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전통춤은 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이하 ICH)에 해당하는가? 이 질문은 한국의 무용계에서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춤이 전통춤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종종 (기존에 무형문화재로 불렸던)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될 수 있는 자격과 함께 연관되어왔다(김영희 2023, 225). 현행 우리나라의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도 무형유산의 정의에 “전통적 공연·예술”을 가장 먼저 기재하고 있다. 하지만 2003년 유네스코가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제정하며 함께 제공한 “협약의 주요 개념(Key Concepts in the Convention)”에 따르면 “전통”은 ICH의 정의와 양립할 수 없는 의미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불일치는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혼란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전통춤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 창작을 포함한 변형된 형태를 인정할 수 있는가, 전승은 원형의 보존인가 재창조의 과정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편에서는 전통춤을 창조적으로 활용한 개인 작품도 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는지 가늠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보유자의 춤을 그대로 복제하는 학습을 고수하는 등 양극단의 사례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적용상의 혼선이라기보다, 춤 유산을 이해하는 개념적 틀이 상이하다는 데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문제는 특정 제도의 적합성 여부라기보다, 서로 다른 인식론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 두 문화유산 개념의 관계에 있다.
이때 주목할 점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이론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각각 상이한 역사적·제도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문화재 개념은 식민지 경험과 근대 국민국가 형성 과정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안정화할 필요와 결부되며, 문화재 법제를 통해 정형화된 보존 체계로 구축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전통춤은 전문 예인에 의해 전승되는 형식과 계보를 중심으로 개념화되었다. 반면, ICH 협약은 민속학, 인류학, 퍼포먼스 연구의 수행적 전환(performative turn)과 더불어 문화 다양성과 공동체 중심의 실천을 강조하는 국제적 담론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ICH를 고정된 결과물이 아닌 지속적으로 재창조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차이는 어느 한쪽의 한계라기보다,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과 학문적 전통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시아와 한국적 특수성에 관해 논의한 키이스 하워드(Keith Howard 2012a)나 국내 학자들도 전통문화와 무형문화재의 개념적 차이를 지적해왔다. 김용구(2006), 함한희, 정성미(2013), 임재해(2014) 등은 전통, 민족, 민속의 개념과 활용이 한국과 서양 간에 차이가 있음을 고찰하였으며, 무형문화재 혹은 무형문화유산과 동의어로 쓸 수 없음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무용계에서 이러한 지적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무용학자 주디 반 자일(Judy Van Zile 2001)은 한국에서 전통(tradition)과 민속(folk)이 매우 독특한 활용법을 가진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전문 예술인 장르이자 체계화된 예술춤으로 구성된 한국 전통춤의 개념이 글로벌 관점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독특해서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김영희(2023)는 전통의 개념이 1950, 60년대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형성되면서 특히 전통을 특정 시기 이전의 과거형으로 제한하고 그중에서도 민속에 해당하는 것으로 특정화하는 전통론에 기초하여 무형문화재 및 전통춤의 관념이 조형되었다고 지적한다. 다만, 그렇게 조형된 전통춤의 관념이 어떻게 글로벌한 문화유산 개념과 구분되는지에 대한 논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전통춤과 무형문화재에 관한 기존 연구는 주로 제도 운영의 개선, 전승 방식의 효율화, 지정 종목의 확대 등 실천적·정책적 차원에 집중해 왔다(윤덕경 2010; 황희정 2017; 백현순 2021). 반면 전통춤 개념을 둘러싼 이러한 패러다임의 차이를 구조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김선정, 최해리(2022)의 연구가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과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의 변화추이를 살펴 무형문화재 ‘전통무용’의 개념과 범주를 고찰하였지만, 그 인식론적 전제를 탐색하는 데에 초점을 두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학계에서도 “무형문화재 정책 개편의 문제를 보유자 수의 문제나 전승지원금 지급방식의 문제로 접근하는 量的 접근”(김용구 2006, 61)의 한계가 지적되어 온 것을 고려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의 심층적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특히 전통춤이 문화재 제도 속에서 어떻게 특정한 방식으로 개념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개념이 ICH의 이론적 전제와 어떤 지점에서 충돌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나의 이전 논문 “The Unreconciled Dichotomy: Preservation and (Re)Creation of Dance Heritage in South Korea”(Kim Sue In 2023)은 한국 전통춤의 생태계 구조와 수행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보존과 창조의 이분법이 갈등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마찰 사례나 현장의 혼란상을 분석하였다. 본 고에서는 그 갈등과 틈새가 제도와 이론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본 연구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한국의 전통춤 개념은 ICH 협약의 개념과 구조적으로 불일치하는가? 본 연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국 문화재 법령과 제도 속 전통춤 개념의 형성과정을 검토하고, ICH 협약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민속학, 인류학, 퍼포먼스 연구의 이론적 전환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를 통해 전통춤을 둘러싼 두 가지 상이한 이해 방식을 ‘보존 중심(preservation-oriented) 패러다임’과 ‘과정 중심(process-oriented) 패러다임’으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보존 중심 패러다임은 아시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하여 정통성(authenticity)을 보존하고자 정확한 계보와 형식을 검증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인식 체계를 지칭한다. 과정 중심 패러다임은 서구의 민속학, 인류학, 퍼포먼스 연구의 수행적 전환에 기초하여 유형의 물품과 차별화되는 무형의 문화는 실천과 과정 속에 그 핵심이 있다고 인식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첫째, 문화재보호법 및 관련 정책 문서에 대한 문헌 분석을 통해 한국 제도 속 전통춤 개념의 특징을 도출하고, 둘째, ICH 협약 관련 공식 문서와 학술 담론에 대한 담론분석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제도적 개념과 학문적 담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전통춤 개념을 구성해 왔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본 연구는 전통춤과 ICH 개념 간의 차이를 특정 방향으로의 수렴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유산 패러다임 간의 번역과 조정의 문제로 재정식화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나아가 전통춤을 둘러싼 이론적 긴장을 드러냄으로써, 향후 문화유산 정책과 춤 보존 담론의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논의의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다.
Ⅱ. 현행 법령과 문화유산 제도 속 전통춤 개념의 특징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기 이전 전통적인 춤 영역은 1920년대에 서양에서 비롯된 예술무용 개념의 유입 이후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며 변화해왔다. 예술무용의 개념이 유입된 이후 ‘조선춤’은 재래의 춤이라고 불리거나 고(古)무용 혹은 고전무용이라는 표현으로 지칭되면서 서양식 극장무용과의 차이를 중심으로 담론화되었다. 기관의 측면에서 보면 외국무용 및 외국무용에 기반을 둔 춤이 무용 관계기관에 속한 반면, 소위 ‘조선춤’이라 할 수 있는 전통춤은 국악 관계 기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국악계 내부에서 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무용계와 분리되고, 국악계에서도 주변적 위치를 차지하던 전통춤은 1960년대 문화재 제도의 정비와 함께 중요한 전기를 맞이한다.
본 장은 한국의 관련 법령과 제도 속에서 전통춤이 어떠한 방식으로 개념화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법조문과 관련 정책 문서를 중심으로 전통춤의 지정 기준, 전승 구조, 가치 판단 방식 등을 검토하고, 제도가 전통춤을 어떠한 존재로 구성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특히 본 장은 단순한 제도 설명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이 전통춤을 공동체의 실천이라기보다 전해내려온 것을 보존하는 춤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인식론적 틀을 형성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1. 문화재 제도의 형성과 전통춤의 개념
문화재 제도를 살펴보면 춤을 문화재화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통의 의미가 포착된다. 한국 무형문화재제도 변화양상을 논의한 조순자(2015)에 따르면, 1960년대 초부터 문화재보존위원회에서 무형문화재 선정기준을 마련하였으며, 1965년 다음과 같이 의결하였다.
1. 민족생활의 변천과 발달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2. 발생년대가 비교적 오래고 그 시대의 특색을 지닌 것. 3. 형식과 기법이 전통적인 것 4. 예술상 가치가 특출한 것 5. 학술연구상 귀중한 자료가 될수 있는 것 6. 향토적으로나 그 밖의 특색이 현저한 것 7. 인멸될 우려가 많아 문화적 가치가 상실되기 쉬운 것”이 그것이다.(조순자 2015, 61-65)
이에 따르면 문화재가 될 수 있는 춤이란 민족적이어야 하고, 오래되어야 하고,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있어야 하며, 향토적이고, 상실위험에 처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전통을 민족의 것, 과거의 것, 우수한 것, 향토적인 것으로 설정한다. 이 중 민족과 과거는 상호적인 의미 관계를 맺는다. 우리나라는 서구와 일제의 영향 하에 근대를 경험한 신생 탈식민국가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외래문물 수입 이전을 호출하기 때문이다. 김영희는 이런 전통 담론에 의거한다면 “외국 춤의 형식과 기법이 아닌 전통무용 고유의 형식과 기법으로 표현해야” 전통의 기준에 합당하게 된다고 지적한다(김영희 2023, 233). “전통무용”의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70년대에 이런 관념은 여전히 이어져 전통무용은 과거에 고정된 것으로 담론화되었다(김영희 2023, 240). 하지만 삼국시대에도 서역의 춤이 언급되고, 고려의 궁중무에도 중국에서 배워왔다는 당악정재가 존재한다는 걸 고려하면 “순수”한 민족의 문화를 선별하려는 노력은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정수진은 전통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에서 사용되는 의미를 추적하며,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이 “순수한” 전통과 오염된 것을 구분하는 시간적 기준으로 내세워졌음을 지적한다(정수진 2014, 173-174). 이렇게 특정 시점이 강조되면서 나타난 영향은 변치 않는 순수한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관념이 견고해졌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민족과 향토성도 중요한 협력관계이다. 김영희는 1950-60년대 전통 논의가 진행될 때 평민문학, 민속화 등 상류계급이나 지식인층이 아닌 하층의 혹은 민속의 기저야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요소로 간주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춤 종목에서 가장 먼저 지정된 것은 진주검무, 승전무, 승무의 민속춤이라고 지적한다(김영희 2023, 236-237). 궁중무가 지정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이다. 이러한 민속 중심의 초기 문화재 담론은 서양의 민속학 경향과 맞물려 있으며 이후 다룰 유네스코의 보호 체계의 초기 양상과 일치한다.
한데 향토성 혹은 민속은 우리나라 춤의 문화재화 과정에서 변모한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하고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호출된 전통은 여러 민속문화 중에서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을 선별한다. 강인숙은 민속춤과 무형유산춤의 차이를 고찰하며, 민속춤은 자연스런 생성, 변화, 소멸의 순환구조를 가지는 반면 무형유산춤은 보존과 전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체계화, 구조화”시킨 춤이라고 분석한다(강인숙 2020, 52). 이정노(2018)는 ‘민속’을 문화재의 본질로 규정한 결과, 궁중무였던 지방 교방의 춤(무고, 검무)가 지역의 민속춤으로 탈바꿈하여 진주검무, 통영승전무로의 문화재화를 겪었다고 주장한다(309). 이렇듯 향토성이나 민속에 포함되지 않는 궁중무도 민속으로 재구성하거나 후대에 포함시키는데, 이는 확실한 과거의 기록에 의해 뒷받침되는 역사성과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형문화재 제도의 유형 분류도 춤을 민중의 문화와 전문 예술인의 공연으로 이분시킨다. 문화재 지정종목으로 춤의 분류는 1983년 의식무·정재무·민속무·탈춤으로 제시되어 2011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지금까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무용 종목에서 탈춤, 의식무, 민중의 춤에서 지정된 종목의 수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박미, 강인숙 2019, 186).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위에서 지적된 탈춤, 의식무, 민중의 춤은 ‘무용(舞踊)’ 항목이 아닌 음악, 연희, 의례, 놀이, 축제 등 다른 항목에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가무형문화유산 강강술래는 ‘음악’ 항목으로, 일무나 작법 등의 의식무는 종교의례의 일부로, 탈춤은 연희로 분류되어 있다. 1983년 개정된 「문화재보호법」(법률 제3644호) 에서는 무용이 포함된 ‘무형문화재’와 ‘민속문화재’를 따로 구분한다. 즉, 2조 2항은 “무형문화재: 연극, 음악, 무용, 놀이, 의식,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ㆍ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2조 4항은 “민속자료 : 의식주ㆍ생업ㆍ신앙ㆍ연중행사등에 관한 풍속ㆍ관습과 이에 사용되는 의복ㆍ기구ㆍ가옥등으로서 국민생활의 추이를 이해함에 불가결한 것”으로 규정하여 ‘무용’과 ‘민속’은 구분되어 존재한다. 2011년 개정으로 ‘민속자료’가 ‘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으나 그 내용은 동일하였다. 2016년 개정까지 ‘민속자료’ 혹은 ‘민속문화재’를 ‘무형문화재: 연극ㆍ음악ㆍ무용ㆍ공예기술’과 구분하는 것은 한국의 법제 속 무형문화 개념이 광의가 아닌 협의에 가까우며 예·기능 중심의 체계를 갖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렇게 문화재화의 과정은 우리나라 맥락에서 특수한 전통, 민속, 민족의 의미를 직조하며 전통춤의 의미를 엮어낸다. 때문에 ‘전통’의 사전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전통춤의 개념과 범주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이러한 가치 기준은 전통춤을 ‘보존 중심 패러다임’ 속에서 이해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문화유산 정책의 실천적 필요에 의해 구성된 제도적 선택으로 전통춤의 의미 구조를 형성한다. 이처럼 문화재 제도는 전통춤을 단순히 보존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특정한 명칭과 형식을 지닌 ‘종목’으로 범주화함으로써 재구성한다. 이로써 전통춤은 공동체적 실천의 연속체라기보다 국가의 승인과 인증을 통해 정의되는 제도적 객체로 전환된다.
2. 전승 구조: 보유자 중심 체계
한국의 무형문화유산법에서 전통춤의 전승은 보유자와 보유단체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구조를 갖는다. 2023년 개정되어 현재 시행되고 있는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법률 제19795호)에 따르면 국가무형문화재의 보유자 및 보유단체를 인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특정 종목은 해당 기능 또는 예능을 “정통하게 체득·보존·전승”한 개인 또는 단체에게 귀속된다. 또한 보유자, 전승교육사는 전수교육을 실시하고 전승 체계를 유지할 책임을 지며, 이수자와 전수자 등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전승 구조가 형성된다.
이와 같은 법적·제도적 구조는 전통춤의 전승 주체를 공동체 일반으로부터 특정 개인 또는 인정된 집단으로 한정하는 효과를 낳는다. 전통춤은 더 이상 공동체 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공유하고 변형하는 실천이라기보다, 국가에 의해 인증된 보유자를 중심으로 계승되는 전문적 기능으로 재구성된다. 즉, 전승의 정당성은 공동체의 참여나 사용에 의해 확보되기보다, 법적 인정과 계보를 통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또한 이러한 구조는 전승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화유산청의 “국가무형유산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의 조사지표”에 따르면, 지정 조사 시 해당 종목의 전승가치(역사성, 학술성, 예술성과 기술성, 대표성), 전승환경(사회문화적 가치, 지속 가능성)의 요소가 평가대상이 된다. 이는 전통춤을 일정한 형식적 기준에 따라 파악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보유자와 전승교육사는 전수교육을 통해 해당 종목의 “정확한” 재현을 지도하며, 학습자는 이를 반복적으로 습득함으로써 전통춤을 익힌다. 이는 전통춤을 상황에 따라 변형 가능한 실천이라기보다 일정한 규범과 형식을 갖춘 재현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경향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유자 중심 체계는 단순한 형식주의라기보다, 전통의 지속성과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 선택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전승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 계보를 체계화함으로써 전통춤의 단절을 방지하고 형식적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유자 중심 전승 구조는 전통춤을 “보존 중심 패러다임” 속에서 이해하도록 만드는 핵심적인 제도적 기반으로 작용한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한국의 문화재 제도는 전통춤을 공동체의 실천이라기보다 정형화된 공연예술로 개념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승은 보유자 중심으로 조직되며, 춤은 재현 가능한 형식으로 고정되고, 그 가치는 역사성과 예술적 완성도에 의해 평가된다. 비록 2016년 ‘원형유지’ 원칙이 ‘전형’보존으로 변화하였으나, 실제 춤의 이수교육은 동작과 순서의 형식을 엄격히 지키는 방식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운영상의 특징은 전통춤을 “보존 중심 패러다임” 속에서 이해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보존 중심의 구조는 단순한 형식주의라기보다, 전통의 지속성과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Ⅲ. 유네스코 ICH 협약의 변천을 통한 관련 개념의 형성과 담론적 전환
1. 유네스코 ICH 협약의 변천에서 드러난 유산 개념의 형성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2003)은 ICH를 “공동체, 집단 및 경우에 따라 개인이 그들의 문화유산의 일부로 인식하는 관습, 표현, 지식 및 기술, 그리고 이와 관련된 도구, 사물, 공예품 및 문화적 공간”으로 정의한다(UNESCO 2003, 제2조 1항). 특히 이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이 “세대 간 전승되며, 공동체와 집단에 의해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된다”고 명시함으로써, 문화유산을 고정된 결과물이 아닌 지속적인 생성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ICH 개념은 기존의 민속(folklore) 개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 속에서 형성되었다. 2003년 ICH 협약 속 무형문화유산 개념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유형의 문화유산과 달리 가지게 되는 “살아있는(living)” 특성에 집중한다. ICH 협약에 관한 설명자료는 무형문화유산이 “전통적, 동시대적, 그리고 동시에 살아있는(Traditional, contemporary and living at the same time)” 것으로 개념화한다.
이에 따라 ICH의 정의에서 전통과 민속이라는 표현을 배제하였는데, 서론에서 인용한 “ICH 협약 핵심개념(Key Concepts in the Convention)”을 다시 살펴보면 “(전통적) 민속”이 “오래된, 변하지 않는” 등의 관념이 포함되어 ICH 정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중요한 변화의 지점이다. 1973년 유네스코에서 “비물질” 유산에 대한 보호를 논의하기 시작된 데에는 1973년 민속(folklore)에 관한 국제적 보호를 촉구하는 볼리비아 외교·종교부 발신의 편지가 있었다(Hafstein 2014, 25-26). 이후 1982년 유네스코가 WIPO(세계지식재산기구)와 함께 발표한 “민속의 불법 사용 및 기타 피해 행위에 대한 민속 보호에 관한 국내 입법 모델 조항,” 1985년 발표한 “착취 및 기타 편견적 행위에 대응한 민속 표현 보호,” 1989년 발표한 “전통문화와 민속보호에 관한 권고안”이 모두 보호의 주요 대상으로 민속 및 전통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1999년 6월 유네스코의 국제 컨퍼런스에서 민속이라는 용어가 “문제의 규모와 사용된 정의의 유형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변경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Doguzhaeva, Dorokhov, Kochemasova, Nazarenko, & Simaeva 2018, 5015).
ICH의 정의에서 전통과 민속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것은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정태적 이해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학계의 경향을 반영한다. 19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민속 개념은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사라져가는 전통을 보존하려는 시도와 결부되어 형성되었으며, 주로 농민이나 하층 계급의 문화적 표현을 지칭하는 범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고급예술과 민속문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속 개념은 문화유산을 특정 집단의 전통으로 한정하고, 그것을 고정된 형태로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내포하고 있었다. 리처드 도슨(Richard M. Dorson, 1972; 1976)은 민속학이 수집과 보존 중심의 학문으로 전개되면서 민속을 과거의 잔존물로 다루는 경향을 비판한 바 있으며, 벤 아모스(Dan Ben-Amos, 2000[1972])는 민속을 “예술적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 재정의하면서 그것이 특정한 맥락 속에서 수행되는 행위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민속을 고정된 유산이 아니라 상황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실천으로 이해하려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민속 개념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인류학과 퍼포먼스 연구로 이어지며,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문화적 표현은 더 이상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특정한 맥락 속에서 수행되는 행위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춤은 재현 가능한 형식이라기보다,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이상을 종합하면, ICH 협약은 문화유산을 ‘보존 중심’이 아니라 ‘과정 중심’으로 이해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Ⅱ장에서 분석한 한국 문화재 제도의 보존 중심 패러다임과 대비되는 인식 틀로서, 전통춤을 둘러싼 개념적 긴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2. 춤 문화유산의 수행성과 재창조성 탐색
1) ICH의 수행적 존재론
ICH 협약의 매뉴얼 작성에 참여한 다이애나 테일러(Diana Taylor)는 퍼포먼스학 학자로서 유형의 아카이브와 구분되는 무형의 실천이 공유·유통·전승되는 레파토리(repertoire) 개념을 주창했다(Taylor, 2003). 테일러는 자신이 유네스코의 ICH 협약이 조성되는데 참여했던 경험을 술회하고 무형의 실천이 물질화되는 장치들을 제거하는데 기울였던 노력들을 진술하며, 실질적인 보호가 결국 무형유산이 실천되는 삶의 맥락을 보호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다(Taylor, 2008, 94).
유네스코가 제공하는 “무형문화유산 자료집”(Kit o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의 ‘무형문화유산이란 무엇인가?(What i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에 따르면 무형문화유산이란 “우리가 나라, 전통, 삶의 방식 등 우리가 무언가에 속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더불어 “무형문화 유산의 중요성은 문화적 표현(manifestation)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풍부한 지식과 기술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또한 협약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도 “세대 간 전승, 소통의 과정”이지 “무용 공연, 노래, 음악 악기나 공예와 같은 구체적 실현의 생산물”이 아니다. 이에 따르면 춤 문화유산은 동작과 순서가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전승되고 소통되는 무형의 세계관과 가치관이다.
2) 경험과 해석의 문화유산
키이스 하워드는 무형문화유산이 유형문화유산과 다른 점이 전자가 연행과 창조 속에서 일어나는 생경험(lived experience)을 요구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Howard, 2012b, 139). 문화재 춤 종목의 리스트 작성이 진기하고 이질적인 것들의 전시 혹은 문화 상품화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전승주체의 생경험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문에 외부자적 관점(etic)보다 내부자적 관점(emic)이 무형문화유산의 이해에서 필수적이다.
유네스코 체제에서 어떤 요소(element)가 무형문화유산인지 판단할 때 대상의 객관적 실체보다 인간의 인지와 경험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춤의 설명과 기록은 춤의 내적 구조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 지역, 전승주체의 기억과 경험 등을 폭넓게 담아내야 한다. 이런 특성은 유네스코의 ICH 대표목록 등재신청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요소 자체의 설명은 250단어 이내로 한정하며 과도한 기술적 설명을 피하라고 지시한다. 요소 자체의 설명과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전승주체, 전승환경,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의미, 인권 존중에 대한 설명이다. 또한 신청서와 함께 제출하는 동영상의 내용은 춤 요소의 내적 구조, 즉 동작이나 순서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보다 공동체, 지역 환경, 전승주체의 기억과 경험 등을 폭넓게 담아낸다. 관련하여 한국의 연구자들도 예·기능의 형상 포착에 초점을 맞추는 영상 기록 방식에 대한 비판(함한희, 정성미 2013, 172)과 더불어 생산물 중심, 기능 중심 조사 대신 삶의 맥락과 경험에 바탕을 둔 “구술생애사중심조사”로 전통지식을 수집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연구(장성수, 변화영, 정형호, 함한희, 김양섭, 이균옥, 박순철 2010)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현재 국가무형유산 이수심사에는 기능 실연 능력을 평가항목의 70%로 구성하고 있어 수행자의 생경험에 대한 고려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3) 걸작과 인간문화재로부터 무형의 실천으로
무형의 연행(performance)과 실천(practice) 속 과정을 강조하는 ICH 협약은 그 이전까지 구상해왔던 인간문화재를 뜻하는 living human treasure와 걸작을 뜻하는 masterpiece라는 표현을 정의에서 배제했다. 그리고 등재되는 문화유산들을 ‘요소(element)’로 지칭한 것은 중요한 변화이다.
인간문화재 제도에 대해 테일러는 전승되는 기예가 아닌 전승하는 사람을 중시하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이 제도가 여전히 무형의 유산을 물질화하는 전제를 고수함으로써 인간문화재를 사물로 치환하고 행위주체성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하였다(Taylor 2008, 93-94). 바바라 커셴블렛-짐블렛에 따르면 유네스코에서 인간문화재 제도를 고려한 계기는 소멸하는 민속문화를 구제하려는 목적을 가진 민속학자의 기록보존활동에 지원하는 대신 실천자(practitioner)들을 바로 지원함으로써 그 문화를 지키려는 의도를 지녔다. 이 변화는 유네스코의 1989년 권고안과 2001년 보고서(전통문화 및 민속 보호를 위한 새로운 규범적 장치의 국제적 규제 타당성에 관한 예비 연구 보고서, Report on the Preliminary Study on the Advisability of Regulating Internationally, through a New Standard-setting Instrument, the Protection of Traditional Culture and Folklore) 사이에 일어난 큰 변화였다(Kirshenblatt-Gimblett 2004, 53). 이런 변화는 인간문화재 제도가 “살아있는 인간 보물(living human treasure)”을 선정하는 것이 실천의 전수자가 아니라 탈육체화된 우수성(disembodied excellence)의 예시이자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가치(universally recognized value)가 되도록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적 성찰에 근거한다.
“걸작(masterpiece)” 역시 무형의 문화를 물질화된 결과물로 상정하여 우열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ICH 협약에서 걸작이라는 용어를 없앤 것은 우량 품목 중심의 이른바 엘리트주의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문화유산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일본의 문화재 제도에 대해 고찰한 시노 아리사와(Shino Arisawa 2012)는 실제로는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는 문화 현상 간의 인위적 구분이 엘리트주의의 관점에서 예술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비예술적 춤 현상을 “잡동사니”(我楽多)로 취급하며 분리해야한다는 태도를 반영한다고 지적한다(Arisawa 2012). ICH 협약은 우수성보다 다양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다. 남근우(2017)는 유네스코의 논의 과정을 조사하며 논의 과정에서 일몰제, 즉 연한을 정해 목록을 모두 갱신하는 방식을 채택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의견이 나온 이유는 등재된 요소가 등재되지 않은 요소보다 우수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생기게 되는 부작용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방식은 현재 채택되지 못하였으나, 이러한 논의 과정은 문화유산에 대한 평등주의적 접근법이 합당하다는 학계 및 관련 분야의 목소리를 반영한다.
ICH 협약에서 인간문화재와 걸작의 용어가 빠진 것은 과정과 연행 중심으로의 이행을 예시하는 동시에, 기능과 결과물 중심의 제도가 무형의 문화를 우수성의 원칙으로 다루게 하는 경향에 대한 비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4) 지식재산화에 저항하는 재창조성
ICH 협약의 과정 중심 관점은 무형문화유산의 정의가 명시하듯이 “끊임없이 재창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한 개인의 고유한 창조물처럼 단일한 원조의 권위적인 원형(single, original, and authoritative form)이 아닌 다수의 버전과 변주들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의 재창조성은 지식재산권의 적용여부에 대한 쟁점을 다룰 때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무형문화유산에 관한 자료(Kit o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중 “질의응답(Questions and Answers)” 섹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재의 법적 틀로 지식재산권을 적용하는 것은 무형문화유산을 다룰 때 만족스럽지 못하다. 주요 어려움은 무형문화유산이 진화하고(evolving) 공유되는 특성뿐만 아니라 종종 집단적으로 소유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무형문화유산은 무형문화유산을 전승하고 실천하는 공동체와 집단의 지속적 재창조 덕분에 진화하는 것이기에, 어떤 춤의 공연이나 노래의 녹음된 해석이나 약용 식물의 특허 사용과 같은 특정 표현(specific manifestation)을 보호하는 것은 무형문화유산을 동결(freezing)시키고 자연스러운 진화를 방해할 수 있다. 또한 무형문화유산을 생성, 유지, 전수하는 주체가 공동체이기 때문에 해당 유산의 집합적 소유자를 결정하기 어렵다.(UNESCO. n.d. “Questions and Answers.”)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무형문화유산의 재창조성은 공동체와 집단이 공유하는 실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점을 지시한다. 이는 지속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특정 시점의 특정 표현이 포함될 수 있어도 그것을 유일하고 단일한 권위적 형식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통춤은 계속 재창조될 수 있고 재창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재창조되는 작품들 하나하나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2022년에 ICH의 대표목록에 등재된 독일 현대무용(German Modern Dance)을 참고해볼 수 있다. 여기에 등재된 것은 개인 현대무용가의 작품들이 아니라, 문화예술 요소로서 독일 현대무용이 가지는 공동체 내에서의 실천과 위상이다. 필립 페트코브스키(Filip Petkovski)의 논의에 따르면, 독일 현대무용이 ICH화 되기 위해서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가 필요했다고 하며 ICH 제도가 전제하는 독특한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언급한다(Petkovski 2023). 이 연구의 관점에서 페트코브스키의 연구가 주는 시사점은 ICH 제도를 정답으로 수용해야 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전제하는 문화예술 개념이 특정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개별 작품의 객관적 실체에 대한 규격화된 지식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Ⅳ. 춤 유산의 보존과 과정 사이의 틈새
한국의 보존 중심 전통춤 체계와 유네스코의 과정 중심 패러다임 사이에는 중요한 긴장이 발생한다. 비록 유네스코의 2003 보호협약이 각 협약국의 상황과 풍토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소수의 엄격한 의무(few strict obligation),” “많은 제안(many recommendations),” 그리고 “몇 가지의 열린 정의(a few open definitions)”를 제공하지만, 기본 전제들은 굳건히 남아 각국의 체계 상위에 존재하는 메타문화적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우리나라의 체계는 특정 보유자와 계보를 중심으로 전통춤을 보존하고 재현하는 방식을 제도화하였다. 이러한 체계는 전통춤의 기술적 보존과 계승에 기여하였으나, 동시에 특정 류파와 양식을 ‘정본’으로 고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반면 과정 중심 패러다임은 여러 버전과 변주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형식의 동일한 재현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서 문화가 계속 수행되고 의미화되는 과정 자체이다. 이러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관점에서 춤 문화유산이란 구체적 동작이나 정확한 순서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를 가능케 하는 소통 과정과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이 두 패러다임이 동시에 전통춤 연행자들에게 요구되는 상황은 상당한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나라의 법제에서 춤 문화유산은 문화적 표현 자체이자 구체적 실현의 생산물인 춤 동작과 순서의 실연 여부로 이수자 평가를 하고, 특정 개인인 보유자의 버전을 고정시켜 반복하며, 한 개인의 고유한 창조물처럼 단일한 원조의 권위적인 원형(single, original, and authoritative form)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명무나 명작무 등 춤의 우열을 가리는 우수성 원칙은 여전히 건재하게 작동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보존 중심 패러다임이 춤 문화유산의 수행적 존재론을 등한시하고 무형의 유산을 유형의 물품처럼 다룬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정 중심 패러다임에서 강조하는 재창조의 원칙은 전통춤에 근거한 재창조와 변형이 일어날 경우, 이를 어떻게 실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주지 않는다. 모든 변형과 버전을 동등하게 춤 문화유산으로 보호해야 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어딘가에 선을 그어야 하는가? 그 선은 무엇에 근거해서 누가 그을 수 있는가? 특정 춤 동작과 순서가 유형의 것이라서 보호의 중심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형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무엇을 통해서 전승되고 소통된단 말인가?
두 패러다임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딜레마를 바라볼 때, 나는 무형의 실천을 유형의 형식과 구분하고 차이점만을 강조하는 경우, 유형의 춤 형식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커셴블렛-짐블렛은 유네스코의 3가지 체계, 즉 유형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문화유산이 서로 완벽하게 분리된 배타적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Kirshenblatt-Gimblett 2004, 52-53). 또한 각 나라별 문화유산 정책과 실천의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을 간과한 메타문화적 질서와 운영에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고 논평한다(2004, 61). 이와 유사하게 바카와 카로블리스(Bakka & Karoblis, 2021)은 과정 중심 패러다임 역시 지역 전통을 탈맥락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덧붙여 모든 춤을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라는 이름 아래 동일하게 포괄하려는 시도는 무형문화유산 개념의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흐릴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전통춤 재창작을 단순히 해방적 실천으로만 이해할 수 없으며, 동시에 문화산업과 글로벌 예술 담론 속에서 재편되는 권력 관계로 분석해야 함을 시사한다.
과정 중심 패러다임은 변화와 재창조를 긍정하지만, 실제로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규범적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문제를 가진다. 모든 변화가 전통의 지속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이매방 삼고무 저작권 논쟁이나 관련 공연 금지 가처분 논란처럼, 공동체적 전통과 개인의 권리 사이의 충돌이 발생한 사례, 보유자가 추가로 인정되었을 때 새로운 춤이 지정된 것으로 회자되었던 사례, 신무용으로 학습된 무용가는 무형문화유산 보유자가 될 수 없다며 반대한 사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Kim 2023, 21; 30; 27). 특히 일부 전통춤은 특정 명인의 스타일과 거의 동일시되면서, 공동체 유산인지 개인 창작물인지에 대한 법적·문화적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더불어 상업적 목적에 의해 급격히 변형된 전통이나 미디어 환경에 맞춰 단순화된 실천 역시 ‘재창조’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존재한다. 따라서 과정 중심 패러다임은 변화 자체를 긍정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변화가 공동체적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유지하는가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함께 요구한다.
요컨대 무형문화유산 논의는 단순히 ‘보존 대 변화’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문화 실천이 어떠한 사회적·정치적 조건 속에서 구성되고 관리되는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Ⅴ. 결 론
본 연구는 한국의 전통춤 개념이 유네스코 ICH 개념과 어떠한 방식으로 불일치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인식론적 원인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한국 문화재 제도 속 전통춤 개념의 형성과정을 검토하고, ICH 협약의 이론적 배경을 민속학, 인류학, 퍼포먼스 연구의 수행적 전환과 연관지어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한국의 문화재 제도는 전통춤을 국가가 승인한 종목으로 범주화하고, 보유자 중심의 전승 체계와 형식화된 재현 방식을 통해 이를 유지·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구조는 전통춤을 공동체의 실천이라기보다 일정한 형식과 계보를 갖춘 공연예술로 개념화하며, 그 가치를 역사성과 예술성, 완성도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춤이 문화재가 될 만한 역사성, 예술성, 대표성을 지니느냐를 판단할 때, 그리고 지정 이후에는 그 춤을 전승하기 위해 기록 및 교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삼는 것이 춤의 객관적 실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이 춤의 기원이 언제인가, 객관적으로 이 춤의 예술성과 우수성이 공정하게 판단되는가, 객관적으로 이 춤의 대표적 춤사위가 제대로 기록 및 전수 되는가 등이 이러한 관점에서 중시되는 질문들이다.
반면 ICH 협약은 무형문화유산을 공동체의 참여와 전승, 재창조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문화유산의 본질을 수행과 경험의 차원에서 파악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서로 다른 인식론적·존재론적 기반에서 비롯된 구조적 긴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차이를 ‘보존 중심 패러다임’과 ‘과정 중심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적 틀로 정식화하였다. 보존 중심 패러다임은 전통춤을 재현 가능한 형식과 정통성의 계보 속에서 이해하는 반면, 과정 중심 패러다임은 이를 공동체의 실천과 연행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문화적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 두 패러다임은 각각 전통의 안정성과 지속성, 그리고 유연성과 변화 가능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상이한 장점을 지니며, 특정한 역사적·제도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통춤과 ICH 개념 간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우위를 전제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유산 패러다임 간의 긴장과 번역의 문제로 재정식화될 필요가 있다. 보존 중심의 접근은 전통의 단절을 방지하고 일정한 예술적 완성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반면, 과정 중심의 접근은 공동체의 참여와 실천을 통해 문화유산의 생동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전통춤 연구가 작품 중심의 분석을 넘어, 전승 과정과 수행 경험, 그리고 공동체의 참여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과정 중심 패러다임이 지역의 문화적, 역사적 특수성을 무시하는 보편적 질서로 강요될 때의 긴장과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양 패러다임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마찰 사례나 현장의 혼란상은 단순한 잡음이 아니다. 따라서 과정 중심 패러다임은 변화 자체를 긍정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변화가 공동체적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유지하는가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함께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은 무형문화유산을 둘러싼 이론적 논의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전통춤을 현대적 맥락 속에서 재사유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