: Sibiche Janggochum Society of Korea].
    33. 田邊尙雄 Jeonbyeon sangung. 박수관 역 Bak Sugwan translation. 2000. 『조선·중국음악조사기행 Joseon, Jungguk eumak josa gihaeng』 [Field research on music in Korea and China]. 서울: 갑우문화원 [Seoul: Gabu munhwawon].

    저자소개

    LIST
    Export ci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