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동시대적으로 세계적인 발레단들은 새로운 안무가의 발굴과 더불어 신작의 제작에 힘을 기울이며 새로운 발레의 형태인 컨템포러리발레(Contemporary Ballet) 장르를 만들게 되었다. 탈장르적, 융복합적으로 변화하는 예술의 흐름 속에서 방향성을 찾아가던 발레는, 컨템포러리댄스와 모던발레의 사이에서 과도기적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창작자의 다양한 시도 끝에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을 구축하였다.
최근 발레의 동향을 선도하는 영국로열발레단(The Royal Ballet), 파리오페라발레단(Paris Opera Ballet), 아메리칸발레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re) 등과 같은 발레단에서 한 시즌 내에 컨템포러리발레 작품을 선보이는 비중이 상향되는 추세이고, 신작 제작으로 발레단의 위상을 견고하게 한다(정옥희 2023, 35). 2016년 미국 무용사학자협회(Society of Dance History Scholars, 현재는 Dance Studies Association, DSA)에서는 「컨템포러리발레: 교류, 연결 그리고 방향성(Contemporary Ballet: Exchanges, Connections, and Directions)」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러한 동향의 편승으로 국내에서도 ‘한국 최초 공공 컨템포러리 발레단’(장지영 2024)이라고 불리는 서울시발레단을 창단하게 되었다.
카트리나 파루지아(Kathena Farrugia)와 질 누네스 젠슨(Jill Nunes Jensen)은 세계적인 발레의 흐름과 동시대 발레 안무가들에 관한 연구를 엮어서 『The Oxford Handbook of Contemporary Ballet』를 출판하였는데, 컨템포러리발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Contemporary Ballet is not a style. That is to say, it is not a trend, phase, or fleeting term that will fade; instead, it is a developing period in ballet’s time deserving of investigation. And it is into this pronounced moment of flux that we enter.(Farrugia-Kriel, Kathrina et al. 2020, 2)
해당 저서는 컨템포러리발레를 일시적인 유행이나 특정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동시대 발레의 뚜렷한 변화 양상을 반영하며 역사적·학문적 탐구의 가치를 지닌 독자적인 예술 현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발레단이라는 제도적 기반 안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발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컨템포러리댄스의 범주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또한 용어의 사용은 점차 확대되고 있으나, 다른 무용 장르와 구별되는 미학적·형식적 특성이 무엇인지, 나아가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서 어떠한 개념적 정체성을 지니는지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피에르펠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는가 『철학이란 무엇인가?(What is Philosophy?)』(1994)에서 “The artist creates blocs of percepts and affects(164)”라고 말하듯이, 예술은 지각(percepts)과 정서(affects)의 복합체를 생성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지각은 다양한 감각들이 하나의 대상으로 조직화되는 것이고(이찬웅 2012, 118), 정서는 감정이 아닌 비인간적 생성들로 이루어져 예술가의 과제는 감상자가 그 정서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다(성기현 2019, 216). 표상적 형태보다는 감각에 집중하는 들뢰즈의 예술론은 컨템포러리발레의 동시대 창작적 경향과 상응한다. 감각에 의한 신체는 클래식발레 테크닉의 변형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움직임의 확장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예술을 촉발하는 에너지의 충동으로부터 생성되는 활동으로 본 들뢰즈의 관점은 컨템포러리발레가 클리셰(cliché)에서 벗어나 단순한 의미의 전달과 재현이 아닌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예술의 사유를 대변한다.
애비 러티스(Abbey Luttus 2019)가 컨템포러리발레에서 클래식발레 테크닉의 확장과 새로운 움직임의 탐구 과정을 강조하며 “컨템포러리발레는 새롭게 부상한 무용 장르로서, 클래식발레의 기술적이고 정교한 움직임을 토대로 이를 확장하는 새로운 움직임 어휘를 탐구하는 것을 지향한다(10).”라고 말한 바와 같이 신체와 움직임은 컨템포러리발레에서 작품의 미학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특히 감각과 힘의 흐름에 의해 생성되는 움직임, 그리고 관습적 신체 사용 방식을 벗어난 새로운 동작들은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 개념을 통해 그 미학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들뢰즈가 제시한 비유기적, 기계적, 다양체의 포착, 역학적, 자기 변신적, 반실재론적 신체 개념(이찬웅 2017, 127)은 고정된 신체 질서와 위계를 해체하고 끊임없는 생성과 변용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점에서 컨템포러리발레는 클래식발레의 전통적 움직임 어휘를 변형·재구성하는 동시에, 비재현적이고 탈중심적인 신체이미지를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신체 미학을 구현한다고 볼 수 있다.
컨템포러리발레의 미학적 특성을 논함에 있어서 본 개념의 정의를 체계적으로 규정한 학술적 논의나 저서가 미흡하여 영국로열발레단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는 「클래식발레와 컨템포러리발레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classical ballet and contemporary ballet?)」라는 글을 참고하여 컨템포러리발레의 주요 특성을 검토하였다. 제시된 내용을 본 연구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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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움직임 어휘의 확장과 클래식발레 동작의 변형 및 해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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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서사의 약화 또는 해체를 통한 추상적 서사 구조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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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음악·의상·무대 활용성의 확장과 추상적인 무대 환경을 연출한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컨템포러리발레의 장르적 정체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된다. 다만 안무가마다 서로 다른 미학적 지향과 창작 방식이 공존하기 때문에 이를 단일한 양식으로 규정하거나 공통된 특성을 도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클래식발레가 고유한 신체 기술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컨템포러리발레에서 나타나는 신체와 움직임의 변화는 비교적 분명하게 관찰된다. 특히 전통적 신체 사용 방식을 변형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움직임과 시각적 이미지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자체의 신체 미학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컨템포러리발레를 독자적 장르로 인식하고, 그 신체이미지의 특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들뢰즈의 철학적 사유와 동시대 무용예술의 관계를 다룬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이서현(2018)은 드쿠플레(P. Decouflé)의 작품을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나, 시공간적 구성과 공간 인식의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이나현(2012)과 나일화(2013)는 들뢰즈의 신체론을 토대로 동시대 컨템포러리댄스에 나타나는 신체의 미학적 특성을 논의하였으나, 연구 대상이 컨템포러리댄스에 한정되어 있어 컨템포러리발레에 대한 논의로는 확장되지 못하였다. 한편 라우바허(Laubacher)(2020)는 들뢰즈의 생성(becoming) 개념을 중심으로 크리스털 파이트(Crystal Pite)의 작품과 안무적 특성을 분석하였으나, 컨템포러리발레 신체이미지의 변화 양상을 심층적으로 고찰하지는 않았다.
알렉산더 에크만에 관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김현남(2021)은 「Play」의 시공간적 특성을 논의하였으며, 정석지 외(2024)는 「A Swan Lake」의 비평적 관점에서 예술적 특성을 고찰하였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작품의 미학적·연출적 특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 신체 및 움직임에 대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편 강리군(2021)은 「Play」를, 최정화(2025)는 「Hammer」를 분석하며 움직임에 관해 다루었으나 이들 연구 역시 움직임을 작품 구성 요소의 하나로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신체의 재구성 방식이나 신체이미지의 미학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탐구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들뢰즈의 철학을 무용예술에 적용한 선행연구들과 에크만의 작품에 관한 연구들은 각각 의미 있는 성과를 축적해 왔으나, 컨템포러리발레를 대상으로 미학적 특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컨템포러리발레의 개념과 범주가 확장되고 재정의되는 현시점에서 단순히 컨템포러리댄스의 하위 범주로 이해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신체 미학과 움직임 체계를 지닌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대한 학문적 논의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특히 이러한 관점에서 컨템포러리발레에 나타나는 신체이미지의 특성을 규명하는 것은 동시대 발레의 미학적 변화와 예술적 확장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 문제를 설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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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컨템포러리발레는 어떠한 신체적·미학적 특성을 가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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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은 동시대 발레에서 나타나는 신체이미지의 변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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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알렉산더 에크만의 「Play」는 신체의 분절, 생성, 다양체, 변용, 잠재를 통해 어떠한 감각적·조형적 이미지를 생성하는가.
위와 같은 질문들을 중심으로 질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A Thousand Plateaus)』(1980)과 『감각의 논리(The Logic of Sensation)』(1981)의 번역본을 중심으로 문헌 연구를 수행하였다. 『천 개의 고원』에 나타난 기관 없는 신체, 분절(ariculation), 생성(devenir), 다양체(multiplicité), 변용(affect), 잠재(virtuel)1) 등의 개념을 통해 들뢰즈의 신체론을 고찰하였으며, 『감각의 논리』에서는 감각과 힘을 중심으로 예술과 신체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또한 관련 선행연구를 검토하여 들뢰즈의 신체 개념이 동시대 무용의 신체와 움직임을 해석하는 유효한 이론적 틀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알렉산더 에크만 「Play」 DVD 영상을 대상으로 작품 분석을 병행하였다. 분석은 컨템포러리발레에서 신체이미지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장면을 중심으로 수행하였으며, 전통적 신체 사용 방식의 해체와 변형, 신체와 공간·오브제·무대장치의 관계 형성, 인간 중심적 질서의 해체와 비인간적·추상적 이미지의 생성 등을 기준으로 장면을 선정하였다. 이후 들뢰즈의 분절, 생성, 다양체, 변용, 잠재 개념을 토대로 주요 장면을 반복 관찰하며 신체이미지를 분류·분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컨템포러리발레의 신체이미지 특성을 탈구성, 확장성, 탈중심성, 신체변이, 신체추상화의 다섯 범주로 유형화하여 들뢰즈의 신체 개념과의 미학적 연관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다만 작품 영상 분석과 철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한 질적 연구 방법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연구자의 해석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관객의 수용 양상이나 실제 공연 현장에서의 신체 경험을 실증적으로 검증하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와 같이 본 연구는 알렉산더 에크만의 「Play」작품 분석을 통해 궁극적으로 21세기 예술의 관점에 부합하여 변화되는 발레의 신체이미지를 개념화하고 나아가 컨템포러리발레의 정의를 구축하는데 연구의 의의를 지닌다.
Ⅱ. 본 론
1. 들뢰즈의 예술론과 신체 개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에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에 이르는 서양 철학은 이성과 보편 질서를 중시하던 합리주의에서 감정·의지·생명력을 강조하는 주체 철학으로 이동하며, 신체를 규범적 형식의 대상에서 개인의 감각과 내면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존재로 재해석하게 되었다. 19세기에 낭만주의와 근대 사상이 확산하며 예술은 형식적 표현을 중시하고 규범을 따르는 재현에서 모방을 넘어 창조적 자기표현의 장으로 전환되었다. 들뢰즈는 예술의 과제가 ‘힘들의 포착(Deleuze 2008, 69)’이라 규정하였으며, 예술작품이란 ‘잠재적 사건에 우주를 부여한 것’이라하였는데 지각과 정서로 예술작품이라는 신체를 합성/구성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성기현 2019, 231). 이렇듯 신체는 규범화된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감각과 내면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주체로 재인식되었다.
들뢰즈는 『천 개의 고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 유형의 CsO(Corps sans Organes, 기관 없는 신체) 위에서 일어나는 것, 말하자면 양태들, 생산된 강렬함들, 지나가는 파동들과 진동들. 모든 CsO들의 잠재적 집합, 고른판 그래서 다양한 물음들이 있게 된다.... 모든 CsO들을 어떻게 한데 꿰매고 냉각시키고 결합시킬 것인가? 그것은 각각의 CsO 위에서 생산된 강렬함들을 결합시키고 모든 강렬한 연속성들의 연속체를 만들어 낼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Deleuze et al. 2004, 295)
그가 논하는 ‘기관 없는 신체’의 무한한 변형과 연속성, 잠재성은 틀에 갇히지 않은 창조적 예술의 형태를 생산하게 만든다.
들뢰즈는 신체를 단순히 신체와 정신의 관계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미학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감각, 이미지, 표현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론적 범주로 사유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들뢰즈는 현상학이 제시하는 체험된 신체나 지향적 신체 대신 중심과 위계로 조직되지 않은 ‘기관 없는 신체’를 제시한다(이찬웅 2017, 146). 여기서 신체는 고정된 형태나 정체성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내포적 강도들이 흐르고 결합하며 끊임없이 변형되는 역동적 과정으로 이해된다.
특히 『감각의 논리』에서 들뢰즈는 예술에서 나타나는 신체를 재현의 대상이 아닌 감각과 힘이 작동하는 장으로 해석한다. 그는 “기(氣)는 신체다. 기는 살아 있는 신체적인 숨결이고 동물적인 것(Deleuze 2008, 31)”으로 설명하며, 신체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생동하는 에너지와 힘의 흐름으로 파악한다. 또한 들뢰즈는 “감각은 변형의 주역이고, 신체를 변형시키는 행위자(Deleuze 2008, 49)”라고 규정함으로써 신체를 감각에 의해 변화하는 생성의 장으로 이해한다.
“감각이란 어떤 강렬한 사실성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 사실성은 더 이상 그 속에서 재현적인 여건들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소적인 변화들을 결정한다. 감각은 진동이다. 형상은 엄밀히 말해 기관 없는 신체이다. 이렇게 유기체가 아니라 신체에 의거할 때, 감각은 재현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이 된다(Deleuze 2008, 58).”
그의 논의는 신체를 고정된 형상이나 의미의 전달체로 이해하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감각과 힘이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역동적 장으로 재개념화한다.
들뢰즈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를 분석하면서 그림 속 신체를 특정 대상을 재현하는 형상이 아니라 감각 자체를 드러내는 존재로 해석한다. 특히 베이컨의 신체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초월하는 ‘고기(viande)’의 상태로 제시되며, 이는 신체가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 이전의 감각과 힘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들뢰즈의 예술론에서 신체는 고정된 정체성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감각, 생성, 변형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 새롭게 사유된다.
또한 신체와 이미지를 동일화하며, 신체는 더 이상 물질적 기관의 집합이 아니라 감각이자 이미지로 이해했다. 감각은 신체를 변형시키는 행위자(Deleuze 2008, 49)이며, 이미지는 의식 속 표상이 아니라 사물들 사이의 힘과 변용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는 『감각의 논리』에서 파울 클레(Paul Klee)가 말한, 예술은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Deleuze 2008, 69).”는 말을 인용하며, 힘과 감각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말한다. 따라서 예술의 장은 재현의 표면이 아닌 힘들의 충돌과 감각의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내재성의 평면이 되고, 들뢰즈의 신체는 고정된 실체나 형태를 전제하는 전통적 유기체적 개념과 상반된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들뢰즈는 그의 신체론을 통해 존재를 관계와 생성의 과정으로 재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론적·실천적 지평을 제시하였다.
2. 알렉산더 에크만의 예술세계
20세기 초 발레는 양분화하여 극단적 변화와 보수적 조율 사이 현대무용과 모던발레로 발전되었다. 새로운 장르로서 갈래를 달리한 현대무용에 비교하자면, 발레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더디게 나타났다. 그러나 나름대로 발레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신체상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였으며, 발레의 고유한 독자성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급진적 장르의 탄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발레가 현시대의 컨템포러리적 형식으로 발전되는 근간이 되었다.
알렉산더 에크만은 파리오페라발레단, 스웨덴왕립발레단(Royal Swedish Ballet), 스페인국립무용단(National Dance Company of Spain), 예테보리오페라댄스컴퍼니(Gothenburg Opera Dance Company), 노르웨이국립발레단(Norwegian National Ballet), 덴마크로열발레단(Royal Danish Ballet) 등 전 세계 약 45개의 무용단에서 그의 작품을 창작하거나 협업하며 현시대를 대표하는 안무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1984년 스웨덴 스톡홀름 태생으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스웨덴왕립발레학교(Royal Swedish Ballet School)에서 발레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준비된 무용수로 성장하였다. 이후 스웨덴왕립발레단을 시작으로 네덜란드댄스시어터Ⅱ(Nederlands Dans Theater Ⅱ)를 거쳐 쿨베르그발레단(Cullberg Ballet)으로 소속을 옮기며 전문 무용수로서 유럽을 대표하는 발레 및 컨템포러리 무용단에서 경력을 쌓았다. 약 5년간의 전문 무용수 활동 이후, 에크만은 본격적으로 안무가이자 프리랜서 안무가로 전향하였다. 과거 자신이 소속되어 있었던 네덜란드댄스시어터Ⅱ와의 협업을 통해 안무가로서의 포문을 열게 되었는데, 「Flockwork」(2006), 「Cacti」(2010), 「Left Right Left Right」(2012) 그리고 네덜란드댄스시어터Ⅰ과 작업한 「Definitely Two」(2013)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유머, 연극성, 집단적 움직임, 강렬한 시각 이미지를 결합한 독자적인 안무 언어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안무적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알렉산더 에크만은 독창적인 안무 스타일과 연극적 연출 감각을 바탕으로 국제 무용계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쌓아왔다. 그는 2006년 하노버 국제 안무 콩쿠르(International Choreographic Competition in Hanover)에서 작품 「The Swingle Sisters」로 비평가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안무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2010년 영국 내셔널 댄스 어워드(National Dance Awards UK)를 수상하였으며, 2012년에는 영국 크리틱스 서클 어워드(The Critics’ Circle Awards, London)에서 최고 무용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네덜란드 무용계의 권위 있는 상으로 불리는 즈반 어워드(Zwaan Awards)에서 최고 무용 작품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에는 독일의 권위 있는 공연예술상인 파우스트상(The Faust Award)에서 최고 무용 작품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명성을 확립하였다.
이후 파리오페라발레단의 「Play」(2017), 영국로열발레단의 「Cow」(2016), 노르웨이국립발레단의 「A Swan Lake」(2014)와 같은 작품을 통해 큰 규모의 발레단의 구조 안에서 서사적 작품형식과 그의 고유한 안무 특성이 발전된 형태로 결합하여 국제적 안무가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특히 「A Swan Lake」에 관해 김현남(2021)은 에크만 특유의 거대하고 독특한 무대는 동시대 무용예술 무대의 확장된 시공간의 잠재성을 짐작하게 한다고 했으며, 정석지 외(2024)는 융복합적 장르와 미장센의 예술적 효과가 특성화되면서, 고전 원전을 재창조하는 ‘컨템포러리 발레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라고 하였다.
이처럼 알렉산더 에크만은 발레의 서사적 재현에서 벗어나 클래식발레의 어휘를 해체·변형하고 그만의 독자적 방식으로 해석하여 발레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하며, 21세기를 대표하는 컨템포러리발레 안무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 들뢰즈의 신체 개념과 컨템포러리발레
1) 컨템포러리발레의 ‘기관 없는 신체’
들뢰즈에게 신체는 단순한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힘과 관계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교차하는 역동적인 장이다. 그는 유기체적 통일성 아래 각 기관이 위계적으로 조직되는 신체관을 비판하며, 신체의 중심기관이 다른 기관을 통제하는 피라미드식 구조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였다(나일화 2013, 51). 이러한 사유는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기관 없는 신체’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들뢰즈에게 신체는 타자, 환경, 감각, 사물, 기계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용되는 관계적 존재이며, 예술은 재현의 장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지각이 생산되는 생성의 장으로 이해된다(안은희 2014, 140). 라우바허(2020)는 컨템포러리 댄스 안무가 크리스털 파이트의 작품 분석에서 들뢰즈의 신체 개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에게 신체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기 이전에 감각이 발생하는 장이며, 다양한 힘과 강도가 교차하고 작동하는 사건의 공간이다. 신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하며, 존재는 무한한 부분들로 구성된 힘들의 집합으로서 끊임없는 연결과 변형의 과정 속에 놓여 있다(4).
따라서 기관 없는 신체는 고정된 형태나 정체성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생성하는 잠재적 장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신체관은 들뢰즈의 예술론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는 장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지각을 생산하는 생성의 장이다(안은희 2014, 140). 따라서 신체는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가 부여한 고정된 의미를 재현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재된 힘과 강도를 드러내며 새로운 감각을 생성하는 열린 구조로 이해된다. 예술은 이미 존재하는 형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각과 감응을 창조하는 활동이며, 신체는 이러한 창조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매개가 된다.
이와 같은 관점은 무용에도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컨템포러리댄스는 형식적 재현을 넘어 감각, 에너지, 관계성을 드러내는 창조적 예술로 변화하였으며, 신체는 더 이상 정해진 동작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힘과 감각이 교차하는 생성의 장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들뢰즈의 신체 개념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1960~70년대는 서양 무용사에서도 중요한 전환기였다. 발레는 고전발레의 서사성과 이상화된 신체 규범에서 점차 벗어나 움직임 자체의 구조와 역동성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으며, 네오클래식발레(Neo-classical Ballet)의 발전과 더불어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포스트모던댄스(Postmodern Dance)는 동작구성과 표현방식에서의 구조적 형식을 비판하고 새로운 움직임 가능성을 모색하였다(심정민 2020, 161). 이 시기의 안무가들은 신체를 완결된 형식의 재현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힘과 감각이 교차하는 실험적 장으로 인식하였으며, 일상적 움직임, 중력, 공간, 우연성, 즉흥성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신체의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후반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를 넘어 탈장르성, 다원성, 실험성을 중시하는 예술적 경향은 무용예술에도 영향을 미쳐 장르 간 경계를 해체하고 신체와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촉진하였다. 포스트모던댄스는 당시 발레무용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처 발레의 틀을 해체하였는데(심정민 2020, 162), 특히 1980~90년대 이후 지리 킬리안(Jiří Kylián)과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는 발레 테크닉을 절대적 규범이 아닌 재구성과 변형의 대상으로 다루었다. 신체를 정해진 형식이 아닌 잠재적 가능성의 집합으로 탐구하였으며, 이는 각 기관의 고정된 기능과 유기체적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연결과 배치를 모색하는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개념과 긴밀하게 상응한다(이나현 2012, 35). 발레는 컨템포러리댄스의 직·간접적 영향을 수용하며 움직임의 확장뿐 아니라 신체, 기술, 미디어, 공간을 횡단하는 예술 형식으로 변화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의 발레는 이상적 미의 구현이나 서사의 재현을 목표로 하기보다 신체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와 강도의 장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 속에서 전개되었으며, 이는 컨템포러리발레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2) 컨템포러리발레 신체이미지
컨템포러리발레에서 나타나는 신체이미지는 형이상학적으로 완성된 형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은 신체를 고정된 유기체가 아닌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형되는 관계적 존재로 이해하며, 이는 동시대 발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신체 표현 양상을 설명하는 유효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이지현(2011)은 기관 없는 신체를 분절되거나 파편화된 신체는 부분적인 생략과 새로운 조합에 의한 재구성 형식을 보여주며 새로운 형태로 된다(32)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타나는 ‘탈구성’은 신체를 유기적 전체로 간주하는 전통적 발레의 관점에서 벗어나 신체 각 부분의 독립성과 재조합 가능성을 강조하는 특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팔, 다리, 몸통 등 각 신체 기관은 고정된 기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기존 발레 동작의 구조를 해체하거나 재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움직임을 생성한다. 이와 함께 ‘확장성’은 신체의 가용범위를 확대하고 공간, 오브제, 타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신체를 이해하는 특성으로 나타난다. 이나현(2012)은 조직화된 팔, 다리, 허리 등의 신체 기관을 독립시킴으로써 아라베스크(Arabesque)와 같은 발레 동작의 신체 가용범위가 확장되고 움직임의 다양성이 획득된다고 설명한다(52).
또한 전통적 발레가 강조해 온 중심축과 위계적 질서를 해체하는 ‘탈중심성’의 특성은 하나의 중심 원리에 의해 조직되지 않는 들뢰즈의 ‘다양체’로 설명된다. 클래식발레가 균형과 중심 통제를 통해 이상적 신체를 구축하였다면, 컨템포러리발레는 다양한 움직임의 흐름과 에너지가 다층적으로 작동하는 비위계적 구조를 추구한다. 이에 따라 특정 신체 부위가 움직임을 주도하기보다 신체 전체가 유동적으로 연결되며, 중심과 주변의 경계 또한 모호해진다. 따라서 탈구성, 확장성, 탈중심성은 모두 기관 중심의 위계적 신체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관계와 움직임의 가능성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개념과 연결된다.
또한 컨템포러리발레 신체이미지는 인간 중심적 사유를 넘어 ‘신체변이’와 ‘신체추상화’의 양상으로 확장된다. 기관 없는 신체가 동물, 식물, 불확실한 생명체와의 이접을 통해 변이된 신체 형상과 추상적 흔적의 이미지를 생성하는데(이지현 2011, 33), 들뢰즈가 말한 ‘생성’과 ‘변용’의 개념에 상응하는 것으로, 인간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존재와 관계 맺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변이’ 된 존재로 나타난다. 동시에 신체는 특정 서사나 의미를 재현하는 형상에 머무르지 않고 리듬, 에너지, 강도와 같은 감각적 힘을 드러내는 비재현적 이미지로 기능한다. 즉, ‘신체추상화’는 무용수의 개별적 표현보다 전체 장면의 시각적 구조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는 신체가 더 이상 안무의 중심적 표현 주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무대 이미지 구성의 요소로 기능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표 1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을 적용한 컨템포러리 발레 신체이미지 특성
(Characteristics of Contemporary Ballet Body Imagery through the Concept of the Body without Org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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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은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을 토대로 컨템포러리발레의 신체이미지를 개념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전통 발레가 신체를 규범적 기술 체계 안에서 이해하였다면, 컨템포러리발레는 신체를 공간, 오브제, 타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되고 생성되는 존재로 드러낸다.
4. 「Play」의 신체이미지 특성 분석
「Play」는 알렉산더 에크만의 안무와 미카엘 칼손(Mikael Karlsson)의 음악으로 구성된 2장의 컨템포러리발레 작품으로, 2017년 12월 7일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의해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에서 초연되었다. 작품은 총 105분 분량으로 초연 당시 25회 공연이 모두 매진되며 호평을 받았다. 매튜 팔루크(Matthew Paluch, 2024)는 “에크만은 기존 형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형식에서 벗어난 구조적 특징과 예측 불가능성과 우연성을 활용한 구성 방식을 지닌다”고 평가했으며, 독일국립발레단(Dutch National Ballet)에서는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감염력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열광시키고 있다”고 작품을 소개하였다.
작품은 유년기에서 중년, 노년에 이르는 생애의 흐름을 암시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1막은 네 명의 색소폰 연주자의 연주와 함께 시작되며, 2막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재즈 보컬과 함께 무용수들의 유희적 움직임, 그리고 대형 흰 풍선을 활용한 관객 참여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도판 1
알렉산더 에크만. 「놀이」(Play), 2024, 사진, 파리오페라발레단, 프랑스, https://www.operaballet.nl/en/dutch-national-ballet/2026-2027/play
「Play」는 일상적 움직임의 요소와 발레 테크닉의 서로 다른 움직임 체계가 공존한다. <도판 1>에서 다수의 초록색 공들이 상부에서 떨어지는 동시에 무용수들은 달리기, 구르기, 차기, 미끄러지기와 같은 일상적인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한다. 초록색 공이 바닥에 깔려있기에 예측 불가능한 상황은 몸통을 분절시켜서 정렬을 흐트러트려 놓아 ‘탈구성’의 특징이 나타난다. 또한 무용수들은 바닥에 앉아서 동작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공을 치거나, 띄우거나, 굴리는 데, 여기서 무용수들은 감각에 집중한다. 동작을 하면서도 공을 다루는 상황에 신체가 놓이며 움직임은 ‘확장성’을 가진다. ‘탈구성’과 ‘확장성’은 움직임뿐 아니라 연출적 측면에서도 나타나는데 기존 클래식발레 형식을 분절시키고 외부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공연 형태를 창출한다.
「Play」의 파드되는 포인트슈즈(Point Shoes)를 신은 파드되와 플랫슈즈(Flat Shoes)를 신은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모두 전통적 클래식발레 파드되와 차별화된 특징을 보인다. 1장의 겨자색의 의상을 입은 여성 무용수와 벌거벗은 몸을 한 남성 무용수의 듀엣에서 여성 무용수가 남성 무용수에게 의지한 상태에서 다리를 전방으로 들어 올리며 상체를 후방으로 기울이는 동작이나 <도판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파트너의 지지에 의존한 채 한 다리로 깊은 플리에(Plié)를 하고 회전을 하는 동작을 보면, 수직축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파드되와 달리, 두 신체 간의 관계적 균형에 의해 움직임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에크만은 Youtube에 업로드된 「Play」 Pas de deux Teaser 인터뷰에서 파드되 안무에 발레의 형식 내부와 외부를 오가는 방식을 활용한다고 설명한 바 있으며, 이러한 접근은 전통적 발레가 추구해 온 절제된 형식을 분절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움직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도판 3>을 보면 2장에서도 검정 튜튜 의상을 착용한 여성 무용수는 앞다리를 들어 올린 상태에서 중심을 이동시키며 파트너와의 지속적인 힘의 조절을 통해 동작을 수행한다. 이러한 파트너에 의지한 움직임들은 전통적 발레가 추구해 온 중심축 중심의 균형 구조에서 벗어나 관계적 힘의 작용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탈중심성’의 특성을 보여준다.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는 신체를 고정된 유기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용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잠재적 존재로 이해한다. 이러한 특성은 「Play」에서 ‘신체변이’와 ‘신체추상화’의 형태로 나타난다. <도판 4>가 보여주는 1장에 등장하는 사슴뿔 형상의 오브제를 착용한 여성 무용수들은 ‘신체변이’의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전통적 클래식발레 작품이 동물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극사실적 분장을 하며 외형적인 프레임에 맞추었던 것과는 다르게 여성 신체에 사슴뿔만 단 형상을 통해 하이브리드적 존재로 표현한다. 집단으로 이동하고 도약하는 장면은 사슴무리를 연상시키며 인간 신체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동물적 이미지를 그리는 움직임의 결합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만든다.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인간 신체를 고정된 본질로 이해하지 않고, 감각과 힘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존재 방식으로 변형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Play」의 사슴 형상은 단순한 동물 재현이 아니라 인간 신체가 다른 존재 양상으로 이행하는 변용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신체의 변용은 생명체의 형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1장에서 남성 무용수가 마이크를 이용해 바닥을 타격하고, 여성 무용수가 큐브 형태의 구조물 위에서 토슈즈를 활용해 움직이는 <도판 5>의 장면은 움직임이 생성하는 소리 자체를 공연의 주요 요소로 전환한다. 토슈즈는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온 시각적 기능을 넘어 청각적 효과를 생성하는 장치로 활용되며, 신체와 오브제는 새로운 감각 체계를 구성한다. 이는 신체가 고정된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역할로 변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판 5
알렉산더 에크만. 「놀이」(Play), 2017, 사진, 파리오페라발레단, 프랑스. https://www.operadeparis.fr/en/season-24-25/ballet/play#gallery
또한 「Play」에서는 ‘신체추상화’의 특성이 나타난다. <도판 6>에서 머리 위에 흰 공을 착용한 무용수는 얼굴과 정체성이 제거됨으로써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하나의 조형적 구조물로 존재한다. 신체는 독립적 주체로 제시되기보다 외부 요소와 결합된 구성체로 기능하며,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만든다.
의상이라기보다 소규모 세트에 가까운 오브제들은 무용수의 신체와 결합되어 인간의 신체라기보다 하나의 구조물 또는 사물의 움직임으로 인식된다. <도판 7>에서 우주복을 입은 형상, 얼굴을 긴 흰 머리카락으로 덮은 형상, 흰 공으로 얼굴을 가린 형상은 서사를 이끄는 개별 캐릭터로 기능하기보다 시각적 이미지 구성의 요소로 제시된다. 그 외에도 대형 스커트를 착용하거나 초록색 공을 몸 또는 수염으로 부착한 모습, 거대한 풍선을 다루는 무용수들은 무대를 구성하는 구조물로 존재한다.

도판 7
알렉산더 에크만. 「놀이」(Play), 2024. 12. 14, 사진, 파리오페라발레단, 프랑스, https://www.gramilano.com/2024/12/review-alexander-ekman-play/
특히 나무 형상, 우산을 든 인물, 그리고 쏟아지는 공 속에 배치된 인물들과 함께 무수한 공이 무대를 채우는 <도판 8>의 장면에서는 개별 신체의 표현성보다 전체 장면의 조형적 구성이 전면화된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신체는 독립적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힘과 강도의 관계를 드러내는 매개로 기능하며, 공간 및 오브제와 결합된 추상적 이미지로 전환된다. 이는 신체의 잠재성과 생성 가능성이 집단적이고 비재현적인 시각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양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판 8
알렉산더 에크만. 「놀이」(Play), 2024. 12. 14, 사진, 파리오페라발레단, 프랑스, https://www.gramilano.com/2024/12/review-alexander-ekman-play/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신체를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감각과 활동성이 생성되는 장으로 설명하며, 감각은 형태의 재현이 아니라 힘과 강도의 작용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Play」에 나타나는 신체는 개별 인물의 정체성이나 서사적 기능을 전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움직임이 생성하는 에너지와 강도를 가시화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신체는 인물 재현의 수단이라기보다 공간·오브제·군무와 결합된 시각적 구조의 일부로 기능하며 비재현적 신체이미지를 형성한다.
표 2
컨템포러리발레 신체이미지 특성에 근거한 「Play」 분석(Analysis of Play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of Body Imagery in Contemporary Ballet)
| 신체이미지 특성 | 「Play」에서의 표현 | 들뢰즈 개념과의 연결 | 미학적 의미 |
|---|---|---|---|
| 탈구성 | 신체기관의 가용범위 확장, 몸통 사용의 분절, 발레 테크닉의 해체 | 분절, 기관 없는 신체 | 발레의 형식과 규범 해체 |
| 확장성 | 제한된 발레 동작의 탈피, 신체+세트+조명 결합, 감각(시각·청각) 확장 | 생성, 감각 | 클래식발레의 틀 벗어난 확장, 신체가 공간·오브제와 결합된 확장된 장 |
| 탈중심성 | 무용수 중심 이탈, 중심이 무너진 파트너, 힘의 상호작용 강조 | 다양체, 힘과 강도의 장 | 균형 중심 → 에너지 흐름 중심으로 전환 |
| 신체변이 | 사슴 형상, 오브제 결합, 하이브리드 신체 | 변용, 생성 | 인간/동물/사물 경계 해체 |
| 신체추상화 | 흰 공, 구조물 신체, 익명적 군무 이미지 | 잠재, 감각, 비재현성 | 신체의 정체성 제거, 조형적·비인간적 이미지화 |
결과적으로 「Play」에서 나타나는 신체의 탈구성, 확장성, 탈중심성, 신체변이, 신체추상화는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개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 중심적 신체관을 넘어 신체가 지닌 잠재성과 변용 가능성을 가시화함으로써, 신체를 끊임없이 생성되고 재구성되는 존재로 이해하는 들뢰즈의 미학적 사유를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Ⅲ. 결 론
본 연구는 질 들뢰즈의 신체 개념, 특히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을 이론적 기반으로 에크만의 작품 「Play」를 분석함으로써 컨템포러리발레에서 나타나는 신체이미지의 미학적 전환을 규명하였다.
들뢰즈는 신체를 감각, 강도, 관계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장으로 파악함으로써 비본질주의적 존재론을 제시하였고, 철학적 전환은 신체를 더 이상 재현의 대상이 아닌, 생성과 변형의 과정으로 이해하게 하는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었다.
들뢰즈의 분절, 생성, 다양체, 변용, 잠재와 같은 신체 개념은 컨템포러리발레에서 나타나는 미학적 관점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며, 이를 이론적 틀로 삼아 분석한 「Play」는 전통적 발레 테크닉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신체를 분절하고 재구성하며 중심을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 발레의 형식적 틀을 확장시키는 양상을 보여준다. 나아가 작품은 신체를 유기적 실체가 아닌 공간, 오브제, 이미지와 결합된 관계적 구조로 전환시키며, 감각과 에너지의 흐름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Play」의 작품 분석을 통해 컨템포러리발레의 신체이미지 특성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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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신체 기관 및 클래식발레의 형식의 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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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신체와 환경 요소의 결합을 통한 감각과 움직임의 확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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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균형 중심에서 힘과 에너지 중심으로의 전환한 탈중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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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인간·사물·동물 간 경계 해체로 인한 신체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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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신체의 비인간적·조형적 이미지화의 신체추상화
이처럼 본 연구는 들뢰즈의 신체 개념을 중심으로 철학과 무용예술을 연결함으로써, 컨템포러리발레에서 나타나는 신체이미지의 변화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다만 본 연구는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우선 연구 대상이 알렉산더 에크만의 「Play」라는 단일 작품에 한정되어 있어, 컨템포러리발레 전반의 신체이미지 특성으로 일반화하는 데에는 제한이 따른다. 특히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은 해석의 다의성과 추상성이 강한 철학적 개념이므로,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작품 해석이 달라질 가능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연구에서는 다양한 컨템포러리발레 작품에 대한 비교·분석을 비롯하여, 안무가별 신체이미지 특성의 차이를 고찰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나아가 시기별·양식별 발레의 미학과 움직임 체계를 비교하는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후속 연구를 통해 본 연구의 한계가 보완된다면, 무용예술에서 신체와 이미지, 감각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규명하고, 동시대 발레의 미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문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